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297
눈을 떴는데 사위가 아직 어두웠다.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서 하늘을 보니 인시 정(오전 4시)쯤이었다.
어제 술자리에서 제법 많이 마시기는 했는데, 돌아와서 운기조식으로 주기를 대부분 몰아낸 후에 잠을 청했었다.
덕분에 잠을 많이 안 잤는데도 몸 상태가 무겁지 않았다. 근래 내공 경지가 매우 높아진 효과이기도 하다.
해가 짧은 계절이기에 구보하러 간다고 해도 묘시 정(오전 6시)쯤에 출발하면 된다.
그런데도 내가 이렇듯 일부러 일찍 일어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방으로 돌아와서 벽장의 문을 열고, 마른 천에 각각 싸서 보관해 둔 두 가지의 물품 중 하나를 들고 부엌으로 향했다.
부엌문을 닫고 유등을 켜고는 약재를 달이는 작은 항아리를 꺼내어 적당량의 물을 채웠다. 그 후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화력을 약하게 하여 항아리의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이후에는 벽장에서 꺼내 온 마른 천을 풀었다.
건조시킨 은설영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야명석 동굴에 있을 당시, 폭포 쪽의 출구를 찾고 나서 동굴로 다시 돌아가는 길에, 남궁설이 한 가지 제안을 했었다.
은설영지와 삼령천선초를 조금씩 챙겨 가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어차피 우리는 이곳에서 충분할 만큼 공력이 상승했어요. 게다가 이제는 출구도 찾았으니 식량 걱정도 사라졌죠. 그러니 조금씩 챙겨 가서 나는 린아에게 먹이고, 오라버니는 송 언니한테 먹이면 좋잖아요. 지금 두 사람에게 사오 년 공력이라도 더해지면 그게 어디예요.」
나로서는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 나는 남궁설의 양보 덕에 그녀보다 훨씬 많은 양의 은설영지와 삼령천선초를 복용한 터였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그 제안을 거부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송유하에게 먹이는 것이니 그리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송유하의 내공이 상승한다는 건, 그녀의 궁술 실력이 향상된다는 뜻이다. 청여홍의 장원에서도 확인한 바 있지만, 그녀의 궁술은 전력에 매우 큰 보탬이 된다.
이후에 우리는 은설영지와 삼령천선초를 통풍이 잘되는 천에 감싸, 이동 중에도 잘 건조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노력 덕분에 그것들을 잠룡관까지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지금 은설영지만 꺼내왔는데, 벽장 속에는 삼령천선초도 있다.
약한 불에서 정성스럽게 달이다가 적당한 시점에 불을 끄고 내용물을 식혔다.
이윽고 내가 예상한 시각이 되자 밖에서 인기척이 있더니 송유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라버니, 저예요. 부엌에 계시는 거예요?”
구보하러 가기 위해 온 것이다. 부엌의 유등 불빛이 새어 나가고 있었을 테니 내가 이곳에 있는지를 물은 것이고.
“어, 부엌이야. 들어와, 누이.”
내가 대꾸하자 송유하가 부엌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어제 술기운은 잘 몰아내고 잤어?”
여자 술고래인 만큼 송유하도 어제 제법 많이 마셨다.
참으로 대단하게도, 얘는 어른들 눈에 안 띄는 방식으로 홀짝홀짝 많이 마셨다.
그러면서도 얼굴은 멀쩡했으니, 아마도 송천광은 자신의 딸이 분위기에 맞춰 몇 잔밖에 안 마신 것으로 알 것이다.
어쨌거나 나는 어젯밤에 헤어질 때 송유하에게 취기를 꼭 몰아낸 후에 자라고 얘기했었다.
송유하는 그게 구보를 위해서라고 생각했을 테지만, 나는 이걸 먹일 계획이었다.
“네.”
“일어나서 운기조식도 한 차례 취했고?”
이 또한 내가 어젯밤에 헤어지기 전에 얘기했던 내용이다.
“네.”
이에 내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송유하가 시선을 작은 항아리 쪽으로 돌리더니 물었다.
“그런데 뭔가를 달이고 계셨던 거예요?”
“응.”
“뭔데요?”
“누이 먹일 보약.”
“네? 갑자기 보약이라니…….”
이에 나는 항아리의 입구에 덮여 있던 천을 걷어낸 후, 옆에 준비해 뒀던 사발에 탕약을 대부분 따랐다.
