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278
동굴은 어둡고 조용했다.
우리는 함정에 유의하며 조심스럽게 나아갔다.
딱 봐도 자연 동굴이지만 자연 동굴에도 기관 장치를 이용한 함정은 얼마든지 설치할 수 있다.
따로 지키고 있는 자들은 없었다.
막으러 나온 자들도 없는 것으로 보아, 적들은 아직 우리의 침입 사실을 모르고 있는 듯하다. 밖에서 진법 근처의 흔적을 지우고 온 덕분이기도 할 것이다.
넓어지던 통로가 좁아지는 지점에 이르렀을 때쯤 전방에서 태무엽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지.”
동굴 안에서는 여러모로 살펴야 할 게 많은 만큼, 원래 삼 열에 있던 태무엽이 이 열에 있던 원을태와 자리를 바꾼 상태다.
어차피 일 열에는 청룡 한 명만 있기에 이 열에서도 전방을 살피기에는 전혀 불편함이 없다. 참고로 이 열에 태무엽과 나란히 서 있는 이는 남궁찬이다.
모두가 멈춰 서자 태무엽이 뒤돌아보며 말했다.
“전방, 기관 장치에 의한 함정이 의심됩니다. 조사가 필요할 듯하니 잠시 대기해 주십시오.”
환영진까지 이용해서 입구를 감춰 놓은 곳이다. 기관 장치에 의한 함정이 설치되어 있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태무엽과 청룡과 현직 신룡대원 두 명이 바닥, 벽면, 천장 등을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나는 최후열이기에 태무엽 등이 있는 곳과는 거리가 살짝 멀었다. 그래도 바로 옆에 불쑥 솟아오른 바위가 있어, 그 위에 올라서서 태무엽 등이 조사하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안력을 집중하여 가만히 살펴보니 충분히 함정이 설치되었을 만한 지점이었다.
대충, 지금 네 사람이 있는 곳의 전방 서너 걸음부터가 위험 지역인 듯하다.
아니나 다를까, 조심스럽게 조사하며 세 걸음쯤을 더 전진하던 네 사람이 이동을 멈췄다.
태무엽이 돌아서며 말했다.
“지금 제가 서 있는 곳의 바닥에 선을 그어 놨습니다. 이 지점부터 짧으면 이 장, 길면 삼 장 앞까지가 함정입니다. 아마도 선두가 쭉 들어가서 이삼 장 앞의 바닥을 밟았을 때, 제가 말씀드린 범위 전체에 함정이 발동되는 구조일 겁니다.”
이러한 동굴에서 기관 장치로 작동하는 함정들은 대부분 바닥에 압력이 가해짐으로 인해 작동된다.
총 이삼 장에 걸쳐 함정이 설치되어 있다면 범위가 상당히 넓은 편이다.
선두가 안쪽으로 진입하고 일행도 충분히 범위 안에 진입했을 때 기관이 발동되는 방식인데, 당연하게도 최대한 많은 인원을 살상하겠다는 의도다.
우리 같은 전문가들이니까 어렵지 않게 발견한 것이지, 전문가와 동행하지 않는다면 고수라 해도 저 함정에 걸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함정을 완벽하게 해체하면서 나아가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립니다. 그냥 발동시키는 방식으로 해체하며 나아가야 할 듯합니다.”
태무엽이 말을 마쳤을 즈음, 같이 조사하던 신룡대원 한 명이 근처의 바닥에 반쯤 박혀 있던 큼지막한 돌 하나를 뽑아왔다.
저 돌을 강하게 던져서 바닥에 압력을 가할 생각이다. 만약 저런 돌을 구할 수 없다면 장력을 발출하는 식으로 압력을 가해야 한다.
곧 청룡이 그 돌을 받아 들더니 통로 전방의 바닥을 향해 강하게 던졌다.
쿵!
돌이 이 장 앞 바닥에 떨어진 순간, 양옆 벽면의 상단에서 무수히 많은 암기가 사선 아래로 발출되었다.
피슈슈슈슈슈슈슈슉-
티디디디디딩팅! 푸부부북!
암기는 침(針), 정(釘), 비수 등 종류가 다양했는데, 대부분은 반대편 바위의 벽면에 맞았고, 소수는 바닥에 박히기도 했다.
우리가 아무리 최정예 고수들이라 해도 이 함정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들어섰다면 저 많은 암기에 완벽하게 대처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좁은 공간이기 때문이다. 암기에는 독이 발라져 있을 테니 몇 명은 큰일을 당했을 확률이 높다.
태무엽이 모두에게 말했다.
