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안에 마교있다-309화 (309/416)

내 안에 마교있다 309

모두가 연회장으로 모여들었다.

송천광이 다 불러 모았는지, 노인들도 안으로 들어서는 모습이었다.

한데 촉홍결과 정우립만이 손자들을 대동하고 왔을 뿐, 원을태가 보이지 않았다.

노인들에게로 가서 인사한 후 촉홍결에게 물었다.

“한데 원 어르신은 안 오십니까?”

“원 형님은 오늘 후배가 찾아오기로 했다는 모양이야.”

“아, 그렇군요.”

대꾸해 준 후 촉홍결과 정우립에게 술을 한 잔씩 따라 주려고 술병을 들었는데, 옆에 있던 제갈건이 말했다.

“아, 송 공자. 어르신들께는 내가 먼저 한 잔씩 올리겠소.”

이유를 알고 있기에 제갈건에게 술병을 넘겼다.

그러자 제갈건이 노인들에게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어르신들, 어쩌다 보니 제가 이곳에 계속 머물게 됐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참고로 제갈건에게도 원을태와 촉홍결에 대해 알려줬었다.

제갈건은 본인이 속했던 잠룡이대의 기동타격조에도 신룡대 출신의 노인들이 있었다며, 두 노인의 정체에 대해 금세 이해했다.

촉홍결이 물었다.

“허허, 제갈 소가주도 이곳에서 지내기로 한 것이군. 친우들한테서 자극을 좀 받은 겐가?”

“정확하십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정우립이 말했다.

“잘 선택하신 걸세. 열정적이고 훌륭한 청년들이 다들 모였으니 이 얼마나 좋은 환경인가.”

제갈건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정말 좋은 환경입니다. 저 뛰어난 공자와 소저들이 다들 이렇듯 송 공자의 주변에 모여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다들 유겸이의 진가를 알기 때문이지. 그렇다 보니 유겸이의 곁에서 함께 수련하며 보조만 맞춰도 본인들의 실력이 쑥쑥 성장할 수 있음을 아는 것이고.”

촉홍결이 그렇게 말하자 제갈건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송 공자의 진가라고 하시면…….”

“실전에서의 진가를 말하는 게지. 그 진가를 이 자리에서 일일이 다 언급할 수는 없지만, 대표적으로는 위기 상황에서 동료를 지켜내는 역량을 들 수 있겠지. 다들 가슴이 철렁한 상황에서 도움을 받아 봤기에 유겸이의 진가를 더 잘 아는 것이고.”

“아아…….”

제갈건이 감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에게 말했다.

“아하하, 소 뒷걸음치다가 쥐 잡는 격으로 운 좋게 좋은 결과가 나온 적이 많소. 그러니 그리 대단하게 생각할 것 없소.”

그러자 제갈건이 가만히 나를 응시하더니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그렇다고 칩시다.”

이 자식, 내 말을 눈곱만큼도 안 믿고 있군.

이후에도 제갈건은 탁자를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자신이 이곳에서 함께 지내게 됐음을 알렸다.

송천광도 이청오와 함께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사람들을 챙기고 분위기를 띄웠다.

보면 볼수록 저런 걸 참 잘한다는 생각이 든다.

송천광이 없을 때는 내가 저런 부분도 신경 써야 할 테니, 보면서 배울 점은 배워야겠다.

남궁찬도 탁자를 가장 많이 옮겨 다닌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주로 후기지수들의 자리를 돌아다녔는데, 가는 자리마다 환영받았다. 남궁찬은 후기지수들의 우상 같은 존재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

특히 북부지맹 잠룡관 출신의 추소륵, 황보충, 남군호가 매우 좋아했다. 세 사람은 평소 남궁찬과의 접점이 별로 없었으니 당연히 좋았을 것이다.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연회가 계속되며 술시 정(오후 8시) 무렵이 되었을 때쯤, 연회장의 문이 열리더니 원을태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데 원을태 혼자가 아니었다. 처음 보는 인물 한 명이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사십 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사내다.

