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302
“종 교관님……!”
종금무를 발견한 공은림과 하조혁은 감격한 표정이었다.
저 두 아이는 잠룡관으로 오기 전에 황산파에서 잠시 무공을 배웠었는데, 당시에 두 아이에게 무공을 지도했던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종금무였다. 허죽신한테 들어서 알고 있는 내용이다.
종금무가 자상한 미소를 지은 채로 대꾸했다.
“은림이, 조혁이,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네,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관님을 이곳에서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공은림이 대꾸하자 종금무가 말했다.
“우리는 생사고락을 함께한 전우거든. 송 공자가 그 전우회의 중심축이고, 실제로도 회주야. 그래서 찾아온 거고.”
이에 나는 눈매를 살짝 찌푸린 채로 공은림과 하조혁에게 말해 줬다.
“모두가 억지로 맡긴 거야. 난 원래 감투 같은 거 극도로 싫어해.”
두 아이가 곤란함 가득한 미소를 보였다.
이후, 서로를 간단히 소개하고 나서 공은림과 하조혁에게 말했다.
“멀리에서 귀한 손님들이 오셨으니 오늘의 암기술 수련은 여기까지. 이제부터는 은잠술 수련들 해.”
두 아이의 암기술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후부터는 기초 은잠술도 가르치기 시작했다. 은잠술까지 익히면 암기술이 훨씬 더 위력을 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
아이들의 대꾸를 들은 후에 송유하에게 말했다.
“누이가 은잠술 수련을 좀 도와줘.”
송유하는 궁술 수련을 하다가 왔는지 한 손에는 활을 들고 어깨에는 전통(화살집)을 멘 모습이었다.
“네.”
송유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고, 우리는 세 사람을 남겨두고 돌아섰다.
장원을 향해 걷기 시작한 후에 황보충이 조용히 말했다.
“누이의 미모가 출중하시더구려.”
그러자 남군호도 말을 보탰다.
“차분하면서도 묘한 분위기를 가지고 계시다 보니 그 미모가 더 빛이 나는 것 같았소.”
내가 대답 대신 미소만 지어 보이자 종금무가 황보충과 남군호에게 말했다.
“송유하 소저는 입관 당시부터 미모로 유명했소. 송 소저가 입관한 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잠룡사화가 바로 잠룡오화로 바뀌었을 정도니까. 회주에게는 조금 미안한 얘기긴 한데, 잠룡관에 있을 때 나는 사실 송 소저로 인해 광풍현의 송가장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소. 회주를 포함한 송 소저의 오라비 세 명이 먼저 잠룡관에 다니고 있었는데도 말이오. 하하…….”
참고로 송유백은 송유하보다 삼 년 먼저 입관했으며, 나와 송유상 놈은 송유하보다 일 년 먼저 입관했었다.
종금무는 갑반의 우수한 관도였으니, 당시 중위반과 하위반에 있었던 송가장 삼 형제의 존재를 알았을 리 만무하다.
종금무에게 대꾸했다.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되오. 그게 엄연한 사실이었으니까.”
그러자 남군호가 내게 물었다.
“송 소저께서도 궁술을 하시나 본데 실력은 어떻소?”
남군호도 기동타격조 시절에 나와 함께 궁술을 익혔었다. 그렇다 보니 궁금한 모양이다.
“빼어나오. 제갈 교관님께서 자질을 높이 사셔서 따로 특별 교습을 해 주실 정도로.”
“허어……!”
“나중에 같이 궁술 수련 합시다. 그때 직접 확인해 보시오.”
내 말에 남군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황보충이 말했다.
“그때 나도 꼭 부르시오. 같이 좀 구경하게.”
“나도 구경하고 싶구려.”
종금무까지 가세하여 그렇게 말했다.
추소륵만이 가세하지 않고 조용히 미소를 보일 뿐이었다.
잠시 후에 추소륵이 내게 말했다.
“제갈 교관님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계속해서 혈교 거점 타격 작전을 수행하고 계신다고 들었소만…….”
“지금도 여전히 그 작전을 수행하고 계신다고 알고 있소.”