“보셨다시피 서쪽 산지의 동굴에서 봤던 함정에 비해 기관의 반응 속도도 빠르고 범위도 넓습니다. 앞에서 최대한 조사하면서 나아가겠습니다만, 우리도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언제 함정으로 인한 긴급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니 모두 이동 간에도 긴장을 늦추지 마십시오.”
이후에도 조심스럽게 나아가는 중에 종종 함정과 맞닥뜨렸다.
태무엽과 청룡은 어렵지 않게 함정들을 발동시켜가며 전진했다.
신룡대의 조장쯤 되면 이 방면으로는 최고의 전문가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최고 전문가 두 명이 동시에 나선 상황이다 보니 함정을 발견하고 해체하는 속도도 생각 이상으로 빨랐다.
자연 동굴이다 보니 통로는 좁아지고 넓어지기를 반복했다.
어떤 곳은 한 사람만 통과할 수 있는 수준으로 좁아지기도 했고, 어떤 곳은 다섯 명이 나란히 서서 이동해도 될 만큼 넓어지기도 했다.
폭이 지나치게 좁거나 천장이 너무 낮은 지점들은 인공적으로 깎아서 넓히거나 높여 놓은 모습이었다.
전체적으로는 구불구불 이어지며 지하로 계속 내려가는 형태였는데, 자연 동굴인 만큼 볼거리도 많았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기암괴석도 많아져서 더욱 눈이 즐거웠다.
이런 식의 작전 때문에 온 게 아니라 그냥 구경하러 왔으면 좋았을 것이다.
중간에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태무엽은 주 통로가 아닌 다른 통로 쪽으로 특수이조의 인원들을 이끌고 갔다. 그러고는 그 길을 반각 정도 조사한 후에 다시 본대 쪽으로 합류하곤 했다.
샛길이 막힌 통로인지 계속 이어지는 통로인지에 대해 조사하러 간 것이다.
이 경우, 막힌 통로면 갈림길의 입구 쪽에 막혔다는 표식을 남겨놓고, 이어지는 통로면 안쪽에 이어졌다는 표식을 남겨놓는다. 그렇게 해놓는 것만으로도 이후에 길을 찾을 때 큰 도움이 된다.
그러는 동안 본대 또한 주 통로를 조사하며 계속 나아가기에, 비슷한 시간에 주 통로와 샛길을 동시에 확인할 수가 있다. 이런 동굴을 조사할 때 흑풍대에서도 비슷한 방식을 쓴다.
지금까지는 갈림길이 세 군데 있었다.
들어보니 두 곳은 막다른 길이었고, 나머지 한 곳은 어린아이도 통과하기 어려워 보이는 작은 통로였다는 모양이다.
이후에 또다시 갈림길이 나왔는데, 이 갈림길은 통로가 둘 다 컸다.
왼쪽 통로는 위쪽으로 향하는 듯하고, 오른쪽 통로는 아래쪽으로 향하는 듯하다.
태무엽이 우리를 대기시킨 후 왼쪽 통로 쪽으로 슬쩍 갔다 오더니 말했다.
“적들의 입장에서 감추고 싶은 중요한 시설이 있다면 하부에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즉, 우리는 하부로 향할 겁니다. 딱 봐도 왼쪽 통로는 위쪽으로 계속 이어지는 듯하니, 굳이 인원을 나누어 조사하고 올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이쪽에 표식만 남겨놓고 이대로 다 함께 아래로 향하겠습니다.”
이후에도 적잖은 시간을 이동했는데 여전히 중요한 시설도 보이지 않았고 적들도 나타나지 않았다.
적들은 아직도 우리가 침입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다.
그러다가 우리가 또 한 차례 함정을 발동시켰을 때쯤, 동굴 안쪽 멀리에서 호각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삐익! 삐익! 삐익!
함정이 발동되는 소리와 기관 작동 시의 진동을 통해 우리의 침입 사실을 알아차린 모양이다.
곧 통로의 전방에서 다수의 인원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태무엽의 지시가 떨어졌다.
“뒤로 물러나서 전투 준비.”
현재 우리가 서 있는 곳은 두 명이 겨우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폭이 좁은 구역이다. 그리고 몇 걸음 뒤에 훨씬 넓은 공간이 있다.
즉 우리가 넓은 쪽에 먼저 자리 잡은 후, 이 좁은 통로에서 나오는 적들을 맞이하겠다는 생각이다.
뒤쪽으로 이동해서 전투 대형을 갖추고는 적들을 기다렸다.
다가오는 적들에게 기감을 집중해 보니 수는 사십 명가량이었다. 일류고수와 절정고수의 구성인데, 일류고수가 서른 명쯤이고 절정고수가 열 명쯤인 듯하다.
