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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마교있다-308화 (308/416)

내 안에 마교있다 308

합숙하러 갔던 인원들은 모두 몸은 수척해지고 피부는 그을린 모습이었다.

그 와중에도 다들 눈동자만큼은 야수처럼 날카롭게 빛나고 있다.

고강도 훈련은 한계 상황의 연속이다.

그걸 악으로 깡으로 이겨내는 수밖에 없는데, 그러다 보면 딱 저런 눈빛이 된다.

다들 얼마나 고생했을지, 안 봐도 훤하다.

제갈건을 발견한 제갈수광과 윤단영도, 오랜만에 큰 오라비와 상봉한 남궁설도, 대사형과 상봉한 포연월도 더없이 기뻐하며 반가워했다.

오랜만에 재회한 지인들 간에도 여기저기에서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마침 비룡장에 머무는 이들이 모두 모인 상황이라, 나는 초면인 이들 간에도 서로 인사 나눌 수 있게끔 소개해줬다.

대강의 인사가 마무리된 후에 제갈수광에게 말했다.

“합숙 훈련 하느라 고생했을 거라며, 아버지께서 맛있는 음식과 좋은 술을 넉넉히 준비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러니 각자 휴식을 취하시다가 저녁 무렵에 연회장에서 모이면 될 듯합니다.”

실제로 송천광이 계서댁에게 지시한 바다. 요즘은 송천광이 참 든든하다.

내 말이 끝나자 술꾼들의 눈동자가 반짝이기 시작했다.

제갈수광이 말했다.

“이따가 송 장주님께 감사 인사를 드려야겠군.”

말하는 동안에도 기분 좋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냥 술도 아니고 ‘좋은 술’이라고 하니 저러는 것이다.

어쨌거나 저녁 식사를 하려면 아직 한 시진 반쯤 남았기에, 다들 각자의 거처로 흩어졌다.

제갈건은 제갈수광과 윤단영을 따라 신혼집으로 향했고, 남궁찬은 남궁설과 함께, 포연월은 백송학과 함께 서쪽 별채로 향했다.

나는 길초량을 따라 본채의 일 층에 있는 그의 숙소로 향했다. 소충광도 동행했다.

길초량과 소충광은 섣달그믐날 모임을 대표하는 술꾼들이었다. 저 둘은 술자리가 끝나도 항상 더 마시겠다며 우문직의 방으로 가곤 했었다. 저 둘과 우문직은 그만큼 친하기도 하다.

길초량이 소충광에게 물었다.

“한데 남창지부의 동검대에 있어야 할 소 공자께서 이곳에는 웬일이시오?”

이에 소충광이 간략하게 이유를 설명하자, 길초량이 크게 놀라며 대꾸했다.

“우와! 남궁 부당주님께서 곧 남창지부장이 되신다니……! 그리고 소 공자를 수행 전령으로 뽑았다니……! 정말 잘됐구려, 소 공자!”

“하하, 부당주님께 감사드릴 뿐이오.”

“어떻소? 남궁 부당주님께서 잘해주시오?”

“너무 잘해 주시오. 당장 검술만 해도 이곳에 온 후로 매일 봐주고 계시는데, 나중에 남창지부에 가서도 시간 날 때마다 봐준다고 하시더구려.”

“오오오! 잘됐구려!”

남궁찬이 검술을 지도해 주면 소충광의 검술 성취도 쭉쭉 상승할 것이다. 길초량의 말마따나 잘된 일이다.

길초량은 그 후에도 소충광의 동검대 생활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기에, 한동안은 소충광의 근황 얘기가 오갔다.

소충광의 근황 얘기가 대강 정리된 후에 길초량에게 물었다.

“합숙 훈련은 어땠소?”

제갈수광은 이번 합숙에서 길초량에게 조교 역할을 맡긴다고 했었다. 제갈수광은 길초량이 신룡대원임을 알기 때문이다.

“조교인 나마저도 고되다고 느낀 시간이었소. 선우 후배의 말에 따르면 재작년 봄에 삼청산에서 송 형과 함께했던 합숙 훈련 때보다 더 힘들었다고 하더구려. 그때와 비교하면 무공도 크게 상승하고 체력과 근력이 훨씬 좋아졌는데도 이번 합숙이 더 힘들었다고.”

