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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마교있다-281화 (281/416)

내 안에 마교있다 281

청룡은 난감했다.

애초에 죽립 노인을 상대로 우세를 점할 수 있었던 이유는 특수작전조의 유기적인 조직력 덕분이었다.

그런데 일정 시점 이후로 몇몇 인원들이 결정타 날리기를 주저했고, 그러다 보니 노인을 궁지로 몰아넣을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이후부터는 무기를 분리한 노인의 기세가 점점 강력해져, 지금은 특수작전조 쪽이 조금씩 밀리고 있는 형국이다.

물론 몇몇 인원들이 주저한 이유를 알고 있다.

전투 중에 저 죽립 노인의 정체가 과거 달마하원의 대표 고수였던 탁연광임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탁연광은 명성이 높은 백도의 대선배 중 한 명이었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조원들은 금세 그의 정체를 알아본 것이다.

혈교의 정신금제술 따위에 당한 상태로 보이는 만큼, 치료를 받으면 정상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더더욱 결정타를 날릴 시점에 주저하고 있는 것이다.

그즈음 청룡의 귓전으로 태무엽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신 조장도 파악했겠지만, 선배들께서 주춤거리는 이유는 탁 대협의 정체를 알아챘기 때문이다. 특히 원을태 선배님의 경우에는 기동타격조 활동 당시에 초량이가 달마하원의 문하라는 사실을 알아채셨다. 그래서 더욱 주저하시는 것이다. 초량이에게는 탁 대협이 태사숙조라는 사실을 아시니까.]

그렇지 않아도 가장 주저하던 이가 바로 원을태였는데, 이제야 이유를 알 것 같다.

태무엽의 전음이 이어졌다.

[그 부분에 대해 방금 초량이와 이야기를 마쳤다. 나는 탁 대협을 처치하고 지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고, 초량이 또한 심적으로 힘들어하는 와중에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있다. 그러니 신 조장도 이 얘기를 선배님들에게 알리고 최대한 빠르게 이 상황을 정리하도록.]

전투 상황인 만큼, 청룡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꾸를 대신했다.

태무엽의 지시를 들은 청룡이 원을태 등의 전직 신룡대원들에게 전음을 보내려 할 때였다. 그의 귓전으로 남궁찬의 전음이 파고들었다.

[순간적으로 조장님의 좌측을 지나서 저 노고수의 측면을 노리려 합니다. 상황에 따라 노고수를 지나쳐 그의 후방을 교란할 수도 있습니다. 곧 신호를 드릴 테니 그 순간에 잠시만 저 노고수의 시선을 끌어 주십시오.]

그렇지 않아도 남궁찬이 빨리 전투에 재참여하기를 기다리고 있던 차였다. 남궁찬은 이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전력이기 때문이다.

태무엽의 지시가 있기는 했으나 남궁찬이 나선다고 하니 일단은 그에게 기대를 걸어 볼 필요가 있다.

위험도가 상당히 커 보이기는 한다.

남궁찬의 말대로라면 탁연광도 순간적으로 위기감을 느끼고 강력한 무공을 그에게 집중시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듯 남궁찬이 위험을 무릅쓰고 노인의 신경을 끌어 주는 사이 다른 인원들이 탁연광에게 결정타를 가해 줘야 할 텐데, 그게 잘 이뤄질 수 있을까 싶다.

남궁찬의 전음이 이어졌다.

[제가 좌측에서 노고수의 주의를 끌 때 유겸이가 노고수의 우측을 노릴 겁니다. 그렇게 알고 맞춰 주시면 됩니다.]

아, 그러고 보니 송유겸도 있었다.

신기하게도, 송유겸이 함께 움직인다는 말을 들으니 든든하다.

상대가 대단한 고수이기는 하나, 송유겸의 그 무시무시한 속도라면 결정타를 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결정타가 더 잘 통할 수 있게끔 상황을 잘 만들어 줘야 한다.

[지금!]

남궁찬의 전음이 들리자마자 청룡은 탁연광을 향해 두 줄기의 검기를 발출해 냈다.

슈슉!

검기를 경력으로 발출해 내는 방식은 내공 소모가 크다. 그래서 평상시에는 이런 방식의 공격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데, 지금은 특수한 상황이다. 최대한 탁연광의 주의를 끌어야 한다.