한데 일류고수들의 기운이 내게 익숙한 기운이었다.
사파의 그 십 대들의 기운이다.
녀석들은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느낌이다. 참고로 이전에 놈들을 마지막으로 봤던 건 청여홍의 장원에서였다.
절정고수들은 혈교의 기운을 발산하고 있는데, 딱히 대단한 고수가 포함된 것 같지는 않다.
우리가 상대하기에는 쉬운 전력이라, 차분히 상대하면 별 피해 없이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동굴 안인 만큼 시간은 조금 더 걸릴 테지만.
적들은 즉시 우리에게 짓쳐 들 기세로 빠르게 다가오더니 의외로 좁은 통로의 반대편에서 전진을 멈추는 모습이었다.
이대로 우리를 공격할 경우 본인들이 너무 불리하다는 사실을 알고 저러는 것 같다.
잠시 더 기다려 봤는데 적들은 좁은 통로로 들어설 생각이 아예 없어 보였다.
적들은 충원될 수 있는 만큼, 이런 식으로 시간만 흐르면 우리 쪽에 좋을 게 없다.
아까 위쪽으로 이어진 통로를 통해 적들이 후방에서 충원되는 상황도 염두에 둬야 한다. 만약 그렇게 되면 우리는 앞뒤로 포위당하는 형국이 된다.
아무리 우리가 상대하기 쉬운 적들이라 해도 포위당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항상 경계할 필요가 있다.
선두에 있던 청룡이 고개를 돌리더니 삼 열에 있는 태무엽을 향해 입술을 달싹거렸다. 어찌해야 할지 전음으로 상의하려는 것이다.
한데 그 순간, 우리의 후방에서도 모종의 움직임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당연히 적이다.
매우 빠르게 다가오는 중인데, 저들의 수도 적지 않아 보인다.
그 순간 태무엽이 좁은 통로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삼 조.”
삼 조가 이곳에서 전방의 좁은 통로 쪽을 막으라는 뜻이다.
좁은 통로 쪽은 어차피 전열에 두 명이 서서 입구를 막고 나머지가 후열에서 암기를 날리면 된다. 전열에 청룡과 원을태가 선다면 특수삼조의 다섯 명으로도 충분히 막을 수 있다.
특수삼조원들이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자 태무엽이 이번에는 후방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조, 사 조.”
특수이조와 특수사조는 후방에서 다가오는 적들을 처리한다는 뜻이다.
두 조의 조원들이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자 태무엽의 짧은 지시가 떨어졌다.
“위치로.”
특수삼조가 좁은 통로 쪽을 향해 전투 진형을 갖추는 가운데, 특수이조와 특수사조의 조원들은 후방의 적들을 요격하기 위해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방금 태무엽의 순간 판단과 전력 배분은 내가 보기에도 매우 신속하고 적절했다.
보면 볼수록 믿음직한 지휘관이다.
달리면서 기운들을 감지해 보니 후방에서 다가오는 적들은 오십 명 정도였다.
저들도 일류고수와 절정고수로 구성되어 있는데, 수준은 아까 전방에서 다가온 적들과 비슷한 듯하다.
서른다섯 명가량은 일류고수들이며 대부분이 사파의 십 대들로 보이고, 나머지는 절정고수들이며 혈교 놈들이다.
참고로 이쪽은 통로가 넓은 편이긴 한데, 그렇다 해도 횡으로 나란히 서서 싸울 수 있는 인원은 세 명 정도가 최대다.
적측 인원들이 다소 많기는 하나, 전력의 질 자체는 우리 쪽이 압도적으로 강하다. 전선이 좁게 형성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 만큼, 특수이조와 특수사조의 열두 명으로도 별 피해 없이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쪽 전열의 인원들과 적측 전열의 인원들이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우리의 전열에 선 세 사람은 남궁찬과 제갈수광, 그리고 특수이조의 도를 쓰는 중년인이다.
적측 전열에는 일류고수인 사파의 십 대들이 서 있다. 저놈들은 하여튼 고수가 전열에 서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이윽고 양측의 전열이 마주친 순간이었다.
카강! 카가강!
우리 쪽 전열이 무난하게 적들을 도륙할 것이라 예상했는데,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피륙을 뚫거나 베는 소리 대신 쇠붙이들이 단단한 무언가에 부딪치는 소리만 들린 것이다.
“강시공!”
도를 쓰는 중년 사내의 외침이었다.
일류고수인 저 사파의 십 대들이 귀갑강시공을 익혔다는 뜻이다.