귀령사객 과구완을 처치했을 당시의 합숙을 말하는 것이다.

그때의 합숙 훈련은 나도 고됐으며, 남궁설과 선우린에게는 거의 지옥 훈련이었다.

한데 이번 합숙이 그때보다 더 힘들었던 모양이다.

하긴 제갈수광이 이 좋은 훈련 기회를 적당히 날려버릴 리가 없다. 제대로 계획을 짜서 확실하게 단련시켰을 것이다.

“교관님께서 작정하셨던 모양이구려.”

“그렇게 보였소. 모두가 힘겨워하고 있는 모습을 빤히 보면서도 눈 하나 깜짝 안 하시더구려.”

냉정한 모습으로는 제갈수광을 따라갈 사람이 없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길초량이 말을 이었다.

“주된 훈련은 조직력을 갖춰서 싸우는 단체전 훈련이었소. 이인일조, 삼인일조로 시작해서 다수가 손발을 맞춰 가는 방식이었소. 교관님께서 이번에 여러 달 신룡대와 함께 작전을 수행하시는 동안, 잘 짜인 조직력의 효율에 대해 느낀 바가 많으셨던 모양이오.”

신룡대나 흑풍대 같은 최정예 무력조직이 고수가 많아서 강한 게 아니다. 실전에 특화된 구성원들이 최고 수준의 조직력까지 갖추고 있기에 강한 것이다.

신룡대와 흑풍대는 전투 시에 잠깐 눈만 마주쳐도 동료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조직력 강화 훈련을 많이 한다. 내가 전투 시에 알맞게 동료들을 엄호하며 즉각 연계할 수 있는 이유도 그러한 훈련의 결과다.

단체전 훈련은 그 어떤 극한의 순간에서도 동료를 인지하면서 싸울 수 있게끔 단련시킨다. 그렇기에 단체전 훈련을 많이 하다 보면 전투 시의 시야도 자연스럽게 넓어지게 되어 있다.

제갈수광은 비룡장의 인원들이 그러한 시야와 조직력을 갖출 수 있게끔 훈련시킨 것이다.

“상대적으로 무공 경지가 뒤처지는 남군호 공자, 선우 후배, 연월이, 추엽이에게는 지옥 같았을 것이오. 그들은 절정고수인 조장님과 남궁 후배가 종종 챙겨준 덕에 겨우겨우 버텼소. 확실히 조장님과 남궁 후배는 절정고수답게 어느 정도는 여유로워 보이더구려.”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길초량이 말을 이었다.

“추 공자가 특히 열심히 임했소. 적어도 이번 훈련 기간에는 부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악귀에 씐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소. 조금이라도 더 빨리 절정에 오르고자 하는 의지가 전해지는 듯했소. 상대적으로 여유로워 보이는 조장님과 남궁 후배의 모습 때문에 더 자극되었을 것이오.”

대강의 분위기를 알 것 같다.

길초량에게 물었다.

“다들 열심히 한 건 알겠는데 훈련의 성과는 좀 있는 것 같소?”

“성과는 당연히 좋았소. 청여홍 소저의 장원에서 싸웠을 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손발이 잘 맞게 되었소.”

“오호.”

“교관님은 여름쯤에 이차 합숙 훈련을 하러 갈 계획이시오. 이미 훈련장 예약도 해 두셨소.”

기간만 맞으면 이차 합숙 때는 남궁찬과 백송학도 훈련 교관 역할로 같이 가지 않을까 싶다.

“어쨌거나 길 형도 수고 많았겠구려.”

“친우들이 고생한 걸 생각하면 내 수고쯤이야 뭐.”

이후에도 나는 한동안 길초량의 방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분은 더 얘기 나누시구려. 나는 세건이와 휘명이의 수련을 봐줘야 할 시간인지라 가 봐야 해서.”

“알았소. 수고하시오. 나는 쉬면서 오랜만에 소 공자와 이야기나 나눠야겠구려.”

고개를 끄덕여준 후에 길초량의 방을 벗어났다.

