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안에 마교있다-312화 (312/416)

내 안에 마교있다 312

단목진, 단목강과 함께 본채 이 층의 거실로 이동하여 대화를 나눴다.

대화는 주로 단목진과 송천광 사이에서 이뤄졌고, 단목강과 나는 어른들의 질문에 답할 때나 부연이 필요한 때에만 대화에 참여했다. 되도록 어른들의 대화를 방해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이번에 세가를 나선 김에 잠룡관에도 들렀습니다. 오랜만에 관주님과 총교관님께 인사도 드리고, 딸과 조카도 봤지요. 딸이 저녁 식사 시간에 접객당으로 친우들을 데려오겠다고 하기에 승낙했습니다. 덕분에 장주님의 따님도 볼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 우리 딸아이보다 더 미인이더군요.”

단목진의 말이 끝나자마자 송천광이 양손을 내저었다.

“아이고, 아이고, 그렇지 않습니다. 가주님의 따님이 훨씬 더 미인이십니다.”

“송 소저의 그 차분한 분위기가 참 보기 좋더군요.”

“분위기가 차분해 보이는 건 우리 딸아이가 다소 무뚝뚝한 성격이라서 그렇습니다. 단목 소저야말로 어쩜 그리 단아하고 상냥하신지.”

“허허헛.”

“허허허.”

상대방의 딸을 칭찬해주며 서로 좋아하는 모습들이다.

단목진이 말했다.

“아, 참! 올해 초에 득녀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감축드립니다.”

“어허허, 감사합니다.”

“제 딸아이가 여름 방학 때 이곳에 와서 아기를 봤는데 그렇게 예쁘다고 하더군요.”

“허헛, 저도 단목 소저한테서 가주님의 예쁜 막내 따님 얘기를 들었습니다. 가주님께서는 작년에 득녀하셨다고.”

“허허허,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장주님이나 저나 늦둥이가 딸이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늦둥이들이 나이도 비슷하고 하니 일찌감치 친해지게 해주면 좋을 듯합니다. 나중에 크면 잠룡관도 같이 다니고 할 테니.”

단목진의 말에 송천광이 흔쾌히 대꾸했다.

“그거 좋은 생각이십니다.”

이후, 송천광이 단목강과 나를 일별하더니 말했다.

“그리고 보니 단목 공자와 제 아들이 둘 다 통합 잠룡대전의 우승자라는 점도 같군요.”

“허헛, 그것도 그렇군요.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제 아들이 통합 잠룡대전에서 우승하는 데 송 공자의 도움이 매우 컸다고 알고 있습니다. 참고로 제 딸도 무공에 관해 송 공자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여러모로 송 공자에게 고마운 마음입니다.”

그러자 단목강이 고개를 끄덕이며 송천광에게 말했다.

“확실히 그렇습니다. 저와 누이 모두, 송 공자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늘 송 공자에게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허허허…….”

송천광이 민망하다는 듯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렇듯 서로 비슷한 부분도 많고 연결 고리도 많아서인지, 단목진과 송천광은 금세 죽이 맞았다.

덕분에 두 사람의 대화는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반 시진(한 시간)이 훌쩍 넘었는데도 송천광과 단목진의 대화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대충 핑계를 대고 본채를 벗어났다. 단목강을 남겨뒀으니, 어른들의 질문에는 그가 알아서 답해줄 것이다.

본채를 나서서 내원의 정원을 걷는데 서쪽 별채의 이 층에서 남궁묵의 목소리가 들렸다.

“유겸아!”

내가 멈춰서자 남궁묵이 이 층 창문에서 사라지는가 싶더니, 금세 일 층 현관문을 열고 나타났다.

빠르게 다가온 남궁묵이 내게 물었다.

“어디가?”

“제 아버지와 단목세가주님의 대화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빠져나왔습니다. 호수 변을 산책할 겸 해서요.”

“같이 가자. 나도 가족들과 할 얘기는 다 했거든.”

“그러시죠.”

같이 걷기 시작하자 남궁묵은 나와 남궁설이 절벽에서 떨어졌던 일을 얘기하며 고맙다는 말을 계속했고, 남궁설이 절정에 오른 사실에 대해서도 고마워했다.

