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332
제갈수광과 함께 궁수들을 처치하며 적진을 휘젓고 다녔다.
우리는 실전에서 상당히 오랜만에 합을 맞추는 중이다.
삼 년 전에 동고현에 있는 혈교의 대규모 거점을 타격할 당시에 함께 싸웠었고, 그 후로 처음이다.
그렇게나 오랜만인데도 우리는 마치 꾸준히 합을 맞춰온 것처럼 손발이 척척 맞았다.
서로의 무공과 실전 성향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는 덕분이다.
함께 싸우면서 보니 제갈수광은 실전 감각이 이전보다 훨씬 예리해진 모습이었다.
특수작전조 활동 당시에 오랜 기간 신룡대와 함께 작전을 수행했던 결과일 것이다.
게다가 제갈수광은 그 당시와 비교하면 경지 자체도 많이 상승한 상태다.
그리고 나도 삼 년 전과 비교하면 경지가 엄청나게 상승했다.
그런 우리가 합까지 잘 맞다 보니 전투력이 상상 이상이었다.
적진 속에 둘밖에 없는데도 거칠 게 없었다.
우리는 신나게 적진을 안쪽을 휘젓고 다녔다.
그러는 동안 특전반원들과도 한 차례 마주쳤다.
특전반도 우측 전선에서 우리와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갈수광과 둘이서 죽인 적도들의 수가 백 명이 넘었을 때쯤이었다.
적진 곳곳에서 호각 소리가 어지럽게 울리는가 싶더니, 적도들이 산등성이 위쪽으로 퇴각하기 시작했다.
제갈수광과 나는 빠르게 추격하며 적도들의 수를 최대한 줄였다. 그러는 중에도 나는 기척 탐지의 범위를 넓게 유지하며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했다.
우리는 능선을 넘어 경사면 아래까지 추격하다가 돌아섰다.
주 전력이 능선 위에서 전진을 멈춘 만큼, 우리가 너무 멀리까지 추격할 일은 아니었다.
이곳에 있던 적도들은 사백여 명으로 추정되는데, 그중에서 살아 돌아간 자들은 백오십 명도 되지 않을 것이다.
제법 많은 수의 적도들이 살아 돌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퇴각 결정을 빨리 내린 덕분이며, 이곳이 산지이기 때문이다.
추격을 멈춘 후에는 산책하듯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능선 위쪽으로 향했다.
나란히 걷는 중에 제갈수광이 전음을 보내왔다.
[송유겸이와 함께 싸우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군. 물론 송유겸이에게 열심히 보조를 맞추느라 가랑이가 찢어질 지경이지만 말이야.]
가랑이 운운한 건 엄살이나, 나와 함께 싸우니 편하다는 말은 사실일 것이다.
전투를 치르는 내내, 제갈수광은 자잘한 상황 처리는 대부분 내게 맡기고, 본인의 쌍검술에 더 집중했기 때문이다.
[저도 교관님과 함께 싸우니 참 편합니다. 무엇보다도 정신적으로 든든하고요.]
내가 대꾸하자 제갈수광이 살짝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미미한 미소를 짓고 있다.
그에게 다시 전음을 보냈다.
[아, 그리고 철양이, 산화, 은림이, 조혁이는 원래 제가 맡아야 하는 건데, 걔들 돌보느라 교관님만 고생하시는 듯해서 송구스럽습니다. 누이도 그렇고요.]
다섯 사람은 내 허락하에 광서 수복전에 참가했다.
그러니 실전에서도 내가 돌봐줘야 하는데, 실제로는 제갈수광이 도맡고 있다.
제갈수광이라고 해서 그 실전 초보들을 돌보는 게 달가울 리 없을 것이다. 실전 초보들이니 언제 실수할지 모르고, 그렇다 보니 신경을 계속해서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심력 소모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조금 전까지 그가 신나게 쌍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고 나니 더욱 그렇다.
