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안에 마교있다-300화 (300/416)

내 안에 마교있다 300

강줄기를 타고 내려가던 유람선은 다음 날 아침 무렵에 포양호의 남쪽으로 접어들었고, 이후부터는 정가장 방향인 북동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 후로 약 한 시진가량 이동했을 때쯤 동쪽 섬에 가까워졌다.

정가장으로 향하는 뱃길에 있는 섬인데, 과거에 합숙하러 왔을 때는 저 섬에서 정세건이 모는 나룻배로 갈아탔었다. 이곳에서부터 정가장이 있는 호반까지의 뱃길은 암초가 많아, 나룻배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람선은 소형이라도 다른 배들보다 커서, 암초가 있는 그 뱃길을 지나가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한데 우리가 타고 있는 소형 유람선은 동쪽 섬에 배를 대지 않은 채로 계속 나아가고 있다.

의아해하고 있던 차에, 우리를 안내하고 있는 무인이 갑판 위에 올라와 있는 게 보였다.

함께하면서 알게 됐는데, 무사의 이름은 금덕양이고 연주상단 남창지점 경비대 오 조의 부조장이다.

그에게 물었다.

“금 부조장님, 이곳에서부터 정가장으로 향하는 뱃길에는 암초가 많은데 이대로 가도 괜찮습니까?”

금덕양이 빙그레 웃으며 대꾸했다.

“가 보시면 압니다.”

이윽고 저 멀리 정가장이 위치한 언덕과 절벽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랜만이라서 그런지 어렴풋이 보이는 것만으로도 반가운 기분이 가득하다.

그 와중에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게 있었다.

정가장의 나루터로부터 호수 쪽으로 길게 뻗어 나온 구조물이다.

안력을 돋워보니 가교(假橋)인 듯했다.

잠시 그 가교에 시선을 두고 있는데 금덕양이 다가오더니 말했다.

“그동안 정가장에 큰 공사가 있었고, 그 공사를 맡은 게 바로 저희 연주상단 남창지점이었습니다. 저희 지점장님과 총관님께서 매우 신경 써서 진행한 공사이기도 합니다.”

정가장에서 새로 건설한 건물들이 내 건물들이라는 사실과 정가장 땅의 반이 내 소유라는 사실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지점장 관대평과 총관 양운필마저도 그게 내 지인의 소유라고만 알고 있다.

한데 금덕양이 하는 말을 들어 보니 관대평과 양운필은 그조차도 굳이 외부에 밝히지 않은 모양이다.

“공사가 크다 보니 자재도 많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저희 남창지점으로부터 그 많은 자재를 정가장으로 운송하기 위한 가장 편리한 수단은 역시나 배편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아예 암초를 따라 가교를 건설해 둔 겁니다. 덕분에 공사도 더 빠르게 진행할 수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아하.”

여러모로 애써준 관대평과 양운필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그들을 독려했을 청여홍에게도 고맙고.

이윽고 호수로 뻗어 나온 가교의 끝부분에 배가 닿았다.

선장과 선원들이 우리를 거들어 배에서 마차를 내려준 후, 내게 정중히 인사했다.

“송유겸 공자를 모실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또 뵙게 될 날을 고대하겠습니다.”

“영광이라니요.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저희야말로 선장님과 여러분들 덕분에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유람선에 타고 있는 내내 선장과 선원들은 우리에게 깍듯했고 친절했다.

관대평과 양운필의 당부도 있었겠지만, 모두가 기본적으로 내게 적잖은 호의가 있는 느낌이었다.

이번에는 금덕양이 말했다.

“그쪽에 가서 짐을 모두 내리시면 말과 마차는 저희 측 인원들이 알아서 마구간으로 데려갈 겁니다.”

“알겠습니다.”

내가 대꾸하자 금덕양도 인사를 건넸다.

“저도 이 배를 타고 돌아가야 합니다. 또 한 번 송 공자와 함께할 수 있어서 반가웠고, 개인적으로도 의미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저야말로 반가웠고 여러모로 감사했습니다, 부 조장님. 또 뵙겠습니다. 살펴 가십시오.”

금덕양과 선장과 선원들이 배에 올랐고, 나는 돌아서서 마차로 이동하여 마부석에 앉았다.

