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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마교있다-270화 (270/416)

내 안에 마교있다 270

지옥혈루는 점혈을 통해 고문법을 일단 한 차례 발동시켜 두면, 그 후부터는 간단한 추가 점혈을 통해 고통의 단계를 상승시킬 수가 있다.

고문법을 처음 펼쳤을 때가 일 단계인데, 최종적으로는 사 단계까지 고통의 강도를 높이는 게 가능하다.

조중렴의 인내심은 내 예상보다 훨씬 약했다.

놈은 지옥혈루의 일 단계만으로도 매우 고통스러워하며 내 질문에 술술 답했다.

나는 조중렴의 대답이 늦을 때마다 고통의 강도를 가차 없이 이 단계로 올렸고, 잠깐씩이나마 삼 단계까지 올리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놈의 입에서는 어김없이 내가 원하는 대답들이 흘러나왔다.

단, 그 과정에서 최종 단계인 사 단계까지는 올리지 않았다.

지옥혈루의 사 단계는 사망 위험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놈은 잠시 후에 내 손에 죽게 되겠지만, 적어도 내가 원하는 얘기들을 듣기 전까지는 살아 있어야 한다.

조중렴의 입을 통해 여러 정보를 얻고 나서는 지옥혈루를 풀어주고, 이어서 놈이 혀 깨무는 걸 방지하기 위해 점혈했던 얼굴의 혈도들도 풀어줬다.

이제부터는 놈이 혀를 깨물든 말든 내가 신경 쓸 바가 아니다.

다만, 마혈은 시간이 지나면 풀릴 수 있고 고수라면 더 빨리 풀릴 수 있는 만큼, 확인차 다시 한번 점혈해 줬다.

여러 조치를 마친 후에는 일어서서 팔짱을 낀 채로 놈을 내려다보았다.

놈의 얼굴은 잔뜩 상기되어 있고 온몸은 땀으로 흥건했다.

눈은 악귀처럼 벌겋게 충혈되어 있고 코 주변과 입가에는 핏자국이 번져 있다.

멀쩡할 때는 나름 귀공자처럼 생긴 놈이 지옥혈루를 겪고 나니 이 꼴이 된 것이다.

솔직히 나로 인해 누군가가 저렇게 된 모습을 보면 나 또한 마음이 편치 않다. 당연히 안타깝다.

흑풍대 시절에도 임무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이런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러고 나면 그 후로 상당히 오랫동안 정신적 후유증을 겪곤 했다.

그러나 조중렴 놈을 보면서는 눈곱만큼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 않는다.

나를 죽인 놈이고, 사부님을 시해한 놈이기 때문이다.

“끄으으으으······.”

조중렴의 입에서 마른 신음이 새어 나오고 있다.

“쿨럭! 쿨럭! 쿨럭······!”

결국 기침을 해대기 시작했는데, 입에서 피와 침이 섞여서 튀고 있다.

기침을 멈춘 놈이 호흡을 어렵게 정리하더니 말했다.

“내 궁금증은······, 끝까지 안 풀어줄 건가······?”

말을 내뱉는 것조차 매우 힘겨워 보인다.

어쨌거나 이 시점에 놈이 뭘 궁금해하고 있는지는 빤하다.

내가 어떻게 지옥혈루라는 고문법을 알고 있는지, 나아가 어떻게 그날의 비밀을 알고 있는지 궁금한 것이다.

놈에게 대꾸했다.

“내가 귀신하고 통하거든.”

조중렴의 눈매가 좁혀졌다.

무슨 개소리냐고 묻는 듯한 눈빛이다.

놈을 향해 곧바로 다시 입을 열었다.

“진짜라니까? 그 비밀도 누군가의 원혼을 통해 알게 된 거라고.”

조중렴의 눈동자에는 당연히 불신의 빛이 역력했다.

대충 둘러대기 위해 귀신과 통한다는 거짓말을 한 것인데, 솔직히 내가 놈의 입장이라도 안 믿을 것이다.

한데 웃긴 건, 내가 사실을 말해 주면 놈은 더 안 믿을 것이라는 점이다.

‘네놈들한테 죽고 나서 눈을 떠 보니까 저승이 아니라 동부지맹의 잠룡관이더군. 결과적으로는 서무욱이라는 존재의 넋이 그대로 유겸이라는 얼빠진 놈의 육신에 깃들었던 거지.’

이렇게 말한다고 믿겠느냔 말이다.

나 같아도 안 믿는다.

차라리 귀신과 통한다는 말을 믿고 말지.

내친김에 놈에게 조금 더 부연해 줬다.

“내가 이 말을 하면 다들 네놈과 같은 표정이 되지. 뭐, 그 심정들을 이해는 해. 상식적으로는 믿기 어려울 테니까. 너도 믿기 싫으면 그냥 믿지 마. 다만,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건 모두 서무욱이라는 아저씨의 원혼을 통해 알게 된 것들이라는 사실만 밝혀 두지.”

