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279
거리가 가까웠던 남궁찬은 두 줄기의 장력을 가까스로 피해냈다.
앞에 있는 남궁찬이 피해냈으니 뒤에 있는 윤단영이 못 피할 리 없다. 적어도 속도 면에서만큼은 남궁찬과 비슷한 수준에 있는 윤단영이다.
윤단영의 옆에 있던 나는 곁눈질로 그녀의 동선을 확인하면서 다른 방향으로 피했다. 두 줄기의 장력이 정직하게 한가운데로 날아온 게 아니라 비스듬히 날아왔기에, 혹시라도 동선이 꼬이는 일을 애초에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고개를 돌려 확인해 봤는데, 네댓 걸음 뒤에서 따라오던 청룡, 제갈수광, 원을태 등은 그리 어렵지 않게 피해내는 모습이었다.
곧 두 줄기의 장력이 굴곡진 동굴 벽면에 작렬했다.
쿠궁!
묵직한 타격음이 들리며 천장에서 흙먼지와 돌 조각들이 적잖게 떨어져 내렸다. 제법 큰 돌 조각들도 많았다. 장력의 위력이 그만큼 강력했던 탓이다.
일단 장력을 피하기는 했으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전방에서 누군가가 급속도로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장력을 날렸던 자다.
전방을 확인하니 통로의 먼 어둠 속으로 어렴풋이 하나의 시커먼 인영이 보였다. 순간적으로 안력을 돋워 봤지만, 그가 죽립을 깊게 눌러 쓰고 있어 용모를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선두에 있던 남궁찬이 후방 쪽으로 신형을 휙 돌리며 낮게 외쳤다.
“일시 후퇴!”
남궁찬 또한 반대편에서 다가오고 있는 죽립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고수임을 알기에 저러는 것이다.
게다가 현재 우리의 위치는 좁은 구역이다. 뒤쪽에 상당히 넓은 공간이 있었던 만큼, 그쪽으로 이동하려는 목적도 있을 것이다. 고수를 상대로 좁은 공간에서 싸우면 우리만 손해니까.
의미를 알아들었는지, 우리의 뒤에 있던 청룡도 즉시 고개를 끄덕이며 신형을 돌렸다.
후퇴하는 중에 방금 장력이 박혔던 벽면 쪽을 훑었다.
두 개의 장력 중에서 하나는 튀어나온 벽면에 거의 정면으로 작렬했었는데, 어둠 속에서도 그곳을 유심히 살펴보던 나는 눈매를 좁히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부분의 바위가 커다란 손바닥 모양으로 패어 있었기 때문이다.
수인(手印)의 형태로 발출된 장력이다.
장력을 날려 이러한 형태를 남길 정도라면 대단한 고수일 수밖에 없다. 경지가 무조건 최절정 이상일 텐데, 그중에서도 수준이 높은 고수일 것이다.
참고로 수인 형태의 장법은 주로 불가(佛家)에서 전승된다.
저 죽립인도 불가와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다.
손바닥 자국은 얼추 성인 남성의 손바닥보다 두 배 이상은 커 보였다. 자국의 크기가 커진 원인은 장력이 멀리 날아가는 과정에서 기운이 퍼졌기 때문이다.
단, 손바닥 자국의 모양이 선명하지는 않았다. 장력이 멀리에서 날아왔다고 쳐도 저건 너무 밋밋하다.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아직 성취가 부족해서일 수도 있고, 제대로 집중하지 못해서일 수도 있고, 공력 운용에 문제가 생겨서일 수도 있다.
개인적인 추측인데, 이 경우에는 내공의 성질이 탁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백도의 내공은 정순할수록 강력해지며 불가나 도가 쪽의 내공일수록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조금 전의 그 장력이 띠고 있던 기운은 백도의 내공 치고 탁기가 상당히 심했었다.
한데 백도의 내공을 익힌 고수가 왜 이곳에 있는 걸까.
그리고 누굴까.
여러 추측이 드는데, 잠시 후에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윽고 모퉁이를 돌아서 후방의 넓은 공간으로 나왔다. 적어도 네 명 정도는 전선에 나란히 자리 잡고 싸울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공간이다.
청룡이 낮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상당한 고수입니다……! 모두 조심……!”
그도 우리와 함께 장력의 위력을 경험했기에 조원들에게 위험성을 알린 것이다.
청룡의 말을 전해 듣자마자 태무엽이 몇 명과 함께 공간의 후방으로 즉시 이동했다.
일류고수들 세 명은 당연히 포함되었고, 절정고수 중에서도 단목강과 길초량 등의 세 명이 포함되었다.
언제든 바로 퇴각할 수 있는 지점에서 대기하며 전투 상황을 지켜보려는 듯하다.
일곱 명이 뒤쪽으로 빠졌으니 싸우기 위해 남은 사람은 열 명이다.
