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263
도예주가 말한 강시공은 사실 강시술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다.
원래는 사정상 시체를 멀리까지 옮기는 과정에서, 시체의 외형을 멀쩡하게 유지하기 위해 약품 처리 따위를 하던 기술에서 유래된 게 강시술이다.
그 기술을 과거의 천년마교, 암흑마교 등에서 연구하고 거기에 사술(邪術)까지 적용하여 시체를 전투 병기로 활용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적들의 모습을 전체적으로 가만히 살펴보니 피부를 단단하게 강화한 자들은 전열에 있는 이류무사들 정도인 듯했다.
그들의 피부에는 하나같이 검푸른 빛이 돌고 있는데, 저건 강시술로 인한 약품 처리의 증거다.
참고로 피부를 단단하게 만드는 무공은 귀갑공이다.
저 이류무사들은 귀갑공을 익힌 상태에서 강시술에 활용되는 약품 처리 시술까지 받은 듯하다. 그래서 무공이 이류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저토록 단단한 피부를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귀갑공과 강시술이 합쳐졌으니 귀갑강시공쯤으로 명명하면 될 것 같다.
적의 전열에 있는 이류무사 한 놈을 향해 왼손과 오른손으로 두 개의 쇠구슬을 튕겨냈다.
하나로는 놈의 팔을 노렸고 다른 하나로는 놈의 가슴 쪽을 노렸다.
왼손의 쇠구슬과 오른손의 쇠구슬에 담은 내공의 강도가 각각 다르다. 저들의 피부가 어느 정도로 단단한지를 파악하고자 일부러 차이를 둔 것이다. 오른손으로 날린 쇠구슬에 담긴 내공이 더 강력하다.
이류 수준에서 피할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던 만큼, 두 개의 쇠구슬 모두 목표 부위에 무난하게 적중했다.
텅! 퍽!
“컥!”
왼손으로 날렸던 쇠구슬은 튕겨 나갔고, 오른손으로 날렸던 쇠구슬은 놈의 오른쪽 가슴에 박혔다.
쇠구슬에 맞은 놈이 가슴을 부여잡고 괴로워하고 있다.
저들은 귀갑공과 강시술을 통해 피부를 단단하게 강화했을 뿐이지, 그 자체로 강시가 아니다.
살아 있는 자들이다.
당연히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다.
괴로워하던 놈의 목을 남궁찬의 검이 와서 갈랐다.
남궁찬의 검에 담긴 기운도 처음보다 강력해져 있다.
귀갑강시공을 익힌 자들이 싸우는 모습들을 보니 무공을 펼치는 모습들이 여러모로 어설펐다. 이류무사들임을 고려하더라도 너무 어설펐다.
다들 정식으로 무공을 배운 지가 오래되지 않은 느낌이다.
이후에도 가만히 살펴보니 놈들에게서 흑도 특유의 싸움 방식이 묻어 나오고 있음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근자에 저잣거리에서 사라진 흑도 놈들일 것이다.
놈들은 겁먹거나 움츠러드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이쯤이면 우리의 전투력이 강하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는 알아차렸을 텐데도 저렇다.
이류무사들의 눈동자에서는 하나같이 광기가 느껴지고 있는데,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광기를 끌어 올리는 약 따위를 복용한 것 같다.
적측 일류고수들과 절정고수들은 이류무사들을 앞세운 채, 우리의 틈을 노리는 방식으로 싸우고 있다.
일전에 무림맹의 각 지부를 초토화시켰다는 그 구성과 그 방식이다.
처음 두 개의 쇠구슬을 날린 후에도 나는 내공의 강도를 달리하여 쇠구슬을 서너 차례 더 날렸다.
그쯤 되자 어느 정도의 내공을 담아야 저 이류무사들의 단단한 피부를 가르거나 뚫을 수 있을지 대강은 감이 왔다.
사실, 일류 수준만 되어도 일정 이상의 검기를 주입하면 저들의 피부를 충분히 가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역시 공력 소모의 압박이다.
아무리 저들의 피부를 뚫을 수 있다 해도 한 명을 처치하는 데 공력 소모가 너무 커버리면 큰 의미가 없다.
가뜩이나 이곳은 혈교의 몇 안 되는 대규모 거점 중 한 곳인 만큼, 저렇듯 귀갑강시공을 익힌 자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 자들을 겨우 몇 명 처치하고 공력이 고갈되어 버리면 그때부터는 싸울 수가 없게 된다.
