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254
암기술이 주 무공이면 짧은 순간에도 여러 종류의 암기를 정확하게 다룰 수 있어야 한다.
가령, 근접 거리에 있는 적에게 독침을 날리자마자 멀리에 있는 적에게도 유엽비도를 정확하게 날릴 수 있어야 한다.
독침과 유엽비도는 무게의 차이도, 무게중심의 차이도 매우 극단적인데, 설령 그 두 가지를 번갈아 던진다 해도 정확하게 구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공은림과 하조혁에게는 소비도술과 철비정술을 동시에 지도했다.
소비도와 철비정만 해도 무게와 무게중심의 차이가 작지 않기에, 이 경우 초반 성취는 다소 더딜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암기 간의 차이에 대한 감각을 확실하게 인식하며 배우는 편이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더 낫다.
두 아이가 암기술의 기본 틀을 잡을 때까지는 내가 직접 지도하는 게 최선이다.
따라서 나는 암기술 시범을 보인 날부터는 실내 연무장에서 종일 두 아이와 살다시피 했다.
낮 대부분 시간을 암기술 교육에 할애했으며, 그 외에도 한 시진 정도는 쾌류보를 가르쳐줬다.
내 교육 시간이 끝난 오후 늦은 시간에는 포연월과 원추엽으로 하여금 짧게나마 꾸준히 신법을 점검해 주게끔 지시했다.
* * *
선우린이 실내 연무장으로 들어섰다.
어제가 통합 잠룡대전의 대회 마지막 날이었던 만큼, 대회 결과를 전해 주기 위해 온 것이다.
“오전이 단체전 결승이었고 오후가 개인전 결승이었지만, 오후의 결과부터 확인시켜드려야겠네요. 예상대로 조장님이 무난하게 승리를 거두고 우승을 차지했대요.”
참고로 개인전 결승은 단목강과 선의림의 대결이었다.
“조장님의 우승이야 당연히 축하할 일이지만, 너무 빤한 결과여서 그런지 감흥은 별로 없네.”
“네. 저도 처음에 소식을 접했을 때 딱 그런 기분이었어요.”
역시나 궁금한 건 오전에 있었던 단체전의 결과다.
전날에 펼쳐졌던 단체전 예선에서 동부지맹은 북부지맹을 꺾고 결승에 진출한 상태였다.
남궁설은 예고했던 대로 단체전에는 출전하지 않았지만 단목강은 예선에 출전했었다고 들었다. 단목강의 경우에는 우리 잠룡관을 대표하는 참가자로서 동부지맹을 결승에 올려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을 것이다.
단체전 결승의 상대는 서부지맹이었다.
단목강과 선의림은 개인전 결승의 상대인 만큼 단체전 결승에서는 빠졌다고 알고 있다. 작년에 나와 추소륵도 그랬었다.
선우린이 빙그레 웃으며 대꾸했다.
“우리 동부지맹이 우승했대요.”
“우와! 다들 잘했네.”
개인전과 단체전 모두를 석권해 버리다니.
대단하고 대견스럽다.
참가자들과 교관들은 축제 분위기일 것이며, 본맹의 동련각은 잔칫집 분위기일 것이다.
본맹에 있는 관주 육남춘과 동부지맹주 관필만이 얼마나 좋아하고 있을지도 충분히 예상이 된다.
온 백도에서 가장 뛰어난 후기지수들이 모여 실력을 겨루는 대회가 바로 통합 잠룡대전이다.
참가했던 친우들 모두에게 좋은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그날 오후.
내가 무공 지도를 마치자 포연월과 원추엽이 와서 공은림과 하조혁을 데려갔다. 신법 수련을 시키기 위해서다.
나는 거처에 들러 잠시 휴식을 취했다.
이후에 제갈수광과의 수련 시간이 되었기에 다시금 거처를 나섰는데, 대문을 벗어나자마자 멀리 길초량이 보였다.
매우 오랜만이다.
나를 발견한 길초량이 빠르게 다가왔다.
“허어······! 이게 누구시오?”