이후에 사발을 송유하에게 건넸는데 그녀는 선뜻 받아들지 못하고 내 얼굴만 바라볼 뿐이었다.
“받아. 얼른 마셔. 온도도 적당할 거야.”
“보약이면 오라버니가 드시지 왜…….”
“나는 많이 먹었어. 그러니 빨리 받아서 쭉 마셔. 얼른.”
내가 눈매를 살짝 찡그리며 말하자, 송유하가 빠르게 사발을 받아 들더니 탕약을 마시기 시작했다.
행여라도 내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눈칫밥을 많이 먹고 자란 덕에 눈치 하나는 하여튼 빠르다.
곧 송유하가 탕약을 비웠다.
“이 항아리 안에 건더기 있으니까 그것도 꺼내 먹어. 그 후에는 항아리 안에 약간 남아 있는 탕약도 다 마시고 방으로 가자. 참고로 약 기운을 흡수해야 하니 오늘 구보 시간에는 운기조식을 하게 될 거야.”
송유하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탕약 안에 있는 은설영지를 꺼내 들었다. 그러더니 물었다.
“버섯이네요? 이게 무슨 버섯이에요?”
“은설영지라는 거야. 남들에게는 알리지 말고.”
“은설영지…….”
표정을 보니 뭔지 모르는 것 같은데, 어쨌거나 그녀의 손은 은설영지를 먹기 좋은 크기로 찢는 중이었다.
“꼭꼭 씹어 먹어.”
“네.”
송유하가 은설영지를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어 삼키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녀가 은설영지를 전부 먹었기에, 나는 항아리 안에 조금 남아 있는 달인 물도 사발에 부어 주었다.
송유하는 그것까지 깨끗하게 비웠고, 우리는 방 안으로 향했다.
송유하가 운기조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조용히 그녀의 기운과 내력을 탐지해 보니, 고천비룡결에 의해 운용되는 진기의 느낌이 이전보다 훨씬 중후하고 유연했다.
내가 없는 동안 고천비룡결의 성취가 한 단계 더 상승한 것이다.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 아이가 이렇듯 스스로 성취를 상승시킨 모습을 보니 너무도 대견스럽다.
한 차례의 운기조식을 마치고 눈을 뜬 송유하는 놀란 표정이었다.
“오라버니, 이거…….”
저러는 이유는 예전에 백년음양선과의 줄기와 잎을 복용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공력이 상승하고 있음을 느낀 것이다.
“알아챘으면 체내에 약 기운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계속해야겠지?”
내가 미소를 보이며 그렇게 말하자 송유하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금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연속으로 몇 차례의 운기조식을 마친 송유하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녀의 눈동자에서 정광이 가득 느껴졌는데, 그 기운은 잠시 머물다가 서서히 안으로 갈무리되었다.
“공력이 상승한 게 확실하게 느껴져요. 이 정도면 상당히 상당히 귀한 영초였을 텐데 오라버니가 드시지 않고 왜…….”
“말했잖아. 나는 많이 먹었다고.”
송유하는 난처해하며 대꾸하지 못했다. 내가 일부러 챙겨 준 것임을 모를 리 없기에 저런 표정인 것이다.
잠시 후에 그녀가 입을 열었다.
“감사해요, 오라버니. 이런 귀한 걸 챙겨 주시고…….”
이에 나는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인 후에 말했다.
“가서 수업 잘 받고, 저녁 구보 때 봐.”
새벽 구보가 거의 끝났을 법한 시간이라서 그렇게 말한 것이다.
“네.”
송유하가 대꾸한 후에 일어나서 방을 나섰는데, 뒤에서 보니 발걸음이 가벼운 느낌이었다.
저녁 구보 시간에는 삼령천선초를 달여 줄 것이다.
* * *
오전에는 공은림과 하조혁을 실내 연무장으로 불렀다.
공은림은 실내 연무장에 오자마자 죽통 하나를 내게 건넸다.
“이거, 곁에 두고 목마를 때마다 드세요.”
공은림이 준비하는 차가 효능이 좋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만큼, 나는 흔쾌히 죽통을 받아 들고는 일단 한 모금을 마셨다.
미지근해서 마시기 편했다.
맛은 약간 쌉싸름했다.
건강해질 것 같은 맛이었다.
얘들이랑 함께 있으면 이게 좋단 말이지.
두 아이의 무공을 점검했다.