내원의 정원 사이로 거닐며 외원으로 향했다.

정세건과 촉휘명을 지도하는 일은 정가장의 실내 연무장에서 진행하기에 그쪽으로 가야 한다.

내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정원의 중앙쯤을 지날 때였다.

“어? 유겸아! 유겸아!”

남궁찬이 서쪽 별채의 현관문을 열며 나를 부르더니 후다닥 내 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왜 저리 호들갑이지?

멈춰 서서 고개를 갸웃하고 있는데 남궁찬이 금세 내 앞에 다다랐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눈동자가 거세게 요동치고 있다.

“왜 그러십니까?”

“설아가 절정에 오른 거, 왜 말 안 한 거야?”

아! 그것 때문이었구나.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꾸했다.

“이렇듯 당사자인 설 매한테 직접 들으시니 더 좋잖습니까.”

“그래도 그렇게 중요한 소식이면…….”

“닷새 늦게 듣는다고 큰일 날 소식은 아니니까요.”

내가 여유로운 태도로 대꾸하자 남궁찬은 가만히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의 눈동자는 계속 격렬하게 일렁였다.

그러기를 잠시, 그가 갑자기 자세를 낮추고는 양팔로 내 두 다리를 감싸서 불쑥 들어 올렸다. 그러더니 나를 자신의 한쪽 어깨에 들쳐메고는 들썩들썩하며 빙글빙글 돌았다.

“세상에, 설아가 저 어린 나이에 절정고수라니……! 설아를 그냥 살려서 데려온 것만이 아니라 절정고수를 만들어서 데려오다니……! 이 짜식! 이 이쁜 짜식! 이 대단한 짜식! 너를 대체 어쩌면 좋냐……!”

“으읏! 그, 그게……! 제가 절정고수를 만든 건……! 그으읏! 아닌데요……! 으읏……!”

“네가 만든 거나 다름없지! 놔뒀으면 죽었을 애를 네가 안 살렸으면, 쟤가 저렇게 됐겠어? 그래, 안 그래?”

일전에 남궁벽도 똑같은 얘기를 했었다.

“그읏! 그건 그렇지만……, 으읏! 그보다도 일단 좀 내려놓으시고……!”

그제야 남궁찬이 나를 다시 땅 위에 내려놨다.

“설아가 다 네 덕분이라고 하더라. 유겸이 네가 자심행과들 중에서 가장 좋은 과실을 설아에게 양보해 줬다고. 그래서 절정에 오를 수 있었던 거라고.”

저건 남궁설과 말을 맞춰서 꾸며낸 내용일 뿐이다.

원래 남궁설이 절정에 오를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이각빙혼사 때문이었으니까.

남궁찬은 애정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어색한 미소만 지어 보였다.

남궁찬이 계속 저러고 있을 분위기였기에 그에게 말했다.

“그런데 형님, 제가 지금 세건이와 휘명이의 수련을 좀 도와주러 가야 해서…….”

그러자 남궁찬이 내게 어깨동무를 하더니 내가 가야 할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와 함께 걸을 수밖에 없었다.

“믿어져, 유겸아? 내가 절정에 올랐을 당시의 나이보다도 무려 육 년이나 더 빨리 절정에 오른 거야. 게다가 열일곱 살에 절정에 오른 건 강호사를 통틀어도 전무한 일이라고.”

외부에는 남궁찬이 절정에 오른 시기가 스물다섯 살 때라고 알려져 있다.

한데 방금 그가 말한 바에 따라 계산해 보면 실제로는 스물세 살 때 절정에 올랐다는 게 된다.

일전에 남궁벽은 남궁설이 절정에 오른 사실에 대해서도 당분간 발표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했었다. 절정의 경지가 어느 정도 무르익기 전까지는 공식 발표하지 않을 거라고 했는데, 아마 남궁찬 때도 그랬던 것 같다.

“전무(前無)한 일일 뿐만 아니라 후무(後無)한 일로 남을 가능성도 매우 크지요.”

내가 빙그레 웃으며 대꾸하자 남궁찬이 말했다.

“고맙다, 유겸아. 정말 고맙다.”

