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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마교있다-282화 (282/416)

내 안에 마교있다 282

강시 제조 시설이 있는 구역을 지나친 후 한동안은 적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동하는 중에 나는 태무엽에게 전음을 보내 잠시 길초량의 옆자리로 위치를 옮기고 싶다고 부탁했고, 태무엽은 흔쾌히 허락해 줬다.

곧 단목강이 내 위치로 왔고 나는 길초량의 옆으로 옮겼다.

길초량이 나를 보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힘없어 보이는 미소다.

저 정도도 그나마 아까보다는 표정이 많이 나아진 것이다.

나도 길초량을 향해 미소를 보인 후 그와 나란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냥 옆에 있어 주고 싶어서 온 것이기에 굳이 말은 걸지 않았다.

현재 길초량은 등 뒤로 죽립 노인이 쓰던 선장을 메고 있다.

참고로 죽립 노인의 주검은 수습하여 바위 틈새에 숨겨놓았다.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한동안 묵묵히 발걸음만 옮기던 길초량이 내 쪽으로 살짝 고개를 틀더니 전음을 보내왔다.

[아까의 그 일 때문에 내 옆에 있어 주려는 거, 알고 있소. 고맙소.]

내가 대답 대신 희미한 미소만 지어 보이자 길초량이 다시 전음을 보내왔다.

[그나저나 눈치가 귀신인 송 형이시니 아까의 일로 나에 대해 어디까지 눈치채셨는지 궁금하구려.]

죽립 노인의 이름 말고는 웬만큼 다 알고 있지만 적당한 선에서 대꾸해 줘야 할 것 같다.

[탄자결에 특화된 무공도, 평범한 타격형의 무기들에서 검이 분리되어 나오는 방식도, 무공을 펼치는 전반적인 분위기도, 모두 매우 비슷하더구려. 그래서 같은 사문이 아닐까 하고 조심스럽게 추측해 봤을 뿐이오. 아까 길 형의 표정을 보니 매우 밀접한 인연이었던 것 같기는 하던데.]

내 말에 길초량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던 그가 다시 내게 전음을 보냈다.

[송 형이라면 조금만 조사해 봐도 아까 돌아가신 분의 정체를 금세 알아낼 게 빤하고, 그분의 정체를 알아내면 내 사문에 대해서도 금방 알게 되겠지요. 그러느니 그냥 내가 알려주는 게 나을 것 같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송 형이니까……. 아까 그분은 성은 탁씨이며, 함자는 연 자, 광 자를 쓰시는 분이오. 내게는 태사숙조시오. 내 사문은 달마하원이라는 곳이고.]

아! 탁연광.

그랬다. 내가 천마신교의 정보 문서에서 봤던 달마하원 전대고수의 이름도 탁연광이었다.

사부의 사부는 사조이며, 사조의 사부는 태사조다. 그 태사조의 사제가 태사숙조다.

그 항렬에서 생존해 있는 이들이 드물 테니, 길초량의 입장에서 탁연광은 사문의 큰 어른이다.

길초량이 전음을 이었다.

[세대 차이가 크다 보니 사문에서 직접 뵌 적은 없었소. 그러나 우리 세대의 제자들은 모두 탁 태사숙조님에 관련된 수많은 일화를 들으며 자랐소. 전대에 사문을 대표하는 고수셨고, 여러 협행과 선행으로 명성도 높으셨던 만큼 우리에게는 전설 같은 존재셨다고 할까. 심지어 우리 동기들의 희망은 하나같이 나중에 탁 태사숙조님 같은 무인이 되는 것이었소.]

[아…….]

[아까, 처음에는 못 알아뵀소. 직접 뵌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그 선장만으로 알아뵈기는 어려웠던 것이오. 그러던 중에 그 장법, 옥불수인장을 봤으니 내가 얼마나 놀랐겠소. 그 옥불수인장은 우리 사문의 장법이라서 그분이 탁 태사숙조님이라는 사실을 유추해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소. 사문의 어르신 중에 그 연세에 생존해 계실 분은 그분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충격이 클 수밖에 없었던 것이오.]

선망의 대상이었던 존재를 아까와 같은 상황에서 만났을 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대충 길초량의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길초량에게 말했다.

[미안하오.]

어찌 되었건 나는 탁연광을 처치하는 과정에서 지대한 역할을 했다. 그렇기에 사과의 말을 건넨 것이다.

길초량이 대꾸했다.

[아까 원 노선배님과 제갈 교관님, 남궁찬 형님께서도 전음으로 미안하다고 하시더구려. 그런데 내가 그 상황을 모르는 것도 아니잖소. 그러니 송 형도 미안해할 필요 없소.]

분위기를 보니 감정을 많이 추스른 것 같다.

