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244
“아까 관주님과 총교관님의 호출이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통합 잠룡대전 얘기를 하시더군. 이번에도 우리 잠룡관의 인솔 책임 교관을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작년에도 비슷했었다.
인솔 책임 교관을 맡았다는 말을 하며 반협박 비슷한 방식으로 나를 동행시켰던 것이다.
“저는 안 갑니다.”
그렇기에 확실하게, 재차 선을 그어줬다.
“푸훗! 이 자식이 앵무새처럼 안 간다는 소리만 하기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그렇게 말한 제갈수광이 다시 입을 열었다.
“두 분의 부탁을 정중하게 고사했다. 두 분도 결국 내 뜻을 받아들이셨지. 즉, 나는 이번에 통합 잠룡대전에 가지 않게 된 것이다.”
이건 약간 의외다.
제갈수광은 무공 실력도 실력이지만 통솔력도 높고 판단력도 뛰어나다. 교관으로서의 책임감도 강하며 심지어는 굵직한 사안에서의 인솔 경험도 많다.
즉, 요즘과 같은 시절에 인솔 책임자로서 가장 믿을 만한 교관은 당연히 제갈수광이다.
한데 관주 육남춘과 총교관 노양홍이 제갈수광의 거절 의사를 받아들였다니.
“정말입니까?”
“어.”
“의외군요.”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관주님과 총교관님이 아쉬워하시는 점을 하나 해결해 드렸거든.”
뭔가 조건이 오간 듯한 분위기로 말하고 있다.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 잠룡관의 재학생들 중에서 실력이 가장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는 관도는 세 명이다. 송유겸 너, 길초량, 단목강이지. 이미 많은 강호인들에게 알려진 이름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세 명이 하나같이 이번 지역 예선에 참가 신청을 안 했다고 말씀하시더군. 당연히 통합 잠룡대전에 출전하지 않겠다는 뜻일 테고.”
나는 뒤풀이 때부터 알고 있었던 내용이기에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관주님과 총교관님의 입장에서는 그게 다소 아쉬우셨던 모양이야. 두 분의 입장도 이해 못 할 건 아니다. 우리 관주님이 통합 잠룡대전의 성적에 연연해서 아랫사람들을 닦달하는 분은 아니시지만, 우수한 인재들을 보유하고도 이 좋은 분위기를 못 살려가는 건 당연히 아쉽겠지. 이렇듯 성적을 낼 수 있는 기회가 또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를 일이니.”
그 심정은 이해가 간다.
“그래서 말씀드렸다. 그 셋 중에서 한 명은 반드시 참가하게끔 만들 테니 이번 인솔 교관에서 나를 빼달라고. 그랬더니 잠시 고민하시는 듯하다가 결국 조건을 받아들이시더군.”
그 말에는 급격하게 눈매를 좁히지 않을 수 없었다.
“예에?”
그러자 제갈수광이 턱을 내밀며 말했다.
“왜? 너만 가기 싫은 줄 알아? 나도 가기 싫단 말이다. 인솔하고 책임지고 그러는 거, 너무 피곤하고 귀찮은 일이거든. 그 기간 동안에는 강제로 금주도 해야 하고 말이야. 그러면 어떻게 해? 내가 살려면 누구 한 명은 희생시켜야지.”
당당한 표정으로 저렇게 말하는데, 어이가 없다.
이, 이보쇼! 그게 교관이라는 사람이 할 소리요?
교관이 어찌 본인의 귀찮음을 회피하고자 제자들을 거래 대상으로 삼는단 말이오! 이제 교육자로서의 윤리 의식 따위는 아예 개나 주기로 한 것이오?
“일단 길초량은 논외로 칠 수밖에 없었지. 관주님과 총교관님도 알고 계시고, 너도 알고 있는 이유로.”
신룡대이기 때문이다. 당연한 얘기이기도 하다.
“그러면 둘이 남는데, 관주님과 총교관님의 분위기를 보니 너를 설득해 주기를 원하시는 눈치였다. 두 분의 입장에서는 당연하겠지. 송유겸이야말로 우리 잠룡관의 자랑거리니까.”
“자랑거리 같은 거 아니고 싶습니다.”
내 말에 제갈수광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이며 대꾸했다.
“어차피 이젠 돌이킬 수 없어. 동천비룡 정도 되면 분명한 자랑거리니까.”
“컥······!”
이런 상황에서 제갈수광의 입을 통해 갑자기 저 별호를 들으니 너무 당황스럽다.
그가 여유로운 미소를 보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 분위기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네 녀석 대신 단목강을 추천하고 설득했던 것이다.”
이래서 아까 은혜도 모른다는 둥의 말들을 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도 네 녀석은 자초지종도 듣지 않고, 뭐? 이 시기만큼은 나 보는 걸 피하고 싶다고 했던가?”
“아하하, 그 부분에는 약간의 착오가······.”
내가 황급히 얼버무리려 하자 제갈수광이 마루에서 엉덩이를 떼며 말했다.
