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255
제갈수광이 도예주에게 물었다.
“최근에야 거점의 위치를 특정했다고 하셨는데, 하면 실제 타격을 위한 작전 준비는 어느 정도나 진행되었소? 강력한 전력을 구성한다는 게 말은 쉬워도 준비가 많이 필요한 일이니 아무래도 시간은 좀 걸릴 듯한데.”
게다가 전력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되도록 혈교 측에 의도를 들키지 않게끔 신경도 써야 한다. 그러다 보면 준비 기간도 더 걸릴 수밖에 없다.
도예주가 대꾸했다.
“이번 통합 잠룡대전은 누가 봐도 개최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은 선택이었죠. 그런데도 무리하는 인상까지 줘 가며 개최를 강행한 이유가 뭘까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다.
제갈수광의 양미간이 좁아지더니 이내 눈이 커졌다.
대략적인 의미를 알아채고는 놀란 것이다.
물론 나도 놀랐다.
이번 통합 잠룡대전 개최에 대해서는 백도 내에서도 성토가 많았다. 왜 위험을 무릅써 가면서까지 굳이 개최하려 하는지에 대한 성토였다.
그러한 성토 의견들을 반영이라도 하듯 무림맹에서는 호위대의 전력을 강화하여 참가자들의 안전에 만전을 기하기도 했다.
그 안전을 위해 무림맹만 노력한 게 아니었다.
참가자들의 문파와 가문에서도 자발적으로 정예 무인들을 파견했다.
통합 잠룡대전에 참가할 정도의 후기지수면 문파나 가문에서도 매우 중요한 인재다. 그런 만큼 각각 정예 중에서도 정예 고수들을 투입하여 보호하려 했던 것이다.
동부지맹 쪽뿐만 아니라 사대 지맹 모든 곳에서 그런 식으로 정예 고수들을 파견했었다.
게다가 통합 잠룡대전에는 기본적으로 백도의 수많은 명숙들이 초대되어 모인다. 그 명숙들도 당연히 고수들이며, 그들과 동행하는 이들 중에도 정예가 많다.
결국 지금의 본맹에는 자연스럽게 적잖은 정예 전력이 모인 상태이며, 무림맹은 이번 타격 작전에 그 모든 전력을 활용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제갈수광이 말했다.
“맹에서 처음부터 이럴 계획으로 통합 잠룡대전을 강행한 것이었다니······. 허어······.”
감탄이 가득 섞여 있다.
역시 무림맹은 무림맹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 나도 감탄했다.
도예주가 대꾸했다.
“시기적으로 통합 잠룡대전이 열릴 때쯤에는 혈교 거점의 위치를 충분히 특정할 수 있다고 계산한 거죠.”
“하면 거점 타격 작전도 조만간 시행되겠구려.”
“네. 본맹에 있는 전력이 곧 출발할 거예요. 물론 겉으로 보이기에는 통합 잠룡대전 때문에 모였던 수많은 인원이 다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겠죠.”
통합 잠룡대전은 온 백도의 축제인 만큼 수많은 강호인이 관전을 위해 무림맹과 무창에 모였었다.
이제 통합 잠룡대전이 끝나서 많은 이들이 각 지역으로 흩어질 테니, 무림맹의 전력도 모습을 감춘 채 그런 인파에 적당히 섞여서 이동할 거라는 의미다.
“만약 백룡조장의 청을 수락하면 우리는 어떻게 되오? 본맹 쪽의 전력과 합류하게 되는 것이오?”
제갈수광의 물음에 도예주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우리는 특수작전조로서 따로 움직이게 될 거예요.”
“특수작전조?”
“네. 이름에서도 느껴지겠지만 이번 혈교 거점 타격 작전에서 위험성 높은 임무들을 수행할 전력이에요. 몇 개의 조로 나뉘어 운용될 텐데, 한 조당 구성 인원은 열 명 이내가 될 거예요. 말 그대로 소수 최정예 전투조이기에 엄선된 고수들로만 구성할 수밖에 없죠. 우리가 그중에서 한 조를 구성하는 거구요.”
