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안에 마교있다-292화 (292/416)

내 안에 마교있다 292

상류 쪽 탐사를 시작했다.

우리는 웅덩이가 나오면 깊은 웅덩이인지 살피고, 깊은 웅덩이일 경우에는 입수하여 수중 통로가 있는지까지도 꼼꼼히 확인하며 나아갔다.

갑자기 수로의 물이 불어날 일에 대비하여 대피 지점들도 꾸준히 눈에 담았다. 우리가 정한 대피 지점들은 주로 공간이 좁았다가 갑자기 넓어지는 지점이거나, 천장이 낮았다가 갑자기 높아지는 지점들이었다.

아무리 절정고수라도 갑자기 물이 불어나면 위험해지는 건 당연하다. 그렇기에 위쪽에서 물소리가 격렬하게 진동하는 듯하면 즉시 경공을 펼쳐 그런 지점으로 대피할 요량이었다.

혹여 물살에 떠내려가더라도 대피 지점 쪽에서 단검 같은 걸 박아 넣고 일단 멈추면 그 후에는 거센 물살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물론 그 경우에는 여기저기 많이 다치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절정고수들이니 기운을 일으키면 어느 정도는 몸을 보호할 수 있다.

지하수로는 상류로 올라갈수록 전체적으로 점점 좁아지며 편하게 통과하기 어려운 지점들이 자주 나왔다.

우리는 잠깐씩 좁아지는 구간들은 기어서라도 통과했고, 그보다 더 좁은 구간은 불룩 튀어나온 암석들을 조금씩 깎아내 가며 전진했다.

우리의 검기가 바위를 무 자르듯 자를 수는 없어도, 불룩 튀어나온 암석을 조금씩 깎아내는 정도는 가능하다. 물론 공력 소모가 적지 않았지만, 동굴 탐사는 우리의 생존과 연결되는 사안인 만큼,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 봐야 했다.

그러나 전진할수록 좁고 험한 지점들이 너무 많아져, 우리는 결국 상류 쪽 탐사를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하류 쪽 탐사에 나섰다.

상황에 따라 멀리까지 가게 될 수도 있는 만큼, 식량은 육포 위주로 넉넉히 챙겼다.

만에 하나 탈출구를 찾는다고 해도 일단은 다시 야명석 동굴로 돌아와야 한다. 아직 은설영지와 삼령천선초가 적잖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수중 통로가 있는 웅덩이까지는 우리가 이전에 오갔던 길이니 빠르게 지나쳤고, 그 너머의 지점부터 제대로 탐사해 갔다.

상류 쪽 탐사에 실패한 상황이라, 우리는 하류 쪽 탐사에 더욱 집중했다.

경공 대신 속보로 이동하며, 음영에 가려진 틈새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주변을 주의 깊게 살폈다.

하류 쪽의 경사는 상류 쪽과 비교해서 대체로 완만했으며, 수량은 내려갈수록 조금씩 증가했다.

상류 쪽은 가면 갈수록 통로가 전체적으로 좁아졌지만, 하류 쪽은 그렇지 않았다. 종종 좁은 지점들이 나오기는 했으나, 상류 쪽에 비하면 대체로 통과하기가 훨씬 수월했다.

이동하면서 보니 물길은 작은 폭포의 형태로 떨어졌다가 다시 흐르기도 했고, 매우 넓게 고였다가 방향을 바꿔서 구불구불 흘러나가기도 했다.

하류 쪽 탐사를 시작한 후로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났으나, 지하수로는 여전히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정확한 시간을 가늠할 수가 없기에 짐작에 불과하긴 하나, 내 생각에 적어도 나흘 넘게 이동한 듯하다.

중간에 너무 멀리 왔음을 깨닫고 야명석 동굴로 복귀했다가 나중에 다시 탐사를 이어갈지에 대해 고민하긴 했었다. 그러나 이왕 온 걸음, 조금만 더 가 보자고 했던 게 계속 이어지며 이렇게 된 것이다.

