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301
“네 조부님이 촉, 홍 자, 결 자 쓰는 분이시지?”
소년은 내가 단번에 알아내자 놀란 표정이었다.
“그, 그렇습니다.”
“네 조부님이랑 닮아서 금방 알아본 거야. 이름이 뭐지?”
“촉휘명입니다.”
“휘명이구나. 만나서 반갑다.”
“저, 저야말로 송 소협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풋! 무슨 영광씩이나.”
“할아버지를 통해 송 소협의 활약에 대해 자세히 들었는데, 듣고 나니 자연스럽게 동경심이 생겨서…….”
촉홍결이 손자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내 얘기를 종종 했던 모양이다.
촉휘명에게 물었다.
“세건이랑 친구로 지내는 거야?”
예전에 촉홍결한테서 들은 바에 의하면 촉휘명과 정세건은 동갑이다. 그래서 물은 것이다.
“네, 소협.”
이에 빙그레 웃으며 촉휘명에게 말했다.
“소협이라고 부를 필요 없어. 내가 그리 정의롭거나 의협심이 강한 사람이 아니거든. 그냥 세건이처럼 형이라고 부르면 돼.”
섣불리 대꾸하지 못하고 잠시 주저하던 촉휘명이 대꾸했다.
“네, 형…….”
“조부님은 건강하시지?”
“네. 그렇지 않아도 이번 방학 때 형이 이쪽에 들르시나 하고 궁금해하셨어요. 보고 싶어 하세요.”
“그래. 이따가 인사드리러 가야겠네.”
그러자 정세건이 내게 물었다.
“형, 이번 방학에는 이곳에서 합숙하는 거예요?”
내가 침실에 짐을 풀어놓은 것을 보고 저렇게 묻는 것이다.
“아니. 합숙이 아니라 계속 머물게 될 거야. 나, 졸업하거든.”
정세건과 촉휘명이 놀란 표정을 지었기에, 나는 자초지종을 간단하게 설명해 줬다.
이야기를 들은 두 녀석은 앞으로 계속 나를 볼 수 있게 되었다며 매우 좋아했다.
이후에는 일 층 거실로 내려가서 왕철양, 심산화, 공은림, 하조혁을 불러 정세건과 촉휘명을 소개해 줬다.
아직 서먹서먹한 분위기이긴 한데, 정세건은 친화력이 좋으니 다들 금방 친해질 것이다.
점심 식사를 위해 다 같이 정가장으로 이동했다.
널찍한 식당 안으로 들어서니 정우립 옆에 반가운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원을태와 촉홍결이다.
“유겸아……!”
두 노인이 자리에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서며 내게로 다가왔다. 이에 나는 두 노인을 향해 인사했다.
“어르신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아이고, 이 녀석아…….”
“정말로 큰일 난 줄 알았잖느냐…….”
촉홍결은 다가와서 본인의 양손으로 내 한 손을 감싸 쥐었고, 원을태는 다가와서 내 어깨를 두드렸다. 두 노인의 목소리가 일렁이고 있었다.
두 노인이 계속해서 나를 더 붙들고 서 있을 기세였기에 바로 말했다.
“궁금한 게 많으실 텐데, 앉아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자리에 앉은 후에 물어보니 원을태와 촉홍결은 제갈수광과의 서신 교류를 통해 정가장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이사를 마치고 정가장에 인사를 하러 왔다가 점점 정우립과도 점점 친해졌다는 모양이다.
이후에는 노인들에게 왕철양, 심산화, 공은림, 하조혁을 소개했다.
소개하는 동안 원을태와 촉홍결은 네 명의 아이들을 매우 유심히 지켜보았는데, 눈동자에 흥미가 가득했다. 두 노인은 대단한 고수들인 만큼, 눈여겨보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의 수준과 특징을 어느 정도는 눈치챘을 것이다.
상상을 뛰어넘는 왕철양의 신력과 심산화의 빼어난 은잠술 경지를 알게 되면 앞으로는 더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세 노인도 내가 어떻게 생존하고 복귀했는지에 대해 궁금해했고, 나는 잠룡관에서 여러 차례 답변했던 것과 같은 대답을 해줬다.
노인들은 천만다행이라며 고생 많았다는 위로를 건넸다.
그리고 식사가 시작되었다.
원을태는 이번에 특수작전조에서 나를 지켜봤던 만큼, 식사 중에 그때의 이야기를 하며 내 활약을 추켜세웠다.