“하하, 송 형 오랜만이오.”
“잠룡관 때려치우신 줄 알았소.”
“졸업까지 몇 달 남지도 않은 거, 때려치우긴 왜 때려치우겠소?”
“하도 오랜만이라서, 말이 그렇다는 것이오. 그래, 한동안 코빼기도 안 보이던데 어딜 그렇게 빨빨거리고 돌아다녔던 거요?”
언젠가부터 안 보이기에 오다가다 길초량의 거처를 유심히 살펴봤었다. 한데 그때마다 거처에서도 인기척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거의 스무날 가까이 거처를 비웠을 것이다.
신룡대 놈이 보이지 않으니 뭔가 있겠거니 했었다.
그래서 놈이 돌아올 날을 내심으로 기다리고 있던 차였다.
“코빼기에, 빨빨에······.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그야말로 가차 없는 언어 공격이시구려.”
길초량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렇게 대꾸했다.
씩 웃어 보인 후에 물었다.
“보아하니 제법 오랫동안 거처를 비운 것 같던데, 언제 돌아오신 거요?”
“한 식경 전쯤에 돌아왔소.”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에 말했다.
“그간 뭐 하다 왔는지 궁금하긴 한데, 내가 지금 제갈 교관님을 뵈러 가는 길이오. 교관님하고 수련 약속이 되어 있어서. 어차피 그 후에는 구보도 해야 하니, 혹여 나눌 이야기가 있거든 저녁때 나눕시다.”
“아, 그 수련이라면 갈 필요 없소. 내가 방금 제갈 교관님을 뵙고 오는 길이라.”
길초량은 한 식경 전쯤에 돌아왔다고 했다.
한동안 사라졌다가 돌아와서는 제갈수광부터 찾아간 것이다.
뭔가 일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길초량에게 전음으로 불쑥 물었다.
[혹시 잠룡관 비운 동안 예주 누나와 같이 다녔소?]
도예주는 한참 전에 완치되었을 것이다.
동부지맹에서 잠룡관까지가 먼 거리도 아닌데, 그녀는 완치 후에 한 번도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한데 그 시기에 길초량도 제법 오랫동안 잠룡관을 비웠다.
두 사람은 신룡대인 만큼 같이 움직였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렇기에 찔러보듯 물은 것이다.
길초량이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
[하여튼 눈치는 기가 막히게 빠르시다니까.]
후후. 짜식아, 니가 뛰어 봐야 이 형님 손바닥 안이지.
길초량의 전음이 다시 들려왔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제갈 교관님과 백룡조장님이 같이 계시오. 백룡조장님이 송 형을 불러오라고 하셔서 데리러 온 것이고. 송 형이 흥미로워하는 얘기들이 오갈 거요.]
혈교에 관련된 내용일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갑시다.]
길초량이 나를 이끈 곳은 계반 교관실의 소회의실이었다.
들어가 보니 두 사람이 있었는데, 한 명은 제갈수광이었고 다른 한 명은 삼십 대 중반 가량으로 보이는 여인이었다.
도예주다.
면구를 착용하여 모습을 위장한 것이다.
우리가 들어서서 문을 닫자마자 도예주가 방음을 위해 내공을 퍼트리는 게 느껴졌다.
지금부터 나누게 될 이야기들이 매우 중요한 내용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곧장 제갈수광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 후 도예주에게 안부 인사 겸 물었다.
“오랜만이에요, 누나.”
“응. 유겸아, 오랜만.”
“몸은 다 나은 거죠?”
“응. 쌩쌩해.”
도예주가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대꾸했다.
길초량이 도예주의 옆에 가서 앉기에 나는 제갈수광의 옆에 앉았다.
도예주가 제갈수광과 나를 향해 말했다.
“지금부터 제 입에서 나올 이야기들은 모두 특급 기밀임을 미리 말씀드릴게요.”
그러자 제갈수광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이며 입을 열었다.
