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333
천마신교의 정예 무력 조직은 통칭 삼단이대로 불린다.
삼단이대의 ‘이대’는 흑풍대와 혈영대를 뜻한다.
흑풍대는 설명이 필요 없는 조직이고, 혈영대는 교주를 전담하여 호위하는 조직이다. 흑풍대와 혈영대 모두 최정예다.
삼단이대의 ‘삼단’은 수라단, 명황단, 마룡단을 뜻한다.
세 조직 중에서 수라단은 최정예로 분류되고, 다음으로 강한 건 명황단, 그다음이 마룡단이다.
특전반이 상대하고 있는 무력 조직은 마룡단이다.
전체적인 수준이 높은 걸 보니 저들은 마룡단 내에서도 정예들인 듯하다.
참고로 저들에게는 마룡단임을 드러내는 표식이 전혀 없다.
그런데도 내가 알아볼 수 있는 이유는 낯익은 얼굴들이 여럿 있기 때문이다.
사부님은 종종 수라단, 명황단, 마룡단의 막사에 가서 훈련 상태를 점검하며 독려하기도 하셨고, 술과 음식을 지원하며 사기를 높여주기도 하셨다.
그럴 때마다 제자들이 돌아가며 사부님을 수행했는데, 나는 특히 더 자주 수행했었다. 사형제들이 수련 등을 핑계로 내게 부탁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나는 수라단, 명황단, 마룡단의 구성원들과 종종 마주친 편이었다.
그 후로 여러 해가 지나긴 했지만, 아직은 적잖은 인원들이 현역에 남아 있는 시점이다.
삼단이대의 말석이라고는 해도 마룡단은 천마신교가 자랑하는 정예 무력 조직이다.
걸홍정은 그런 조직에서 부단주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경지뿐만 아니라 실전 실력에 대해서도 의심할 나위 없는 고수인 것이다.
남궁묵 정도 되는 실력자가 괜히 저렇게까지 밀린 게 아니다.
걸홍정은 내가 사부님의 제자가 된 후로 일 년 남짓 지난 시점에 마룡단의 부단주에서 은퇴했었다.
그래서 그와 직접 마주친 적은 몇 번 되지 않았고, 친분을 쌓을 만한 시간도 딱히 없었다.
그가 무공을 펼치는 모습을 본 적도 없다. 그렇다 보니 내가 그의 기운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내공이 운용돼야 그 기운의 성질을 기억할 수 있다.
내가 기억하는 건, 걸홍정이 사부님의 제자였던 나를 항상 깔보는 태도로 대했다는 사실 정도다. 물론 당시에 내게 그런 태도를 보였던 이들이 흔하긴 했지만.
어쨌든 잘된 일이다.
심적인 부담감 없이 처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눈매를 좁힌 채로 나를 바라보던 걸홍정이 내게 쇄도해 오기 시작했다.
나도 그를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참고로 현재 위치를 기준으로 내 왼쪽에는 마룡단원들이 있고, 내 오른쪽에는 특전반원들이 있다.
마룡단원들이 이동 중인 나를 집중 공격했다.
나는 왼손에 든 비룡검으로 방어하고 오른손으로 암기를 던지며 마룡단원들을 견제했다. 근처에 있는 특전반원들이 암기를 던지며 나를 엄호해줬다.
이윽고 걸홍정이 내 앞에 거의 다다랐다.
내가 천마신교에 있을 때 알고 있었던 걸홍정의 경지는 절정의 후반이었는데, 지금 느껴지는 경지는 최절정의 초입쯤이다.
걸홍정의 유엽도가 쾌속하게 내 허리 어림을 베어왔다.
스악-
일반적인 유엽도보다 훨씬 큰 유엽도가 매우 빠른 속도로 휘둘러지고 있다.
기세도 무시무시하다.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왼손에 든 비룡검으로 그의 도를 비껴냈다.
카앙!