많이 민망했지만, 원을태의 그런 이야기들 덕분에 식사 분위기 자체는 좋았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아이들을 먼저 돌려보내고 원을태, 촉홍결과 함께 천천히 걸으며 호수 변을 산책했다.
원을태가 내게 물었다.
“정 장주님한테서 들었다. 사 년 차를 마지막으로 졸업한다지? 그래서 앞으로는 계속 이쪽에서 지낼 거라고?”
“그러합니다.”
“하긴, 유겸이가 그 실력에, 그 경지에, 계속 잠룡관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긴 하지.”
원을태가 그렇게 대꾸하자 촉홍결이 말했다.
“앞으로는 유겸이를 계속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참으로 좋구나. 우리가 강서로 이사 온 이유는 손자들의 교육 때문이었지만, 옥산이 아닌 포양호 쪽으로 오게 된 이유는 유겸이 너와 제갈 교관 때문이었으니까.”
내가 미소를 지어 보이자 촉홍결이 다시 입을 열었다.
“초량이도 이번에 졸업이겠지?”
“그렇습니다. 방학 기간에 찾아온다고 했으니 그때 보실 수 있을 겁니다.”
“그 외의 다른 조원들은 잘 지내고 있느냐?”
기동타격조원들을 말하는 것이다.
당시에 같이 싸우며 많이 정들었던 사이이기에 안부가 궁금한 모양이다.
“졸업한 종금무 공자는 황산파의 일을 열심히 돕고 있는 모양입니다. 강하령 소저는 잠룡관에서 잘 지내고 있었는데 방학 계획은 잘 모르겠습니다.”
“강이는?”
“조장님도 이번에 졸업한다고 합니다.”
“응? 강이는 올해 오 년 차 아니었던가?”
“그렇습니다. 그냥 오 년 차에 졸업하겠다고 합니다.”
내가 대꾸하자 촉홍결이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긴, 강이도 절정고수에 올랐는데, 그 실력에 굳이 잠룡관에 남아 있을 필요가 없지.”
단목강이 절정고수라는 소식은 원을태한테서 전해 들었을 것이다.
촉홍결에게 대꾸했다.
“조장님은 제가 졸업한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 졸업을 결정했습니다. 같이 졸업한 뒤, 제 거처에서 오랫동안 머물며 같이 수련하겠다고 합니다. 단목세가에 갔다 온다고 했으니 방학이 끝나는 무렵에 이곳으로 올 겁니다.”
단목강, 단목지, 단목홍신은 이번 방학 때 모두 단목세가에 간다고 했다. 부모님도 뵙고 아기인 단목연도 보고 오겠다는 모양이다.
“오오오! 그래?”
“헐헐! 좋구나. 강이도 온다니.”
단목강은 기동타격조 시절에 조장으로서 항상 솔선수범하며 책임감 강한 모습을 보여, 어른들이 매우 듬직하게 여기며 좋아했었다. 그래서 저렇듯 반색하는 것이다.
이후에 잠시 조용히 걷던 중에 원을태가 물었다.
“제갈 교관은 여전히 복귀하지 않은 상태지?”
“……예.”
그간 나는 잠룡관에서 평화롭게 지냈지만, 혈교 거점 타격 작전은 꾸준히 이어졌다.
타격 작전은 대부분 성공하여 무림맹에서는 혈교의 꼬리를 계속해서 밟아 가는 중이다.
원을태가 말했다.
“제갈 교관이든, 남궁 부당주든, 백 소협이든, 그렇게까지 오랫동안 그 작전에 참여할 줄은 몰랐구나. 부디 끝까지 무사하기를 바랄 수밖에.”
나 또한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이렇게 오랫동안 제갈수광을 못 보고 산 건 처음이라, 많이 보고 싶기도 하다.
이후에도 우리는 산책을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다가 정가장의 정문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봐서 정말 반가웠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이니 앞으로는 보고 싶을 때 언제든 볼 수 있겠지. 그래서 더 기분 좋구나. 허헛.”
촉홍결이 그렇게 말하자 원을태도 입을 열었다.
“유겸이와 이렇듯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든든하고 좋구나.”
“저야말로 오랜만에 촉 어르신을 뵙고, 원 어르신을 다시 뵙게 되어 너무도 반가웠습니다. 앞으로 자주 뵙겠습니다.”