다행이다.

길초량이 허공을 보며 숨을 한 차례 길게 내쉬더니 다시 말했다.

[지금 나는 그냥…… 태사숙조께서 악에 물들어서 그렇게 되신 게 아니라, 선한 이들을 돕는 과정에서 함정에 빠져서 그렇게 된 것이라 믿으려 노력하고 있을 뿐이오.]

[나도 그렇게 믿소.]

본디 사람의 이중성이라는 건 추측 불가라, 성인군자라 해도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봤던 천마신교의 정보 문서에 따르면 탁연광은 백도의 무인으로서 충분히 훌륭한 인물이었다.

백도의 인물들에 관한 천마신교의 정보는 매우 냉정하고 객관적이기에 신뢰도는 매우 높다고 보면 된다.

길초량이 엷은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한동안 말없이 이동하던 중에 길초량이 말했다.

[이 작전이 끝나고 돌아가면 술 한잔 합시다. 밤새도록. 물론 송 형이 사는 거고.]

놈이 씩 웃고 있다.

농담조로 핀잔을 줄까 하다가 상황이 상황인 만큼 참았다. 오늘은 그냥 놈의 기분에 맞춰주자.

[알았소. 평생 술을 가장 많이 마신 날로 기억되게 해드릴 테니 양껏 드시구려.]

길초량이 매우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에 나는 다시금 태무엽에게 전음을 보내어 원래의 내 위치로 자리를 옮겼다.

어두운 통로를 제법 오래 지나왔음에도 시설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더는 보이지 않았다.

어느 시점이 되자 넓었던 통로가 좁아지는가 싶더니, 그즈음부터 물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물이 흐르는 소리가 아니라 떨어지는 소리인데, 물의 양이 적지 않은 듯하다. 폭포다. 소리만 들어도 폭포수의 낙차가 제법 큰 듯하다.

참고로 동굴은 지금껏 계속 아래로 이어졌기에, 현재 우리의 위치는 아주 깊숙한 지하일 것이다.

한데 이렇게 깊숙한 지하에 폭포가 있는 것이다.

그런 지형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 봤지만 직접 본 적은 없기에 호기심이 일었다.

이윽고 좁은 통로를 조심스럽게 지나치자 우리 앞에 장관이 펼쳐졌다.

거대한 공간이다.

자연적으로 생성된 땅속의 틈새인 듯하다.

보이는 모든 곳이 벼랑이며, 우리가 서 있는 위치 또한 위아래로 이어지는 벼랑의 어느 한 지점이다.

천장도 매우 높다. 고개를 들고 어둠 속을 한참 바라보고서야 높이를 가늠할 수 있었는데, 십 장이 훌쩍 넘는 듯하다.

이 거대한 틈새는 좌우 양옆의 벼랑을 끼고 전방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완만하게 굽어지고 있다 보니 어디쯤이 끝인지는 추측하기 어렵다.

거대한 틈새는 우리가 서 있는 위치로부터 왼쪽 벼랑과 오른쪽 벼랑으로 갈라진다.

길은 오른쪽 벼랑으로 이어지고 있다.

벼랑길이다.

길의 어떤 부분은 벼랑을 살짝 깎아서 만들기도 했지만, 어떤 부분은 목재를 이용해 잔도(棧道)로 이어 놓았다. 벼랑을 깎았을 때 붕괴의 위험이 있어 보이는 곳들에 잔도가 건설되어 있다.

안력을 돋워 보니 잔도의 상태는 양호해 보였다. 목재들이 썩어 있거나 삭아 있지도 않다.

오른쪽 벼랑은 시작 부분부터 움푹 들어가 있기에, 벼랑길 또한 그 부분을 따라 빙글 돌아 전방으로 향한다.

그 움푹 들어간 벽면의 상부에서 폭포수가 떨어져 내리고 있다. 그리고 그 폭포수의 뒤쪽으로 길이 이어지고 있다.

폭포의 시작 지점은 육 장쯤 되는 높이다.

우리가 있는 위치에서 따져 봐도 상당히 높은데, 그 폭포가 일차적으로 길 아래쪽 벼랑의 커다란 바위에 부딪힌 뒤, 또다시 그곳에서 폭포를 이루며 더 아래로 떨어져 내리고 있다.

가장자리로 다가가서 벼랑 아래를 살펴봤다.

안력을 집중했음에도 시커먼 어둠만 보일 뿐, 바닥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시커먼 어둠 속으로 떨어져 내리는 폭포수가 바닥의 어딘가에 닿고 있는 모양인데, 그 소리마저도 아득하다.

귀가 멍할 정도로 폭포 소리가 위아래에서 울리고 있는 탓이다.