내가 대꾸하자 이번에는 황보충이 말했다.
“제갈 교관님께서 서부지맹의 윤단영 교관님과 혼인할 계획이시고 그 신혼집도 이 근처라고 하던데.”
“그렇소. 이 옆에서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곳이 제 거처인데, 그 옆집이 바로 제갈 교관님과 윤 교관님의 거처요.”
“오호. 제갈 교관님과 이웃이라니, 부럽구려.”
제갈수광이 얼마나 든든한 어른인지 알기에 저런 말을 하는 것이다.
“참고로 윤 교관님께서도 지금은 이쪽 장원에 머물고 계시오. 제갈 교관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이곳에 머물겠다고 하시는구려.”
“오오! 이따가 인사드려야겠군.”
황보충이 대꾸하자 남군호가 내게 물었다.
“이 옆의 공사 현장이 회주의 거처라고 하셨는데, 그러면 이곳은 누구의 거처요?”
“이곳은 내 친한 지인의 장원이오. 지인께 미리 허락을 구하고 이 옆의 공사가 마무리될 때까지만 머물기로 한 것이오. 마침 지인께서 장기간 출타 중이시라.”
“아하.”
남군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황보충이 내게 말했다.
“오면서 이 옆의 공사 현장을 얼핏 보니 규모가 상당히 크더구려. 거처 규모라고 하기보다는 장원 규모던데.”
“하하, 아버지가 일을 크게 만드신 결과요.”
그러자 황보충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긴 뭐, 송 형 같은 아들이 있으면 뭔들 못 해 줄까.”
이번에는 종금무가 내게 물었다.
“은림이와 조혁이 말인데, 무공은 많이 늘었소?”
“많이 늘었소. 내공이 받쳐주니 발전 속도도 빠르고.”
고개를 끄덕이는 종금무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허 곡주님한테서 들었소만, 종 공자가 그 두 아이를 내게 맡겨 보라고 권하셨다고?”
내가 농담조로 탓하듯 말하자 종금무가 웃으며 대꾸했다.
“그 둘이 황산파로 무공을 배우러 온 청선곡의 제자들 중 가장 자질이 뛰어나 보였소. 그래서 그 둘만큼은 내가 인정하는 ‘최고’에게서 배웠으면 했던 것이오. 회주가 계반에서 조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정보를 들었던 터라. 하하.”
참고로 총교관 노양홍이 종금무와 같은 황산파다.
“최고는 무슨.”
내가 피식 웃으며 대꾸하자 종금무가 물었다.
“한데 그 두 아이의 주 무공은 무엇이오? 아까 보니 보조 무공으로 암기술과 은잠술을 배우고 있는 모양이던데.”
“그 암기술이 주 무공이오.”
내 대꾸에 네 사람이 놀란 표정을 짓더니, 곧 납득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씩 했다.
“하긴, 회주의 그 무시무시한 암기술 실력을 생각하면 어설픈 검법, 도법, 창법 같은 것보다야…….”
“당장 이세옥 교관님만 해도 암기술이 주 무공이고…….”
이후에 잠시 더 걷다가 네 사람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소생이 이곳에 온 지 겨우 아흐레밖에 되지 않았는데, 네 분은 어떻게 이렇듯 빨리들 알고 찾아온 것이오? 그것도 네 분이 같이?”
황보충이 대꾸했다.
“아, 우리 네 사람과 단목 공자는 평소에도 전서를 자주 주고받으며 지냈소. 단목 공자가 알려줘서 송 형의 소식도 알 수 있었던 것이오. 송 형이 올해 졸업한다는 사실도, 송 형의 거처가 파양현 북쪽 삼문촌에 있는 정가장 근처라는 사실도, 모두 전서를 통해 알았소.”
황보충이 바로 말을 이었다.
“우리 네 명끼리도 전서를 주고받으며 미리 약속을 잡았었소. 그 약속대로 안휘의 안경현에서 만나서 장강의 배편을 타고 이쪽으로 온 것이오. 나와 남 공자는 산동에서부터 같이 움직였고.”
황보충도 육 년 차라서 이번에 졸업이다.
