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안에 마교있다-276화 (276/416)

내 안에 마교있다 276

고원 중앙에 우뚝 솟아 있는 산 근처에 이르자, 산의 반대편에서 들리는 대규모 전투 소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토벌대 본대가 적의 주력과 싸우는 소리다.

본대는 이 고원 외곽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산줄기의 북쪽을 넘어서 남하했었다. 드디어 근처까지 온 모양이다.

참고로 우리는 소수 최정예이기에 기동성이 빠르지만 본대는 전진 속도가 빠를 수가 없다. 본대는 대규모 전력이고, 그들이 정면으로 상대해야 하는 적들 또한 이 거점의 주력이기 때문이다.

그즈음 신속 이동 명령이 떨어졌다.

빼곡한 적들을 상대하던 중이었는데도,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전원이 청룡의 뒤를 따라 빠른 속도로 적들에게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진형이 흐트러지는 법이 없었다.

진형이 유지되다 보니 빠르게 이동하는 과정에서도 근처의 적들이 대부분 죽어 나갔다.

과연 최정예 실전 전문가들다운 훌륭한 움직임이다.

고원 중앙에 있는 산의 산자락에 도착하자 선두의 청룡이 우리를 산 위로 이끌었다.

우리는 산의 남쪽 경사면을 오르고 있는데, 본대는 산의 북쪽 경사면으로 다가오고 있다. 지금까지 여러 방향에서 이 산의 모습을 확인했는데, 대체로 이 산의 남쪽 경사면은 급경사고 북쪽 경사면은 완경사다.

산을 오르는 중에도 대규모 전투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마도 본대는 현재 반대편 산자락 아래쯤에 있는 것 같다.

청룡은 가파른 경사면과 빼곡한 삼림 지대 위주로만 경로를 설정하며 우리를 이끌었다.

당연하게도 적들을 따돌리기 위함이었다.

최정예들이라서 그런지, 확실히 험한 지형에서도 경공 펼치는 속도들이 빨랐다.

한동안 그런 식으로 길잡이 역할을 하던 청룡이 이윽고 울창한 숲속에서 이동을 멈췄다.

적들을 완전히 따돌렸으니 잠시나마 숨을 고르며 휴식을 취하기 위함이다.

오래 쉴 수는 없을 것이다.

이곳은 적의 안마당이다. 그러니 오래지 않아 그들이 우리의 위치를 찾아낼 것이다.

그 전에 떠나야 한다.

태무엽이 조용히 말했다.

“최대한 밀착해서 모여 주십시오. 시간이 많지 않으니 숨을 고르는 동안 잠시 전달 사항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말을 마친 태무엽이 양손으로 손짓하며 전원이 어깨가 닿을 정도로 가까이 밀착하도록 유도했다.

이후에 그가 다시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도 예상하다시피 이 산이 바로 적의 중심부일 겁니다. 그 말인즉, 이제부터는 위험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수준급의 고수들이 우리를 위태롭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부상자들은 열외로 하는 것이 옳겠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 말에 여러 사람이 살짝 놀란 기색을 내비쳤다. 물론 그들은 모두 부상자들이다.

임려현이 말했다.

“나는 괜찮아요. 이 정도 부상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소싯적에는 이런 부상은 부상으로 쳐주지도 않았어요.”

그녀가 말을 마치자 다른 부상자들도 한마디씩 했다.

“나도 여전히 일인분 이상 해낼 자신 있소.”

“마찬가지요. 절대 폐 끼치지 않을 자신 있소. 격렬한 전투를 펼치는 데에도 전혀 지장 없소.”

여기저기에서 그런 말들이 나왔는데, 목소리에서 다부진 각오들이 느껴지고 있다.

그러나 태무엽은 엷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 의기는 높이 삽니다만, 이 순간에 굳이 무리하거나 목숨 걸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혈교 교주와 최종 결전을 벌이러 가는 게 아닙니다. 혈교의 많은 거점 중 한 곳의 중심부를 타격하러 가는 것뿐입니다.”