소수의 고수들로만 구성되면 매우 신속하고 은밀하게 움직이며 고난도의 작전을 수행할 수가 있다.
“우리······?”
제갈수광이 짧게 물으며 도예주와 길초량을 번갈아 바라보자 도예주가 대꾸했다.
“네. 만약 제갈 교관님과 유겸이가 참여한다면 우리 네 명이 같은 조에 포함된다는 뜻이에요.”
대답을 들은 제갈수광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에 그는 조용히 생각에 잠기는 모습이었는데, 도예주도 그런 제갈수광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듯 침묵했다.
잠시 후 제갈수광의 입술이 열렸다.
“알았소. 참여하겠소.”
도예주가 고개를 숙이며 대꾸했다.
“결단에 감사드려요.”
이후에는 도예주와 길초량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했다.
이에 나는 대답 대신 두 사람을 향해 미소 띤 얼굴로 고개만 끄덕여 보였다.
두 사람이 반색하며 환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일을 마다할 내가 아니다.
근래 제갈수광과 비무 형식의 치열한 수련을 계속해 온 이유도 혈교와의 싸움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게다가 소수 최정예 전투조라고 했다.
다른 구성원들의 면면이 어떤지는 아직 알 수 없으나, 제갈수광, 도예주, 길초량만으로도 이미 든든한 동료들이다.
우리 네 명은 모두가 실전 전문가들인데, 심지어는 길초량마저도 절정에 오른 상태다.
즉, 이미 우리 네 명 자체의 전투력만으로도 상당한 수준이다.
나 또한 실전 경험을 계속 쌓아 가야 하는 입장에서, 이런 수준의 동료들과 손발을 맞출 기회는 흔치 않다.
제갈수광이 도예주에게 말했다.
“참여 의사를 밝혔으니 묻는 건데, 우리 네 명 말고 다른 구성원이 누군지도 알 수 있소?”
“우리 조의 인원 구성에 대해서는 윗선에서 아직 아직 조율 중인 부분이 있어요. 확정되면 알려드릴게요.”
신룡대의 조장이 말하는 윗선은 당연히 무림맹의 수뇌부다.
제갈수광이 고개를 끄덕이자 도예주가 다시 입을 열었다.
“목적지는 동구현 북서 방향의 산지예요. 더 정확한 위치는 이동하면서 자세히 말씀드릴게요. 모레 저녁 시간 지나서 출발할 텐데, 수로는 이용하지 않고 경공을 통해서만 이동할 거예요. 이점에 유의해서 준비해 주시면 될 것 같아요.”
야음을 이용해 이동하겠다는 건데, 보안에 상당히 신경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대강의 내용은 이 정도예요. 혹여 다른 전달 사항이 생기거든 초량이를 통해 전달하도록 할게요.”
“알았소.”
회의실을 나서자 제갈수광은 곧장 교관실로 향했고, 길초량은 오랜만에 계반이조원들과 만나기로 했다며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나는 도예주의 배웅을 맡았다.
“완치되면 찾아오겠다고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해.”
“미안은요, 무슨. 보니까 누나도 다 사정이 있었던데.”
도예주가 빙그레 웃더니 말했다.
“맞아. 움직여도 상관없을 만큼 치료되자마자 곧장 첩보 일선에 다시 투입돼야 했어. 구령산맥 쪽의 혈교 거점을 특정하는 게 급선무였다 보니 내가 직접 가서 확인해 줘야 할 것들이 있었거든.”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에 물었다.
“길 형이 언젠가부터 안 보이기에 어디 갔나 했는데 누나랑 같이 움직였더군요?”
“그랬지. 초량이가 정식으로 우리 조에서 파견 근무를 하게 됐거든.”
“어? 그때 배에서 그 얘기 하더니 진짜로 그렇게 된 거예요?”
청여홍의 장원에서 혈교의 공격을 받았던 우리는 연주상단의 배를 타고 피신했었고, 중상을 입은 채 혼절해 있던 도예주는 그 배 안에서 깨어났었다.
그때 도예주가 파견 얘기를 했었는데 실제로 성사된 모양이다.