태무엽이 모두를 가까이 모이게 한 후에 말했다.

“길이 제법 위험해 보이기는 합니다만, 돌아가기도 매우 애매한 상황입니다. 이 안을 계속 조사하겠습니다.”

목소리가 제법 크다. 그러나 폭포 소리가 워낙 크기에 멀리까지 퍼져 나갈 염려는 없다.

조원들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태무엽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동하기 전에 선발대를 먼저 보내어 잔도의 안전성을 점검하고 위험 요소가 없는지도 살펴보려 합니다. 조사결과 안전성 면에서 부적합하다는 판정이 나면 그때는 그냥 돌아가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조사가 끝날 때까지 여러분은 잠시 휴식을 취하며 정비하십시오.”

그 말이 끝나자 조원들이 근처로 흩어지며 각자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고, 황룡조의 부조장을 포함한 네 명의 현역 신룡대원들이 선발대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출발했다.

휴식을 취하는 동안 나는 허리에 차고 있던 은룡삭을 풀어서 얇고 긴 형태로 만들었다.

이후에는 은룡삭을 허리에 두세 차례 감아서 다시 묶었고, 매듭은 끝부분을 잡아당기면 쉽게 풀릴 수 있는 형태로 지었다.

이제부터 벼랑길로 이동할 텐데 도중에 전투가 벌어질 수도 있다. 그 경우 어떤 돌발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만큼 미리 대비해 둘 필요가 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선발대로 갔던 인원 중에서 한 명이 돌아오더니 태무엽에게 뭔가를 보고했다.

보고를 들은 태무엽이 모두를 집합시키더니 말했다.

“잔도의 상태가 양호하다고 합니다. 우리도 이제 출발하겠습니다. 보시다시피 두 줄로 이동하기가 어려운 길입니다. 한 줄로 이동해야 하는 만큼, 원래 왼쪽 줄에 있던 분들이 오른쪽 줄에 있던 인원들의 앞에 끼어드는 형태로 대형을 갖추겠습니다.”

그런 식이면 나는 이동 대형의 맨 끝이며, 내 앞은 윤단영, 그 앞은 남궁설, 그 앞은 우벽희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자 태무엽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잔도의 상태가 양호하다고는 해도 하중이 많이 가서 좋을 건 없습니다. 잔도에서는 되도록 앞사람과의 간격을 벌리고 조심히 이동하십시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나는 흑풍대 시절에 각종 담력 훈련을 모두 소화한 경험이 있다. 그런데도 이렇듯 좁은 벼랑길을 걸으니 등줄기가 약간은 서늘했다. 잔도 위를 걸을 때는 더욱 그랬다. 이미 점검을 마친 곳임을 아는데도 어쩔 수 없었다.

낭떠러지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깊다는 사실을 알기에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이다.

나만 이러는 게 아니다.

내 앞에 있는 윤단영도, 그 앞에 있는 남궁설도, 긴장하지 않은 척하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많이 긴장하고 있다는 뜻이다.

거대한 틈새는 양쪽 벼랑을 끼고 좌측으로 완만하게 굽어졌다.

잔도를 따라 제법 멀리 왔는데도 비슷한 지형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우리가 그런 식으로 조용히 이동하던 어느 순간이었다.

좌측의 벼랑 쪽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 듯하더니 갑자기 화살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날아오고 있는 화살이 족히 백여 발, 아니 백오십 발도 넘어 보인다.

적들이 활을 쏘고 있는 위치는 좌측 절벽의 상단이다. 그곳에서 날린 화살들이 사선 아래에 있는 우리를 향해 쏟아지고 있다.

적들은 궁술로 공격하기에 매우 좋은 조건인데, 활이 없는 우리는 반격을 가할 방도가 없다.

좌우 벼랑 사이의 간격은 십 장이 훌쩍 넘는 만큼, 도약해서 건너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쏟아지는 화살들을 막아내면서 전진하는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최악의 상황임인데도 조원들의 대처는 차분했다.

계속 날아드는 화살들을 부지런히 쳐내는 와중에도 이전보다 조금 더 신속하게 전진하고 있다.

태무엽의 지시가 없이도 알아서 저러는 걸 보면 역시 최정예들이다.

화살을 쳐내며 이동하던 중에 내 감각을 자극하는 미세한 기운이 느껴졌다.

소리와 기척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매우 빠른 기운이, 화살 비 속에 섞여서 날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소리와 기척을 저 정도로 죽였다면 수준급의 무음시다.

이곳에 있는 모든 조원 중에서 저 무음시의 존재를 제대로 알아챌 수 있는 사람은 반도 되지 않을 것이다.

한데 무음시가 하나가 아니다.

총 다섯 발이나 된다.