신법인 쾌류표와 보법인 쾌류보를 먼저 점검했는데, 두 달 전에 내가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와 비교하면 완전히 다른 애들로 느껴질 정도로 발전한 모습이었다.
곧바로 소비도술과 철비정술도 점검했다.
점검하기 전에 녀석들의 손을 유심히 살폈는데, 손가락 사이에 굳은살이 단단하게 박여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소비도술과 철비정술을 수련을 열심히 했다는 증거다.
과연 그 성과는 어느 정도일지 궁금했는데, 제자리에 서서 날리는 소비도와 철비정은 거의 정확하게 과녁의 정중앙에 꽂아 넣는 모습이었다.
근거리, 중거리, 장거리를 모두 시험해 봤는데 장거리의 정확도가 약간 부족한 정도일 뿐, 중거리까지는 칭찬해 주고 싶을 정도로 훌륭한 모습들이었다.
이후에는 소비도와 철비정을 하나씩 번갈아 가며 던지라는 주문도 해 봤는데, 그 정확도 또한 한 종류만 던질 때와 비교해서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이는 이 아이들이 소비도와 철비정의 무게 중심 차이를 제대로 인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움직이면서 암기를 날리는 것도 시험해 봤는데, 그것만큼은 아직 서툴렀다.
다만 어느 정도의 감은 잡은 모습이라, 내가 본격적으로 지도하기 시작하면 금방 익숙해질 것 같다.
시험을 마친 후에 두 아이에게 말했다.
“수련들 열심히 했구나? 보법과 신법 모두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낫던데?”
칭찬을 들은 두 아이의 표정이 환해졌다.
나는 떠나기 전에 보법인 쾌류보의 지도는 명호운에게 맡겼었고, 신법인 쾌류표의 지도는 포연월과 원추엽에게 맡겼었다.
들어 보니 세 사람이 기초 과정 지도를 잘해 준 모양인데, 예상했던 대로 신법의 성취가 더 높았다.
아무래도 포연월과 원추엽이 무공 경지도 높고 무학에 대한 이해도도 더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가르칠 때도 이해시키기가 더 수월했을 것이다.
두 아이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내 예상을 더 크게 뛰어넘은 건 암기술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여전히 기초 단계일 거로 생각했거든. 그런데 방금 보니 기초 단계는 거의 넘었더구나.”
내공이 기본적으로 받쳐주니 이렇듯 발전도 빠른 것 같다.
공은림이 상기된 표정으로 대꾸했다.
“매일, 사제와 함께 밤늦게까지 소비도와 철비정을 던지며 수련했습니다. 그렇듯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조교님에게는 부족해 보이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듯 칭찬을 들으니 너무 기쁩니다.”
그러자 하조혁이 입을 열었다.
“철비정술 수련은 선우린 선배가 많이 도와줬고, 소비도술 수련은 포연월 소저가 어느 정도의 도움을 줬습니다.”
선우린은 올해 초부터 철비정술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이미 지난여름 청여홍의 장원에서 수준급의 실전 실력을 보인 바 있다. 그래서 떠나기 전에 선우린에게 철비정술 지도를 부탁했던 것이다.
포연월도 올해 초부터 명호운, 심산화와 함께 소비도술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역시나 세 사람 중에서 성취 속도가 가장 빨랐다. 기본 무공 실력이 뛰어나고 감각이 좋기 때문이다.
그런 포연월이다 보니 소비도술의 기초 과정을 돕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공은림이 말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길초량 조교님께서 여러 차례 소비도술과 철비정술을 지도해 주셨습니다. 저희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잘못된 습관들을 교정해 주셔서 정말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현역 신룡대원이 봐줬으니 당연히 큰 도움이 되었겠지.
어쨌거나 기초 과정이 거의 끝났으니 앞으로는 지도하기도 더 수월할 것이다.
남은 오전 시간에는 두 아이의 소비도술과 철비정술을 다듬어준 후 수업을 마무리했다.
오후에는 계반삼조원들을 차례로 불렀다.
먼저 원추엽과 포연월을 불러, 한 명씩 비무 형식으로 직접 상대하며 그간의 발전 정도를 점검했다.
두 사람은 실전을 염두에 두고 수련했다는데, 직접 상대하면서 보니 과연 반응 속도도 더 빨라졌고 시야도 넓어졌으며 순간 판단력도 좋아진 모습이었다.
