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안에 마교있다-310화 (310/416)

내 안에 마교있다 310

봄기운 가득했던 오월이 지나가고 유월이 되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날이 점점 더워지고 있다. 그래도 큰 호수가 옆에 있는 덕에, 시원한 편이라서 다행이다.

비룡장의 수련 열기는 변함없이 뜨겁다.

저러한 수련 열기 때문인지 다들 올해 초와 비교하면 실력이 눈에 띄게 늘었다.

남궁찬과 백송학은 각각 어린 누이와 막내 사매의 수련을 집중적으로 지도하며 지내고 있다.

그러는 중에 틈틈이 다른 친우들의 수련도 지도해주니, 친우들도 두 사람에게 매우 고마워하고 있다.

제갈건은 제갈수광으로부터 쌍검술 지도와 궁술 지도를 집중적으로 받는 중이다.

제갈건은 어려서부터 제갈수광을 동경해서 쌍검술과 궁술을 익혔다고 했었다. 실제로 쌍검술이 그의 주 무공이기도 하다. 그렇다 보니 제갈수광한테서 지도받기에도 딱 맞다.

기동타격조 시절처럼 제갈수광이 몇 사람을 상대로 궁술 지도를 해주고 있어, 그 시간에 제갈건의 궁술 실력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려서부터 꾸준히 수련해왔기 때문인지 실력이 확실히 빼어났다. 나와 길초량 쪽으로 묶일 수준이 아니라 송유하 쪽으로 묶여야 할 수준이었다.

그렇듯 평범한 나날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경사스러운 소식이 있었다.

윤단영의 회임 소식이었다.

모두가 기뻐하며 두 사람을 축하했다.

송천광은 계서댁을 통해 산모를 특별히 신경 쓰라고 지시까지 내렸다.

제갈수광과 윤단영은 그러지 않아도 된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송천광은 관철했다.

내년 이월이 예정 산달이라고 한다.

* * *

유월 보름날 저녁.

저녁 식사 후에 서재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길초량이 찾아왔다.

“송 형, 나 왔소.”

회의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으며 그에게 물었다.

“이 시간엔 어인 일이시오?”

“아, 심심해서 그냥 와봤소.”

“어슬러엉, 어슬렁. 그런 식이면 나도 신룡대원 하겠소.”

“푸하하하하!”

크게 웃음 지은 길초량이 말했다.

“이제는 송 형의 구박에 완전히 길든 모양이오. 그 특유의 구박을 안 들으면 왠지 허전하고 아쉬울 것 같단 말이지.”

이에 피식 웃어 보인 후에 그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예주 누나로부터의 연락은 아직이오?”

삼월 말에 대기하라는 지시가 있었던 걸 마지막으로, 최근까지 연락을 못 받았다고 했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 일 때문에 찾아온 것이오.”

“어? 말하는 투를 보니 연락을 받은 모양이구려?”

“그렇소. 합류 지시가 떨어졌소.”

제갈수광이 복귀한 게 삼월 말경이었으니, 지금은 약 삼 개월이 지난 시점이다.

이 시점에 길초량을 호출했다는 건, 특수작전조의 일이 앞으로도 길게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일 것이다.

길초량에게 대놓고 물었다.

“어디로 합류하라고 하오?”

길초량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런 극비 사항을 대놓고 물으니 저러는 것이다.

“허……! 아니, 송 형, 그래도 그런 걸 대놓고 묻는 건 좀…….”

“아, 나를 못 믿으시겠다?”

“아니, 그게 아니라…….”

“혈서, 써 드려?”

“그놈의 혈서 얘기는 하여간. 으휴.”

“왜? 절친이 나를 못 믿겠다고 하니 내 신의를 증명해드리려는 건데.”

내가 뻔뻔한 투로 대꾸하자 길초량이 졌다는 듯 낮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청해요. 청해.”

이에 빙그레 웃어 보인 후에 말했다.

“혈교의 꼬리를 추적하는 건데, 어째 점점 위험 지역과 가까워지고 있구려?”

위험 지역이란 당연히 천마신교를 뜻한다.

길초량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를 리 없다.

그에게 다시 말했다.