문사 느낌에 청수한 인상인데, 아마도 저 사내가 원을태의 후배인 모양이다.

낡아 보이는 회의를 단정하게 입은 것을 보니 검소한 성격인 듯하다. 그래서인지 풍모가 선비 같다.

유심히 살펴봤는데 무공을 익힌 흔적은 없었다.

내공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무인이 아닌, 일반인인 것이다.

이쯤 되니 풍모만 선비 같은 게 아니라 실제로 선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내가 원을태에게 인사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설 때쯤, 중년 사내의 뒤로 또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사람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지 않을 수 없었다.

웃는 얼굴과 통통한 몸매로 인해 인심 좋은 동네 아줌마처럼 보이는 중년 여인.

임려현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다가가자 그녀도 나를 발견하고는 매우 반가워하며 나를 불렀다.

“송 공자……!”

“임 선배님……!”

임려현이 양손으로 내 두 손을 감싸 쥐었다.

“세상에나, 정말로 송 공자를 다시 보게 됐군요. 세상에나…….”

“염려를 끼쳤습니다.”

“송 공자가 이렇듯 살아 돌아왔는데 그깟 염려가 뭐가 대순가요. 세상에나,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하핫……, 관련된 얘기는 차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 사람이 임려현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기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래요, 그래요.”

그 후 임려현은 몇 사람과 재회의 인사를 나누었다.

제갈수광, 윤단영, 남궁찬, 백송학, 단목강, 남궁설, 길초량 등이었다. 다들 특수작전조 시절에 임려현과 만났던 이들이다.

임려현은 내게도 그랬듯 남궁설의 두 손도 잡아 주며 무사해서 다행이라는 얘기를 했다.

‘세상에나’라는 말을 여러 차례 써 가며.

이후, 제갈수광이 어른들을 포함한 모두에게 임려현을 소개해 줬다.

“동고현에서 혈교의 대규모 거점 타격 작전을 수행할 당시에 저희를 도와줬던 선배님이십니다.”

제갈수광도 임려현이 신룡대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일단은 두루뭉술하게 소개한 것이다.

임려현이 말했다.

“임려현이라고 해요. 과거에 무림맹에서 근무했었고, 지금은 평범한 아줌마랍니다. 어쩌다 보니 동고현 거점 타격 작전에서 길잡이 노릇을 하게 되었는데, 그러다 보니 여기 계신 분들과 이렇듯 인연이 생겼네요.”

아마도 저 겉모습에 속아서, 지금쯤 다들 그녀를 무공 좀 익힌 평범한 아줌마 정도로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특수작전조에서 직접 본 게 아닌 이상, 저 통통한 몸매의 인상 좋은 아줌마가 절정의 중후반을 넘은 대단한 고수임을 알아채기는 어렵다.

가뜩이나 임려현 본인이 ‘길잡이 노릇’이라고 말한 탓에, 사람들은 그녀를 천풍단 출신쯤으로 인식할 것이다. 참고로 천풍단은 무림맹의 첩보 조직이다.

“그리고 이쪽은 제 남편이에요.”

임려현이 그렇게 말하며 중년 사내를 바라보자 중년 사내가 말했다.

“유영평입니다.”

적당한 저음에 듣기 좋은 목소리다. 발음도 좋다.

임려현이 말하길 자신의 남편은 서생이었다고 했다.

소녀 시절에 보기에 지적이고, 기품 있고, 고고한 모습이 참으로 멋져 보였다고도 했다.

이렇듯 직접 보고 나니 신룡대에서 잘나가던 임려현이 왜 저 사람과의 사랑을 선택했는지 알 것 같다.

임려현과 유영평에게 구석 쪽의 새로운 탁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일단 저쪽으로 앉으시지요.”

