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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마교있다-286화 (286/416)

내 안에 마교있다 286

남궁설이 나를 돌아보며 전음으로 물었다.

[저거……, 아무리 봐도 야명주 빛 같은데요? 그렇다면 이곳도 혈교 측의 시설이라고 봐야 할까요?]

내가 보기에도 지금 저 안쪽에서 새어 나오고 있는 빛은 야명주의 빛이다.

뭘까.

왜 이런 곳에서 야명주의 빛이 새어 나오고 있는 걸까.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다.

그래도 혈교 측의 시설일 것 같지는 않다.

상식적으로 그들이 굳이 까마득한 벼랑 아래에 이런 시설을 만들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평범한 벼랑도 아니고, 추락해서 바닥에 닿기까지 한참이나 걸릴 정도로 높은 벼랑이다. 아무리 무인이라도 그 까마득한 벼랑을 타고 내려왔다가 올라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혹여 지하수로의 상류 쪽에서 이곳으로 쉽게 통하는 경로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럴 확률도 극도로 낮다.

물론 혈교의 시설까지는 아니더라도 혈교와 연관된 장소일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그 가능성도 매우 낮다.

애초에 이곳은 찾는 것 자체가 어려운 장소라, 사람이 드나들 법한 곳이 아니다. 까마득한 벼랑 아래로 내려와서, 수중 동굴을 통과하여, 지하수로를 따라 한참이나 이동해야만 도착할 수 있는 장소인 것이다.

실제로 고생하며 여기까지 오는 모든 과정에서 인공적인 흔적은 전혀 발견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더 의아하다.

누가 왜 이런 곳에 야명주를 설치해 둔 걸까.

남궁설에게 대꾸했다.

[안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지는 않아. 그래도 혹시 모르니 내가 은잠술로 다가가서 먼저 한번 살펴볼게. 여기에서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알았어요. 부상도 있으니 조심해요.]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바로 은잠술을 펼쳤다.

그러자 남궁설이 나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순간적으로 내 기척이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버렸으니 저러는 것이다.

그녀에게 미소를 보인 후 통로의 안쪽을 향해 나아갔다.

누군가의 손길이 닿은 곳이라면 이제부터는 함정에도 신경 써야 한다.

이동하는 중에도 안쪽의 기척에 집중했는데, 역시나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고 있다.

천천히 전진하며 바닥과 벽면도 유심히 살폈으나 함정이나 기관 장치로 의심되는 것들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안쪽은 그저 고요할 뿐이다.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더 많은 빛이 새어 나오고 있다.

이쯤 되니 의심의 여지가 없어졌다.

이건 확실히 야명주의 빛이다.

마침내 굽어지던 통로가 끝나고 넓은 공간의 입구로 추정되는 지점에 이르렀기에, 나는 자세를 낮추며 살금살금 다가갔다.

살짝 튀어나온 입구 쪽 벽면의 음영에 몸을 숨기고는 고개를 슬그머니 내밀었다.

그렇게 공간 안쪽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나는 경악했다.

안쪽 공간은 역시나 바위 동굴이었고, 상당히 컸다.

천장은 내 키의 네댓 배는 되어 보일 정도로 높았으며, 면적은 소규모 실내 연무장을 연상시킬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

바닥은 대체로 평평한 가운데 이곳저곳에 커다란 바위들이 불쑥불쑥 솟아 있었다. 불쑥 튀어나온 바위들은 천장에도, 측면의 벽면에도 많았다.

내가 경악한 이유는 그 튀어나온 바위 중에서 몇 개가 야명주처럼 환한 빛을 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거대한 바위들이 야명주와 같은 빛을 발하고 있는 광경이 그야말로 경이롭다.

저 바위들은 야명석이다.

우리가 쓰는 야명주들은 모두 야명석을 가공하여 만든 것들이다.

야명석은 대부분 바위 같은 데에 박혀 있는 것을 채광하는데, 그렇다 보니 원석 자체로는 크기가 다양하다. 당연하게도 큰 것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천마신교에서도 커다란 야명석을 본 적이 있었다.

쌀가마니 두어 개를 합쳐 놓은 크기였기에 구경하면서 계속 탄성을 내뱉었던 기억이 난다.

한데 천마신교에서 봤던 그 야명석도 이곳에 있는 야명석들의 평균 크기에 비하면 반의반도 되지 않는다.

이러니 내가 경이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야명주의 조도는 기본적으로 원석인 야명석의 품질에 따라 좌우될 수밖에 없다.

가까이 다가가서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는 있겠지만, 저 공간 안에 있는 거대한 야명석들은 품질 또한 예사롭지 않은 듯하다.

아마도 이 공간을 발견한 건 유사 이래 우리가 처음일 것이다.

만약 우리 이전에 누군가가 이 공간을 발견했었다면 저 야명석들이 저렇듯 멀쩡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남궁설을 데리고 와서 공간을 보여줬다.

“세, 세에상에……!”

그녀의 예쁜 눈동자가 당장에라도 튀어나올 듯했다.

예상했던 반응에 미소를 지어 보이자 그녀가 물었다.