제갈수광이 대꾸했다.
[별걸 다 신경 쓰고 있군. 휴직 중이라고는 해도 나는 교관이다. 교육자란 말이다. 후학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은 교육자의 당연한 사명이다. 그러니 네 녀석은 그 녀석들 신경 쓰지 말고, 네 녀석의 역할에나 충실하도록.]
이에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꾸했다.
[감사합니다.]
그러자 제갈수광이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젖히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가 그 상태로 낮은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고맙다고 말해야 할 건 내 쪽이지.]
[예……?]
[아까 나는 건이를 지켜내지 못했다. 그 상황에 대해서는 너도 잘 알잖나. 네가 와주지 않았다면……, 건이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테니까…….]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
아무래도 당조카가 죽을 뻔한 상황이었으니 감정이 더 요동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원래는 늦지 않을 수 있었다. 한데 딱 검기를 날리려는 시점에 조원 한 명의 어깨가 경로를 가리고 있더군. 그래서 한 시점 늦게 검기를 날릴 수밖에 없었고, 그게 역시나 늦었던 거지.]
제갈수광의 전음이 이어졌다.
[그 순간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더군. 차라리 저 무음시에 맞는 게 건이가 아니라 나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듯 절망하던 중에 네가 나타난 것이다. 그때 내 심정이 어땠겠나.]
제갈수광이 말을 마치며 나를 바라봤다.
평소에는 무미건조하기 이를 데 없는 저 눈빛이 애정을 담고 있다.
내가 미소를 지어 보이자 제갈수광도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이후에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걸었다.
잠시 후에 제갈수광이 말했다.
[어쨌거나 어서 합류하도록 하지. 전열을 재정비하고 다시 진격해야 할 테니.]
[예.]
[우리가 궁수들 몇 명을 처치하기는 했지만, 무음시의 위험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런 이상, 한동안은 강습조와 지원조가 근거리에서 함께하며 연계해야 할 듯하군.]
[제 생각도 같습니다.]
대강의 대화를 마친 우리는 가볍게 경공을 펼치며 능선 위로 향했다.
모두가 능선 위에서 신속하게 전열을 정비한 후, 다시금 빠르게 전진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현재 위치는 합산현의 북부 산지다.
이대로 조금만 더 남하하면 산지가 끝나고 평지가 나온다. 평지로 들어서면 합산지부까지는 금방이다.
원래는 그 경로로 이동해야 하지만, 우리는 지금 동부 산지 방향으로 전진하는 중이다.
상황이 달라진 탓이다.
조금 전의 전투에서 조명용 폭죽이 터졌고, 그로 인해 잠시나마 일대의 하늘이 매우 밝아졌었다.
당연히 동부 산지 쪽의 적도들도 그걸 관측했을 테고, 북부 산지 쪽에서 문제가 발생했음을 알아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움직일 것이다.
지금쯤이면 동부 산지의 적도들도, 자신들의 앞에 나타난 게 무림맹의 주 전력이 아니라, 시선을 끌기 위한 소수의 전력임을 알아챘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이대로 합산지부로 진격할 경우, 동부 산지에서 움직인 전력들에 의해 포위당할 위험이 매우 크다.
이에 우리도 동부 산지 방향으로 향하여, 그쪽 적도들을 먼저 상대하기로 한 것이다.
물론 동부 산지의 적도들이 북부 산지로 향하지 않고 곧장 합산지부로 합류할 수도 있다.
그 사실이 확인되면 우리도 곧장 합산지부로 진격하면 된다. 어차피 합산지부에 거의 다다른 상태이기에 방향만 틀면 금방이다.
가뜩이나 적 지휘부에서는 우리가 북부 산지를 통해 바로 남하하리라고 예상하고 준비 중일 것이다.
적의 예측 범위에서 벗어날 필요도 있다.
특전반과 강습조, 지원조가 선봉의 역할을 하며 먼저 움직였다.
