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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마교있다-239화 (239/416)

내 안에 마교있다 239

목적지인 연산촌 나루터에 도착했다.

우리 배가 나루터에 서서히 닿고 있는 가운데, 나루터 너머로 이십여 명의 인원들이 보였다.

아직은 어둠 속이라 약간이나마 안력을 돋워야 했다.

살펴보니 반가운 얼굴들이 있었다.

제갈수광, 장호산, 이세옥이었다.

세 사람의 뒤에 있는 스무 명 가까운 인원들은 동부지맹의 무인들인 듯했다.

우리를 마중 나온 느낌인 것으로 봐서, 연주상단 남창지점 쪽에서 전서를 통해 동부지맹 쪽에 연락을 한 게 아닐까 싶다. 그 연락을 받은 교관들이 우리가 이곳에 도착할 시간을 가늠하여 미리 와서 대기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와중에도 의문스러운 건 이세옥의 존재다.

북부지맹의 교관인 그녀가 왜 이곳에 있는 걸까.

물론 나는 그녀가 장호산과 눈이 맞았다는 사실을 이미 눈치챘었다. 그러니 장호산을 만나러 왔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지금은 이 학기 개학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다.

방학을 이용해 이곳에 와서 장호산을 만났다고 해도, 지금쯤에는 북부지맹 쪽으로 복귀하고 있어야 개학 일정을 맞출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곳에 남아 있다니.

오랜만이라 반가운 와중에도 그 부분이 궁금하다.

둘이 벌써 이쪽에 살림 차리기로 한 거야, 뭐야?

배에서 내려 교관들 쪽으로 다가갔다.

적당한 간격에 이르러 묵례부터 취하려는데, 내가 고개를 숙이기도 전에 제갈수광의 전음이 들려왔다.

[확인부터 하지. 너와 같이 합숙에 참여했던 인원들, 모두 무사한 거 맞나? 관도들 중에 다소 다친 인원들은 있어도 중상자는 없다고 들었는데 그것도 확실한가?]

목소리에서 다급함이 느껴진다.

저런 식으로 묻는 걸 보니 내 예상대로 연주상단 남창지점에서 연락을 취했던 모양이다.

[그렇습니다.]

제갈수광의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사안을 질문하고 있는 것이니 제대로 대답해줬다.

내 대꾸를 들은 그가 크게 안도하는 느낌의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 감정 표현을 별로 안 하는 그가 저 정도 반응을 보인다는 건, 걱정이 그 정도로 컸다는 뜻이다.

그제야 나는 제갈수광을 포함한 교관들에게 제대로 된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교관님들.”

그러자 길초량과 단목강을 비롯한 일행들도 빠르게 다가오며 교관들을 향해 인사하기 시작했다.

인사를 받는 동안에도 장호산은 우리가 무사한지를 확인하느라 바빴다.

그의 입에서는 고생 많았다, 천만다행이다, 잘했다 등의 말들이 쉬지 않고 흘러나왔다.

우리가 무사하다는 걸 미리 확인한 제갈수광은 말없이 일행들 한 명, 한 명을 눈에 담는 중이다. 그러면서 일행들의 상태를 면밀히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대강의 인사가 끝난 후에는 곧바로 백송학에게 교관들을 소개해줬다.

“백 선배님, 이분은 제갈수광 교관님, 이분은 장호산 교관님, 그리고 이분은 북부지맹의 이세옥 교관님이십니다.”

내 말에 백송학이 반색하며 제갈수광에게 먼저 포권하며 인사했다.

“아! 제갈 교관님이셨군요.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소생은 백송학이라 합니다.”

“아, 예······ 안녕하십니까. 동부지맹 잠룡관의 교관, 제갈수광이라 합니다.”

제갈수광이 대꾸하자 백송학이 장호산과 이세옥에게도 포권하며 인사를 건넸다.

“장 교관님과 이 교관님도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백송학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동부지맹 잠룡관의 교관, 장호산입니다.”

“안녕하세요. 북부지맹의 잠룡관의 교관인 이세옥이에요.”

마주 인사를 하고는 있지만 세 교관들은 백송학이 누군지 모르는 눈치였다. 연주상단 남창지점에서 보낸 전서에 백송학에 관한 언급은 없었던 모양이다.