참고로 남군호의 사문인 태산파도, 황보세가도, 북부지맹도 모두 산동에 있다.
네 사람에게 말했다.
“그랬구려. 어쨌든 네 분 모두 먼 길 오시느라 고생들 많으셨소. 이왕 먼 길 오셨으니 편하게들 머물다 가시오.”
그러자 황보충이 대꾸했다.
“잠깐 들른 거 아니오. 장기간 머물 계획으로 온 것이오.”
그 말에 나는 우뚝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장기간…… 머무신다고?”
“그렇소.”
황보충도 나를 따라 멈춰 서며 그렇게 대꾸했는데, 나머지 세 명도 같이 멈춰 서며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황보충이 농담조로 말했다.
“멀리에서 왔는데 설마 쫓아내진 않으시겠지. 그것도 회주가 회원들을.”
“하하, 쫓아낼 리가. 그저, 전혀 예상치 못했던 터라 놀랐을 뿐이오.”
내가 대꾸하자 종금무가 말했다.
“단목 공자가 전서에 써 놨더구려. 자신은 아직 오 년 찬데, 이번에 그냥 회주와 같이 졸업한 후 회주의 거처에 장기간 머물 계획이라고. 그걸 읽고 많은 생각이 들었소. 왜냐면 올해 통합 잠룡대전에 다녀오신 본문의 어른들께서 단목 공자가 절정에 오른 것 같다는 얘기를 해 주셨거든.”
추소륵, 황보충, 남군호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저들도 단목강이 절정에 오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하긴, 소림사, 황보세가, 태산파쯤 되면 그 정도는 파악할 만하다. 게다가 단목강은 나처럼 경지가 잘 드러나지 않는 종류의 무공을 익힌 것도 아니라서, 고수들의 눈에는 어느 정도 보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회주는 단목 공자보다 경지가 더 높잖소. 그렇듯 우리 기타회에서 가장 뛰어난 두 사람이 같이 수련하며 지낸다는데, 이쪽으로 합류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계속 뒤처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들더구려. 그래서 문파의 어른들에게 말씀드려서 허락을 받은 것이오.”
종금무가 말을 마치자 황보충이 입을 열었다.
“내가 오게 된 이유도 종 공자와 비슷하오. 송 형이 보고 싶기도 했고.”
“나도 마찬가지요.”
남군호도 말을 보태자 추소륵이 입을 열었다.
“나 또한 단목 공자가 절정에 올랐다는 얘기를 듣고 많은 생각을 하던 차에, 전서를 받고 세 분 공자의 계획을 알게 되었소. 그러자마자 사부님께 허락을 구하고 합류하게 된 것이오. 어쨌거나 기동타격조 시절에 여러분과 함께하며 견식을 넓혔으니, 이번에도 함께하며 많이 배우고 싶소. 친분도 더 쌓고 싶고.”
이에 나는 미소를 보이며 네 사람에게 말했다.
“네 분 모두 환영하오. 즐겁게 지내 봅시다.”
네 사람에게는 동쪽 별채부터 구경시켜 준 후, 본채를 거쳐 마지막에 서쪽 별채로 향했다.
역시나 다들 서쪽 별채에서 보이는 풍광에 매우 감탄하며 일 층의 서향 객실을 잡았다.
이 층에 여자들이 머물고 있다는 얘기를 듣더니 본인들이 알아서 일 층으로 정한 것이다.
점심시간이 되어 모두가 식당에 모였다.
윤단영은 통합 잠룡대전을 통해 황보충 등의 네 사람을 모두 알고 있는 만큼, 매우 반가워하며 그들을 맞이했다.
네 사람도 반가워하며 윤단영에게 인사했다.
이후에는 합숙 인원들과 황보충 일행을 서로 소개해 줬다.
합숙 인원들 대부분이 황보충 일행의 면면을 듣고는 놀란 반응들을 보였으나, 남궁설과 선우린만은 예외였다.
두 소녀의 경우에는 작년 통합 잠룡대전에서 황보충, 남군호, 종금무, 추소륵을 모두 봤기 때문일 것이다.