그중에서도 나와 남궁묵과 임려현은 최선봉이 되어 매우 멀찍이 앞서서 이동했다. 상황이 매우 중요한 만큼 우리 세 명이 앞장선 것이다.
그렇게 한 식경쯤 이동했을 무렵, 우리는 대규모 인원의 이동을 감지할 수 있었다.
적도들이다.
북부 산지 쪽으로 향하고 있다.
동부 산지 방향에서 오고 있으니, 그쪽에 있던 적도들일 것이다.
각개격파가 목적이었던 우리로서는 마침 잘된 일이기도 하다.
남궁묵이 속삭이며 말했다.
“저들도 곧 우리 주 전력의 존재를 파악하고 달려들 겁니다. 특전반과 특무강습대는 측면으로 빠져서 숨어 있다가,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된 후에 후방을 교란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이에 우리는 즉시 되돌아가서 주 전력에게 상황을 알린 후, 특무강습대와 특전반을 이끌고 고지 쪽으로 이동했다.
적당한 지점에 은신한 후, 안력을 돋워 아래쪽의 상황을 살폈다.
경공을 펼치던 적의 선봉이 급격히 멈추고 있다.
우리 주 전력의 존재를 인지하고 멈춘 것이다.
선봉이 멈추자 세로로 긴 줄을 이루며 뒤따르던 적도들이 차례로 멈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점에 주 전력의 무인들이 적도들에게 달려들었다.
우리의 주 전력은 이미 진형을 어느 정도 넓게 펼친 상태였다. 우리가 적의 접근을 미리 알려준 덕분이다.
그 이점을 살려, 적측에서 제대로 진형을 잡기 전에 먼저 공격을 개시한 것이다.
그렇게 전투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은신 지점에서 조금 더 대기하며 아래쪽의 전투 상황을 살폈다.
초반의 전투 양상은 역시나 주 전력 쪽이 우세한 양상으로 흘러갔다. 전투 진형을 미리 펼치고 있었던 덕분이다.
이후에는 적도들 쪽에서 이런저런 고함이 들리더니, 세로로 긴 줄을 이루며 뒤따르던 적도들이 빠른 속도로 전선으로 합류하기 시작했다.
그렇듯 적도들이 전선의 형태를 어느 정도 갖추기 전까지, 우리의 주 전력은 적측에 적잖은 피해를 줬다.
시간이 지나면서 적도들 대부분이 전선 근처로 합류했고, 전투의 구도가 잡혀갔다.
적도들의 수는 족히 천 명은 되어 보였다.
우리의 예측대로, 동부 산지의 방비는 매우 탄탄했던 것이다.
일정 시점이 되자 남궁묵이 신호를 보냈고, 우리는 경사면 아래로 달려 적진의 우측 후방을 향해 빠르게 나아갔다.
우리의 작전 목표는 적진의 우측 후방에서 좌측 후방으로 이동하며 후방을 교란하는 일이다.
특전반과 강습조가 각각 좌우 전방을 맡았고 지원조가 후방에 섰다.
우리를 발견한 적도들이 외쳤다.
“적이다!”
“우측!”
“조심! 고수들!”
우리가 다가가는 속도와 기세를 통해 고수임을 추측해냈을 것이다.
그런 외침들이 들린 직후, 우리 쪽으로 암기와 독침들이 무수히 날아들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쏟아지는 수준.
이에 특전반에서는 남궁묵과 묘청상과 육화현이, 강습조에서는 임려현과 단목강과 남궁설이 나서며 암기들을 쳐내기 시작했다.
여섯 사람은 적을 공격하기보다는 암기를 쳐내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다.
나는 추소륵으로 하여금 임려현과 단목강과 남궁설을 보좌하도록 지시했다. 같은 역할을 특전반에서는 배낙균이 맡고 있다.
