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339
“동천비룡……?”
“저자가……?”
오태흥의 뒤쪽에 있는 적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그중 상대적으로 고수인 자들은 나를 직시하기 시작했다.
나는 죽립을 눌러쓴 상태고, 지금은 어두운 밤중이다. 죽립 아래로 음영이 짙게 드리워 있다 보니 용모 파악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서 안력을 돋우고 있는 것이다.
내 용모파기와 실제 용모를 비교하려는 의도다.
내가 이래 봬도 강호의 유명인사이니 용모파기도 제법 널리 퍼졌을 수밖에 없다. 특히 천마신교나 혈교나 사파에서는 나를 위험인물로 분류하여 각자의 산하 조직에 내 용모파기를 돌렸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오태흥이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이십 대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매우 빠른 움직임. 위력적이면서도 정교한 암기술. 사마邪魔 계열도 아니고 정종도 아닌, 중성적인 기운의 내공. 감탄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는 조각 같은 얼굴. 이런 사실들을 토대로 추론한 것이다. 어떠냐? 노부의 말이 틀렸느냐?”
이에 잠시 가만히 오태흥을 바라보다가 대꾸했다.
“구순은 족히 되실 법한 어르신의 관찰력과 추론 능력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내가 정체를 인정한 꼴이라, 적들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오태흥의 입술이 열렸다.
“떽! 이놈아! 노부는 아직 창창한 팔십 대란 말이다! 지금 노부가 노안이라고 놀리는 것이렷다?”
농담조다.
나도 웃으며 그에게 대꾸했다.
“하하, 저도 모르게 결례를 범했군요. 팔순에서는 멀고 구순에 가까워 보이셔서 그리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여든일곱쯤으로 생각했던지라.”
내 말에 오태흥이 흠칫했다.
내가 나이를 정확하게 맞췄기에 저러는 것이다.
곧장 그에게 물었다.
“오호? 제가 추측한 연세가 맞은 모양이로군요?”
“후, 제법이구나.”
작게 한숨을 내쉬며 그렇게 말한 오태흥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어린 나이에 엄청난 명성을 얻은 놈이라서 시건방질 줄 알았는데, 백도의 새파란 애송이치고는 어른을 제법 공경할 줄 아는 놈이로구나.”
“제가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성향이라서요.”
내가 일부러 비굴해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농담조로 대꾸하자 오태흥이 크게 웃었다.
“푸헐헐헐헐헐헐!”
웃음을 멈춘 오태흥이 말했다.
“동천비룡은 평소 강자 앞에서도 태도가 당당하고, 전투 시에는 고수 앞에서도 담대하기 이를 데 없다고 들었는데, 이거, 노부가 잘못 알고 있었던 모양이구나?”
“본디 헛소문이 더 빨리, 더 멀리 퍼지는 법입니다.”
내가 이번에도 농담조로 대꾸하자 오태흥이 또다시 웃었다.
“푸헐헐헐! 고얀 놈이로다. 늙은이를 방심시키려 하다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런 하찮은 수작이 통할 수준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로 대꾸해주자 오태흥도 노안에 미소를 지었다.
그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다가 말했다.
“어르신은 제 정체를 아셨으니, 이제 저도 어르신이 누구신지 알고 싶습니다.”
눈과 귀가 많은 상황이다. 이쯤에서 이 질문을 던져 놓는 게 상황상 자연스럽다. 그래서 한 말이다.
오태흥이 씩 웃으며 대꾸했다.
“헐헐헐, 일없다, 이 녀석아. 노부는 노부의 노력으로 네 정체를 추측한 것이다. 그러니 네 녀석도 알고 싶으면 스스로 알아내든지 할 일이니라.”
그 말이 끝나자마자 임려현의 미세한 전음이 내 귓전으로 날아들었다.
[노인의 이름은 오태흥. 마교의 전대 권마였어요.]
역시 임려현이다.
아무래도 그녀가 신룡대에서 활동했던 시기와 오태흥이 권마였던 시기가 상당히 겹치다 보니 아는 모양이다
현재 임려현은 은신해 있어서 모습이 드러나지 않은 상태다. 방금 보낸 전음도 매우 미세한 공력만을 담아서 작은 목소리로 보낸 전음이다.
오태흥에게 말했다.
“제 지인의 제보에 의하면 어르신이 마교의 전대 권마셨다고 하는군요. 오, 태 자, 흥 자 쓰시는.”
그러자 오태흥이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키며 대꾸했다.
“지인이라면 저쪽에 있는 지인이렷다?”