내 말에 조중렴이 눈을 부릅떴다.

“서, 서, 서무욱이라고? 그, 그게 정말이냐······?”

“그렇다니까.”

내 대꾸를 들은 조중렴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마, 말도 안 돼······.”

그즈음 마침 떠오른 생각이 있었기에 바로 말을 보탰다.

“참고로 서무욱 아저씨의 원혼은 지금도 내 곁에 있다. 심지어는 잠깐이나마 내 몸에 빙의하고 싶다며 내게 간절히 부탁까지 하는 중이지.”

내 말에 조중렴 놈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이에 나는 고개를 들어 아무것도 없는 통로 벽면의 상단을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마치 원혼과 대화라도 나누듯 입을 열었다.

“아뇨, 아저씨. 정말로 하기 싫다니까요? 그전에도 몇 번이나 말했잖아요. 잠깐이라도 빙의하고 나면 이질감 때문에 이삼일간은 수면 장애로 나만 고생한다고. 아니, 증말, 안 된다니까 자꾸 그러시네? 예? 아니, 마음 약해지게 그런 소리는 또 왜 해요? 어휴, 증말. 알았어요, 알았어. 그럼 잠시만이에요. 알았죠?”

나는 그런 식으로 말을 마친 후, 눈을 회까닥 위로 뒤집고는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어 보였다.

조중렴 놈에게 빙의하는 것처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마음속으로는 자괴감이 밀려오고 있다.

에휴, 이게 뭐 하는 짓이냐.

하지만 어차피 귀신과 통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으니 이왕이면 어설픈 것보다는 제대로 하는 게 낫지 않겠는가.

이런 식으로 정신 승리라도 하자.

이후에는 몸 떠는 걸 뚝 멈추며 눈을 감았다.

잠시 후, 나는 천천히 눈을 뜨고는 조중렴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사사형. 이게 얼마 만입니까.”

놈에게 경어 따위 눈곱만큼도 쓰고 싶지 않지만, 지금은 원래 서무욱이 쓰던 어조와 말버릇을 써 줄 필요가 있다. 그래야 놈이 알아볼 테니까.

어쨌거나 짧은 인사 속에서도 내 특유의 어조를 알아챘는지, 조중렴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놈을 향해 바로 말을 이었다.

“못 보던 새 살이 좀 붙었군요. 좋은 거 많이 드시면서 마음 편하게 잘 지내셨나 봅니다. 사형들에게 죽은 나는 이렇듯 원혼이 되어 저승도 이승도 아닌 곳을 떠돌고 있는데 말입니다.”

내가 말을 마쳤을 때쯤, 조중렴은 눈을 부릅뜬 채로 몸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딱 서무욱 시절의 내 말투임을 알아챈 것이다.

“저, 저, 정말로 오사제······!”

귀신이라도 본 듯, 두려움 가득한 표정과 눈빛이다.

하긴, 죽은 사람과 대화하는 셈이니 저럴 법도 하다.

“네. 접니다. 오랜만이라서 그런지 사사형을 보는 게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사형도 반갑죠?”

내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이며 그렇게 묻자 조중렴 놈이 오한이라도 든 것처럼 몸을 세차게 떨었다.

“바바바, 반갑다고 해야 할지······. 그그, 그보다도 오사제, 그 몸에 빙의한 게 혹시 나를 주주, 죽이려고······.”

“그럼요. 두말하면 잔소리 아닙니까. 입장 바꿔 생각을 한번 해 보십쇼. 이 순간에 사형이라면 안 죽이고 배길지.”

“사사사사, 살려줘, 오사제. 그그그, 그러니까 그때, 나는 정말이지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어. 대대, 대사형이 워낙 강력하게 밀어붙여서 내, 내 입장에서는 정말로 거역하기가 어려웠다고. 나도 하고 싶어서 그런 짓을 했던 건 아니었어. 그, 그러니까 오사제, 당시의 내 사정을 좀 고려해서라도······.”

“물론 대사형의 그 성격은 나도 잘 압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사형의 죄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요. 아시다시피 나는 사부님과 사형제들에게 죄를 전혀 안 저질렀는데도 사형제들에 의해 죽었습니다. 한데 사형들과 사제는 사부님과 내게 그 큰 죄를 짓고도 살아 있습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안 되지요. 당연히 죽어야지요. 죽어 마땅하지요. 암요.”

내가 짙은 미소를 보이며 그렇게 말하자 조중렴 놈이 두려움 가득한 몸으로 몸을 더 크게 떨기 시작했다.

주머니에서 목갑을 꺼내며 놈을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참고삼아 알려드리자면, 나는 워낙 원통하게 죽은 탓에 원혼이 되었지만, 사형의 경우에는 나처럼 원혼이 될 일은 없을 겁니다. 사형의 혼은 죽자마자 곧바로 저승사자에게 멱살 잡혀 아수라님 앞으로 가게 될 테니까요. 그 후에는 아수라님을 보좌하고 계신 사부님을 뵙게 되겠지요.”