반대로 추소륵과 남군호는 남궁설과 선우린을 소개할 때 많이 놀라는 모습이었다.
두 소녀는 작년 통합 잠룡대전 당시 면사가 달린 모자를 쓰고 조용히 돌아다녔기에, 추소륵과 남군호로서는 그녀들을 보는 게 처음일 수밖에 없다.
어쨌거나 소개를 하는 중에 추소륵과 남궁설의 시선이 다소 오래 얽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천하제일문파를 대표하는 제자와 천하제일세가의 금지옥엽이 자연스럽게 서로를 의식하는 모습이라 하겠다.
소개가 끝난 후에는 모두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점심 식사를 마쳤다.
점심 식사 후에 찾아온 원을태와 촉홍결도 황보충 일행을 보고는 매우 반가워했다.
오랜만의 재회인 만큼, 두 노인을 포함한 기동타격조 출신의 인원들 일곱 명은 본채의 이 층 거실에 모여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었다.
각자의 근황 이야기도 했고, 이곳에 없는 다른 기동타격조원들의 소식도 주고받았다.
이후에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한 식경 남짓 지났을 때쯤, 일 층의 현관문이 열리는 듯하더니 대화 소리가 들렸다.
“이곳의 이 층에 계십니다.”
“알았다. 안내해 줘서 고마워.”
처음에 들린 건 왕철양의 목소리였는데, 그에게 대꾸하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길초량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직후에 일 층에서 길초량의 외침이 들려왔다.
“송 형! 송 혀엉! 나 왔소!”
외치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길초량이 나는 듯 계단을 올라오더니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길초량을 반갑게 맞이했고, 길초량은 원을태와 촉홍결에게 공손히 인사한 후, 황보충 등과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인사를 마치고 모두 자리에 앉자 길초량이 말했다.
“섣달그믐이고 해서 송 형에게 술이나 한잔 얻어 마시며 한 해를 마무리할까 하고 온 길이오. 한데 네 분 공자들도 와 계실 줄은 몰랐구려. 뭐, 이런 날에는 사람이 많을수록 좋지. 오늘 저녁에는 오랜만에 실컷 마셔 봅시다.”
이 자식은 술 마실 생각에 벌써 입이 귀에 걸려 있다.
황보충이 반색하며 대꾸했다.
“하하, 오랜만에 만났으니 당연히 코가 비뚤어질 때까지 마셔야지요.”
이놈도 똑같은 놈이다.
“그나저나 술이 많이 필요하겠구려. 섣달그믐날이라 다들 적잖이 마시려 할 테니.”
남군호가 그렇게 말하자 길초량이 대꾸했다.
“안 그래도 오다가 청여홍 소저와 마주쳤는데, 내가 술 얘기를 꺼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더구려. 연주상단 남창지점에서 이미 배에 싣고 오고 있고, 요리를 만들어 줄 숙수들도 같이 오고 있다면서.”
“오오오!”
다들 환호하며 좋아하는 가운데 황보충이 원을태와 촉홍결에게 말했다.
“노선배님들께서도 함께하시지요.”
“그래. 오랜만이니 우리도 같이 한잔해야지. 단, 초반에 잠시만 어울리다가 빠질 것이다. 허허헛.”
촉홍결이 대꾸하자 황보충이 말했다.
“아닙니다. 오래 머물며 함께 드셔야지요.”
“허헛, 녀석. 말은 고맙다만 오늘 저녁에는 우리도 정 장주와 함께 한잔하기로 했느니라. 늙은이들끼리 고즈넉하게.”
촉홍결이 그렇게 대꾸하며 자리에서 일어서자 원을태도 따라서 일어섰다.
“우리가 지도해 주고 있는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이만 가 봐야겠다. 다들 저녁때 보자꾸나. 초량이와는 그때 대화를 나누면 되겠지.”
두 노인이 그렇게 말하더니 이 층 거실을 벗어났다.
우리는 남아서 한 식경가량 더 대화를 나누다가 흩어졌다.
길초량과 둘만 남게 되어 그를 서재로 이끌었다.