내심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방금 임려현은 멀리에서 미세한 공력만으로 내게 전음을 보냈었다. 귓전에 닿을락말락 들린 전음이었는데, 오태흥은 그걸 알아챘을 뿐만 아니라 임려현이 은신해 있는 위치까지 정확하게 파악한 것이다.
역시나 최절정 중에서도 상위권 고수의 기감은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오리발 내미는 게 의미가 없는 상황이라, 대꾸 대신 미미한 미소만 지어 보였다.
그러자 오태흥도 말없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잠시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오태흥이 말했다.
“명불허전이라고는 하나, 노부의 체감상 명성 높은 자들 중 십중팔구는 과장된 명성이었다. 그러나 오늘 너와 대화를 나눠보니, 네 경우에는 오히려 과소평가된 명성임을 알겠구나.”
“아하하, 전대 권마쯤 되는 분한테서 이렇듯 칭찬을 들으니 어찌 반응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이 일에 대해 무림맹 집법당 측의 오해가 없기만을 빌어야겠군요.”
내가 농담조로 대꾸하자 오태흥이 또다시 웃었다.
“헐헐헐헐!”
오태흥은 과거에도 유쾌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와 오랜만에 대화를 나누니 참으로 즐겁다.
그렇기에 내게 이 시간은 너무도 소중한 시간이다.
하지만 슬슬, 이 즐겁고 소중한 시간을 정리해야 한다.
아마도 오태흥과의 시간은 이걸로 마지막이겠지.
우리는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니까. 혹여 둘 중 누군가가 도주하는 상황이 돼도, 이후에 다시 마주칠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하니까.
이윽고 오태흥이 철수투를 고쳐 끼며 말했다.
“즐거운 대화였다, 아이야. 백도의 어린아이치고는 꽉 막히거나 고리타분한 느낌이 없어서 좋구나.”
이에 나도 비룡검을 들어 올리며 대꾸했다.
“저도 즐거웠습니다. 누가 어르신같이 유쾌한 분을 마교의 전대 대마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이렇듯 우리는 각자의 무기를 들어 올려 겨누며, 서로를 칭찬해줬다.
오태흥과 내가 서서히 기운을 끌어올리기 시작했을 때쯤, 내 귓전으로 낙문월의 전음이 날아들었다.
[송 공자, 전대 권마는 내가 맡겠네. 아무리 봐도 그편이 더 나을 듯하네.]
낙문월 쪽의 전투는 원래 무림맹 측이 열세였는데 지금은 오히려 무림맹 측이 우세다. 사 대 사의 대결이었던 상황에서 낙문월이 합류한 덕분이고, 방금 오태흥으로부터 은신을 들킨 임려현도 그쪽으로 합류한 덕분이다.
낙문월이 왜 저렇게 말하는지 잘 알고 있다.
오태흥을 상대할 자신이 있어서 저렇게 말하는 게 아니다. 그에게도 오태흥은 매우 위험한 상대다.
그런데도 본인이 나보다 더 고수이니, 본인이 오태흥을 맡아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저렇게 말한 것이다.
오태흥은 최절정고수고, 낙문월 본인도 초입일지언정 최절정의 반열에 오른 고수니까.
나 대신 위험에 맞서려는 저 마음은 참으로 고맙다. 그가 훌륭한 어른이고 훌륭한 백도의 선배임을 알겠다.
그러나 아무리 낙문월이라 해도, 오태흥을 상대로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이다.
절정을 초월한 경지는 ‘초절정’이다.
초절정은 절정과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영역이다.
보통, 절정고수가 초절정에 오르는 건 이무기가 용이 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고 표현한다.
그렇다 보니 절정의 후반을 지나 절정의 극에 이르렀으되, 초절정에는 오르지 못한 고수들이 적지 않다.
그런 고수들이 본인들을 다른 절정고수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만든 개념이 바로 최절정이다.
최절정고수라 해도 수련 기간의 차이, 무공의 질적 차이, 자질 차이, 깨달음의 차이 등등으로 인해 신위는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상대적으로 강하고 누군가는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강호에서는 편의상, 최절정고수들을 하위권, 중위권, 상위권으로 분류한다.
일류나 절정처럼 초반, 중반, 후반으로 분류하지 않는 이유는 최절정이라는 경지 자체가 애초에 절정의 범주에 포함되는 개념인 탓이다.
낙문월은 얼마 전에 최절정에 오른 만큼 최절정고수들 중에서는 하위권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오태흥은 얼추 삼사십 년 전에 최절정에 오른 노고수다. 권마였을 당시에는 최절정고수들 중에서도 상위권이었으니, 지금은 그때보다 기력이 쇠했다 해도 최소 중상위권은 된다고 봐야 한다.