내가 대꾸하자 촉홍결이 말했다.
“휘명이가 나한테서 얘기를 듣고는 너를 동경한다. 널 보러 자주 놀러 갈 듯하니 잘 부탁하마. 나도 부지런히 지도하고는 있다만, 너한테서도 한 번씩 지도를 받으면 시야가 더 넓어질 수 있겠지.”
“알겠습니다. 아울러 저도 어르신들께 제가 데려온 네 명의 아이들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그 아이들은 앞으로도 계속 저와 함께 지낼 아이들입니다.”
원을태가 대꾸했다.
“그렇지 않아도 아까 보면서 매우 흥미로웠었다. 오늘은 짐 정리도 해야 하고 이것저것 정리하느라 바쁠 테니, 그 아이들과는 다음에 와서 어울려 볼 생각이다. 가뜩이나 우리 추엽이의 친우들이기도 하다니 더 신경을 써 줘야겠지.”
“나도 흥미롭게 봤었다. 앞으로는 네 거처에 자주 드나들게 될 테니 그때마다 틈틈이 봐주마.”
“감사합니다.”
신룡대 출신의 두 노인은 노련한 실전 고수로서 무공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며, 암기 또한 다양하게 다룰 수 있다.
그렇기에 두 노인이 지도해 준다면 아이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고 나도 조금이나마 더 편해질 수 있을 것이다.
원래 식사는 주방에서 일할 사람을 구해서 해결할 계획이었는데 공은림과 하조혁이 본인들이 하겠다고 나섰다.
두 사람 다 청선곡에서 주방 일을 종종 해 봤다며 나름의 자신감을 보였다.
“청선곡에서는 음식도 기본적으로 양생의 개념에서 접근합니다. 그래서 어린 제자들도 주기적으로 주방 일에 참여하여 건강식 만드는 방법을 배웁니다. 덕분에 모든 제자들이 요리를 일정 수준 이상은 할 줄 압니다.”
건강식이라고 하니 의심스러워지긴 했으나, 애들의 의욕을 높이 사서 하루 정도는 맡겨 볼 생각으로 허락했다.
한데 첫 끼를 먹어 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맛있었고, 두 끼, 세 끼를 먹어 봐도 충분히 맛있었다.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는 만큼, 식사 준비는 결국 공은림과 하조혁에게 맡기기로 했다. 나를 포함한 나머지 인원들이 당번이 되어 돌아가며 식사 준비와 설거지를 돕기로 했다.
식자재는 오군평에게 말해서 연주상단 남창지점으로부터 주기적으로 조달받기로 했고, 한 달에 한 번씩 정산해 주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쳤다.
* * *
원을태와 촉홍결은 우리가 비룡장에 온 다음 날부터 네 명의 아이들을 지도해 주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나도 정우립과 정세건의 청파심공과 청풍창뢰식의 성취를 점검해 줬다.
조손의 성취를 마지막으로 점검해 본 게 올해 삼월 초의 일이었는데, 지난 열 달 동안 둘 다 성취가 많이 높아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촉휘명의 무공도 점검해 봤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실력이 좋아서 놀랐다.
기본기가 탄탄한 것은 물론, 검술의 성취, 신법, 보법, 암기술, 은잠술 등, 전반적인 무공의 수준이 두루두루 높았다.
이대로 성장해서 잠룡관에 입관하게 되면 원추엽이 입관했을 당시보다 수준이 더 높지 않을까 싶다.
촉홍결이 제대로 가르쳤음을 알 수 있었다.
* * *
그렇게 나흘이 지났다.
아침 식사를 마친 후에 방에서 운기조식을 취하고 있는데 바깥이 소란스러워지는 게 느껴졌다.
서둘러 운기조식을 마치고 일 층으로 내려가 보니 마침 본채의 현관으로 익숙한 얼굴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오군평의 안내에 따라 청여홍이 먼저 들어섰고, 그 뒤를 송유하, 남궁설, 선우린, 포연월이 따랐다.
현관에서 인사를 나눈 후 거실로 들어서자마자 모두가 감탄을 연발했다.
“오호. 깔끔하게 잘 지어진 것 같네요.”
“거실 넓다아!”
“우와! 새집……!”
각각 청여홍, 선우린, 포연월의 한마디였다.
남궁설과 송유하도 말은 없지만 좋아하는 표정이었다.