고수들이 그렇듯 암기를 막아내는 사이에, 특전반과 강습조와 지원조의 다른 인원들은 적도들에게 원거리 공격을 가했다.
모두가 그런 식으로 전투를 펼치며 전진하는 동안, 나는 드문드문 암기를 날리며 적진을 살피는 일에 집중했다.
사람이 많고 어지러운 상황이다.
어떤 돌발 상황이 발생할지 모른다.
제갈수광도 나처럼 돌발 상황에 대비하여 적진을 유심히 살피는 중이다.
어느 순간, 후열에서 도약하여 암기를 날리던 자들 중 세 명이 암기 대신 둥근 구체를 던지는 모습을 포착할 수 있었다.
내 저럴 줄 알았지.
“탄!”
천섬무를 운용하며 즉시 그렇게 외쳤다.
궤적을 보니 하나는 임려현이 막을 수 있을 듯하고, 다른 하나는 제갈수광이 막을 수 있을 듯하다.
나머지 하나를 내가 막으면 될 것이다.
인원들 대부분이 자리를 즉시 이탈하고 있다.
전면에서 암기를 막아내던 고수들은 약간 늦게 이탈하며 동료들을 끝까지 엄호해줬다.
이탈하지 않은 인원은 네 명.
나, 임려현, 제갈수광, 남궁묵이다.
임려현과 제갈수광이 각각의 구체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을 무렵, 내 귓전으로 남궁묵의 전음이 날아들었다.
[내가!]
내가 처리하려던 구체를 본인이 처리하겠다는 뜻이다.
실제로 구체를 향해 움직이고 있기도 하다.
사실, 구체의 궤적에서 더 가까운 건 나다.
그러나 남궁묵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거리이니, 그에게 맡겨도 상관없을 것이다.
참고로 구체를 향해 다가가는 세 사람 모두, 한 손에 든 검으로 암기를 쳐내며 움직이고 있다.
움직일 일이 없어진 만큼, 나는 언제든 세 사람을 엄호할 준비를 했다. 그러면서 적진을 더 자세히 살폈다.
곧 임려현, 남궁묵, 제갈수광이 각각 구체들을 낚아채더니, 부드럽게 연결 동작을 취하며 도약하며 그 구체들을 던졌다.
구체 세 개가 적진의 뒤쪽으로 멀리 날아갔다.
구체가 향하는 방향에 있는 적도들은 혼비백산했다.
다들 피하려 아등바등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콰앙! 콰아아아앙! 콰아앙!
그렇듯 벽력탄 터지는 소리가 들릴 때쯤, 나는 임려현과 남궁묵을 향해 날아드는 무음시 두 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적측 궁수들이 벽력탄의 기운이 강하게 폭발하던 순간을 교묘하게 노려서 무음시를 날린 것이다.
무음시의 수준이 매우 높긴 하나, 평소의 임려현과 남궁묵이라면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한데 저 무음시들은 강한 기운이 퍼져나갈 때 발사된 만큼, 임려현과 남궁묵으로서도 인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설령 인지한다고 해도 늦을 가능성이 크다.
임려현은 내 좌전방에 있고, 남궁묵은 우전방에 있다.
임려현이 조금 더 전방이다.
즉시 움직여 임려현의 앞으로 날아드는 화살을 걷어낸 후, 우측 후방으로 살짝 이동하여 남궁묵의 앞으로 날아드는 화살을 쳐냈다.
내가 화살을 쳐내던 순간, 두 사람 다 미세하게 흠칫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역시나 무음시를 인지하지 못한 것이다.
남궁묵이 미소 띤 표정으로 전음을 보냈다.
[이래서 내가 최후의 보루를 남겨둔 거거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나를 남겨두고자, 본인이 일부러 벽력탄을 처리했다는 뜻이다.
남궁묵이라면 거기까지 생각을 하고도 남는다.
나도 미소를 지어줬다.
