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안에 마교있다-295화 (295/416)

내 안에 마교있다 295

우리는 다음 날 점심 전에 연산촌 나루터에 도착했고, 곧바로 상요지소를 향해 이동했다.

이동하는 동안 열두 명의 무인들이 우리를 호위했는데, 세 명은 절정고수였고 나머지는 모두가 최소 일류의 중반 이상이었다.

정예들이다.

남궁설이 알려줬는데, 그 유명한 창궁검대라고 한다. 창궁검대는 남궁세가의 정예 무력 조직이다.

창궁검대원 중에서 네 명은 전방에서 매우 멀찍이 앞서가며 정찰을 담당했고, 다른 네 명은 우리의 가까이에서 호위했고, 나머지 네 명은 모습을 숨긴 채로 후방에서 우리를 따랐다.

점심이 약간 지난 시각에 무림맹 상요지소에 도착하여 간단하게 식사한 후 다시금 길을 나섰다.

상요지소에 말이 준비되어 있었기에 모두가 말을 타고 이동했다.

부지런히 이동하다 보니 어두워졌고, 일행은 약간 늦은 저녁에 객잔에 들어가 식사하고 취침했다.

다음 날 새벽에 다시 출발한 우리는 신시 초(오후 3시)가 되기 전에 옥산현에 들어설 수 있었다.

오랜만에 옥산으로 돌아오니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동부지맹과 잠룡관으로 갈라지는 길에 이르자 남궁벽이 이동을 멈추더니 호위무사 한 명에게 말했다.

“고 조장은 대원들과 함께 이 말들을 동부지맹에 반납한 후 잠룡관으로 와서 대기하고 있게. 우리는 먼저 잠룡관으로 갈 테니.”

“알겠습니다, 가주님.”

대꾸한 ‘고 조장’이라는 이는 내내 가까운 거리에서 우리를 호위했던 창궁검대의 절정고수다.

남궁벽이 말에서 내렸고, 우리도 말에서 내렸다.

곧 고 조장이라는 이가 창궁검대원들과 함께 말을 끌고 멀어지자 홍민옥이 남궁벽에게 물었다.

“여기까지 와서 동부지맹에도 안 들르시려고요?”

“엊그제 본맹에 대고 언짢은 기색을 잔뜩 내비쳤으니 이번에는 안 들르는 게 여러모로 나을 것 같소. 그러면 무림맹 측에서도 내가 단단히 화났다고 생각할 테고, 그래야 당분간은 내 눈치 보느라 유겸이와 설아에게 접근하는 것도 조심하려 할 것 아니오.”

“아.”

홍민옥이 수긍하자 남궁벽이 잠룡관을 향해 경공을 펼치기 시작했고, 우리도 그의 뒤를 따랐다.

머지않아 우리는 잠룡관의 정문에 도착했다.

가만 보니 정문 밖을 지키고 있는 경비무사 중 한 명은 오다가다 많이 봤던 얼굴이었다.

그도 나를 알아보고는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송유겸 공자……!”

“안녕하십니까.”

“송 공자가 큰 사고를 당했다는 얘기를 듣고 얼마나 가슴 아팠는지 모르오. 그러던 중에 생존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믿기 어려웠는데 정말로 살아 돌아왔군요!”

“아하하, 여러모로 운이 좋아서 어찌어찌 살았습니다.”

“정말 다행이오.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을까…….”

내가 대답 대신 미소를 지어 보이자 경비무사가 남궁설을 일별하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송 공자와 같이 복귀하셨다면 이분 소저께서 바로…….”

그러자 남궁설이 대꾸했다.

“네. 제가 바로 장우혜라는 이름을 썼던 남궁설이에요.”

“역시 그랬구려. 남궁 소저께서도 이렇듯 무사히 복귀하셔서 정말 다행이오.”

“감사해요.”

남궁설이 대꾸하자 경비무사의 고개가 남궁벽과 홍민옥 쪽으로 돌았다.