그 후에는 다들 행낭을 거실에 던져두고는 본채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오군평은 매우 깍듯한 태도로 청여홍을 안내했는데, 다들 그 두 사람을 따라다니며 즐겁게 구경했다.
본채 구경을 마친 후에 남궁설이 내게 말했다.
“집 정말 좋은데요? 전망도 괜찮구요.”
“그렇지? 지인께서도 만족하실 것 같아.”
내가 대꾸하자 오군평이 남궁설에게 말했다.
“사실 전망은 객실 용도로 지어진 서쪽 별채가 더 좋습니다. 이번에는 그쪽을 구경하러 가시죠.”
모두가 오군평을 따라 서쪽 별채로 이동했다.
서쪽 별채를 구경하는 동안 여자들에게서는 탄성이 끊이지 않았다.
“우와! 풍광 좀 봐! 끝장이야!”
“청 언니, 미안하지만 지난여름에 머물렀던 청 언니의 장원보다 이쪽의 풍광이 더 좋은 것 같아요.”
선우린과 남궁설이 그렇게 말하자 청여홍이 대꾸했다.
“후훗, 미안할 게 뭐가 있어. 내가 보기에도 이곳에서 보는 포양호의 풍광이 더 좋은데.”
그러자 오군평이 말했다.
“이곳의 장주께서 손님들에게 더 좋은 경치를 보여드리고자 처음부터 이쪽을 객실용 별채로 생각하셨답니다.”
그러자 유은무가 대꾸했다.
“와아, 정말 배려심 깊은 분이신 것 같아요.”
얘야, 그 배려심, 내 배려심이란다.
여자들은 다들 별채 이 층의 서향 객실을 쓰겠다며 본인들이 머물 방을 알아서 정했다.
송유하만이 나와 가까운 곳에서 지내겠다며 본채의 이 층에 머물겠다고 한다.
이후에는 동쪽 별채의 식당과 시설들까지 구경한 후, 다들 각자의 짐을 들고 숙소로 흩어졌다.
나는 송유하에게 이 층에 있는 중간 크기의 방을 쓰게 했다.
송유하는 처음에는 방이 지나치게 넓다며 부담스러워했지만, 어차피 그 방을 쓸 사람이 없다는 말을 듣고는 자신의 행낭을 순순히 그 방으로 옮겼다.
본채 이 층 거실에 앉아서 잠시 쉬고 있는데 송유하가 다가왔다.
“짐 정리는 다 했어?”
“그냥 대충만 해 놨어요. 오후에 제대로 정리하려구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송유하가 맞은편에 앉더니 말했다.
“이 장원은 뭐라고 불러야 해요? 오라버니의 지인께서 매입했으니 정가장은 아닌 거잖아요.”
“글쎄? 그 지인이 아직 딱히 이름을 붙이지는 않으셔서.”
“그러면 그 지인의 성은 뭐예요?”
“성……? 서 씨.”
친한 지인의 성을 늦게 대답하면 이상하게 여길 것 같아서 그냥 전생의 내 성을 말한 것이다. 참고로 서씨도 중원에 많다.
“아, 그러면 우리끼리는 ‘서가장’이라고 부르면 되겠네요.”
“어……. 뭐, 그렇겠네.”
“오라버니의 거처는 이 옆인 거죠?”
“응.”
“나루터 쪽에서 바로 이곳으로 와서 못 봤는데, 그쪽은 공사가 아직 많이 남은 거예요?”
“응, 몇 개월은 더 걸릴 것 같아.”
“아하. 이따가 다 같이 구경하러 가 봐야겠어요.”
송유하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에 말했다.
“원래는 그 거처의 옆옆옆 집이 제갈 교관님 댁이었어. 그런데 이번에 와서 보니 아버지가 옆집과 옆옆 집을 모두 매입하셨더라고. 그 집들에 딸린 밭까지, 모두. 그렇다 보니 집터가 엄청나게 넓어지며 공사가 커진 거지. 제갈 교관님 댁과도 이웃하게 된 거고. 가보면 알 거야. 웬만한 장원 규모야.”
“와아.”
“아버지가 이미 그 거처에 이름까지 붙이셨어. 정 장주님한테서 들었는데, ‘송풍장’이라고 붙였다나 봐.”
“송풍장……. 왠지 아버지다운 작명이네요.”
내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송유하가 말했다.