이 부분을 생각하면 무림맹의 각 지부가 저들에 의해 초토화된 이유도 충분히 납득이 된다.
내 짐작에 최소한 일류의 중후반쯤은 돼야 저들을 상대함에 있어 그나마 공력 소모의 압박이 덜할 듯하다.
우리 조원들은 다들 절정고수들인 만큼 공력 소모의 압박에서 어느 정도는 자유롭다.
남궁설은 일류의 중후반인 데다가 일류고수 중에서도 특별한 경우다. 천하제일세가의 검술을 익힌 일류고수다. 그런 만큼 그녀도 공력 소모의 압박을 그리 크게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길초량은 검집으로도 쓰이는 곤 안에서 검을 뽑아 든 상태다.
그는 전열로 잠깐씩 나서서 검을 휘두르다가 후열로 빠져서 철비정 던지기를 반복하는 중이다. 검집으로 쓰이는 곤은 허리춤에 장착한 채, 오른손으로는 검을 휘두르고 왼손으로는 철비정을 던지고 있다.
전투 진형에서 길초량의 위치는 후열의 왼쪽 끝인데, 전열의 왼쪽 끝은 제갈수광이다. 즉, 길초량은 제갈수광의 왼쪽 옆으로 나서서 검을 휘두르다가 후열로 빠지는 식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전열에 있는 인원들의 동선이 꼬이지 않게끔 잠깐씩 치고 빠지는 것인데, 길초량이 후열로 빠질 때마다 제갈수광이 확실하게 엄호해 주고 있다.
두 사람은 기동타격조 시절에도 같이 싸워 봤기 때문인지 손발이 척척 맞는 느낌이다.
참고로 길초량이 저러는 이유는 귀갑강시공을 익힌 자들을 상대로 검술의 감을 잡기 위함이다.
그렇듯 틈틈이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길초량과 제갈수광의 움직임을 확인하고 있는데, 오른쪽에서 남궁설의 전음이 들려왔다.
[송 오라버니, 저도 저자들을 상대로 검을 휘두르며 감을 좀 잡아 놓고 싶어요.]
남궁설도 길초량을 보고 저 말을 하는 것이다.
사실 남궁설이 후열에서 하는 역할은 철비정을 날리는 일인데, 어차피 귀갑강시공을 익힌 자들을 상대로는 그녀의 철비정술이 큰 의미가 없다.
저들의 피부에 박힐 정도의 내공을 담아서 날려야 하는데, 그 와중에도 급소를 정확히 노려야 하기 때문이다.
즉, 급소에 박아넣지 못하면 큰 타격을 주지 못하고 내공만 낭비될 뿐인데, 남궁설의 철비정술은 아직 그 정도로 정교하지 못하다.
가뜩이나 오늘의 전투에서는 귀갑강시공을 익힌 자들을 다수 상대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 만큼 남궁설도 미리 감을 잡아 놓는 게 좋을 것이다.
남궁설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해줬다.
[알았어. 그 전에 잠시만.]
이후에는 곧바로 백송학에게 전음을 보냈다.
전투 진형에서 백송학은 전열의 우측 가장자리이며, 남궁설은 후열의 우측 가장자리다.
[송학 형님, 설 매도 귀갑강시공을 익힌 자들을 상대로 검술을 좀 펼쳐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특수사조에서 함께하며 친해지다 보니 백송학과 나도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었다.
백송학의 전음이 들려왔다.
[내 생각도 그래. 미리 감을 잡아 놔야지. 아마도 오늘 저런 자들을 계속 상대하게 될 것 같으니까.]
[설 매가 전열의 우측 가장자리로 나서는 건 위험할 수 있습니다. 설 매가 전열로 나설 때는 형님이 우측 가장자리로 이동해 주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전열의 백송학과 도예주 사이에 공간이 생기는데, 남궁설이 그 공간으로 들어가면 된다.
길초량과 남궁설은 전투 경험과 역량 자체가 다른 만큼, 전열로 나서는 방식도 달라야 한다.
[알았어. 전열로 올라오거나 후열로 빠질 때 내게 전음으로 신호만 달라고 해. 그래야 들어오는 시점에 맞춰서 공간도 만들어 주고, 빠지는 시점에 맞춰서 엄호도 해줄 수 있을 테니.]
