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안에 마교있다-296화 (296/416)

내 안에 마교있다 296

서탁을 사이에 두고 길초량이 앉았고 측면에 송유하가 앉았다.

길초량은 매우 감격한 표정을 지은 채로 내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송 형, 몸은 성한 것이오?”

“그렇소. 멀쩡하오.”

내가 미소를 보이며 그렇게 대꾸하자 길초량이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진지한 눈으로 말했다.

“살아 있어 줘서 정말 고맙소, 송 형.”

“으으, 닭살 돋으니 굳이 그런 말까지는 하지 맙시다.”

내가 농담조로 그렇게 대꾸했음에도 길초량의 표정은 여전히 진지했다.

“그래도 꼭……, 그 말을 해 주고 싶었소.”

눈동자가 일렁이고 있다.

저 모습을 보니 그동안 그가 나로 인해 얼마나 슬퍼하고 힘들어했을지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묵묵히 있던 길초량이 잠시 후에 입을 열었다.

“당시에 두 사람은 높은 절벽에서 떨어졌고, 게다가 그 직후에는 벽력탄이 터지며 수많은 낙석까지 있었소. 그야말로 절망스러운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있었소. 왜냐하면, 다름 아닌 송 형이니까.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답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송 형임을 잘 아니까.”

길초량이 말을 이었다.

“한데 송 형과 남궁 소저가 추락한 날로부터 일주일 후, 조사단에 의해 두 사람의 생존 가능성이 없다는 결론이 나왔더구려. 실제로 제갈 교관님과 남궁 부당주님이 절벽 아래에 내려가서 소리쳐 불러도 보고, 기척을 감지하려 노력도 해 봤지만, 아무런 성과도 없었다고 하셨소. 그러니 우리 입장에서는 송 형과 남궁 소저가 그대로 추락사했거나 그게 아니라면 낙석에 깔렸을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소.”

내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길초량이 물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것보다, 어마어마한 낙석과 함께 추락하던 그 상황에서, 송 형과 남궁 소저가 어떻게 살 수 있었는지가 가장 궁금하오.”

길초량의 말에 송유하도 큰 관심을 보였다. 그녀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이야기를 듣지 못한 탓이다.

길초량에게 말했다.

“뛰어내리자마자 허공에서 설 매를 끌어당겨 안았고, 그녀에게 전음을 보내어 사지로 내 몸을 꽉 붙들라고 했소. 그리고 나는 밧줄을 준비함과 동시에 안력을 최대한으로 돋워 아래쪽을 주시했소. 가까운 절벽 면에서 움푹 팬 곳을 발견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안으로 대피하기 위함이었소.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빨리 추락하기 시작한 덕분에, 위에서 떨어지는 낙석들과는 다소의 높이 차가 있었소.”

“아하.”

“그러나 한참 떨어졌는데도 우리의 낙하 경로 근처에는 움푹 팬 공간이 없었소. 그렇게 결국 바닥에 가까워졌는데, 다행히 바닥 쪽의 벽면에 피할 만한 틈새가 보이더구려. 문제는 낙하 속도를 늦추는 일이었는데, 바닥 근처에는 마땅히 밧줄을 걸 만한 부분이 없었소. 할 수 없이 바닥에서 상당히 높은 위치에 밧줄을 걸어서 낙하 속도를 잠시 늦추고는 착지할 수밖에 없었소.”

“그렇다면 착지 시의 충격이 만만치 않았겠구려? 남궁 소저의 무게까지 더해진 상황이니 말이오.”

“그렇소. 한쪽 발목을 심하게 다치고 말았소. 하지만 위에서 바위 더미가 떨어져 내리는 상황인데 어쩌겠소. 고통을 참으며 최대한의 속도로 움직일 수밖에. 결국, 아슬아슬하게 입구로 진입하여 낙석을 피할 수 있었소. 문제는 정면 방향으로 공간이 깊지 않다는 점이었소. 정면의 바위 벽과 강하게 충돌하는 걸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나는 내 등이 먼저 벽에 부딪히게끔 몸을 비틀었소. 설 매를 보호하기 위함이었소.”

“저런……. 송 형의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는 걸 고려하면 그 충격도 어마어마했겠구려. 물론 그때도 남궁 소저의 무게까지 감당해야 했을 테고……. 많이 다쳤겠구려.”