탄을 피하기 위해 산개했던 인원들이 곧바로 다시 모였고, 우리는 계속해서 적도들을 처치하며 나아갔다.
직전에 터졌던 벽력탄들로 인해 일대의 적도들 다수가 죽거나 다쳤다. 그렇다 보니 더 수월하게 전진할 수 있었다.
그렇듯 전진하던 중에 멀리서 벽력탄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현재의 우리 위치에서는 먼, 좌측 전선 쪽이다.
두 개나 터졌다.
주 전력 측 무인들도 독탄이나 벽력탄을 염두에 두고 전투를 치르고 있었을 테니, 부디 피해가 적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 식으로 후방을 교란하며 반대편으로 나아가던 어느 순간이었다.
“적의 증원이다!”
“고수……!”
“최정예들……! 조심!”
“지휘부에 어서 지원 요청해!”
아주 멀리에서 그런 고함들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증원’이라고 했다.
이 상황에서 무림맹 측에 증원 전력이 있을 리는 없다.
결국 적의 증원일 것이다.
즉, 저 외침들은 아군의 외침이다.
속으로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남궁묵과 제갈수광이 전음을 주고받는 모습이 보였다.
두 사람도 멀리에서 들려온 외침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는 모양새다.
잠시 후 남궁묵이 전음을 보내왔다.
[너도 들었을 것 같은데, 적측 고수와 최정예들이 전장에 합류한 것 같아. 그쪽 전선을 돕기 위해 특전반이 먼저 이동할 거야. 강습조는 지원조와 같이 후방 교란 작전을 계속하며 따라오도록 해.]
[알겠습니다.]
내가 대꾸하자마자 남궁묵과 특전반이 신속하게 전장을 이탈하더니,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특전반이 빠져나간 후부터는 강습조가 앞서고 지원조가 뒤따르는 형태로 나아갔다.
그렇게 전투를 치르며 십 장 남짓 전진했을 무렵, 뒤쪽에서 제갈수광의 전음이 들려왔다.
[혹시 모르니 우리도 속도를 좀 내지.]
특전반이 고전할 수도 있으니 되도록 빨리 이동하자는 뜻이다.
[알겠습니다.]
전음으로 대꾸해준 후, 나는 곧장 선봉 쪽으로 이동했다.
이후에 내가 단목강과 남궁설 근처에서 부지런히 암기를 날리자 전체적인 전진 속도도 빨라졌다.
한동안 전진하던 중, 멀리에서부터 강한 기운들의 격돌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한쪽은 익숙한 남궁묵과 특전반원들의 기운들인데, 다른 한쪽이 발산하는 기운들이 의외였다.
하나같이 천마신교의 상급 심법에 의한 기운들이다.
저러한 상급 심법은 이른바 삼단이대三團二隊로 대표되는 천마신교의 오대 무력 조직에 속해야 익힐 수 있다.
즉, 특전반원들이 현재 상대하고 있는 자들은 천마신교의 오대 무력 조직 중 하나라고 봐야 한다.
남궁묵은 고수고 특전반도 강하다.
그러나 천마신교의 오대 무력 조직을 상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즉시 제갈수광에게 전음을 보냈다.
[교관님, 특전반이 매우 강한 상대와 싸우고 있는 듯합니다. 제가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어차피 이곳에서 특전반원들이 있는 곳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강습조와 지원조도 금방 따라올 수 있다. 그러니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이쪽이 딱히 위험해질 일은 없을 것이다.
제갈수광이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특전반이 싸우고 있는 곳을 향해 빠르게 경공을 펼쳤다.
아직 시야에 보이는 거리는 아니지만, 수많은 기운의 흐름을 통해 특전반원들이 고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애초에 적 무력 조직 쪽의 인원수가 더 많다.
구성원의 평균 경지도 적 조직 쪽이 조금 더 높다.
조직력도 적 조직 쪽이 더 탄탄하다.