경비무사로서 방문자의 신원을 파악하기 위함인데, 아마도 그는 이전에 남궁벽과 홍민옥을 본 적이 없었던 모양이다.

남궁벽과 홍민옥의 용모를 확인한 경비무사가 심상치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금 남궁설 쪽을 바라보았다. 용모가 서로 닮았음을 알아챈 눈치다.

경비무사가 나를 향해 매우 조심스러워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혹시…….”

남궁벽과 홍민옥이 남궁설의 부모인지를 묻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내가 대꾸하자마자 경비무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가 즉시 남궁벽과 홍민옥을 향해 매우 공손하게 포권했다.

“대, 대남궁세가의 가주님과 부인을 뵙습니다. 못 알아봬서 송구합니다.”

“허허, 미안해할 필요 없소. 우리가 잠룡관에 방문하는 건 둘째가 관도였던 시절 이후로 처음이니, 이곳에서 근무한 경력이 길지 않다면 못 알아보는 게 당연하지.”

남궁벽이 대꾸하자 경비무사가 절도 있게 고개를 숙이더니 말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바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수고가 많소.”

우리가 정문으로 들어서자마자 정문 옆의 초소에서 전서구 한 마리가 날아오르더니 잠룡관의 본관 건물 쪽으로 날아갔다.

우리가 왔다는 사실을 본관과 관주전에 서둘러 알릴 용도로 날린 전서구일 것이다.

정문 안의 대로로 진입하자 남궁벽이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경공으로 가지 말고 걸어가자꾸나. 오랜만에 잠룡관의 정취를 느끼고 싶으니.”

그러자 홍민옥이 대꾸했다.

“설아 저 아이가 가명으로 입학하는 바람에 그간에는 잠룡관에 와 보고 싶어도 올 수가 없었죠. 이렇듯 오랜만에 와 보니 참 좋네요. 예전에 찬이와 묵이를 보러 왔었던 일들도 생각나고요. 그땐 그 애들도 어렸는데.”

부부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앞에서 걸을 때 남궁설이 조용히 내게 말했다.

“부모님과는 다른 의미로 저도 참 오랜만에 잠룡관으로 돌아왔네요.”

“하긴 그렇겠네? 설 매는 통합 잠룡대전에 참가하기 위해 잠룡관을 떠난 후로 이제야 복귀하는 거니까.”

통합 잠룡대전 참가자들이 본맹을 향해 출발한 건 지난 팔월 말일의 일이었다.

오늘이 십일월 열나흘이니, 남궁설은 두 달 반 만에 잠룡관으로 복귀한 셈이다.

“송 오라버니도 제법 오랜만에 복귀하는 거죠? 거의 두 달은 됐을 법한데.”

“그렇지. 나는 지난 구월 열이레에 잠룡관에서 출발했었으니까.”

남궁설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눈에 보이는 잠룡관의 경치들을 천천히 훑으며 말했다.

“이곳에서 지낸 세월이 짧지 않아서인지, 이렇듯 돌아오니까 집에 돌아온 것처럼 마음이 편해요.”

“동감이야.”

“친우들도 빨리 보고 싶어요. 지금이야 우리의 생존 소식을 들었겠지만, 그전까지는 다들 힘겨운 시간을 보냈을 거예요. 제 경우에는 은무, 그러니까 린아가 특히…….”

그즈음 앞에서 홍민옥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앞에서 누군가가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어요.”

“보자……. 어? 저들은 육 관주와 노 총교관이구려.”

나도 남궁벽과 홍민옥 사이로 전방을 확인해 보니, 과연 달려오고 있는 두 사람은 관주 육남춘과 총교관 노양홍이었다.

두 사람에게 다가가는 우리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유겸아! 설아!”

육남춘과 노양홍이 그렇게 외치며 남궁벽과 홍민옥을 지나쳐 곧장 우리에게 다가왔다.

“관주님, 총교관님, 안녕하셨습니까.”