“이쯤 되면 혈교와 천마신교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가 더 어려운 수준이구려.”

“백도에서 천마신교와 관련된 사안은 매우 민감한 사안이오. 아직 대외비라는 걸 꼭 기억하시오.”

“기억하다마다.”

고개를 끄덕여준 후에 말했다.

“어쨌거나 그들의 영역 근처에서 벌어지는 작전이니 위험도도 매우 높을 듯한데.”

그러자 길초량이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원래 그런 일 하는 게 신룡대요. 내가 좀 특이한 경우라서 그간 편한 생활을 해왔던 거지.”

나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줬다.

길초량이 위험한 작전에 투입된다고 해도 딱히 걱정하지는 않는다. 신룡대나 흑풍대 같은 조직의 역량을 잘 알기 때문이며, 길초량의 실력 또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재 신룡대와 함께 작전을 수행하고 있는 서부지맹과 북부지맹 측의 특수작전조원들도 모두 뛰어난 실력자들일 것이다. 제갈수광과 남궁찬과 백송학에 준하는 고수들이 합류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길초량에게 물었다.

“그래서, 언제 떠날 계획이시오?”

“내일 새벽이 되기 전에 떠날 것이오.”

그래도 사나흘은 더 있다가 떠날 줄 알았는데 바로 떠난다고 하니 다소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허! 그렇게 빨리? 그러면 당장 송별회를…….”

“으이그, 신룡대원이 조용히 떠나도 모자랄 판에 송별회는 무슨 송별회요.”

“아, 참, 그러네.”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에 물었다.

“하면 이 사실을 나 외에는 누구에게도 안 알린 것이오?”

“아까 오후에 제갈 교관님께만 말씀드렸소. 그다음으로 송 형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오. 그 외에는 알리지 않을 생각이오. 여기에서 더 알리면 조용히 떠나는 게 아니게 되니까.”

“하긴, 그것도 그렇구려. 어쨌거나 길 형이 갑자기 떠난다고 하니 뭔가 너무 아쉽소.”

내가 대꾸하자 길초량이 말했다.

“아쉬우면 둘이 조용히 술이나 한잔합시다.”

하여튼 끝까지 술타령이다.

사실, 이번에 헤어지면 길초량을 언제 다시 보게 될지 기약이 없기는 하다.

의외로 재회가 빠를 수도 있지만, 반대로 매우 오랜 시간 동안 못 보게 될 수도 있다. 그게 신룡대원의 삶이다.

마셔주자.

“그럽시다.”

이후에 조용히 동쪽 별채로 향한 우리는 계서댁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한 뒤 연회장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우리가 연회장 바로 옆의 술 창고에서 술을 꺼내어 서너 잔씩 마셨을 때쯤, 계서댁이 간단한 안주를 준비해줬다.

그때부터 길초량과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잠룡관 시절부터 함께하며 쌓아온 추억이 워낙 많아서인지, 우리의 이야기는 한시도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그렇듯 주거니 받거니 마시던 우리는 자시 초(밤 11시) 무렵에 술자리를 마무리하고 본채로 돌아왔다.

* * *

다음 날, 인시 정(새벽 4시)이 되기 전에 잠에서 깬 나는 곧바로 은잠술을 펼치며 동쪽 별채의 현관으로 향했다.

어제저녁에 계서댁에게 부탁하여 간단히 요기할 만한 음식을 만들어달라고 했었다.

길초량은 이른 새벽에 조용히 떠나겠다고 했으니 식사도 못 하고 떠날 수밖에 없는 탓이다.

동쪽 별채의 현관으로 들어서니 역시나 내가 부탁했던 대로 탁자 위에 작은 보따리가 놓여 있었다.

그것을 집어 들고 다시 본채의 현관으로 돌아왔다.

어둠 속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기를 잠시, 길초량이 커다란 행낭을 짊어진 채로 모습을 드러냈다.

나를 확인한 길초량이 미소 띤 얼굴로 살짝 한숨을 내쉬며 전음을 보내왔다.

[굳이 배웅해주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기어이 나오셨구려.]