사실, 우리의 위치가 지하 깊은 곳이기는 해도 고도로만 따지면 보통의 평지보다 높은 곳일 가능성이 크다. 애초에 혈교의 거점 자체가 고산지대 중에서도 가장 높은 산지에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하수로의 하류는 전체적으로 매우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흐르고 있다.

조건이 이렇다 보니 지하수로의 끝이 지상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생겼고, 그래서 야명석 동굴에서 많이 멀어졌음에도 탐사를 계속 이어가는 쪽으로 뜻을 모았던 것이다.

그 후로 어림잡아 하루가량 더 흐른 것 같다.

지하수로는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이쯤 되니 지하수로가 지상으로 연결되는 게 아니라 지하로만 계속 이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자꾸 들었다.

곧잘 재잘대던 남궁설은 말수가 줄어든 지 오래인데, 그녀도 정신적으로 제법 지친 듯하다.

“설 매, 슬슬 돌아갈까? 꼭 이번에 끝장을 볼 필요는 없어. 지금까지 탐사를 끝낸 구간은 다음에 올 때 빠르게 지나칠 수 있으니, 돌아가서 제대로 휴식을 취한 후에 다시 와도 돼. 은설영지와 삼령천선초로 기운도 좀 보충하고.”

사실 나는 더 전진해도 상관없다. 남궁설을 배려해서 물어본 것뿐이다.

“나를 배려해서 물어보는 거라면 굳이 그럴 필요 없어요.”

오랜 기간 같이 지내서 그런지, 얘가 요새 내 의중을 제법 잘 읽는다.

“식량을 최대한 아껴 먹으면서 되도록 멀리까지 가 보고 싶어요. 이렇게나 멀리까지 왔으니 출구가 더 가까워졌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혹시 알아요? 하루나 이틀만 더 가면 출구가 나올지?”

“하하, 그런 식으로 생각하다 보면 끝이 없을 텐데?”

“그래도……, 조금 더 가 보고 싶어요. 하지만 송 오라버니 말대로 끝이 없을 수 있으니 이번에는 시간을 정해 놓고 가죠. 송 오라버니가 생각하는 시간으로 이틀 정도만 더 가 봐요. 그래도 출구가 안 나오면 복귀했다가 다음을 기약하기로 해요.”

원래 나도 계속 가 보고 싶은 마음이었기에 곧바로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여 줬다.

내가 짐작하는 시간으로 하루를 넘어 반일 정도가 더 지났을 무렵, 거의 무념무상의 상태로 걸음을 옮기던 중에 청각을 자극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청력을 집중해 보니 얼핏 폭포수 떨어지는 소리와 비슷했다.

지금껏 지하수로 안에서도 작은 폭포 지형은 여러 차례 발견했었지만, 이번에는 좀 다르다.

지하수로 안에 있는 폭포 지형이라면 소리가 이 안에서 울려야 한다.

하지만 지금 들려오는 폭포 소리는 안에서 울리고 있지 않다.

이건 분명히 밖에서 나는 소리다. 그 소리가 안으로 스며들어 오고 있는 것이다.

그게 의미하는 바는 하나일 수밖에 없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남궁설의 놀람 깃든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 송 오라버니, 이 소리는……!”

그녀도 지금 들리는 폭포 소리의 정체를 알아챈 것이다.

내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남궁설이 경공을 펼치며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서둘러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전방에 이리저리 겹쳐 있는 바위들의 뒤쪽에서 희미한 빛이 스며들어오고 있다.

빛이 스며드는 지점으로 다가갈수록 밖에서 들리는 폭포 소리도 점점 커졌다. 자세히 들어 보니 폭포 소리가 범상치 않았다. 제법 높은 폭포인 모양이다.

다가가면서 보니 지하수로는 겹쳐 있는 바위들의 틈새를 갈지자[之] 형태로 돌아가며 빛이 스며드는 지점으로 흘러나가고 있었다.

언제까지고 이어질 것만 같았던 지하수로가 그 지점에서 폭포로 변하며 끝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시야를 가리고 있는 바위 틈새를 지나 폭포가 시작되는 지점으로 다가갔다. 폭포가 있다는 건 절벽이 있다는 뜻이니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폭포가 시작되는 지점에 이른 순간, 우리의 입에서 동시에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아……!”