그러면서 문 쪽에 서 있는 이화미에게 눈짓하니,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식당 쪽으로 향했다.

탁자로 향하자 송천광과 이청오가 와서 임려현 부부와 인사를 나눴다. 두 사람은 그 후에도 잠시 더 대화를 나누다가 자리를 비켜줬다.

임려현 부부와 함께 탁자에 남은 사람은 네 명으로, 원을태, 제갈수광, 남궁찬 그리고 나였다.

임려현이 말했다.

“아, 제 남편은 평생 학문에 매진해 온지라, 강호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많지 않다는 점을 미리 말씀드릴게요.”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임려현이 작은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아, 그리고 이제는 남편도 제가 원래 속했던 조직을 알고 있어요. 우리끼리는 그렇게 알고 있으면 될 것 같아요.”

임려현이 신룡대 출신이라는 사실을 유영평도 알고 있다는 뜻이다. 특수작전조 활동 이후에 밝힌 모양이다.

임려현이 유영평에게 우리를 차례대로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분은 제갈수광 교관님이세요. 사파, 혈교와의 수많은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우셨죠.”

그러자 유영평이 제갈수광에게 말했다.

“우리 첫째가 아들 녀석인데, 그 애가 강호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렇다 보니 저는 아들로부터 강호의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하는데, 제갈 교관님의 성함도 많이 들었습니다. 동부지맹 잠룡관을 대표하는 교관님이시라고 하더군요.”

말하는 태도가 점잖고 공손했다.

제갈수광이 미소를 보이며 대꾸했다.

“대표하는 교관까지는 아닙니다. 자제분께서 어딘가에서 잘못된 정보를 입수하고 있는 듯합니다.”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들려는 목적의 농담이다.

“허허허!”

유영평이 점잖게 웃었고, 우리도 웃었다.

제갈수광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사정상 휴직 중이라 현재는 교관이 아닙니다만, 어쨌거나 저를 알고 있는 걸 보니 유 선생님의 자제분께서 강호에 관심이 많긴 많은 모양이군요. 아, ‘유 선생님’이라고 불러도 괜찮으실지요?”

“예, 괜찮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대꾸한 유영평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들은 잠룡관에 입관할 계획인데, 저희가 사는 곳이 호북의 마성현입니다. 그러니 동부지맹 잠룡관에 입관하게 되겠지요. 그래서인지 동부지맹 잠룡관의 교관님들이나 관도들에 관한 소문에 특히 관심이 많습니다.”

“아, 그렇군요. 혹시 자제분의 나이가……?”

“올해 열네 살입니다. 다다음 해에 입관한다고 합니다.”

“아하. 금방 입관하겠군요.”

열네 살이면 정세건과 촉휘명보다 한 살 어리다.

전에 들어보니 임려현도 아들을 열심히 지도한 느낌이었는데, 실제 실력이 어느 정도일지 궁금하다.

이어서 임려현이 유영평에게 남궁찬을 소개했다.

“이분은 남궁찬 부당주님이세요. 그 유명한 남궁세가의 소가주시고, 현재는 동부지맹에서 근무하고 계시죠. 남궁 부당주께서도 사파, 혈교와의 수많은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우셨어요.”

일반인들도 웬만하면 남궁세가는 안다. 강호제일세가로 통하는 게 바로 남궁세가이기 때문이다.

역시나 유영평도 크게 놀라는 모습이었다.

“반갑습니다. 살면서 남궁세가의 소가주 되시는 분과 이렇듯 인사를 나누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하하, 저도 반갑습니다, 유 선생님. 그런데 듣자 하니 다다음 해에 동부지맹 잠룡관에 훌륭한 인재가 한 명 들어올 예정인가 보군요?”

남궁찬의 덕담에 유영평과 임려현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유영평이 말했다.

“허허. 무공을 열심히 익히고 있는 것 같기는 합니다만 훌륭한 인재까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

“훌륭한지 아닌지는 나중에 제가 직접 판단하겠습니다.”

