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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마교있다-285화 (285/416)

내 안에 마교있다 285

고개를 끄덕이는 남궁설을 향해 말했다.

“연고는 나중에 상황을 봐 가면서 바르는 게 좋을 것 같지?”

아까 말하는 투를 보니 귀한 약인 듯했다. 약을 발랐는데 물이 차올라 버리면 괜히 아깝기만 하다.

“네. 아무래도.”

그렇게 대꾸한 남궁설이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라도 완전히 물에 잠길 수도 있으니 그 전에 이 공간을 제대로 한번 조사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물을 피할 수 있는 틈새 같은 곳이 존재할 수도 있는 거니까. 제가 구석구석 조사해볼게요. 송 오라버니는 발목 다쳤으니까 그냥 앉아서 쉬고 계세요.”

말을 마친 남궁설이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구석 쪽으로 이동하여 그 근처를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저곳부터 시작해서 이 공간 전체를 조사하려는 모양이다.

행낭을 열어 야명주를 꺼냈다.

참고로 나나 남궁설이나, 어두운 공간에서도 어렵지 않게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수준의 무인들이다.

그래도 애초에 밝으면 굳이 시야를 밝히기 위해 따로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야명주를 꺼낸 것이다.

갑자기 사위가 밝아지자, 벽면 쪽을 조사하던 남궁설이 내게로 고개를 돌렸다.

야명주를 확인한 그녀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크기가 작은데도 그 정도 조도라니……, 그거면 웬만한 집 한 채 정도는 너끈히 사겠는데요?”

남궁세가에서도 야명주를 많이 봤기에 내 야명주가 최상품임을 금세 알아볼 수 있는 거겠지.

나는 빙그레 웃어 보인 후 그 야명주를 남궁설에게 가볍게 던졌다. 야명주를 이용해서 더 편하게 조사하라는 의미로 건넨 것이다.

남궁설이 가볍게 야명주를 낚아챘다.

그녀에게 말했다.

“나는 잠시 운기조식을 취할 거야. 공력이 바닥이거든.”

다행히 물이 빠르게 차오르고 있지는 않다. 그래서 이 틈에 운기를 취하려는 것이다.

공력은 실제로 바닥이다.

절벽 위에서 무음시에 대처하기 시작한 후로 남궁설을 구해서 이 동굴 안으로 들어오기까지, 나는 계속해서 천섬무를 상 단계, 최상 단계로 운용했다.

그렇다 보니 순간적으로 공력이 증발한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남궁설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결과적으로는 아까 조중렴 놈을 처치하고 나서 잠시나마 운기조식을 취했던 게 신의 한 수가 되었다.

그때 공력을 보충하지 않았으면 어찌 되었을지를 상상해 보면 등골이 서늘하다.

운기조식을 취하기 전에 족의와 신발을 신고 상의도 다시 입었다. 행낭도 메고 조중렴의 검도 어깨 뒤로 다시 멨다.

운기를 취하는 동안 물이 어느 정도 차오를 테니 미리 몸에 지닌 것이다.

그러는 동안 속으로는 구결을 읊었다. 지금까지는 구결을 읊을 새도 없었다.

통각이 심하니 이왕이면 잠력을 쌓은 후에 운기를 취하는 게 효율적이다. 그 잠력을 공력으로 변환하면 한 번의 운기로도 적지 않은 내공을 확보할 수 있다.

평소에 나는 운기조식을 취할 때 빠른 속도로 진기를 순환시키지만, 이번 운기조식은 되도록 천천히 진행했다.

천천히 진행하는 편이 치유 효율 향상에 더 좋다.

* * *

공간 내부에 대한 조사를 마친 남궁설은 야명주를 지닌 채 잠수하여 웅덩이 안쪽도 조사했다.

짧은 조사 후에 웅덩이를 빠져나온 남궁설이 조용히 물기를 짜내며 송유겸을 바라보았다.

송유겸은 운기조식을 취하느라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모습이었다. 표정이 평온한 것으로 보아 운기조식에 상당히 깊이 몰입해 있는 듯했다.

‘송 오라버니…….’

그의 평온한 표정을 보고 있는데도 마음이 아프다.

