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321
정찰조의 임무는 경계선의 바깥쪽에서부터 안쪽으로 이동하며 몇 군데의 경계 지점을 차례로 정리하는 일이다.
우리의 반대편 능선에서는 남궁묵과 육화현이 이끄는 특전반의 정예들이 우리와 같은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제갈수광이 이끄는 본대는 적의 경계선을 따라 대형을 길게 유지한 채로 잠복하며 대기하고 있다.
본대는 우리의 일 차 임무가 완료됐을 때, 혹은 우리의 은밀한 작전이 발각됐을 때 움직이게 된다.
임려현과 나는 경계선을 따라 이어지는 적의 경계 지점 한 곳을 더 정리했다.
처음에 내가 처리했던 고지 위의 경계 지점부터 순서를 정하면, 외곽으로부터 세 번째 경계 지점까지 은밀히 정리한 것이다.
적들을 정리하자 근처에 은신해 있던 조원들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조원들을 가까이에 모아놓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계획대로 여러분은 이곳에서부터 적의 후방으로 침투해야 합니다. 표식을 남기며 이동한 후, 차단선을 구축한 채로 은밀히 대기해주십시오.”
이곳에서부터 다음 경계 지점까지는 거리가 다소 멀기에 육성으로 말한 것이다.
참고로 전체 차단선의 우측은 정찰조가, 좌측은 특전반의 정예들이 맡게 되어 있다. 차단선을 구축한 인원들은 그곳에 잠복한 채로 대기하고 있다가, 나중에 도주하는 적들을 제거해야 한다.
조원들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들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출발하십시오. 임 선배님과 저는 남은 임무를 수행한 후에 합류하겠습니다.”
곧 조원들이 경계선을 넘어 적의 후방으로 조용히 나아가기 시작했고, 임려현과 나는 적의 네 번째 경계 지점으로 향했다.
능선길을 따라 조용히 이동하고 있던 어느 순간, 멀리에서 다가오는 불편한 기척들을 감지할 수 있었다.
적들이다. 다섯 명이다.
그들은 우리의 맞은편에서 경계선을 따라 빠르게 다가오는 중이다. 경공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선배님, 잠시 이쪽으로.]
내가 그렇게 전음을 보내며 길옆의 덤불 뒤에 숨자, 임려현도 곧장 나를 따라와서 숨었다.
상황을 파악한 임려현이 전음으로 말했다.
[순찰조일지, 교대조일지 궁금하군요.]
그들이 아직 네 번째 경계 지점을 지나치지 않았기에 저렇게 말한 것이다.
그녀에게 대꾸했다.
[확실한 건, 무조건 제거해야 한다는 점이겠지요. 그것도 은밀히.]
적어도 지금까지는 전체 경계선에서 아무런 소란도 발생하지 않았다. 적들이 아직 특전반 정예들과 우리의 은밀한 작전을 모르는 것이다.
한데 저들이 이대로 지나가면 우리가 처리한 경계 지점들의 모습을 확인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곧바로 호각 소리가 울려 퍼질 것이다.
그러니 무조건 제거할 수밖에 없다.
다섯 놈이 네 번째 경계 지점에서 잠시 멈추는가 싶더니, 다시금 빠른 속도로 경공을 펼치기 시작했다.
경계 태세를 확인한 후 곧장 다시 움직인 모양새다.
임려현의 전음이 들렸다.
[순찰조군요.]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제가 반대편으로 이동해서 잠복하겠습니다. 선배님이 앞선 두 놈을 조용히 처리해주십시오. 놈들의 시선이 선배님에게 끌려 있는 사이, 제가 뒤따르는 세 놈을 처리하겠습니다.]
임려현이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곧장 능선길의 반대편으로 이동하여 작은 바위 옆에 몸을 숨겼다.
이동하면서 은잠술을 펼치는 것보다 정지 상태로 은잠술을 펼치는 게 훨씬 쉽고, 은신 효과도 좋다.
나와 임려현의 기척은 금세 무생물이라도 된 듯 완전히 사라졌다.