“그렇소. 그래서 한동안은 내 부상을 돌보느라 움직일 수가 없었던 것이오.”

길초량과 송유하의 표정에 안타까움이 가득 담겼다.

참고로 방금 내가 이야기한 내용은 남궁설과 말을 맞춘 내용에 따라 내 부상에 대해 과장한 것이다.

잠시 후에 길초량이 말했다.

“어쨌거나 놀랍구려. 그런 최악의 상황에서도 결국 남궁 소저를 구해내다니, 정말 큰일을 하셨소. 당시의 동료들은 모두가 최정예들이었지만, 그중 누구도 송 형처럼은 못 했을 것이오.”

“여러모로 운도 좋았고, 설 매가 잘 협조해 주기도 했소.”

내가 길초량에게 그렇게 대꾸했을 때쯤, 나는 내 거처의 사립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 기척들을 느낄 수 있었다.

기척은 세 개였으며, 모두가 내게 매우 익숙한 기척들이었다.

단목강, 단목지, 단목홍신이다.

곧 단목강의 목소리가 들렸다.

“송 공자……? 혹시 안에 계시오?”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있던 나는 곧장 방문을 열었다.

내 모습을 확인한 세 사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소, 송 공자……!”

“송 공자님……!”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그렇게 외쳤고, 나는 미소를 보이며 그들을 맞았다.

“조장님, 단목 소저, 단목 공자, 모두 오랜만입니다.”

“세상에! 정말로 살아 돌아왔구려!”

단목강이 감격한 표정으로 그렇게 외쳤다. 단목지와 단목홍신의 표정도 비슷했다.

금세 방 안으로 들어선 세 사람은 길초량, 송유하와도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방바닥에 앉았다.

이후에는 세 사람도 길초량처럼 내 몸이 성한지를 물었고, 이후에는 돌아와서 정말 다행이라는 말들을 반복하며 기뻐했다.

대강의 인사를 마친 후에 단목지에게 말했다.

“이번에도 내 거처를 정리해 주셨다고 들었소. 고맙소.”

“고맙긴요. 이렇듯 돌아오신 것만으로도 제가 더 고마워하고 싶어요. 유하한테 말은 안 했지만, 사실 저도 이곳을 청소하면서 송 공자님을 다시는 못 본다는 생각에 너무도 슬프고 힘들었거든요.”

내가 단목지를 향해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줄 때였다.

바깥이 소란스러워지는 듯하더니 또다시 몇 사람이 사립문을 열고 마당 안으로 들어섰음을 알 수 있었다.

“송 공자, 안에 계시오? 계신 것 맞소?”

밖에서 들려온 목소리의 주인공은 소충광이었다.

방문을 열고 나가 보니 네 사람이 보였다.

소충광, 황성락, 진운령, 우문직이었다.

내 모습을 확인한 네 사람도 앞선 단목세가의 세 사람처럼 눈을 휘둥그레 뜨며 거의 동시에 외쳤다.

“소소, 송 공자……!”

“하하, 다들 안녕하셨소.”

네 사람도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빠르게 다가오더니 신발을 벗고 마루 위로 올라섰다. 이후에는 내 몸을 살피며 건강한지, 다친 데는 없는지 물었다. 나는 똑같은 대답을 해 줬다.

이후에 소충광 일행을 방 안으로 들여보내고 내가 마지막으로 들어가려 할 때쯤, 또다시 여러 개의 익숙한 기척이 내 거처 쪽으로 다가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곧 사립문이 열리더니 반가운 얼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계반삼조의 아이들이었다.

“송 조교님……!”

“조교님……!”

포연월과 원추엽이 먼저 안으로 들어섰고, 뒤를 이어 명호운과 심산화가, 마지막으로 거구의 왕철양이 들어섰다.

그리고 다섯 사람의 뒤를 따라 청선곡의 제자들인 공은림과 하조혁도 모습을 드러냈다. 보아하니 일곱 명이 같이 있다가 온 모양이다.

아이들도 친우들처럼 감격한 표정으로 빠르게 마루 앞까지 다가왔다.

그들을 향해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다들 오랜만이다. 잘들 지냈지?”