여태껏 함께 호흡을 맞춰온 만큼, 원을태와 제갈수광도 알아서 호응하며 탁연광을 향해 강력한 일격들을 가했다. 탁연광 같은 고수를 상대로 연계 없는 단발성 공격은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탁연광은 오른손에 들고 있는 협봉검으로 청룡의 검기에 대응했고, 왼손에 들고 있는 봉으로 원을태와 제갈수광의 공격에 대응했다.

캉! 캉! 카가강!

강렬한 타격음이 통로 안에 울려 퍼질 즈음, 청룡은 뒤쪽에서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다가오고 있는 하나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남궁찬이다.

지금껏 같이 작전을 펼치면서 그의 빠른 속도는 여러 차례 겪었는데, 지금의 속도가 가장 빠르다. 아마도 그가 낼 수 있는 최대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듯하다.

남궁찬이 좌측 벽면을 디디며 청룡을 스치듯 지나칠 즈음, 탁연광도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남궁찬의 검에서 세 줄기의 검기가 발출되었다.

매우 단단한 느낌의 검기들이 탁연광의 요혈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검기가 날아가는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청룡으로서도 눈으로 겨우 쫓을 수 있을 정도였다. 남궁찬의 검술이 얼마나 높은 경지에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탁연광도 늦지 않게 반응하며 남궁찬의 검기들을 향해 협봉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청룡은 그 틈에 다시금 탁연광과의 간격을 좁히며 공격을 가했고, 원을태와 제갈수광도 즉시 호응했다.

탁연광의 주의를 최대한 분산시키기 위한 공격이다.

그즈음 탁연광이 협봉검으로 남궁찬의 검기들을 쳐냈다.

캉! 카강!

그 순간, 놀랍게도 검을 쥐고 있는 탁연광의 오른팔이 살짝 들렸다. 남궁찬의 검기에 담긴 힘이 그 정도로 강력했다는 뜻이다.

그 틈을 노려 남궁찬은 곧장 탁연광과의 간격을 더 좁혀갔다.

그즈음 청룡과 원을태, 제갈수광은 이미 탁연광과의 간격이 상당히 가까웠다.

세 사람이 탁연광을 향해 각자의 무기를 휘두르며 공격을 가하자, 그들의 뒤쪽에서도 많은 수의 암기들이 일제히 날아들었다. 이 열에서도 암기술로 공격 지원을 한 것이다.

탁연광이 왼손에 쥐고 있던 봉을 손아귀에서 살짝 놓았다.

봉이 수직으로 떨어지기 시작한 순간, 탁연광이 왼손을 뻗으며 손바닥을 펼쳤다. 그러자마자 그의 장심에 공력이 모여들었다.

이쪽에서 가해지는 공격들을 한꺼번에 방어하고자, 전방에서 넓게 폭발하는 형태의 장력을 발출하려는 것이다.

가까울수록 그 폭발력이 강하다는 사실을 아까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저 상태에서 장력이 얼마나 빠르게 발출되는지도 잘 알고 있는 만큼, 위험 범위에 있던 청룡과 원을태, 제갈수광은 즉시 회피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순식간에 발출된 장력이 강하게 폭발했다.

퍼엉!

상황이 그렇게 되자 탁연광의 근처에 남은 사람이라고는 다른 방향에 있던 남궁찬뿐이었다.

탁연광이 왼손으로 봉을 낚아챔과 동시에 협봉검과 봉을 맹렬하게 휘두르며 남궁찬을 공격했다. 그는 교묘하게도 길이가 긴 무기인 봉을 통해 남궁찬의 퇴로마저 막고 있다.

이 틈에 집중적으로 남궁찬을 공격하여 처치하려는 의도다.

아무리 남궁찬이라 해도 탁연광 정도 되는 최절정고수의 신위를 홀로 감당하는 건 무리다.

서둘러 남궁찬을 엄호해 줘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그럴 수가 없다.

폭발한 장력에 의해 강하게 튕겨 나온 암기들을 쳐내기도 바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송유겸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현재 탁연광의 신경은 온통 남궁찬에게 집중된 상황이라, 이 순간이야말로 그의 배후를 노리기에 매우 적절한 시점이다.