송유겸은 자신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고, 그러다가 저렇듯 크게 다쳤다.

게다가 지금은 살아서 벗어날 수 있을지조차 불확실한 곳에 갇혀 있는 상황이다.

장차 이 강호를 대표하는 고수로 성장해갈 저 대단한 인재가, 자신 때문에 이 지경이 된 것이다.

아까 절벽에 매달려서 화살을 쳐내고 있을 때, 실은 너무도 무서웠다.

누군가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송유겸이라도 그런 상황에서는 방법이 없을 것이라 여겼었다.

스스로 그 상황에서 벗어날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적들이 분명히 자신을 노리고 무음시를 날릴 텐데, 자신에게는 그 무음시를 쳐낼 능력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적의 무음시가 날아오는 순간에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죽게 된다는 생각에 무서웠고, 상황은 절망스러웠고, 소중한 이들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슬펐다.

한데 그러던 중에 갑자기 송유겸이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너무 놀라서인지, 아니면 송유겸의 얼굴을 봤기 때문인지, 무서웠던 기분은 그 순간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많이 무모해 보이기는 하나, 송유겸이 절대로 대책 없이 저런 행동을 할 사람이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는 송유겸에게만 집중하며 최선을 다해 그의 지시에 따랐다. 그게 바로 자신도 살고,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건 송유겸도 살 수 있는 길일 테니까.

추락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이 동굴 안에 들어오기까지, 송유겸은 그야말로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모든 과정에서 그는 본인이 다치는 걸 감수하면서까지 어떻게든 자신을 보호하려 했다.

그리고 그 결과, 자신은 이렇듯 무사한데 정작 송유겸은 큰 부상을 당했다.

이러니 어찌 가슴이 아프지 않을 수 있겠는가.

송유겸을 바라보던 남궁설이 고개를 들고 눈을 감으며 양 주먹을 꽉 쥐었다.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송유겸은 저렇듯 많이 다쳤으니 이제 자신이 더 열심히 움직이며 그를 보살펴야 하리라.

* * *

어떤 심법이든 운기조식에 제대로 몰입하면 정신집중 상태가 되고, 그 상태를 넘어 완전히 몰입하면 무아지경에 이른다.

운기를 취하기 시작한 나는 금세 정신집중 상태에 이르렀다.

정신집중 상태에 이르면 오감이 주변 상황을 제대로 전달해주지 않는다. 정신이 내면세계에 집중하고 있는 탓에 다른 것들에는 신경을 기울이지 않게 된다고 할까.

그런데도 물이 서서히 차오르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인지할 수 있었다. 차가운 물이 점점 내 몸을 타고 차오르는데 인지하지 못할 수가 없었다.

참고로 원래 내가 운기를 취하기 위해 앉았던 위치는 물에 잠기지 않은 부분이었다.

그런데 한 차례의 운기조식을 끝내고 눈을 떠보니 물이 내 명치 높이까지 차올라 있다.

아직 가부좌를 틀고 있는 상태에서 명치 높이이니 일어서면 무릎 어림일 것이다.

가만히 살펴보니 수위는 여전히 상승 중이었다.

남궁설은 내 근처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 그녀도 운기조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전신의 의복이 물에 젖어 있다.

아마도 웅덩이 안까지 조사하러 들어갔었던 모양이다.

조사를 마친 후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느니 운기를 취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그녀에게도 당연히 운기조식이 필요했을 것이다.

남궁설도 나처럼 가죽 행낭을 멘 채로 운기를 취하는 중인데, 야명주는 행낭 측면의 개방형 주머니에 들어가서 동굴의 천장 쪽을 비추는 중이다.

내 몸 상태는 운기조식을 취하기 전과 비교하면 확실히 나아졌다.

물론, 애초에 부상 자체가 심했었기에 어느 정도의 통각은 여전히 남아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남궁설의 운기가 끝날 때까지는 계속 구결을 읊고 있으면 될 것 같다.

잠력을 쌓아놔서 손해 볼 일은 없다.

일각 가까이 지난 시점에 남궁설이 운기를 마치고 눈을 떴다.