목갑에서 독침 하나를 꺼내며 말을 이었다.

“그곳에서 사부님을 다시 뵙게 되거든, 이 못난 다섯 번째 제자는 사부님을 뵈러 가는 게 좀 늦을 것 같다는 말씀을 꼭 좀 전해 주십시오. 그날 사부님의 방에 있었던 작자들이 모두 죽은 모습을 확인한 후에야 갈 것이라고 전해 주십시오.”

그즈음, 내가 독침을 꺼낸 것을 확인한 조중렴 놈의 눈빛이 공포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오오오오, 오사제!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줘······! 흐으윽······! 제발! 내가 잘못했으니까······, 뭐든 해 줄 테니까, 제발······. 흐으으윽······.”

흐느끼며 사정하고 있다.

공포로 인해 제정신이 아니긴 아닌 모양이다. 놈의 입장에서 서무욱은 죽은 존재인데, 그런 존재를 상대로 뭐든 해 주겠다는 헛소리까지 하고 있다.

피식 웃으며 놈에게 대꾸했다.

“후! 당시에 나를 죽일 때도 그런 생각, 눈곱만큼이라도 좀 해 주지 그러셨소.”

이후에는 꼿꼿이 선 채로 팔을 뻗어, 놈의 얼굴 위로 수직이 되는 허공에 오른손을 위치시켰다.

당연히 독침을 들고 있는 손이다.

내가 이대로 엄지와 검지를 놓으면 독침이 그대로 놈의 얼굴 위에 떨어질 것이다.

“사제! 오사제! 흐으윽, 제발! 제바알······! 흐으으으······.”

조중렴이 흐느끼며 그렇게 외쳤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놈에게 차가운 미소를 보이며 마지막 말을 해줬다.

“만나서 엿같았고, 이제 지옥에나 가시오.”

그 말을 끝으로 놈의 얼굴 위에서 독침을 놓았다.

“오사제! 오사제! 으아아아아······!”

곧 낙하한 독침이 놈의 양미간에 박혔다.

독침이 박힌 후에도 잠깐 더 비명을 지르던 조중렴의 몸이 이윽고 축 처졌다.

가만히 서서 죽은 조중렴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사부님, 보고 계십니까?

제자, 운 좋게도 이곳에서 조중렴을 만났고, 일단 그놈부터 사부님 앞으로 보내드렸습니다.

이것은 단지 시작일 뿐입니다.

나머지 놈들도 어떻게든 보내드릴 것입니다.

당시에 사부님의 방에 있었던 그 쓰레기들뿐만 아니라, 그 일에 관련된 놈들은 모조리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이후에는 조중렴 놈의 품속을 수색했다.

놈의 품속에는 두 개의 주머니가 있었다.

하나는 방수포 재질로 제작된 주머니였고 다른 하나는 가죽 주머니였는데, 둘 다 고급스러웠다.

딱 봐도 중요한 물품이 들어 있을 느낌이기에 내용물도 확인하지 않고 일단 내 행낭에 넣었다.

서둘러 움직이기 위함이다. 중요해 보이면 일단 챙겨 놓고 내용물은 나중에 확인해 봐도 된다.

두 개의 주머니 외에는 굳이 이 상황에서 챙길 필요가 없는 것들이었다.

소지품 수색을 끝낸 후에는 조중렴의 검과 검집을 챙겼다.

나는 놈의 검이 상당한 명검이라는 사실을 천마신교 시절부터 알고 있었다.

조중렴은 천마신교를 대표하는 구대가문 중 한 곳의 소가주다. 그렇기에 이러한 명검을 지닐 수 있는 것이다.

조중렴의 물품을 챙긴 후에는 통로를 빠르게 돌아다니며 나머지 놈들의 품속도 적당히 수색했다.

그런 식으로 꼭 챙겨야 할 것들만 챙기고는 서둘러 이 동굴의 입구 쪽으로 향했다.

마음 같아서는 이 동굴의 출구가 어디로 연결되는지 탐색해 놓고 싶다.

한데 그 출구를 금방 찾을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는 만큼, 당장은 호기심을 참을 필요가 있다.

지금은 시간을 최대한 쪼개서 써야 한다.

이윽고 동굴 입구에 도착했다.

나는 곧장 물속으로 들어가지 않은 채, 행낭을 풀어놓은 후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아까 통로에서 전투를 펼치면서 천섬무를 다소 과하게 운용했다.

조중렴 놈을 반드시 처치하겠다는 일념 때문이었다.

그로 인한 공력 소모가 적지 않았던 만큼, 몇 차례라도 회회심공을 운기한 후에 밖으로 나가는 게 좋을 것 같다.

오늘 밤의 전투는 길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더더욱 일정 이상의 공력은 회복해 둘 필요가 있다.

한 번의 운기조식에 드는 시간이 많이 짧아진 만큼, 운기를 몇 차례 펼쳐도 시간이 그리 많이 소요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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