이에 세 교관들에게 말했다.

“이따가 자세히 보고를 하게 되겠지만 저희들은 도주 중에 적측 고수들의 추격을 받아 큰 위기를 겪었습니다. 그때 백 선배님이 나타나서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저희들은 대부분 결코 무사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백송학 선배님은 연월이의 사형이십니다.”

내 소개에 교관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 연월이의 사형이셨군요. 몰라뵀습니다. 게다가 우리 아이들을 구해주기까지 하셨다니 뭐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갈수광의 말에 백송학이 손을 내저으며 대꾸했다.

“저는 중간에 개입하여 송 공자를 도왔을 뿐입니다. 송 공자와 함께였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러자 장호산이 대꾸했다.

“그렇다 해도 감사드립니다.”

이후에는 길초량이 교관들에게 도예주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이분은 제 지인으로, 본맹의 천풍단에 소속되어 있는 유옥화 요원이십니다.”

천풍단은 무림맹 본맹의 첩보 조직이다.

유옥화라는 이름도, 천풍단이라는 소속도, 길초량과 도예주와 내가 미리 말을 맞춰서 만들어낸 것이다.

우리는 어차피 장원에서 벌어졌던 일에 대해 여기저기에 보고하게 될 텐데, 보고의 시작은 길초량이 도예주를 업고 왔던 상황부터일 수밖에 없다.

한데 보고 시에 도예주가 신룡대의 백룡이라는 걸 밝힐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적당한 신분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정도만 말을 맞춰 주면 나머지는 도예주가 알아서 할 것이다.

그녀는 신룡대의 조장으로서 사성운룡패를 소지하고 있는 사람이다. 혹여 곤란하다 싶을 때 책임자에게 그걸 쓱 보여주면 만사가 형통할 수밖에 없다.

“유옥화라 합니다. 어쩌다가 제가 길 공자의 도움을 받아 그 장원으로 피신한 탓에 애꿎은 관도들이 큰 위험을 겪었습니다. 이 모든 일에 대해 너무나도 송구한 마음입니다.”

도예주가 목소리를 변형하여 그렇게 말했다.

장호산이 대꾸했다.

“결과적으로 아이들 모두가 무사하니 다행한 일입니다. 천풍단의 요원님께서 일부러 그러셨겠습니까.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겠지요. 모쪼록 쾌유를 빌겠습니다.”

실은 제갈수광도, 장호산도, 이세옥도 모두 도예주와는 구면이다.

동갑도에서 작전을 펼칠 당시에 내내 함께였기 때문이다.

도예주는 그때와 비교하면 용모도 완전히 달라졌고, 어려졌고, 목소리도 바뀌었다. 그렇기 때문인지 장호산과 이세옥은 전혀 못 알아보는 듯했다.

다만, 제갈수광은 눈치를 챈 것 같은 느낌이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표정을 보니 그렇다.

얼핏 보면 평소의 무표정한 얼굴이긴 하나, 나는 그와 친하기 때문인지 저 미묘한 변화를 어느 정도는 안다.

사실, 제갈수광이나 교관들이 도예주의 정체에 대해 눈치를 챈다 해도 크게 문제 될 일은 없기도 하다.

대강의 소개와 인사가 끝나자 제갈수광이 관도들에게 말했다.

“우선 가까운 곳에 있는 상요지소로 이동하여 재정비하고, 그 후에 잠룡관으로 출발할 것이다.”

지소는 현 단위에 있는 무림맹의 소규모 거점들이다.

남창에 있는 지부를 남창지부라 하듯, 상요현에 있는 지소이기에 상요지소라 한다.

“이동 중에는 은밀함을 유지하도록 한다. 이상, 이동.”

그 말과 함께 모두가 말없이 경공을 펼치기 시작했다.

경공을 펼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제갈수광의 전음이 들려왔다.

[내상을 크게 입었었다고 들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네가 그런 상태가 될 정도였다면 사정이 엄청나게 어려웠다는 뜻이었겠지. 또한 네가 그런 지경이 될 정도로 움직여 줬기에 다들 이렇듯 무사할 수 있었을 테고. 고생······ 많았다.]

