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283
저 조그만 구체는 독탄일 수도 있고 벽력탄일 수도 있다.
이 상황에서는 저게 무엇이든 매우 위험할 것이다. 작다고 얕봐서도 안 된다.
아마도 독탄이 아닐까 싶다.
이런 지하에서 벽력탄이 터지면 우리뿐만 아니라 저들도 위험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벽력탄을 사용할 할 정도로 미친놈들은 아닐 것이다.
일단 남궁설 쪽으로 움직이고는 있지만 이 상황은 나로서도 매우 까다로운 상황이다.
현재의 대형은 윤단영과 내가 앞으로 튀어나온 터라 남궁설이 가장 후미에 위치한 상태다.
그 남궁설을 도우러 가야 하는데, 무음시가 도달하기 전에 갔다가 돌아올 만큼의 시간은 되지 않는다.
내가 남궁설에게 도달한 직후에 무음시가 도달할 것이다.
무음시에 달린 독탄들이 길을 따라 터지면 그 위치에서 독무가 확산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본대 쪽으로 다시 돌아오기가 어려워진다.
본대 쪽에서도 우리를 도울 방법이 없고, 현실적으로 도울 만한 여건도 되지 않는다.
결국, 우리가 알아서 본대 쪽으로 다시 합류해야 한다.
남궁설의 옆으로 이동하기 직전에 왼손에 쥐고 있던 조중렴의 검을 다시금 등 뒤의 검집에 꽂아 넣었다. 이동 방향상, 오른손으로 검을 휘둘러야 화살들을 쳐내기가 수월하다.
이윽고 남궁설의 옆에 다다른 나는 왼팔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꽉 끌어당겼다. 이러기 위해 왼손을 비워 뒀던 것이다.
남궁설은 살짝 움찔했지만 저항하지 않았다.
내가 왜 이러는지는 모르더라도, 내가 괜히 이럴 리 없다는 사실쯤은 잘 알고 있는 그녀다.
이 와중에도 남궁설의 허리가 매우 가늘다는 게 느껴진다. 평소에 보면서도 날씬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보는 것보다 훨씬 더 날씬한 느낌이다.
남궁설의 허리를 꽉 끌어안은 채 그대로 후방을 향해 신법을 펼쳤다.
그런 내 뒤로 무음시가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남궁설을 노렸던 무음시다.
독탄일 가능성이 크지만 벽력탄일 가능성 또한 완전히 배제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되도록 더 멀리까지 이동했다.
이윽고 폭음이 들렸다.
쾅! 콰과광! 콰앙!
탄이 터지는 소리를 들은 순간 나는 두 눈을 부릅뜨지 않을 수 없었다.
폭음과 진동만으로도 저게 벽력탄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저런 또라이 같은 놈들을 봤나.
이런 공간에서 벽력탄이라니…….
후드드드- 부스스스-
공간에 적잖은 진동이 전해짐과 동시에 천장에서 돌 부스러기와 흙먼지가 떨어져 내렸다.
나는 남궁설의 허리에서 팔을 풀며 벽력탄들이 폭발한 지점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벼랑길이 대부분 파손되어 있다.
아직은 군데군데 디딜 만한 부분이 남아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만약 저곳들까지 파손되어 벼랑길이 완전히 끊겨 버리면 우리는 본대에 합류하는 게 거의 불가능해진다. 도약해서 건널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그렇게 되면 나는 남궁설과 함께 지금껏 왔던 길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 둘이서 그 먼 길을 되돌아가서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나 혼자라면 성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남궁설과 함께라면 확률은 극도로 낮아진다.
결국 파손된 벼랑길이나마 아직 디딜 곳이 있을 때 바로 움직여야 한다.
비룡검을 왼손으로 옮겨 쥐었다. 이번에는 이동 방향상 왼손으로 검을 휘둘러야 화살을 쳐내기가 수월하다.
그러면서 남궁설에게 짧게 전음을 보냈다.
[설 매, 따라와!]
그때쯤 또다시 무음시의 기운이 감지되었다.
