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안에 마교있다-274화 (274/416)

내 안에 마교있다 274

임려현의 전음이 들려왔다.

[동굴 안의 시설은……, 강시 제조 시설이었어요.]

[헛! 정말입니까?]

깜짝 놀란 반응을 보여주기는 했으나 실은 내 예상 범주 내에 있었던 대답이었다.

혈교 놈들은 근래 저잣거리의 흑도 놈들에게 강시술을 적용했었다. 그 흑도 놈들이 여름에 무림맹의 지부들을 공격했었고, 현재 이곳에서도 우리와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놈들이 강시 제조 시설을 갖추고 있는 게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어차피 과거에도 대대적으로 강시를 이용했던 놈들이기도 하다.

[동굴 내부는 여러 갈래로 갈라지며 이리저리 복잡하게 뻗는 구조라서, 우리도 처음 들어갔을 때는 많이 헤맸어요. 동굴 안에는 수십 개의 크고 작은 공간들이 있었는데, 그런 공간 대부분에 인공 웅덩이가 패어 있더군요. 그리고 고약한 냄새가 나는 여러 색의 액체가 웅덩이를 채우고 있었는데, 그 안에 시체들이 들어 있었죠.]

임려현이 전음을 이었다.

[그런 식으로 강시화가 진행되고 있는 시체들이 족히 수백 구는 됐을 거예요. 만약 그것들이 강시화가 완료되어 중원을 공격해 왔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더군요.]

[허어…….]

이 부분에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혈교의 강시술을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강시 제조 과정이 실제로 이렇게까지 진척되었을 줄은 몰랐던 탓이다.

게다가 이 한 곳의 거점에서 제조되고 있는 강시의 수가 저렇게나 많다는 점도 놀랍다.

참고로 전투 목적으로 제조되는 강시에 쓰이는 시체는 아무 시체나 쓸 수 없다. 나름의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데, 그런 시체들을 구하기도 쉽지만은 않다고 알고 있다.

모든 면을 종합해 봤을 때, 놈들이 매우 오래전부터 준비했음을 알 수 있다.

겨우 몇 년 갖고는 어림도 없다.

[엄밀히 말하면 중원이 끔찍한 상황을 맞을 염려는 여전히 크다고 봐야겠죠. 혈교의 대규모 거점은 이곳 외에도 몇 개가 더 있다고 하고, 그곳에도 이런 시설은 존재할 테니까요. 중규모 거점도 수십 곳이라던데, 그곳에도 이런 시설이 존재할 수 있는 거고요.]

임려현의 전음이 이어졌다.

[어쨌거나 동굴 내부의 시설을 제대로 파괴하려면 많은 인원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본대가 와야 해요. 하지만 지금은 본대를 부를 수가 없는 상황이죠. 일단 우리가 연구실이나 재료 창고 등은 최대한 파괴하고 무력화시켰는데, 수많은 웅덩이는 제대로 무력화시키기가 어려웠어요.]

그 소수의 인원으로 각 웅덩이를 채우고 있는 액체를 일일이 퍼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삽 따위로 흙을 퍼서 웅덩이들을 덮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웅덩이의 바닥에 깔린 방수포에 구멍을 내서 웅덩이 안의 액체가 땅으로 스며들게 만드는 방법이 최선이었어요. 대부분 수위가 조금씩 낮아지는 것 같기는 하던데, 완전히 빠졌을지는 모르겠네요. 뭐, 제대로 된 처리는 나중에 본대에 맡길 수밖에요.]

임려현에게 물었다.

[갑작스러운 위기 상황을 극복하려다가 부상을 당하셨다고 했는데, 얼마나 위험한 상황이었습니까?]

[매우 위험했죠. 함정 때문이었어요.]

[아, 함정…….]

[막다른 통로에서 돌아 나오는데 적들과 마주쳤고, 우리는 차분히 놈들을 처치하며 전진했어요. 그런데 사실, 다수와 다수가 동굴의 통로에서 싸우면 한쪽의 전력이 매우 강해도 의외로 전진 속도가 빠르진 않잖아요? 인원수와 상관없이 전선 자체가 좁게 형성되기 때문에.]