내가 마차를 끌고 가교 위로 나아가자 아이들이 뒤따랐고, 배가 서서히 멀어져가기 시작했다.

나루터를 지나, 호숫가의 굽어진 길을 따라 언덕 위로 올라갔다. 언덕 위쪽이 정가장이다.

정가장에는 외문이 두 곳 있다.

정문과 서문인데, 정문은 동네 쪽으로 통하는 문이고, 서문은 호수 쪽으로 통하는 문이다.

비룡장의 영역은 서문 쪽에서 가깝고, 정가장의 영역은 정문 쪽에서 가깝다.

정가장은 전체 땅이 호수 쪽으로 돌출된 언덕 지형이라, 비룡장 쪽에서든 정가장 쪽에서든 쉽게 호수의 운치를 감상할 수 있다. 물론 정가장 본채 쪽의 절벽이 조금 더 높아서 그쪽의 경치가 조금 더 좋기는 하다.

서문으로 들어선 후, 우선 정가장의 실내 연무장 쪽으로 향했다. 지금쯤이면 정우립과 정세건은 실내 연무장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윽고 실내 연무장 근처에 도착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안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마차를 멈추고 마부석에서 내리며 아이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어.”

“예.”

슬그머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서 보니, 실내 연무장 안에 있는 사람은 정우립뿐이었다.

나를 발견한 정우립이 창을 꼬나쥔 채로 눈매를 좁히는데, 안광이 이전보다 더 형형한 느낌이다. 저 모습만 봐도 성취가 적잖이 상승했음을 잘 알 것 같다.

정우립의 입이 열렸다.

“누구…….”

내가 죽립을 눌러쓰고 있어서 단번에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이에 가볍게 죽립을 벗으며 미소를 지어 보이자, 정우립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소, 송 공자……!”

“장주님,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내가 인사하자 정우립이 빠르게 내 앞으로 다가오더니, 창을 바닥에 살짝 꽂고는 두 손으로 내 양어깨를 붙들었다. 그러면서 말했다.

“세에상에! 정말로 송 공자시구려……! 정말로……!”

주름진 눈시울이 살짝 붉어지고 있다.

이에 내가 빙그레 웃어 보이자 정우립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 늙은이, 송 공자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는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오. 나중에 송 공자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믿어지지 않았고.”

“걱정을 끼쳤습니다. 송구합니다.”

“송구는 무슨. 어쨌거나 이렇게 살아 있으니 됐소. 생전에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던 송 공자를 이렇듯 다시 보게 된 것만으로도 족하오.”

내가 미소를 지어 보이자 정우립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렇듯 방학 무렵에 이렇듯 오셨으니 묻는 것인데, 혹시 이번 방학은 이곳에서 합숙하며 보낼 계획이시오? 보아하니 몇 분이 함께 오신 모양인데.”

정우립은 내가 사 년 차를 마치고 졸업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래서 저런 질문을 한 것이다.

“아, 실은 제가 이번 방학이 끝나면 졸업입니다.”

내 대꾸에 정우립은 놀란 표정이 되었다.

“사 년 차만 마치고 졸업하는 것이오?”

“그렇습니다.”

“하면, 이제부터는 이쪽에서 계속 지낸다는 뜻이시고?”

“예.”

“오오오오!”

정우립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러니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장주님.”

“허허허, 이 늙은이야말로 잘 부탁드리오.”

정우립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인 후에 말했다.

“일단 양쪽의 공사가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부터 보고 싶습니다. 제가 나루터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이리로 와서, 양쪽의 공사 진행 상황들을 전혀 확인하지 못한지라.”

비룡장이든 송천광이 구해준 집터든, 공사가 완료되었어야 머물 수 있다.

만약 둘 다 완료되지 않았다면 정우립에게 부탁해서 당분간은 정가장의 별채에 머물러야 할 수도 있다.

정우립이 말했다.

“가까우니 직접 보러 갑시다. 일단 송풍장(宋風莊) 쪽부터.”

이에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소, 송풍장이라니요……?”

“음? 모르셨소? 송 장주, 그러니까 송 공자의 부친께서 옆에 짓고 있는 송 공자의 거처에 그런 이름을 붙이셨소.”

“아…….”