“아……!”

새하얀 폭포수가 우리의 눈앞을 장막처럼 가리며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우리의 위쪽에도 폭포가 있어, 그곳에서도 폭포수가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도 지하수의 물줄기가 폭포가 되어 떨어지고 있는데, 위에서 장막처럼 떨어져 내리고 있는 폭포수에 의해 완전히 삼켜지고 있다.

아울러 우리가 서 있는 이 바위틈 또한, 장막처럼 떨어지고 있는 저 폭포수에 의해 가려져 있다.

“밖이에요! 송 오라버니! 드디어 밖이라구요……!”

남궁설이 옆에서 환호하며 양손으로 내 한쪽 팔을 붙들고 마구 흔들었다.

평소에 감정 표현이 격렬한 애가 아닌데 이러는 것을 보면 얼마나 기뻐하고 있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게. 드디어 밖이네. 와! 공기 상쾌한 것 봐.”

“맞아요! 지하수로 안의 텁텁한 공기와는 완전 달라요!”

이후에도 남궁설은 탄성을 연발하며 기쁨을 누렸다.

나는 벼랑 끝으로 다가가서 고개를 숙여 아래쪽을 바라보았다.

벼랑의 아래로 커다란 연못이 보였고, 폭포가 그곳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우리가 있는 높이로부터 벼랑 아래의 연못까지는 대략 십 장 가까이 될 듯하다.

이후에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위쪽을 바라보았다.

위쪽에서 떨어지는 폭포수도 제법 높은 곳에서 떨어져 내리고 있다. 얼추 삼사 장쯤 되는 듯한데, 지금의 위치에서는 제대로 확인할 수 없어서 더 높을 수도 있다.

위에서 장막처럼 떨어지는 폭포수로 인해 정면 쪽의 시야는 잘 안 나온다. 빽빽한 숲이 펼쳐져 있다는 것 정도만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양쪽 측방도 모두 절벽으로, 우리가 있는 절벽을 살며시 감싸는 형태로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양쪽 절벽에서도 작은 폭포 줄기들이 아래에 있는 연못 쪽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 양쪽 절벽 위로 나무 몇 그루와 하늘이 보였다.

날이 조금씩 어두워지는 느낌이니 지금은 저녁 무렵인 모양이다.

어쨌거나 주변 지형을 쭉 살펴본 결과, 우리가 서 있는 틈새가 외부에서 볼 때는 매우 교묘하게 가려져 있는 공간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위에서 장막처럼 쏟아지고 있는 폭포수가 가리고 있기 때문인데, 그 폭포수가 마른다고 해도 발견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이 틈새는 겹쳐 있는 바위들로 인해 안쪽으로 공간이 깊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약간 패어 있는 공간 정도로만 보일 뿐이라서, 혹여 지하수가 떨어지는 모습을 발견해도 이곳이 사람이 드나들 수 있을 만한 공간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남궁설이 말했다.

“여기가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이렇듯 출구를 찾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너무 편해졌어요.”

“나도 마찬가지야. 어쨌거나 이제는 야명석 동굴로 돌아가서 은설영지와 삼령천선초를 모두 먹은 후에 다시 이곳으로 나오면 되겠네.”

“네. 바로 돌아가서 최대한 빠르게 복용을 마치고 다시 나오자구요.”

날이 점점 어두워지는 모습을 확인하며 우리는 신형을 돌려 야명석 동굴로 향했다.

* * *

남궁설은 은설영지와 삼령천선초를 최대한 내게 양보하며, 본인은 남은 육포 위주로 식사했다. 그러면서 내가 운기조식에 집중할 수 있게끔 배려했다.

덕분에 나는 대강 일주일 정도에 걸쳐 은설영지와 삼령천선초의 기운들을 흡수할 수 있었다.

참고로 마지막에 각각 두 개씩 남은 것들은 반강제로 남궁설에게 먹여서 그녀도 최상의 몸 상태를 갖춘 채로 길을 떠날 수 있게끔 조치했다.

야명석 동굴을 떠난 우리는 빠르게 경공을 펼쳐 지하수로가 끝나는 폭포에 도착했다.