비무 시에 암기술도 점검해 보니 원추엽의 유엽비도술은 더욱 묵직해졌고, 포연월 또한 소비도술이 상당히 예리해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여름, 청여홍의 장원에서 겪은 사건으로 인해 이 두 아이는 실전에 대한 마음가짐이 매우 진지해졌다.
그 진지함이 앞으로도 이 두 아이의 꾸준한 발전을 이끌 것이다.
다음에는 명호운을 불러서 무공 전반을 점검했다.
점검하면서 보니 신법이 원래 그가 익히고 있던 신법이 아니라 내가 창안한 쾌류표였다.
의아해서 묻자 명호운이 대꾸했다.
“아, 추엽이랑 연월이가 제 신법을 쾌류표로 바꾸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더군요. 두 사람이 공 소저와 하 공자를 지도하면서 보니 쾌류표는 깊이가 있어서 이후에 성취가 높아졌을 때 훨씬 더 빛을 발할 거라고 했습니다.”
나는 공은림과 하조혁의 신법을 대신 지도하게 할 목적으로 원추엽과 포연월에게도 쾌류표를 가르쳤었다.
원추엽과 포연월은 무학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만큼 금세 쾌류표의 가치를 알아본 것이다.
“심지어 추엽이와 연월이도 보조 신법으로 열심히 익히고 있다고 하기에 저도 바로 익히기 시작했습니다. 쾌류표는 가뜩이나 조교님께서 나중에 더 발전된 형태로 보완해 줄 가능성도 크니, 여러모로 그편이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 철양이와 청여홍 선배도 같이 배웠습니다.”
청여홍의 경우에는 선우린이 데려와서 동참시켰다고 한다.
어차피 청여홍도 여름 방학 때부터 본신 무공을 모조리 쾌류무로 바꿨었고, 만족스러워했었다. 그렇다 보니 신법을 쾌류표로 바꾸는 일에도 적극적이었을 것 같다.
명호운은 쾌류보의 이형(二形)을 익혔는데, 점검해 보니 그 성취가 상당히 높았다.
“저는 조교님께서 지시하셨던 대로 공 소저와 하 공자의 쾌류보 수련을 꾸준히 도왔는데, 그러다 보니 어떻게 하면 두 사람을 더 잘 이해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더군요. 그렇듯 고민하다 보니 스스로 더 연구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제 이해도도 높아진 게 아닌가 합니다.”
“가르치다 보면 오히려 자신이 더 배우게 되는 것들이 있는 법이지.”
내가 의도했던 대로 되었기에 흐뭇했다.
명호운의 소비도술은 포연월의 성취에 비하면 삼분지 이 수준이었다.
아무래도 명호운은 포연월과 비교하면 소비도술에 투자할 시간이 부족했을 수밖에 없다. 아직 다른 쾌류무들의 성취를 부지런히 올려야 하는 단계인 탓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현재의 소비도술 성취도 훌륭한 편이다.
명호운은 심법인 쾌류심결과 창법인 쾌류창법에서 막히는 곳이 있다고 하여, 이후의 시간에는 그런 부분들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해 주고 수업을 마무리했다.
심산화는 장기인 은잠술과 신법은 거의 수련하지 않고, 다른 부족한 무공들을 중점적으로 수련했다고 한다.
시험해 보니 쾌류소검예와 쾌류보에서 많은 발전이 있었음을 알만했다. 둘 다 여름까지만 해도 엉성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는데, 지금은 제법 틀이 잡혀 있었던 것이다.
소비도술은 명호운보다 성취가 낮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그 반대였다. 소비도술의 성취로만 따지면 포연월과 명호운의 중간쯤이었다.
심산화의 경우에는 애 같은 면이 많아, 혼자서 하는 수련은 아무래도 본인이 좋아하는 무공 위주로 했을 가능성이 크다. 참고로 심산화는 친부와 의부의 영향을 받아 처음부터 비도술을 좋아했었다.
이제부터는 내가 지도하게 됐으니 소검술과 보법 위주로 수련시켜야겠다.
왕철양이 가장 많이 나를 놀라게 했다.
쾌류선풍쌍부법, 쾌류보, 쾌류표, 유엽비도술 등 모든 분야의 성취가 크게 상승해 있었던 것이다.
상승 폭으로만 보면 내가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 일곱 명 중에서 가장 큰 수준이었다.