그러니 특전반이 밀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적 무력 조직 쪽에 남궁묵을 능가하는 고수가 없다는 점이다.
전력의 열세 속에서 특전반원들이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는 이유도 남궁묵의 신위 덕분일 것이다.
그렇듯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재촉하던 순간이었다.
멀리에서부터 심상치 않은 기운 하나가 특전반이 싸우고 있는 전장 방향으로 빠르게 접근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경공 속도만으로도 고수라는 걸 알 수 있다.
조금 더 집중해서 감지해 보니, 그냥 고수도 아니고 최절정 즈음의 고수임을 알 수 있었다.
경지가 남궁묵을 넘어, 나보다도 더 높은 고수인 것이다.
풍기는 기운은 확실히 천마신교의 기운이다.
저 정도 경지면 천마신교 내에서 나름대로 이름이 있는 자일 텐데, 내게 익숙한 기운은 아니다.
직접 봐야 정체를 추측할 수 있을 듯하다.
나는 경공 속도를 더 높였다.
멀리 특전반원들이 시야에 보이기 시작했다.
특전반원들도 모두 죽립을 쓰고 있고, 그들과 전투를 펼치고 있는 자들도 모두 죽립을 쓰고 있다.
인영 하나가 남궁묵을 향해 빠르게 짓쳐 들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내가 감지한 천마신교의 고수다. 그도 죽립을 쓰고 있다.
이윽고 남궁묵의 앞에 다다른 고수가 무기를 휘둘렀다.
무기는 아마도 도刀인 듯하다.
남궁묵이 검을 들어 그 고수의 도를 막아갔다.
곧 두 사람의 기운이 무기를 통해 격돌했다.
카앙!
폭발음 비슷한 소리와 함께 남궁묵의 신형이 뒤로 튕겨 나가고 있다.
완전히 밀린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 무게 중심을 잃지는 않은 모습이다.
반면, 천마신교의 고수는 한 걸음밖에 밀려나지 않았다.
그가 또다시 남궁묵을 향해 짓쳐 들었다.
남궁묵은 자세를 미처 바로잡지 못한 상황.
천마신교의 고수가 도를 강하게 휘둘렀다.
자세가 좋지 않은 상태에서도 남궁묵이 검을 들어서 막았다.
카앙!
역시나 남궁묵은 또다시 튕겨 나갔다.
천마신교의 고수가 재차 남궁묵을 향해 발을 박찼을 때쯤, 이번에는 묘청상이 막아섰다.
두 사람의 무기가 격돌했다.
카아앙!
묘청상도 튕겨 나갔다.
그는 남궁묵보다 훨씬 강하게 튕겨 나갔으며, 무게 중심도 완전히 무너졌다.
두 지휘관이 그렇게 되자 특전반의 전체적인 상황도 매우 위태로워지고 있다.
내가 근처에 다다르자 적 무력 조직의 후열에 있던 자들이 암기를 던지기 시작했다.
나는 빠르게 나아가는 게 목표라, 왼손으로 비룡검을 휘두르며 최소한의 암기들만 쳐냈다.
이윽고 천마신교의 고수가 사정거리에 들어온 순간, 나는 즉시 두 자루의 소비도를 날렸다.
묘청상을 마무리하기 위해 움직이던 천마신교의 고수가 홱 돌아섰다.
그는 이어서 신형을 기울이며 소비도 한 자루를 피하고, 다른 한 자루는 도를 휘둘러 쳐냈다.
이쯤 되니 저 고수의 정체를 알 것 같다.
작지만 탄탄한 체구.
한 손에 들고 있는, 일반적인 유엽도보다 한 자 정도나 더 긴 유엽도.
죽립 아래로 드러난, 한쪽 볼을 가른 검상.
저 인물의 이름은 걸홍정.
천마신교의 오대 무력 단체 중 하나인 마룡단의 부단주였던 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