나는 그냥 미소만 지었다.

할 얘기가 다 끝난 것 같은데도 남궁찬은 어깨동무를 풀지 않은 채로 계속 나와 함께 걸었다.

“형님, 그만 돌아가시죠. 저 앞이 애들을 만나기로 한 연무장입니다.”

“그 애들이라면 오늘은 내가 맡을게. 그러니까 너는 그냥 쉬고 있어.”

“예에? 형님이요?”

“응. 네가 지도해 주고 있는 애들 모두, 내가 이곳에 있는 동안에는 종종 특별 수업 형식으로 지도해 줄게.”

세상에나.

남궁설이 절정에 오른 일 때문에 고마워서 저러는 모양이다.

나로서는 당연히 환영이다.

애들도 좋아할 것이다.

그 유명한 남궁찬이 특별 지도를 해 준다는데 누가 싫어하겠는가.

“저야 감사하죠.”

실내 연무장으로 들어선 남궁찬이 정세건과 촉휘명을 지도해주기 시작했고, 나는 구석에 앉아서 편하게 구경했다.

특별 지도를 받는 내내 정세건과 촉휘명은 매우 활기찬 분위기였다. 남궁찬 앞에서 더 잘하려고 노력하는 모습들과 무공에 관해 이것저것 질문하는 모습들도 보기 좋았다.

남궁찬이 특별 지도를 해 준다고 하면 다른 녀석들도 좋아할 것이다.

특별 지도를 마치고 남궁찬과 함께 비룡장으로 돌아가는데, 외원으로 들어섰을 때쯤 저 멀리 강하령과 남궁설, 선우린이 보였다.

그녀들도 우리를 발견하고는 멈춰 섰다. 우리를 기다리려는 것이다.

남궁찬이 걸음을 옮기며 큰 소리로 물었다.

“산책하는 거야? 쉬고 있을 줄 알았더니.”

그러자 강하령의 대꾸가 들려왔다.

“림아 보며 놀다가 오는 길이에요.”

아기인 송유림을 보다가 온 모양이다.

여자들은 이전에도 매일같이 별채에 가서 송유림을 봐주곤 했었다. 송유림을 보고 와야 하루의 피로가 풀린다는데, 그 말이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남궁찬이 다시 큰 목소리로 말했다.

“다들 피로했을 텐데 좀 쉬지 않고.”

“림아를 보면 피로도 풀려요.”

이번에도 강하령이 대꾸했는데, 남궁설과 선우린도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여전히 우리가 걸음을 옮기고 있는 가운데 남궁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큰 오라버니는 아까 송 오라버니한테 가더니 여태 함께 있었던 거예요? 송 오라버니 너무 귀찮게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러자 남궁찬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허! 쟤 말하는 것 좀 봐라.”

“아하하…….”

그러자 남궁찬이 작은 목소리로 내게 다시 말했다.

“니들, 정말로 지하에서 아무 일도 없었던 거 맞아? 그렇다고 하기에는 설아가 너를 필요 이상으로 챙기는 느낌인데?”

남궁찬의 그 말이 끝나자마자 남궁설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큰 오라버닛!”

강하령과 선우린의 표정에도 약간의 민망함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아, 남궁설뿐만 아니라 저 둘에게도 들렸던 모양이다.

아직 열 걸음 정도 떨어져 있고 남궁찬의 목소리도 작았는데 들렸던 모양이다. 하긴 저 셋도 수준급 무인들이다.

남궁찬이 움찔하며 남궁설을 바라보자 남궁설이 찡그린 얼굴로 말했다.

“못 하는 소리가 없어, 진짜!”

“드, 들렸어? 아니, 설아, 그러니까, 내 말은…….”

남궁찬이 뭐라고 변명하려 할 때쯤 선우린이 끼어들며 남궁설에게 물었다.

“설아, 정말이야? 죽다 살아 돌아온 사람들한테 물어볼 얘기는 아닌 것 같아서 여태 잠자코 있었는데,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던 거야? 당연히 뭔가 역사가 벌어졌을 거라 생각했는데.”

“역사는 무슨 역사야, 요것아!”

