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303
비룡장의 외원에는 널찍한 실외 연무장이 있으며, 사철 푸르른 방풍림이 연무장의 외곽을 둘러싸고 있다.
그 실외 연무장의 한쪽에 궁술 과녁 일곱 개가 세워졌다.
대형 동심원 안에 중형 동심원, 중형 동심원 안에 소형 동심원, 소형 동심원 안에 중앙 동심원이 그려진 과녁으로, 기동타격조 시절에 제갈수광이 변별력을 높이고자 사용했던 과녁과 같은 규격이다.
각 과녁은 나란히 서 있지 않고 거리가 뒤죽박죽이며, 그중 가장 가까운 과녁이라 해도 기본적으로는 거리가 제법 멀다.
열 명의 인원이 멀리에서 그 과녁들을 보고 있는데, 그중에서 네 명만이 활을 들고 있다.
나, 송유하, 길초량, 남군호다.
나머지는 구경하기 위해서 모인 인원들로 황보충, 추소륵, 종금무와 남궁설, 선우린, 윤단영이다.
황보충이 말했다.
“자, 시작합시다, 남 공자.”
그 말이 끝나자마자 남군호가 횡으로 그어진 선을 따라 빠르게 달리며 과녁 쪽으로 상체를 틀어 활을 연사하기 시작했다.
투웅! 투웅! 투웅!
화살은 좌측의 과녁부터 시작해서 우측의 과녁들을 차례로 노리며 날아갔다.
정확도와 연사 속도를 점검하기 위한 방식인데, 과녁의 거리가 뒤죽박죽인 데다가 횡으로 빠르게 달리며 쏴야 하기에 난도가 매우 높다.
심지어 마지막 두 발은 도약해서 쏴야 한다.
게다가 오늘은 찬 바람이 제법 부는 흐린 날이다. 과녁을 맞히기가 더욱 어려운 환경인 것이다. 물론 내공을 담아서 쏘기에 그나마 바람의 영향을 덜 받기는 하겠지만.
남군호는 제법 깔끔한 궁술 실력을 보여줬다.
잠깐 보는 것만으로도 그의 실력이 이전보다 많이 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동안 궁술 수련을 열심히 해 온 모양이다.
일곱 번째 화살을 발사한 남군호가 바닥에 착지했고, 그 화살도 과녁에 꽂혔다.
짝짝짝짝-
구경하던 이들이 박수를 쳤다.
남군호가 날린 일곱 발의 화살 중에서 중앙 동심원 안에 꽂힌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한 발은 소형 동심원 안에, 세 발은 중형 동심원 안에, 세 발은 대형 동심원 안에 박혔다.
과녁에 화살이 꽂혀 있는 결과만 놓고 보면 궁술 실력이 높다고 보기 어려울 것 같지만, 활을 쏜 조건과 환경을 고려하면 충분히 박수받을 만한 수준이다.
윤단영이 말했다.
“군호, 제법이네? 궁술을 시작한 지 겨우 일 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면서 벌써 이 정도 실력인 거야? 대단한데?”
기대 이상이라는 어조였다.
남군호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꾸했다.
“하하……, 아직 많이 부족한 수준입니다.”
이후에는 길초량이 같은 방식으로 달리고 도약하며 활을 쐈다.
길초량은 역시나 남군호와 비교해서 움직이는 속도나 연사 속도가 더 빨랐다.
결과를 보니 한 발은 중앙 동심원에, 네 발은 소형 동심원에, 두 발은 중형 동심원에 꽂혀 있었다. 중형 동심원에 박힌 화살들이라고 해도 소형 동심원의 외곽선에서 많이 벗어나지는 않은 모습이었다.
짝짝짝짝짝!
“오오……!”
구경하는 이들 쪽에서 박수 소리와 함께 두세 명의 탄성도 섞여서 들렸다.
저런 반응이 나올 만한 실력이다.
윤단영이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우와! 초량이 궁술 잘하네?”
“하핫, 바람 때문에 멀리 있는 과녁을 맞히는 게 생각보다 어렵네요.”