송풍장의 ‘송’은 우리 가문의 성이고, ‘풍’은 바람이니, 송천광이 어떤 생각에서 그런 이름을 지었는지 충분히 짐작이 간다.

“부친께서는 땅을 거래하며 서로 안면을 익히고 난 후부터, 종종 정가장에도 들러서 이 늙은이에게 인사하곤 하시오. 보니까 이 총관과 항상 함께 움직이시더구려. 아들의 이웃이니 자신의 이웃이기도 하다며 친근하게 대해 준다오. 그런 식으로 자주 보다 보니 어느 정도 친해지기도 했고. 허허.”

“아하하…… 그러셨군요.”

적어도 송천광의 친화력 하나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정우립이 다시 입을 열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정가장 쪽에 있는 송 공자의 거처에도 이름이 있었으면 좋겠소. 아직 그곳의 존재를 외부에 밝힐 단계는 아니라고 해도, 이름이 있으면 우리끼리 얘기할 때 구분해서 부르기도 편할 것 같아서 하는 말이오.”

“아, 생각해 둔 이름은 있습니다.”

“오! 뭐라고 명명하셨소?”

“비룡장으로 부를까 합니다.”

“오오! 동천비룡이라는 별호에서 인용한 모양이구려? 나는 그 이름이 매우 마음에 드오. 애초에 송 공자에게 동천비룡이라는 별호가 붙었을 때부터, 나는 송 공자와 비룡이라는 말이 매우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었소.”

사실, 비룡장이라는 이름은 내 별호에서 인용해서 지은 게 아니라, 연승휴 덕분에 짓게 된 이름이다.

연승휴의 유산인 고천비룡결, 풍우비룡무, 비룡검 등에 모두 비룡이 들어가기에 장원의 이름도 그렇게 지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걸 굳이 정우립에게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아하하, 저는 여전히 그 별호를 들으면 민망해서 어딘가로 숨고만 싶습니다.”

“허허허. 아직 어린 나이에 그런 별호도 얻고 명성도 높아졌으면 뭔가 거들먹거리는 느낌이 있을 법도 한데, 송 공자는 오히려 민망해하는구려. 그런 면만 보더라도 역시 송 공자가 남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 것 같소.”

“아하하, 남다르기는요. 여전히 철부지에 불과합니다.”

내가 그렇게 대꾸하자 정우립은 빙그레 미소만 지어 보였다.

잠시 후, 정우립이 말했다.

“그럼 갑시다. 송풍장부터 들렀다가 비룡장으로.”

“예.”

정우립이 먼저 실내 연무장을 나섰고 나도 그의 뒤를 따라나섰다.

실내 연무장 밖으로 나온 정우립이 아이들을 발견하고는 먼저 인사를 건넸다.

“오, 우리 송 공자의 새로운 친우들인 모양이구려.”

이에 나는 아이들에게 정우립을 소개했다.

“이곳 정가장의 장주님이셔.”

그러자 아이들이 동시에 공손히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아, 안녕하십니까, 장주님.”

인사말은 대표로 왕철양에게서만 나왔다.

정우립이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허허. 네 분 모두 반갑소.”

정우립에게 말했다.

“어쩌다 보니 제가 이들의 무공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오오, 송 공자께서 직접? 그럼 송 공자의 제자들인 것이오?”

“제가 올해 계반의 교관님들을 돕는 조교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지도하게 된 후배들입니다. 이런저런 사정이 있는데,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정우립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에게 말했다.

“장주님과 함께 잠깐 이 근처를 좀 둘러보고 올 거야. 일각도 걸리지 않을 테니 조금만 더 기다리고들 있어.”

“예.”

아이들이 대꾸했고 정우립과 나는 정가장의 정문 쪽을 향해 가볍게 경공을 펼치기 시작했다.

경공을 펼치는 중에 정우립이 말했다.

“송 공자의 부친 말인데, 손이 크고 수완이 좋으시더구려.”

“……예?”

송천광이 대체 뭘 했기에 정우립의 입에서 저런 소리가 나오는가 싶다.

재산이 많으니 돈으로 수완을 발휘했나?

“송풍장과 제갈수광 교관님의 거처 사이에 두 집이 있었잖소. 그 두 집 모두 이웃이었기에 잘 아는데, 원래 그 사람들이 돈을 열 배를 줘도 절대로 안 팔겠다고 했었거든. 한데 송풍장의 옆집은 봄에 송 공자의 부친과 얘기를 나누더니 금방 팔고 나가고, 그 옆집도 여름쯤에 팔더니 초가을쯤에 이사를 나가더구려.”