한데 송유겸은 여태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움직였다면 당연히 그의 기운이 이동하는 것을 느꼈을 텐데, 지금껏 남궁찬 외에는 뒤쪽에서 앞으로 나선 기척은 없었다.

‘지금껏 그렇게나 믿음직스럽더니 결정적인 순간에…….’

속으로 그 생각을 하던 청룡이 일순간 눈매를 좁혔다.

제갈수광의 우측에서 흐릿한 그림자 같은 게 보이는가 싶더니, 그 직후에는 그 그림자가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 탁연광의 좌후방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제야 그 흐릿한 그림자의 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송유겸이다.

그가 탁연광의 등 뒤를 향해 검을 찔러넣고 있다.

검과 몸이 하나가 된 듯,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검술이다.

남궁찬을 압박해 가던 탁연광이 황급히 신형을 비틀기 시작했다. 덕분에 순간적으로 위기를 맞았던 남궁찬도 자유로워졌다.

청룡은 눈을 부릅뜬 상태였다.

‘말도 안 되는 속도…….’

자신은 방금 분명히 송유겸이 다가오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도 송유겸이 탁연광의 등 뒤까지 간격을 좁히는 과정을 전혀 시야에 담지 못한 것이다.

소름이 돋을 정도다.

그 와중에도 한 가지가 의아했다.

송유겸은 언제부터 제갈수광의 옆에 있었던 걸까.

물론 탁연광과 싸우느라 신경이 분산된 상황이기는 했다. 그래도 후방 쪽의 움직임에 꾸준히 신경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런데도 송유겸의 이동을 전혀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신룡대의 조장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는데, 탁연광의 표정을 보니 너무 자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저 대단한 고수인 탁연광마저도 화들짝 놀라서 반응하고 있는 걸 보면, 그도 직전까지 송유겸의 존재를 전혀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니까.

* * *

등 뒤에 차고 있던 조중렴의 검을 오른손으로 조용히 뽑아 들었다.

죽립 노인은 탄자결을 쓰는 최절정고수다. 상황에 따라 내 검이 날아가거나 부러질 수도 있다. 그래서 비룡검 대신 조중렴 놈의 검을 뽑아 든 것이다.

이후에 내가 자연스럽게, 서서히 기척을 죽이기 시작할 때쯤, 일 열에서 싸우고 있는 청룡과 원을태, 제갈수광이 죽립 노인을 향해 강력한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직후, 남궁찬이 통로의 좌전방으로 튀어 나갔다.

남궁찬은 기운을 맹렬하게 휘돌리고 있다. 일부러 저러는 것이다. 내가 은잠술 펼치는 걸 돕기 위해서다.

이에 나는 그 순간에 기척을 완전히 지우며 통로의 우측 전방으로 향했다.

이윽고 남궁찬이 세 줄기의 강렬한 검기를 발출하며 죽립 노인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즈음 나는 제갈수광의 바로 뒤에 다다를 수 있었다.

차분히 기도를 정돈하며 언제든 튀어 나갈 준비를 마치고는 잠시 대기했다.

한데 대기하는 중에 문제가 생겼다.

죽립 노인이 방어 목적으로 발출한 폭발성 장력으로 인해 여러 암기가 다시 튕겨 나왔는데, 하필이면 그중에서 유엽비도 하나가 내 쪽으로 날아든 것이다.

저걸 쳐내면 내 은신은 무조건 들킨다.

그러나 이렇게 된 마당이니 어쩔 수 없다.

계획했던 시점보다 약간 이르긴 하나, 이쯤에서 곧장 천섬무를 최대한으로 펼치며 노인에게 달려들어야 한다. 유엽비도는 그 과정에서 쳐내야 할 것이다.

그 순간, 제갈수광이 우수에 들고 있던 검을 쭉 뻗으며 내게로 날아들고 있던 유엽비도를 쳐냈다.

참고로 제갈수광의 입장에서는 그냥 흘려보내도 전혀 상관없는 유엽비도였다. 그런데도 저렇듯 굳이 쳐냈다는 건, 이곳에 은신하고 있는 내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원을태도, 청룡도, 심지어는 최절정고수인 죽립 노인도 내 은신을 못 알아챈 상황이다. 그런 만큼 누구도 내 은신을 못 알아챘을 줄 알았는데 제갈수광은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여튼 용한 사람이다.