저 작지만 탄탄한 체구를 통해 발산되는 힘이 장난이 아니다. 검을 쥔 왼손과 왼팔에 전해지는 충격이 상당하다.
비룡수투가 아니었으면 손아귀에도 고통이 전해졌을 것이다.
걸홍정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검을 쥔 내 손이나 팔이 그다지 밀리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방금 남궁묵의 신형이 뒤로 튕겨 나갔던 것을 생각하면 저런 표정을 짓는 것도 이해가 간다.
걸홍정의 중얼거렸다.
“좌수검?”
나를 왼손잡이 검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사실 나는 좌측에 있는 마룡단원들의 공격을 효율적으로 막기 위해 검을 왼손에 쥐고 있었던 것뿐이다.
한데 그런 상태에서도 저 강력한 도법을 멀쩡하게 막아냈으니 걸홍정이 저렇게 여기는 것이다.
걸홍정과 내가 격돌하자 특전반원들과 마룡단원들이 우리 주변에서 멀어졌다.
두 조직은 멀어진 상태에서도 전투를 이어갔다.
살펴보니 걸홍정과 격돌했던 남궁묵과 묘청상의 움직임이 딱히 불편해 보이지는 않았다.
적어도 심한 외상을 입지는 않은 것이다.
내상을 입은 건 아닌가 하고 염려했는데 안색도 평소와 다름없어 보인다.
다행이다.
걸홍정이 바로 다시 도를 휘둘러왔다.
도법도 빠르고 전체적인 움직임 또한 매우 빠른데, 내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나는 우측 후방으로 두 걸음 돌며 회피했다. 최소한의 우위를 점할 수 있을 정도의 속도로만 움직였다.
그러자 걸홍정이 곧장 거리를 좁혀왔다.
그를 향해 오른손을 털어냈다.
근거리에서 철비정 세 개가 날아들자 걸홍정은 방향을 살짝 틀며 두 개를 흘려보내고 하나는 도를 이용해 가볍게 튕겨냈다.
팅!
이후에 걸홍정이 손목을 회전시키자 도가 나아가는 방향도 부드럽게 전환되었다.
방향을 바꾼 도가 회전력을 담아서 그대로 나를 향해 짓쳐 들었다.
저런 식으로 도를 다루는 모습만 봐도 걸홍정의 도법 경지가 얼마나 높은지 잘 알 수 있다.
나는 이번에도 오른쪽으로 돌며 비룡검으로 그의 도를 비껴냈고, 동시에 또다시 오른손을 털어냈다.
카앙!
피비비비빗!
걸홍정이 입술을 꽉 다무는 모습이 보인다.
더 가까운 거리에서 철비정 다섯 개가 예리한 각도로 날아드니, 그의 입장에서도 까다로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걸홍정이 회피하기 위해 횡으로 이동하며 허리춤에서 뭔가를 뽑아 들었다.
칼이다.
도신의 길이가 한 자쯤 되어 보이는, 박도 형태의 소도小刀다.
걸홍정이 횡으로 움직이며 세 개의 철비정을 피하고, 왼손으로 소도를 휘두르며 두 개의 철비정을 쳐냈다.
티딩!
동시에 걸홍정이 내 무릎 위쪽을 향해 오른손의 유엽도를 휘둘렀다.
나는 이번에도 방향을 오른쪽으로 틀며 비룡검으로 유엽도를 막아냈다. 동시에 또다시 오른손을 털어냈다.
일곱 개의 철비정이 부챗살처럼 퍼지며 걸홍정을 향해 빠르게 날아들었다.
하지만 이 순간에 중요한 건 일곱 개의 철비정이 아니다.
중요한 건 철비정들과 함께 날아가고 있는 하나의 구체다.
저 구체는 벽력탄이다.
도강 작전 당시에 입수하여 남궁묵이 나와 임려현에게 하나씩 챙겨줬던 물건이다.