자연스럽게 바람 핑계를 대고 있기는 한데, 내가 볼 때 길초량 놈은 실력을 온전히 보여주지 않았다. 절정에 오르면서 향상된 안력과 동체 시력을 가지고 저 정도의 결과밖에 못 낼 리 없기 때문이다.
물론 전부를 보여줄 필요가 없는 자리이긴 하다.
이건 친선으로 실력을 점검해 보는 차원에서 마련된 자리이며, 원래는 송유하의 궁술을 구경하고자 시작된 자리니까.
차례가 되어 나도 선을 따라 횡으로 달리며 화살을 날렸다.
참고로 내 무공 경지는 허죽신한테서 받은 청심단 덕분에 절정의 중반에 도달했었고, 야명석 동굴에서의 기연 덕분에 현재는 절정의 중후반에 이른 상태다.
경지가 이렇다 보니 천섬무를 조금만 운용해도 가장 멀리에 있는 과녁의 중앙 동심원을 정확하게 노리는 게 가능하다. 경지가 크게 상승하면서 기본적인 안력과 동체 시력도 크게 향상된 덕분이다.
게다가 천섬무가 운용되는 상황이면 연사 속도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변수는 바람인데, 두어 번만 화살을 날려보면 바람의 세기를 대강 계산할 수 있다. 그러면 이후의 화살은 약간의 오조준을 통해 대부분 중앙 동심원에 꽂아 넣을 수 있다.
천섬무의 높은 경지를 이용해 억지로 욱여넣는 방식이라 하겠다. 물론 이 또한 일정 수준 이상의 궁술 경지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붙지만.
첫 화살은 소형 동심원의 외곽선을 살짝 벗어나 중형 동심원에 박혔다. 우하단이다. 바람의 영향이다.
그 바람을 염두에 두고 오조준하여 두 번째 화살을 발사했는데, 이번에는 소형 동심원 안에 박혔다. 외곽선에 가까운 좌상단이다.
세 번째 화살은 제대로 마음먹고 날렸는데 중앙 동심원에 박혔다. 완전히 중심은 아니나 중심에 거의 가깝다.
감이 잡혔기에 다음 화살부터는 적당히 쐈다.
길초량보다 약간 나은 결과가 나오게끔 조절했으며, 연사 속도 또한 길초량과 비슷한 수준으로 맞췄다.
결국, 두 발은 중앙 동심원, 네 발은 소형 동심원, 한 발은 중형 동심원이라는 결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박수 소리와 탄성이 들렸고, 윤단영의 칭찬도 들려왔다.
“와아! 유겸아! 너, 정말로 궁술을 일 년 전에 시작한 거 맞아? 그전에 어느 정도 배워 뒀었던 거 아니야?”
“기동타격조 시절에 제갈 교관님을 통해 처음 배웠던 게 맞습니다. 당시에 제 실력을 본 길 형이 아주 대놓고 깔깔깔 비웃었었거든요. 활 자체를 그때 처음 쏴 본 것이라.”
내가 대꾸하자 길초량이 윤단영에게 말했다.
“그건 그냥 웃겨서 웃었던 것이지 비웃었던 것은 아닙니다. 당시 송 형의 실력이 형편없는 수준이긴 했거든요. 하핫.”
윤단영이 대꾸했다.
“그렇게 형편없는 수준에서 벌써 이런 실력이라는 게 정말 대단하다아……!”
내가 씩 웃어 보일 때쯤 송유하가 준비를 마치고 앞으로 나갔다.
그러자 길초량이 작은 목소리로 윤단영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잘 보십시오.”
길초량은 송유하의 궁술 실력을 잘 알고 있기에 저 소리를 하는 것이다.
송유하가 허리를 숙이더니 마른 흙을 한 움큼 쥐었다. 그러더니 다시 허리를 펴고는 흙을 서서히 뿌리기 시작했다.
풍향과 풍속을 보기 위해 저러는 것이다.