관련된 화제는 한동안 계속되었고, 나는 민망해하며 그에게 적당히 반응해줬다.

이윽고 그 얘기가 대강 마무리되어, 남궁묵에게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형님은 찬 형님의 취임식에 참석하려고 잠시 들르신 겁니까?”

남궁묵은 무림맹의 최정예 무력 조직인 천무대 소속이다.

천무대는 무림맹의 관할 지역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임무를 수행한다. 바쁜 사람들이다.

“아, 그게……, 내가 최근에 동부지맹 쪽으로 발령이 났거든. 그래서 천무대에서의 임기를 마치고 온 거야. 형의 취임식에 참석하려고 일부러 임기를 일주일 정도 빨리 마치긴 했지.”

“오호, 그렇군요. 동부지맹의 어디로 발령이 났는지 여쭤봐도 됩니까?”

“동부지맹 감찰당의 암행감찰사.”

“우와! 이름만 들어도 요직 같은데요?”

“하하, 요직이긴 하지. 조용히 돌아다니며 동부지맹에 속한 각 지부와 지소 등을 감찰하는 일이니까. 그리고…….”

말을 멈춘 남궁묵은 뭔가를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잠시 후,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뭐, 굳이 너한테까지 감출 필요는 없겠지. 사실 암행감찰사는 그냥 외부에 드러내기 위한 직위일 뿐이거든. 실제 직위는 동협당 특수전투수행반의 반장이야.”

“특수전투수행반? 동협당에 그런 조직도 있었습니까?”

“없었지. 이번에 신설된 조직이니까. 동부지맹 내의 소수 최정예 전투 조직이야. 근래 사파와 혈교로부터 위협을 겪고 나서, 각 지맹에서도 초고난도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최정예 전투 조직의 필요성을 느낀 거지.”

“각 지맹이라고 하시는 걸 보니 다른 지맹에도 비슷한 조직이 생긴 모양이군요.”

“어. 동서남북 모든 지맹에 창설됐어. 대외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조직으로.”

사파와의 전투에서도, 혈교의 거점 타격 작전에서도, 결정적인 역할은 모두 기동타격조나 특수작전조와 같은 최정예들이 도맡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각 지맹의 동검대, 서검대, 남검대, 북검대는 보조 역할에만 만족해야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초고난도 작전에 어설픈 수준의 무인들이 끼어들면 전체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중요한 작전에서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각 지맹에서도 초고난도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전투 조직을 신설하기에 이른 모양이다.

참고로 동부지맹에서 남궁묵을 그 조직의 초대 지휘관으로 임명한 건 탁월한 선택이라 하겠다.

일단 남궁묵은 천무대에서 많은 경험을 쌓았기에 기본적으로 지휘관으로서의 역량이 충분하다. 거기에 남궁세가라는 그의 배경은 처음 출범하는 조직이 결속력을 갖는 데 있어 매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남궁묵에게 물었다.

“기밀 사안 같은데 이렇게 그냥 말씀하셔도 되는 겁니까?”

아까 그가 이야기하기 전에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던 이유도 이 사안이 기밀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특전반의 지휘관으로서 너한테는 알리는 게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뿐이야. 네게 미리 알리고 나면 나중에 네 도움이 필요할 때 더 편하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잖아. 기본적으로는 네게 알려도 퍼져나갈 일이 없다는 믿음이 있는 거고.”

“하하, 제가 이 얘기를 퍼트릴 일이야 없겠습니다만, 형님을 도와드릴 일이 딱히 있을지…….”

“우리 반의 역량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작전들도 왕왕 있을 거야. 그런 때에는 이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지원 요청을 해서 같이 작전을 수행할 계획이거든. 너와 제갈 형님을 포함해서, 이곳에는 고난도 작전을 두루 경험한 최정예들이 많잖아?”

“아하. 그런 거라면 열심히 도와드려야죠.”

내 말에 남궁묵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말했다.

“사실, 내가 반장이라는 것 외에는 아직 정해진 게 하나도 없어. 구성원도 다 내가 선발해야 해.”

“아하.”