저 사람한테서 저 소리를 들으니 뭔가 뿌듯하다.

[아까도 말씀드렸듯 백송학 선배님의 도움도 컸고, 길 형과 단목 조장님을 비롯한 선배 관도들의 활약도 컸습니다.]

[아, 그래. 길초량과 단목강. 모두가 무사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부터는 그렇지 않아도 그 두 사람에게 계속 신경이 쏠리던 참이었다. 둘 다 기도가 완전히 바뀌었더군. 그게 의미하는 바는 하나일 수밖에 없겠지.]

가까운 제자들인 만큼, 역시나 그 두 사람의 변화를 금세 눈치챈 것이다.

[예.]

짧게 대꾸하자 제갈수광이 말했다.

[상요지소에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약간 걸릴 테니 그동안 이번 사건에 대해 전체적으로 읊어 보도록. 내가 미리 알고 있어야 너희들도 더 편할 것이다. 당장 저 백룡조장에 관련해서도 그렇고.]

내 예상대로 제갈수광은 도예주의 정체에 대해 눈치를 채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우리가 겪었던 일들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가 모든 보고를 마치자 제갈수광이 말했다.

[잘해줬구나, 송유겸.]

[들어서 아시겠지만 이번에는 저만 잘한 게 아니라 다들 잘해 준 겁니다.]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파악하고 빠르게 도주를 결정한 판단. 그 와중에도 배를 한 지점이 아닌 두 지점으로 요청한 판단. 기본적으로 그 두 개의 판단이 매우 훌륭했다. 그게 뒷받침이 되었기에 모두가 무사할 수 있었다는 게 내 분석이다. 그래서 잘했다는 것이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그 어떤 칭찬도 아깝지 않은 모양이다.

조용히 미소를 짓고 있는데 그의 전음이 다시금 들려왔다.

[아까 네가 했던 말처럼 백 소협이 아니었으면 정말로 큰일이 났을 것 같군. 그것도 매우 높은 확률로.]

[예.]

[도착하면 백 소협에게도 다시금 제대로 감사를 표할 것이다. 그런데 확실히 포연월의 사형은 사형이라는 생각이 드는군. 겉으로는 그다지 강해 보이지 않는데, 실제로는 그렇게까지 강하다니.]

내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제갈수광이 다시 전음을 보내왔다.

[혹여 백 소협이 본인의 사문에 대해서도 알려주던가?]

[예. 제게만 제대로 알려줬습니다.]

[뭐라 하던가?]

[제게 알려준 걸 보면 교관님께도 알려줄 것 같은데, 제 입으로 들으시겠습니까?]

그러자 잠시 후에 제갈수광의 대꾸가 들려왔다.

[곧 그와 여러 대화를 나눌 테니 그냥 그때 듣도록 하지.]

이제는 내 궁금증을 풀 생각으로 말했다.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해.]

[백룡조장님의 말씀에 따르면 적도들의 습격을 받은 곳이 남창지부만이 아닐 거라고 하더군요. 혹여 다른 지역의 지부들도 습격을 받았습니까?]

[맞아. 많은 지부들이 거의 비슷한 시각에 습격을 당해서 하나같이 큰 피해들을 입었다는 모양이다. 그 일로 무림맹의 전 권역에 비상 경계령이 내려졌지.]

도예주와 나의 예상대로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차피 이 일에 관련해서는 앞으로도 계속 소식을 듣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이번에는 다른 궁금한 점에 대해 언급했다.

[교관님도 기도가 달라지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와 비교하면 매우 많이 달라져 있다.

이런 쪽으로 민감한 내가 느끼기에 분명히 그렇다.

제갈수광도 여름 방학 기간 동안 성취가 크게 상승했다는 뜻이다.

실은 아까 재회한 순간부터 느끼고 있었는데 관련된 언급을 할 틈이 없었기에 여태 못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갈수광의 대꾸는 잠시 후에야 들려왔다.

[저건 어떻게 된 녀석인지, 하여튼 이런 쪽의 눈치는 귀신같이 빨라.]

푸히히! 제갈수광 특유의 말투가 드디어 나왔다.