이윽고 손을 턴 송유하가 활을 들고 화살 하나를 시위에 메기더니 그대로 선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첫 화살이 발출되었고, 그 화살은 소형 동심원 안의 우하단에 꽂혔다.
이어진 두 번째 화살은 중앙의 동심원에 꽂히더니, 세 번째 화살도 중앙의 동심원에 꽂혔다.
그 이후의 화살들도 계속해서 중앙의 동심원에 꽂혔으며, 마지막에 도약해서 날린 화살들까지 모두 중앙의 동심원에 꽂혔다.
심지어 후반부에 날린 화살들은 아예 과녁의 중심에 다닥다닥 꽂히는 모습이었다.
저 어마어마한 궁술 실력은 수많은 바람의 환경과 각종 거리의 과녁에서 수도 없이 활을 쏴 온 결과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송유하는 연사 속도 또한 매우 빨랐다.
참고로 송유하는 일류의 초반이며 남군호는 일류의 후반이다. 그런데도 그녀의 연사 속도가 남군호보다 훨씬 빨랐다.
만약 절정고수인 길초량이 최선을 다했다 해도 방금 송유하가 보였던 연사 속도보다 빨랐을까?
장담하기 어려울 것이다.
송유하가 궁술을 얼마나 열심히 수련해 왔을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착!
송유하가 궁술을 마치고 착지했는데도 넓은 실외 연무장에는 한동안 정적만 흘렀다.
다들 압도되어 입을 쩍 벌린 채로 송유하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착지 후 과녁을 확인하고 있던 송유하가 이윽고 우리 쪽으로 돌아서자, 그제야 한꺼번에 탄성이 쏟아졌다.
“우와……!”
“허어……!”
“세상에……!”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채로 걸어오는 중에도 송유하는 특유의 무심한 표정을 보일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송유하가 더 멋있게 보였다.
내 옆에 있던 황보충이 멍한 표정에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송 형, 나……, 반한 것 같소…….”
황보충의 옆에 있던 남군호도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나는 미소만 지어 보였다.
모두가 깜짝 놀라 있지만 사실 송유하의 궁술 실력은 저게 전부가 아니다.
작년 여름에 송유하는 청여홍의 장원에서 나름의 무음시를 구사한 적이 있었는데, 일류고수가 되면서 그 기술도 크게 발전한 상태다.
잠룡관에서 궁술 수련을 한 차례 같이 하면서 확인해 봤는데, 무음시의 기척과 소리는 훨씬 더 작아지고 위력은 더 증가한 모습이었다.
송유하의 궁술 실력은 고천비룡결과 풍우비룡무의 경지가 상승함에 따라 계속 상승하게 될 테니, 앞으로 저 궁술이 어디까지 발전할지 매우 기대된다.
* * *
새해가 밝은 후로 열흘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동안 비룡장에 머무는 이들의 수련 열기는 대단했는데, 그중에서도 황보충, 추소륵, 종금무, 남군호가 특히 열심이었다.
네 사람은 내게 비무 형식의 수련을 부지런히 요청했으며, 틈틈이 원을태, 촉홍결, 윤단영, 길초량과도 비슷한 형태의 수련을 이어갔다.
그뿐만 아니라 네 사람은 다른 이들의 수련도 부지런히 도와줬다. 밥값은 하겠다며 나선 것이다.
덕분에 나는 집중 지도가 필요한 소수의 인원에게만 신경 쓰며 나름 여유롭게 지낼 수 있었다.
정월 열하룻날 오후.
서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청여홍이 찾아왔다.
“방금 지점에서 관 숙부의 전서가 도착했어요. 오늘 새벽에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방문했고, 관 숙부님과 직접 대면하여 물건을 전달했다고 해요.”
그녀가 말하는 ‘지점’은 연주상단 남창지점이고, ‘관 숙부’는 지점장 관대평이며, ‘물건’은 야명석이다.
“관 숙부님과 양 총관님이 내용물을 꼼꼼하게 확인하고 기록했다고 하더군요. 규격화된 가마니에 제대로 담아 보니 총 열여섯 가마니에, 다른 한 가마니에도 삼분지 이가량 찼다고 해요. 그 어마어마한 양에 두 분이 졸도할 뻔하셨다고…….”