장력의 주인이 다가오고 있는 게 기감으로 느껴지는 가운데, 우리 쪽도 신속하게 진형을 잡았다.
전선인 일 열에 선 네 사람은 청룡, 제갈수광, 원을태, 그리고 도를 쓰는 중년인이다.
남궁찬은 최전선에 서지 않았다.
그는 두 번째 열마저 지나치더니 아예 윤단영과 내가 있는 삼 열에까지 왔다.
남궁찬은 청룡보다 강하며, 내가 파악하기로 도를 쓰는 중년인과 비교해도 조금 더 강하다.
현재의 동료들 중에서 유일하게 남궁찬보다 강하다고 볼 수 있는 이는 원을태뿐인데, 이곳은 동굴 안인 만큼 남궁찬이 더 잘 싸울 것이다. 원을태는 대도를 좁은 공간에서 휘두르려면 제약을 적잖이 받기 때문이다.
즉, 현재 전열에서 가장 잘 싸울 수 있는 우리 쪽 고수가 바로 남궁찬이다. 그런 그가 최후열인 삼 열로 온 것이다.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남궁찬이 전음으로 말했다.
[잠시 호흡 좀 제대로 가다듬으려고. 방금 전처럼 한동안 빠르고 격렬하게 움직이면 아무리 나라고 해도 지치거든. 너처럼 쌩쌩한 나이가 아니라서 말이지.]
아닌 게 아니라 호흡이 상당히 거칠다. 그의 옆으로 보이는 윤단영 또한 호흡을 정리하고 있는 모습이다.
선봉에서 절정고수들을 추격했던 우리 셋 중에서 현재 호흡이 거칠지 않은 사람은 나뿐이다.
장력을 발출했던 죽립인이 모퉁이를 돌아 모습을 드러냈다.
흑의 무복 차림으로, 키는 보통이며 마른 체형이다.
한 손에 나무 지팡이를 들고 있다.
죽립을 눌러쓰고 있기에 용모는 여전히 제대로 확인하기가 어렵다.
콧등 아래쪽만 보이는데, 노인이다. 원을태보다 훨씬 더 노인이다. 저 노인에 비하면 원을태는 청년으로 보일 정도다.
전체적으로 머리는 산발했고 콧수염과 턱수염도 길다.
머리카락도 수염도 희게 셌는데 씻은 지가 오래됐는지 매우 지저분했다.
일 열과 이 열에 있는 일곱 명이 일제히 암기를 발출해 냈다.
피슈슈슈슈슈슈슈슛!
단검, 유입비도, 비표, 소비도, 철비정 등 수십 개의 암기가 일제히 죽립 노인을 향해 쏟아졌다.
거의 암기의 비다.
상황을 떠나, 광경만 놓고 보면 장관이다.
암기들 하나하나에 매우 날카로운 기운이 담겨 있다.
그 모든 암기가 노인의 전신 요혈을 노리고 쾌속하게 날아드는 중이다.
죽립 노인이 대단한 고수이기는 하나 저 암기 공격에는 어느 정도 곤란함을 느낄 것 같다.
참고로 일 열과 이 열에 있는 일곱 명 중에서 여섯 명은 전, 현직 신룡대원들이고 나머지 한 명은 제갈수광이다.
신룡대원들의 암기술이 뛰어나다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으며, 제갈수광 또한 암기술 전반에 일정 수준 이상의 조예가 있는 무인이다.
제갈수광은 특히 유엽비도술이 일품이다. 그는 방금 유엽비도 네 자루를 한꺼번에 던졌는데, 신룡대원들과 견주어도 전혀 부족하지 않은 훌륭한 솜씨였다.
천섬무를 운용하며 죽립 노인을 주시했다.
노인은 한 손에 들고 있던 나무 지팡이를 손에서 살짝 놓는가 싶더니 곧장 정면을 향해 쌍장을 뻗고 있다. 비처럼 쏟아지고 있는 암기들을 향해서였다.
노인의 양쪽 장심에 기운이 맺히는 게 느껴지던 찰나, 그의 쌍장을 통해 강맹한 장력이 발출되었다.
장심에 기운을 응집시켜 발출하기까지의 시간이 매우 짧다. 저 정도면 강호에서 손가락에 꼽힐 정도의 장법 고수다.
장력은 발출되자마자 노인의 전방에서 폭발하듯 넓게 퍼져나갔다. 이번에는 아까처럼 수인의 형태로 발출하지 않고, 자신의 바로 앞에서 넓게 터트리며 방어하는 형태로 발출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노인의 정면으로 날아들던 모든 암기가 그 장력으로 인해 튕겨 나갔다.
문제는 장력의 강력한 폭발력으로 튕겨 나온 많은 암기가 우리 쪽으로 되돌아 날아왔다는 점이다.