내가 그렇게 말하며 포권하자 남궁설도 나와 같이 포권해 보였다.

“너희들이……, 너희들이…… 정말로 살아서 돌아왔구나……. 정말로 살아서 돌아왔어…….”

육남춘이 우리의 손을 잡으며 거의 울먹이듯 그렇게 말했다.

“이 어린 것들이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꼬……. 그래도 건강해 보여서 참으로 다행이구나.”

육남춘의 뒤에 있던 노양홍도 그렇게 말하며 우리를 반겼다.

이후에도 육남춘과 노양홍은 잠시 더 우리를 붙들고 있다가 남궁벽과 홍민옥에게 인사를 건넸다.

인사를 나눈 우리는 모두 함께 관주전으로 향했다.

관주전의 관주실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었다.

육남춘과 노양홍은 우리가 지하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와 어떻게 빠져나왔는지에 대해 궁금해했다.

우리는 미리 말을 맞춘 대로 간단하게 답해줬다.

우리는 원래 육포가 넉넉했는데 안에서 무독성의 버섯이 자라나고 있어 그것들을 아껴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고 했고, 복잡하게 이어지는 좁은 틈과 동굴을 이리저리 탐험해 가며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했다.

처음에 절벽에서 떨어졌을 때 내가 다리에 큰 부상을 입은 탓에 오랫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고, 완치된 후에야 움직이기 시작했기에 빠져나오기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도 보탰다.

그것까지가 우리가 말을 맞춘 내용이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육남춘과 노양홍은 안타까워하다가도 대견스러워하며 우리를 칭찬하곤 했다.

그렇듯 관주전에서 한식경(30분)가량 대화를 나누고 있을 무렵,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관주님, 광풍현 송가장의 장주님께서 오셨습니다.”

밖에서 고하는 소리에 내가 놀라는 사이, 육남춘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문 쪽에 대고 말했다.

“오! 송 장주께서 오셨다고? 어서 안으로 모시게.”

문을 열리자 안으로 들어선 이는 두 명으로, 내가 예상했던 대로 송천광과 이청오였다.

들어와서 내 모습을 확인한 송천광의 입이 열렸다.

“너, 너……!”

놀라서 휘둥그레진 눈이 크게 일렁거리고 있다.

그러자 송천광의 뒤에 있던 이청오가 말했다.

“유겸아! 정말로 살아있었구나……!”

곧 송천광이 다가오더니 나를 꽉 끌어안고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살았다니……! 정말로 네가 살아 돌아왔다니……! 천지신명께서 도우셨구나……! 아아아……!”

“걱정 끼쳐서 죄송합니다.”

“이놈아……, 그런 소리 말거라. 네가 이렇듯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도 이 애비는 더 바랄 게 없으니…….”

송천광은 잠시 후에야 포옹을 풀었다. 그러더니 내 모습을 한 차례 훑으며 물었다.

“어디 다치거나 아픈 데는 없느냐? 몸은 멀쩡한 게야?”

“예.”

내가 대꾸하자 송천광이 안도하듯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 후에도 한동안 내 얼굴만 바라보던 송천광이 이윽고 남궁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이고, 남궁 소저……!”

그러자 남궁설이 생긋 미소를 지으며 송천광을 향해 포권했다.

“오랜만에 뵈어요, 송 장주님. 그전에는 무원객잔에서 장우혜의 모습으로 뵀었죠.”

“그렇지 않아도 그때의 그 장우혜 소저가 남궁설 소저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르네. 그나저나 남궁 소저도 무사한가? 어디 다친 데는 없고?”

“네. 송 오라버니 덕분에 멀쩡해요.”

“아이고,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는가.”

“걱정을 끼쳤습니다. 송구합니다.”

“아이고, 그런 말씀 마시게. 두 사람 다 이렇듯 멀쩡히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도 더 바랄 게 없네. 하늘이 도우셨어. 하늘이 도우신 게야.”