[예.]
백송학에게 대꾸해 준 후 이번에는 남궁설에게 전음을 보내어 그 내용을 설명해줬다.
설명을 들은 남궁설이 대꾸했다.
[알겠어요. 그렇게 할게요.]
[저쪽에 절정고수들 여럿이 있다는 걸 늘 명심해야 해. 몇 놈이 갑자기 설 매를 노리고 달려들 수도 있어.]
[명심할게요.]
[무리하지 말고.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 알지?]
[네. 바로 뒤로 빠질게요.]
내가 고개를 끄덕여 주자 남궁설도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남궁설의 전음을 들었는지, 백송학이 우측으로 살짝 이동하며 전열에 공간을 마련했다.
남궁설이 곧장 그 공간으로 들어서며 전열로 나섰다.
그러자마자 나도 남궁설의 뒤쪽으로 이동했다.
최대한 가까운 위치에서 그녀를 엄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면서 남궁설의 기운에 집중했다.
곧 남궁설이 검기를 미약하게 담아서 앞에 있는 이류무사 한 놈의 옆구리를 베어 갔다.
샤악-
얘야, 아무리 그래도 저놈들은 귀갑공을 익힌 데다가 강시술 시술까지 받은 놈들이란다. 그렇게 미약한 검기로는 어림도 없지 않을까?
컹!
아니나 다를까 남궁설의 검이 이류무사 놈의 옆구리를 뚫지 못하고 튕겨 나왔다.
그즈음에는 이류무사 놈의 검이 남궁설의 복부를 찔러오는 중이었다. 무공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어설픈데 속도와 예리함만큼은 제법이었다. 무공은 잘 몰라도 싸우는 법은 잘 아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래도 이류는 이류다.
남궁설 수준에서 저 정도에 당할 리는 없다.
남궁설이 가볍게 보법을 밟으며 검을 피하더니, 곧바로 이류무사의 팔을 향해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검에 담긴 기운이 매우 강했다.
얘야, 그렇게 검기를 강하게 주입해서 앞으로 공력이 버텨나겠니?
샥!
역시나 이류무사 놈의 팔이 깨끗하게 잘려나갔다.
“크악!”
이류무사가 비명을 토할 때쯤, 남궁설의 검은 이미 놈의 허벅다리 상단을 찔러가고 있었다.
슉-
이전보다는 약해졌지만, 아직도 검기가 필요 이상으로 강하다.
아직 어려서 힘이 넘치나?
뭘 저리 힘 조절을 못 해?
푹!
“큭!”
이류무사 놈의 입에서 또다시 비명이 흘러나올 때쯤, 남궁설은 검로를 깔끔하게 이어가며 놈의 심장을 노리는 중이었다.
이번에는 검기가 너무 약한 것 같다. 처음에 미약한 검기를 주입했을 때보다 조금 더 강해진 정도라고 할까.
기운의 운용 자체는 이번이 가장 자연스러운 느낌이긴 한데, 아무리 봐도 저 정도 검기로는 피부를 못 뚫을 것 같다.
속으로 그 생각을 하고 있던 순간.
푹!
남궁설의 검이 이류무사의 심장에 쑥 박혔다.
이류무사의 신형이 그대로 쓰러져 내렸다.
감 잡았다는 듯 남궁설이 스스로 두어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에 그녀는 방금 전에 운용했던 수준의 검기를 기준으로 아주 조금씩만 강약 조절을 하며 이류무사 두 놈을 더 처치했다.
그 짧은 시간에 현재 본인의 수준에서 공력 소모가 가장 적은 방식을 찾아낸 것이다.
가만히 보니 남궁설의 검기 운용 효율이 절정고수들 못지않은 수준이다.
허······!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 강호의 어떤 일류고수가 저 남궁설처럼 할 수 있을까.
항상 나를 놀라게 만드는 아이다.
귀갑강시공을 익힌 이류무사들이 열 명 남짓으로 줄었을 때쯤, 도예주의 전음이 들려왔다.
