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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마교있다-294화 (294/416)

내 안에 마교있다 294

남궁벽을 마지막으로 봤을 당시 그가 내게 썼던 호칭은 ‘송 공자’였다.

한데 오랜만에 만난 그는 방금 나를 이름만으로 불렀다.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본인도 모르게 그랬을 수도 있고, 나를 가깝게 여겨 이름으로 부르겠다는 생각일 수도 있다.

속으로 그 생각을 하는 사이, 남궁설이 남궁벽을 향해 달려 나갔다.

“아부지……!”

부녀는 금세 마주쳤고, 서로를 얼싸안았다.

“우리 딸…… 우리 딸…….”

“아부지…….”

부녀 모두 목소리가 격하게 일렁거리고 있었다.

그즈음, 남궁벽의 뒤를 따라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중년의 여인이 있었다.

겉보기로는 쉰 살 아래로 보이는 미부인인데, 비록 초면이지만 딱 봐도 누군지 알 것 같다.

내가 잘 알고 있는 남궁찬, 남궁묵, 남궁설의 용모와 유사점이 많은 용모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저 중년 여인이 바로 천하제일세가의 안주인이다.

천마신교에서 봤던 자료를 통해 그녀의 이름도 알고 있다. 그녀의 이름은 홍민옥이다.

“설아……!”

홍민옥이 남궁설을 부르자, 남궁설이 남궁벽의 품에서 빠져나오더니 홍민옥을 향해 달려갔다.

“어머니……!”

“설아!”

이번에는 모녀가 서로를 얼싸안았다.

모녀가 상봉하는 사이 남궁벽이 내게로 다가왔기에, 나는 그를 향해 공손하게 포권하며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가주님.”

“유겸아……!”

남궁벽은 이번에도 나를 이름으로 불렀다. 그냥 계속 이름으로 부를 모양이다.

천하제일세가주가 그 정도로 나를 가깝게 여기고 있다는 뜻이니, 당연히 내게는 좋은 일이다.

내 앞으로 빠르게 다가오는 남궁벽이 양팔을 벌리고 있다.

저기요, 아저씨?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겠는데 포옹하는 건 그만둬 주실래요? 남자하고 포옹하는 건 개인적으로 정말 별로거든요?

내 속내를 알 리 없는 남궁벽은 그대로 나를 포옹했다

“유겸아, 네가 정말로 설아를 살렸구나! 네가 설아를 살렸어! 고맙구나, 정말 고맙구나!”

이후에도 남궁벽은 나를 끌어안은 채로 계속해서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저어…… 가주님, 일단 떨어져서 이야기를…….”

내가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남궁벽은 포옹을 풀어줬다.

“너를 업어 주고 싶구나. 그래, 내게 업혀서 안으로 들어가자.”

“아니아니, 아닙니다.”

내가 빠르게 손을 내저으며 거절 의사를 내비치자 남궁벽이 껄껄 웃었다. 웃는 중에도 나를 바라보고 있는데, 눈빛에 애정이 가득 담겨 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다는 표정이다.

부담스러운 그 시선을 눈치껏 회피하고 있는데 남궁설이 홍민옥의 손을 잡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

“송 오라버니, 우리 어머니예요.”

이에 나는 곧바로 홍민옥을 향해 포권하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부인. 송유겸이라 합니다.”

“당신이 바로 송 소협이로군요……!”

“아하하, 소협이라니 당치 않…….”

내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홍민옥이 본인의 두 손으로 내 오른손을 꼭 감싸 쥐었다. 그러더니 말했다.

“이전에도 송 소협 덕분에 우리 설아가 여러 차례 무사할 수 있었다고 들었어요. 한데 이번에도 이 아이를 구해주셨군요. 이 고마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마워요, 송 소협. 정말 고마워요.”

홍민옥이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로 내게 허리와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에 나는 황급히 그녀에게 말했다.

“가주 부인, 이러지 마시고 고개를 드십시오. 이러시니 제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자 어서…….”

내가 그렇게 말했음에도 홍민옥은 잠시 후에야 허리를 폈다.

“우리 남궁세가는 송 소협의 은혜를 절대 잊지 않을 거예요.”

그렇게 말하는 홍민옥의 눈동자에 의지가 가득 담겨 있었다.

대꾸할 말이 없어서 내가 그냥 어색함 가득한 미소만 지어 보이자 남궁벽이 말했다.

“여기서 이러고 있을 게 아니지. 어서들 들어가자꾸나.”