“다른 분도 아니고 신룡대의 백룡께서 갑자기 오셔서 기밀 사항을 말씀하신다고 하니 불길한 예감부터 드는구려. 왠지 그 기밀을 모두 듣고 나면 송유겸과 나는 선택권 같은 것 없이 모종의 임무 등에 강제로 투입될 것 같은.”
도예주가 빙그레 웃으며 대꾸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선택권은 보장될 거예요.”
“특급 기밀을 들었는데도 말이오?”
“네. 다른 분들이라면 몰라도 제갈 교관님과 유겸이는 특별 대우 대상이거든요.”
“호오. 잠룡관의 일개 교관과 관도를 신룡대에서 그렇게까지 높게 대우해 주고 계실 줄은 몰랐구려.”
“마침 말이 나왔으니 정확히 해야 할 것 같네요. 그 대우는 우리 신룡대의 뜻이 아니라 신룡대에 명령을 내리는 분들의 뜻이에요.”
도예주가 대꾸하자 제갈수광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나도 놀랐다.
신룡대는 무림맹주 직속의 기밀 임무 수행 조직인 만큼, 최고 명령권자도 당연히 맹주다.
덧붙여 유사시의 대리 명령권자는 문상이며, 문상은 평소에도 신룡대의 운용에 대해 조언할 수 있다.
즉, 신룡대에 명령을 내리는 분들이란 맹주와 문상이다.
그러니 놀랄 수밖에.
잠시 후 도예주가 말했다.
“중원에 있는 혈교의 거점은 소규모 비밀 거점들까지 포함하면 그 수가 수백 단위를 헤아릴 것으로 추정돼요. 그중에서 중요한 건 당연히 중규모 거점과 대규모 거점이죠. 소규모 거점들은 타격을 받아도 금방 또 만들 수가 있지만, 중규모 거점과 대규모 거점은 그러기가 어려우니까요.”
도예주가 말을 이었다.
“맹에서는 중원 각지에 숨어 있는 혈교의 중, 대규모 거점들을 찾기 위해 꾸준히 조사해 왔어요. 신룡대와 본맹의 천풍단이 위험 지역들을 조사했고 각 지맹의 동풍단, 서풍단, 북풍단, 남풍단 등이 공조했죠.”
천풍단은 본맹의 첩보 조직이며, 동풍단, 서풍단, 북풍단, 남풍단은 각 지맹의 첩보 조직이다.
“맹의 그러한 조사는 조금씩 성과를 내던 중이었어요. 그러던 시점에 혈교에서 무림맹의 각 지부를 총공격했던 거예요. 총공격과 동시에, 놈들은 본인들의 턱밑까지 조사해 들어갔던 무림맹의 정예 첩보 요원들을 포위 공격했어요. 그 일로 제가 죽을 뻔했던 거죠. 실제로 저와 함께하던 부하들은 죽었구요.”
죽은 부하들을 언급해서인지, 도예주는 잠시 호흡을 고르는 모습이었다.
제갈수광이 말했다.
“깊숙이 파고들었던 정예 첩보 요원들이 죽었으니 그 이후로 한동안은 조사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겠구려. 가뜩이나 각 지부가 급습을 당해서 피해가 컸던 만큼, 그 시기에는 무림맹의 조직이 유기적으로 운용되기도 어려웠고······.”
“네. 그 말씀대로예요.”
“그래도 각 지부를 공격해 왔던 자들을 역추적하는 형태로라도 조사를 이어갈 것이라 들었는데.”
“시도했죠. 하지만 역추적 형식의 조사는 적들로서도 예측 가능한 면이 크죠. 때문에 무림맹이 심혈을 기울여 조사했음에도 결과적으로는 적들의 위장이었던 경우가 허다했어요. 우리의 역추적에 대비해서 함정을 파 놓고 기다린 경우도 많아서, 그로 인해 또다시 적지 않은 인원들이 희생되었구요.”
그 말을 들은 제갈수광이 코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는 혈교다.
사파를 상대할 때와는 모든 면에서 난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제갈수광이 말했다.
“결국, 혈교는 각 지부 급습을 통해 여러모로 시간을 벌었겠구려.”