그녀는 눈을 뜨자마자 잠시 수위를 확인하는 듯하더니 곧장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래 기다렸어요?”

“별로.”

남궁설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바로 입을 열었다.

“아까, 조사하는 과정에서 의심되는 곳들은 검으로 푹푹 찔러보기까지 했는데, 딱히 물을 피할 수 있을 만한 틈새나 탈출구 등은 발견할 수 없었어요.”

나도 그럴 것이라 예상했었다.

남궁설이 웅덩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남은 곳은 저 웅덩이뿐이라서 야명주를 가지고 살짝 잠수해서 살펴봤어요. 들어가 보니 밖에서 보는 것보다 중심부가 훨씬 깊더라구요. 어두운 구멍이 아래로 계속 이어지는 모양새였는데, 일단 제가 눈으로 확인한 부분까지는 사람이 헤엄쳐서 통과하고도 남을 정도로 넓었어요.”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기에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남궁설이 말을 이었다.

“헤엄쳐서 더 들어가 볼까 하다가 그냥 나왔어요. 혼자서 너무 깊은 물 속까지 조사하는 건 위험하기도 하고, 마침 저도 체내에 공력이 별로 안 남은 상태였거든요. 물이 더 차면 운기를 취하기도 어려울 테니 상황이 될 때 공력을 조금이라도 회복해둘 필요가 있었죠.”

“잘했어.”

“웅덩이의 아래쪽에서 물이 솟아 나오는 걸 보면 저 웅덩이 중심부의 구멍은 이 근처의 지하 물길과 연결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겠죠?”

“그렇겠지.”

“그 수로가 사람이 통과할 수 있을 정도의 넓이만 된다면,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며 조사해 볼 가치는 충분하다고 여겨져요. 통과하기에 다소 좁은 지점이 있다면 검으로 깎아가면서라도 전진해보는 거죠. 이곳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멍하니 있을 수는 없잖아요.”

“내 생각도 그래. 근래 이 지역에 비가 내리지 않았으니 물이 수로를 가득 메운 채로 흐르는 상태는 아닐 거야. 오히려 수로의 수위는 낮은 편이겠지. 그런 상태라면 수로를 통해 이동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해.”

내 대꾸에 남궁설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수로에 진입하기 전까지 한동안은 잠수해서 헤엄쳐야 할 거예요. 송 오라버니는 어깨와 발목을 다쳤으니 제가 앞에서 헤엄치며 끌어줄게요. 그러려면 끈 같은 게 필요한데, 아까 추락할 때 송 오라버니가 썼던 그 끈을 이용하면 될 것 같아요. 그걸로 한쪽은 내 허리를 묶고, 다른 한쪽은 송 오라버니의 허리를 묶는 거죠.”

솔직히 이 몸 상태로는 제대로 헤엄을 칠 수가 없다. 한쪽 팔과 한쪽 다리밖에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은 남궁설의 말대로 해야 한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네. 그런데 경로가 전체적으로 물살을 거슬러 가는 모양새라, 헤엄쳐서 나를 끌고 가는 게 생각보다 훨씬 힘들 수 있어. 아무리 내공을 이용해서 헤엄친다고 해도.”

그러자 남궁설이 자신감 깃든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제 수영 실력이라면 걱정 안 해도 돼요. 제 별명이 이래 봬도 창궁지(蒼穹池)의 인어거든요.”

“창궁지라면 분명…….”

“네. 우리 세가의 내원에 있는 커다란 연못이에요.”

가본 적은 없지만 정보 문서를 통해 알고 있다.

인공 연못이다.

참고로 창궁지의 중앙에 정자가 하나 세워져 있는데, 그 정자의 이름은 무애정(無涯亭)이다.

“오오, 수영 좀 하나 보네. 세가 사람들이 붙여준 별명이야?”

“아뇨. 큰 오라버니하고 작은 오라버니가요.”

이러면 신뢰도에 큰 하자가 생긴다.

남궁찬과 남궁묵이 뭔들 칭찬을 안 했겠느냔 말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늦둥이 누이인데.

남궁설이 눈매를 좁히며 말했다.

“뭐예요? 그 못 미더워하는 표정은?”