천섬무를 일으켜서 확인해 보니 이번에도 탱자 크기의 구체가 달린 무음시 다섯 발이었다.
두 발은 나와 남궁설을 노리고 있고 세 발은 우리의 뒤쪽으로 향하고 있다.
폭포 쪽으로 향하는 길마저 완전히 차단하여 남궁설과 나를 이 위치에 고립시키겠다는 의도다.
그즈음, 일반 화살들 또한 반 이상이 우리 둘을 향해 집중되기 시작했다. 놈들이 우리 두 사람을 제대로 노리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전방으로 움직일 생각이긴 했는데, 이렇게 되면 선택의 여지마저 없어졌다.
탓!
첫 번째로 디뎌야 할 지점을 향해 낮고 빠르게 도약했다.
그 와중에도 비룡검을 이용하여 내게로 날아드는 일반 화살들을 부지런히 쳐내야 했다.
첫 번째 지점에 착지하자마자 곧장 두 번째 지점을 향해 도약했다. 겨우 발 하나 디딜 수 있을 정도로 좁은 지점이기에, 내가 빨리 벗어나 줘야 남궁설도 이곳을 향해 도약할 수 있다.
도약 후 살짝 고개를 돌려 보니 남궁설도 화살을 쳐내며 첫 번째 지점을 향해 도약하기 시작한 모습이었다.
수많은 화살이 집중되고 있는 상황인데도 남궁설이 화살들을 쳐내는 모습은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
저렇듯 본인이 할 수 있는 부분만큼은 확실하게 해내기에 엄호하는 내 입장에서도 편한 점이 많다.
나는 두 번째 지점에 착지한 후에도 곧바로 세 번째 지점을 향해 도약해 올랐다. 두 번째 지점과 세 번째 지점 사이의 거리는 먼 편이다.
또다시 고개를 돌려 남궁설을 확인했다.
역시나 그녀는 내 뒤를 따라 두 번째 지점을 향해 도약한 모습이었다.
그때쯤 무음시들이 절벽의 면에 닿았다.
콰광! 콰과광!
폭음과 함께 또다시 공간이 진동하며 돌 부스러기와 흙먼지가 떨어져 내렸다.
내가 세 번째 지점을 디디며 네 번째 지점을 향해 막 도약했을 때였다.
“꺅!”
남궁설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황급히 뒤로 돌린 순간, 눈이 저절로 휘둥그레졌다.
남궁설이 두 번째 지점이 있었던 부분의 이 장 아래 절벽에 매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절벽 면에 단검을 박아 넣고 오른손으로 매달린 상태에서, 왼손으로는 날아드는 화살들을 쳐내는 중이다.
살펴보니 두 번째 지점이 없어졌다.
딱 남궁설이 두 번째 지점에 착지하기 직전에 벽력탄들이 터졌었는데, 그 폭발로 인해 무너진 모양이다. 내지는 그 폭발로 인해 약해져 있던 지점을 남궁설이 밟자마자 무너져 내린 것일 수도 있다.
세 번째 지점에서 네 번째 지점으로 향하는 허공인 만큼 나로서도 당장은 뭔가를 할 수가 없다. 참고로 은룡삭을 길게 풀어놓긴 했으나 그게 저렇게 멀리까지 닿지는 않는다.
천섬무를 상 단계로 끌어 올리는 동안에도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저 상태의 남궁설을 구하러 가는 건 아무리 나라고 해도 위험도가 매우 크다.
목숨을 걸어야 한다.
나는 송유겸의 몸으로 깨어난 후로 지금껏 여러 상황에서 목숨을 걸었던 바 있다.
그러나 그때는 기본적으로 천섬무를 이용하면 어떻게든 내 한목숨은 부지할 수 있을 만한 상황과 환경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디딜 곳이 없는 절벽이다. 쾌속한 경신술을 이용할 수가 없는 환경이다.
저런 환경에서는 내 한 몸 추스르기도 힘든 법인데, 남궁설까지 챙겨야 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적의 화살과 무음시에도 대처해야 한다.