그 말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정우립이 말을 이었다.

“들어 보니 송 공자의 부친이 광풍현 쪽에 있는 널찍한 농지를 제시했다고 하더구려. 실상 그들은 포양호에서 물고기를 잡아다가 팔고 주변의 작은 땅에서 농사를 짓는 것으로 연명하던 서민들이었소. 한데 근래 포양호의 어획량이 전체적으로 줄었기에 다들 집안 사정은 썩 좋지 않았을 것이오. 그러던 차에 널찍한 농지를 제안받았으니 혹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 그런 농지가 본인 소유면 최소한의 안정적인 생활은 가능하니 말이오.”

송가장은 오랫동안 대대로 광풍현의 유지였던 만큼, 당연히 광풍현 내의 사정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상황에 따라 싸게 매입해 둔 집터나 농지 등을 적잖이 보유하고 있었을 텐데, 아마도 그런 땅을 제시했던 게 아닐까 싶다.

정우립이 다시 입을 열었다.

“참고로 내가 제갈수광 교관님의 거처에 대해 아는 건, 그 집에 살던 이웃이 나가면서 매입자의 이름을 알려줬기 때문이오. 그 이웃은 강호인이 아니라서 그 이름에 대해 잘 모르는 모양이었지만, 내가 모를 리 없잖소. 사파와의 전쟁이 끝나고 그 당시의 소문이 널리 퍼지면서, 송 공자의 이름과 함께 매우 많이 언급된 이름이 바로 그 이름이었으니까.”

그즈음 우리는 송풍장에 도착했다.

눈으로 쓱 훑어보니 여러 건물이 지어지고 있지만, 아직 완공된 곳은 없었다. 그나마도 본채의 공사가 가장 많이 진행된 모습이었는데, 그조차도 진행률은 칠팔 할 정도일 듯했다.

올해 봄 이후부터 공사가 시작된 것을 고려하면, 저 정도도 매우 빠르게 진행된 것이다.

공사의 규모 대비 인부의 수가 매우 많아 보였는데, 저래서 공사가 빠르게 진행된 듯하다.

정우립과 함께 속보로 이동하며 공사 현장을 둘러봤다.

둘러보는 중에 인부들이 여기저기에서 정우립에게 인사해 왔는데, 자주 봐서 그런지 서로 친근한 모습들이었다.

나는 죽립을 눌러 쓰고 있는 상태였기에 인부들이 나를 알아보지는 못하고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전체적으로 확인을 마치고 보니, 송천광이 송풍장에 신경을 매우 많이 쓴 인상이었다.

제대로 지어 주기 위해 작정한 느낌이라고 할까.

무엇보다도 부지가 넓어진 게 참 좋았다.

원래 송풍장 쪽의 대지는 계단식 농지로, 위쪽 대지와 아래쪽 대지로 구성되어 있었다. 한데 옆집과 옆옆 집의 땅을 매입한 덕분에 위쪽 대지도, 아래쪽 대지도 모두 매우 넓어졌다.

건물, 시설, 정원 등의 배치도 마음에 들었다.

애초에 송풍장 부지의 설계는 송천광과 이청오 쪽에서 알아서 한 것인데, 오늘 둘러보니 여러 가지를 신경 써서 설계했음을 알 것 같았다.

일전에 나는 이청오에게 작은 대장간과 실내 연무장을 꼭 지어 달라고 부탁했었는데, 오늘 보니 그곳들도 잘 지어지고 있었다.

실내 연무장은 두 채가 지어지는 중인데, 지금은 부지가 넓어졌으니 새로 매입한 쪽에 두세 채쯤은 더 지어도 될 것 같다.

작은 대장간을 만들어 달라고 했던 건 당연하게도 왕철양의 존재 때문이었다.

오늘 보니 소규모 대장간은 아래쪽 부지의 구석에 건설되고 있었고, 공사는 육칠 할 정도 진행된 모습이었다. 내부 흡음 시설과 외부 방음 시설에 신경 써 달라고 부탁했었는데, 물어보니 그 시설들도 갖추는 중이라고 한다.