남궁찬의 말에 유영평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는 임려현이 유영평에게 나를 소개했다.

“아까 내가 인사 나눌 때 봐서 이미 알고 있겠지만, 이 공자가 바로 송유겸 공자예요.”

임려현의 말을 들으며 유영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아까부터 나를 틈틈이, 유심히 바라보곤 했었다.

“안녕하십니까. 송유겸이라 합니다.”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네자 유영평이 미소를 지은 채로 대꾸했다.

“정말 반갑습니다, 송 공자.”

초면이라도 나는 아들뻘이니 말할 때 ‘반갑소.’라고 해도 될 텐데, ‘반갑습니다.’라고 하고 있다.

배우신 분이라서 그런지 어딘가 달라도 다르다.

품격이 느껴진다고 할까.

유영평이 말을 이었다.

“아들이 송 공자를 많이 동경합니다. 내가 볼 땐 열렬히 동경하는 수준입니다.”

“일전에 임 선배님께서도 그 말씀을 하시더군요.”

“실제로 녀석은 송 공자가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이틀가량 방에만 박혀서 멍하니 있었습니다. 물론 이후에 송 공자가 생존해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더없이 기뻐했고요.”

내가 미소를 지어 보이자 유영평이 다시 입을 열었다.

“심지어 녀석은 나중에 잠룡관에 입관하게 되면 무조건 계반으로 입관해서 계반으로 졸업하겠다고 합니다.”

“아하하하…….”

내가 어색한 웃음을 흘리자 옆에서 제갈수광이 내게 말했다.

“내년에 입관할 세건이와 휘명이도 계반으로 입관했다가 계반으로 졸업하겠다고 하더군. 참 좋은 거 유행시켰네, 송유겸.”

농담조로 비꼰 것이다.

제갈수광에게 대꾸했다.

“제가 듣기로 동서남북 각 잠룡관의 여러 우수한 교관님들께서, 갑을반 담당이 아니라 계반 담당 교관으로 지원하는 추세라고 하더군요. 그 문제로 각 관주님들과 총교관님들이 골치 아파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그 유행을 만들어 낸 분은 아마도…….”

그러자 제갈수광이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임려현과 유영평에게 말했다.

“보십쇼. 선생한테 한마디로 안 지려고 하는 거.”

이에 나도 부부를 향해 말했다.

“제 신조가 바로 군사부일체입니다.”

우리가 농을 주고받고 있음을 알고 모두가 웃었다.

대강의 소개가 끝났기에 임려현에게 물었다.

“제가 기억하기로 특수작전조 당시에 원 어르신과 임 선배님께서는 조가 달랐는데, 이렇듯 왕래하시는 모습을 보니 따로 친분이 있으셨나 봅니다.”

당시에 원을태가 속했던 특수삼조는 전현직 청룡조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임려현이 속했던 특수이조는 전현직 황룡조원들로 구성되었을 것이다.

원을태와 임려현은 그렇듯 조가 다를 뿐만 아니라 신룡대에서의 활동 시기마저 다르다.

그런 두 사람이 저렇듯 왕래할 정도로 친하게 지내고 있는 점이 다소 궁금했다.

임려현이 말했다.

“그 타격 작전이 끝난 후, 특수작전조원들은 일정 기간 그 거점에 머무르며 무림맹의 조사를 도왔어요. 우리는 독립된 막사 구역에서 생활했는데, 나는 부상을 입었던 터라 치료를 받으며 지냈죠. 원 선배님과는 그 당시에 친해져서, 그 후에도 종종 전서를 통해 연락을 주고받게 된 거예요.”

“아하.”

“그렇듯 전서를 주고받다가 이렇게 송 공자를 찾아오게 된 거고요.”

그 말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예……? 원 어르신을 찾아뵈러 오신 게 아니었습니까?”

