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338
방금 북동쪽 산지에서 격돌한 여러 기운 중에서 우리 쪽의 기운은 육화현, 배낙균, 금분옥, 제갈수광 등의 기운이었다.
문제는 격돌했던 상대들의 기운이 매우 강력하다는 점이다. 제갈수광보다 더 강력하게 느껴지는 기운들이 최소 네 개는 된다. 그 네 개의 기운은 절정의 후반으로 보인다.
그뿐만 아니라 절정의 중반에서 중후반 사이로 느껴지는 기운들도 몇 개 더 있다.
우리 인원들이 위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저러면 남궁묵과 묘청상이 어쩔 수 없이 나서게 될 가능성도 매우 크다. 남궁묵은 무리하면 내상을 입을 수 있고, 묘청상의 경우에는 이미 입은 내상이 더 심해질 수 있다.
자연스럽게 경공 속도가 빨라졌다.
내가 앞에서 달리고 있는 광동의 무인들을 추월하며 나아가자 임려현이 나를 바짝 쫓아왔다. 내 의도를 알고 쫓아오는 것이다.
이에 살짝 고개를 돌려 단목강에게 전음을 보냈다.
[먼저 갈 테니 조장님이 조원들을 잘 이끌고 따라와 주십시오.]
[알았소.]
단목강의 대꾸가 들렸을 때쯤 선두에서 달리고 있던 낙문월이 나를 돌아보았다. 그가 나를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이는가 싶더니, 경공 속도를 배가하여 앞으로 튀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진종정과 요수번도 곧바로 낙문월을 뒤쫓았다. 그러나 낙문월은 두 사람이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 쭉쭉 나아가는 중이다. 최절정의 초입에 있는 고수답게, 낙문월의 경공 속도는 매우 빨랐다.
나도 진종정과 요수번을 추월하여 낙문월의 뒤를 쫓았다.
강력한 기운들의 격돌이 이어지고 있는 북동쪽 산지 쪽에 새로운 기운 세 개가 합류한 게 느껴진다. 강한 기운들인데 다행스럽게도 백도의 기운들이다.
하나는 절정의 후반, 두 개는 절정의 중후반이다.
내게 익숙한 기운들은 아니나, 저들이 누군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이 되었다.
주 전력 지휘부의 고수들일 것이다.
참고로 나는 주 전력의 지휘부와 직접 대면한 적은 없다. 하지만 멀리에서 본 적은 있다. 당시에 옆에서 임려현이 알려준 덕분에 그들이 누군지도 알고 있다.
주 전력 지휘부의 최고 고수는 광서 수복전 전력의 총지휘관인 종리표다. 그는 현 종리세가주의 동생이다. 경지는 절정의 후반이다.
나머지 두 고수는 절정의 중후반인데, 그들이 누군지는 아직 모르겠다. 얼굴을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종리표와 두 고수가 약간이나마 시간을 벌어줄 테니 우리로서는 다행이다.
내 뒤를 쫓아오고 있는 임려현이 진종정과 요수번을 추월한 게 느껴진다. 역시 임려현이다.
그때쯤 낙문월이 산지로 진입했고, 이어서 나도 진입했다.
우리는 나는 듯 달려, 고수들이 싸우고 있는 전장에 금세 가까워졌다.
이윽고 저 멀리 나무들 사이로 공터가 보이기 시작했다.
제갈수광의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적측 최고 고수들과 백도 측 최고 고수들이 사 대 사로 전투를 펼치고 있는데, 제갈수광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
백도 측의 최고 고수들은 종리표, 제갈수광, 장익호, 고유택이다.
장익호와 고유택도 주 전력의 지휘부다.
임려현이 알려줬던 바에 의하면 장익호는 형주검문의 문주고, 고유택은 형산파 장문인의 사제다. 형주검문은 호북의 형주에 있고, 오악검파에 속하는 형산파는 호남의 형산에 있다.
이어서 적측 최고 고수들의 용모를 확인한 순간, 나는 눈매를 좁히지 않을 수 없었다.
네 명 중에서 세 명이 낯익은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죽립을 쓰고 있었던 탓에 이제야 확인할 수 있었다.
낯익은 저 세 명은 천마신교의 마인들인데도 부처님을 믿는다고 주장하고 다니는 자들이다.