정우립이 말했다.

“보셨다시피 송풍장의 공사가 어느 정도 끝나려면 몇 달은 더 걸릴 것이오. 그에 반해 비룡장 쪽의 건물과 시설들은 대부분 완공되었고, 아직 남은 곳의 공사도 거의 마무리 단계요. 그러니 그쪽에서는 지낼 수 있을 것이오. 가 봅시다.”

비룡장의 공사는 작년부터 시작되었고, 연주상단 남창지점에서도 부지런히 공사를 진행했었다. 그러니 지금쯤 마무리가 되고 있다고 해도 이상한 건 아니다.

“아직은 제가 비룡장의 소유주라는 것을 밝힐 때가 아닌 듯합니다. 그걸 알게 되면 아버지도 이상하게 여기실 겁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난 후에, 제가 투자를 통해 재산을 불려서 산 것으로 하는 게 나을 듯합니다.”

내 말에 정우립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대꾸했다.

“그럼 예전에 말을 맞췄듯 비룡장은 송 공자의 지인 소유이며, 그 지인이 장기 출타 중이라 송 공자가 대신 이것저것 신경 써주고 있다고 합시다.”

내가 연주상단 남창지점에 댔던 핑계이기도 하다.

빙그레 웃으며 대꾸해 줬다.

“예. 저도 그 말씀을 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비룡장에 상주하며 공사에 관련된 사안을 총괄하는 관리자가 있소. 연주상단 남창지점의 총관부에 소속된 사람인데, 아마도 지금은 별채에 마련된 임시 사무실에 있을 것이오. 일단 그에게 갑시다.”

“예.”

정가장으로 돌아와서 아이들과 함께 비룡장으로 향했다. 마차는 왕철양이 끌었다.

가면서 보니 아까 정우립한테서 들었던 대로 건물과 시설이 대부분 완공된 상태였고, 일부는 막바지 공사 중이었다.

모두 깔끔하고 멋지게 지어졌으며, 딱 봐도 튼튼해 보였다.

게다가 처음에 내가 요구했던 대로, 원래의 정가장 경관과도 잘 어우러지는 모습이었다. 그 경관들 또한 기존보다 잘 정돈되어 있었다.

저 건물들과 이 모든 공간이 내 집이라고 생각하니 기분 좋은 만족감이 들었다.

이윽고 우리는 비룡장에서 지대가 가장 높은 구역으로 들어섰다.

지대가 가장 높은 구역에는 널찍한 정원이 펼쳐져 있는데, 그 정원을 품에 안는 형태로 북, 동, 서 방향에 건물이 하나씩 자리 잡고 있다.

담장이나 시설물 등을 이용해 따로 구분해 놓지는 않았지만, 이곳이 바로 비룡장의 내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내원은 중앙의 정원을 기준으로 북쪽에 가로로 자리 잡은 남향 건물이 본채이며, 정원을 사이에 두고 동서에 세로로 자리 잡은 두 개의 건물이 별채다.

셋 다 이 층 건물이긴 한데, 별채들과 비교하면 본채의 높이가 반 층 이상 더 높다.

이는 기본적으로 본채 쪽의 층고가 조금씩 더 높기 때문이다. 내가 애초에 그렇게 설계했었다.

두 개의 별채 중에서 서쪽에 있는 별채는 객실로 사용될 건물이며, 동쪽에 있는 별채는 식당과 연회장을 포함하는 다용도 시설이다.

본채의 현관과 양옆의 별채는 회랑으로 이어져 있어, 혹여 비가 오는 날에도 우산 없이 이동할 수 있게끔 되어 있다.

“우와!”

“와아……!”

탄성의 주인공은 공은림과 심산화다.

돌아보니 아이들 네 명 모두 감탄한 표정이었다.

애들이 저렇듯 감탄하고 있는 이유는 비룡장 내원의 전경이 운치 있고 멋지기 때문이다.

비룡장의 모든 건물과 시설은 내가 손수 그렸던 설계도의 초안을 바탕으로, 연주상단 남창지점의 전문가들이 정밀 도면을 그린 후에 건축한 것이다.

설계도 초안을 만들 당시, 나는 특히 내원 쪽에 신경을 많이 기울였었다. 내원이 주된 생활 영역이기 때문이다.