“조교님……!”

“정말로 돌아오셨어……!”

아이들의 눈에 물기가 그렁그렁해졌다.

다들 내게 많이 의지하고 있었던 만큼, 이렇듯 내가 복귀하자 감정이 북받쳐 오른 모양이다.

그러던 중 갑자기 심산화가 울기 시작하더니 이어서 공은림도 울기 시작했다.

잠시 눈물이 핑 돌고 말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실제로 울어버리니 당황스럽다.

생각해 보니 두 아이가 끝내 울음을 터트린 이유를 대강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심산화는 친부에 이어 의부마저 죽은 후, 멀리에서 나를 찾아 동부지맹으로 온 아이다. 현재로서는 이 세상에서 믿고 의지할 사람이 나밖에 없는 처지다. 그러니 내 복귀가 남다른 의미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공은림과 하조혁은 근래 혈교에 의해 각자의 스승을 잃었고, 그 후부터는 나를 스승처럼 여기며 따르기 시작한 아이들이다. 그렇다 보니 쟤들도 나에 대한 감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마침 심산화와 공은림이 서로 가깝게 서 있기에, 나는 울고 있는 그 아이들에게로 다가가 어깨를 토닥여 줬다.

슬퍼서 우는 게 아닌 만큼, 두 아이는 금세 울음을 그쳤다.

송유하 포함, 오늘만 우는 애들 세 명을 달랬네.

오늘은 내가 이 거처에서 지내기 시작한 이래, 한꺼번에 가장 많은 이들이 방문한 날이다.

방 안은 이미 꽉 찼기에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 일곱 명은 마루에 앉게 했다.

나는 마루에 있는 아이들도 들을 수 있게끔, 방문 옆에 앉아서 모두가 궁금해하는 것들에 대해 얘기해 줬다.

우리가 어떻게 생존했으며 어떻게 지하를 벗어났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관주실에서 어른들에게 얘기했던 내용의 반복이었다. 남궁설과 말을 맞춘 내용이다.

남궁설과 내가 악조건 속에서 고생한 얘기를 할 때는 다들 매우 안타까워했고, 우리가 좁은 통로들을 뚫고 탐사를 반복하여 결국 출구를 찾아낸 얘기를 할 때는 다들 탄성을 내뱉었다.

이 많은 인원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내 얘기에 몰입해 있는 모습들을 보니, 재담꾼들이 무슨 재미로 그 일을 하는지도 어느 정도는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야기를 마친 후에는 친우들의 질문에도 간단하게 대꾸해 줬고, 그런 식으로 내 생존과 복귀에 관한 화제도 대강 정리되었다.

“그간 나에 관한 안 좋은 소식 때문에 수련까지 게을리했던 건 아니겠지? 시험 봐서 성취가 별로 없었으면 지옥 훈련 시킬 거야.”

내가 마루에 있는 아이들에게 그렇게 얘기하자 아이들 대부분이 흠칫하는 모습이었다. 이에 녀석들을 향해 씩 웃으며 다시 말했다.

“이거, 표정들을 보니 시험 보면 가관이겠는데?”

그러자 안쪽에서 소충광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문 공자, 단목홍신 공자와 내가 계반삼조원들의 수련을 좀 봐줬소. 물론 우리도 혈교 거점 타격 작전에서 복귀한 후부터 봐준 것에 불과하지만.”

“아, 참. 그러고 보니 세 분도 거점 타격 작전에 참여하셨었지. 다들 다친 데는 없으셨소?”

내가 묻자 소충광이 대꾸했다.

“그 작전 당시 우리는 본대에 소속되어 비교적 안전하게 실전을 치를 수 있었소. 셋 다 무사했소. 참고로 단목강 공자나 길 공자와는 달리, 본대에 속했던 우리는 작전이 종료된 다음 날에 바로 잠룡관으로 출발했소. 그래서 잠룡관으로 일찍 복귀할 수 있었던 것이고.”

“그랬구려. 무사하셨다니 다행이오. 그리고 우리 애들의 수련을 도와주신 것도 정말 고맙소.”

내가 대꾸하자 우문직과 단목홍신이 차례로 말했다.

“여름에 같이 합숙하며 친해진 후배들이니 당연히 신경 써 줘야지요.”