나는 대꾸하는 대신 손에 쥐고 있던 보따리를 내밀었다.

[가면서 요기하시오. 밥도 못 먹고 출발하잖소.]

[허……! 뭘 이런 걸 다…….]

보따리를 받아 드는 길초량은 감격한 표정이었다.

[엊저녁에 계서댁 아주머니에게 부탁했었는데, 온기가 느껴지는 걸 보니 새벽부터 일어나서 만드셨나 보오.]

[어이구, 왜 굳이 계서댁 아주머니를 고생시키셨소. 가면서 그냥 객잔에서 사 먹으면 될 일인데. 괜히 송구스럽구려.]

[길 형이 내 가장 친한 벗이라는 걸 계서댁 아주머니도 아시오. 기꺼이 준비해 주겠다고 하셨으니 너무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오. 아주머니도 길 형이 떠나는 걸 많이 아쉬워하셨소. 무운을 빈다고 전해주라고 하시더구려.]

[아주머니께도 내가 감사해하더라고 꼭 전해주시오. 다음에 뵐 때까지 건강히 지내시라는 얘기도.]

[알았소.]

이후에는 등 뒤의 허리춤에 꽂아뒀던 물건을 꺼내서 길초량에게 내밀었다.

단검이다.

왕철양이 만든 물건이다.

녀석은 일전에 내가 줬던 쇠붙이들을 이용해서 단검을 만들고 있다. 연습이 목적이니 처음부터 장검에 도전하기보다는 단검부터 시작한 것이다.

이 단검은 왕철양이 지금껏 만들었던 여러 자루의 단검 중에서 가장 잘 만들어진 물건이다.

의아해하며 나를 바라보는 길초량에게 말했다.

[받아서 살펴보시오.]

길초량이 단검을 받더니 검신을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절정고수이니 어둠 속에서도 웬만큼은 보일 것이다.

한동안 검신을 쓰다듬고 날을 만져보던 그가 말했다.

[좋은 물건이구려. 철의 재질도 좋아 보이고, 만들어지기도 잘 만들어진 듯하오.]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대꾸했다.

[시험해봤는데 튼튼하고 예리했소. 명품은 아니어도 양품 이상은 충분히 될 것이오.]

[내가 보기에도 그래 보이오.]

[선물이오.]

나는 그렇게 말하며 등 뒤의 허리춤에 꽂아뒀던 검집도 뽑아서 내밀었다.

길초량이 미소를 지으며 검집도 받아 들었다.

내가 처음에 단검을 내밀었을 때부터 선물임을 예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팔아도 적잖은 돈을 벌 수 있을 만큼 괜찮은 물건이지만, 길초량에게 주는 건 전혀 아깝지 않다.

가뜩이나 왕철양이 앞으로 저것보다 더 좋은 물건들을 만들어낼 텐데, 뭐.

그에게 다시 전음을 보냈다.

[길 형의 무운을 비는 의미요. 지니고 다니시오.]

신룡대원들은 무기를 많이 챙겨서 갖고 다니니 상황에 따라 저 단검을 활용할 일도 많을 것이다.

참고로 저 단검은 일반적인 규격의 단검보다 검신의 길이가 약간 더 길다. 따라서 유사시에 쥐고 휘두르기에도 좀 더 나을 것이다.

[고맙소.]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에 정이 가득 담겨 있다.

조용히 현관문을 열어주며 말했다.

[이별의 순간은 길어서 좋을 게 없다고 했으니 배웅은 여기까지만 하리다.]

그러면서 주먹을 쥐어 앞으로 내밀었다.

건투를 빈다는 의미에서다.

그러자 길초량도 주먹을 내밀어 내 주먹과 살짝 맞부딪치더니 대꾸했다.

[이것만으로도 고맙소. 그럼 또 봅시다.]

[또 봅시다.]

길초량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기척을 죽이며 현관을 벗어났다.

본채를 나선 그는 곧장 동쪽 별채의 뒤쪽으로 향했다. 저쪽으로 돌아서 담장을 넘어 장원을 벗어나려는 것이다.

건물의 모퉁이를 돌기 전에 길초량이 나를 바라보더니 다시금 고개를 끄덕여 보였고, 나도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줬다.