“당연히 노련한 고수들 위주로 구성할 거지만, 잠재력 높은 신입도 네댓 명 받고 싶어. 선배들이 그들을 키우고, 그들이 선배가 되면 또 자연스럽게 후배들을 키울 수 있도록.”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남궁묵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 의미에서 신입 추천 좀 해줘. 성격 무난하고, 성실하고, 최정예로 성장할 자질이 있는 재목으로. 넌 그래도 얼마 전까지 잠룡관에 있었잖아.”

“음…….”

내가 고민에 잠기자 남궁묵이 말을 이었다.

“가서 네가 추천했다고 안 할게. 그러니 편하게 추천해줘.”

“재학생 중에서는 우문직 공자, 단목홍신 공자. 졸업생 중에서는 주경명 공자, 사옥연 소저, 목태월 공자. 이 다섯 사람 정도일 것 같습니다. 추천은 해드렸지만 한 명도 응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알았어.”

남궁묵이 만족스러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물었다.

“임기는 언제부텁니까?”

“시월 초하루부터. 그 전까지는 휴가야.”

“아하.”

“그때까지는 이곳에서 지낼까 해.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 돌아온 어린 누이와 함께 시간 좀 보내야지. 게다가 이곳에는 빼어난 후배들도 많고, 근처에 제갈 형님도 계시고 하니까. 그래서 말인데, 신세 좀 져도 되지?”

“물론입니다.”

“고마워. 그리고 이곳에서 머무는 동안 자주 너한테 비무하자고 조를 생각이야. 유겸이 너, 딱 봐도 이전에 봤을 때와는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거든. 길어야 두 달도 안 되는 기간이니까, 조금 귀찮더라도 이해해 줘.”

“귀찮긴요. 오히려 제가 감사할 일이죠.”

남궁묵이 만족감 가득한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이후에도 호수 변을 산책하며 다른 이야기들을 나눴다.

저녁 시간이 가까워졌기에 남궁묵과 함께 비룡장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러던 중, 호수로 길게 뻗은 가교를 향해 화물선 한 척이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남궁묵이 멈춰서서 잠시 화물선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음……, 깃발에 연주상단이라고 적혀있네? 연주상단 남창지점의 배겠지?”

나도 남궁묵이 말해주기 전에 이미 깃발을 확인한 상태다.

“그런 것 같네요. 누가 뭘 싣고 오는 건지 한번 가 봐야겠습니다.”

“같이 가자.”

남궁묵과 함께 빠르게 가교 위를 걸어, 가교가 끝나는 부분으로 향했다.

어느 시점이 되자 화물선 위에서 익숙한 얼굴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임려현과 유영평이었다.

두 사람의 곁에는 소년 한 명과 소녀 한 명이 서 있었는데, 아마도 임려현의 자식들인 듯했다.

일전에 임려현과 유영평이 떠날 당시, 이사 날짜가 결정되면 연주상단 남창지점으로 전서를 보내라고 얘기했었다. 연주상단의 화물선을 보내어 임려현 가족이 쉽게 이사할 수 있게끔 돕기 위함이었다.

화물선은 내가 대여한 것이다.

나는 연주상단 남창지점의 최우수 고객이라 선박을 대여하는 비용도 매우 저렴하다.

참고로 나는 내 전용 선박들을 연주상단 남창지점에 주문했으며, 그 배들은 한창 건조 중이다. 배들이 완성돼서 도착하면 가교의 끝에 정박시켜두고 필요할 때마다 편하게 이용할 계획이다.

화물선이 다가오는 것을 보며 남궁묵에게 유영평과 임려현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줬다.

남궁묵은 유영평이 회시 합격자라는 얘기를 듣더니 놀란 반응을 보였고, 임려현이 신룡대 부조장 출신이라는 얘기를 듣고는 더 놀란 반응을 보였다.

남궁찬도 다 알고 있는 내용이니 참고하라는 의미에서 남궁묵에게도 알려준 것이다.

곧 배가 가교 옆에서 멈추자 네댓 명의 무인들이 가교 위로 훌쩍 뛰어내렸다.

그들 중에 연주상단 남창지점 경비대의 금덕양이 있었다.

다른 무인들이 밧줄로 배를 고정하기 위해 이동할 즈음, 금덕양이 내게 다가와서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송 공자님.”