생각이 나도 모르게 표정에 드러났나 보다.

“아냐, 아냐. 그럴 리가. 믿지. 당연히 믿지. 암. 아하하하.”

딱 잡아뗐는데, 남궁설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흘겨보고 있다.

이에 나는 곧바로 허리춤의 상의를 살짝 들어 올린 후 그 안에 묶어놨던 은룡삭의 매듭을 풀었다.

“뭐, 뭐 하는 거예요?”

남궁설이 눈을 휘둥그레 뜬 채로 내 얼굴과 내 허리춤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다.

처음에는 쟤가 왜 저러나 싶었는데 잠깐 생각해 보니 금방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대로 은룡삭을 풀어서 한 손에 쥐며 말했다.

“이거 허리띠 아니야. 설 매가 달라고 했던 그 끈이라고. 봐, 허리띠는 여기 제대로 묶여 있잖아.”

“앗, 아…….”

“아니,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거야? 이런 상황 속에서 내가 바지춤 내리고 이상한 짓이라도 할까 봐?”

내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이며 그렇게 묻자 남궁설이 볼을 붉히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씩 웃으며 은룡삭을 얇은 가닥으로 풀어 길게 만들었다.

이후에는 은룡삭의 한쪽 끝을 내 허리에 묶은 후, 다른 쪽 끝을 남궁설에게 내밀었다.

남궁설이 은룡삭을 쥐기 위해 손을 내밀며 말했다.

“아까 겪어보니까 이 끈, 정말 신기하고 대단하던데……, 엄마야!”

말하면서 은룡삭을 쥔 남궁설이 화들짝 놀라며 손에서 은룡삭을 내팽개쳤다.

푸히히히히!

저럴 줄 알았다.

은룡삭 특유의 꿈틀거리는 느낌 때문에 저러는 것이다.

“뭐뭐, 뭐예요, 그거? 분명히 손에서 꿈틀거렸는데…….”

“이게 기보(奇寶)라서 그래. 나도 이걸 처음 만졌을 때는 설 매보다 더 놀랐었어. 처음에 꿈틀거리는 느낌 외에는 별거 없으니까 안심해도 돼.”

남궁설이 침을 꼴깍 삼키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물에 뜬 은룡삭을 다시 쥐었다.

쥐는 순간에 손을 살짝 움찔하는 듯했으나, 그녀는 이내 은룡삭의 반대편 끝부분을 잡고 자신의 허리에 묶었다.

행낭의 방수포 주머니에서 빠르게 벽곡단 두 알과 육포 두 조각을 꺼내어 반을 남궁설에게 건넸다.

허기를 달랠 수 있을 정도의 양이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양은 아니다. 이왕이면 허기는 달래고 출발하는 게 나을 듯해서 건넨 것이다.

남궁설이 육포를 씹으며 말했다.

“보아하니 벽곡단하고 육포, 의외로 많이 남아 있네요?”

“애초에 잠룡관에서 출발할 때부터 많이 챙겨왔거든.”

남궁설이 조금은 안도하는 느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에게 말했다.

“설 매, 물속에서 너무 무리해서 숨을 참아가며 전진하지는 마. 무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돌아와서 호흡을 정리하고 다시 가는 거야. 알았지?”

“네, 알았어요.”

“야명주는 설 매가 지니고 있어. 어두운 물속에서 시야 확보를 하는 게 생각보다 어려울 수 있으니 품 안에 지니고 있다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주변을 확인하도록 해.”

“그렇게 할게요.”

짧은 식사를 완료한 우리는 곧 웅덩이 중심부의 구멍 안으로 잠수하여 나아가기 시작했다.

웅덩이 중심부의 구멍은 수중 통로의 형태로 급경사를 이루며 아래로 향했다.

물이 통로 아래에서 뿜어나오고 있으니 단순히 헤엄쳐서 하강하는 건 쉽지 않을 듯하다.

남궁설도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는 만큼 천근추의 수법을 이용하여 빠르게 하강하고 있다.

나도 적당히 천근추의 수법을 펼치며 남궁설의 하강 속도에 맞춰줬다.