쳐내면 그만인 무음시도 아니다. 폭발물이 달린 무음시다. 쳐낼 수가 없다. 그런 게 운신이 자유롭지 않은 나를 향해 날아들 것이다.
아무리 나라도 그런 상황에서마저 무사할 자신은 없다.
그렇다 보니 너무나도 고민스럽다.
고민이 채 끝나지 않은 시점에 네 번째 지점에 발이 닿았다.
착지하자마자 나는 천섬무를 상 단계로 운용하며 다시 세 번째 지점으로 되돌아갔다.
몸이 알아서 이렇게 반응했다.
고민이 헛수고로 느껴질 정도다.
다른 생각은 없었다.
그저, 내게 가장 소중한 몇 사람 중 한 명인 남궁설을 저대로 두고 싶지 않다는 마음뿐이었다.
비룡검은 허리춤의 검집에 꽂아 넣고 그 대신 어깨 뒤의 검집에서 조중렴의 검을 뽑아 오른손에 쥐었다.
남궁설 쪽으로 향하는 도중에 문득 남궁벽의 말이 떠올랐다.
「혹여 앞으로 또다시 위험한 일이 벌어질 경우에도 설아를 잘 가르쳐주고 보살펴줬으면 하네. 지금까지의 은혜도 잊지 않을 것이나, 그 고마움 또한 결코 잊지 않겠네.」
작년에 통합 잠룡대전 건으로 본맹에 갔을 때 남궁벽이 작별 인사와 함께 했던 말이었다.
이어서 남궁찬이 했던 말도 떠오른다.
「설아를 신경 써 달라는 부탁, 안 하려고 했는데 결국은 할 수밖에 없게 됐네. 미안하다, 유겸아.」
본인은 선봉 쪽에 서야 하므로 남궁설에게 신경 써 주기가 어렵다면서 했던 부탁이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저런 부탁들 때문에 이런 결정을 한 건 아닌데, 결과적으로는 두 사람의 부탁을 들어준 셈이 되어 버렸다.
물론 이건 남궁설을 구하고 나도 살아남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다.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한다.
세 번째 지점에서도 어차피 은룡삭이 남궁설에게까지 닿지 않는다. 결국 남궁설이 있는 곳으로 직접 갈 수밖에 없다.
이에 나는 세 번째 지점에 도달하자마자 찰나의 머뭇거림도 없이 그대로 뛰어내렸다. 당연히 남궁설이 매달려 있는 지점을 향해서다.
그 순간 등 뒤에서 날카로운 외침들이 들렸다.
“설아! 유겸아!”
“송유겸!”
“송 형!”
“송 공자!”
거의 동시에 들린 목소리들이다. 그 목소리들의 주인들은 순서대로 남궁찬, 제갈수광, 길초량, 단목강이다.
하나같이 놀람과 다급함이 가득 담긴 음성이다.
지금 내가 하는 짓이 누가 봐도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는, 그야말로 무모하기 이를 데 없는 광경이라는 의미겠지.
남궁설을 향해 떨어져 내리는데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다가가고 있는 내 기척을 느낀 것이다.
눈이 휘둥그레지고 있다.
떨리는 눈동자에서 수많은 감정들이 전해지고 있지만 지금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즉시 그녀에게 전음을 보냈다.
[오른손 놔!]
순간적으로 남궁설의 눈동자에 의문이 담겼다.
오른손에 의지해서 단검의 손잡이에 매달려 있는 상황인데, 그 손을 놓으라고 하니 의아한 것이다. 놓으면 그대로 추락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궁설은 곧바로 오른손을 놓는 모습을 보였다.
눈동자에 의문이 여전한 걸 보면 이유는 모르는 모양이다. 모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일단은 내가 하라는 대로 한 것이다.
저게 말이 쉽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추락의 공포라는 게 생각보다 훨씬 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저러는 걸 보면, 나에 대한 저 아이의 신뢰가 어느 정도인지 능히 짐작할 만하다.
남궁설의 신형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그녀는 끝까지 왼손의 검을 휘두르며 화살을 쳐내는 중이다.