이윽고 그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앞으로 한동안 그를 못 본다고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공허해지는 느낌이다.

잠시 고개를 들어 새벽하늘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현관문을 닫고 내 방으로 향했다.

* * *

유월이 하순으로 접어들며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즈음, 반가운 이들이 비룡장에 도착했다.

송유하, 청여홍, 단목지, 단목홍신, 우문직, 진운령, 황성락이었다.

대장간에 갔다 오던 길에 외원 쪽에서 마주쳤기에, 그들을 데리고 먼저 송천광에게 인사하러 갔다.

송천광이 친우들을 크게 반겼다. 모두 아는 얼굴들이다 보니 많이 반가웠던 모양이다.

인사가 끝나자 단목지가 어른들에게 말했다.

“세 분께서 기뻐하실 소식이 있어요.”

“허헛, 우리가 기뻐할 만한 소식……?”

송천광이 대꾸하자 단목지가 송유하를 일별하더니 말했다.

“유하가 이번에 갑반으로 승반했어요.”

그 말을 들은 송천광이 눈을 부릅떴다.

이청오와 진양옥의 눈도 휘둥그레졌다.

나도 놀랐다.

송천광이 송유하를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어조로 물었다.

“가, 갑반이라니……, 저, 정말이냐?”

어느새 송유림을 안은 채로 송유하가 대꾸했다.

“……네에.”

어른들의 얼굴이 놀람과 환희로 물들어갔다.

송천광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수고 많았다……! 정말 수고 많았어……!”

“잘했다, 유하야! 잘했어!”

“고생 많았구나.”

이청오와 진양옥도 차례로 송유하를 축하해줬고, 나도 송유하에게 축하의 말을 건넸다.

“축하해, 누이.”

“다 오라버니 덕분이에요.”

갑반으로 승반한 것도 기특하고 대답도 기특해서 미소를 지어줬다.

송유하는 작년 여름에 을반으로 승반했는데, 작년 겨울에는 승반 심사를 치르지 않았었다.

그러니 일 년 만에 치른 승반 심사다.

지난 일 년 새 송유하는 경지가 상승하여 일류고수에 올랐다. 은설영지와 삼령천선초 덕분이었다.

일류에 오르면서 고천비룡결과 풍우비룡무의 성취도 일취월장했다. 그렇다 보니 같은 무공이라도 작년 여름의 승반 심사 때 보였던 모습과는 수준이 많이 달랐을 것이다.

또한, 고천비룡결과 풍우비룡무의 성취 상승은 연쇄적으로 궁술 성취의 상승으로 이어지니, 그 궁술 실력이 이번에도 심사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싶다.

실전에서 활용 가능한 수준의 무음시를 날릴 수 있는 실력이니까.

송천광은 완전히 감격했다.

“세상에……! 내 자식 중에 갑반이 나오다니……! 이런 날이 오다니……!”

송유하가 대꾸했다.

“오라버니도 갑반이나 마찬가지였는데요, 뭐.”

“네 오라비는 특별한 경우지. 결국, 우리 집안에서 잠룡관의 갑반 명부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린 것은 네가 아니냐.”

송유하는 대꾸하지 못했다.

송천광이 신난 표정으로 말했다.

“축하하고 기념하는 의미에서 오늘 저녁에는 연회를 열어야겠구나!”

“아, 아버지,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송유하가 흠칫하며 만류했지만 아랑곳할 송천광이 아니다.

“어차피 열어야 할 연회다. 잠룡관에서 열심히 수학하던 여러 공자와 소저들이 이렇듯 찾아왔는데 당연히 환영해줘야지.”

그건 그렇다.

송유하도 체념한 표정으로 더는 대꾸하지 않았다.

지난 겨울 방학 때, 자신도 사 년 차에 졸업할 거라며 각오를 다지던 송유하의 모습이 떠오른다.

사실, 송유하가 을반인 상태에서 사 년 차에 졸업하겠다고 했으면 송천광이 불허할 가능성도 다분했었다.

송유하도 송천광의 그러한 성격을 뻔히 아는 만큼, 승반을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매우 독한 게 송유하이기도 하다.