다섯 명의 적들이 가까워졌다.
일렬종대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곧 놈들이 우리 근처에 이른 순간.
피빗!
임려현의 손에서 철비정 두 자루가 떠났다.
이에 나는 즉시 네 번째, 다섯 번째 위치에서 달리고 있는 두 놈을 향해 쇠구슬을 튕겨냈다. 동시에 신형을 낮게 깔며 세 번째 위치에서 달리고 있는 놈을 향해 뒤에서 짓쳐 들었다.
천섬무를 운용한 상황이라, 앞쪽의 두 놈이 고꾸라지는 모습이 느리게 보인다.
뒤쪽 두 놈의 옆머리에 쇠구슬이 파고드는 모습도 보인다.
길옆에 있던 임려현이 튀어나오는 모습도 보인다. 세 번째 위치에서 달리는 놈을 향해 암기를 던지려 하고 있다.
“웬……!”
세 번째 위치에서 달리던 놈은 그 이상의 말을 내뱉지 못했다.
뒤에서 날아간 내 소비도가 놈의 뒤통수에 박혔기 때문이다.
다섯 놈의 신형이 고꾸라진 채로 축 늘어졌다.
임려현이 다섯 놈의 시체를 일별하더니 말했다.
[이들의 순찰 속도라면 늦어도 일다경쯤 후에는 중앙의 경계 본부로 복귀할 수 있었을 거예요.]
[이제 이들은 복귀할 수 없게 되었으니, 일다경 후에는 경계 본부에서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겠지요.]
내가 대꾸하자 임려현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서두르면 그 전에 우리의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 거예요.]
[예, 아마도.]
임려현이 네 번째 경계 지점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선 빨리 저곳부터 처리하죠.]
이에 고개를 끄덕인 후, 그녀와 함께 네 번째 경계 지점을 향해 나아갔다.
임려현과 나는 네 번째 경계 지점과 다섯 번째 경계 지점을 차례로 처리했다.
서두른 덕에 예상보다 이른 시점에 그 두 곳을 모두 정리할 수 있었다.
임려현이 근처의 적당한 바위 옆으로 이동하더니 부싯돌을 이용해 본대에 신호를 보냈다. 우리 쪽의 작전을 완료했다는 신호다.
이후에 그녀가 다가오더니 말했다.
[나머지 경계선은 본대가 맡을 테니, 이제 우리는 차단선만 잘 지키고 있으면 되겠군요.]
[곧 상황이 발생할 테니, 저는 은밀히 적의 경계 본부 쪽으로 향하여 전황을 파악하고, 필요에 따라 중앙의 전력을 지원하겠습니다. 선배님께서는 조원들에게 가셔서 차단선을 점검한 후 그쪽을 지휘해 주십시오.]
[알았어요.]
우리는 바로 헤어져서 각각의 방향으로 흩어졌다.
나는 적 경계선의 후방에서, 경계선과 차단선의 사이로 이동했다.
경계선 쪽의 상황도 쉽게 파악할 수 있고, 차후에 차단선 쪽도 금세 지원할 수 있는 위치다.
그렇듯 은밀하게 나아가던 어느 순간.
피이이이이이-
피이이이이이이-
두 줄기의 효시 소리가 거의 동시에 들렸다.
저건 미리 약속된, 본대의 공격 개시 신호다.
효시 소리가 긴 꼬리를 남기며 사라지자, 적측 경계선의 이곳저곳에서 호각 소리가 어지럽게 들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소란스러워진 마당이기에 나는 천섬무를 일으켜 매우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 고갯길 근처의 경계 본부에 적의 숫자가 많으니, 그쪽을 살피기 위함이다.
달리면서 주변을 감지해 보니, 우리의 본대가 동시에 전진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었다.
곧 고갯길 부근이 보이기 시작했을 무렵, 두 개의 작은 그림자가 허공으로 낮게 솟아오르는 게 보였다.
전서구 두 마리다.
두 마리가 날아가는 방향이 각각 달랐다.