죽립 노인이 남궁찬에게 집중 공격을 가하기 시작하던 시점에 나는 천섬무를 최대한으로 펼치며 자리를 박찼다.

노인의 등이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다.

그 등을 향해 오른손에 쥐고 있는 조중렴의 검을 겨눴다.

노인이 내 쪽으로 신형을 급격하게 틀기 시작했다.

천섬무를 최대한으로 펼치고 있는데도 노인의 저 움직임이 그다지 느리게 느껴지지 않는다. 노인의 속도 또한 매우 빠르다는 의미다.

부우웅-

죽립 노인이 왼손에 들고 있는 봉을 횡으로 휘둘렀다.

내 검을 쳐내려는 것이다.

봉이 휘둘러지는 속도가 가공할 정도로 빠를 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위력도 강력하다.

그 와중에도 노인은 오른손의 협봉검으로 남궁찬을 향해 두 줄기의 검기를 발출하고 있다. 견제 목적의 검기다.

일부러 조중렴의 검으로 노인의 봉을 향해 정면으로 부딪쳐갔다.

내가 이를 악문 척하고 눈빛에도 필사의 각오를 담자, 노인의 봉에 담긴 기운도 더 강해졌다. 내 기세가 만만치 않다고 생각하고 봉에 기운을 더 주입한 것이다.

이윽고 노인의 봉과 내 검이 맞부딪힌 순간, 나는 미련 없이 검을 놓았다.

까아앙!

조중렴의 검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튕겨 나갔고, 노인의 봉도 내 정면을 빠르게 지나쳐갔다. 내가 봉의 힘에 맞서지 않고 검을 놓아버릴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한 눈치다.

그즈음 나는 이미 허리에 차고 있던 가죽 띠에서 소비도를 뽑아 든 상태였다. 양손에 총 여섯 자루인데, 검을 놓자마자 연결 동작으로 뽑았기에 빠르게 준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체하지 않고 노인의 상체를 향해 소비도들을 털어냈다.

반대편에서 남궁찬이 노인의 하체를 향해 초승달 모양의 검기를 발출하는 걸 확인했기에 나는 상체를 노린 것이다.

소비도들을 털어내자마자 허리의 검집에 꽂혀 있는 비룡검을 뽑아냈다.

노인의 장력 발출 속도가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이 근접 간격에서 이렇게 빠른 속도로 날아드는 소비도들을 장력으로 막아낼 수는 없다.

노인이 어쩔 수 없이 살짝 도약하며 몸을 비틀자 세 자루의 소비도가 노인의 근처를 스쳐 지나갔다.

동시에 노인이 오른손의 검을 이용해서 나머지 세 자루의 소비도를 쳐내기 시작했다. 봉을 끌어당겨서 쳐내기에는 늦은 시점이라 검을 쓰는 것이다.

그즈음, 유엽비도 세 자루도 노인에게 날아들었는데, 근처에 있던 청룡과 원을태, 제갈수광이 날린 것들이다.

노인은 여전히 장력을 사용할 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그 암기들까지 검으로 쳐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니 남궁찬에게 무방비다.

기회를 놓칠 리 없는 남궁찬이 빠르게 달려들며 노인의 등 뒤를 공격했다.

노인은 허공에서 상체를 뒤쪽으로 비틀며 남궁찬의 공격을 피하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허공에서는 운신이 자유롭지 못하다 보니 몸을 비틀었다 해도 회피에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결국 남궁찬의 검이 노인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 순간, 반대편에 있던 나도 노인의 등허리 쪽에 비룡검을 찔러 넣을 수 있었다.

“크윽!”

노인의 입에서 짧은 비명이 흘러나올 때쯤, 남궁찬의 검이 노인의 가슴을 찔렀다.

“컥……!”

노인의 몸은 땅에 떨어지자마자 그대로 무너졌다.

좁은 장소에서 고수 한 명을 처치하기가 이렇게 어렵다.

남궁찬의 왼쪽 어깨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다.

보아하니 치명적인 부상은 아니나, 그렇다고 해서 상처가 얕지는 않았다.