“저, 저게 그러니까……, 야, 야명석인 거죠?”

“응. 맞아.”

“야명석이라는 게 원래 저렇게 커요?”

남궁설은 야명석을 보는 게 처음인 모양이다. 말하는 투를 보니 야명석 조각조차 본 적이 없는 듯하다.

“글쎄. 나도 도감 같은 데서나 봤지 이렇듯 직접 보는 건 처음이라서. 내가 봤던 여러 자료에도 이 정도 크기의 야명석이 존재한다는 내용은 없었어.”

물론 천마신교에서 야명석을 봤었지만, 나도 그냥 처음 본 것처럼 대꾸해줬다.

남궁설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여전히 놀라 있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것들이 지니는 가치가 어떤지를 떠나서, 이 광경 자체가 너무나도 경이로워요.”

나도 같은 생각이기에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우리는 이후에도 한동안 조용히 야명석을 바라보았다.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던 남궁설이 다시 입을 열었다.

“처음에 그 환영진으로 숨겨진 입구를 통해 진입했을 때부터 왠지 예사롭지 않은 동굴 같긴 했어요. 아니나 다를까 이 동굴은 규모부터가 남달랐고, 깊은 곳으로 진입하면 진입할수록 범상치 않은 느낌은 더욱 짙어졌죠. 그러더니 결국에는 이런 곳을 발견하게 되네요.”

“그러게.”

“어쩌면 이것 외에 또 다른 신비로운 것들을 보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 동굴에서는.”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고개를 끄덕여 주자 남궁설이 만면에 기대감 가득한 미소를 보이며 물었다.

“문득 궁금해져서 그러는데 이 정도면 우리, 돈벼락을 얼마나 맞은 거예요?”

“글쎄? 저거 전부면 대충 천하 부호 서열에서 백 위 안에는 무조건 들어가지 않을까? 저것의 반만 가지고도 안휘의 부호 서열에서는 열 손가락 안에 꼽힐걸? 강서에서도 비슷할 거고.”

“우와……!”

저 예쁜 눈동자가 또다시 튀어나올 것만 같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남궁설이니 그나마 저 정도 반응이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이었다면 지금쯤 졸도했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어마어마한 사건이다.

남궁설이 씩 웃으며 내게 물었다.

“반띵?”

“푸하하하!”

일전에 남궁찬도 저 ‘반띵’이라는 표현을 쓰더니, 남궁설도 저 표현을 쓰고 있다. 그게 생각나서 웃음이 나온 것이다. 아마도 저 집 식구들이 자주 쓰는 표현인 모양이다.

남궁설에게 대꾸했다.

“당연하지.”

원하는 대답이었을 텐데 남궁설은 의외로 고개를 젓고 있다.

“농담으로 해 본 말이에요. 저건 다 송 오라버니 거예요.”

“엥? 왜……?”

“나는 송 오라버니가 아니었으면 죽었을 목숨이에요. 그때 죽었다면 저런 게 다 무슨 소용이었겠어요. 나, 저런 거 하나도 없어도 돼요. 이렇듯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족해요.”

쪼끄만 게 기특한 소릴 하고 있지만, 그래도 저건 아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엄연히 우리 둘이서 함께 발견한 거지. 여러 과정이 얽히고설켜서 지금에 이른 것이지, 애초에 설 매를 돕기 위해 뛰어내리지 않았다면 내가 이곳을 발견할 일이 있었겠어?”

남궁설이 절벽에 위태롭게 매달리지 않았다면 내가 벼랑길에서 뛰어내릴 일도 없었다.

낙석이 없었다면 내가 벼랑 바닥에 있는 바위 틈새의 공간으로 피할 일도 없었고, 우리가 그 안에 갇힐 일도 없었다.

만약 그 바위 틈새의 공간에 갇히지 않았다면 탈출구를 찾기 위해 웅덩이 속을 조사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냥 입구로 나가서 다시금 벼랑을 타고 올라갈 생각을 했을 테니까.

그렇듯 순간마다 많은 조건이 연결되고 더해져서 현재의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래도…….”

“그래도는 무슨 그래도야. 결론, 반띵. 정리 끝.”

내가 단호한 어조로 말을 마치자 남궁설이 미소를 지었다. 난감함과 고마움이 공존하는 미소다.

사실 이건 나와 남궁설의 관계를 넘어, 나와 남궁세가의 관계까지 생각하고 접근해야 할 문제다. 결국에는 이 일을 남궁세가에서도 알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근본이 상식적이고 공정한 사람으로 인식되어야 앞으로도 남궁세가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을 수 있다.

이 강호에서, 특히 백도에서, 남궁세가의 전폭적인 지지만큼 큰 힘이 또 없다.

“어쨌거나 머무르기에 딱 적당한 공간인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누워서 쉴 만한 평평한 구역이 있고, 온도가 약간 서늘한 느낌은 있지만 우리는 내공 경지가 높은 편이니 별로 문제가 되지는 않을 거고. 이 정도면 뭐, 지하수로에 비하면 궁전이나 다름없죠.”