그녀의 모습을 확인한 나는 몸을 거꾸로 곧게 세워서 공기 저항을 최소화한 채로 빠르게 낙하했다. 날아드는 화살들은 검을 최소한으로만 움직여서 비껴냈다.
그 직후, 내 위쪽 벼랑에서 또다시 벽력탄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콰과광! 콰광!
애초에 벼랑에 매달려 있던 남궁설을 노리고 날린 무음시들이다.
저 무음시의 존재를 파악하고 있었기에 남궁설에게 미리 오른손을 놓으라고 지시했던 것이다. 너무 늦으면 저 폭발 범위에서 제대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남궁설이 내 말을 잘 따라 준 덕에 상황이 아주 나쁘지는 않다.
나는 거꾸로 떨어지고 있기에 얼굴 쪽이 아래로 향해 있는데, 남궁설은 얼굴 쪽이 위로 향해 있다.
서로를 바라보는 와중에 우리의 간격은 점점 가까워졌다.
남궁설의 눈동자가 여전히 놀란 상태에서 격렬하게 흔들리는 게 보인다.
그녀를 향해 전음을 보냈다.
[빨리 검 넣고, 내가 다가가면 나를 꽉 붙잡아!]
어차피 우리는 틈새의 어둠 속으로 추락하고 있는 상황이라, 이쯤 되면 적들도 우리를 노리고 화살을 날릴 수가 없다. 그렇기에 검으로 화살을 쳐낼 일도 없다.
남궁설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즉시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나도 오른손의 검을 어깨 뒤의 검집에 집어넣은 후, 왼손으로는 즉시 허리에 묶어둔 은룡삭의 매듭을 당겼다. 은룡삭은 쉽게 풀렸다.
은룡삭을 그대로 쥔 채 남궁설을 향해 더 빠르게 떨어져 내렸고, 우리는 곧 완전히 가까워졌다.
내가 오른손을 내밀자 남궁설도 오른손을 내밀었다.
손을 맞잡은 순간, 나는 그녀의 손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끌려온 남궁설도 왼손으로 내 앞섶을 잡더니 나를 끌어당기며 연속 동작으로 나를 꽉 안았다.
[더 꽉 붙들어! 양팔과 양다리로 꽉!]
품 안에 있는 남궁설이 고개를 끄덕이며 내 지시대로 하는 게 느껴진다.
나는 왼손의 은룡삭을 오른손으로 옮겨 쥔 후, 천섬무를 일으키며 옆의 절벽 면을 살폈다.
이윽고 불룩한 돌부리를 찾을 수 있었기에, 지체하지 않고 그 부분을 향해 은룡삭을 강하게 뿌렸다.
은룡삭이 돌부리에 닿은 순간에 사용법에 따라 공력을 조절하자, 은룡삭이 돌부리를 강하게 휘감았다.
그러자마자 은룡삭을 양손으로 꽉 쥐었고, 곧 은룡삭이 우리의 무게로 인해 쭉 늘어나기 시작했다.
찌이이이익-
손아귀가 부서져라 은룡삭을 꽉 쥐었다.
은룡삭은 탄성이 좋기에 다행히 버틸 만은 했다. 비룡수투 덕도 크다.
그렇듯 은룡삭에 의지하여 겨우 매달렸을 때쯤, 우리가 매달려 있는 절벽의 상단에서 폭음이 들렸다.
쾅! 콰과과광!
이번의 진동은 유독 심한 느낌이었는데, 고개를 들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절벽 면의 상당 부분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저 미친 또라이들이 정녕 이 공간을 무너뜨리려고 작정을 했단 말인가?
무너져 내리는 절벽 면은 우리의 머리 위쪽이다.
이대로 있다가는 낙석 때문에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화살도 아니고, 저렇듯 거대한 돌무더기들을 검으로 쳐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시 추락할 거야! 꽉 잡아!]
전음을 마치자마자 은룡삭에 주입했던 공력을 거뒀다.
돌부리를 감싸고 있던 은룡삭이 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