이제 이렇듯 갑반으로 승반했으니 조기 졸업도 문제없을 것이다.

우리는 별채에 잠시 더 머물렀다.

여자들은 주로 송유림을 봐줬고, 남자들은 송천광, 이청오와 대화를 나눴다.

들어보니 을반이었던 황성락도 이번에 갑반으로 승반했다고 한다. 그는 육 년 차라서 잠룡관 생활이 한 학기밖에 남지 않았다. 즉, 마지막 승반 심사에서 극적으로 갑반이 된 것이다.

청여홍도 기반에서 무반으로 승반했다고 한다. 갑을병정 다음이 무반이라서 그런지 그녀도 매우 만족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그녀도 내게 고마워했다.

진운령은 아직 을반인데, 다음 승반 심사 때는 반드시 통과하겠다며 각오를 다지는 모습이었다.

송천광이 예고한 대로 저녁에는 연회가 열렸고, 다들 오랜만에 즐겁게 먹고 마셨다.

* * *

이틀 후, 제갈수광이 비룡장에 있는 인원들 대부분을 이끌고 이차 합숙 특훈을 떠났다.

소충광과 제갈건도 훈련생으로 참여했다.

남궁찬과 백송학은 교관 역할로 함께 갔다.

회임한 윤단영은 빠졌다.

이틀 전에 비룡장에 왔던 잠룡관도들도 청여홍을 제외하고는 모두 따라갔다. 청여홍은 그 합숙에 참여할 만한 무공 실력이 되지 않기에 남은 것이다.

그로 인해 비룡장은 또다시 한산해졌다.

남은 인원이라고는 내 지도가 필요한 청여홍, 명호운, 왕철양, 심산화, 공은림, 하조혁 정도였다.

사실 그 여섯 명도 다들 실력이 제법 늘어서 지도가 많이 필요하지는 않다.

그러니 당분간은 내 수련에 더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합숙 특훈을 떠난 다음 날.

비룡장 외원의 커다란 나무 그늘에서 청여홍을 지도해주다 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었다.

수련을 마무리하고 청여홍과 함께 식당으로 향하려는데, 멀리 비룡장의 대문으로 들어서는 윤단영의 모습이 보였다.

윤단영도 나를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고 있다.

한데 그녀 혼자만이 아니었다.

두 명의 사내가 그녀의 뒤를 따르고 있었던 것이다.

안력을 돋워 두 사내의 정체를 확인한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풍세학과 선의림이다.

일전에 윤단영이 저 두 사람을 이곳으로 부르고 싶다고 말하긴 했었는데, 그냥 하는 말인 줄로 알았다.

그 후로는 일절 언급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데 정말로 부른 모양이다.

세 사람 쪽으로 다가가자 풍세학과 선의림이 차례로 인사를 건네왔다.

“안녕하시오, 송 공자! 오랜만이오!”

“와아! 정말 오랜만이오, 송 공자!”

이에 나도 두 사람에게 인사했다.

“풍 공자! 선 공자! 반갑소! 어서들 오시오!”

우리는 한동안 재회의 인사를 나눴고, 이후에는 두 사람과 청여홍을 서로 소개해줬다.

풍세학과 선의림의 정체를 알게 된 청여홍은 당연히 깜짝 놀랐고, 두 사람도 연주상단이 광동제일상단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며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소개를 마친 후에는 식사를 위해 내원으로 이동했다.

가는 길에 송천광, 이청오와도 마주쳤기에, 두 사람에게도 풍세학과 선의림을 소개해줬다.

송천광과 이청오도 깜짝 놀라는 모습이었다. 당연하게도 송천광의 입에서는 ‘아이고’ 소리가 십여 차례 반복되었다.

송천광과 이청오는 일 때문에 나가봐야 한다며, 저녁 때 보자는 말을 남기고는 멀어져갔다.

윤단영, 풍세학, 선의림과 함께 구석 쪽 식탁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며 식사했다.

풍세학과 선의림은 식사 중에 내게 여러 가지를 질문했다.