실제로 저 세 사람은 승려들처럼 머리도 까까머리고, 염주, 목탁, 석장錫杖(승려가 들고 다니는 지팡이) 등을 지니고 다니며, 입버릇처럼 아미타불을 읊고 다닌다.
그러나 내가 듣기로 저 세 명은 평소 술과 고기가 없이는 밥을 안 먹는 자들이며, 욕설을 잘 내뱉고, 색을 밝히고, 살생도 거침없이 하는 자들이다.
즉, 저들은 부처님을 믿는 자들이라기보다는 부처님을 믿는 척하며 부처님을 욕되게 하는 자들에 가깝다.
천마신교에서 천마 외의 다른 존재에게 신앙심을 갖는 건 교리로 금하는데, 사부님도 저들이 부처님에 대한 신앙심을 갖고 있다고 보지는 않으셨다. 그저, 재미있는 자들이라는 정도의 인식이셨다.
세 명은 천마신교에서 각각 괴불怪佛, 혈불血佛, 광불狂佛이라는 별호를 사용했다. 참고로 본인들이 붙인 별호다.
셋이 서로 친하기까지 해서, 천마신교에서는 저들을 통칭 삼마불이라고 불렀다.
삼마불은 평소 중원보다는 서역과 서장 쪽에 관심이 많아, 그쪽에서 주로 활동했다. 그렇다 보니 무림맹 측에서는 저들에 대해 잘 모를 것이다.
괴불은 기골이 장대하고 피부가 희며, 눈동자는 흔치 않은 밝은 갈색이다. 그렇다 보니 색목인 쪽 혼혈 느낌이 강하다.
혈불은 보통 키에 체구는 평범하고, 피부는 구릿빛에 송충이 눈썹이다.
광불은 마르고 왜소하며 피부색이 검은 편이다. 전투 시에는 눈빛이 광기로 물든다고 알려져 있는데, 지금 싸우는 모습을 보니 역시 그렇다.
참고로 삼마불은 등마원登魔院의 고수들이다.
등마원은 현역에서 물러난 천마신교의 고수들이 장로, 호법 등의 지위에 오르기 위해 준비하는 모임이자 조직이다.
실제로 등마원의 최고 고수가 장로에 임명되는 경우가 가끔 있으며, 상위권 고수들은 호법으로 곧잘 임명되는 편이다.
장로나 호법에 오르지 못한 등마원의 고수들은 평소 천마신교 내 각 조직의 요청에 응하여 그들의 작전을 지원하며 지낸다.
참고로 아까 내가 처리했던 걸홍정도 등마원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는 호법 자리도 마다한 채, 오직 장로 자리만 노리고 오랜 기간 준비했던 것으로 안다.
아까 보니 걸홍정은 최절정의 초입이었다. 그대로 몇 년만 지났으면 장로 자리에 오를 수도 있었는데 죽은 것이다.
삼마불과 같이 싸우고 있는 최고 고수 한 명은 천마신교의 기운이 아닌, 혈교의 기운을 풍기고 있다.
그는 커다란 환도를 휘두르며 싸우고 있다.
환도環刀란 도배(칼등)에 고리가 달린 칼이다.
혈교 고수의 도배에는 쇠고리가 두 개 달려, 그가 도를 휘두를 때마다 고리가 ‘칠그렁, 칠그렁’ 하는 마찰음을 일으키고 있다.
그 혈교 고수를 상대하고 있는 이는 형산파의 고유택이다.
괴불은 손잡이가 긴 낭아봉을 휘두르고 있다. 그를 상대하고 있는 이는 총지휘관인 종리표다.
혈불은 참마검을 휘두르고 있다. 그를 상대하고 있는 이는 제갈수광이다.
광불은 일반적인 규격의 검을 사용하고 있다. 그를 상대하고 있는 이는 형주검문주 장익호다.
딱 봐도 종리표, 제갈수광, 장익호, 고유택으로 이뤄진 무림맹 측의 고수들이 눈에 띄게 밀리고 있다.
밀리는 게 당연하다.
적측 최고 고수들은 네 명 모두 절정의 후반인데, 우리 쪽은 최고 고수들 네 명 중에서 절정의 후반인 사람이 종리표뿐이기 때문이다. 제갈수광, 고유택, 장익호는 절정의 중후반이다.
한쪽에서는 최고 고수들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들 간의 단체 전투가 펼쳐지는 중이다.
그쪽 전투도 무림맹 측이 밀리고 있다.