“근래 우리 조에 결원이 많이 발생했잖아. 그 일로 좀 징징거렸더니 묵룡 선배가 결국 허락해준 거야.”
“푸하하!”
본인 입으로 징징거렸다는 표현을 쓰니 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호흡도 맞추고 좀 더 친해질 겸 해서 데려갔던 거지.”
“호흡 맞춰 보니 어때요?”
“말해 뭐 해? 완전 맘에 들지. 실력도 실력이지만 초량이, 성격도 유쾌하고 좋잖아. 그런 인재가 한시적인 부하라는 게 아쉬울 뿐.”
도예주가 바로 말을 이었다.
“아니, 묵룡 선배는 전생에 강호라도 구한 거야, 뭐야? 가뜩이나 묵룡조는 뛰어난 조원들이 유독 많은데, 거기에 아직 어린 초량이마저 절정고수로 추가되다니.”
부러워 죽겠다는 투다.
내가 미소를 지어 보이자 도예주가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에휴······. 알아. 이게 다 조장의 역량 차이라는 것쯤. 묵룡 선배가 그 정도로 실력, 안목, 지도력 등 모든 면에서 대단하다는 거겠지.”
“누나도 나중 되면 충분히 그만큼 할 수 있을 거예요.”
“말이라도 고마워.”
“그냥 하는 말 아닌데.”
내 말에 도예주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그래. 열심히 할게.”
무인은 죽음의 위기를 넘기면 넘길수록 싸우다가 죽을 확률이 줄어든다.
도예주는 일전에 거의 저승사자 코앞까지 갔다 오다시피 했었다. 그런 상황은 일부러 겪고 싶다고 해서 겪을 수 있는 게 아닌데, 일단 한 번이라도 겪고 나면 이후에는 실력도 쑥쑥 성장한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후에 잠시 말없이 걷던 도예주가 입을 열었다.
“회의실 안에 있을 때부터 느꼈는데 유겸이 너, 못 보던 새 기도가 확 달라졌는데······.”
순순히 밝히라는 듯 의미심장한 눈초리를 하고 있다.
도예주는 나와 친밀한 데다가 고수다.
내 큰 변화를 눈치채지 못할 리 없다.
“하하······ 의외의 깨달음 덕분에 나름의 진전이 약간······.”
“아무리 봐도 ‘약간’이 아닌데? 그 정도면 상당한 수준의 진전일 텐데?”
“아하하······.”
도예주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마지막으로 봤던 게 겨우 한두 달 전인데 그새 이렇게 달라져 버리다니. 넌 대체······.”
내가 민망함 가득한 미소만 지어 보이자 도예주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초량이도 대단하지만 역시 유겸이는 유겸이구나. 덕분에 이번 작전을 함께하는 동료로서 더 든든하기도 하고.”
나는 이번에도 엷은 미소만 지어 보였다.
이후에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어느덧 정문과 연결되는 대로에 다다랐다.
“이 정도면 됐어. 배웅해 줘서 고마워, 유겸아. 모레 보자.”
“그래요, 누나.”
도예주가 미소를 보이더니 이내 신법을 펼치며 멀어져갔다.
* * *
다음 날에는 내가 지도하던 아이들을 차례로 불러 당분간 잠룡관을 비우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동부지맹의 귀빈 호위 임무를 지원하러 간다는 이유를 댔다. 어제 회의실에서 미리 준비한 핑계였다.
가장 신경 쓰이는 아이들은 역시 공은림과 하조혁이었다.
그 둘의 경우 아직은 내가 직접 지도하는 게 좋은 시기인데 당분간은 그럴 수가 없다. 결국 다른 이들에게 수련 지도를 부탁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원추엽으로 하여금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꾸준히 쾌류표를 지도하도록 지시했고, 명호운으로 하여금 쾌류보의 기본을 수련시키도록 지시했다. 쾌류보를 익힌 인원 중에서 성취가 가장 높은 게 바로 명호운이다.
철비정술 수련은 선우린에게 맡겼고 소비도술 수련은 포연월에게 맡겼다. 소비도술을 배운 계반삼조원들 중 성취가 가장 높은 게 바로 포연월이다.