“아니, 신룡대원이 그렇듯 널널해도 되오? 잠룡관에서도 늘상 어슬렁거리며 지내더니 졸업 후에도 하릴없이 빈둥거리는 모양새로구려. 뭐, 변하지 않아서 좋긴 하네.”
오랜만에 가볍게 놀려 주자 길초량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꾸했다.
“졸업 후에도 절친을 향한 그 독설은 여전하시구려.”
이에 나는 빙그레 웃으며 그에게 물었다.
“한데 정말로 어인 일이시오? 게다가 이곳에 제법 오래 머물 것 같다니?”
아까 모두와 함께 있을 때 길초량이 그렇게 얘기했었기에 물은 것이다.
길초량이 대꾸했다.
“전에 잠깐 얘기했듯, 현재 백룡조원들은 대부분이 혈교 거점 타격 작전에 투입되어 있잖소. 제갈 교관님, 남궁 부당주님, 백 소협과 함께.”
도예주는 부상에서 회복되자마자 백룡조를 이끌고 혈교 거점 타격 작전을 지원하러 갔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길초량이 말을 이었다.
“나도 그쪽으로 합류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가 예주 누나의 전서를 받은 것이오. 그쪽의 작전은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어 합류시키기가 어려운 상황이니, 그냥 송 형의 거처에서 대기하고 있으라는 전서였소.”
길초량은 원래 묵룡조지만 현재는 백룡조에 파견된 상태다. 그래서 도예주의 지시에 따르고 있는 것이다.
길초량에게 물었다.
“굳이 이곳에서……?”
“그렇소. 아마도 현재 수행하고 있는 작전이 끝나면 이쪽에 들를 모양이오. 오랜만에 송 형도 보고, 송 형의 거처도 둘러본 후에 나를 데리고 가려는 것이지.”
“아.”
고개를 끄덕인 후에 물었다.
“어쨌거나 그쪽은 여전히 다들 무사하겠지요?”
제갈수광, 남궁찬, 백송학, 도예주의 안부를 전체적으로 물은 것이다.
“며칠 전에 내가 받은 전서에는 무사하다고 적혀 있었소.”
다행이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길초량이 말했다.
“참고로 내가 이곳에 머무는 명목상의 임무는 백도 주요 인사의 동향 파악이오. 그 주요 인사가 바로 동천비룡인 것이고.”
“잘도 갖다 붙이셨구려.”
“요즘의 강호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무인이 동천비룡인 건 사실이니까.”
“에휴…….”
내가 반박은 못 하고 낮게 한숨만 내쉬자 길초량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런고로, 당분간 신세 좀 지겠소.”
“얼마든지.”
“오면서 철양이에게 들어 보니 본채 일 층에 방이 하나 남는다고 하더구려. 나는 그곳에 머물겠소.”
“응? 거기보단 서쪽 별채가 풍광이 더 좋을 텐데?”
“그냥 송 형과 더 가까운 곳에 머무르고 싶어서 말이오.”
“대놓고 밀착 감시를 하시겠다?”
“푸하하! 나는 그저 송 형과 송 소저의 근처에 머무는 게 마음이 가장 편할 뿐이오. 송 형의 거처에서 셋이 같이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지내던 평온한 시절이 생각나거든.”
내가 미소를 보이자 길초량이 말했다.
“그럼 일 층 거처에 짐부터 푼 후에 송 형 말마따나 마저 어슬렁거려야겠소. 저녁때 봅시다.”
하여튼 웃긴 놈이라니까.
저녁이 되자 모두가 동쪽 별채의 연회장에 모였다.
연회장에 도착해 보니 여러 원탁에 각종 요리가 푸짐하게 차려져 있었다. 청여홍이 부른 숙수들이 만든 음식들이다.
각자가 앉고 싶은 자리에 편하게 앉았다.
나는 추소륵, 황보충과 같은 탁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지나가던 남궁설이 빈자리를 보더니 내게 물었다.
“송 오라버니, 여기 자리 있어요?”
“아니. 빈자리야.”
내가 대꾸하자마자 남궁설이 빈자리에 앉았다.