“아, 그리고 윤 교관님께서도 저희와 같이 오셨어요. 신혼집에 먼저 들렀다가 이곳으로 오겠다고 하셨어요.”
“아하. 알았어.”
이후에도 송유하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밖에서 윤단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유겸아아아!”
이에 서둘러 일 층으로 내려가 보니 행낭을 멘 윤단영이 문밖에 서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교관님.”
내가 인사하자 윤단영이 다짜고짜 내게 물었다.
“유겸아, 유겸아, 나도 이쪽에서 머물러도 되지?”
엊그제 가 보니 제갈수광의 신혼집은 이미 공사가 완료된 모습이었다. 제갈수광의 신혼집은 건물을 새로 올리지 않고 원래 있던 집에 보수 공사를 진행했기에 공사가 빨리 끝난 것이다.
윤단영이 바로 말을 이었다.
“사실 우리 신혼집 쪽의 공사는 다 끝났는데, 그 집에 혼자 머물 생각을 하니 너무 적적할 것 같아서 말이야. 그러니 제갈 선배가 오기 전까지만 부탁할게.”
“얼마든지 편하게 머무십시오.”
내가 대꾸하자마자 윤단영이 나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고마워, 유겸아.”
“아하하, 알겠으니까 일단 포옹은 푸시고…….”
내가 그렇게 말했지만 윤단영은 잠시 후에야 포옹을 풀고는 귀엽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렇게 보면 그녀는 내가 민망해하는 모습을 즐기는 듯하다.
이후에는 윤단영도 본채와 별채들을 구경하더니, 서쪽 별채의 이 층 객실을 숙소로 잡았다.
다음 날에는 원추엽과 명호운이 비룡장으로 찾아왔다.
명호운은 서쪽 별채의 객실에 머물기 시작했고, 원추엽은 이사한 자신의 집에 머물렀다. 그리고 원추엽의 경우에는 일과 시간에는 비룡장에 와서 다른 이들과 같이 수련하다가, 저녁에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원을태, 촉홍결, 윤단영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합숙 인원들을 지도하고, 절정고수인 남궁설 또한 여러 사람의 수련을 부지런히 도우니, 합숙 수련은 전체적으로 매우 효율적으로 진행되었다.
* * *
다들 열심히 수련하며 지내는 가운데 섣달 그믐날이 밝았다.
오전에 호숫가의 넓은 공터에서 공은림과 하조혁을 지도하고 있는데, 언덕 위의 장원 쪽에서 다섯 사람이 걸어 내려오는 게 보였다.
한 사람은 송유하인데, 나머지 네 사람은 죽립을 눌러 쓰고 있어서 알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죽립을 쓰고 있는 네 사람이 사내들이라는 사실 정도만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송유하가 그들을 내게 데려오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잠시 후, 그쪽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송 혀어엉!”
이 세상에서 내게 ‘송 형’이라는 호칭을 쓰는 사람은 딱 두 명뿐인데, 저 반갑고도 호쾌한 음성의 주인공은 길초량이 아니라 황보충이다.
황보충은 내게 손까지 흔드는 중이다.
“황보 형……!”
나도 황보충을 향해 손을 흔들며 외쳐 주자, 그가 우리를 향해 신법을 펼치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죽립을 쓰고 있는 나머지 인원들도 신법을 펼치기 시작했는데, 그제야 다들 누군지 알 것 같았다.
나머지 세 사람은 추소륵, 종금무, 남군호다.
어느새 내 앞으로 다가온 황보충이 말했다.
“송 형, 이게 대체 얼마 만이오!”
“하핫. 황보 형, 안녕하셨소?”
“대부분 안녕했소. 단, 송 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부터 송 형이 살았다는 소식을 듣기 전까지의 기간에는 안녕 못 했소. 하핫.”
황보충다운 호쾌한 대답이 아닐 수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그러는 사이에 나머지 세 명도 내 앞으로 다가왔다.
올해 초에 단목세가에서 헤어진 후로 첫 재회이니 거의 일 년 만에 보는 얼굴들이다.
너무도 반갑다.
추소륵과 남군호, 종금무가 차례로 내게 말했다.
“오랜만이오, 회주.”
“회주! 그런 일을 다 겪고,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소.”
“회주의 멀쩡한 모습을 직접 확인하니 이제야 마음이 완전히 놓이는구려.”
아, 맞다.
나, 뭔가의 회주였지, 참.
거의 일 년간 까마득히 잊고 살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