참고로 우리 일행들은 노인에게 곧바로 공격을 이어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던 차였다. 그런 상황에서 본인들이 날렸던 암기로 인해 예기치 못한 반격을 당하게 된 것이다.
당연히 준비했던 공격을 제대로 이어가기는 어려워졌다. 날아오는 암기들을 쳐내거나 피해야 하는 만큼, 가장 적절한 공격 시점은 놓친 셈이다.
탱! 태대댕! 티디디디디디딩!
우리 일행들이 암기를 쳐내는 사이, 노인의 장심에 또다시 강맹한 기운이 응집되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장력이 발출되었다.
이번에는 이전처럼 방어 형태의 장력이 아니라 아까처럼 수인 형태의 장력이다.
한 줄기는 우리 쪽 최전선의 도를 쓰는 중년인에게로, 다른 한 줄기는 태무엽 등이 있는 후방으로 향하고 있다.
참고로 현재 일 열에 있는 네 명 중에서 상대적으로 움직임이 가장 느린 사람이 바로 저 중년인이다.
중년인은 최대한 몸을 비틀어 회피했지만 결국은 장력의 영향 범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결국 들고 있던 도를 옆으로 기울이며 장력을 막아갔다. 최대한 비껴내겠다는 생각이다. 힘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도에 공력을 잔뜩 주입하고 있다.
온전히 피하지 못했으니 어쩔 수 없는 대처다.
무인들의 본능적인 대처이기도 한데, 사실 지금의 상황에서는 매우 위험한 대처가 될 수 있다.
저 수인 형태의 장력이 너무도 강력한 탓이다.
나는 즉시 천섬무를 상 단계로 활성화하며 비룡검을 뽑아 들었다.
따앙!
중년인의 도신(刀身)이 중간쯤에서 양분되면서 난 소리다.
도에 미처 충분한 공력이 주입되지 못한 상태에서 저 강력한 장력과 부딪친 탓이다.
천섬무를 통해 느리게 보이는 상황인데도 부러진 도신이 뒤로 튕겨 나가는 속도가 상당히 빨랐다. 그러니 실제로는 얼마나 빨랐겠는가.
부러진 도신이 향하고 있는 이 열에 동료 한 명이 있다.
내가 황룡조의 부조장이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는, 삼십 대 초중반의 사내다.
자신의 상체를 향해 날아드는 도신을 발견하고는 부조장이 눈을 부릅떴다.
이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도 저 부러진 도신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본인이 더 잘 알 것이다.
내가 미리 대비하고 있었던 이유도 이런 상황이 발생할 것 같아서였다.
그 직후, 나는 그의 복부 앞에서 부러진 도신을 쳐낼 수 있었다.
까아앙!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 부조장의 눈이 휘둥그레져 있다.
그의 눈동자 속에서 안도감과 고마움 등을 느낄 수 있었다.
뒤쪽으로 날아갔던 다른 한 줄기의 장력은 후방으로 향하는 통로의 천장을 때렸다.
콰과광!
와르르르-
후방으로 향하는 통로의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애초에 후방에 있는 우리 인원들을 노린 장력이 아니라, 저 천장을 노린 장력이었던 것 같다.
크고 작은 바위와 흙이 쌓이며 통로가 막혔는데, 일단은 짧은 구간만 막힌 듯하다. 저 정도는 우리 일행이 달라붙어서 치우기 시작하면 길어도 일다경 내에는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전에 저 죽립 노인을 쓰러트리는 게 우선이겠지만.
그나저나 노인의 장력이 발출되던 순간에 인상 깊은 광경이 있었다.
장력이 발출되기 직전에 공력이 장심으로 응집되는 과정에서, 노인의 양손이 순간적으로 푸르스름한 색으로 변했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던 것이다.
물론 실제로 양손이 옥색으로 변했던 것은 아니다.
노인의 양손에 응집되었던 기운이 푸르스름한 색을 띠고 있었기에, 그로 인해 색이 변했던 것처럼 보인 것뿐이다.
푸르스름한 색은 정확하게는 옥색(玉色)이다.
천마신교에 있을 당시, 손이 옥색으로 변하는 장법을 쓰는 고수에 대한 기록을 본 기억이 있다. 그렇기 때문인지 장법의 명칭에도 ‘옥’이라는 글자가 들어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백도의 수많은 문파와 각 문파의 대표 고수들에 대한 요약 자료에 나왔던 것 같다.
하지만 너무 오래돼서인지 그 이상 떠오르는 정보는 없다.
나라고 해서 백도에 관련된 모든 정보를 다 기억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약간의 아쉬움을 느끼던 순간, 후방에서 길초량의 목소리가 들렸다.
“옥불…… 수인장…….”
어라?
맞다. 저거다.
내가 천마신교에서 봤던 장법의 명칭도 분명 저것이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길초량은 멍하니 놀라 있는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