이는 다른 아이들이 덜 노력한 게 아니라, 왕철양이 무지막지하게 노력한 결과다.
“철양이 너……, 잠은 자면서 수련한 거야?”
여러 분야에서 저렇듯 많은 발전을 이뤘다면 애초에 시간 투자 또한 많았을 수밖에 없다.
“그동안 최대로 잔 게 하루에 두 시진(4시간) 정도였습…….”
“인마! 힘들게 수련했으면 푹 자야지, 그렇게 적게 자면…….”
입버릇처럼 성장에 좋지 않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왕철양은 더 이상의 성장이 필요치 않은 거구다. 건강에 좋지 않다는 말로 바꾸려고 했는데, 혈색이 나쁜 것도 아니다.
왕철양이 내 눈치를 살피며 대꾸했다.
“소, 송구합니다. 오, 오늘부터는 더 자겠습니다.”
이에 나는 녀석을 잠시 바라보다가 말했다.
“왜 그렇게 무리한 거야?”
“송구합니다. 어느 시점부터 형(形)이 몸에 익더니, 이후에는 수련할 때마다 스스로 나아지고 있다는 게 체감이 되었습니다. 제가 무공을 익히기 시작한 후로 그런 느낌을 받기는 처음이라, 너무 즐거운 나머지 수련에 계속 빠져들어서…….”
저런 종류의 희열에 빠져서 수련했다면 그건 나쁘지 않다. 오히려 좋은 일이다. 그동안에는 성취가 집중적으로 상승하기 때문이다.
“거의 두 달간을 그렇게 적게 자며 수련했다니……. 피로가 누적돼서 힘들거나 하지 않았어?”
“무, 물론 수련 후에는 몸이 피곤했지만, 쾌류심결을 몇 차례 운기한 후에 자고 일어나면 딱히 피로감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간혹 몸이 무겁게 느껴지는 날이 있긴 있었는데, 그런 날에는 기상 후에 운기조식을 더 오래 했습니다. 그러고 나면 몸이 무거웠던 느낌이 사라져서, 무리 없이 몸 쓰는 수련을 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왕철양이 내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었다.
“제가 그전에 익히고 있던 심법과 비교하면 쾌류심결 쪽이 훨씬 더 신묘한 것 같습니다. 상쾌한 느낌이 들다 보니 운기조식하는 시간마저도 즐거워져서…….”
쾌류심결을 창안할 때 내가 첫 번째로 중점을 둔 요소는 축기 효율이었다. 심법에서 축기 효율이 최우선시되어야 하는 건 당연하다.
그리고 내가 두 번째로 중점을 둔 요소가 바로 회복력이었다. 회복력이 좋은 심법의 장점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그 부분을 중요시했던 것이다.
당시에 회복력 쪽으로 유명하다는 백도의 여러 심법을 참고했었고, 회회심공의 묘리도 일부 참고했었다.
왕철양의 경우에는 타고난 힘, 체력, 신체 조건 등이 워낙 좋다 보니, 쾌류심결의 성취 자체는 다른 애들과 비슷한데도 회복력의 효과를 더 많이 보는 게 아닐까 싶다.
참고로 쾌류심결을 창안할 때 내가 세 번째로 중점을 뒀던 요소가 바로 ‘쾌’의 묘리였다.
이는 그동안 내가 창안했던 모든 쾌류무의 무공들을, 심법을 통해 더 안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함이었다.
왕철양에게는 쾌류선풍쌍부법의 다음 단계를 지도해 준 후에 돌려보냈다.
왕철양이 떠난 후에 실내 연무장에 온 사람은 청여홍이었다.
청여홍은 계반이 아니라서 낮에는 보통 수업이 있다. 그래서 수업 시간이 끝난 후에 이쪽으로 오게끔 포연월을 통해 전달했던 것이다.
전체적으로 쭉 점검을 해 봤더니, 청여홍 또한 그간 꾀부리지 않고 부지런히 수련해 왔음을 충분히 알 것 같았다.
부잣집 아가씨라 적당히 해도 될 것 같은데 오히려 굉장히 열심히 수련하는 그녀다.
그리고 나는 청여홍의 이런 면을 높이 산다.
점검을 마친 후에는 청여홍에게도 쾌류무의 다음 단계들을 지도해 줬다.
무공 지도가 끝나자 청여홍이 내게 말했다.