적측에는 절정의 중반 이상 되는 고수가 여럿인데, 우리 쪽에는 남궁묵밖에 없는 탓이다.
전체 절정고수의 수 자체도 적측이 훨씬 더 많다.
기본적으로 전력 차가 너무 많이 나는 상황이다.
육화현과 배낙균, 장호산 등이 남궁묵과 함께 전열을 형성하고 있고, 금분옥을 비롯한 다른 특전반의 절정고수들이 뒤쪽에서 열심히 지원하고는 있는데, 역부족인 모습이다.
가뜩이나 남궁묵은 내상을 조심하며 싸워야 해서 무공을 과감하게 펼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보아하니 특전반의 나머지 일류고수들과 지원조의 인원들 대부분은 후방에 멀찍이 떨어져 있다.
안전하게 대기하라는 지시가 내려졌을 가능성이 크다.
이렇듯 고수들 간의 치열한 전투가 펼쳐지는 상황에서 일류고수들이 어설프게 참여하는 건 매우 위험하다. 지금처럼 아군이 크게 밀리며 진형을 제대로 갖추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내가 저쪽을 맡지.]
낙문월이 전음을 보내더니 곧장 최고 고수들이 싸우고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최절정의 초입에 들어선 고수로서, 더 위험해 보이는 쪽을 지원하려는 것이다.
이에 나는 남궁묵 등이 싸우고 있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쪽에 있는 우리 인원들도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다.
오른손에 조용히 비룡검을 뽑아 든 후, 공터 외곽의 수풀을 끼고 빠르게 이동했다.
참고로 내 왼손의 손가락들 사이에는 이미 독침이 잔뜩 끼워져 있는 상태다. 지금까지 달려오는 중에 끼워뒀었다.
이윽고 단체전이 펼쳐지고 있는 전장에 가까워지자 적들 쪽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오른쪽 숲! 조심!”
절정의 중반 이상인 고수들이 섞여 있다 보니, 내 접근을 어렵지 않게 알아채고는 경고한 것이다.
그쯤에서 나는 천섬무를 상 단계로 끌어올리며 수풀에서 튀어 나가 적 진형의 우측 후방으로 달려들었다.
적도들의 눈이 커지는 게 보인다.
내 속도 때문이다.
그즈음 적들이 나를 향해 암기를 날리기 시작했다.
천섬무를 상 단계로 운용하고 있기에 암기들이 날아오는 속도가 느리게 보인다.
마음 같아서는 아까처럼 암기들 사이로 돌파한 후, 저들의 안으로 파고들어 왼손의 독침을 시원하게 뿌려주고 싶다.
한데 그러고 나면 그나마 남아 있는 공력이 거의 증발할 것이다. 제대로 성공시키려면 천섬무를 최대한으로 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굳이 무리할 필요가 없다. 암기들이 날아오는 범위에서 안전하게 벗어나는 편이 낫다.
그러는 중에 적당한 거리에서 독침을 뿌린 후, 남궁묵 등과 연계하여 이쪽의 적들을 차근차근 처치하는 방향으로 싸워야 할 것이다.
옆으로 이동하여 암기들이 날아오는 범위에서 벗어나며 적들을 향해 왼손을 털어냈다.
독침들이 퍼지며 날아가기 시작하자, 적들 쪽에서 짧은 외침들이 들렸다.
“침!”
“피햇!”
상대적으로 고수인 자들 네댓 명은 즉시 반응하며 독침의 범위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지만, 그 외의 적도들은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고 있다.
보아하니 최소 대여섯 명은 독침에 당할 듯하다. 이 상황에서 이 정도면 매우 훌륭한 성과라 할 수 있다.
독침을 던진 왼손에 곧바로 철비정들을 뽑아 들려던 순간,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지 않을 수 없었다.
갑자기 시커먼 그림자 하나가 독침이 날아들고 있는 공간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곧 시커먼 그림자가 이리저리 쾌속하게 움직이며 독침들을 향해 손을 뻗기 시작했다. 잔상을 남길 정도로 빠른 속도다.
티디디디디디디디딕!
수많은 독침이 그의 손에 의해 튕겨 나가고 있다.
이 짧은 순간의 모습만으로도 알 수 있다.
제대로 된 최절정의 고수가 등장한 것이다.
저 고수는 방금, 적도들의 후열에서 튀어나왔다.