[예. 무슨 말씀이신지 압니다.]

저 동굴들은 성인 남성 두 명이 넉넉하게 통과할 수 있을 정도의 통로이기에, 전투 시에 같은 열에 나란히 설 수 있는 인원도 두 명이 최대라고 봐야 한다.

결국 아군 두 명과 적 두 명이 전선을 형성하게 되고, 이 열의 인원들이 암기술로 전선을 지원하게 된다.

즉, 그런 통로 안에서는 아무리 인원이 많다 해도 실제로 전투를 치르는 인원은 양측 합해 네 명 정도인 셈이다.

삼 열에서도 암기 지원은 가능하지만, 일렬과 이 열의 동료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는 만큼 전투 기여도는 매우 낮을 수밖에 없다.

[그런 식으로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적들이 두려운지 뒤쪽으로 슬금슬금 물러나며 싸우더군요. 어차피 우리는 그 통로를 빠져나가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계속 전진할 수밖에 없었죠. 결과적으로 적들이 그런 식으로 천천히 우리를 유인한 거였어요. 함정 한복판까지.]

[아…….]

[나는 삼 열의 좌측에서 간혹 한 번씩 암기 지원을 하는 중이었어요. 한데 어느 순간 미세한 기관 작동음이 들리더군요. 과거의 경험이 있다 보니 확신할 수 있었죠. 빠르게 천장과 벽면을 훑었는데 양옆의 벽면이 진동하는 게 보였어요. 그 즉시 ‘이탈’이라는 말을 외치며 재빨리 조원들을 앞뒤로 밀쳐냈죠. 우측의 이 열에 있던 조장도 나와 거의 비슷한 시점에 비슷한 대처를 보여줬고요.]

여기서 조장은 태무엽이다.

과연 특수이조를 대표하는 고수들답다.

[덕분에 조원들 모두가 그 함정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는 있었는데, 다른 문제에 봉착했어요. 통로의 전방에는 적들이 있잖아요. 순간적으로 함정에서 이탈하는 데 급급했던 만큼, 전방으로 피한 조원들은 자세가 무너진 상태에서 적들의 공격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어요. 그 조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조장과 내가 전열로 나섰던 거예요. 그 결과 조원들은 지켰지만, 조장과 나는 부상을 면치 못했죠.]

임려현과 태무엽의 순간적인 대처가 빛났다고 하겠다.

역시나 이 바닥에서 닳고 닳은 고수들은 만만치가 않다.

내가 궁금해했던 이야기가 대강 마무리되자 이후부터는 임려현이 나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나는 최대한 성의 있는 태도로 대꾸하며 적당한 선에서 그녀의 궁금증들을 풀어줬다.

어쨌거나 또 한 명의 전직 신룡대원과 이렇듯 인연이 생겼고, 이 인연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를 일이다.

신룡대 출신의 노련한 고수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기본 이상은 하는 사람들인 만큼, 이왕이면 이런 때 좋은 인상을 심어 놓을 필요가 있다.

나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들려준 후에는 임려현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어차피 대기하며 경계하는 것 말고는 할 일도 없는 상황이다.

그녀나 나나, 전음을 계속 주고받는다고 해서 경계 임무에 소홀할 수준은 아니다. 가뜩이나 우리는 미세한 기운만으로도 전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경지에 있기에, 전음이 경계 임무에 크게 방해되지도 않는다.

[신룡대에서 부조장까지 하셨댔는데, 그때 그대로 계속 복무하셨다면 조장이 될 가능성도 있었던 것 아니었습니까?]