“내 생각도 그래.”

“근처에 물이 많으니 물 걱정도 안 해도 되구요. 물론 물에 독성이 있는지는 확실히 조사를 해 봐야겠죠. 딱히 그래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는 현재 공간의 입구 쪽에 서 있다.

그리고 입구에서 멀지 않은 벽면 근처에 옹달샘이 있다.

그 옹달샘으로부터 시작되는 작은 물줄기가 벽면을 타고 이어져서 우리가 방금 들어온 통로로 흘러나간다. 통로로 흘러나간 그 작은 물줄기가 아까 봤던 작은 폭포가 되는 것이다.

그 옹달샘이 있는 데다가 지하수로의 물줄기도 멀지 않으니, 마실 물 걱정이나 씻을 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다.

“피곤하긴 해도 우선 이 공간의 구석구석을 자세히 한번 살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상당히 오랜 기간 머물러야 할 테니까요.”

“그래야겠지.”

이 공간에 위험 요소가 없는지를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해로운 생물 따위가 존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제가 옹달샘 물의 독성도 조사할 겸, 이 입구를 기준으로 오른쪽을 살펴볼게요. 송 오라버니가 왼쪽을 살펴봐요.”

“알았어.”

우리는 곧 양쪽으로 나뉘어 공간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야명석들을 가까운 곳에서 자세히 관찰했다.

내가 야명석 가공의 전문가는 아니나, 한눈에도 이것들이 최상품이라는 것 정도는 알겠다. 야명석 자체에 잡티가 별로 안 보이기 때문이다.

조도가 높은 데다가 잡티가 별로 없으니 야명석의 가치는 더 상승할 것이다.

그렇듯 야명석 바위들을 살피던 중, 입구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구석 쪽 공간에서 신기한 걸 발견할 수 있었다.

버섯인데, 전신이 눈처럼 새하얀 색깔의 버섯이다. 딱 봐도 예사롭지가 않다. 그런 버섯들이 구석 공간 가득 자라나 있다.

자세히 보니 버섯의 깨끗한 백색 몸체가 은은한 은빛 서광을 발하고 있다.

예전에 봤던 기화요초 관련 자료에서 이런 특징을 가진 버섯에 대해 읽은 적이 있다.

잠시 기억을 더듬어본 끝에 어렵지 않게 이 버섯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은설영지(銀雪靈芝).

새하얀 색깔과 은빛 서광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적은 양을 먹어도 큰 포만감을 느낄 수 있으며, 복용 후에 운기조식을 취하면 공력 증진의 효과를 볼 수 있는 버섯이다.

버섯들이 하나같이 커다랗고 개체도 많아서 저 정도 양이면 내공이 적잖이 상승할 것 같다. 아울러 식량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다.

공력이 상승한다는 생각을 하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거대한 야명석 바위들을 발견한 것보다 기분이 더 좋다.

은설영지를 보여주기 위해 남궁설을 부르려는데, 그녀의 목소리가 먼저 들렸다.

“송 오라버니, 송 오라버니!”

“어? 왜?”

“이쪽으로 좀 와 봐요.”

목소리가 다급한 것으로 보아 남궁설도 뭔가를 발견한 모양이다.

저쪽 구석에도 은설영지가 있는 건가?

그러면 더 좋다. 다다익선이다.

이윽고 야명석 바위를 돌아 그녀가 있는 곳에 도착한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지 않을 수 없었다.

버섯은 아니지만 범상치 않은 모양새의 식물이 구석 쪽 넓은 공간에 수북이 자라나 있었기 때문이다.

키가 한 뼘 반 정도 되는 식물인데, 연녹색의 줄기에 세 개의 잎이 달려 있다. 그런데 각 잎의 색이 다르다. 각각 파란색, 빨간색, 보라색이다.

게다가 줄기의 상단에는 연노란색의 탐스러운 과실이 달려 있다.

“이거 영초 도감에서 본 적이 있는데……. 이름이 삼령천선초(三靈天仙草)였던가……?”

남궁설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맞다. 저 이름이었다.

삼령천선초 또한 복용 시 공력 증진의 효과를 볼 수 있다. 과실부터 잎, 줄기, 뿌리까지 버릴 게 없는 영초다.

공력 상승치로 따지면 내가 먹었던 백년음양선과 쪽이 압도적으로 높다. 둘을 비교하면 삼령천선초 쪽이 초라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삼령천선초는 군락을 이루어 자라기에 개체 수가 많다. 당장 이곳에 있는 삼령천선초도 수십 포기다.

이 공간 안에 있는 은설영지와 삼령천선초는 식량 대용이기도 하기에 소량씩을 장기적으로 섭취하게 될 것이다.

남궁설과 둘이서 반씩 섭취할 텐데, 한 사람의 섭취량을 다 합하면 백년음양선과보다 더 많은 공력을 얻게 될 가능성이 크다.

최절정에 이르기까지는 상당히 오랜 세월이 걸리리라 예상했는데, 이러한 계기로 내공이 급속도로 상승하면 그 시간도 크게 단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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