“송 공자를 찾아온 거예요. 원 선배님께서 안내해 주신 거구요.”

“아아……, 그, 그러셨군요. 어찌 되었든 잘 오셨습니다.”

임려현은 호북 사람이다. 그녀가 사는 곳에서는 장강의 뱃길을 통해 편하게 이곳에 올 수 있다.

그녀에게 물었다.

“전에 아이들이 있다고 하셨는데, 아이들은 같이 안 온 겁니까?”

“시동생네에 맡겼어요. 참고로 아이들은 우리가 송 공자를 만나러 온 걸 몰라요. 우리가 오랜만에 둘이서 관광을 하러 간 줄로 알죠.”

그러자 조용히 듣고 있던 남궁찬이 말했다.

“유겸이를 동경한다던 아드님이 혹여 나중에 이 일을 알게 되면 많이 서운해하겠군요.”

“괜찮아요. 그 아이를 위해서 이러는 거니까. 사실, 우리가 이 근처로 이사 올까 생각 중이거든요”

임려현의 대꾸에 나뿐만 아니라 제갈수광과 남궁찬도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

원을태만은 놀란 기색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그는 저 얘기를 미리 들었던 듯하다.

원을태가 말했다.

“허헛! 내가 전서로 이곳의 이야기를 좀 전해 줬거든. 나와 촉 늙은이도 멀리에서 이곳으로 이사했다는 얘기도 진즉 해 줬고.”

그러자 임려현이 입을 열었다.

“원 선배님을 통해 그 얘기를 들으니 혹하더군요. 우리 아이도 무인으로 성장하고 있으니 그 성장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고 싶은 거죠. 후훗, 부모의 마음이라는 게 어쩔 수 없나 봐요. 그래서 그 사안으로 오랫동안 혼자 고민하다가 근래에 이이에게 얘기했던 거예요.”

임려현이 말을 이었다.

“사실은 이이가 반대할 줄 알았어요. 한데 의외로 반대하지 않고, 직접 답사를 하러 가서 환경을 자세히 살펴본 후에 결정하자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렇게 된 거예요. 아직 결정되지 않은 사안이라서 아이들에게는 비밀로 한 거고요.”

답사 후에 이사하지 않는 쪽으로 결정이 날 수도 있기에 아이들에게는 밝히지 않았다는 뜻이다.

원을태가 내게 말했다.

“이곳에 머물며 천천히 답사하면 되겠지.”

이에 임려현과 유영평에게 말했다.

“얼마든지 편하게 머물며 답사하십시오.”

“고마워요. 송 공자.”

“고맙습니다, 송 공자.”

임려현과 유영평이 차례로 감사 인사를 했다.

이후에는 서로 술을 따라 준 후 다 함께 한 잔씩 마셨다.

임려현이 모두의 술잔을 다시 채워 주는 동안, 연회장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유영평이 물었다.

“한데 오늘은 무슨 일로 이렇듯 모여서 먹고 마시는 겁니까?”

제갈수광이 대꾸했다.

“아, 제가 제자들을 데리고 이 주간 합숙 훈련을 하러 갔다가 오늘 복귀했습니다. 그 합숙 훈련이 매우 고됐다는 걸 아시고 송 장주님께서 이렇듯 좋은 음식과 술을 내어 주신 겁니다. 그러는 김에 노선배님들도 모셨겠지요.”

“아하.”

“뭔가 기념할 만한 일이 있으면 송 장주님께서 항상 이렇듯 자리를 마련해서 모두를 초대하십니다. 덕분에 저희는 종종 즐겁게 먹고 마실 수 있지요. 늘 송 장주님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렇게 대꾸하며 고개를 끄덕인 유영평이 임려현에게 말했다.

“부인, 굳이 더 답사하지 않아도 될 것 같소. 이쪽으로 이사합시다.”

갑작스러운 그 말에 모두가 놀란 표정이 되었다.

놀라기는 임려현도 마찬가지였다.