배치는 추소륵이 내 왼쪽, 황보충이 오른쪽, 남궁설은 내 정면이다.
자리에 앉은 남궁설이 술병을 들며 말했다.
“다들 선배들이시니 제가 한 잔씩 따라 드릴게요.”
곧 남궁설이 우리의 술잔을 채워 주자 추소륵이 남궁설의 술잔을 채워 줬다.
남궁설이 황보충에게 말했다.
“황보 공자님과는 올해 통합 잠룡대전의 뒤풀이 자리에서 뵀었죠.”
“이곳에서 다시 보니 더 반갑구려.”
황보충이 대꾸하자 남궁설이 이번에는 추소륵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유명한 추 공자님과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에요.”
“소생이야말로 영광이오.”
“그럼 이 만남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다 같이 건배할까요?”
이에 우리 네 사람은 건배한 후 술잔을 비웠다.
황보충이 잔을 내려놓으며 남궁설에게 말했다.
“그나저나 올해 통합 잠룡대전에서 보니 역시 남궁세가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구려. 이 년 차임에도 불구하고 팔강에 오른 남궁 소저를 보며 정말 대단하시다는 생각을 했소.”
“과찬이세요. 대진운이 좋았을 뿐이에요.”
“듣자 하니 단목 공자도 졸업한다던데, 그러면 올해 통합 잠룡대전에서 사 강에 들었던 인원들이 모두 졸업하게 되오. 그러니 내년이야말로 남궁 소저께서 큰일을 낼 수 있지 않을까…….”
황보충이 말을 줄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올해 통합 잠룡대전에서 사 강에 진출한 이들은 누구나 인정하는 강자들로, 황보충, 단목강, 제갈건, 선의림이었다.
그들이 모두 졸업하는 만큼, 내년 통합 잠룡대전에서는 남궁설이 우승을 노려 볼 수도 있다는 의미다.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아요. 저, 통합 잠룡대전에 안 나갈 거거든요.”
그 말에 황보충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추소륵도 적잖이 놀란 기색이다.
“충분히 우승을 노려 볼 만한 상황인 듯한데 왜…….”
사실, 절정에 오른 남궁설에게는 통합 잠룡대전이 별 의미가 없다. 가뜩이나 남궁설은 본인의 실력을 과시하고 싶어 하는 성향도 아니다. 그러니 안 나가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황보충과 추소륵은 그 사실을 모르니 의아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남궁설이 대꾸했다.
“저, 휴학했거든요.”
이번에는 나도 깜짝 놀랐다.
처음 듣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즉시 그녀에게 물었다.
“뭐? 휴학? 왜……?”
“원래 송 오라버니가 졸업한 후에는 갑반으로 승반해서 잠룡관 생활을 이어갈 계획이었어요. 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갑반에서 배우는 것보다 송 오라버니 곁에서 수련하는 편이 실력 향상에 훨씬 더 도움 될 것 같더라구요.”
“그렇다는 건…….”
“네. 계속 이곳에 머물 거예요. 그리고 미리 말하는데, 멋대로 결정한 거 아니에요. 부모님께 허락도 받았어요. 참고로 린아도 같은 이유로 휴학했구요. 잠룡관은 나중에 복학해서 최대한 빠르게 졸업하면 되는 거니까요.”
“허……!”
갑작스러운 소식이라 놀라긴 했으나 두 소녀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결정이긴 하다.
자신의 실력을 높일 수 있는 더 나은 환경이 있다면 굳이 잠룡관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가뜩이나 두 소녀의 경우에는 정체가 밝혀지면서 잠룡관 생활이 여러모로 불편해진 상황이기도 했었다.
내가 이해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남궁설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 그리고 계반삼조의 나머지 아이들도 휴학했어요. 이유는 우리와 같구요.”
포연월, 원추엽, 명호운도 휴학했다는 뜻이다.
“허……!”
이 또한 처음 듣는 얘기이기에 당황스럽기는 하나, 그 세 명의 뜻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다들 계반이니 휴학 절차가 그리 어렵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휴학한 사람이 더 있어?”
“제가 알기로는 없어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황보충이 남궁설에게 말했다.