거대 상단인 연주상단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관대평과 양운필로서도 그 정도 양의 야명석은 처음일 수밖에 없다.
“최고의 세공사들을 알아보는 중이고, 아울러 적절한 판로도 물색하고 있다고 해요. 그 진행 상황을 수시로 송 공자님과 제게 보고해 달라고 부탁했어요.”
“고맙소.”
“고맙기는 저희가 더 고맙죠. 판매 수수료만 해도 엄청날 테니까. 어쨌거나 이제 실제로 갑부가 되셨으니 앞으로 더욱 잘 부탁드려요.”
청여홍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이며 그렇게 말했고, 나도 그녀에게 대꾸해줬다.
“나 또한 잘 부탁드리오. 앞으로도 많은 일을 청 소저와 상의하게 될 것 같으니.”
“얼마든지요.”
청여홍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고, 나도 그녀와 시선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잠시 후에 청여홍이 말했다.
“방학 때마다 모두와 함께 여러 차례 합숙해 왔지만, 이번 합숙이 가장 알찼던 것 같아요. 내일이면 이곳을 떠나야 한다니 너무 아쉽네요. 환상적인 환경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해서 너무 좋았는데.”
나흘 후면 방학이 끝나기에 슬슬 잠룡관으로 복귀해야 할 인원이 있다.
두 명으로, 송유하와 청여홍이다.
내가 미소를 보이자 청여홍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합숙 기간에 제 수련에 특별히 많이 신경 써 주신 점, 감사드리고 싶어요.”
“청 소저의 수련을 도울 때마다 내가 속으로 계속 놀랐었다는 점도 꼭 말해 주고 싶었소. 얼마나 열심히 수련하고 있는지 알 것 같더구려. 그래서인지 수련을 도울 때마다 기분 좋게 임할 수 있었소.”
“송 공자님이 잘 가르쳐주시니 저야말로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수련에 임할 수 있었어요. 잠룡관으로 돌아간 후에도 이번에 말씀해 주신 부분들에 유념하며 수련할게요. 여름 방학에 뵐 때는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잠룡관에서도 수련하다가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 전서를 통해 물어보시오. 글로 설명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최대한 쉽게 풀어 답신을 드리리다.”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청여홍은 이후에도 잠시 더 머물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다가 서재를 떠났다.
저녁 식사 후에 이 층 거실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송유하가 다가오더니 말했다.
“잠룡관으로 복귀하기 싫어요.”
얘답지 않게 투정 부리듯 말한 것으로, 실제로 복귀하지 않겠다는 말은 아니다.
내가 이해한다는 의미로 웃어 보이자 송유하가 다시 말했다.
“저도 사 년 차만 마치고 졸업할 거예요.”
송유하도 올해 사 년 차가 된다. 그러니 올해까지만 잠룡관에 다니다가 졸업하고 이곳으로 오겠다는 뜻이다.
내 명성이 워낙 높아졌기에 송천광도 다른 자식들에게는 딱히 바라는 게 없어졌다. 그렇기에 송유하가 사 년 차만 마치고 졸업한다고 해도 별로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잠룡관에 친우들이 아직 여럿 남아 있으니까, 남은 일 년 동안 그들과도 추억 많이 쌓아. 누이가 수련에만 너무 몰두할 것 같아서 하는 소리야.”
“알겠어요.”
단목지, 단목홍신, 청여홍, 진운령, 황성락, 우문직 등은 올해에도 여전히 잠룡관에 남아 있다. 그들이 있으니 송유하도 심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에게 말했다.
“올해 일 년간은 은잠술 수련하고 신법 수련에 집중하도록 해. 무인은 어느 상황에서든 생존이 최우선인데, 그 두 가지만 수준급으로 익혀도 어지간한 상황에서는 살아남을 수 있거든.”
혈교 무리가 점점 정리되어 가고 있다고는 하나, 강호는 아직 어수선한 상태다.