“여, 여보…….”

그러자 유영평이 임려현에게 말했다.

“내 답사 목적은 이곳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확인하는 것, 그리고 우리 애가 동경하는 송 공자가 어떤 인물인지를 직접 확인하는 것이었소. 한데 굳이 더 확인할 필요가 없을 것 같구려.”

여전히 놀라 있는 임려현을 향해 유영평이 말을 이었다.

“이 많은 인원이 모여 있는데도 분위기가 화기애애하여 모두가 가족 같고, 송 공자는 약관의 나이에 큰 명성을 얻었음에도 교만한 모습이 전혀 없이 공손하잖소. 이 모든 게 원 선배님과 제갈 교관님과 남궁 부당주님 같은 분들이 잘 이끌어 주시는 덕분일 것이고.”

임려현이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유영평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렇듯 좋은 분위기에, 이런 좋은 분들이 계시는 환경인데, 이 이상 고민할 필요가 뭐가 있겠소. 오히려 우리 쪽에서 우리 아이를 잘 부탁드린다고 사정해야 할 지경인데.”

배운 분이라 그런가, 상황 판단이 정확하고 빠르다.

어쨌거나 임려현의 합류는 무조건 환영할 일이다.

임려현은 신룡대 부조장 출신의 노련한 실전 고수다.

특수작전조에서 함께 싸우며 확인한 바에 따르면, 임려현은 윤단영과 비슷한 수준의 경신술 고수이면서 어마어마한 암기술 고수이기도 하다.

당시에 그녀는 철비정술과 비표술을 자유자재로 펼쳤을 뿐만 아니라, 독침을 이용한 비침술도 구사했었다.

특히 비침술은 고난도 암기술인데, 나 외에 그렇게까지 잘 구사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북부지맹의 이세옥도 암기술 전문 교관으로서 각종 암기술에 조예가 깊기는 하나, 온갖 실전에서 단련된 임려현에 비할 바는 아니다.

단체가 싸우는 전투에서 암기술의 고수 한 명이 끼치는 영향력은 지대하다.

그렇기에 임려현의 합류는 단순히 고수 한 명이 합류한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어딘가에서 모셔 오고 싶어도 모셔 오기 힘든 부류의 고수가 제 발로 찾아왔다.

원을태가 임려현에게 말했다.

“한데 요즘 이 근처에 집 구하기가 어렵다네. 이곳 삼문촌은 말할 것도 없고, 인근의 마을들에도 빈집이 나오자마자 새 주인이 생긴다고 하더군. 어째서인지 근래 이 인근이 사람들한테 인기가 많아진 모양이야.”

은근한 미소를 짓고 있는 걸 보니 원을태도 그 이유를 알고 있는 모양이다. 신룡대 출신의 경험 많은 고수이니 알아채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러자 남궁찬이 말했다.

“근처에 집을 구하기 전까지는 유 선생님네 가족 모두 유겸이네 장원에 머무시면 되지요. 이삿짐들은 일단 이쪽 창고에 넣어 놓고 별채의 객실에서 지내시면 될 듯합니다. 객실은 여전히 많이 비어 있으니까요.”

이에 유영평이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헛! 가족 모두가 그렇게까지 신세 질 수는 없습니다.”

그러자 남궁찬이 말했다.

“아까도 유겸이와 비슷한 대화를 나눴었는데, 본디 장원이나 세가 등이 흥하기 위해서는 상주 인원이 많아야 합니다. 일전에 송 장주님한테 들었는데, 상주 인원이 지금보다 몇 배로 불어나도 전혀 문제없다고 하셨습니다.”

이에 나도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임려현 부부에게 말했다.

“찬 형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현재는 송천광이 비룡장을 운영하는 중이다.

숨겨놨던 재산을 티 안 나게 활용하고 있는 듯한데, 나도 조용히 아버지 덕 좀 보고 있다.

“허어, 이것 참…….”