“하면 앞으로 오랜 기간 함께 지내게 되겠구려. 같은 식객끼리 잘 지내 봅시다.”
“네. 잘 부탁드려요.”
그러자 추소륵이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말없이 남궁설을 유심히 바라보고만 있었는데, 그러다가 실로 오랜만에 입을 연 것이다.
“내, 결례인 줄 알면서도 남궁 소저에게 조심스럽게 여쭙고 싶은 게 하나 있소.”
“답해 드릴 수 있는 것이면 답해 드릴게요.”
남궁설이 흔쾌히 대꾸하자 추소륵이 매우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혹여…… 절정이시오?”
추소륵이 저 질문을 할 줄은 몰랐기에 내심으로 놀랐다.
남궁설도 다소 놀란 표정이었다.
잠시 추소륵의 시선을 가만히 응시하던 남궁설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제가 최대한 주의했는데도 그걸 알아채시다니. 역시 소림이고, 역시 추 공자시네요.”
남궁설의 말마따나 저래서 소림, 소림 하나 보다.
황보충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남궁설에게 물었다.
“저, 저, 정말로 절정에 오르셨단 말이오? 통합 잠룡대전 당시까지만 해도 그 경지는 아니셨던 것으로 아는데…….”
“그 후에 기연이 있었어요.”
“허어……! 아무리 기연이라 해도 그 나이에 그 경지라니…….”
황보충은 여전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남궁설이 말했다.
“가족을 포함해서 소수의 지인들만 알고 있는 사실이에요. 굳이 그 사실을 널리 알리고 싶지 않거든요.”
“무슨 말씀인지 알겠소.”
황보충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하자, 추소륵이 이번에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길 공자의 느낌 또한 기동타격조 시절과 비교해서 많이 달라졌던데…….”
길초량도 절정에 올랐느냐고 묻는 것이다.
이에 나는 천천히 고개만 끄덕여 보였다.
황보충이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허……! 단목 공자에, 남궁 소저에, 길 공자까지……?”
추소륵은 조용히 눈을 감은 채 천천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이윽고 황보충이 자신의 잔을 단숨에 비우더니 내게 말했다.
“내, 원래는 송 형을 귀찮게 하지 않기 위해 한 주에 한두 번씩만 비무 형식의 수련을 부탁할 계획이었소. 한데 안 되겠구려. 얼굴에 철판 좀 깔아야겠소. 송 형이 최소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은 비무 형식으로 내 수련을 좀 도와주셔야겠소.”
비무 형식의 수련은 내 주변 사람들과도 자주 했던 수련이다.
비무 후에 복기하며 보완해야 할 점을 간단하게 짚어 주면 돼서, 그리 어려울 것도 없고 신경 쓸 것도 별로 없다.
“하하, 알겠소.”
내가 대꾸하자 황보충이 각오가 가득 담긴 눈빛을 보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길 공자도 이곳에 제법 오래 머문다고 하니 길 공자에게도 부탁할 것이고, 나중에 단목 공자가 오면 단목 공자에게도 부탁할 것이오. 원 어르신과 촉 어르신께도, 바짓가랑이를 잡고서라도 부탁할 것이오. 얼굴에 철판 깐 김에 확실하게 깔 것이오.”
이번에는 추소륵이 말했다.
“나도 황보 공자처럼 할 것이오. 부탁 좀 드리리다, 회주.”
“알았소. 그리하리다.”
내가 대꾸하자 추소륵이 남궁설에게 말했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남궁 소저께도 한 차례씩 비무를 부탁드려도 되겠소?”
“제가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필요하시다면 그리할게요. 저 또한 소림의 무학을 경험해보고 싶으니까요.”
그러자 황보충이 남궁설에게 말했다.
“소생도 부탁드리겠소.”
“물론이에요.”
“고맙소.”
황보충과 추소륵의 눈동자에 각오가 가득 담겼다.
섣달그믐날 밤의 술자리는 즐거운 분위기에서 밤늦게까지 이어지다가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황보충, 추소륵, 종금무, 남군호로 인해, 비룡장의 분위기는 새해 첫날부터 수련의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