“오랜만입니다, 금 부조장님. 이번에도 부조장님께서 수고해주신 거군요.”

“지점장님과 총관님께서 송 공자님과 관련된 일에는 항상 저를 파견하시는 느낌입니다. 덕분에 송 공자님을 종종 뵐 수 있어서 좋습니다.”

“금 부조장님께서 저에 관련된 일들을 맡아주시면 저야말로 든든하지요.”

그즈음, 배에서 내린 임려현의 가족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도 그들에게 다가가며 먼저 인사를 건넸다.

“임 선배님, 유 선생님, 어서 오십시오.”

그러자 유영평과 임려현이 차례로 내게 인사했다.

“오랜만입니다, 송 공자.”

“오랜만이에요, 송 공자. 송 공자가 마중 나와 있을 줄은 몰랐네요?”

“하하, 호숫가를 산책하고 있는데 이 배가 다가오는 게 보이더군요. 그나저나 이사하시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임려현에게 대꾸하자 유영평이 말했다.

“송 공자께서 보내주신 이 화물선 덕분에 딱히 고생이라고 할 것도 없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는 미소를 지어 보인 후 임려현의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임려현의 옆에는 십 대 중반의 소년과 십 대 초반의 소녀가 서 있다.

소년은 유영평을 많이 닮아서 용모가 준수하고 인상이 반듯하다.

소녀는 임려현과 유영평을 반씩 닮은 느낌인데, 예쁘장한 얼굴에 귀엽게 생겼다.

소년은 감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중이고, 소녀는 임려현의 뒤에 반쯤 숨어서 조심스럽게 나를 살피는 중이다.

“우리 아들이 그렇게나 송 공자를 보고 싶어 했는데, 드디어 만나게 됐군요.”

내게 그렇게 말한 임려현이 곧바로 소년에게 말했다.

“진금아, 인사해.”

그러자 소년이 내게 포권하며 감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송유겸 공자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유진금입니다!”

“진금이구나. 반갑다.”

“실은 송 소협이라고 부르고 싶은데, 그 호칭으로 불리는 걸 부담스러워하신다고 들어서…….”

임려현한테 들은 모양이다.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에 말했다.

“그냥 편하게 형이라고 불러도 돼.”

“우와……!”

“그러니 잘 지내보자.”

“예!”

힘차게 대꾸하는 유진금에게 고개를 끄덕여준 후, 소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소녀는 지금껏 임려현의 뒤에 숨어서 고개만 빼꼼 내민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내 시선이 닿자 황급히 얼굴을 숨기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유영평이 소녀를 타이르는 어조로 말했다.

“어허, 어서 송 공자에게 인사해야지.”

그러자 소녀가 임려현의 옆으로 살짝 나오더니 내게 예를 취하며 말했다.

“아, 안녕하세여…….”

“그래, 반가…….”

내가 인사를 마무리하지 못한 이유는, 소녀가 본인의 인사말을 마치자마자 또다시 임려현의 뒤로 숨어버렸기 때문이다.

임려현이 내게 말했다.

“얘는 단금이에요. 지금 열한 살인데, 어려서부터 낯을 좀 가리는 편이니 송 공자가 이해해 줘요. 낯이 익어가면서 점점 괜찮아질 거예요.”

처음에 반쯤 숨어있을 때부터 낯을 많이 가리겠거니 예상했었다.

단목지도 다소 낯을 가리는 성격이어서, 처음에는 내게 직접 말을 걸지도 못했었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남자에게 그랬는데, 그러한 성격도 세월이 지나며 개선됐었다.

저 소녀, 유단금의 저러한 성격도 커가며 점점 개선될 것이다.

힐끔거리고 있는 유단금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단금 소저, 반가워. 앞으로 잘 부탁해.”

유단금이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금 고개를 임려현의 뒤로 숨겼다.

귀엽다.

이후에는 금덕양과 임려현 가족에게 남궁묵을 소개해줬다.

다들 남궁묵의 정체를 듣고는 놀라며 인사를 나눴다. 유단금만이 내게 인사할 때와 거의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인사가 끝난 후에 유영평에게 말했다.