혈교의 잔당들도 아직 곳곳에 숨어 있을 가능성이 있는 만큼,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떨어져 있는 기간에는 은잠술과 신법만 집중적으로 익히라 한 것이다.
“그렇게 할게요.”
대꾸하면서도 송유하는 여전히 아쉬워하는 표정이었다. 떠나기 싫은 것이다.
그녀에게 말했다.
“어차피 반년 후면 방학이야. 시간 금방 가. 나도 혹여 동부지맹 쪽에 갈 일이 있으면 꼭 누이한테 들를 테니까, 잠룡관에서 잘 지내고 있어.”
그러자 송유하가 꾸역꾸역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네.”
매사에 알아서 잘하는 아이이니 별로 염려될 일도 없다.
지금은 주변에 든든한 친우들도 많으니까.
송유하와 청여홍은 다음 날 새벽에 나루터에서 소형 유람선을 타고 떠나갔다.
원래는 두 사람의 안전을 위해 내가 동부지맹 인근까지 데려다주고 올 계획이었는데, 촉홍결이 동부지맹에 볼일이 있다며 그녀들과 함께 갔기에 그냥 장원에 머물 수 있었다.
* * *
정월 대보름날 저녁에는 비룡장의 인원들이 모두 모여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술도 한 잔씩 했다.
길초량과 황보충이 낮부터 ‘술 노래’를 부른 데다가 남궁설과 선우린이 동조하니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이틀 후인 정월 열이렛날 점심 무렵.
식당에 모여 다 같이 점심을 먹고 있는데, 문이 열리더니 반가운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가 밥 먹다 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조장님!”
“단목 공자!”
단목강이었다.
“윤 교관님 안녕하셨습니까. 그리고 역시나 네 분 공자들도 와 계셨구려. 길 공자도 계시고. 이렇듯 다시 보니 너무도 반갑소. 다른 공자들, 소저들도 모두 반갑고. 하하.”
존재만으로도 듬직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바로 단목강이다.
그래서인지 모두가 매우 반갑게 그를 맞았다.
그리고 그 직후, 단목강을 따라 매우 의외의 인물이 식당 문 안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가, 강 소저……!”
“하령 언니!”
강하령이었다.
모두가 그녀를 발견하고는 놀란 반응을 보였다. 강하령을 ‘언니’라고 부른 사람은 남궁설과 선우린이다.
강하령이 생긋 웃으며 말했다.
“우와! 다들 여기에 모여 계셨네요?”
황보충이 대꾸했다.
“이곳에서 다시 뵈니 정말 반갑기는 한데, 원래대로라면 강 소저께서는 지금쯤 잠룡관에 계셔야 하는 것 아니오?”
강하령도 단목강과 같은 연차다. 올해 육 년 차이니 황보충의 말마따나 잠룡관에 있어야 한다.
“후훗, 저도 송 공자님에게 신세 지러 왔죠.”
그렇게 대꾸한 강하령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괜찮죠, 송 공자님?”
“괜찮다마다. 잘 오셨소. 한데 정말로 잠룡관은 어떻게 하고 온 것이오?”
“후훗, 배고픈데 그건 밥 먹고 얘기하면 안 될까요?”
그러자마자 공은림이 바로 일어나며 말했다.
“앉아 계세요. 제가 얼른 챙겨드릴게요.”
식사 후에는 본채의 이 층 거실로 이동했다.
단목강이 행낭에서 고급스러워 보이는 둥그런 나무통 하나를 꺼내더니 내게 건넸다.
“송 공자, 이거 받으시오.”
“뭡니까?”
내가 나무통을 받아들며 묻자 단목강이 말했다.
“하하, 열어 보시오.”
이에 나무통 위쪽의 뚜껑을 열어보니 그 안에 둥글게 말려 있는 종이가 보였다.
꺼내면서 보니 매우 고급스럽고 두꺼운 종이였으며, 펼쳐 보니 졸업장이었다.
단목강이 말했다.