남궁설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네. 어서 들어가요. 저, 아버지께 긴히 드릴 말씀도 있어요.”

남궁설이 그렇게 말하며 나를 한 차례 바라봤다.

야명석 동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모양이다.

남궁벽과 홍민옥이 우리를 이끈 곳은 남창지부 지객당 숙소의 특실이었다.

들어가 보니 특실답게 시설이 좋고 공간도 널찍했다. 본맹의 지객당에 있는 특실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거실의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자마자 남궁설이 남궁벽에게 말했다.

“아부지, 이건 극비 사항이니까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해주세요.”

남궁설의 말이 끝나자마자 남궁벽이 공력을 운용하여 거실에 기운의 막을 만들어 냈다.

“됐다. 말해 봐라. 무슨 일인데 그러는 게냐.”

그러자 남궁설이 우리가 봤던 야명석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야명석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내내 남궁벽과 홍민옥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래서인지 남궁설의 옆에 있는 나에게 눈빛으로 확인하곤 했다.

하긴, 나도 직접 보지 않았으면 그렇듯 어마어마한 양의 야명석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을 것이다.

야명석에 대한 이야기를 마친 남궁설이 말했다.

“그것들을 우리가 조용히 차지할 필요가 있겠죠.”

남궁벽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남궁설이 야명석 동굴의 위치와 그곳으로 가는 방법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설명을 들은 남궁벽이 말했다.

“즉시 비밀리에 세가의 인원들을 동원하라 지시하마.”

“그 전에 한 가지 신경 쓰이는 문제가 있어요. 저희가 생존 보고를 하면 무림맹 측에서도 그 지하수로의 존재를 알게 될 거예요. 지하수로에 사람들이 드나들면 야명석 동굴의 위치가 발각될 가능성도 생기죠. 그러니 저희가 생존 보고를 늦추면 늦출수록 좋을 거예요.”

“아,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다.”

남궁벽이 대꾸하자 남궁설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잊지 마세요. 송 오라버니가 저를 구해주지 않았다면 저는 그 야명석들을 구경하지도 못했을 것이고, 이렇듯 두 분이 그 존재를 알게 될 일도 없었어요. 그런데도 송 오라버니는 그것들을 저와 반씩 나누기로 한 거예요. 제 말, 무슨 말씀인지 아시죠?”

“당연히 알지. 알다마다.”

남궁벽이 나를 보며 그렇게 대꾸했다. 홍민옥의 시선도 내게로 향했다.

남궁설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송 오라버니의 몫은 연주상단 남창지점으로 가져다주시면 돼요. 수취인은 청여홍 소저 앞으로 해 주시구요.”

수취인이 청여홍으로 되어 있으면 연주상단 남창지점에서도 더 귀중하게 다룰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남궁설이 청여홍의 이름을 꺼낸 것이다.

“알았다. 그렇게 지시하마.”

이에 나는 남궁벽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감사합니다, 가주님.”

“겨우 그런 것으로 감사는 무슨. 유겸이 너에 대한 우리의 고마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내, 철저하게 관리하며 배달하라고 할 것이다.”

홍민옥도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잠시 후, 남궁벽이 남궁설에게 말했다.

“지시하러 가기 전에 너한테 한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게 있다.”

“말씀하세요.”

“아까부터 아무리 봐도 네 기도가 너무 많이 달라진 것 같아서 말이다. 설아 너 혹시…….”

남궁벽의 진지한 눈동자가 떨리고 있다. 기대감으로 인한 떨림이다.

남궁설이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차분한 어조로 대꾸했다.

“아부지의 예상이 맞을 거예요.”

그녀의 말에 남궁벽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그, 그러면 네가 정말로 절정에 올랐다는 말이냐?”

남궁설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벽과 홍민옥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세, 세상에나……! 네가 절정고수라니……!”

홍민옥의 대꾸였다.

남궁벽은 경악한 표정으로 입만 뻐끔거리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남궁벽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네가 지금 얼마나 대단한 역사를 만들어 냈는지 아느냐? 그 나이에 절정고수면 그건 우리 세가의 역사를 넘어 기나긴 강호사에서도 최연소 기록이야……! 아무리 야명석 건이 급하다고 해도 네가 절정에 오른 이야기는 듣고 가야겠다! 대체 어떻게 그렇게 된 것이냐?”