지금 아이들이 저렇듯 감탄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당시의 내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심산화가 내게 물었다.

“여기가……, 조교님 댁이에여?”

아이 같은 눈망울이 기대감으로 초롱초롱 빛나고 있다.

이에 나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저어줬다.

“아니.”

그 말에 심산화뿐만 아니라 아이들 모두의 표정에 아쉬움이 담겼다.

아이들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이곳은 내 지인의 집이야. 내 집은 이 옆인데, 그쪽은 아직 공사 중이고. 그쪽의 공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서, 그동안에는 우리 모두 이곳에 머물게 될 거야.”

“우와!”

아이들의 표정이 다시금 환해졌다.

이번에는 공은림이 입을 열었다.

“감사의 의미로 조교님의 지인분께도 매일 좋은 차를 내어드려야겠어요.”

“마음은 고마운데 지인이 지금 일 때문에 먼 곳에 계셔. 빨라도 이삼 년은 더 있어야 돌아오신대. 그러니 편하게 지내도 돼.”

“우와아!”

아이들은 더 신난 표정이었다.

이삼 년 후에는 지인이 사정상 이 동네로 올 수 없는 상황이 되어, 할 수 없이 내가 투자로 모은 자금을 이용해 이곳을 인수했다고 하면 된다.

청여홍에게 투자했는데 운 좋게 수익이 많이 났다는 구실을 댈 것이다.

그녀와의 친분은 이런 쪽의 구실을 만들 때도 편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정원의 안쪽으로는 산책로만 존재하며, 마차나 수레가 다닐 수 있는 길은 정원의 외곽으로 이어진다.

정원의 남쪽으로 들어선 우리는 외곽의 큰길을 따라 서쪽 별채로 향했다.

서쪽 별채의 현관 앞에 가까워지고 있을 무렵, 별채 일 층의 중앙 쪽 창문이 열리더니 사내 한 명이 고개를 내밀었다.

사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문사풍 차림새의 사내였다.

정우립이 그를 발견하고는 말했다.

“오 선생, 안녕하신가?”

저 사내가 비룡장에 상주하며 공사를 총괄하고 있는 관리자인 모양이다. 말발굽 소리와 마차 소리가 들려서 창문을 열어 봤을 테고.

사내가 정우립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며 말했다.

“정 장주님 오셨습니까? 바로 나가겠습니다.”

정우립이 고개를 끄덕이자 사내가 곧장 창문을 닫았고, 우리는 별채의 현관 앞으로 다가갔다.

잠시 후 문사풍의 사내가 현관문을 열더니 밖으로 나왔다.

그가 우리를 일별하더니 정우립에게 물었다.

“젊은 손님들과 함께 오셨군요? 어떤 분들이신지…….”

사내의 말에 아이들이 먼저 죽립을 벗었고, 이어서 나도 천천히 죽립을 벗었다.

그러자 정우립이 사내에게 말했다.

“송유겸 공자와 그 후배들이시네.”

“송유…….”

순간, 기억을 더듬는 표정으로 잠시 말을 줄였던 사내가 이윽고 눈을 휘둥그레 뜨며 되물었다.

“그……! 그, 동천비룡 송유겸 공자란 말씀입니까?”

“그렇네.”

이에 내가 먼저 사내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처음 뵙겠습니다.”

사내도 매우 반가워하는 표정으로 내게 인사말을 건넸다.

“만나게 되어 참으로 반갑소, 송유겸 공자. 소문으로만 들었는데 역시나 절세미남이시구려. 내가 속으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하하…….”

내가 민망한 웃음을 흘리자 사내가 바로 다시 입을 열었다.

“연주상단 남창지부의 총관부에서 일하고 있는 오군평이라고 하오. 양 총관님으로부터 이곳의 공사를 총괄하라는 지시를 받고 공사 초창기부터 줄곧 이곳의 일을 도맡아 왔소.”

“지인의 부탁을 받아서 맡긴 공사였는데, 여기까지 오면서 쓱 둘러본 것만으로도 저는 매우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마 지인께서도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허허. 그렇지 않아도 지점장님과 총관님께서 송 공자가 맡긴 공사라며 꼼꼼히 신경 쓰라고 신신당부를 하셨었소. 실제로 두 분도 자주 오셔서 공사 진행 상황을 점검하곤 하셨소. 어쨌거나 송 공자가 실망한 것 같지는 않으니 일단은 다행이구려. 외부는 대충 보셨으니 바로 내부를 확인해 보시겠소? 마침 이쪽 별채 앞이니 이쪽부터 봅시다.”