“웃쌰. 지금이라도 다시 가서 네 녀석으로 바꾸겠다고 말씀드려야겠군. 어차피 추가 접수는 오늘 자정까지니까. 너로 교체한다고 하면 관주님과 총교관님께서도 크게 환영하실 거고.”
이에 나는 곧바로 몸을 튕기며 신발도 벗지 않은 채 마루에 올라갔다. 그 상태로 곧장 제갈수광의 뒤로 다가가서 그의 양어깨를 잡았다.
“아이고 교관님, 어깨가 많이 뭉치셨네요. 헤헤. 이게 너무 이런 식이면 건강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치잖습니까. 좀 푸셔야겠네요. 가만히 앉아 계셔 보십쇼. 헤헤헤.”
제갈수광이 엉덩이를 다시 마루에 붙였고, 나는 부지런히 그의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곧 제갈수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으, 시원하기는 시원하다. 이럴 때마다 느끼는 건데, 희한하게도 송유겸이가 또 안마는 기가 막히게 잘한단 말이지. 가만 보면 요소요소를 알아. 이건 아무리 봐도 많이 해본 솜씬데.”
“하하, 저는 그냥 감으로 하는 것뿐인데 시원하시다니 다행입니다.”
당연히 잘할 수밖에 없지요.
전생에 내가 연로하신 우리 사부님 안마를 얼마나 많이 해드렸는데.
안마를 계속하며 물었다.
“한데 조장님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잠룡대전 참가하라고 설득할 때 말입니다.”
“설득하고 말고 할 것도 없던데? 별로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바로 수락하더군. 당연히 내 제안에 따르겠다는 분위기로.”
단목강에게도 제갈수광은 은사일 수밖에 없다.
작년에 사십사 조의 활동 당시부터 통합 잠룡대전을 거쳐 기동타격조에 이르기까지, 계속 함께하며 제갈수광의 지도를 받아 왔기 때문이다.
딱히 들어주기 어려운 제안도 아니었던 만큼, 착실한 청년 단목강은 은사로 여기는 존재의 제안을 군말 없이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나는 통합 잠룡대전에 나가기 싫어하는 입장이었지만 단목강의 입장은 달랐다. 그는 싫은 게 아니라 지금의 본인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고 판단해서 불참을 결정했던 거였다.
그렇기에 다시 참가하기로 결정을 바꾸는 것도 별로 부담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역시 단목강은 스승을 대하는 마음가짐부터가 누구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거지.”
“하하하. 지금 저도 존경심을 가득 담아 안마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내 말에 제갈수광이 피식 웃었다.
계속해서 어깨를 주무르며 물었다.
“교관님이 안 맡으시면 누가 인솔 책임 교관을 맡게 될까요?”
“장 교관이 맡게 될 거다. 내가 추천했거든.”
장 교관이란 장호산이다.
“아하, 장 교관님이.”
장호산도 작년 통합 잠룡대전 때 인솔 교관들 중 한 명으로 같이 갔었다. 당시에는 책임 교관이 제갈수광이었고 장호산은 인솔 교관들 중에서 서열 이 위였다.
게다가 장호산은 기동타격조에서도 교관으로서 제갈수광을 보좌하며 관도들을 이끌었던 경험도 있다.
제갈수광이 너무 뛰어나서 상대적으로 묻힌 감이 있을 뿐이지, 장호산도 충분히 우수하고 훌륭한 교관이다.
제갈수광이 말했다.
“관주님 말씀 들어 보니 호위대의 전력 구성이 매우 강력하더군. 그런 식이면 출전자들의 안위를 신경 쓸 필요가 없어지는 만큼 장 교관의 부담도 줄겠지. 결국 대회 자체에만 신경을 쓰면 될 테니 충분히 잘할 거야.”
장호산을 향한 신뢰가 느껴졌다.
“호위대의 전력이 상당한 모양이군요?”
“어. 기밀이라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우리가 걱정하지 않아도 될 수준인 건 분명하다. 본맹에서 신경을 많이 썼음을 충분히 알 것 같더군.”
별 탈 없을 거라는 표정이다.
“남궁찬 형님과 백송학 선배님이 포함될 거라는 얘기들은 이미 많이 돌았습니다. 저도 같은 예상을 하긴 했는데 혹시······.”
공공연한 사실 같은 것이라 저 정도는 이미 기밀 사항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그렇기에 확인차 꺼내 본 말이다.
“어. 그 둘은 역시나 포함됐더군.”
남궁찬과 백송학이 호위대에 포함되어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든든한 느낌이다. 그 두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무인들인지는 직접 겪어 봐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안마하는 걸 묵묵히 즐기는 듯하던 제갈수광이 말했다.
“그간 소충광, 우문직, 장우혜의 수련을 집중적으로 도와줬다지?”
“예. 통합 잠룡대전 출전 건으로 도움을 요청하기에 부지런히 도와줬습니다.”
그러자 제갈수광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물었다.
“어때? 세 사람 모두 통합 잠룡대전에 가서 잘들 할 것 같나? 같이 수련해 봤으니 알 것 아닌가. 누가 가장 기대되나?”