“네. 그렇게 번 시간을 통해 적절한 대처를 했겠죠. 상황에 따라서는 기존 거점이나 시설을 파괴하고 다른 곳으로 아예 옮긴다든가 하는 식으로요.”
제갈수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도예주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전체적으로 조사의 성과를 기대하기가 어려워진 상황에서도 단 한 곳만큼은 달랐어요. 이곳 강서만큼은 조사의 성과가 꾸준히 나왔죠.”
“어떻게 우리 강서 쪽에서만 성과가······.”
제갈수광이 의아해하자 도예주가 대꾸했다.
“저 때문이었죠.”
제갈수광이 눈매를 좁히자 도예주가 바로 입을 열었다.
“말씀드렸듯 신룡대는 중원의 이곳저곳에서 천풍단 등과 공조하여 조사 임무를 수행하는 중이었어요. 그중에서 조장이 첩보 일선에 깊숙이 투입되어 있었던 건 우리 조뿐이었어요. 그리고 깊숙이 투입되어 있었던 인원들 모두가 혈교의 일제 급습으로 인해 죽은 거구요.”
도예주가 곧바로 말을 이었다.
“당시에 혈교 측의 악착같은 추격 속에서 살아남은 건 저뿐이에요. 아시다시피 저는 그 당시 초량이와, 청여홍 관도의 장원에서 합숙하고 있었던 유겸이 및 그 친우들과, 백송학 소협 덕분에 산 거죠. 그렇듯 제가 살았기에 제가 조사하던 구역 쪽의 첩보 활동이 어렵지 않게 이어질 수 있었던 거구요.”
도예주가 그렇게 말하더니 길초량과 나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잠시 후 도예주가 다시 제갈수광에게 말했다.
“제가 조사하던 구역은 구령산맥과 막부산맥 쪽이었어요. 아시다시피 그 두 산맥은 북쪽으로는 호북의 통산현으로부터, 그 이남으로는 강서의 무저현, 수수현, 동고현까지 아우르죠. 동쪽으로는 강서의 안의현으로부터 서쪽으로는 호남의 류양읍, 평강현까지 닿구요. 범위가 너무 넓은 산지이기에, 그곳 어딘가에 꼭꼭 숨어 있는 혈교의 시설을 찾아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어요.”
도예주가 언급한 산지는 호북, 호남, 강서에 걸쳐 있다. 그야말로 범위가 어마어마하게 넓다.
아무리 무인들이라도 그 넓은 산지를 구석구석 뒤지고 다니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가뜩이나 산지의 특성상 꼼꼼히 뒤지고 다니려면 시간도 매우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도예주가 말을 이었다.
“저도 그중에서 혈교의 거점이 정확히 어디인지 찾아내지는 못했어요. 그래도 유력한 단서들은 알고 있었죠. 맹에서는 차후에 그 단서들을 통해 조심스럽게 조사를 계속 이어갔고, 범위를 좁혀가다가 최근에야 거점의 위치를 특정할 수 있었던 거예요.”
제갈수광이 말했다.
“넓은 산지인 만큼 외부에 발각될 가능성이 작으니 대규모 거점이지 않았을까 싶은데.”
“네. 대규모 거점이에요.”
제갈수광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대규모 거점이면 상주 전력도 많겠구려. 그러면 결국 무림맹 측에서도 강력한 전력을 동원해야 할 테고. 가뜩이나 그 거점은 심산유곡에 자리 잡고 있을 테니 무림맹의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공략하기도 난감하겠구려.”
“네. 게다가 무림맹의 각 지부가 급습당했을 때도 겪었듯, 그들 중에는 강시공을 이용해 피부를 강화한 자들이 많아요. 웬만한 일류고수들이 검기를 주입해서 찔러도 큰 타격을 입지 않죠.”
“결국, 그 단단한 피부를 제대로 가를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들 위주로 전력을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고······.”
“네. 그게 바로 제갈 교관님과 유겸이를 따로 모신 이유이기도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