한 마리는 경계선의 후방인 서쪽으로, 다른 한 마리는 남서쪽으로 향하고 있다.
나는 경계선의 후방에서 달리고 있기에 저 전서구들이 시야에 잡힌 건데, 아군 궁수들의 시야에도 잡혔을지는 의문이다. 본대의 위치에서는 능선 위까지 올라와야만 저 전서구들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내 위치에서도 저 전서구들까지의 거리는 너무 멀다. 천섬무를 펼치며 부지런히 다가가고는 있는데, 둘 중 한 마리라도 떨어뜨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던 어느 순간, 고갯길의 왼쪽 능선으로부터 화살이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자마자 고갯길의 오른쪽 능선에서도 화살 한 대가 날아가기 시작했다.
화살이 출발한 위치는 각각, 적 경계 본부에서 가까운 좌우의 능선 부근이다.
왼쪽 능선에서 발사된 화살은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가 싶더니 남서쪽으로 날아간 전서구를 떨어뜨렸고, 오른쪽 능선에서 발사된 화살은 거의 직선의 형태로 허공을 가르더니 서쪽으로 날아간 전서구를 떨어뜨렸다.
왼쪽 능선에서 발사된 화살은 제갈수광의 화살이고, 오른쪽 능선에서 발사된 화살은 송유하의 화살이다.
그야말로 믿음직한 우리의 명궁수들이라, 입가에 미소가 절로 피어올랐다.
참고로 송유하가 날린 화살은 은룡삭을 통해 발사됐다. 그래서 거의 직선 궤적을 이루며 날아간 것이다.
경계선 근처가 금세 소란스러워지며 곳곳에서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비명도 하나둘씩 늘어가고 있다.
나는 고개 쪽의 상황이 잘 보이는 위치의 나무 위로 올라가 은신했다. 그 상태에서 안력을 돋워 전장을 살폈다.
전투가 가장 격렬한 곳은 역시나 고갯길 양쪽의 경계 본부 인근이었다. 그쪽에 적이 가장 많기 때문이다.
경계 본부 근처에서는 적측 절정고수의 기운도 몇 개가 느껴지는데, 대단한 수준의 고수는 없는 듯하다. 저 정도 수준들이면 우리 본대의 전력을 고려했을 때 딱히 위협적이지 않다.
이후로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적의 경계 본부 근처에서 다급한 외침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퇴각!”
“전원, 산개하여 퇴각!”
전멸당할 게 빤한 상황인 만큼, 적들로서도 당연한 결정이다.
우리의 차단선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게 문제일 뿐.
곧 적들이 도주하기 시작했다.
한데 우리 본대가 학익진을 펼치고 있다 보니 적들로서는 도주로가 후방으로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본대에서 그걸 노리고 학익진을 펼친 것이기도 하다.
살펴보니 경지에 비해 도주하는 속도들이 상당히 빠르다.
경계조다 보니 아무래도 날랜 무인들로 구성된 모양이다.
본대에서도 전력이 나뉘어, 반은 경계선에 남아 있는 적들을 정리하고 나머지 반은 도주하는 적들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적들 중에서 두 놈은 내가 은신해 있는 나무에서 가까운 경로로 도주하고 있다.
일류고수 한 명, 절정고수 한 명이다.
특히 일류고수의 경로는 내가 은신해 있는 나무에서 상당히 가깝다.
나는 일류고수 놈이 지나가는 순간에 맞춰 떨어져 내리며, 오른손으로 쇠구슬을 튕겨냈다.
천섬무의 기운이 담긴 쇠구슬이 일류고수 놈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놈이 달리면서 고꾸라졌다.
그즈음 절정고수는 제법 멀리까지 달아난 상황.
나는 놈의 뒤를 쫓으며 전통에서 화살을 꺼내어 시위에 메겼다. 그러고는 화살에 천섬무의 기운을 적당히 담아서 시위를 놓았다.
투웅!