“송풍장의 공사는 전체적으로 마무리 단계고, 소형 별채들은 이미 완공되었습니다. 일단 가서 그 별채들부터 보시고 거처를 고르시지요. 그리고 오늘은 곧 어두워질 테니 이사는 내일 해야 할 듯합니다.”

“그래야겠지요.”

유영평이 대꾸하자 금덕양이 말했다.

“그럼 저희는 내일 아침까지 배 안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이에 금덕양에게 대꾸했다.

“별채에 숙소를 마련해드릴 테니 모두 그곳으로 가셔서 편하게 쉬시지요.”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이곳의 선실도 충분히 편합니다. 알아서 잘 쉬고 있을 테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분위기였다.

이에 우리는 연주상단 남창지점의 인원들과 인사한 후 송풍장 쪽으로 향했다.

계서댁에게 말해서 요리를 챙겨다 주라고 해야겠다.

임려현의 가족은 늘어서 있는 소형 별채 중에서 구석에 있는 별채를 골랐다.

이 층 건물로, 원래는 예닐곱 명이 머물 수 있는 규모의 별채다. 유영평은 서책이 많다고 하니, 그 서책들을 모두 보관하거나 진열하기에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유영평과 임려현도 매우 만족스러워했지만, 유진금과 유단금이 특히 좋아했다.

둘 다 이 층에 있는 방을 쓰겠다며 신이 났다.

거처를 정한 후에는 임려현 가족과 함께 비룡장의 연회장으로 향했다.

우리가 약간 늦은 탓에 연회장에는 이미 모두가 모여 있었다.

여러 강호 명숙들에게 다가가 임려현의 가족을 소개해주고, 임려현의 가족에게도 강호 명숙들을 한 사람씩 소개해줬다.

오늘 비룡장에 찾아온 강호 명숙들은 일반인들도 알 만큼 유명한 인사들이라, 한 명씩 소개받을 때마다 유영평은 크게 놀라는 모습이었다.

강호 명숙들도 유영평이 진사 출신이라는 얘기를 듣고는 놀란 반응을 보였다.

소개가 끝난 후에는 유영평과 임려현도 명숙들과 대화를 나누며 만찬을 즐기기 시작했다.

유영평은 해박할 뿐만 아니라 수양이 깊고 기품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유영평은 먼저 스스로 지식을 뽐내는 법이 없었으며, 명숙들의 요청에 따라 가끔 한 번씩 본인이 아는 바를 풀어놓을 뿐이었다.

한데 그 정도만으로도 전체적인 대화의 수준이 높아지는 느낌이었다.

박식함은 말할 것도 없고 말 한마디, 한마디에 품격이 있어, 제대로 배운 사람은 뭔가가 달라도 다르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그렇다 보니 강호 명숙들도 유영평과 대화를 나누며 매우 흡족해했다.

그러한 모습들을 지켜보고 있자니, 어떻게 해서든 유영평을 총관 자리에 앉혀야겠다는 열망이 더욱 강해졌다.

연회는 즐거운 분위기에서 밤늦게까지 계속되었다.

* * *

명숙들은 짧게는 이틀부터 길게는 일주일까지 비룡장에 머물다가 돌아갔다.

비룡장에 남은 남궁묵은 남궁설과 함께 수련하고, 나 또는 제갈수광과 비무하고, 남은 시간은 후배들의 수련을 도와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임려현은 암기술을 익히고 있는 친우들을 전체적으로 지도해주기 시작했다.

임려현 덕분에 나는 여유 시간이 더 많아졌다.

대신 유진금을 한 차례씩 지도해주기로 했다.

확인해 보니 유진금은 임려현의 아들답게 암기술과 경신법이 특히 빼어났고, 검술 실력도 훌륭한 수준이었다.

모든 무공이 실전 친화적이었으며, 전체적인 실력이 촉휘명에게는 못 미치지만 정세건보다는 뛰어났다.

역시나 임려현이 아들을 야무지게 가르친 것이다.

그렇다 보니 지도하기에도 매우 편했다.

유진금은 성격이 씩씩하고 쾌활하여 비룡장의 모든 이들과 금세 친해졌다.

유단금은 낯을 가리는 성격인 데다가 말수도 적긴 했지만, 여자들이 잘 챙겨준 덕에 사람들과 점점 친해져 갔다.