“합숙은 같이 못 했지만, 형님과 누나한테서 저 후배들에 대해 들었었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송 공자가 맡은 후배들인데,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당연히 도와야지요.”

이에 내가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에는 단목강이 입을 열었다.

“나도 잠룡관으로 복귀한 후부터는 계반삼조 후배들의 수련을 좀 봐줬소. 솔직히 말하면 송 공자의 일로 인해 아무런 의욕도 나지 않았었소. 그래도 삼 조 후배들이 눈에 밟혀 그냥 놔둘 수가 없더구려. 가뜩이나 나는 올해 상반기부터 이미 송 공자의 부탁을 받아 저 후배들의 수련을 틈틈이 도왔던 사이잖소. 송 공자가 조교면 나는 부조교 정도는 된다고 할까.”

단목강이 마지막 말을 하며 빙그레 웃었고, 나는 그에게도 고마움을 표했다.

“고맙습니다, 조장님.”

그러자 이번에는 송유하가 말했다.

“평소에도 저 일곱 명이 서로 도와가며 열심히 수련했다고 알고 있어요. 단목 언니와 린이가 꾸준히 봐줬고, 길 공자님도 복귀한 후부터는 여러 차례 지도해 주셨다고 들었구요.”

그러자 단목지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저는 그냥 비무를 하고, 비무가 끝난 후에 보완하면 좋을 것 같은 부분에 대해 조금씩 얘기해 준 정도였어요.”

내가 고맙다는 의미로 미소를 지어 보이자 이번에는 길초량이 말했다.

“나는 그냥 암기술을 조금씩 봐줬던 정도요. 많이 신경 써 주진 못했소. 내가 맡고 있는 이 조의 아이들도 있고 해서.”

“그래도 고맙소.”

이렇듯 얘기를 듣고 나니, 모두 좋은 친우들임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잠시 후 소충광이 모두에게 말했다.

“그나저나 오늘은 송 공자와 남궁 소저가 이렇듯 무사히 귀환한 날인데, 기념하지도 않고 그냥 넘어간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 아니겠소?”

저건 술 마시자는 얘기다.

그러자 술꾼인 길초량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대꾸했다.

“당연한 말씀을.”

그러자 또 다른 술꾼인 우문직이 말했다.

“마침 제 거처에 좋은 술들이 많이 있습니다. 갑반 거주 구역이라서 거처도 넓으니 그쪽에서 모이는 게 어떻겠습니까?”

“오! 그게 좋겠구려!”

소충광이 그렇게 대꾸하자 다른 친우들도 하나같이 수긍하며 부지런히 고개를 끄덕였다.

친우들에게 말했다.

“그게 좀 어려울 것 같소. 실은 지금 남궁 가주님 내외분과 우리 아버지가 잠룡관에 와 계시는데, 저녁에 접객당에서 같이 식사하자고 하셔서 말이오. 아무래도 두 집안의 가족들이 그간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고 해서…….”

“아, 하긴 그렇겠구려. 송 공자의 부친에게는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들이 살아 돌아온 날인데, 그런 아들과 더 오래 시간을 보내고 싶으시겠지요.”

소충광의 대꾸였다.

다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있지만, 역시나 아쉬움이 많이 남은 기색들이었다.

가족들만큼은 아니겠지만 친우들에게도 힘겨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런 만큼 나와 남궁설의 생존 소식을 접한 후부터는 친우들도 우리의 귀환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을 테고.

이에 나는 친우들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저녁 식사 후에는 술자리를 이어갈 분위기인데, 아까 말씀하시는 걸 보니 그 자리가 짧게 끝날 것 같지는 않았소. 그러니 술자리에 여러분을 부르고 싶다고 말씀드려 보겠소. 모처럼 잠룡관까지 오셨고 하니 자식들의 친우들을 보고자 하는 마음도 있으시지 않겠소? 아마도 내 부탁을 들어주실 가능성이 크니, 저녁 식사 후에 조용히 기다리고들 계시오.”

내 말에 친우들의 표정이 다시 환해졌다.

다들 좋아하는 걸 보니 내 기분도 좋다.

이어서 명호운에게 말했다.