남궁찬은 아까 노인이 견제 목적으로 날린 검기를 최소한의 움직임으로만 피했었는데, 아마도 그 과정에서 베인 듯하다. 노인의 견제를 뚫고 최대한 서둘러서 나를 엄호해 주려다가 저렇게 된 것이다.

[어깨, 괜찮으십니까?]

내가 묻자 남궁찬이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조중렴의 검이 박혀 있는 벽면으로 다가갔다.

검이 제법 깊숙이 박혀 있다.

뽑아보니 검신이 이 하나 나간 데 없이 멀쩡하다.

들었던 대로 역시 명검은 명검인 모양이다.

우벽희와 남궁설이 남궁찬의 어깨를 치료하는 가운데 태무엽이 조원들을 집합시키더니 말했다.

“많이들 알고 계시겠지만, 우리가 쓰러트린 저분은 전대에 활동했던 백도의 대선배십니다. 그렇다 보니 저분의 정체를 일찍 알아챈 몇 분이 손속에 사정을 두셨습니다. 물론 그 마음을 이해합니다. 저 또한 매우 가슴 아픕니다.”

태무엽이 바로 말을 이었다.

“앞으로도 비슷한 상황에 맞닥뜨릴 수 있습니다. 그때도 이런 식이면 오히려 우리만 위험해질 뿐이라는 점, 굳이 더 길게 말씀드리지 않아도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현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건 우리의 안위입니다. 마음 단단히 먹고 작전에 임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모두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는데, 원을태를 포함한 몇몇 인원들의 표정은 특히 무거웠다.

주로 전직 신룡대원들인데, 죽립 노인을 상대로 가장 주춤거렸던 게 바로 그들이기도 하다.

곧 남궁찬의 어깨 치료가 끝났기에 우리는 다시금 대형을 갖춰 이동하기 시작했다.

얼마간을 전진하다 보니 작은 갈림길이 나왔는데, 길지 않은 갈림길의 끝으로 석문이 보였다.

딱 봐도 심상치 않아 보이는 시설이기에 모두가 그 앞으로 이동했다.

태무엽이 서너 명의 인원들과 함께 석문 근처를 조사하더니 금세 석문을 열었다.

석문 안쪽은 넓은 공간이었다.

군데군데 횃불이 밝혀져 있는데, 안에서 고약한 냄새가 새어 나오고 있다.

들어가서 보니 곳곳에 넓은 웅덩이들이 있었다.

웅덩이마다 각기 다른 색의 액체들이 채워져 있었으며, 그 안에 수십 명의 인영이 누워있는 모습이 보였다.

강시 제조 시설인 것이다.

모두가 웅덩이에 가까이 다가가서 시체들을 살폈다.

곧 이곳저곳에서 낮은 외침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헛! 이 용모는……, 형산파의 전대 장로였던 하경방 대협의 용모 같은데……!”

“이분의 용모는 아무리 봐도 점창파의 전대 고수셨던 오삼직 대협 같습니다!”

“이분은 과거 개방의 유명한 칠결제자셨던 철심개……!”

그 외에도 많은 외침이 들려왔는데, 백도 전대 고수들의 이름이 계속해서 호명되었다.

아까 들어 보니 서쪽 산지에 있는 강시 제조 시설에서는 일반인들의 시체를 강시로 제조하고 있었던 모양인데, 이곳 중앙 봉우리에서는 무인들의 시체를 강시로 제조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태무엽이 말했다.

“일단은 이 동굴 안에 이러한 시설들이 얼마나 더 있는지 확인하는 게 우선입니다. 어차피 본대가 근처에 있으니 우리가 시설들을 파악만 해두면 나머지는 본대가 처리할 수 있습니다.”

이에 우리는 그 시설에서 나와 다시금 통로 안쪽으로 전진했다.

비슷한 강시 제조 시설을 세 곳 더 발견했는데, 그곳의 웅덩이 안에도 백도 전대 고수들의 시체가 들어 있었다.

강시 제조 시설 구역을 지나치자 한동안은 딱히 인공적인 시설이 보이지 않았다.

통로는 계속해서 지하로 이어졌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통로의 천장이 매우 높아지고 폭도 더 넓어졌다. 웅장한 느낌마저 들 정도다.

예사롭지 않은 동굴이라는 느낌이,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더 짙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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