“그건 일단 지역 예선에서 팔강부터 든 후에 생각해 볼 문제 아니겠습니까? 실력이 돼도 대진운이 안 좋아서 출전권을 못 따는 일이 비일비재하잖습니까. 그게 현실인데 벌써부터 통합 잠룡대전 얘기를 해서 뭐 합니까.”
“아, 참. 변화된 선발전 방식에 대해 너희들은 아직 모르겠군. 공식적으로는 내일 발표되는 내용이니.”
“예? 변화된 방식이라니요?”
“본맹의 지침이 내려왔다. 네 말마따나 지역 선발전은 그 대진운 때문에 여러 지적이 많았다. 그래서 이번부터는 선발전 방식에 변화를 주기로 한 것이다. 물론 그 방식도 완전하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이전에 비하면 대진운에 의한 아쉬운 탈락은 적잖이 줄어들 거다.”
비무 대회 등에서 통상적으로 쓰이는 승자 진출전은 한 명의 최강자를 빠르게 가리기에는 좋다.
그러나 통합 잠룡대전의 지역 예선처럼 자격을 갖춘 인원들을 선발해야 하는 측면에서는 아쉬운 면이 많다. 대진운이라는 요소가 매우 극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예로 누군가가 잠룡관에서 무공 실력이 차석이라 했을 때, 그런 실력자조차도 삼십이강이나 십육강에서 수석을 만나 버리면 그대로 탈락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그 뛰어난 실력으로도 통합 잠룡대전에는 진출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소충광, 우문직, 장우혜의 수련을 도우면서 그 부분이 많이 신경 쓰였었다.
그렇기 때문인지 제갈수광의 말에 매우 관심이 갔다.
“어떤 방식인데 그러십니까?”
“십육강 안에 들면 그때부터는 패자에게도 한 번씩의 기회가 더 주어지는 방식이다. 생각해 봐. 십육강전이라면 승리한 여덟 명은 팔강에 진출하고 패배한 여덟 명은 바로 탈락하겠지?”
“예.”
“한데 패배한 여덟 명을 바로 탈락시키지 않고 그들끼리도 다시 한번 대결을 시키는 거다. 거기에서마저 패배한 네 명만 완전히 탈락시키고, 승리한 네 명은 일단 생존시켜 놓는 거지.”
“그래서요?”
“이후에는 원래의 팔강전이 펼쳐지는 거지. 그러면 그중에서도 네 명은 사강에 진출하고 네 명은 떨어지겠지?”
이쯤 되자 감이 왔다.
“어? 그러면 설마 방금 사강에 진출하지 못한 그 네 명을 아까 십육강 탈락자 중에서 생존시켜 뒀던 네 명과 다시 붙게 하는 겁니까?”
“그렇지. 거기에서 승리한 네 명과 그전에 사강에 진출했던 네 명이 더해진 여덟 명이 최종 진출자가 되는 거다.”
확실히 이해가 되었다.
“오오! 패자에게도 한 번씩의 기회가 더 주어진다는 점이 좋은 것 같습니다. 물론 시합 수는 약간 늘어나겠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가치가 있는 듯합니다.”
“그렇지. 실력 있는 관도들이 진출권을 따낼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것이니.”
소충광과 우문직, 장우혜는 실력이 된다.
그렇기에 그들이 진출권을 따낼 가능성도 더 높아질 것이다.
제갈수광이 말했다.
“그래서 그 세 사람의 통합 잠룡대전에 대한 네 예측은?”
“통합 잠룡대전에서의 성적도 대진운에 의해 많은 부분 좌우될 수밖에 없습니다만, 어쨌든 지난 한 달간 지켜본 바에 의하면 가장 기대되는 건 장 매입니다.”
내 말에 제갈수광이 다소 의외라는 표정을 보였다.
“소충광이 아니라 장우혜?”
“예.”
“호오, 그래······?”
여전히 의외라는 표정이다.
지난 한 달간 내가 봤던 장우혜는 지금껏 내가 알고 지냈던 장우혜와는 또 다른 사람이었다.
적어도 요즘에 한해서만큼은, 무(武)의 신(神)이 장우혜만 편애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만큼 발전 속도가 빨랐다.
거의 흡수하는 수준이었다.
그래도 미리 설레발을 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적당한 수준에서만 말해주는 게 나을 듯하다.
“제 느낌이 그러해도 초반부터 강자를 만나면 성적 자체는 시원찮겠지요.”
제갈수광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제갈수광이 몸을 일으켰다.
가려는 것이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따로 시간 좀 내도록. 길어야 한 시진씩일 것이다.”
“알겠습니다. 한데 뭐 하는 시간입니까?”
“우리 둘의 무공 수련 시간이다.”
“예······?”
“우리 둘도 실력을 최대한 끌어 올릴 필요가 있다. 평화로운 시절이라면 굳이 이럴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지금은 하 수상한 시절이잖나. 마침 너와 나는 일정 이상의 경지에 있는 만큼 여러모로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제갈수광이 짧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마당을 지나 내 거처를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