“호운이 너는 내 전령이니 저녁 식사를 일찍 마치고 접객당 근처의 대로에서 대기하고 있어. 어른들의 허락이 떨어지면 바로 네게 알릴 테니, 너는 선배들에게 알리도록.”

“알겠습니다, 조교님.”

잠시 후 친우들은 모두 돌아갔고, 송유하도 남궁설의 거처에 들르겠다며 떠났다.

나는 씻고 의복을 갈아입은 후 시간에 맞춰 접객당으로 향했다.

접객당의 넓은 마당으로 들어서자 마당 구석의 작은 연못 옆에 송유하와 남궁설, 선우린이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송유하는 남궁설의 거처에 갔다가 두 소녀와 같이 온 모양이다.

이윽고 나를 발견한 선우린이 외쳤다.

“송 오라버니……!”

“하하, 린 매. 잘 지냈어?”

웃으며 대꾸하자 선우린이 빠르게 다가오더니 두 손으로 내 한 손을 감싸 쥐었다.

“설아한테서 다 들었어요. 송 오라버니가 많이 다쳤던 것도, 송 오라버니가 많이 고생했다는 것도…….”

“보다시피 지금은 이렇듯 멀쩡해.”

“네. 그것도 설아한테서 들었어요. 두 사람 다, 정말 다행이에요…….”

“여러모로 많이 힘들었지? 미안해.”

내 말에 선우린이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

“그런 말 말아요. 송 오라버니가 미안해할 일이 아니잖아요.”

내가 웃어 보이자 선우린도 생긋 미소를 지었다.

“어른들이 아직 안 오셔서 밖에 있는 거야?”

“네. 다들 오시면 같이 들어가려구요.”

내가 고개를 끄덕였을 때쯤, 두 사람이 접객당의 마당으로 들어섰다.

송유백과 송유상이었다.

송천광이 연락했을 것이다. 가족 식사인데 저 둘이 안 오면 그것도 남궁세가주 내외나 육남춘 등에게는 이상하게 보일 테니까.

나를 발견한 송유백이 송유상을 놔두고 혼자서 내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선우린이 송유백과 송유상을 향해 한 차례씩 짧게 고개를 숙여 보이더니 눈치껏 자리를 피했다. 송유백과 송유상도 선우린을 향해 마주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었다.

두 오라비를 발견한 송유하가 내 쪽으로 걸음을 떼자 송유백이 그녀를 향해 손을 펼쳐 보였다.

오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그러자 송유하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대로 남궁설과 선우린 근처에 머물렀다.

이윽고 내 앞에 다다른 송유백이 가만히 나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우리 관계가 회복되기에는 늦은 관계라는 거, 잘 안다. 우리는 불편한 사이지. 하지만 너와 불편한 관계라고 해서, 네가 어딘가에서 콱 죽어 버리기를 바라면서 사는 건 아니야. 적어도 네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그게 사실이 아니기를 바랐었다. 네가 믿건 안 믿건, 이건 진심이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소.”

내가 건조한 말투로 대꾸하자 송유백이 다시 입을 열었다.

“몸 성하게 살아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그걸로 됐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잠룡관에 오셨고, 저녁 식사 자리에 부르셨다고 해서 온 것뿐이야. 우리는 저녁 식사가 끝나면 상황을 봐서 적당히 빠질 거다. 단, 함께하는 동안에는 무난한 모습을 보여야겠지. 관주님과 남궁 가주님도 계시는 자리니까. 아버지 망신시키고 싶은 게 아니면.”

“알고 있소.”

나는 이번에도 건조한 음성으로 대꾸해 줬다.

그러자 송유백이 내 뒤쪽의 먼 하늘에 시선을 두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천천히 돌아서서 송유상 쪽으로 향했다.

한숨을 쉬던 송유백의 눈동자에서 느낄 수 있었던 건 회한이었다.

나와의 관계를 이렇게 만든 본인의 과거에 대해 후회하는 듯했다.

사실 지금의 내 입장에서 송유백과 송유상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들이라, 그들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에 대해 조금은 용서해 준다고 해도 별 상관은 없다.

그러나 용서한다 해도 결코 쉽게 용서할 일은 아니다.

쉽게 용서하면 옛날 버릇도 쉽게 나온다.