남궁설은 빙그레 웃더니 뒤에 있는 이청오와도 눈인사를 나누었다.

그즈음 송천광의 고개는 남궁벽 쪽으로 향해 있는 상태였다.

송천광은 남궁벽과 홍민옥을 모를 테니 내가 나서서 소개하려는데, 남궁벽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어서 오시오, 송 장주.”

“아이고, 가주님. 또 뵙습니다요.”

뭐야? 둘이 구면이었어?

구면이라면 아마도 남궁설과 내가 사고를 당한 건으로 알게 됐을 가능성이 큰데, 무슨 계기로 만나게 된 건지 궁금하다.

남궁벽이 송천광에게 홍민옥을 소개했다.

“내 아내요.”

송천광이 굽신거리며 홍민옥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이고, 가주 부인. 안녕하십니까. 송 아무개라고 합니다.”

그러자 홍민옥이 송천광을 향해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홍민옥의 극진한 예에 송천광이 당황하는 사이, 홍민옥이 천천히 허리를 펴더니 입을 열었다.

“우리 설아가 살 수 있었던 건 오로지 송 장주님의 아드님 덕분이에요. 송 공자와 송 장주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아이고, 아이들 둘이 서로 도와 가며 살아남은 것이겠지요. 그게 어찌 제 아들만의 공이었겠습니까.”

“과정을 들으면 알게 되실 테지만 그 높은 절벽에서 떨어지고도, 그 많은 낙석이 있었는데도 설아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건 오로지 송 공자 덕분이었어요. 송 장주님께서는 정말로 대단한 아드님을 두셨어요.”

“이 사람의 말이 맞소.”

남궁벽까지 나서서 그렇게 말하자 송천광은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표정이 되었다.

잠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 송천광의 눈에는 대견스러움이 가득했다. 무려 천하제일세가주 내외가 깊은 고마움을 표하고 있으니 저럴 수밖에 없다.

그때쯤 육남춘과 노양홍이 송천광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셨습니까, 송 장주님.”

“어서 오십시오, 장주님.”

그러자 송천광도 두 사람에게 서둘러 인사했다.

“아이고오. 관주님, 총교관님, 안녕하셨습니까. 이렇듯 불쑥 찾아뵙게 되어 송구할 따름입니다.”

“송구라니요.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유겸이가 돌아왔는데 당연히 와 보셔야지요. 그렇지 않아도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송가장으로 사람을 보냈던 참인데 벌써 이렇듯 오셨군요.”

육남춘이 대꾸하자 송천광이 말했다.

“아, 실은 남궁 가주님께서 유겸이를 데리고 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동부지맹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남궁 가주께서 동부지맹에 들르지 않고 바로 잠룡관으로 향하셨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는 서둘러 달려온 참입니다.”

그러자 남궁벽이 송천광에게 말했다.

“아, 나 때문에 송 장주께서 괜히 헛걸음하셨겠구려. 미안하오. 남창지부를 떠나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이 아이들이 빨리 잠룡관에 가서 쉬고 싶다고 하여 이렇게 되었소.”

남궁벽이 적당히 둘러대자 송천광이 대꾸했다.

“아이고 미안하다니요,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저 아이를 안전하게 데려와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러자 육남춘이 정리하듯 말했다.

“앉아서 얘기 계속 나누시지요.”

모두가 자리에 앉았고, 송천광과 이청오의 등장으로 인해 우리는 생존 경위에 대해 다시 한번 얘기해야 했다.

이야기를 나누며 일다경(20분)가량이 더 지났을 무렵, 송천광이 내게 말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네가 돌아왔으니 마음 같아서는 장원으로 데려가서 며칠간 많이 먹이고 편히 쉬게 하고 싶다. 그러나 아직 학기 중이고 네게도 잠룡관에서의 생활이라는 게 있으니 그래선 안 되겠지. 그래도 아비로서 오늘은 맛있는 것도 많이 먹이고 시간도 좀 더 같이 보내고 싶다. 그러니 오늘 저녁은 옥산에 나가서 아비와 같이 먹자.”