시위를 떠난 화살이 절정고수의 등 한복판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빠르게 짓쳐 든 화살이 등에 저대로 박히겠거니 싶던 순간, 절정고수 놈이 상체를 옆으로 기울임과 동시에 뒤로 틀더니 검으로 화살을 쳐냈다.
채앵!
겨우 쳐낸 모양새긴 하나, 어쨌든 쳐내긴 쳐냈다.
절정고수는 절정고수인 것이다.
그쯤에서 나는 더 이상 놈을 뒤쫓지 않고 방향을 틀었다.
어차피 놈이 도망치는 방향에서는 남궁묵과 육화현이 이끄는 특전반의 정예들이 차단선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놈은 내게서 벗어났다며 안도하고 있겠지만, 곧 죽을 것이다.
우리 조원들이 지키고 있는 차단선의 중앙을 향해 달렸다.
조원들의 움직임을 전체적으로 확인함과 동시에, 지원이 필요해 보이는 곳을 즉시 지원하기 위함이었다.
적들 몇 놈이 저 앞에서 도주하고 있다.
총 다섯 명인데, 두 놈은 일류고수고 세 놈은 절정고수다.
산개해서 도주하는 중이기에 방향은 제각각이다.
그중 가장 먼저 우리의 차단선에 가까워진 놈은 좌측에서 달리고 있는 절정고수다.
곧 우리의 차단선에 다다른 순간, 놈이 갑자기 화들짝 놀라며 몸을 비틀었다.
동시에 검 한 자루가 그의 옆구리를 살짝 베고 지나갔다.
은신해 있던 선우린이 찔러 넣은 검이다.
선우린의 기습으로 인해 절정고수의 자세가 무너지고 있을 즈음, 측면에서 그림자 하나가 빠르게 다가오더니 절정고수의 허벅다리에 검을 찔러 넣었다.
남궁설이다.
“큭!”
절정고수가 앞으로 고꾸라지기 시작하자 남궁설이 왼손으로 철비정을 뿌렸다.
두 개의 철비정이 각각 절정고수의 목덜미와 허리 어림에 박혔고, 절정고수는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
가장 오른쪽에서 도주하고 있는 절정고수는 우리가 구축한 차단선의 범위를 너무 많이 벗어나고 있다.
참고로 저 절정고수가 도주하고 있는 방향에는 숲이 우거진 낮은 산지가 있다. 그 낮은 산지를 지나면 높은 산지가 나온다. 그러니 이곳에서 놓치면 놈을 다시 붙잡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차단선의 우측 가장자리에 잠복하고 있는 이는 다름 아닌 임려현이다. 처음부터 지형을 고려하여 저곳에 자리 잡은 것이다. 역시 임려현이라 하겠다.
곧 임려현이 자리를 벗어나 우측의 절정고수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나선 이상, 저쪽은 더 이상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또 다른 절정고수는 차단선의 우중간으로 향하고 있다.
이쪽으로 도주한 세 명의 절정고수 중에서는 저자가 가장 강한 느낌이다.
차단선의 중앙에서 잠복하고 있던 단목강이 빠르게 움직이더니 그 절정고수의 앞을 막아섰다.
절정고수가 단목강을 향해 도를 휘둘렀다.
맹렬하면서도 쾌속한 도법.
단목강이 검을 휘두르며 절정고수의 도에 정면으로 맞섰다.
카앙!
사실, 단목강은 굳이 저렇게 힘으로 맞설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그걸 모를 단목강이 아니다.
그런데도 단목강이 저런 선택을 한 이유는, 근처에서 잠복하고 있는 우문직 때문이다.
두 사람이 격돌한 순간, 우문직이 절정고수의 등 뒤에서 검을 찔러 갔다.
절정고수는 순간적으로 흠칫했지만, 즉시 왼손으로 단도를 뽑아 휘두르며 우문직의 검을 아래에서 위로 쳐냈다.
카앙!
우문직의 팔이 들렸다.
참고로 우문직의 공격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절정고수의 반응 속도가 매우 빠르고 대처도 좋았을 뿐이다.