역시나 저 말투를 들어야 그와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이 제대로 든단 말이지.

[장 교관님과 이 교관님의 기도도 달라진 듯하던데, 세 분이 같이 어딘가에서 합숙 수련이라도 하신 겁니까?]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 연수라고나 할까. 뭐,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참고로 네 그 끊임없는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기에는 내가 좀 피곤한 상태이니, 자세한 건 장 교관한테서 듣든지 하도록.]

말투만 보면 귀찮아서 저러는 것 같은데, 실제로 제갈수광은 피로에 절어 있는 얼굴이다.

보아하니 과음 때문인 것 같지도 않다.

그냥 어마어마하게 피곤한 상태인 것이다.

이동하는 중에 서서히 동이 텄고, 오래지 않아 우리는 상요지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 후에는 휴식이 주어졌다.

저만치에 마침 이세옥이 보였기에 그녀에게 다가갔다.

“이 교관님, 그간 강녕하셨지요? 오랜만에 뵀는데 아까는 경황 중이라 제대로 인사도 못 드렸습니다.”

“우리 멋진 유겸이, 오랜만이야.”

“제갈 교관님 말씀에 의하면 이쪽에서 교관님들의 연수 같은 게 있었던 모양이더군요. 동부지맹에는 그 일로 오신 겁니까?”

“아, 그게 공식적인 연수는 아니야. 원래는 이쪽에 장 교관님을 보러 왔는데, 온 김에 제갈 교관님께도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엮이게 된 거라서. 실은 내가······, 장 교관님과 만나고 있거든.”

이세옥이 수줍어하는 표정으로 말을 마쳤다.

“오오오오!”

빤히 알고 있었음에도 그렇게 반응해 준 후 곧바로 말을 이었다.

“축하드립니다.”

“아니, 아니. 아직 축하받고 그럴 단계는 아니야. 나중에, 유겸아. 나중에.”

“하하, 알겠습니다.”

내가 대꾸하자 이세옥이 말했다.

“아무튼 그때 제갈 교관님께 인사드리면서 별 뜻 없이 방학 계획에 대해 여쭤봤었어. 그런데 방학 내내 남궁찬 부당주님과 같이 특훈을 하기로 하셨다는 거야. 들어보니 남궁 부당주님이 먼저 특훈을 제안해서 제갈 교관님이 수락하셨다고 하더라구.”

이세옥과 남궁찬은 구면이다.

기동타격조 활동이 끝난 후 함께 배를 타고 단목세가에 가서 만찬도 같이 즐겼었다.

“원래 장 교관님과 나는 방학 동안에 강서의 이곳저곳을 유람하며 돌아다닐 계획이었어. 그런데 제갈 교관님의 얘기를 듣고 나니 머릿속이 복잡해지더라. 제갈 교관님은 그렇게나 강한데도 더 발전하기 위해 방학 때 특훈까지 하시는데, 나는 연애나 하며 놀러 다닐 생각만 했구나 싶더라구.”

이세옥이 문득 뭔가를 떠올렸다는 듯 바로 말을 이었다.

“아, 참고로 나도 이번 일 학기부터는 계반 담당 교관으로 보직을 변경했거든.”

“오! 정말로 계반 담당 교관이 되신 거군요?”

이세옥이 빙그레 웃으며 대꾸했다.

“응. 약속대로.”

그녀는 좋은 교관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좋은 교관이 될 것이다.

이세옥이 하던 말을 이어갔다.

“어쨌든 제갈 교관님도 계반 담당이시잖아? 그렇다 보니 나 혼자 속으로 괜히 더 비교가 됐나 봐. 그래서 인사드리며 식사하던 자리에서 나도 모르게 불쑥 말해버린 거야. 우리도 그 특훈에 참가하고 싶다고.”

“푸하하! 장 교관님하고는 상의도 안 하시고요?”

“응······. 나도 모르게 그냥 튀어나온 말이었어. 내뱉어 놓고 나부터가 당황했는데 당연히 장 교관님도 많이 당황하셨지.”

내가 웃어 보이자 이세옥이 다시 입을 열었다.