오늘 대화를 나누면서 느낀 건데, 송천광의 태도가 좀 달라진 것 같다.

물론 남궁벽, 홍민옥, 육남춘, 노양홍 등을 대하면서 계속 굽신거리기는 했다.

그러나 강호의 유명인사를 만난 것 자체만으로도 완전한 저자세가 되어 간이고 쓸개고 다 내줄 것처럼 굴던 그전과 달리, 오늘은 그리 과하지 않은 저자세를 보이며 나름의 중심을 잘 잡는 모습이었다.

실제로 그전 같았으면 송천광의 과도한 저자세 때문에 내 얼굴이 다 화끈거렸을 텐데, 오늘은 그럴 일이 없었다.

무슨 변화가 있었던 걸까.

“알겠습니다.”

내가 대꾸하자 송천광이 남궁벽과 홍민옥에게 말했다.

“같이 힘든 시간을 겪은 사이이니 가주님 내외와 남궁 소저도 같이 가서 드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제가 대접하겠습니다.”

“음…….”

갑작스러운 제안에 남궁벽이 고민하는 표정을 짓자 송천광이 바로 말을 이었다.

“가주님께서 일전에 송가장에 찾아오셨을 때, 이 송 아무개가 못난 꼴만 보이고 식사조차 제대로 대접하지 못한 게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이런 날에라도 대접할 기회를 주셔야지요. 가뜩이나 오늘 이후에는 가주 부인을 언제 다시 뵙게 될지 기약도 없는 일이니.”

엥? 남궁벽이 송가장에 찾아갔었다고?

우리의 일 때문에 찾아갔겠지만 어쨌거나 놀랄 일이다.

송천광의 제안에 대한 대답은 남궁벽이 아닌 홍민옥에게서 나왔다.

“그래요. 그렇게 해요. 대신 대접은 저희 쪽에서 할게요.”

“아이고, 아닙니다, 부인. 제가 대접하겠습니다.”

“고마워하는 쪽에서 대접하는 게 상식이잖아요. 아까도 말씀드렸듯 우리는 송 공자와 송 장주님께 매우 고마워하고 있고요.”

홍민옥의 표정을 보니 의지를 꺾지 않을 기세였다.

“아이고 그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송천광이 그렇게 대꾸했을 때쯤, 육남춘이 끼어들었다.

“굳이 옥산까지 나가지 마시고 잠룡관 접객당의 식당을 이용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아시다시피 그곳 식당의 음식들은 정갈하고 맛이 좋습니다. 고급 요리들도 있고요. 마침 오늘은 여러분 외에 접객당 이용객도 없으니 편하게 드시다가 위층 숙소로 올라가서 주무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육남춘이 바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관도들이 무사히 복귀한 만큼, 오늘은 관주인 제가 여러분께 대접하겠습니다. 물론 저는 식사 후에 자리를 비켜드릴 것입니다.”

어른들의 표정을 보니 솔깃한 모양이다. 다른 이용객이 없다고 하니 솔깃할 수밖에 없다.

참고로 접객당의 위치는 본관에서 잠룡관 정문으로 향하는 대로 쪽이다. 관도들의 생활 구역에서는 멀리 떨어진 위치인 데다가 주변에는 방풍림도 조성되어 있다.

애초에 방문객이 머물러도 관도들이 방해받지 않을 위치에 접객당을 만든 것이다. 그렇기에 소문이 나지 않는 이상, 관도들은 평소에 누가 접객당에 머물고 있는지도 모르고 지낸다.

결국 남궁벽과 송천광이 수긍했다.

그러자 남궁설이 남궁벽에게 말했다.

“저녁때까지는 시간이 좀 남아 있으니 저희는 거처에 다녀올게요. 짐도 정리하고, 거처도 정리하고, 씻기도 해야 하구요.”