유영평은 난감함과 고마움이 공존하는 표정이었다.

그에게 말했다.

“사실 이곳은 제 지인의 장원이고 이 옆에 공사 중인 장원이 바로 제 장원입니다. 제 부친께서 너무 큰 규모로 만들어 주셔서 부담스럽기는 합니다만, 어쨌든 그쪽은 부지가 넓은 만큼 가족 단위로 지낼 수 있는 소형 별채들도 몇 군데 있습니다. 그쪽 장원의 공사도 거의 마무리되어 가고 있으니, 차후에는 그 별채에서 가족이 함께 지내셔도 될 겁니다.”

“허허헛…….”

유영평이 난감해하며 너털웃음을 지어 보일 때쯤 임려현이 말했다.

“그러면 송 공자와 남궁 부당주님의 말씀대로, 일단 이쪽에서 지내면서 거처를 알아보도록 할게요.”

“굳이 거처를 구하지 않고 계속 계셔도 됩니다만, 그 부분은 선배님 편하신 대로 하셔야겠지요.”

“여러모로 배려해 줘서 고마워요.”

임려현이 인상 좋은 아줌마의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대꾸하자 유영평도 감사 인사를 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송 공자.”

“두 분과 자제분들께서 편하게 지내실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모두 함께 건배한 후에 술을 한 잔씩 들이켰다.

이사에 관련된 얘기가 마무리되자 제갈수광이 화제를 전환하듯 유영평에게 물었다.

“유 선생님께서는 평생 학문을 하셨다고 했는데, 관직에는 뜻이 없으셨습니까?”

“아, 관직에도 잠시 있었습니다. 한데 벼슬길에 올라 보니 제가 생각했던 삶과는 너무도 달라서 금세 회의감이 몰려오더군요. 그러던 중에 좋지 않은 가정사까지 겹쳐서, 그 참에 벼슬을 내려놓고 아예 환향한 겁니다.”

“아…….”

제갈수광이 고개를 끄덕이자 임려현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이이가 회시 합격자랍니다.”

그 말에 우리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그렇다면 진사…….”

남궁찬이 그렇게 말하자 임려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수광이 말했다.

“……유 선생님이 아니라 유 진사님이라고 불러드려야 하는 거였군요.”

그러자 유영평이 양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 호칭으로 불리는 건 제가 부담스럽습니다. 그냥 유 선생으로 해 주십시오.”

향시에만 합격해도 어마어마한 수재다.

한데 회시는 그러한 향시 합격자들이 모여서 치르는 시험이다. 어마어마한 수재들의 대결인 셈이다.

그 회시에서 합격한 사람들을 진사라고 하는데, 공부 쪽으로는 천재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유영평이 말했다.

“이미 먼 과거의 일일 뿐입니다. 지금은 그저, 글줄이나 읽으며 지내는 한낱 서생에 불과합니다.”

저런 말을 하고는 있지만, 회시 합격자를 ‘한낱 서생’ 정도로만 생각하기란 쉽지가 않다.

어쨌거나 회시 합격자라는 얘기까지 듣고 나니 불쑥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나중에 우리 장원에서 함께 지내게 되면, 유영평은 자신이 장원에서 하릴없이 지내는 것에 대해 염치없어할 것이다.

그리고 저 성격이라면 분명히, 미안하다는 식의 표현을 몇 차례는 하겠지.

그때 은근슬쩍 장원의 사무 업무를 좀 도와달라고 하는 거다.

각종 서류 작성 일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범위를 넓혀 가며, 종래에는 장원 내 물자 관리 등의 일까지 도와달라고 하는 거지.

그렇게 총관의 역할을 맡기는 거다.

세상에, 진사 출신 총관이라니.

으흐흐, 벌써부터 우리 장원의 격이 쭉쭉 올라가는 느낌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진사씩이나 되는 사람의 자존심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

신중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진행해야 하리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