그사이, 단목강이 절정고수의 상체를 향해 검을 찔러 갔다.
절정고수가 상체를 격렬하게 비틀며 검을 피하려 했지만, 결국은 단목강의 검이 절정고수의 옆구리를 찔렀다.
한데 깊숙이 찌르지는 못했다.
이 또한 절정고수의 신법이 범상치 않은 탓이다.
절정고수가 상체를 비틀던 힘으로 회전하며 그대로 도를 휘둘렀고, 단목강이 검을 이용해 그 공격을 흘렸다.
그 순간, 절정고수가 왼손에 쥐고 있던 단도를 단목강에게 던지더니, 신형을 휙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단목강이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단도를 피하며 절정고수를 뒤쫓기 시작했을 때쯤, 우문직이 양손으로 소비도를 털어냈다.
세 자루의 소비도가 절정고수의 등을 향해 날아갔다.
오른손에서 두 자루, 왼손에서 한 자루가 발출됐다. 아마도 왼손으로는 아직 소비도 두 자루를 다룰 수 없는 모양이다.
어쨌거나 소비도들의 궤적이 상당히 예리하다 보니, 신법이 뛰어난 저 절정고수라 해도 세 자루를 모두 피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아니나 다를까, 절정고수가 기묘한 각도로 신형을 기울이며 상체를 살짝 틀더니, 도를 휘둘러 소비도 한 자루를 쳐냈다.
탱!
나머지 소비도 두 자루가 상체의 좌우를 스쳐 지나가자, 절정고수가 다시 상체를 정면으로 틀었다.
그 순간, 그의 등 뒤로 검극이 솟아 나왔다.
가슴에서부터 찔러 들어간 소검의 검극이 등 뒤로 튀어나온 것이다.
우뚝 멈춘 절정고수의 신형이 앞쪽으로 천천히 허물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저 소검의 주인은 심산화다.
우문직의 소비도로 절정고수의 신경이 분산된 틈을 타, 심산화가 마무리한 것이다.
심산화의 빼어난 은잠술 실력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하겠다.
시선을 돌려 일대를 빠르게 훑어보니 단목홍신이 일류고수 한 명을 상대하는 중이었다.
별 어려움은 없어 보인다.
가뜩이나 다른 일류고수 한 명을 벌써 처치한 남궁설과 선우린이 단목홍신 쪽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임려현이 그 절정고수를 처리하고 돌아오면, 우리 차단선 쪽의 적들은 모두 마무리되는 셈이다.
상황 파악을 끝낸 후 서둘러 심산화 쪽으로 다가갔다.
심산화는 쓰러져 있는 절정고수의 가슴에서 소검을 빼내는 중이다.
이윽고 녀석이 일어서더니 천천히 우리 쪽으로 신형을 돌렸다.
저 조그만 얼굴의 반 이상이 피범벅이다.
키가 작은 녀석이, 가뜩이나 낮은 자세에서 절정고수의 심장에 검을 찔러 넣다 보니 저렇듯 피를 뒤집어쓴 것이다.
나와 시선이 마주친 심산화가 해죽 웃었다.
나한테서 칭찬을 듣고 싶어서 저런 웃음을 짓고 있는 건데, 보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섬뜩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성인인데도 여전히 몸집이 작고 얼굴도 동안인 녀석이다 보니, 저 모습도 어린 미소녀가 피를 뒤집어쓴 채로 기괴하게 웃는 것처럼 보이는 탓이다.
얼른 심산화에게 다가가서 소매로 대충이나마 얼굴의 피를 닦아줬다. 그러면서 물었다.
“다친 데 없어?”
심산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나도 고개를 끄덕여준 후에 말했다.
“잘했어.”
칭찬 듣고 싶어 하는 애에게 칭찬을 해줬더니 얼굴이 환해지고 있다.
다시금 고개를 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단목홍신 앞에 있던 일류고수는 이미 쓰러져 있었고, 멀리에서는 임려현이 경쾌하게 경공을 펼치며 복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