“아, 그래. 그러려무나.”

남궁벽이 대꾸했고 송천광도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관주전을 벗어나 죽립을 눌러 쓰고는 계반 거주 구역을 향해 가볍게 경공을 펼쳤다.

곧 여관도 거주 구역으로 향하는 갈림길이 나오자 남궁설이 말했다.

“이따가 린아도 데리고 갈게요. 저녁때 봐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남궁설이 멀어져갔고, 그 지점부터는 나도 은밀하게 이동하며 내 거처로 향했다.

중간에 관도들과 마주치면 그들을 상대하느라 시간을 허비할 수 있으니 은밀하게 이동한 것이다.

내 거처의 사립문 앞에 도착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거처에 돌아오니 이렇게도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사립문을 살며시 열고 거처의 마당으로 들어서서 보니, 방문의 자물쇠는 열려 있고 마루 아래에는 신발 한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여자의 신발인데, 방 안에 누가 있을지는 굳이 기척을 파악해보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송유하일 것이다.

조용히 마루 앞으로 다가가서 신발을 벗으며 헛기침을 했다.

“크흠! 흠!”

방 안에서 움직임이 있더니 곧바로 방문이 열렸다.

안에서 문을 연 이는 역시나 송유하였다. 그녀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했다.

“오, 오라버니……!”

“오랜만이야, 누이.”

빙그레 웃으며 대꾸해 준 후, 마루에 올라 방 안으로 들어서며 문을 닫았다.

그러자마자 송유하가 곧바로 내게 안겼다.

“오라버니……! 오라버니……! 흐으으…….”

나를 안자마자 울고 있다.

뭐, 예상은 했다.

얘는 내가 죽으면 이 세상에서 가장 슬퍼할 사람이다.

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어마어마한 슬픔과 상실감을 느꼈을 것이며, 내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누구보다도 기뻤을 것이다.

그러던 중에 마침내 내가 돌아왔으니 저렇듯 감정이 격해질 수밖에 없다.

송유하는 한동안 내 품에서 울었고, 나는 살며시 그녀를 포옹한 채로 말없이 토닥여 줬다. 경험상 이렇게 하는 것이 이 아이의 눈물을 가장 빨리 멈추게 하는 방법임을 알고 있다.

이윽고 눈물이 잦아든 송유하가 내 품에서 벗어나며 소매로 눈자위를 닦았다.

그러나 눈자위에는 여전히 물기가 남아 있는 부분이 있어, 나는 그런 부분들을 내 소매로 살며시 찍으며 물기를 닦아줬다.

“청소하고 있었던 거야?”

“네…….”

“나 없는 동안 청소해 주느라 수고 많았겠네. 고마워, 누이.”

“단목 언니도 이곳을 많이 청소해 줬어요. 저는 오라버니가 큰일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후부터는 이 방에 오면 눈물이 너무 나서 청소를 할 수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한동안은 단목 언니에게 부탁했던 거예요.”

“아…….”

이번에도 단목지가 수고해 준 모양이다. 고마운 그녀다.

“오라버니, 어디 크게 다쳤거나 아프거나 그런 거 아니죠?”

“응. 멀쩡해.”

“아아…….”

송유하가 다행이라는 듯 탄성을 내뱉었다.

그녀에게 말했다.

“나 때문에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겠네. 미안해, 누이.”

송유하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씀 마세요. 저는 이렇듯 오라버니를 다시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더 바랄 게 없어요. 저는 정말로…….”

송유하는 또다시 목소리가 일렁였지만, 이번에는 울음을 잘 참아내는 모습이었다. 나 때문에 한 번씩 우는 것이지, 원래 눈물이 많은 아이는 아니다.

잠시 후 송유하가 말했다.

“까마득히 높은 절벽이었다고 들었어요.”

“응.”

“그런 까마득한 절벽에서, 정말로 우혜……, 그러니까 설이를 구하려고 뛰어내리신 거예요?”

“응.”