수중 통로의 경사는 점점 완만해지더니 이내 평평해졌고, 그 직후에는 굴곡을 이루며 위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우리 ‘창궁지의 인어’께서는 경이로운 수영 실력을 보여주는 중이다.

그야말로 쭉쭉 나아가고 있다.

물의 흐름을 거스르는 와중에, 가뜩이나 나까지 끌면서 저렇듯 쭉쭉 전진하는 건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보아하니 남궁설은 자세가 아주 좋고 몸 전체의 움직임도 부드러웠다. 물살을 가르는 재능을 타고나기라도 한 듯 전체적인 움직임이 매우 자연스러웠다.

나도 수영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는데, 남궁설에게는 못 미칠 것 같다.

이후에도 남궁설은 악착같은 느낌으로 계속 전진했고, 나도 어떻게든 팔다리를 저으며 남궁설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노력했다.

어깨와 발목에서 적잖은 통증이 느껴졌기에, 팔다리를 젓는 동안에도 속으로는 계속해서 구결을 읊었다.

남궁설은 위로 상승하는 구간에서도 어렵지 않게 나아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턴가 위쪽으로 뚫린 공간이 보이기 시작했다. 벽면이 아닌 수면이다.

남궁설이 더 힘차게 헤엄치더니 수면 위로 먼저 머리를 내밀었고, 이어서 나도 수면 위로 머리를 내밀 수 있었다.

남궁설이 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들렸다.

“하아, 하아, 하아, 하아…….”

온 힘을 다해 헤엄을 치다 보니 숨이 가쁜 모양이다.

그녀에게 끌려서 따라온 나는 그다지 숨이 가쁘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내공 경지가 높다 보니 호흡이 덜 달리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떠오른 곳은 작은 웅덩이의 한가운데다.

예상했던 대로 지하수로의 한 구역인 듯한데, 상류에서 개울물이 흘러와 이곳 작은 웅덩이에 머물렀다가 하류로 흘러가고 있다.

상류와 하류 쪽을 유심히 살펴보니 예상보다는 수로가 훨씬 컸다. 저 정도면 충분히 서서 이동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이곳도 전체적으로 바위 지형이다.

우리는 웅덩이의 가장자리로 이동하여 물을 벗어났다.

물 밖의 평평한 바위에 앉아서 남궁설에게 말했다.

“수고 많았어.”

“무슨 그 정도를 가지고 수고는요.”

“그런데 설 매 수영 정말 잘하더라. 진심으로 감탄했어. 창궁지의 인어, 인정.”

남궁설이 쑥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아무튼, 제법 커 보이는 수로라서 다행이네요.”

“비가 내려서 물이 불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안전할 거야.”

“결국, 이 물줄기에서 벗어나서 확실하게 안전한 공간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네요. 언제 비가 내릴지 모르는 거니까.”

“그렇지. 한동안은 이 지하 공간을 벗어날 수 없을 테니, 일단은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머물 만한 곳을 찾아보자. 안전하게 머무를 수 있는 공간부터 확보한 후에 탈출로를 찾든지 해야겠지.”

내가 대꾸하자 남궁설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어차피 당장 비가 내릴 날씨는 아니었어요. 서둘러야 할 상황은 아니니까, 이곳에 서너 시진이라도 머물면서 먼저 송 오라버니의 부상부터 돌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연고를 바른 후에 꾸준히 운기조식을 취하면 어느 정도는 호전될 거예요.”

나는 연고를 바른 후에 연속으로 세 차례의 운기조식을 취했고, 그 과정에서 그간 쌓아뒀던 잠력을 모두 내공으로 변환시킬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남궁설이 호법을 서줬다.

이 수로에 어떤 생물이 서식하고 있을지 모르며, 그런 것들이 우리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전의 공간에서는 사정상 운기조식이 겹칠 수밖에 없었지만, 원래는 이렇듯 호법을 서가며 안전하게 운기를 취하는 게 정석이다.

내가 세 번 연속으로 운기를 취한 후에는 남궁설이 두 번 연속으로 운기를 취했다.

그 후부터 우리는 서로 번갈아 가며 두 차례씩 운기조식을 취하고 호법 서주기를 반복했다.