[당시에 실제로, 삼사 년 안에 조장 자리를 보장해 줄 테니 계속 복무하라는 제안을 받았었어요. 맹에서도 오랜만의 여조장감을 어떻게든 붙들어 놓고 싶었던 거겠죠. 하지만 나는 이미 전역하기로 마음을 굳힌 상태였어요. 당시의 내 나이 서른셋. 꽃피는 젊음을 온전히 맹을 위해 충성했으니, 그때부터라도 무인이 아닌 여인으로 살고 싶었죠.]

임려현이 바로 전음을 이었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간략하게 그 얘기를 이어가야겠군요. 실은 어려서부터 연모했던 분이 있었어요. 서생이셨는데, 내 소녀 시절에 보기에 지적이고 기품 있고 고고한 그분의 모습이 그렇게도 멋져 보일 수가 없었죠. 서로 간에 이런저런 중간 사정은 많았지만, 결국 나는 신룡대를 전역하고 그분과 혼인하는 선택을 한 거예요.]

[아하.]

[그 후부터는 강호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았어요. 강호에 관련된 거라면 통합 잠룡대전을 관전하기 위해 일 년에 한 번씩 본맹에 가는 게 전부였죠. 사는 곳이 호북의 마성현이다 보니 무창까지 금방이기도 하고요.]

마성현의 위치는 호북의 동북쪽이다. 북쪽으로는 하남과, 동쪽으로는 안휘와 인접해 있다.

본맹이 있는 무창에서 그리 멀지 않으며, 장강의 수로를 이용하기에도 편리한 지역이다. 수로를 이용하면 동쪽으로 강서, 안휘 등의 지역으로도 금방 이동할 수 있다.

[그이도 내가 무림맹 출신이라는 걸 아니까 통합 잠룡대전을 관전하러 가는 걸 이해해 주는 거예요. 참고로 그이는 내가 신룡대 출신이 아니라 천풍단 출신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이는 무공의 무 자도 몰라서, 여전히 내 경지가 일류의 초반 수준인 것으로 알고 있죠.]

천풍단은 무림맹 본맹의 정보조직이다.

[어쨌거나 나도 강호를 떠난 평화로운 삶이 좋아서, 원래는 아이들에게도 무공을 가르치지 않을 작정이었어요. 차라리 남편처럼 학식을 쌓기를 원했죠. 그런데 그분과의 사이에서 낳은 첫애가 어려서부터 허약 체질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무공 생각이 나더군요. 심법을 통해 일정 이상의 내공이 생기면 체질 개선에 도움이 되는 건 확실하니까요. 그래서 심법만 가르쳤어요.]

임려현이 바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간사하더군요. 내 아이의 심법 성취 속도가 의외로 빠른 걸 보고 나니 초식 수련도 시켜 보고 싶은 거예요. 초식 수련을 시키려면 보법 수련이 선행되어야 하니, 아예 보법부터 가르치고 초식도 가르쳤어요. 둘 다 신체 단련에도 도움이 되니, 아이의 건강을 위해서도 나쁠 건 없다고 스스로 합리화했죠. 그러다 보니 푸흐흐, 어느새 아이에게 무공을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더군요.]

[하하. 어쨌거나 아이는 건강해졌겠지요?]

[지금 열세 살인데, 너무 건강해서 탈일 정도로 잘 크고 있어요. 무공수련에도 열심이에요. 애를 힘들게 하면서까지 가르칠 생각은 없는데, 애가 스스로 성취감을 느끼면서 재밌어하니 수련을 시키는 나도 진도를 조금씩 더 빼게 되더군요.]

아들의 자질이 상당히 괜찮은 모양이다.

하긴, 모친의 피를 반만 이어받았어도 자질이 기본 이상은 될 수밖에 없다. 만약 그 피를 대부분 이어받았다면 자질이 매우 빼어날 것이고.

[요새는 강호에도 관심이 커졌어요. 두세 달 전부터는 어디에서 듣고 왔는지, 한 무인의 이름을 입에 달고 살아요. 그게 바로 송유겸이라는 이름이죠.]

[앗……! 아하, 아하하…….]