제대로 반성하고 있는지, 반성했다는 게 실제 태도에도 자연스럽게 드러나는지, 앞으로도 오래오래 두고 볼 것이다.

어른들이 도착하자 선우린이 쪼르르 달려가더니 남궁벽과 홍민옥에게 먼저 인사했다.

“백부님, 백모님, 오랜만에 뵈어요.”

“린아, 오랜만이로구나. 허허허.”

“얘 좀 봐. 볼 때마다 쑥쑥 커 있더니 이제는 다 컸네? 곧 시집간다고 하겠어.”

이어서 선우린이 송천광에게 예를 취했다.

“송 장주님, 안녕하셨지요? 일전에 가족 모임 때 뵀었는데 그때는 제가…….”

“아이고, 선우 소저. 오랜만이네. 그렇지 않아도 그때 봤던 유은무 소저가 자천성 대협의 손녀인 선우린 소저라는 얘기를 듣고는 깜짝 놀랐었다네.”

“사정상 가명을 쓰던 때라서 어쩔 수 없었어요. 죄송해요, 장주님.”

“아이고, 죄송은 무슨. 어쨌거나 반갑네. 반가워. 남궁 소저나 선우 소저의 본래 용모를 보기는 오늘이 처음인데, 둘 다 선녀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구먼. 허허헛!”

“후훗. 그래 봐야 저는 송 언니만 못해요.”

“허헛! 셋 다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것으로 하세.”

선우린은 이어서 육남춘과 노양홍에게도 인사를 마쳤다.

그러자 이번에는 송유백, 송유상, 송유하가 남궁벽과 홍민옥에게 다가갔다.

“대남궁세가의 가주님과 가주 부인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송유백이라 합니다.”

송유백 놈, 포권하는 손이 상당히 심하게 떨리고 있다.

천하제일세가의 가주 앞이라 지나치게 긴장한 것이다.

“우리 첫쨉니다.”

송천광이 끼어들어서 그렇게 말하자 남궁벽이 인자한 미소를 보이며 송유백에게 말했다.

“오호, 그래. 송가장의 소장주셨군. 반갑네.”

그러자 이어서 송유상이 포권했다.

“저는 송유상이라 합니다.”

송유상의 포권한 손은 송유백보다 더 심하게 떨리고 있다.

한심해 보이기는 하는데, 사실 한심하게만 볼 일은 아니다.

남궁세가주를 처음으로 대하는 자리에서는 사실, 저러는 게 보통일 테니까.

“이 아이가 셋쨉니다.”

이번에도 송천광이 끼어들어서 그렇게 말하자, 남궁벽이 인자한 미소를 지은 채로 송천광에게 말했다.

“그래. 셋째 공자셨구먼. 반갑네.”

송유백과 송유상을 바라보는 남궁벽의 분위기를 보니, 내가 저 두 형제와 친하지 않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듯했다.

남궁벽이 송천광에게 말했다.

“아드님들이 다들 송 장주를 닮아 훤칠한 미남들이구려. 아들들 생각만 해도 든든하시겠소.”

“허허헛. 다들 건강하게 잘 자라 줘서 그 정도만으로도 고마워할 따름입니다.”

송천광이 그렇게 대꾸했을 때쯤, 홍민옥이 송유하를 바라보며 말했다.

“소저가 바로 송유하 소저겠군요.”

“예, 가주 부인. 송유하라 합니다.”

송유하도 포권하며 그렇게 인사했는데, 신기하게도 그녀의 손은 전혀 떨리지 않고 있다.

쟤는 대체 뭐야?

나만 그 사실을 알아챈 게 아닌 듯, 남궁벽의 표정에도 이채가 담긴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홍민옥이 말했다.

“설아, 린아와 매우 친한 사이라고 들었어요. 좋은 언니라고 하더군요. 이 애들과 잘 지내 줘서 고마워요.”

“제가 오히려 설이하고 린이한테서 많은 도움을 받으며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남궁벽이 말했다.

“내 얼핏 들었는데 송 소저의 궁술이 그렇게 뛰어나다지?”

송유하가 민망해하며 대꾸했다.

“과, 과찬이십니다. 아직 미흡한 부분이 많습니다.”