“특훈을 함께한다는 분이 남궁 부당주님이라서 더 그랬었나 봐. 나도 교관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무인이잖아. 나 같은 무인은 남궁 부당주님 같은 무인과 같은 공간에서 수련하는 것만으로도 시야가 달라질 수 있어. 그래서인지 내 무의식이 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나 봐.”

이해가 되었기에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그녀가 말했다.

“얘기를 꺼내고도 나는 사실, 제갈 교관님이 곤란하다며 거절하실 줄 알았어. 나도 염치없고 해서 차라리 제갈 교관님이 거절해 주시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지. 한데 잠시 생각에 잠기시는 듯하더니 의외로 간단하게 승낙하시더라? 그렇다 보니 장 교관님도 어쩔 수 없이 나와 같이하게 된 거야.”

“아하.”

“그 길로 동부지맹에 가서 북부지맹 잠룡관으로 전서를 날렸지. 무공 연수 관계로 이 학기 개학 때 복귀가 늦어질 수 있다고. 남궁 부당주님 이름도 좀 팔았더니 승인이 바로 나더라. 역시 천하제일세가의 소가주신 거지. 그래서 그때부터 넷이 같이 특훈을 했던 거야. 동부지맹과 삼청산을 오가면서.”

이제야 제갈수광과 장호산, 이세옥의 기도가 달라진 게 납득이 되었다.

이세옥에게 물었다.

“한데 제갈 교관님,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엄청 피곤해 보이시더라고요.”

“아, 그건 이삼일간 잠을 못 주무셨기 때문일 거야.”

“예에?”

“남창지부에서 난리가 났던 게 그저께 밤의 일이잖아. 그때 우리도 잠들지 않은 채로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어. 그러던 중에 남궁 부당주님이 다급하게 전서를 들고 오신 거야. 연주상단 남창지점 측에서 보낸 전서였고, 너희들이 합숙 중인 장원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내용이었어.”

나는 그날 밤 장원에서 일행들에게 전투 준비를 시킨 후, 경비 무사들에게는 연주상단 남창지점으로 전서를 날려 달라고 부탁했었다.

연주상단 남창지점에서 그 전서를 받아 보고는 곧바로 동부지맹 쪽으로 전서를 날려 상황을 알렸던 모양이다. 어떻게든 우리를 돕고자 하는 마음에.

“제갈 교관님과 남궁 부당주님은 지체하지 않고 그 장원을 향해 달리셨어. 장 교관님과 나도 따라나섰다가, 두 분이 너무 빨라서 결국 쫓아가지 못하고 복귀할 수밖에 없었지. 이후에 들어 보니 두 분이 그 장원과, 장원에서 이어지는 흔적들까지 샅샅이 뒤졌다는 모양이야. 너희들이 죽림산 인근의 호변에서 배에 오른 흔적까지도.”

“아······.”

“그 후에 남궁 부당주님은 남창지부 쪽으로 향하시고, 제갈 교관님은 이쪽으로 오신 거지. 너희들이 배에 올랐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니 일단은 나루터에서 가까운 이쪽으로 복귀하셨다고 해. 나와 장 교관님은 연주상단 남창지점 쪽의 추가 전서를 받고는 미리 이곳에 와 있었고.”

이세옥이 바로 말을 이었다.

“제갈 교관님도 이곳에 도착하신 지 얼마 안 돼. 채 한 시진도 제대로 못 쉬고 나루터로 너희들을 마중 나가신 거야. 그제 밤부터 잠을 전혀 안 주무셨던 모양인데, 실제로는 그날 새벽부터 깨어 계셨던 거잖아. 그날 낮에도 힘들게 특훈을 하셨고. 그런데 그 몸으로 주무시지도 않고 계속 움직인 거지.”

이제야 제갈수광이 왜 그토록 피곤해 보였는지 알 것 같다.

이세옥이 해가 떠오르는 방향을 바라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동부지맹을 벗어나서 빗속으로 달려가던 제갈 교관님과 남궁 부당주님의 뒷모습이 여전히 뇌리에 선명해. 필사의 각오와 한없는 간절함이 동시에 전해졌던······ 그건 아마도 내 평생 결코 잊지 못할 뒷모습들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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