이전에 왔을 때는 날이 밝기는 했어도 거의 저녁 무렵이었는데 이번에는 그때보다 훨씬 밝았다. 아직은 대낮인 모양이다.

남궁설이 감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아! 드디어 나가네요.”

“그러게.”

“진짜, 진짜, 고생 많았어요, 송 오라버니.”

“설 매야말로 고생 많았어.”

내 대답을 들은 남궁설은 기분 좋은 표정을 지은 채로 시원하게 떨어져 내리는 폭포를 한동안 감상했다.

“나, 가장 먼저 옷가게부터 들르고 싶어요. 생존이 우선인 상황이라 말은 안 했었지만, 오랫동안 꾀죄죄한 옷차림을 송 오라버니에게 보여주는 거, 너무 창피했거든요. 물로 열심히 빨아도 얼룩들은 지워지지도 않고…….”

우리 둘 다 의복의 상태가 안 좋기는 하다. 여벌의 의복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벌의 의복은 잠복 지점에 숨겨둔 큰 행낭 속에 있다. 지금쯤은 동료들이 그 행낭도 모두 회수해 갔겠지만.

남궁설이 말한 얼룩들은 대부분 탐사 중에 기어 다니다가 묻은 얼룩들이다. 내 의복에도 많이 묻어 있다. 그녀의 말마따나 그 얼룩들은 물로 빨아서는 잘 지워지지 않았다.

“적어도 내 눈에는 설 매가 눈곱만큼도 꾀죄죄해 보이지 않았어.”

“푸훗! 일부러 좋게 말해 줄 필요 없어요. 내 몰골 상태는 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정말이라니까? 확실히 말해 두는데, 설령 거적때기를 갖다가 입혀 놔도 설 매가 꾀죄죄해 보일 일은 없을 거야. 용모가 이미 빛이 나니까.”

그러자 남궁설이 손으로 내 어깨를 살짝 때리며 대꾸했다.

“푸흡! 하여튼 못 살아.”

말은 저렇게 하고 있어도 기분은 좋은 모양이다.

남궁설이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 옷가게에 들른 다음에는 뒤도 돌아보지 말고 객잔으로 가요. 나, 폭식할 거예요.”

“푸하하!”

필사의 각오가 담긴 눈빛으로 폭식하겠다는 말을 하는 모습이 재미있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웃음이 나왔다.

남궁설이 지하수로 쪽을 돌아보더니 말했다.

“이곳에서 나가면 우리가 어떻게 생존했는지에 대해 자세히 보고해야 할 텐데, 그렇게 되면 당연히 그 수중 통로와 이 지하수로 얘기를 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누군가는 지하수로에 관심을 보일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야명석 동굴이 다른 이들에 의해 발견될 수도 있겠죠.”

“그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겠지. 우리가 상류 쪽으로는 거의 가 보지 않았다는 식으로 둘러댄다고 해도 말이야.”

내가 대꾸하자 남궁설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하루라도 빨리 아버지를 만나서 저 야명석 얘기를 해야겠어요. 아버지라면 세가의 인원들을 조용히 움직여서 그 야명석들을 옮길 수 있을 거예요. 송 오라버니의 몫도 옮겨 달라고 할 테니 나중에 배달할 장소만 얘기해줘요.”

다른 곳도 아니고 남궁세가다. 조용히 잘 처리할 것이다.

“그래 주면 나야 좋지.”

“어쨌거나 그 시간을 벌어야 하니, 자세한 경위 보고는 가족들을 먼저 보고 싶다는 핑계를 대며 늦추기로 해요. 그 전에 우리끼리 적당히 말을 좀 맞추는 게 좋겠죠.”

“물론.”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하자 남궁설도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가주님께 제대로 감사 표시를 해야겠네. 옮기느라 고생한 분들에게도 넉넉하게 사례를 해야 할 것이고.”

그러자 남궁설이 고개를 저었다.