한데 그의 기운은 지금껏 내 감각의 영역에 잡히지 않았었다.
이유는 하나뿐이다.
그가 내공을 전혀 운용하지 않았던 탓이다.
산속의 이 공터에서는 현재 수많은 기운이 강하게 격돌하는 중이다. 나는 방금 이곳에 왔고, 오자마자 전황을 파악하기 위해 강한 기운들 위주로만 훑었었다. 그렇다 보니 내공을 운용하지 않은 채로 적들 사이에 섞여 있던 자에게까지는 신경을 쓰지 못했던 것이다.
철비정으로 적들을 견제하며 남궁묵 등이 있는 방향으로 물러났다. 그러면서 안력을 돋워 고수의 모습을 살폈다.
그도 죽립을 쓰고 있다.
드러난 하관을 보니 고령의 노인이고, 콧수염과 턱수염이 자라나 있다. 새하얀 수염이다. 수염이 제법 길어서, 움직일 때마다 휘날리고 있다.
양손에는 철수투를 끼고 있다.
황보충처럼 권법을 익힌 무인들이 끼는 철수투다.
권법가들의 철수투에는 대부분 여러 형태의 칼날이 장착되어 있다. 살상력을 높이기 위한 칼날이다. 황보충도 실전에서는 칼날이 장착된 철수투를 낀다.
한데 저 노고수의 철수투에는 칼날 같은 게 달리지 않았다.
사실 저 정도 고수면 굳이 거추장스럽게 칼날 같은 걸 장착하지 않아도 별 차이가 없다.
그리고 나는 이미 저 노인의 정체를 파악한 상태다.
노인의 이름은 오태흥.
천마신교의 전대 권마였던 인물이다.
전대 권마 오태흥은 내가 사부님의 제자가 되고 나서 이 년쯤 지났을 무렵에 장로직에서 은퇴했었다.
천마신교의 장로들은 대개 일흔에서 일흔다섯 살 사이에 은퇴하는데, 오태흥도 일흔네 살에 은퇴했었다.
나는 사부님의 제자가 되었던 초창기에는 공식 석상에서의 심적인 부담감이 상당히 컸었다. 그렇다 보니 공식 석상이나 만찬장에서 고위 인사들과 대면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얼어 있기 일쑤였다.
오태흥은 그런 내게 처음부터 친절하게 대해준 사람이었다.
내가 사부님과 떨어져서 어색하게 있을 때면 그는 나를 꼭 본인의 탁자로 불러 앉혀서 말을 걸어줬고, 주변 사람들을 소개해주며 친분을 쌓을 수 있게끔 도와줬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장로직에서 은퇴할 때 매우 아쉬워했었다.
장로직에서 은퇴한 오태흥은 천마신교의 본산에서 벗어나 한적한 곳에 거처를 잡았는데, 그 후로는 천마신교의 행사에서 어쩌다 아주 가끔 마주친 게 전부였다.
거처에 직접 찾아가도 만나기가 어려웠다.
그가 변방과 서역으로 여행하러 가서 수개월, 또는 일이 년씩 거처를 비운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몇 년 만에 그를 보는 걸까.
송유겸의 몸에서 깨어난 지가 만으로 오 년쯤 되었으니, 오태흥을 마지막으로 봤던 건 칠팔 년쯤 된 듯하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 많이 늙었다.
서무욱의 나이로 따지면 올해 내가 서른일곱 살이니, 오태흥은 여든일곱 살이다. 미수米壽(88세)에 가까운 고령이니 용모도 저렇듯 늙을 수밖에 없다.
묘한 심정이다.
그가 여전히 정정한 모습에 기쁘기도 하고, 늙어진 그의 모습에 서글픔이 몰려오는 중에, 그와 어떻게 싸워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니.
결국 독침에 당한 적도는 한 명뿐이다.
오태흥이 막아준 덕분이다.
꽤 넓은 범위로 독침을 뿌렸던 만큼, 그야말로 대단한 방어가 아닐 수 없다.
독침을 모두 쳐낸 오태흥이 내가 아닌 남궁묵을 향해 쇄도해 갔다. 그러자 특전반원들이 암기를 던지며 견제하기 시작했다.
남궁묵과 특전반원들은 오태흥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남궁묵의 상태가 멀쩡했어도 대응하기가 어려웠을 텐데, 현재 그는 내상을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다.