그러자 남궁설이 우리가 야명석 동굴 안에서 먹었던 자심행과와 은설영지, 삼령천선초에 대해 얘기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각빙혼사에 대한 이야기는 아예 뺐다.

강력한 춘약 기운에 당했었으니 그 얘기를 하자면 민망하기도 할 것이고, 실제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는데 괜히 오해만 살 수 있다는 생각이기도 할 것이다.

대신 남궁설은 자신이 자심행과 중에서 가장 좋은 걸 복용하고 내가 나머지 두 개를 복용했다며 거짓말을 했다. 가장 좋은 자심행과를 복용한 덕에 공력이 많이 증진됐다는 식으로 둘러댄 것이다.

남궁벽과 홍민옥은 남궁설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에도 흥분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더니, 남궁설이 이야기를 마치자 둘이서 손을 맞잡으며 감격스러워했다.

홍민옥이 울먹이며 말했다.

“여보, 이게 무슨 일이래요……? 저 아이가 살아 돌아왔을 뿐만 아니라 저 어린 나이에 절정고수가 되어서 오다니요……!”

그러자 남궁벽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유겸아, 이게 다 네 덕분이다! 네 덕분이야!”

옆에서 남궁설도 남궁벽의 말에 수긍하듯 부지런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너무 쑥스럽다.

남궁벽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내, 얼른 다녀와서 너희들의 이야기를 마저 들어야겠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너희들은 씻고, 쉬고 있거라. 곧 저녁이니 식사도 하자.”

그러자 홍민옥이 남궁벽에게 말했다.

“아, 여보. 찬이에게도 전서 보내줘야 해요. 그래야 그 아이도…….”

“그렇지 않아도 나도 그럴 생각이었소.”

홍민옥이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남궁설이 남궁벽에게 물었다.

“큰 오라버니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큰 오라버니는 지금 어디 있어요? 그 전에, 우리 동료들은 모두 어떻게 됐어요?”

실은 나도 그게 매우 궁금하던 차였다.

“그건 네 엄마한테 들어도 될 게다. 네 엄마도 대부분 보고를 받았으니.”

말을 마친 남궁벽이 곧장 특실을 벗어났다.

거실의 탁자를 사이에 두고 다시 앉자 홍민옥이 내게 말했다.

“이제야 이런 말을 할 틈이 생겨서 얘기하는데, 송 소협, 정말 미남이네요. 물론 송 소협이 미남이라는 얘기와 소문은 나도 많이 들었지만, 직접 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미남이에요.”

“아하하, 쑥스럽습니다. 저도 이제야 틈이 생겨서 말씀드리는 건데, 부인이야말로 너무도 우아하시고 기품이 넘치십니다.”

“후후훗. 무슨 그런…….”

부끄럽다는 듯 웃으면서도 좋아하고 있다.

“아, 참. 그리고 호칭 말씀입니다만, 저는 소협이라고 불릴 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니 그냥 평범하게 불러 주셔도 될 듯합니다.”

가만히 두면 앞으로도 그녀가 계속 ‘소협’이라는 호칭을 쓸 것 같아서 한 말이다.

그러자 홍민옥이 고개를 갸웃하며 대꾸했다.

“사파, 혈교와의 수많은 전투에서 송 소협만큼 공을 세운 무인이 많지 않다고 들었어요. 그런 무인이라면 협객으로 불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그러자 남궁설이 끼어들며 홍민옥에게 말했다.

“아, 어머니, 송 오라버니는 아직 소협이라는 호칭이 과분하다고 생각해서 부담스러워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 그냥 ‘소협’ 말고 ‘공자’ 정도의 호칭으로 불러 주길 바라는 거죠. 송 오라버니의 성격이 원래 좀 그래요. 칭찬 들으면 특히 민망해하는 성격이구요.”

“아, 그러니……?”

“네. 귀엽죠?”

귀, 귀엽다니, 쬐끄만 게 진짜!

“어머, 얘야. 사내대장부의 면전에 대고 그런 말 쓰면 안 돼.”

말은 저렇게 하고 있지만, 홍민옥도 표정으로는 남궁설의 말에 수긍하고 있는 듯하다. 의미심장한 느낌의 저 미소가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홍민옥이 이번에는 내게 말했다.

“본인이 소협이라는 호칭을 부담스러워한다면 공자라고 부르는 게 맞겠죠. 앞으로는 송 공자라고 부를게요.”

“감사합니다, 가주 부인.”

내 대꾸에 홍민옥이 고개를 끄덕였다.