[유겸아, 저 뒤쪽에 있는 절정고수들을 노릴 거야. 내가 허공으로 뛰어오르면 너는 즉시 적진을 우측으로 빙글 돌아서 절정고수들을 노리면 돼. 제갈 교관님, 남궁 부당주님, 윤 교관님, 너, 나. 이 다섯 명이 순간적으로 움직일 거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적극적으로 절정고수들을 노리는 이런 식의 작전, 칭찬해 주고 싶다.
역시 신룡대의 조장답다.
인원 선정도 좋다.
기습에 최적화된, 빠른 인원들로만 구성한 것이다.
백송학도 빠르기는 하나, 그는 받아치기에 능한 종류의 무공을 익히고 있다. 따라서 백송학은 남아서 나머지 인원들을 지키고 있는 게 더 안정적이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곧 도예주가 전방의 허공으로 도약해 올랐다.
전열에 있는 이류무사 놈들을 뛰어넘기라도 하겠다는 듯 매우 높게 도약한 모습이다.
적들의 시선이 잠시 허공으로 향했을 즈음, 제갈수광과 남궁찬, 윤단영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론 나도 곧바로 천섬무를 운용하며 움직였다.
제갈수광과 윤단영은 적진의 왼쪽으로 빙글 돌고 있고 남궁찬은 나처럼 적진의 오른쪽으로 빙글 돌고 있다.
역시나 다들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
허공에 도약했던 도예주가 이윽고 아래를 향해 양손을 강하게 털어냈다.
피비비비비비비비비비빗-
엄청난 수의 철비정이었다.
마치 하늘에서 철비정의 비가 내리는 듯했다.
철비정들은 주로 적측 일류고수들이 밀집된 곳으로 쏟아졌다.
그즈음 우리는 이미 일류고수들의 측면을 빙글 돌아 절정고수들을 몇 보 앞에 둔 상태였다.
적측 절정고수들도 좌우에서 짓쳐 드는 우리 네 명의 움직임을 확인한 상태다.
절정고수 놈들은 우리에게 맞서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아직 우리 네 명의 실력을 제대로 모르기에 저런 판단을 했을 텐데,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다.
저들은 절정고수가 열 명에 일류고수들도 스무 명이며, 아직 이류무사들도 열 명 남짓 살아 있다.
그에 반해 우리는 전체가 아홉 명에 불과한데, 가뜩이나 이쪽을 기습한 건 네 명뿐이다.
그러니 해볼 만하다는 판단을 내릴 법도 하다.
절정고수들과의 간격이 다섯 걸음 안으로 들어온 순간, 내 앞에서 달리던 남궁찬의 속도가 갑자기 더 빨라졌다.
여태까지도 충분히 빨랐는데, 지금은 내 앞에서 갑자기 뭔가에 의해 튕겨 나간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더 빨라졌다.
이렇듯 나조차도 놀랄 정도로 빠른 속도인데 남궁찬에게 맞서려던 적측 절정고수들의 입장은 어떻겠는가.
눈이 부릅떠지고 있다.
지금쯤이면 뭔가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확 들 것이다.
저 죽립의 음영에 감춰진 얼굴이 동천뇌룡 남궁찬의 얼굴임을 알아채지 못했던 것부터가 저놈들의 돌이킬 수 없는 실책이다.
이윽고 남궁찬의 그림자가 적측 절정고수들의 사이로 진입했다고 생각된 순간, 그의 좌우에 있던 절정고수 놈들의 몸뚱이가 위아래로 분리되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새에 이미 세 명의 몸이 분리됐는데, 이 순간에도 남궁찬의 그림자는 그 뒤에 있는 절정고수들에게로 향하는 중이다.
참고로 약간 늦게 도달한 제갈수광은 현재 절정고수 한 명을 처치한 상태다. 비교적 쉽게 처치하는 모습이었는데, 윤단영의 강탄술이 보조해 준 덕이다.
한데 남궁찬은 내 도움도 없이 혼자서 저러고 있다.
가까이 있기에 더 잘 느낄 수 있는데, 남궁찬은 지금 기운을 맹렬하게 휘돌리고 있는 것도 아니다.
‘본격적으로 몸 좀 풀어볼까?’ 정도의 느낌이다.
그런데도 저렇듯 대단한 신위라니.
그야말로 짧은 순간에 강력한 힘을 발산하는 뇌전 같은 느낌이다.
확실히 뇌룡은 뇌룡이다.
세인들이 붙여주는 별호에는 다 근거가 있는 것임을 다시 한번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