“수고한 인원들에 대한 사례는 내가 알아서 넉넉하게 해 줄 테니 신경 쓰지 말아요. 송 오라버니랑 같이 사례하는 거라고 할게요. 그리고 아버지도 아마 송 오라버니한테서 감사 선물 같은 거, 안 받으실 거예요. 내가 송 오라버니 덕분에 살았으니 아버지가 오히려 송 오라버니에게 고마워하시겠죠.”

그 남궁벽이라면 그럴 것 같기는 하다.

내가 민망해하며 미소를 보이자 남궁설이 말했다.

“그나저나 배달할 만한 장소는 있어요? 내 몫이야 뭐 우리 세가로 가져가면 되지만, 송 오라버니는 송가장으로 갖다달라고 할 것 같지 않아서…….”

“음……, 내 몫은 연주상단의 남창지점으로 보내면 될 거야. 내가 그쪽에 미리 말해 두면 되니까.”

“아하! 그거 좋네요. 청 언니와의 거래라면 믿을 수 있죠.”

슬슬 출발하기 위해 벼랑 끝으로 이동하는데 남궁설은 주춤거리며 발걸음을 잘 떼지 못했다.

이유를 알 것 같다.

“정신적인 후유증이 남았구나? 일전에 절벽에서 떨어진 일 때문에.”

남궁설은 침을 꼴깍 삼킬 뿐 대꾸하지 못했다.

“정 안 되겠으면 내가 설 매를 업은 채로 절벽을 탈게. 설 매는 가벼우니까 문제없어.”

한데 의외로 남궁설은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두려워요. 그래도 극복하고자 스스로 노력해 보고 싶어요. 게다가 송 오라버니와 함께 있는 지금이야말로 좋은 기회잖아요. 여차하면 송 오라버니가 그 끈을 이용해서 구해 줄 수 있을 테니까…….”

은룡삭 얘기다.

고개를 끄덕여 준 후에 물었다.

“가지고 있는 단검은 하나뿐이지?”

“네. 두 개를 챙겨 왔었는데 일전에 절벽에 매달릴 때 하나를 써서요.”

그녀에게 소비도 두 자루를 건넸다.

“단검하고 소비도를 번갈아 박아 넣었다가 뽑으면서 암벽을 타면 돼. 남은 소비도 하나는 임시로 챙겨두고.”

“그럴게요.”

전투를 치를 때 소비도를 거의 다 썼던 터라 남아 있는 소비도는 여섯 자루뿐이었다. 그중에서 두 자루를 건넨 것이다.

“이 근처는 폭포수 때문에 젖어 있어서 절벽 면이 미끄러울 거야. 그러니까 일단은 옆에 있는 마른 절벽 면으로 이동했다가 아래로 내려가야 해. 왼쪽 절벽 면의 중간에 불룩 튀어나온 바위가 있으니 그쪽으로 가자.”

“네.”

“내가 먼저 암벽을 타고 내려가면서 검으로 틈틈이 발 디딜 부분을 만들어 둘게. 그러니까 그런 부분들 잘 밟으면서 내려와.”

“그럴게요.”

이후에 남궁설은 아주 조금씩 걸음을 옮기며 어렵사리 절벽 끝에 도달했다.

절벽 끝에 이르자 더욱 긴장하는 기색이었지만, 그 와중에도 이를 악물며 각오를 다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저런 모습이라면 금방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다.

암벽을 타면서 보니 하늘은 쾌청한데도 해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우리가 있는 절벽 면이 북쪽으로 향해 있는 듯하다.

암벽을 내려가는 내내 남궁설의 모습을 꾸준히 주시하며 그녀와의 거리를 가깝게 유지했다.

남궁설은 매우 조심스럽게 암벽을 탔는데, 그 모습이 위태로워 보이지는 않았다.

정신적으로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을지 모르나, 그녀의 신체는 잘 단련된 무인의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다소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남궁설은 결국 자신의 힘으로 암벽을 타고 바닥까지 내려왔다.

온몸이 땀으로 흥건했다.

정신적인 후유증과 싸운 흔적이다.

그 와중에도 환하게 웃는 걸 보니 적잖이 극복이 된 모양이다.

우리는 씻을 겸 연못에서 잠시 수영하다가 일각쯤 후에 그곳을 벗어나 경공을 펼치기 시작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