홍민옥이 남궁설을 보며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절벽에서 떨어진 후, 나머지 특수작전조원들은 맞은편에서 다가오던 특수일조의 도움으로 동굴에서 무사히 빠져나왔다고 해.”

“아아! 정말 다행이에요.”

남궁설이 대꾸하자 홍민옥이 말했다.

“무림맹의 타격 작전은 이튿날 점심 무렵에 종료됐고, 특수작전조원들은 그곳에 일정 기간 머무르며 조사를 도왔다고 해. 그러던 중에 혈교의 다른 거점들에 관한 자료가 발견된 거지. 멀지 않은 곳에 몇 개의 중소 규모 거점들이 존재한다는 게 드러났고, 무림맹에서는 즉시 근처의 거점들로 전력을 파견했어.”

“아…….”

“특수작전조도 또다시 타격 작전에 투입됐지. 부상자들은 제외됐고, 너와 송 소협이 사고를 당한 바람에 잠룡관도들도 제외됐다고 해. 윤단영 교관이 단목강 공자와 길초량 공자를 인솔해서 동부지맹 잠룡관으로 복귀했다고 들었어.”

“그럼 큰 오라버니는 다른 거점 타격 작전에 투입된 거군요. 제갈 교관님과 백송학 소협도.”

“그래. 벌써 중규모 거점 두 곳과 소규모 거점 세 곳을 타격했다고 하더구나. 타격한 거점에서 또 다른 거점들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었고, 신속하게 움직여서 연속으로 타격할 수 있었던 모양이야. 그런데 들리기로…….”

뭔가를 염려하는 표정으로 말을 줄였던 홍민옥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네 큰 오라비와 제갈 교관이 분노를 쏟아내듯 살검을 펼치고 있고, 더 빨리 더 많은 거점을 타격하고자 너무 무리하고 있대. 백송학 소협이 두 사람을 보좌하고는 있지만 위태로운 상황이 많은 모양이야. 그래서 너무 염려되는구나.”

“아…….”

남궁설의 음성에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남궁찬과 제갈수광이 그러는 이유는 빤하다. 남궁설과 나를 잃은 상실감 때문이다. 그래서 흉수인 혈교를 상대로 복수하듯 분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쪽에서도 너와 송 공자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될 테니 이제는 그전처럼 무리하지 않겠지. 그것도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홍민옥은 그 외에도 그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대강의 이야기가 마무리된 후에는 남궁설이 먼저 욕실에 들어가서 씻었고, 이후에는 나도 욕실로 들어갔다.

씻고 나오니 특실의 식당 쪽에서 맛있는 냄새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가서 슬쩍 보니 남궁벽이 돌아와 있는 가운데, 세 명의 사내가 보였다. 사내 세 명은 모두 같은 복장이었으며 그들이 입은 상의의 등 쪽에 ‘용궁객잔’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용궁객잔은 남창지부의 정문 바로 앞에 있는 객잔이다. 그곳에서 일하는 점소이들인 모양이다.

점소이들은 커다란 광주리에서 부지런히 음식을 꺼내어 식탁 위에 차리는 중이었다. 즉, 저 음식들은 남창지부에서 나오는 음식이 아니라 용궁객잔에 주문해서 배달시킨 음식들인 것이다.

용궁객잔의 점소이들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빠르게 음식을 차렸다. 차려진 음식들은 그야말로 풍성했다.

상차림을 마친 점소이들이 남궁벽을 향해 매우 공손하게 인사했다.

“이용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요, 가주님. 식사 맛있게 하시고, 다음에 또 이용해 주십시오.”

점소이들 중 선배로 보이는 이가 그렇게 말하자 남궁벽이 점소이들에게 지폐를 한 장씩 건네며 말했다.

“수고들 많았네.”

“아이고. 감사합니다요, 가주님. 감사합니다.”

점소이들이 굽신거리며 특실을 벗어나자 남궁벽이 나를 돌아보더니 말했다.

“유겸아, 와서 앉거라.”

“이, 이게 다 뭡니까……?”

“오늘은 너희들이 살아 돌아온 날이다. 게다가 설아 저 아이가 절정고수에 오른 걸 알게 된 날이기도 하지. 그런 날에 남창지부에서 나오는 평범한 음식이나 먹고 있을 수는 없잖느냐. 그래서 제대로 된 요리를 먹고자 객잔에 주문한 것이다. 술도 준비되어 있으니 오늘은 실컷 먹고 마신 후에 내일 동부지맹으로 출발하자꾸나.”