“설이가 그러는데, 조만간 우리 상단의 남창지점으로 귀한 물품이 배달될 거라고 하더군요. 송 공자님의 이름으로.”
“아, 그렇지 않아도 그 얘기를 하려던 참이었소.”
“그 귀한 물품이라는 게 뭐예요? 설이한테 물어봐도 가르쳐주지는 않고, 송 공자님에게 직접 들으라고 하더군요.”
이에 나는 우리 주변에 기운의 막을 형성하여 음파를 차단한 후에 말했다.
“순도 높은 야명석이오.”
그러자 청여홍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오호. 제법 커다란가 봐요? 엄청나게 귀한 물건인데도 송 공자님이 직접 들고 오지 않은 걸 보면.”
그녀는 대상단의 딸이기에 커다란 야명석도 종종 봤을 것이다. 그러니 남들이라면 놀랄 일에 저렇듯 흥미롭다는 기색 정도만 보이는 것이고.
“아마 쌀가마니로…….”
내가 입을 열자 청여홍이 내 말을 끊으며 되물었다.
“싸, 쌀가마니?”
살짝 놀란 표정이다. 쌀가마니 크기면 가치가 어느 정도일지 대강 알고 있기에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최소 열댓 가마니는 되지 않을까 싶소.”
그 말에 청여홍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바바, 방금, 여여여, 열댓 가마니라고…….”
“그렇소.”
“저, 저, 정말인가요?”
“이런 거로 청 소저에게 거짓말해서 나한테 이로울 게 눈곱만큼이라도 있겠소?”
“세, 세상에나……!”
깜짝 놀란 청여홍은 한동안 그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잠시 후, 어느 정도 진정한 청여홍이 말했다.
“아무리 우리 상단이 대상단이라 해도 그 많은 야명석을 팔아서 대금을 정산해 드리기까지는 한참 걸릴 거예요.”
“알고 있소. 그렇듯 한참 걸려도 믿을 수 있으니 청 소저에게 맡긴 것 아니겠소.”
그러자 청여홍이 의지가 가득 깃든 눈빛으로 말했다.
“제가 책임지고 철저하게 관리하며 동전 한 냥의 오차도 없게 할 거예요. 저희를 믿고 맡겨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말을 마친 청여홍이 나를 향해 공손히 예를 취하며 허리를 숙였다.
“헛! 청 소저, 우리 사이에 이러지 맙시다. 어서 자세 푸시오.”
하지만 청여홍은 허리를 펴지 않았다.
“상인으로서, 송 공자님의 발에 입이라도 맞추라고 한다면 그렇게 해야 할 정도의 사안이에요. 더한 것이라도,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정도의…….”
“알았소, 알았소. 그 마음 잘 알았으니까, 그만 자세 풉시다.”
그제야 청여홍이 천천히 자세를 풀었다.
그녀가 저러는 이유는 간단하다.
야명석이 판매되면 거래 대금에서 상단 측의 수수료를 제한 금액을 내게 정산해 주게 될 텐데, 애초에 거래 대금 자체가 워낙 천문학적일 수밖에 없다 보니 그 수수료 수익 또한 어마어마한 액수가 되기 때문이다.
청여홍이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남창과 강서 땅에 알부자들이 많긴 한데, 아마도 이제부터 강서 제일의 갑부는 송 공자님이 될 것 같군요.”
“아하하. 그런 순위는 딱히 신경 쓰지 않소.”
“어쨌거나 이제 송 공자님은 연주상단 남창지점을 넘어, 우리 연주상단 전체에서도 최고 귀빈이세요. 그러니 필요한 게 있으시면 무엇이든, 언제든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혹여 그런 게 생기거든 말씀드리리다.”
그러자 청여홍이 고개를 끄덕인 후 잠시 가만히 나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이제 송 공자님에게는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기조차 염치가 없을 정도네요. 거래 관계뿐 아니라 무공 등 여러 면에서 감사한 게 너무 많아서…….”
“나도 청 소저 덕에 복잡할 수 있는 거래들을 쉽게 처리할 수 있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오. 그리고 청 소저가 평소에 나를 포함한 우리 친우들에게 호의를 베풀어주는 것에 대해서도 늘 고마워하고 있소.”
청여홍이 생긋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강서 제일 부호님.”
“하하, 소저는 꼭 한 번씩 나를 민망한 호칭으로 부르더구려. 어쨌든 소생도 앞으로 계속 잘 부탁드리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