태무엽이 미소를 머금은 채로 말을 이었다.

“오늘 이후 혈교의 다른 거점들도 드러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게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이 아쉽다면 얼른 쾌차하셔서 다음 거점 타격 작전 때 지원하면 됩니다. 이곳에서의 경험이 있는 만큼 여러분의 지원은 전력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이건 태무엽의 말이 옳다.

혈교의 대규모 거점과 중규모 거점은 이곳저곳에 많기에, 그곳들을 타격하는 작전은 앞으로도 장기적으로 계속될 것이다.

이 인원들은 이번 첫 타격 작전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쳐 가며 경험을 쌓았다. 당연히 앞으로의 작전에도 언제든 도움이 될 수 있는 자원들이다. 그러니 굳이 이 한 번의 작전에서 무리할 필요가 없다.

무리해서 지금의 상처가 더 악화되면 중상이고, 그러면 완치되기까지의 시간도 오래 걸린다.

태무엽은 그게 더 손해라는 판단을 한 것이다.

“아, 참고로 열외라는 게 특수작전조에서 열외라는 뜻이지 전체 작전에서 열외라는 뜻은 아닙니다. 이 시간 이후로 부상자들은 본대 쪽으로 합류합니다. 무리하지 않고 암기 지원을 하는 것만으로도 본대에는 큰 힘이 될 겁니다. 산을 빙글 돌아 은밀히 이동하면 어렵잖게 본대에 합류할 수 있을 겁니다.”

태무엽이 그렇게 말하자 도예주가 물었다.

“하면 선배님도 열외하십니까?”

태무엽도 부상을 당했기에 저렇게 묻는 것이다.

“나는 책임자이니 남을 것이다. 혹여 전투가 벌어져도 전투에 개입하기보다는 상황을 지켜보며 지휘에 집중할 생각이다.”

“하면 저도 이쪽에 남겠습니다.”

태무엽은 왼쪽 어깨를 다쳤는데 도예주는 왼쪽 팔을 다쳤다. 두 사람 모두 움직이는 데는 지장이 없는 부상들이다. 그러니 도예주도 남겠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태무엽은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잉여 지휘관 역할은 나 하나면 된다. 후배는 본대 쪽에 합류하는 우리 부상자들을 이끌도록. 그 또한 중요한 역할이다,”

조장인 태무엽과 도예주 중에서 누군가가 청룡을 보좌해야 한다면, 그건 역시 태무엽일 수밖에 없다.

태무엽의 말이 틀린 말이 아니기에 도예주도 더는 남겠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곧 임려현이 솔선수범하듯 조용히 옆으로 열외하자 나머지 부상자들도 옆으로 빠졌다.

도예주, 백송학 등을 포함한 여덟 명이다.

[오늘 만나서 반가웠고 대화도 즐거웠어요. 이렇게 헤어지고 나면 언제 또 송 공자와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겠군요. 무엇보다 그게 아쉽네요.]

임려현으로부터의 전음이었다.

즉시 대꾸해 줬다.

[오늘 여러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저 또한 아쉽습니다. 또 뵐 기회가 생기면 좋겠습니다.]

진심으로 하는 얘기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이런 빼어난 실전 전문가와의 인연은 내 입장에서도 환영할 일이다.

[혹여 호북 마성현의 기정촌 인근을 지나갈 일이 있거든 꼭 나를 찾아오도록 해요. 그 인근에서 내 이름을 대면 우리 집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장강 수로에서도 멀지 않고 장강과 물길로도 닿아 있는 곳이에요.]

[알겠습니다. 기회가 되면 꼭 그리하겠습니다.]

[그래요. 남은 임무에서는 송 공자도 본격적으로 움직이게 될 텐데, 부디 몸조심해요. 그 모습을 직접 못 보는 것도 너무 아쉽지만, 그래도 무운을 빌게요.]

[선배님도 적잖은 부상을 입으셨으니 부디 무리하지 마십시오. 쾌차하시길 빕니다.]