내가 지금껏 회피하는 척하며 일부러 방향을 계속 틀었던 이유도, 저 벽력탄을 던질 각도를 잡기 위함이었다. 마룡단원들이 밀집된 곳을 노리려 했던 것이다.
참고로 철비정과 벽력탄은 가슴 높이에서 출발하여, 완만한 사선을 이루며 전방의 땅바닥에 박히는 경로로 날아가는 중이다.
반사적으로 횡으로 피하며 왼손의 소도를 들어 올리던 걸홍정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구체를 발견한 것이다.
걸홍정은 오른쪽으로 피하고 있는데, 벽력탄은 원래 그가 서 있었던 위치의 왼쪽을 통과하고 있다.
벽력탄은 매우 빠르게 날아가고 있고, 걸홍정은 역동작에 걸린 상황.
결국 그는 무슨 수를 써도 저 벽력탄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의도한 바이기도 하다.
걸홍정이 왼손의 소도로 두 개의 철비정을 튕겨내며 다급하게 외쳤다.
“탄!”
그 외침에 마룡단원들이 즉시 자리를 이탈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정예들답게 반응 속도가 빠르다.
그러나 내가 천섬무의 기운으로 던진 벽력탄이다.
이미 땅바닥에 닿고 있다.
콰아아앙!
벽력탄이 터지며 흙먼지가 가득 비산했다.
그 속에서 비명이 가득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크악!”
“끄아아아!”
“아아악!”
마룡단원들이 밀집한 지점에서 벽력탄이 터졌으니 피해가 작지는 않을 것이다.
걸홍정의 입매가 씰룩거리고 있는 게 보인다.
죽립 아래로 살짝 드러난 그의 시선이 나를 노려보는 중인데, 분노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어쨌거나 본인이 피하는 과정에서 벽력탄이 지나갔고, 결과적으로 이런 상황이 됐다. 나한테 당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분노한 것이다.
나는 그를 향해 죽립 아래로 옅은 미소를 지어줬다.
그러자마자 그가 나를 향해 신형을 튕겼다.
지금까지 보여줬던 속도와는 확연히 차이가 날 정도로 빠른 속도다.
찰나에 내 앞에 도착한 그가 곧장 도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도를 휘두르는 속도 또한 무시무시하다.
하지만 내게는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았다.
절정의 후반에서 천섬무를 운용하다 보니, 최절정의 초입에 있는 고수를 상대하는 데도 불편함이 없다.
걸홍정의 검을 막거나 피하며 틈틈이 주변을 살폈다.
폭발로 인해 비산했던 먼지가 걷히며 그쪽의 상황이 드러나고 있다.
보아하니 마룡단원 네댓 명은 즉사한 듯하고 서너 명은 중상을 입은 듯하다. 경상을 입은 자들도 대여섯 명은 되는 듯하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특전반원들이 빠르게 달려들어 마룡단원들을 공격하고 있다.
기세가 완전히 특전반원들 쪽에 있다.
게다가 멀리에서는 강습조와 지원조가 다가오는 중이다.
벽력탄 폭발 소리를 들어서인지 발걸음들이 빠르다.
이러면 나는 마룡단에 대해 더 신경 쓸 필요 없이, 걸홍정만 확실하게 상대해주면 된다.
서로 속도가 빠르다 보니 시간이 조금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걸홍정과 나 사이에서는 수십 합이 오갔다.
정확히는 오간 게 아니다.
걸홍정은 일방적으로 공격하고 나는 일방적으로 회피하거나 방어했기 때문이다.
그림이 그러하니 누가 봐도 걸홍정이 우세하다고 여길 것이나, 실상은 다르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급해하고 있는 건 걸홍정이다.
직접 상대하고 있는 당사자이기에 아는 것이다.
자신이 본신의 실력을 거의 드러냈는데도 나를 전혀 위태롭게 만들지 못했음을.
특전반이 마룡단을 밀어내고 있고, 근처에 있는 주 전력의 무인들도 적도들을 밀어붙이고 있다.