남궁설이 빽 소리를 지르자 선우린이 대꾸했다.

“어머나? 반응 보니까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나 보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가만 보면 선우린 쟤는 생긴 건 순진한 인상인데 영악한 면이 있다. 남궁설보다 고단수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어휴, 저거 진짜.”

남궁설이 선우린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쉴 때쯤, 선우린이 내 옆으로 다가오는가 싶더니 갑자기 내 팔짱을 꼈다. 이런 상황에서 설마 팔짱을 낄까 싶어서 가만히 있었는데 정말로 꼈다.

“아무 일도 없었다니까 이제부터는 이렇게 편하게 송 오라버니랑 붙어 다녀야지이.”

그런데 얘야, 지금 내 팔에 물컹한 뭔가가 닿아 있거든? 너도 알 것 아니냐.

“아하하, 린 매. 그래도 이러고 있는 건 좀…….”

내가 그렇게 말하자 선우린이 영악한 미소를 지은 채로 대꾸했다.

“그러니까 그 말뜻은, 설아가 아니니 철저하게 내외를 하시겠다?”

“으이그, 린 매가 나를 곤란하게 만들어서 놀려 먹으려고 그러는 거, 다 알아.”

내가 대꾸하자 선우린이 헤헤 웃으며 팔짱을 풀었다.

남궁설은 그런 선우린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곧 다섯 명이 함께 내원을 향해 걷기 시작했고, 그러는 동안 남궁찬은 부지런히 남궁설을 달랬다.

내원에 도착하자 남궁찬이 말했다.

“저녁때까지 한 식경쯤 남은 듯한데, 연회장에 먼저 가서 차라도 마시며 이야기나 나누고 있을까? 하령이랑 린아와는 낮에 잠깐 인사만 나누고 헤어졌었으니까.”

이에 우리 다섯 명은 다소 일찍 연회장으로 향했다.

한데 안으로 들어서 보니 우리보다 먼저 도착해서 구석 쪽 탁자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이들이 있었다.

제갈수광과 윤단영, 제갈건이었다.

다가가면서 보니 그들의 탁자에는 간단한 반찬 등이 차려진 가운데, 제갈수광은 이미 술을 마시기 시작한 상태였다.

하긴, 저 사람이 술을 앞에 두고 고사만 지내고 있을 사람은 아니지.

우리는 자연스럽게 제갈수광 일행의 탁자 쪽으로 향했다.

“벌써 와 계셨네요?”

남궁찬이 묻자 제갈수광이 대꾸했다.

“어. 오랜만에 마시는 건데 일찍부터 달려야 더 많이 마시지. 어차피 날 새기 전에는 눈치껏 파해야 할 테니.”

얼씨구. 하여튼 못 말리는 술꾼이라니까.

윤단영이 낮게 한숨을 내쉬는 가운데 남궁찬이 맞장구를 쳤다.

“역시, 형님. 제가 많이 배웁니다.”

어이구, 배울 것도 참 많소.

“찬 아우가 이쪽에 앉지.”

“예, 형님.”

제갈수광의 탁자에 한 자리가 비어 있어, 남궁찬은 그쪽 의자에 가서 앉았다. 우리는 그 옆 탁자에 앉았다.

남궁찬이 앉자마자 제갈수광이 잔을 채워 줬고, 곧 둘이 건배하더니 술을 마셨다.

“크으으……, 좋네요.”

“송 장주님께서 좋은 술로 준비해 주셨더군. 이따가 꼭 감사 인사 드리자고.”

“예, 그래야죠.”

남궁찬이 다시금 잔을 채우는 사이, 제갈건이 내게 말했다.

“송 공자, 내가 부탁이 좀 있는데.”

“편히 말씀하시오.”

“나는 원래 당숙과 당숙모에게 인사드리고 세가의 선물을 전해드린 후, 사나흘 더 머물다가 돌아갈 계획이었소. 한데 오늘 모두가 힘든 합숙 훈련을 마치고 복귀한 모습들을 보니 많은 생각이 들더구려. 그 일로 당숙, 당숙모와도 이야기를 나누었소. 그리고 두 분을 통해 들을 수 있었소. 이곳에 있는 여러분들이 엄청나게 열심히 수련하고 있다는 사실과 실력이 쭉쭉 성장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제갈건이 바로 말을 이었다.