이에 나는 미소를 지어 보인 후에 오군평에게 대꾸했다.

“송풍장 쪽의 공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될 때까지는 이곳에 머물러야 할 것 같습니다. 지인께서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러니 본채에 짐을 먼저 내려놓은 후에 내부를 구경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알았소. 그러면 일단 마차를 끌고 본채 쪽으로 갑시다.”

이에 내가 왕철양에게 눈짓하자 녀석이 알아서 마차 쪽으로 이동했고, 우리는 본채를 향해 걸어갔다.

걷는 중에 오군평이 말했다.

“들어가서 보면 아시겠지만, 구조는 당연히 설계도와 같소. 우리가 보는 방향을 기준으로 일 층 중앙 현관의 좌측에는 널찍한 거실과 소형 침실 두 개가, 우측에는 회의실과 소형 침실 세 개가 있소. 이 층으로 올라가면 중앙은 거실이며, 좌측에는 서재 겸 집무실과 대형 침실 하나가, 우측에는 중형 침실 두 개와 소형 침실 두 개가 있소.”

오군평이 설명을 이어갔다.

“근자에 요청하셨던 기본적인 가구와 침구류도 모두 배치해 두었소. 부디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는데, 혹여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내 안목을 의심하진 마시구려. 모두 지점장님과 총관님이 골라서 보내신 것이니.”

마지막에는 농담조였다.

우리가 웃음을 지어 보이자 오군평이 다시 입을 열었다.

“허허, 농담이었소. 혹여 마음에 들지 않으시거든 편하게 말씀해 주시오. 얼마든지 교체해 드릴 것이니.”

그러는 사이에 본채의 현관 앞에 도착했다.

우리는 마차의 짐칸에서 짐을 꺼내어 일단 현관문 안쪽에 적당히 쌓아 두었다. 현관이 넓어서, 한쪽에 우리의 짐을 쌓아 놓아도 통행하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오군평은 우리를 먼저 이 층으로 이끌었다.

계단을 통해 이 층으로 올라가 보니 내가 설계했던 대로 거실과 서재, 대형 침실은 매우 넓었다. 아이들의 탄성이 끊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어서 이 층에 있는 중형 침실과 소형 침실을 구경했다.

아이들은 중형 침실보다 소형 침실을 구경할 때 더 놀란 반응을 보였다.

“우와! 소형 침실이라고 해서 작을 줄 알았는데……!”

“엄청 넓어요!”

소형 침실이라고 해도 본채의 다른 방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소형이라는 것이지, 절대적인 기준으로 따지면 혼자 쓰기에는 충분히 여유로운 공간이다. 애초에 그렇게 설계했다.

이 아이들의 경우에는 잠룡관에서 계반의 거처를 쓰다 왔으니 더 넓게 느껴질 것이다.

이어서 일 층을 구경했는데, 일 층 거실과 회의실도 널찍했다. 둘 중에서는 거실이 조금 더 넓다.

소형 침실들은 이 층과 같은 넓이다.

우리는 이어서 서쪽 별채와 동쪽 별채도 구경했다.

서쪽 별채는 전체가 객실 위주이며, 일이 층 모두 중앙에는 거실이 있다. 일 층에 있는 방들은 모두 이 인실이며, 이 층에 있는 방들은 모두 일 인실이다.

아이들은 서쪽 별채를 구경하는 중에도 계속해서 탄성을 연발했는데, 객실에서 보이는 호수의 경치 때문이었다.

본채에서는 호수가 정면으로 보이는 방이 많지 않은데, 서쪽 별채에서는 바로 눈앞에 호수가 펼쳐지는 방이 많다. 서향인 방에서는 무조건 그 경치를 볼 수 있다.

내가 애초에 설계를 그렇게 했다.

나는 비룡장에서 항상 포양호를 보고 살 테니, 한 번씩 방문하는 손님들이 객실에 머물 때 저 경치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서쪽 별채를 구경한 후에는 동쪽 별채에도 가서 식당, 조리실, 연회장, 욕실 등을 구경하고 나왔다.