“허허, 겸손하구먼. 듣자하니 제갈 교관이 그 재능을 높이 살 정도라고 하던데. 제갈 교관은 명궁이라, 궁술에서만큼은 평가가 박하다고 알고 있거든.”

“교관님께서 잘 가르쳐 주신 덕분입니다. 그리고 아직 배워야 할 게 많습니다.”

그러자 남궁벽이 흐뭇한 미소를 보이더니 송천광에게 말했다.

“아까워서 나중에 어떻게 시집보내시려오?”

“허허헛. 그건 가주님도 마찬가지시잖습니까. 어쨌거나 저는 그냥 본인이 가겠다고 할 때, 본인이 선택한 사람에게 보낼 생각입니다.”

저 말을 들으니 송천광이 변하긴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 같았으면 어떻게든 송유하를 좋은 집안으로 시집보내려 했을 것이다. 그래야 송가장이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데 저렇게 말하다니.

현실적으로 굳이 송유하를 정략결혼에 동원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차피 온 백도에서 주목받고 있는 내가 있으니까.

남궁벽이 대꾸했다.

“나도 저 아이가 좋다고 하는 사람에게 보낼 것이오. 그러니 우리는 이제 딸들의 남자 보는 눈만 믿고 있을 수밖에 없겠구려. 허허.”

“그러게 말입니다. 허허허.”

대화하는 분위기를 보니 남궁벽과 송천광은 아까보다 더 친해진 느낌이다.

어른들과 함께 접객당의 식당으로 들어섰다.

식탁에는 이미 따끈따끈한 요리들이 차려지고 있었다. 육남춘이 접객당에 미리 준비를 시켰던 모양이다.

모두가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며 맛있게 먹고 마셨다.

미리 얘기했던 대로 송유백과 송유상과 나는 어른들 앞에서 무난하게 서로를 대했다.

식사가 마무리되자 육남춘과 노양홍이 먼저 자리를 비웠고, 이어서 송유백과 송유상이 각각 수련과 공부를 핑계로 자리를 비웠다.

나는 그쯤에서 송천광에게 말을 꺼냈다.

“아버지, 실은 다른 친우들도 저와 설 매가 무사히 복귀한 것을 함께 기념하고 싶어 합니다. 친우들도 그간 저와 설 매 걱정을 많이 했던지라…….”

“아, 그래? 뭐, 이 아비는 괜찮다. 그전에 봤던 얼굴들도 있을 테니 오랜만에 인사도 나눌 수 있겠지. 이런 날이 흔한 것도 아니고.”

그러자 남궁설이 즉시 남궁벽에게 물었다.

“아부지, 괜찮죠? 다들 좋은 친우들이에요. 지난여름에 목숨 걸고 함께 싸웠던 친우들이기도 하구요.”

남궁설이 말한 지난여름의 일이란 청여홍의 장원에 갔다가 혈교의 습격으로 인해 죽을 뻔했던 일이다.

“괜찮다마다.”

“어떤 친우들일지 궁금하구나.”

남궁벽과 홍민옥의 허락까지 떨어졌기에 나는 즉시 접객당을 벗어나 명호운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친우들이 접객당 식당으로 들어섰다.

모두가 차례로 어른들에게 예를 취하는데, 송천광은 아는 얼굴들 몇 명과는 알아서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이었다.

이후에 나는 송천광이 모르는 친우들을 한 명씩 소개했다. 그 중에서 송천광이 특별히 더 반가워한 이들은 단목강, 소충광, 우문직이었다.

아무래도 세 사람은 각자의 세가와 문파에서 소가주와 소문주의 신분인 탓이다. 그 세 사람 앞에서는 ‘아이고’ 소리가 계속 나왔다.

길초량을 소개할 때도 매우 반가워했는데, 이는 사파와의 전쟁 이후로 길초량의 이름이 내 이름과 함께 한동안 많이 언급됐던 탓이다.

인사를 마친 후에는 모두가 즐겁게 술을 마셨다.

송천광은 물론, 남궁벽과 홍민옥도 친우들을 보며 매우 흡족해하는 분위기였다.

그날의 술자리는 자정 무렵까지 이어지다가 마무리되었고, 다음 날부터는 평범한 잠룡관 생활이 다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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