나도 슬슬 걸홍정과 승부를 보기 위해 천섬무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려는데, 임려현이 내 쪽으로 빠르게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그녀도 걸홍정이 발산하는 기운을 통해 보통 고수가 아님을 파악하고는 나를 도우러 오는 것이다.
이러면 굳이 천섬무를 최상 단계로 끌어올릴 필요가 없다.
임려현이 가까워지자 걸홍정이 신형을 돌려 도주하기 시작했다.
나 하나를 상대로도 우위를 점하지 못한 상태에서 고수 한 명이 더 달라붙으면 본인이 위험해진다고 판단한 것이다.
어차피 이곳은 산지이니 조금만 벗어나면 어렵지 않게 도주할 수 있는 조건이기도 하다.
나는 즉시 걸홍정의 뒤를 쫓았다.
임려현이 내 뒤를 쫓아오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추격하기 시작한 직후에, 우리의 뒤쪽에서 무음시 하나가 날아오기 시작했다.
내 위치를 기준으로 우측 후방에서 날아오고 있다. 걸홍정의 등으로 향하는 경로다.
매우 수준 높은 무음시다.
궁사는 송유하다.
송유하의 수준에서 정말 훌륭한 무음시를 구사하기는 했지만, 상대는 최절정의 초입에 있는 고수, 걸홍정이다. 당연히 인지할 것이고, 어렵지 않게 피하거나 쳐낼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그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걸홍정이 화살을 피하거나 쳐내는 그 틈을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송유하의 무음시가 걸홍정에게 가까워졌고, 나는 달려들 준비를 했다.
한데 그 순간,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송유하가 날린 무음시와 미세한 차이를 두고 또 다른 무음시 하나가 날아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조차도 이제야 알아챘을 정도로 은밀한 무음시.
제갈수광의 무음시다.
그의 무음시는 좌측 후방에서 날아와서 걸홍정의 등을 노리고 있다.
송유하의 무음시가 미끼 역할을 하다 보니 제갈수광의 무음시가 더 은밀하게 느껴지고 있다.
걸홍정이 달리는 중에 상체를 오른쪽으로 틀더니 가볍게 유엽도를 휘둘렀다.
탱!
그렇게 송유하의 무음시를 간단히 쳐내는 듯했던 걸홍정이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다른 방향에서 날아드는 제갈수광의 무음시를 이제야 인지한 것이다.
늦게 인지한 만큼 제갈수광의 무음시는 걸홍정의 상체에 매우 가까워진 상태.
결국 걸홍정은 그 무음시를 피하고자 상체를 격렬하게 옆으로 비틀 수밖에 없었다.
빠르게 달리던 중이기에 신형도 어느 정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
한데 그 상황에서 임려현의 소비도들마저 날아들고 있다.
여섯 자루다.
암기술의 대가인 임려현답게, 역시나 빠르고 정확한 소비도술이다.
나는 그쯤에서 천섬무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제갈수광의 무음시가 걸홍정을 스쳐 지나감과 동시에 임려현이 날린 소비도가 다다랐다.
걸홍정이 신형을 급격하게 옆으로 빼며 유엽도를 이용해 소비도를 쳐내기 시작했다.
태댕!
그 직후, 걸홍정이 급격하게 두 눈을 부릅떴다.
나를 발견한 것이다.
직전까지만 해도 예닐곱 걸음 정도 차이가 났었는데, 그런 내가 곁에 와 있으니 저렇듯 놀랄 수밖에 없다.
왼손에 쥐고 있는 비룡검으로 걸홍정의 허벅다리를 찔러갔다.
걸홍정이 소비도를 막다 말고 유엽도를 끌어당기고 있다.
비룡검을 쳐낼 생각이다.
저러면 나머지 소비도 한두 개는 방어할 수 없을 텐데, 그래도 다리를 내줄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결국 걸홍정이 오른손에 든 유엽도를 안에서 바깥으로 강하게 휘두르며 내 비룡검을 쳐냈다.