전열에 있는 우리 쪽 고수들도 적들이 평범한 일류고수라고 생각하고 쉽게 도검을 휘둘렀다가 도검이 튕겨 나왔을 것이다.
그나저나 저놈들이 귀갑강시공을 익혔다면 이건 좀 골치 아파질 수가 있다.
저잣거리의 흑도 놈들이 수박 겉핥기식으로 귀갑강시공을 익힌 결과와 일류고수들이 제대로 귀갑강시공을 익힌 결과는 크게 차이가 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단은 놈들의 피부를 뚫기 위해 어느 정도의 기운을 담아야 하는지 시험해 볼 필요가 있겠다.
양손에 소비도를 한 자루씩 빼 들고 가볍게 떠올랐다.
내 위치가 최후열이긴 하지만 이곳은 마침 천장이 높은 지점이기에 각은 충분히 나온다.
떠오르면서 적당한 기운을 담아 왼손의 소비도를 털어내고, 정점에서 조금 더 강한 기운을 담아 오른손의 소비도를 털어냈다.
슉! 슉!
두 자루 모두 한 놈에게 던졌다.
적측 두 번째 열의 좌측에 있는 놈이다.
놈은 늦게야 내 소비도를 발견하고 검으로 쳐내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애초에 발견 자체가 너무 늦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귀갑공을 익힌 탓에 놈의 전체적인 움직임이 느려진 탓이기도 하다.
이윽고 소비도가 약간의 시간 차를 두고 놈의 상체에 닿았다.
탱! 탱!
두 자루의 소비도 모두 그런 소리를 내며 튕겨 나갔다.
착지하는 와중에 순간적으로 눈매를 좁히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시험 용도로 던진 소비도들이기는 하다.
그래서 첫 번째 소비도에 담은 기운은 다소 약하기는 했다.
하지만 두 번째 소비도에 담은 기운은 결코 약한 편이 아니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저놈의 피부를 뚫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던진 소비도였다.
그런데 두 자루가 모두 튕겨 나온 것이다.
귀갑공이나 강시술이 하나만 적용된 상태라면 일류 수준에서 저 정도의 단단함을 갖기는 어렵다.
두 가지를 동시에 갖췄다 보니 저런 단단함을 갖게 된 것이다.
다시 한번 도약하여 아까처럼 소비도를 날렸다.
당연히 아까보다 더 강한 기운들을 담았다.
슈슉!
캉! 푹!
기운을 덜 담았던 왼손의 소비도는 튕겨 나왔고, 기운을 제법 많이 담았던 오른손의 소비도는 박혔다.
이쯤 되니 기운을 어느 정도로 담아야 놈들의 피부를 뚫을 수 있을지 대강 알 것 같다.
암기를 날릴 때마다 하나하나에 이 정도의 기운을 담아야 한다면 공력 소모의 압박이 적지 않을 것이다.
특히, 전열에서 직접 도검을 휘둘러야 하는 이들의 경우에는 공력의 소모가 훨씬 심할 것이다.
적지 않은 기운을 도검에 주입한 상태로, 그 기운을 계속 유지하며 휘둘러야 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전열에서 도검을 휘두르는 이들과 이 열에서 암기 지원을 하는 이들이 기운을 더 강하게 활성화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다들 찌르거나 베거나 투척할 때의 마무리 동작들에도 힘이 더 들어가고 있다.
눈앞에 있는 적들을 처치하는 일이야 문제가 없겠지만, 앞으로 상대해야 할 적들이 다들 이런 식이라고 생각하면 적잖이 답답해진다.
모두들 공력이 빠르게 소모될 것은 자명하고, 체력적으로도 지금보다 더 빨리 지칠 것이다.
후방에서 몰려온 일류고수들을 대부분 처치하기까지는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놈들의 피부가 단단하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일류고수들이 몇 명 안 남았을 때쯤, 그들의 뒤에서 부지런히 독침 등의 암기를 날리던 혈교의 절정고수들이 재빨리 도주하기 시작했다.
태무엽은 추격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아마도 우리의 뒤쪽에서 싸우고 있는 특수삼조원들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쪽은 소수의 인원이 적들을 막고 있는 상태다.
즉 태무엽은 이쪽을 정리한 후 그쪽으로 합류하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태무엽이 몇 명에게 전음을 보내는 듯하더니, 그 후 전열에서 싸우는 인원들이 교체되었다.
지금까지 전열에서 싸웠던 남궁찬과 제갈수광과 도를 쓰는 중년인이 뒤로 쭉 빠졌고, 그 자리를 단목강, 길초량, 남궁설이 대체했다. 단목강이 중앙이다.