내 말에 임려현이 정감 어린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미소를 지은 채 그녀를 향해 고개를 숙여 보였다.

우리가 전음으로 인사를 마쳤을 즈음, 태무엽이 부상자들 향해 말했다.

“여러분이 다치고 싶어서 다친 게 아니라, 전체를 위해서 싸우다가, 또는 동료들을 지켜주다가 다쳤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책임자로서 감사 말씀드립니다. 이번 작전이 끝난 후에 웃으며 다시 뵙겠습니다.”

이윽고 도예주가 부상자들을 이끌고 떠났다.

세 조의 총원은 스물다섯 명이었는데 그중에서 여덟 명이 떠나고 열일곱 명이 남았다.

특수이조 다섯 명, 특수삼조 다섯 명, 특수사조 일곱 명이다.

특수이조에는 전직 황룡조원 한 명과 현직 황룡조원 네 명이 남았다.

전직 황룡조원은 사십 대 중후반의 도를 쓰는 사내다.

현직 황룡조원 네 명은 태무엽과 우벽희 그리고 일남일녀다. 사내는 황룡조의 부조장으로 추정되며, 여인은 창술 고수다. 둘 다 동갑도에서의 작전 당시에도 함께했었기에 알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저 여인의 창도 악미조의 창처럼 중간이 분리되어 단창과 단봉으로 바뀌는 형태다.

특수삼조에는 전직 청룡조원 두 명과 현직 청룡조원 세 명이 남았다.

전직 청룡조원은 원을태와 삼십대 후반의 여인이다.

현직 청룡조원은 청룡과 이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사내, 그리고 청룡조의 유일한 일류고수다.

우리 특수사조는 도예주와 백송학을 제외한 일곱 명이 남았다.

태무엽이 간단하게 전투 대형과 이동 대형을 정해줬다.

이동 대형은 세로 두 줄로, 최선봉의 꼭짓점인 청룡이 일 열이며 맨 마지막 열은 구 열이다.

태무엽이 정해준 내 위치는 가장 뒤쪽인 구 열이며, 내 옆은 윤단영이다.

아마 태무엽도 나와 윤단영의 순간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사실을 알고 이렇듯 최후열에 배치한 듯하다.

우리 두 사람이라면 전방에서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에도 매우 신속하게 지원할 수 있고, 후방에서 갑작스러운 위험이 발생했을 경우에도 빠르게 반응하는 게 가능하다는 판단일 것이다.

참고로 우리의 바로 앞 열에는 우벽희와 남궁설이 있다. 내 앞이 우벽희고 윤단영의 앞이 남궁설이다.

대형이 정해진 후에는 우리도 은밀하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청룡은 산의 남쪽 경사면을 횡으로 넓게 왔다 갔다 하며 점점 산의 위쪽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남쪽 경사면에 있는 시설 따위를 수색하기 위한 전술 이동이다. 북쪽 경사면은 어차피 본대의 대규모 인원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수색이 될 것이다.

태무엽은 삼 열에 자리 잡고 있는데, 아마도 그가 청룡에게 전음으로 경로에 관해 조언하는 듯하다.

어느덧 산허리 즈음이다.

본격적으로 바위산이 시작되기 직전의 고도라, 이곳저곳 바위 지대와 산림이 혼재되어 있다.

바위 지대의 음영과 산림을 이용하여 최대한 은밀하게 이동하던 어느 순간, 선봉이 갑자기 이동을 멈췄다.

우리가 이동을 멈추고 몸을 숨긴 곳은 숲으로 들어서기 직전의 바위 지대다.

왜 멈췄는지 알고 있다.

전방의 숲속에 다수의 적이 매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십 명쯤 되는 것 같다.

곧 선봉 쪽으로부터 수신호가 전달되었다.

오십 명에 달하는 적들이 숲속에 매복하고 있으며, 신호가 떨어지면 빠르게 숲속으로 진입하여 적들을 처리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매복이라는 게 눈치채지 못한 채로 당할 때나 위험하지, 이렇듯 먼저 알아채면 위험할 게 없다.