오태흥도 남궁묵과 특전반원들로는 자신을 막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결국 내가 남궁묵과 특전반원들을 무조건 도울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알 것이다.
즉, 오태흥은 나를 확실하게 끌어들이기 위해 남궁묵 쪽을 공격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방금 내 빠르기를 확인한 만큼, 내게 직접 달려드는 건 여러모로 효율적이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서둘러 남궁묵의 앞을 막아서자, 오태흥이 속도를 올리며 간격을 좁히더니 내 상체를 노리고 주먹을 뻗었다.
죽립 아래로 보이는 그의 쭈글쭈글한 입술이 기분 좋은 호선을 그리고 있다.
본인의 의도대로 내가 남궁묵의 앞을 막아섰기에 저런 미소를 보이는 것이다.
나는 신형을 옆으로 살짝 이동시키며 오태흥의 주먹을 향해 비룡검을 휘둘렀다. 동시에 그를 향해 왼손에 들고 있던 철비정을 던졌다. 철비정은 견제 목적이다.
오태흥이 더 빠르게 움직여 오른쪽으로 이동하며 일부 철비정은 피하고 일부 철비정은 왼손으로 쳐냈다.
티딕!
저러는 중에도 나와의 간격을 더 좁혀 오고 있다.
저러한 움직임 자체가, 지금껏 내가 상대해왔던 이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유려하다. 게다가 경지가 높다 보니 기본적으로 속도마저 빠르다.
버거운 상대다.
근접한 오태흥이 또다시 주먹을 휘둘러왔다.
이번에는 제대로 된 권법이라, 그의 양 주먹이 여덟 개로 나뉘며 내 전신을 노려왔다.
허초와 실초가 뒤섞여 있는데, 모든 게 실초 같다.
그 정도로 경지가 높은 권법이다.
섣불리 대응하다가는 낭패를 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권법의 큰 줄기를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오태흥의 권법에 대해 들은 바가 많기 때문이다.
무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당시, 사부님은 오태흥의 권법에 대해서도 여러 차례 언급하셨었다. 오태흥은 천마신교의 권마였던 만큼 사부님의 분석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비룡검을 휘둘러 우권右拳을 막아가자, 오태흥이 격돌 직전에 우권을 회수함과 동시에 좌권左拳으로 내 비룡검의 옆면을 때렸다.
땅!
내 비룡검이 옆으로 밀려난 순간, 그가 나와의 간격을 더 좁히며 내 왼쪽 옆구리를 향해 우권을 찔러왔다.
이에 나는 오른쪽으로 돌며 비룡검을 끌어당겨 오태흥의 우권을 막아갔다.
방금 오태흥의 좌권이 내 비룡검의 옆면을 때렸을 때, 검신이 옆면으로 밀려나긴 했지만, 중심은 유지되어 있었다.
권법의 맥을 읽었던 만큼, 검면에 충격이 전해지던 순간에 검을 쥔 손목과 팔을 부드럽게 움직여 다음 동작을 이어갈 수 있도록 검로를 변경했던 것이다.
이윽고 오태흥의 철수투와 내 비룡검이 격돌했다.
마지막에 오태흥이 철수투에 기운을 강하게 담는 게 느껴졌기에, 나도 서둘러 강한 기운을 담았다.
콰아아아앙!
강한 기운끼리 격돌한 탓에 상당한 폭발이 발생했다.
나는 밀려나지 않고자 최선을 다했지만, 오태흥의 기운이 워낙 강력했던 탓에 뒤로 몇 걸음을 밀려나고 말았다.
척!
쫙 펼쳐진 손 하나가 밀려나던 내 등을 부드럽게 받쳐줬다.
남궁묵의 손이다.
내 시선은 그 순간에도 오태흥을 좇고 있었는데, 그는 의외로 내게 곧장 달려들지 않았다.
그저 한 손으로 뒷짐을 진 채, 다른 한 손은 그의 뒤쪽에 있는 적도들을 향해서 들고 있다.
나서지 말고 대기하라는 의미다.
그 와중에도 오태흥의 시선은 내게 고정된 상태다.
죽립 아래로 드러난 얼굴이 미소를 짓고 있다.
그때쯤, 바로 옆에서 남궁묵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아?”
“예.”
남궁묵에게 짧게 대꾸하자마자 오태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헐헐헐헐. 네가 누군지 알겠구나. 동천비룡이라는 바로 그 아이렷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