아무래도 그간 내 명성이 높아진 탓에, 두 사람도 나에 관련된 소문과 정보를 많이 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두 사람의 질문에 적당한 선에서 대답해줬다.

나에 관련된 이야기가 대강 정리된 듯하여 두 사람에게 물었다.

“그런데 두 분은 어떻게 오게 된 것이오?”

풍세학이 대꾸했다.

“윤 교관님의 서신을 받고 온 것이오. 은사께서 가정을 꾸리셨다고 하는데 마땅히 찾아봬야지요.”

이어서 선의림이 말했다.

“내 경우에는 찾아오는 게 당연하잖소. 내게는 교관님이기 이전에 사고師姑시니까.”

사고는 사부의 사저나 사매를 뜻하는 호칭이다. 쉽게 말하면 사문에서의 고모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풍세학이 말했다.

“서신을 통해 송 공자의 장원 얘기도 접할 수 있었소. 추소륵 공자와 단목강 공자를 포함해서 많은 공자와 소저들이 이곳에 모여 열심히 수련하고 있다고.”

그러자 이번에는 선의림이 말했다.

“한데 아까 들어보니 다들 합숙 훈련을 떠났다는 모양이더구려.”

“그렇소.”

내가 대꾸하자 윤단영이 두 사람에게 말했다.

“두 사람 다, 이왕 왔으니 오래 머물다가 가. 이곳에서 함께 수련하면 너희에게도 도움이 많이 될 거야.”

그러자 선의림이 대꾸했다.

“오래 머물려면 전서를 통해 허락을 구해야 하는데, 허락이 떨어질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도 스승님께 전서로 여쭤보기는 하겠습니다만, 허락해주실지는 모르겠습니다.”

풍세학도 그렇게 대꾸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수련이라면 본산에서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사문에서 많이들 도와주시는 덕에 수련 효율도 좋아서…….”

그 말에 선의림도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자 윤단영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본산에서 수련하는 게 더 효율적이면 그렇게 해야지. 그래도 이왕 이곳까지 왔으니 참고삼아 다들 어떻게 수련하고 있는지는 봐 두는 게 낫겠지?”

“그건 그렇죠.”

두 사람이 대꾸하자 윤단영이 말했다.

“다들 합숙에서 돌아오려면 이 주는 기다려야 해. 이 주간 기다리느니 차라리 너희들이 합숙 훈련장으로 가 보는 게 어때?”

“음…….”

풍세학과 선의림이 살짝 머뭇거리자 윤단영이 다시 말했다.

“남궁 부당주님도 그곳에서 모두의 훈련을 도와주고 계셔. 그러니 가서 인사도 드리고, 좋잖아?”

“남궁 부당주님도 계신다고요?”

남궁찬이라는 큼직한 미끼가 드리워지니 역시나 파닥파닥 낚이는 모습이다. 월척이다.

윤단영이 산뜻한 미소를 지은 채로 대꾸했다.

“응. 그러니 너희들도 가서 함께 훈련받으면 남궁 부당주님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구하기도 좋지 않겠어?”

“확실히 그렇겠네요.”

이럴 때마다 남궁찬은 남궁찬이구나 하고 느낀다.

윤단영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일류의 초중반 수준인 아이들도 함께 훈련받고 있어. 그러니 너희들이라면 가뿐할 거야. 가서 건이와 함께 우리 서부지맹 잠룡관 출신들의 우수함을 보여주고 오도록 해.”

그 말에 나는 속으로 웃었다.

절정고수였던 단목강과 남궁설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힘겨워했던 게 합숙 특훈이었다. 길초량의 증언에 따르면 추소륵도 상당히 힘겨워했다고 한다.

내가 볼 때 풍세학과 선의림의 실력은 여전히 추소륵에 못 미친다. 그러니 훈련은 당연히 두 사람에게도 고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이 모든 사실을 윤단영도 잘 알고 있다. 그녀는 일차 합숙 특훈 때 직접 함께하며 지켜본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가뿐할 거라는 식으로 얘기하고 있다.

윤단영도 가만 보면 사악한 구석이 있다.

풍세학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가 보겠습니다.”

그러자 선의림도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보탰다.