심산화가 의외로 유단금과 가장 친하게 지내고 있는데, 아마도 심산화의 아이 같은 면이 유단금과 친해지는 데 도움이 된 게 아닌가 싶다.

* * *

팔월 말에는 송풍장의 공사가 모두 완료되었다.

송풍장 쪽에는 일단 장원의 일꾼들 위주로 이주시켰다. 참고로 송천광과 이청오가 송풍장의 완공에 맞춰 다수의 새 일꾼들을 고용하여, 현재 장원의 일꾼은 서른 명 정도로 늘어난 상태다.

송천광과 이청오와 진양옥도 송풍장으로 거처를 옮겼다.

나를 포함하여 비룡장의 본채와 서쪽 별채에 머물던 인원들은 모두 그대로 남아, 원래 머물던 숙소를 쓰기로 했다.

구월 초에는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송풍장에 도착했다.

남궁벽과 얘기가 됐던 대로, 그들은 송천광이 고용한 용병으로 위장한 채 송풍장 구석의 독립된 구역에서 지내게 됐다.

남궁묵, 남궁설과 함께 몰래 가서 인사를 나눴는데, 그들 중 열 명 남짓의 인원들은 낯이 익었다.

알고 보니 작년에 남궁벽, 홍민옥과 함께 남창지부에서 잠룡관으로 이동하던 당시 우리를 호위했던 창궁검대원들이었다.

어쨌거나 남궁세가에서 파견된 전력은 창궁검대의 삼 조와 팔 조로, 총 서른세 명이다.

이후에도 나는 종종 창궁검대가 머무는 구역에 몰래 놀러 가서 대원들과 교류하며 지냈다.

유사시에는 함께 싸우게 될 이들이니, 미리 이것저것 파악해두기 위함이었다.

* * *

시간은 쉴 새 없이 흘러, 시월, 십일월, 십이월이 금세 지나가고 어느덧 새해가 되었다.

그동안 장원에는 약간의 인원 변동이 있었다.

일단 송유하가 사 년 차에 조기 졸업하고 돌아왔다.

그 후에는 악미조와 모용리가 합류했다. 덕분에 길초량을 제외한 원래의 ‘기타회’ 구성원들이 모두 모이게 되었다.

악미조는 이번에 육 년 차라서 정상 졸업인데, 모용리는 오 년 차만 마치고 조기 졸업했다고 한다.

그렇듯 악미조와 모용리가 합류한 후에는 네 사람이 떠났다.

촉휘명과 정세건은 입학하기 위해, 포연월과 원추엽은 복학하기 위해 잠룡관으로 간 것이다.

한데 그 네 사람이 떠난 후에는 장호산과 이세옥이 찾아왔다.

기동타격조 시절에 눈이 맞았던 두 사람은 기어이 우리에게 혼약 소식을 전해 왔다.

그간 방학 기간을 이용해 꾸준히 만남을 이어오다가 혼인을 결정하고 이번에 둘 다 잠룡관을 휴직했다고 한다.

두 사람도 이왕이면 이 근처에 신혼집을 구할 생각이라고 하기에, 평생 머물러도 된다는 말과 함께 송풍장의 소형 별채를 한 채 내줬다.

이월에는 경사가 있었다.

제갈수광과 윤단영의 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아기는 사내아이였는데, 제갈수광보다는 윤단영을 더 많이 닮아서 예쁘게 생겼다. 애초에 제갈수광도 눈매가 나른할 뿐이지, 용모 자체는 준수한 편이긴 하다.

제갈수광은 아들의 이름을 ‘길’이라고 지었다.

제갈길도 송유림처럼 모두의 관심과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평화로운 나날들이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계절이 바뀌고 또 바뀌었다.

그렇듯 제법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길초량과 도예주에게서는 전서 한 통 오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특수작전조에 관련된 소식 자체를 전혀 들을 수 없었다.

제갈수광마저도 그 작전이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사실만 알 뿐, 다른 건 모른다고 한다.

어쨌거나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는 건 작전의 난이도나 위험성이 더 높아졌다는 뜻이기도 하니, 그 속에서 길초량과 도예주가 무사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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