어깨와 발목의 부상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호전되었다.

이 시점에서 중요한 건 발목의 상태인데, 조심스럽게 걸어 보니 아까처럼 통증이 심하지는 않았다. 이 정도 통증이라면 참으며 걸을 만하다.

이는 현재 내 회회심공의 경지를 크게 넘어선 회복력이다.

당연히 남궁설이 발라준 연고의 역할이 컸을 것이다.

귀한 약이라더니 과연 대단한 효능이다.

덕분에 우리는 두 시진 반 만에 그 지점을 벗어나 상류 방향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남궁설은 이번에도 야명주를 들고 본인이 앞장섰다.

수로는 구역 대부분이 우리가 통과하기에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컸다.

까마득히 오랜 세월 동안 물줄기에 의해 침식 작용이 일어난 지하수로인 모양이다.

우리는 적당한 지점을 발견할 때마다 틈틈이 쉬어가며 이동했다.

계속 이동하다 보니 누워서 쉴 만한 공간도 있어, 그곳에서는 번갈아 가며 반 시진씩 쪽잠도 잤다.

사실 우리에게는 더 긴 수면이 필요한데, 환경 자체가 오래 잘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그나마 우리 둘 다 어느 정도 경지가 되는 무인들인 만큼, 수면이 부족해도 꽤 오래 버틸 수가 있다.

웅덩이를 출발하여 하루 남짓 수로를 이동했는데도 우리가 머물 만한 공간을 찾지 못했다.

자주 쉬어가며 이동했다고는 해도, 이쯤 되니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피로가 몰려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물론 나는 극한 상황을 많이 겪어 봤기에 이 상태로도 충분히 버틸 수 있지만, 남궁설은 다를 것이다.

그녀는 이미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이를 악물고 버티는 느낌이다.

그런데도 힘들다는 말 한마디 없이 묵묵히 걸음을 옮기고 있으니 대견스러울 뿐이다.

어쨌거나 안심하고 머물 만한 지점을 찾은 후에나 푹 쉴 계획이었는데, 이렇게 되면 그 전에 한차례 푹 좀 쉬어줘야 할 것 같다.

환경이 이렇다 보니 오래 쉬어도 체력이 많이 회복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남궁설에게 말했다.

“앞쪽에 적당한 지점이 나오면 이번에는 좀 오래 쉬었다 가자.”

남궁설이 지친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에 반 각 정도를 더 이동했을 때쯤, 우리는 수로의 우측면 위쪽에서 떨어지는 작은 폭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대단한 폭포는 아니다.

내 키의 두 배 정도 되는 높이에서 가느다란 물줄기가 떨어져 내리고 있는 정도다.

그 물줄기가 수로와 합류하며 하류로 흘러가고 있다.

작은 폭포가 시작되는 지점에 제법 커다란 틈새가 보인다.

남궁설이 그 틈새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제가 잠깐 올라가서 저 위를 한번 살펴볼게요.”

발목 부상인 나를 배려해서 본인이 나서겠다고 하는 것이다.

“알았어. 조심하고.”

“네.”

대꾸한 남궁설이 훌쩍 도약하더니 틈새의 입구 부분에 착지했다.

이후에 틈새의 안쪽을 잠시 살피던 그녀가 이윽고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틈새가 안쪽으로 제법 깊게 이어지는 것 같아요. 통로도 좁지 않아요. 탐사해 볼 가치가 있어 보여요.”

남궁설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에 나도 즉시 오른발에 힘을 주어 바닥을 박찼다.

“제가 앞장설게요.”

남궁설이 그렇게 말하더니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를 따라 걸음을 옮기는 중에 왼쪽 상박에서 소비도 한 자루를 빼서 오른손에 쥐었다. 혹시 모를 위험에 즉각 대처하기 위함이다.

틈새의 통로는 위쪽으로 향하며 굽어졌다.

작은 물줄기가 통로를 따라 흘러 내려오고 있다.

계속해서 통로를 따라 몇 걸음을 더 옮겼을 때쯤, 우리는 거의 동시에 발걸음을 멈췄다.

굽어지는 통로의 앞쪽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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