천하제일세가주 내외와 함께하는 식사 자리인 만큼 오늘도 과식하고 과음할 가능성이 커졌다.

식사를 시작하기 위해 모두가 식탁에 앉았는데 현관 쪽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남궁벽이 일어서더니 거실을 거쳐 현관 쪽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가주님.”

“손 부각주가 어인 일이신가.”

“아, 다름이 아니오라 가주님의 따님과 송유겸 공자가 복귀한 일 때문입니다. 두 사람이 어떻게 생존하여 어떻게 그 지하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는지에 대해 몇 가지만 질문을 좀 하고자…….”

“두 아이는 힘겹게 탈출한 후로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달려 이곳에 이르렀네. 이제야 겨우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는데, 그런 걸 꼭 지금 물어봐야겠는가?”

남궁벽의 어조에서 명백한 불쾌감이 느껴졌다.

“그, 그, 그 점은 송구합니다, 가주님. 그저 간단하게만 물어볼 것입니다. 저희도 본맹에 보고를 해야 하는지라…….”

“본맹에 보고라……?”

“예……. 그러니 가주님께서 조금만 양해를…….”

그러자 손 부각주라는 이의 말을 끊으며 남궁벽이 말했다.

“아니, 대관절 본맹 따위가 무엇이기에, 죽은 줄로만 알았던 딸과 오랜만에 상봉하고 있는 이 몸의 소중한 시간을 방해하려 한단 말인가.”

분노를 억누르고 있는 저음의 어조.

순간적인 남궁벽의 기세는 그야말로 서릿발 같았다.

물론 나는 남궁벽이 우리의 생존 보고를 최대한 늦추려고 일부러 저러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어쨌거나 그 와중에도 나를 놀라게 한 건 남궁벽이 사용한 ‘본맹 따위’라는 말이었다.

백도의 어느 누가 감히 저런 말을 입에 담을 수 있을까.

그야말로 천하제일세가의 가주이기에 가능한 발언이다.

손 부각주라는 이가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가가, 가, 가주님, 저희가 그, 그런 의도는 아니옵고…….”

지부의 각주나 부각주급이면 지위가 제법 높을 텐데도, 지금은 거의 호랑이 앞의 사슴을 보는 느낌이다.

“그래. 마침 본맹에 보고한다 했으니 내 말을 똑똑히 보고하게. 이런 식으로 무례하게 나오면 아이들의 생존 관련 보고 같은 건 앞으로도 영영 들을 수 없을 것이라고. 그리고 지금, 이 남궁 모의 기분이 썩 좋지 않다고. 알겠는가?”

“아아, 알겠습니다, 가주님.”

대답을 들은 남궁벽이 천천히 현관문을 닫았다.

거실로 돌아온 남궁벽이 우리를 향해 말했다.

“이 정도면 당분간은 생존 보고 얘기는 꺼내지도 않겠지.”

“여보, 그래도 ‘본맹 따위’라는 말은 너무 심했던 거 아니에요?”

“괜찮소. 혹여 맹주님 귀에 들어간다 해도 나중에 만나서 사과 한마디 하면 되니까. 자식에 관련된 일이라 순간적으로 감정이 격했다고 하면 되오. 그 많은 야명석들을 생각하면 이 정도야, 뭐.”

남궁벽의 입가에 만족감 가득한 미소가 걸렸다.

우리는 다시금 식당으로 들어가서 즐겁게 먹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남궁설이 절벽에서 떨어지던 순간의 이야기를 들려주자, 남궁벽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듣다가 감탄을 표했다.

“이래서, 다름 아닌 유겸이라서, 내가 혹시나 하는 기대를 끝까지 버리지 않았던 거였다. 역시 유겸이로구나……!”

홍민옥은 신기한 사람 보듯 나를 바라보며 대단하다는 말을 연발했다.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식사하는 내내 홍민옥은 맛있는 요리들을 내 앞에 놓아주며 성심껏 나를 챙겼다. 그러면서 나중에 남궁세가에 찾아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잘 대접하겠다는 말도 했다.

단목세가에 있을 때 단목지의 모친인 교문혜도 지금의 홍민옥처럼 식사 내내 나를 챙겼었다.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다음 날.

우리 네 사람은 남창지부에서 멀지 않은 나루터로 이동하여 배를 타고 동부지맹 잠룡관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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