여기에서 갑자기 내 이름이 나올 줄은 몰랐기에 당황스러웠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에요. 송 공자는 거의, 내 아들의 우상이나 다름없어요. 그래서 내가 송 공자를 보고 더욱 반가워한 거예요. 물론 아들은 내가 송 공자를 만나고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없을 테지만.]

민망한 미소를 흘리고 있는데 임려현의 전음이 이어졌다.

[충분히 그럴 만하죠. 송 공자는 무명의 계반 관도로서 통합 잠룡대전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대단한 문파나 무가 출신도 아니면서 최고의 후기지수로 등극했잖아요. 그렇다 보니 많은 이들이 송 공자를 보며 희망을 품는 거고, 내 아들도 비슷한 마음으로 송 공자에게 열광하는 거겠죠.]

[나중에 본인의 어머니가 어떤 분인지 알게 되는 순간, 저에 대한 열광은 어머니에 대한 존경으로 바뀌겠지요. 본인이 그 어떤 대단한 문파나 무가 출신의 스승보다 훨씬 더 대단한 스승한테서 무공을 배웠다는 걸 알게 될 테니.]

원추엽도 그랬었다.

자신의 조부가 신룡대의 부조장 출신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조부가 더욱 존경스러워졌다고 했었다.

그게 바로 신룡대라는 이름이 갖는 존엄이기도 하다.

[그런 얘기까지 듣고 나니 돌아가면 아들을 더 잘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말은 저렇게 해도 이미 야무지게 잘 가르치고 있을 것이다.

무공을 처음부터 안 배웠다면 몰라도, 이미 배웠다면 조금이라도 더 강해지는 게 강호에서 더 오래 살아남는 길이다.

그걸 신룡대의 부조장 출신이 모를 리 없다.

임려현과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 보니 동굴로 들어갔던 세 조가 밖으로 나왔다.

확실히 이전 동굴을 조사할 때보다는 시간이 훨씬 단축된 모습이었다.

서둘러 다가가서 자세히 살펴봤는데, 딱히 다친 이들은 없었다.

길초량에게 물어보니 모두가 함정에 대비하여 간격을 적절히 유지하며 작전을 수행했다는 모양이다. 시설은 이전 동굴의 시설과 비슷했던 모양이다.

곧 세 조가 마지막 세 번째 동굴로 들어섰고, 우리 네 사람은 또다시 외부에서 대기하며 경계를 수행했다.

이번에도 동굴 입구에서 약간 떨어진 숲속의 나무 위를 은신 장소로 잡았다.

두 번째 동굴을 조사할 때보다 시간이 약간 더 지났다고 생각될 무렵, 세 조의 조원들이 동굴 밖으로 나왔다.

얼른 다가가서 살펴봤는데, 이번에는 의외로 일고여덟 명이나 되는 인원이 부상을 당한 모습이었다.

각 조마다 두세 명씩 부상을 입었는데, 우리 특수사조에서는 도예주와 백송학이 다쳤다.

다행히 다들 중상은 아니다. 그러나 전투를 펼치기에 다소 불편한 수준은 될 듯하다.

얼른 길초량에게 물었다.

[여러 명이 적잖은 부상을 입은 듯한데 어찌 된 일이오?]

[그게……, 방금 들어갔던 동굴에는 움직이는 강시가 있었소.]

[헛! 정말이오?]

[그렇소. 다행히 수가 많지는 않았소. 제대로 완성된 형태는 아닌 듯 움직임도 부자연스러웠소. 그러나 그런 것들이 좁은 공간에서 에워싸니 매우 난처하더구려.]

길초량은 충격이 가시지 않은 눈빛이었다.

[기본적으로 검이 제대로 안 박히는 데다가, 설령 검을 박아 넣었다 해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공격하는 모습이었소. 몇 번이나 등줄기가 서늘해졌는지 모르오. 이쪽의 동굴들이 강시 제조 시설인 만큼 내심으로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직접 상대해보니 그 무시무시함이 예상 수준을 가볍게 뛰어넘더구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