“졸업장을 수령하기 위해서 잠룡관에 잠시 들렀는데 장 교관님이 내 것과 함께 송 공자 것도 챙겨주더구려. 내가 송 공자의 거처에 가는 것을 알고 챙겨주신 것이오. 여쭤보니 길 공자는 이미 졸업장을 받아 갔다고 하셨고.”
졸업생 이름에 <동부지맹 잠룡관 사 년 차, 계반 송유겸>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졸업장을 계속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를 만족감이 들었다.
옆에 있던 길초량이 나를 놀리듯 말했다.
“지금 상당히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이시구려. 왜? 계반 졸업장을 편액으로 만들어서 걸어 두기라도 하시게?”
놈에게 대꾸했다.
“그렇소. 그럴 생각을 하고 있었소. 본채 현관에 걸어 두면 좋을 것 같구려.”
“지, 진심이오?”
“그렇소. 자랑스러운 동부지맹 잠룡관의 계반을 당당히 졸업했는데 당연히 걸어 둬야지.”
“하……!”
길초량이 졌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때쯤 추소륵이 말했다.
“하긴, 졸업장에 계반이라고 적혀 있다고 해서 그 누가 회주를 무시할 수 있겠소.”
모두가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걸어 둘 거다.
황보충이 강하령에게 물었다.
“한데 강 소저는 어떻게 이곳으로 오실 생각을 한 것이오?”
“작년 가을 무렵에 단목 공자님과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어요. 단목 공자님이 오 년 차에 잠룡관을 졸업하고 그 후에는 송 공자님의 거처에 머물며 수련할 거라고 하시더군요. 그 얘기를 듣고 나서 한동안 계속 고민하다가, 저도 단목 공자님처럼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거죠.”
강하령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검각으로 돌아가 사부님께 허락을 구하고 온 거예요. 사부님께서 흔쾌히 허락하시며 송 공자에게 안부 전하라고 하시더군요.”
검후 문숙경과는 기동타격조 활동의 끝 무렵에 만났었다.
우아한 미소를 지은 채, 앞으로도 강하령과 사이좋게 지내 달라고 말하던 그녀의 모습이 여전히 생생하다.
강하령에게 물었다.
“검후께서는 강녕하시지요?”
“네. 강녕하세요. 언젠가 남창지부에 오시거나 뱃길로 무림맹에 가실 일이 생기면, 중간에 시간을 내어 송 공자의 거처에 들르겠다고 하셨어요.”
“하하, 누추한 거처지만 검후께서 방문해 주신다면 영광이겠지요. 편하실 때 언제든 오셔도 된다고 말씀드려 주시오.”
내가 대꾸하자 강하령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채로 말했다.
“옆에서 대규모 공사가 이뤄지고 있는 곳이 송 공자의 거처라지요? 오면서 확인해 보니 누추한 것과는 정반대일 것 같던데.”
“아하하.”
내가 어색한 웃음을 흘리자 강하령이 황보충 등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듯 기타회의 많은 분이 이미 와 계실 줄은 몰랐어요.”
남군호가 대꾸했다.
“우리도 단목 공자와 전서로 교류하다가 그 소식을 듣고는 이렇듯 오게 된 것이오. 아, 그리고 기타회라는 명칭은 송풍회로 바뀌었소.”
“송풍회……?”
“이 옆에서 공사하고 있는 송 공자의 거처가 송풍장이라고 하더구려. 그 이름에서 따온 것이오.”
남군호의 말대로다.
나는 뭔가 부끄러운데, 다들 괜찮다며 만족스러워하고 있다.
“가명이었던 기타회보다는 훨씬 괜찮네요.”
강하령도 만족스럽다는 듯 동의하고 나섰다.
단목강은 서쪽 별채의 일 층에, 강하령은 서쪽 별채의 이 층에 각각 숙소를 잡았다.
그렇게 두 사람이 합류한 후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절정고수인 단목강과 일류의 후반인 강하령의 합류 덕에 비룡장의 수련 열기는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모두가 부지런히 수련하며 지내는 가운데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났다.
그러는 동안에는 비룡장에 새로 합류한 인원이 없었으며, 제갈수광 또한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