철비정술과 소비도술은 어설프게 진도를 나가기보다 기본기 위주로 수련시킬 것을 당부했다.
기본만 탄탄하게 갖춰져 있어도 내가 나중에 복귀해서 암기술 지도를 이어가기가 매우 편해지기 때문이다.
심산화와 왕철양을 수련시키는 일은 단목지에게 부탁했다.
비무 형식의 수련을 부탁했다.
두 아이는 쾌류무의 성취가 전반적으로 많이 상승한 상태라, 이제는 초식 수련에 치중하기보다는 형을 실전에 적용하는 수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청여홍도 쾌류무를 익히고 있기에 따로 불러서 당분간의 수련 방향을 자세하게 짚어 줬다.
참고로 청여홍의 쾌류무 성취도 전반적으로 빠르게 상승하고 있는 상태인데, 이는 그녀의 노력 덕분이기도 하지만 선우린이 수련을 자주 도와주고 있는 덕분이기도 하다.
송유하는 고천비룡결과 풍우비룡무의 수정된 형태에 잘 적응해 나가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처럼 차분히 수련을 이어가면 된다는 식으로 격려만 해줬다.
이제는 송유하도 무공 경지가 제법 높다 보니, 뭔가를 알려주면 요점을 빠르게 파악하고는 수련에 금세 적용한다.
어느덧 내가 신경을 많이 쓰지 않아도 되는 수준에 이른 것이다.
* * *
다음 날에는 밤에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만큼, 낮 내내 거처에서 휴식을 취했다.
어느새 어둑어둑해졌기에 슬슬 움직일 생각을 하고 있는데 밖에서 길초량의 목소리가 들렸다.
“송 형, 나 왔소.”
마루로 나가 보니 행장을 꾸린 모습의 길초량이 마당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길초량이 마루에 앉으며 말했다.
“준비되셨으면 갑시다.”
“행낭만 챙겨서 나오면 되오. 그 전에 이거 한잔 드시오.”
나는 그렇게 말하며 죽통의 마개를 따서 그 안의 내용물을 두 개의 찻잔에 나눠 따랐다.
이후에 잔 하나를 길초량의 앞으로 밀자, 그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이게 뭐요? 차요?”
“약이오. 활력을 북돋워 주는.”
“안 그래도 활력은 왕성해 죽겠는데 굳이 뭘 더······.”
“내가 멀리 이동한다고 하니 청선곡의 제자들이 특별히 신경 썼다며 달여준 것이오. 드시기 싫으면 마시오. 그것도 내가 마시지 뭐.”
내가 그렇게 말하며 길초량 앞에 있는 찻잔을 다시 끌어오려 하자, 놈이 재빨리 한 손으로 내 손을 제지하더니 다른 한 손으로는 찻잔을 쥐었다.
“하하. 잘 마시겠소.”
보아하니 미심쩍어하는 표정은 온데간데없다.
참고로 길초량은 청선곡의 제자들이 나한테 교육받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어제 들었다.
길초량이 순식간에 찻잔의 내용물을 비우더니 곧바로 다시 찻잔을 내밀었다.
“한 잔 더 주시오.”
“활력은 왕성하시다면서?”
“하하. 그건 허세였소. 실은 요새 활력이 달리는지 밤에 자다가 가위도 한 번씩 눌리고······.”
빤한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피식 웃으며 한 잔 더 따라줬다.
청선곡은 약에 관련해서 만큼은 강호 최고 수준으로 통한다.
청선곡의 약이라면 분명히 도움이 된다는 믿음이 있기에 저러는 것이다.
문단속을 마친 후 거처를 나섰고, 이후에는 제갈수광과 합류하여 잠룡관을 조용히 벗어났다.
이후에 약속 지점으로 향하자 도예주가 합류했고, 나는 두 사람에게도 죽통을 내밀어 약을 마시게 했다.
제갈수광과 도예주도 처음에는 시큰둥한 반응이었는데, 청선곡의 제자들이 특별히 달여줬다는 얘기를 하자마자 죽통을 빼앗듯 낚아채 갔다.
잠시 후 우리 네 명은 서쪽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