우리가 조심해야 할 만큼 강력한 고수도 딱히 없다고 판단했기에 바로 돌입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내가 느끼기에도 우리가 조심해야 할 정도로 강력한 고수는 없는 듯하다.

조용히 전방을 주시하고 있는데 태무엽이 오른팔을 허공 위로 들어 올리는 모습이 보였다.

척!

그가 들었던 팔을 전방으로 뻗자마자, 모두가 몸을 튕기듯 일으키며 숲을 향해 쇄도하기 시작했다.

나무 위, 덤불 속, 바위 뒤, 도랑 안쪽 등, 적들은 다양한 곳에 은신한 채로 매복해 있었다.

그러나 특수작전조원들이 적의 은신 지점들을 정확하게 찾아내어 열 명 가까이 처치하자, 결국 적측에서 호각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삐익, 삐이익!

비상 상황을 알리는 호각 소리가 아니라 모종의 신호인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호각 소리가 끝나자마자 적들이 매복을 포기한 채로 모두 튀어나왔다.

이미 매복의 의미는 없어졌고, 이대로라면 무력하게 각개 격파당할 게 빤하기에 저런 결정을 내린 것이다.

적들은 이제 사십 명 남짓 남았는데 구성은 반 정도가 일류고수고 나머지 반 정도가 절정고수다. 방금 죽은 열 명 가까운 인원들은 대부분 일류고수들이었다.

어쨌거나 산 아래에서 상대했던 적들과 비교하면 절정고수의 비율도 높고 절정고수들의 수준도 더 높다. 절정의 중반쯤 되는 고수의 기운도 몇 개가 섞여 있다.

그렇다 해도 우리 특수작전조를 위협할 만한 전력은 아니다.

전투 대형의 전열이 지체없이 적들을 향해 달려들었고, 후열이 즉시 그 뒤를 따르며 암기 지원을 했다.

물론 나는 후열이다.

예닐곱 명의 적들이 특수작전조의 막강한 공격력 앞에 순식간에 죽어 나간 순간, 또다시 적진의 뒤쪽에서 호각 소리가 들렸다.

삑! 삑!

역시나 신호 형태의 호각 소리다.

그러자 적들이 일제히 암기를 뿌려 우리를 견제하더니 도주하기 시작했다.

특수작전조는 곧바로 그들을 추격했다.

그즈음, 나는 숲속의 한 지점에서 미세한 기운을 감지한 상태였다.

이건 누군가가 은신해 있는 기운이 아니다.

활성화된 진법이 발하는 특유의 미세한 기운이다.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안력을 집중했는데, 일정한 공간의 광경이 미세하게 왜곡되어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마도 환영진이 설치된 게 아닌가 싶다.

특수작전조원들의 분위기를 살펴보니, 환영진이 설치된 방향을 의식하고 있는 인원은 아직 없는 듯하다.

하긴, 이런 상황에서 저 미세한 기운을 감지해낸 내 쪽이 유별나다고 봐야 한다. 특출나게 예민한 내 기감 덕분이다.

가뜩이나 적을 추격하고 있는 특수작전조는 진법이 있는 지점에서 빠르게 멀어지고 있는 상태다.

즉, 앞으로도 우리 인원들 중 누군가가 저 지점을 발견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사실, 적들이 저런 식으로 우리의 주의를 끌지 않았다면, 우리 특수작전조의 최상위 고수들은 저 진법의 미세한 기운을 감지했을 것이다.

결국, 적들은 우리 쪽 고수들의 주의를 끌어, 저 진법의 미세한 기운을 못 알아채게 하려는 목적으로 이 숲에 매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놈들이 저렇듯 우리를 유인하듯 퇴각하는 의도 또한, 우리를 이 숲에서 어떻게든 떼어 놓으려는 의도다.

역시 혈교 놈들은 사파 놈들과 달리 치밀한 구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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