“나는 졸업 후에 세가에서 다소 여유롭게 지내는 중이었던지라, 두 분의 말씀을 들으니 정신이 번쩍 들더구려. 그래서 결정했소. 나도 이곳에 여러분들과 같이 수련하기로.”

“아하.”

“원래는 당숙 댁에 머물면 되는 일이었겠으나, 두 분은 지금 신혼이시잖소. 그래서 송 공자에게 신세를 좀 지고자 부탁드리는 것이오.”

제갈건이 말을 마치자 윤단영이 입을 열었다.

“그냥 우리 집에 머물러도 된다고 했는데 건이가 기어이 고집을 피우네?”

하루 이틀도 아닌데, 나라도 신혼집에서 신세 지고 싶지는 않을 것 같다.

제갈수광이 말했다.

“건이도 육촌 동생 보는 게 더 늦어지는 건 곤란하다고 생각했겠지. 아무리 영 매가 신체 건강한 절정고수라도 노산은 노산이고, 더 늦어질수록…….”

탁!

“윽!”

윤단영이 손바닥으로 제갈수광의 어깨를 강하게 때리자, 제갈수광이 말을 하다 말고 신음을 삼켰다.

윤단영은 이후에도 한동안 제갈수광을 흘겨봤고 제갈수광은 그 시선을 회피했다.

제갈건에게 말했다.

“얼마든지 머무시오.”

“고맙소.”

“별말씀을. 지내면서 불편한 게 있거든 언제든 말씀해 주시구려.”

“불편할 게 뭐가 있겠소. 환경도 좋고 사람들은 더 좋은데.”

제갈건이 그렇게 대꾸하자 남궁찬이 내게 말했다.

“이야, 장원에 사람이 계속 늘어나네?”

“든든하고 좋네요.”

“무가에는 원래 상주하는 사람이 많아야 해. 그게 무가의 힘이야. 나중에 가 보면 알겠지만, 우리 세가에도 상주하는 식객들 엄청 많아.”

“그렇군요.”

남궁세가에 식객들이 많다는 건 천마신교의 정보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윤단영이 제갈수광에게 말했다.

“건이가 이곳에서 지내게 돼서 생각난 건데, 우리 의림이도 부를까 봐요. 그 아이도 이곳에서 함께하면 서로 배우며 참고할 것들도 많을 텐데.”

화산파의 선의림을 말하는 것이다. 선의림은 윤단영의 사질(사문의 조카)이기도 하다.

제갈수광이 대꾸했다.

“다른 건 몰라도 송 장주님께서 매우 좋아하시겠군.”

송천광의 성향을 잘 알기에 하는 말이다.

선의림은 화산파를 대표하는 후기지수다. 당연히 송천광으로부터 크게 환영받을 것이다.

윤단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세학이랑 함께 와도 괜찮을 것 같고.”

무당의 풍세학을 말하는 것이다. 말하는 투를 보니 윤단영이 아끼는 제자였던 모양이다.

소림과 무당은 강호를 대표하는 문파다 보니 풍세학도 추소륵과 함께 매우 유명했다. 송천광이라면 당연히 ‘아이고’ 소리를 내며 환영할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송 장주님께서 매우 좋아하시겠군.”

제갈수광은 이번에도 똑같은 대답을 했고, 여지없이 윤단영의 손바닥이 그의 어깨를 때렸다.

탁!

“윽!”

윤단영이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말했다.

“의견 물어보는 건데 그렇게 성의 없이 대답하기예요?”

그러자 제갈수광이 맞은 부위를 한 손으로 살살 문지르며 남궁찬에게 말했다.

“결혼, 잘 생각해서 해.”

“푸하하!”

남궁찬이 웃을 때쯤 제갈수광이 또다시 신음을 내뱉었다.

“으윽!”

보아하니 이번에는 윤단영이 때리지 않고 꼬집은 모양이다.

제갈수광은 아파서 인상을 썼고, 우리는 모두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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