“길 공자님이 그랬는데, 아무리 오라버니라도 너무 무모해 보였다고 했어요. 가뜩이나 적들이 날린 벽력탄 때문에 절벽이 무너져 내리는 상황이었다고……. 그런데도 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으셨던 거예요?”

“확신 같은 건 없었어. 그냥 몸이 알아서 움직인 거야.”

“결과적으로 설이를 구했으니 정말 대단한 일을 하신 거고, 오라버니다운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오라버니가 그렇듯 매번 위험을 무릅쓰고 나서는 게 너무 마음이 아파요. 물론 제가 이렇게 말해도 비슷한 상황이 되면 오라버니는 또 나서겠지만…….”

표정과 어조에서 안타까움이 가득 묻어 나오고 있다.

나는 대답 대신 희미한 미소만 지어 보였다.

송유하가 분위기를 전환하듯 말했다.

“그런데 오라버니, 언제 도착하신 거예요?”

“반 시진 남짓 됐나? 관주전에 있다가 오는 길이야.”

“설이도 같이 온 거죠?”

“응. 남창지부에서부터 남궁세가주님 내외와 같이 왔고, 그분들은 지금도 관주실에 계셔. 그리고 관주실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에 아버지와 이 숙부도 오셨어.”

“아버지도 오셨구나……. 그런데 아버지는 괜찮아 보였어요?”

“응. 멀쩡하시던데, 왜?”

“오라버니 일로 너무 큰 충격을 받으셔서 한동안 식음을 전폐하셨다고 들었어요. 방 안에서 나오지 않고 며칠간 아무도 만나지 않으셨대요. 몸이 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모두가 걱정이 많았다고 해요. 그러던 중에 남궁세가주께서 동병상련을 겪는 이들끼리 위로하자는 목적으로 장원에 방문하셨는데, 그 후에야 아버지도 기운을 차리고 회복하기 시작하셨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완전히 회복되셨는지 궁금해서…….”

아하. 그래서 남궁벽이 송가장에 갔던 거구나.

어쨌거나 송천광이 나 때문에 며칠간 식음을 전폐했었다는 말을 들으니 살짝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는 육신만 송유겸일 뿐 영혼은 서무욱이기에 송천광을 실제 아버지의 개념으로 생각한 적이 없다. 그건 당연한 일이다. 나는 그저 송유겸의 역할을 무난하게 수행하기 위해 송천광을 아버지로 대해 왔을 뿐이다.

그러나 송천광에게 있어 나는 아들인 것이다.

이후에는 짐 정리를 하며 송유하가 궁금해하는 것들에 대해 대꾸해 줬다.

그러던 중에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더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송 형? 혹시 송 형 오셨소?”

오랜만에 듣는 길초량의 목소리다.

너무도 반갑다.

그는 아마도 신룡대의 정보망을 통해 내 복귀를 일찍 알아냈을 것이다.

일어서서 방문을 열며 그를 맞았다.

“어서 오시오, 길 형. 오랜만이오.”

“소소, 송 혀엉……!”

길초량은 놀람과 안도감과 반가움이 섞인 표정이었다.

그가 마루 앞에서 빠르게 신발을 벗더니 방에 있는 내게로 다가오며 양팔을 벌렸다.

포옹하려는 것이다.

“송 혀엉……!”

이에 나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최후의 순간에 옆으로 쓱 피했다.

허공에 대고 양팔을 허우적거린 길초량이 고개를 홱 돌리더니 나를 째려보며 말했다.

“아닛! 이런 상황에서까지 꼭 그렇게 피하셔야겠소?”

“하하. 남자랑 포옹하는 건 역시 별로라.”

그러자 길초량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우리 송 형 맞네, 맞아. 그 상황에서 살아 돌아온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에 혹여 요괴가 둔갑하여 송 형 행세를 하나 했는데, 저렇게 얄미운 짓을 하는 걸 보니 확실히 우리 송 형 맞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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