카앙!
나는 유엽도가 비룡검에 닿는 순간, 일부러 손아귀에서 힘을 완전히 뺐다.
당연히 비룡검은 내 손에서 벗어나 멀리 날아갔다.
하지만 그로 인해 걸홍정의 유엽도도 반작용을 전혀 받지 못한 채, 바깥쪽으로 더 많이 밀려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걸홍정의 왼쪽 어깨에 소비도 하나가 박혔고, 거의 동시에 섬혼검이 그의 가슴께를 깊숙이 찔렀다.
걸홍정이 두 눈을 부릅떴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당연히 믿기 어려울 것이다.
나는 방금, 내가 낼 수 있는 최고 속도로 쾌검술을 펼쳤다.
어깨 뒤로 차고 있던 섬혼검을 뽑아냄과 동시에 쾌속하게 찔러갔는데, 검병이 손아귀에 착 달라붙는 느낌이 들었었다.
그 후에는 마치, 검이 뻗어나가는 게 아니라 벼락이 뻗어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최고의 쾌검술이 펼쳐진 것이다.
걸홍정이 여전히 눈을 부릅뜬 상태에서 힘겹게 입술을 열었다.
“말도 안 되는……, 쾌검술…….”
입가로 피가 새어 나오고 있다.
이에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나, 좌수검 아니오.”
말을 마치자마자 섬혼검을 뽑았다가 곧바로 심장을 찔렀다.
걸홍정의 신형이 그대로 허물어졌다.
뽑아낸 섬혼검에서 피를 털어냈을 때쯤 임려현이 다가왔다.
그녀의 손에 비룡검이 들려 있다.
걸홍정이 쳐내서 날아갔던 것을 주워 온 것이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내가 살짝 고개를 숙이며 그렇게 말하자 임려현이 비룡검을 건네며 미소 띤 얼굴로 대꾸했다.
“멋진 임기응변에, 엄청난 쾌검술이더군요.”
비룡검이 튕겨 나가게끔 유도했던 일을 두고 임기응변 얘기를 하는 것이다.
“운이 좋았습니다.”
내 말에 임려현이 미소를 보이더니 걸홍정의 시신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잠시 시신을 살피던 임려현이 말했다.
“이자가 누군지 알 것 같군요. 상당히 높은 무공 경지에 저런 신체 조건, 결정적으로 저 커다란 유엽도. 아마도 이자는 천마신교의 인물인 걸홍정일 거예요.”
임려현이 신룡대의 황룡조에서 부조장 역할을 하던 시기는 걸홍정이 마룡단에서 부단주 역할을 하던 시기와 어느 정도 겹친다. 그렇다 보니 걸홍정의 특징들을 보고 정체를 금세 파악해 낸 것이다.
임려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걸홍정은 과거에 마룡단에서 부단주에까지 올랐던 고수예요. 그 후로 십수 년이 지났으니 훨씬 더 강해졌을 테고요. 그런 고수를 이렇게 깔끔하게 마무리하다니, 역시 송 공자네요.”
“아하하, 제갈 교관님과 선배님께서 무음시와 소비도를 날려주신 덕분에 수월하게 처치할 수 있었던 겁니다.”
실제로 무음시와 소비도가 큰 도움이 됐고, 무엇보다도 그 덕분에 내공을 많이 아낄 수 있었다.
걸홍정 정도 되는 고수를 나 혼자서 처리하려면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천섬무를 최대한으로 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경우에는 내공 소모량도 많을 수밖에 없다.
임려현이 걸홍정의 시신을 빠르게 수색하더니 빈손으로 일어서며 말했다.
“전리품이 유엽도하고 소도 말고는 별거 없네요. 이것들만 가져가서 주 전력 쪽에 넘기죠.”
“예.”
이에 내가 유엽도와 소도를 들었고, 우리는 서둘러 전장으로 복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