즉시 천섬무를 일으키며 정신을 집중했다.

무음시의 기척이 움직이는 궤적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 후 나는 눈매를 좁히지 않을 수 없었다.

다섯 발의 무음시가 모두 우리가 있는 후미 쪽을 노리고 날아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궤적을 조금 더 살펴보니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저 무음시들은 후미에 있는 다섯 명을 따로따로 노리고 날린 것들이다. 다섯 명은 우벽희의 바로 앞에 있는 청룡조의 일류고수부터 최후방에 있는 나까지다.

적의 의도 또한 알 것 같다.

보통은 이런 식의 대형을 짤 때 주전력은 전방에 배치하고 보조 전력은 후미 쪽에 배치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저런 식의 공격도 후미 쪽으로 향할 때 더 잘 먹혀들 가능성이 크다. 그걸 노리고 날린 것이다.

나는 일단 앞쪽을 향해 짧고 빠르게 외쳤다.

“무음시!”

이런 식으로 알려준다고 해도 내 앞쪽에 있는 청룡조의 일류고수와 우벽희, 남궁설은 무음시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당연히 제대로 대처하지도 못할 것이다.

설령 알아채고 지금부터 대처한다고 해도 늦다.

그런데도 내가 외친 이유는 선봉 쪽에 있는 고수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다.

우리는 현재 한 줄로 이동하고 있기에 최전방과 후미 사이의 거리가 제법 멀다. 그렇기에 최전방 쪽에 있는 고수들은 이 무음시의 존재를 못 알아챘을 수가 있다.

내 앞에 있던 윤단영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몸을 옆으로 틀어 남궁설을 스쳐 지나친 그녀가 우벽희까지 순식간에 스쳐 지나고 있다.

청룡조의 일류고수를 지켜주러 가는 것이다.

저 일류고수의 앞에 현역 신룡대원이 있는데, 그가 무음시로부터 저 일류고수를 지켜주는 게 어려우리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어쨌거나 저 모습은 윤단영 또한 무음시 다섯 발이 정확히 누구를 노리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저렇듯 빠르게 반응한 걸 보면, 윤단영은 내가 무음시라는 말을 외치기 전부터 이미 무음시의 존재를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다.

과연 화산파가 자랑하는 최고의 여제자답다.

나는 남궁설을 스쳐 지나침과 동시에 왼손으로 등 뒤에 메고 있던 검을 뽑았다.

이전에도 화살들을 쳐내야 했기에 오른손에는 이미 비룡검이 들려 있는 상태다.

남궁설의 전방에서 멈춘 후 왼손의 검을 쭉 뻗어 그 방향으로 날아들던 무음시를 걷어냈다.

카앙!

손아귀에 제법 묵직한 타격감이 전해지던 찰나, 즉시 천섬무를 상 단계로 펼치며 전방으로 삼 보 이동했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오른손의 비룡검을 쭉 뻗었다.

카앙!

우벽희의 복부 바로 앞에서 무음시를 걷어낼 수 있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손아귀에 제법 묵직한 타격감이 전해졌다.

지금까지 겪어 봤던 적들의 무음시 중에서 수준이 가장 높은 무음시임을 확실하게 알 것 같다.

순간적으로 우벽희의 고개가 내 쪽으로 돌았는데, 눈동자에 화들짝 놀란 기색이 역력하다.

나는 곧바로 전방을 향해 턱짓해 보이며 즉시 이동하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전방에 고수들이 많으니 조금이라도 더 빨리 그쪽으로 이동하는 게 안전하다.

우벽희가 바로 신형을 틀더니 일반 화살들을 쳐내며 빠르게 달려갔다.

이제부터는 혹여 무음시가 날아와도 남궁설만 보호하면 되는 만큼, 나도 조금은 더 안정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던 순간, 또다시 무음시의 기척이 느껴졌다.

이번에도 다섯 발이다.

즉시 천섬무를 활성화시키며 무음시들의 기척에 집중했다. 궤적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다섯 발 모두 나와 남궁설 쪽으로 날아오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두 발은 정확하게 나와 남궁설을 노리고 있는데, 나머지 세 발은 나와 남궁설의 사이에 있는 벼랑의 면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뭐지?

저런 높은 수준의 무음시를 구사할 수 있는 궁수들이 실수로 화살을 저렇게 날렸을 리는 없다.

한데 이상한 점은 그것만이 아니다.

기척이 미세한 건 여전한데, 이전의 무음시들보다 파공음이 더 크다.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안법을 최대한으로 활성화한 순간, 나는 좁혔던 눈매를 크게 뜨지 않을 수 없었다.

뾰족한 화살촉이 있어야 할 부분에, 화살촉 대신 탱자 크기의 조그만 구체들이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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