“언제 이곳에 또 오게 될지 모르니, 이왕 온 김에 그런 훈련을 경험해 보는 것도 좋겠지요.”

스리슬쩍 태세를 전환하는 모습들이 귀엽다.

윤단영이 말했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가면 무림맹 경덕진 지소가 있어. 다들 그곳의 훈련장에 있어. 너희의 경공 속도라면 식사 후에 차 한잔 마시고 나서 출발한다고 해도 저녁 전에는 충분히 도착할 거야.”

“알겠습니다.”

풍세학과 선의림은 실제로 식사를 마치고 차를 한 잔씩 마신 후에 경덕진 지소를 향해 출발했다.

윤단영과 나는 두 사람을 배웅하며 멀어지는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두 사람의 뒷모습에 시선을 둔 채로 윤단영이 말했다.

“쟤들도 그간 열심히 수련해왔을 텐데 이상하게 치열함이 별로 안 느껴지네. 내가 근래 이곳에 있는 애들만 보고 살아서 상대적으로 그렇게 느끼는 건가?”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요?”

“게다가 저 둘의 성취 말이야. 쟤들보다 앞서 있던 소륵이와는 격차가 더 벌어지고, 쟤들의 뒤에 있던 금무와 충이에게는 많이 따라잡힌 것 같아. 유겸이 너도 느꼈으려나?”

“예. 어느 정도는요.”

“이곳에 있는 애들의 발전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이겠지. 다들 효율적으로, 치열하게 수련해왔다는 뜻일 거고.”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윤단영이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쨌거나 저 두 사람, 훈련에서 돌아오면 자진해서 이곳에 머물고 싶다고 할 거야. 내가 쟤들 성격을 좀 알거든.”

“오호.”

“이곳의 애들이 훈련받고 있는 모습을 직접 보면 쟤들도 본인들이 뒤처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느끼게 될 거거든. 그러면 뭐,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지는 빤하지. 지금까지 자신들이 훈련해왔던 환경에서는 계속해서 뒤처지거나 따라잡힐 수밖에 없다는 걸 모를 리 없으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윤단영이 말했다.

“쟤들이 딱 한 번만이라도 유겸이와 함께 실전을 치러봤더라면, 그래서 차원이 다른 유겸이의 그 실전 실력을 한 번이라도 목격했더라면, 오자마자 이곳에 머물고 싶다며 오히려 너에게 허락을 구했을 텐데.”

아까 풍세학과 선의림이 본산에 허락을 구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했던 것에 관한 얘기다.

“아하하……, 차원이 다른 정도까지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식으로 대충 둘러대고 싶지만, 윤단영은 특수작전조 시절에 나와 함께 후미를 맡았던 사람이다. 내 활약을 근처에서 다 지켜봤다. 그러니 둘러댈 수가 없다.

역시나 윤단영의 얼굴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걸려 있다. 부인해봐야 소용없다고 말하는 듯한 미소다.

그녀가 말했다.

“어쨌거나 네가 쟤들과도 친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 사실 내가 저 두 사람을 부른 건, 저 두 사람을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유겸이 너를 위해서이기도 했어. 친하게 지내서 손해 볼 일 없는 애들인 거, 잘 알잖아?”

풍세학과 선의림은 미래에 무당파와 화산파를 이끌어갈 동량들이다. 그런 두 사람과 내가 제대로 된 인연을 쌓을 수 있게끔 도와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겨우 이런 거로 감사는 뭘. 가자.”

윤단영이 그렇게 말하며 비룡장의 내원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기에, 나도 그녀의 옆으로 이동하여 함께 걸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천마신교의 혈풍은 기어이 강호를 한바탕 휩쓸 것이다.

그리고 나는 백도와 함께 천마신교를 막으며, 때를 노려 사부님의 복수를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나를 믿고 움직여줄 실력자들이 한 명이라도 더 필요하며, 적극적으로 천마신교에 대항해서 싸워줄 백도 세력 또한 한 곳이라도 더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풍세학과 선의림이 합류해 준다면 나로서는 매우 든든할 것이다.

윤단영의 예상대로 되어, 그 두 사람도 이곳에 머물게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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