오군평에게 말했다.

“전체적으로 흡족할 정도로 잘 지어졌고, 가구들도 아주 마음에 듭니다.”

인사치레로 한 말이 아니라 실제로도 매우 마음에 들었다.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이오. 송 공자의 마음에 든다면 송 공자의 지인께서도 어느 정도는 만족하실 테니.”

“외원 쪽의 시설은 짐을 풀고 나서 나중에 천천히 둘러봐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러시오. 그럼 나는 사무실에 가서 업무 처리를 하고 있겠소.”

그러자 정우립이 말했다.

“나는 우리 본채 쪽에 가 있을 테니 다들 반 시진 남짓 후에 점심 먹으러 오시오. 오 선생도 마찬가지고.”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시금 본채로 돌아오자 공은림이 말했다.

“저희끼리 잠시 얘기해 봤는데, 저희는 본채의 일 층에 있는 소형 침실들을 쓰려 합니다. 소형 침실도 고급스럽고, 혼자 쓰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로 넓으니까요. 그러니 이 층은 조교님의 가족들이나 친우들이 오셨을 때 내어주시면 될 듯합니다. 어차피 이곳에 제법 오래 머물러야 한다고 하셨으니.”

다른 아이들도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본채의 일 층에 있는 방들은 선호도가 후순위일 수밖에 없는데, 그런 곳을 본인들이 쓰겠다며 먼저 나선 것이다.

기특한 녀석들이다. 물론 후순위라고 해도 공은림의 말마따나 충분히 좋은 방이긴 하지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에는 왕철양이 말했다.

“일 층 거실 쪽의 방 두 개를 소저들이 쓰고, 저와 하 공자는 회의실 쪽의 방을 쓰기로 했습니다. 조교님께서 다른 의견이 없으시다면 그쪽에 짐을 풀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해.”

이후에 아이들은 내 짐을 먼저 이 층의 대형 침실로 옮겨 준 후에 다시 일 층으로 내려갔다.

귀중품들을 적당히 장롱 속에 넣고 나머지 짐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식경 정도 지났을 때쯤이었다.

“유겸이 형! 유겸이 혀엉!”

밖에서 들린 소리에 창문을 열어 보니 역시나 정세건이 본채 앞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세건이 오랜만이야!”

한데 정세건 혼자가 아니었다.

옆에 또래로 보이는 소년이 한 명 더 있었다.

정세건이 다시 외쳤다.

“형! 올라가도 돼요?”

“당연하지.”

그러자 정세건이 현관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이동했고, 또래로 보이는 소년이 그 뒤를 따랐다.

그런데 가만히 지켜보니 소년의 걸음걸이가 매우 안정적이면서 사뿐했다.

정세건도 꾸준히 무공이 상승하여 또래 중에서는 실력이 수준급인데, 딱 봐도 저 소년의 수준이 정세건보다 두세 단계는 더 높아 보인다.

잠시 후, 정세건이 문을 열더니 안으로 들어섰다.

표정과 눈빛에 반가움이 가득하다.

“유겸이 혀엉!”

정세건이 빠르게 다가오더니 나를 끌어안았다.

이에 나는 한 손으로 녀석을 포옹한 채, 다른 손으로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세건이 잘 있었어?”

“형이 죽었다는 소리 듣고 나 정말 많이 울었어요. 그런데 형을 이렇듯 다시 보게 되다니…….”

녀석의 목소리가 크게 일렁이고 있다.

“하하, 미안해.”

그러자 정세건이 내게서 살며시 떨어지며 말했다.

“누가 형한테 미안하다는 소리 들으려고 이러나…….”

정세건은 못 본 사이에 더 컸다.

분위기도 그전보다 훨씬 더 의젓해진 듯하다.

이에 나는 녀석의 머리카락을 살짝 헝클어트렸다.

그러면서 정세건과 함께 들어온 소년에게 시선을 주었다.

실상 정세건과 포옹하고 있을 때도 계속해서 소년의 얼굴을 확인했었다.

그리고 지금은 저 소년이 누군지 알 것 같다.

어린 것의 기도가 범상치 않다 싶었는데, 얼굴이 촉홍결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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