귀갑강시공을 익힌 일류고수들은 이제 일곱 명이 남았는데, 단목강 등도 그들을 상대로 검을 휘두르며 감을 잡게 하려는 것이다.
지휘관으로서의 태무엽의 역량이 남다르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다.
어차피 이 열에서 암기 지원을 하던 인원들이 충분한 고수들인 만큼, 방금 전열로 나선 세 사람의 안전에 대해서도 크게 염려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다.
단목강과 길초량과 남궁설도 초반에는 일류고수들의 피부를 뚫지 못했다. 그러나 검에 담긴 기운의 강도를 몇 차례 조절하더니 금세 적절한 강도의 기운을 담아가는 모습이었다.
곧 세 사람에 의해 남은 일류고수들이 모두 쓰러졌고, 우리는 곧바로 특수삼조원들이 싸우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특수삼조가 싸우고 있는 좁은 통로 쪽으로 달리면서 주변의 기운을 감지했다.
특수삼조 쪽에도 귀갑강시공을 익힌 일류고수들이 몇 명 남지 않았다. 그 상태에서 혈교의 절정고수 놈들이 막 도주하기 시작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우리의 합류를 알아채고는 즉시 몸을 빼기 시작한 것이다.
그 순간, 태무엽의 낮고 짧은 지시가 들렸다.
“고수들이 추격, 최대한 섬멸.”
저 절정고수들이 도주한 방향은 어차피 우리가 전진해야 할 방향이기도 하다.
저들을 추격하다 보면 적당한 지점까지는 우리도 빠르게 전진할 수 있기에 추격 명령을 내린 것 같다.
지시가 떨어지자 청룡과 원을태가 순간적으로 병장기를 맹렬하게 휘두르며 남은 일류고수들을 빠르게 도륙했다.
그러자마자 남궁찬이 좁은 통로 안으로 들어서며 나는 듯이 경공을 펼치기 시작했고, 그 뒤를 고수들이 차례로 따랐다.
그즈음, 태무엽이 고개를 돌리더니 윤단영과 내게 차례로 시선을 두었다.
말없이 바라보는 저 시선의 의미를 모를 우리가 아니다.
실상 윤단영과 나는 지금껏 최후열에서 딱히 한 일도 별로 없었던 터라, 이런 때라도 적극적으로 움직일 필요는 있다.
윤단영이 즉시 신형을 튕기며 고수들의 뒤를 따랐고, 나도 그녀의 뒤를 따랐다.
선두에서 추격하고 있는 남궁찬은 이미 적측 절정고수 한 명을 베어 넘긴 상태다.
하여튼 빠르다.
남궁찬의 뒤를 따라가고 있는 우리 고수들도 도주하는 적들과의 간격을 맹렬한 속도로 좁혀가고 있는데, 그들보다 늦게 출발한 윤단영이 방금 막 그들을 추월한 상태다.
역시 윤단영이다.
물론 나도 윤단영의 뒤를 바짝 쫓는 중이다.
이후에 남궁찬이 또다시 두 명의 절정고수를 쓰러트렸을 때쯤, 윤단영과 나는 그의 뒤에 바짝 붙을 수 있었다.
그때부터 우리 세 명은 나머지 절정고수들을 빠르게 따라잡으며 놈들을 처치해갔다.
남궁찬은 검을 휘둘렀고 윤단영과 나는 암기를 지원했다.
우리 셋 다 워낙 빠르다 보니 순식간에 여섯 명의 절정고수들을 처치할 수 있었다.
이제 남은 적은 한 명인데, 저놈은 제법 빠른 놈이다.
그러나 놈도 결국 우리에게 따라잡혔고, 곧 남궁찬의 검이 전광석화와 같이 놈의 등을 쑤셨다.
“크아악!”
절정고수가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졌다.
한데 그 순간 나는 급격하게 눈매를 좁히지 않을 수 없었다.
전방에서 엄청나게 강맹한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기운이 우리를 향해 날아들고 있는데, 속도가 그야말로 무시무시하다.
“위험!”
남궁찬도 나와 같은 것을 느꼈는지, 즉시 그렇게 외치며 자세를 급격하게 비틀기 시작했다.
두 줄기의 경력이 동시에 날아들고 있다.
아마도 장력인 듯하다.
쌍장을 통해 동시에 이렇듯 빠르고 강력한 장력을 날릴 수 있다면, 상대는 대단한 고수일 수밖에 없다.
한데 의아한 건 저 장력에 담긴 기운의 성질이다.
다소 탁한 느낌이긴 한데, 그래도 이건 분명히 백도 쪽의 내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