갓 최절정에 오른 고수 정도는 압도할 수 있는 실력자인 것이다.
잘못되면 낙문월은 중상을 입을 수도 있고 심지어는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 경우는 다르다.
나는 사부님이 오태흥의 권법에 대해 분석했던 걸 기억하고 있어, 어느 정도는 궤를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속도에도 강점이 있으니, 적어도 내공이 완전히 고갈되기 전까지는 오태흥에게 반응할 수 있다.
내 쪽이 오태흥을 상대로 더 멀쩡하게, 더 오래 버틸 수가 있다.
방금 진종정, 요수번, 국해건 등이 도착했고 잠시 후면 광동의 무인들과 강습조원들이 합류할 테니, 내가 혼자서 오태흥을 상대로 어느 정도 시간을 벌어주기만 하면 우리 전력이 적들을 압도할 수 있을 것이다.
곧장 낙문월에게 전음을 보냈다.
[저 혼자서도 약간의 시간을 벌 수 있을 듯합니다. 그러는 동안에 문주님께서는…….]
이후에 내가 간결하게 의견을 전하자, 처음에는 염려하는 듯했던 낙문월도 결국 승낙했다.
[알았네. 송 공자가 그렇다면 믿어줘야지. 나도 이쪽에서 최선을 다하겠네. 하지만 그러다가도 송 공자가 너무 위험해 보이면 즉시 그쪽으로 갈 걸세.]
[알겠습니다.]
나와 낙문월이 전음으로 짧게 의사를 교환했을 때쯤 오태흥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럼 어디 뒤엉켜보자꾸나, 아이야.”
그 말이 끝나자마자 오태흥이 내게 짓쳐 들었다.
동시에 우리 근처에서는 단체 간의 전투도 시작되었다.
빠르다.
아까 그와 잠시 붙었을 때와는 확연히 차이가 날 정도로 빠르다.
오태흥이 지나온 곳에 그의 환영이 남는 듯한 착시가 보일 정도다.
하도 빠르다 보니 정면에서 찔러오는 그의 주먹이 성인 머리통만 해 보인다.
집중해서 보니 주먹이 저렇듯 커 보이는 이유가 단지 빠른 속도 때문만은 아님을 금세 알아챌 수 있었다.
권법이다.
보기에는 그저 엄청나게 빠르기만 한 주먹 같지만, 사실 저건 몇 개의 주먹이 합해진 상태의 권법이다.
워낙 권법의 경지가 높다 보니 하나의 커다란 주먹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러니 저 커다란 주먹을 단순히 한 덩어리로만 생각하고 막았다가는 낭패를 볼 수밖에 없다.
나도 서둘러 검법을 펼쳤다.
비룡검이 세 갈래로 나뉘어 오태흥의 커다란 주먹을 찔러 가기 시작했다.
권법이 하도 빠르다 보니 순간적으로 궤를 읽기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 가장 위험해 보이는 주먹이 세 개 정도였기에 나도 세 갈래로 찌른 것이다.
순간 오태흥의 양미간이 좁아졌다.
저 표정을 보니 내가 잘 대응한 것 같다.
곧 커다란 주먹이 작아지는가 싶더니, 오태흥이 왼팔의 각도를 꺾어 좌권의 손등으로 비룡검의 옆면을 쳐내려 했다.
이에 나는 손목을 부드럽게 돌려서 검인劒刃(검의 날)으로 오태흥의 손등을 베어갔다.
그러자 오태흥도 좌권을 빼고 우권을 내밀며 내 검에 맞섰다.
나는 그 순간에 왼손으로 쇠구슬을 튕겨냈다.
근거리에서 튕겨진 쇠구슬이 눈 깜짝할 새 오태흥의 복부에 가까워졌다.
그 순간 비룡검의 검인과 오태흥의 철수투가 부딪쳤다.
카앙!
격돌 시점에 오태흥이 철수투에 제대로 힘을 싣지 못한 게 느껴진다.
강탄술은 튕겨내는 힘이 작용하는 만큼, 던지는 형식의 암기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날아간다. 그렇듯 갑자기 파고든 쇠구슬에 대처하느라 힘을 온전히 싣지 못한 것이다.
놀라며 주먹을 뺀 오태흥이 신속하게 뒤로 거리를 벌리더니 우권 철수투의 정권 부분을 눈으로 확인하기 시작했다.
저 철수투의 정권 부분은 어느 정도 패어 있을 것이다.
철수투와 검인이 격돌하던 짧은 순간, 나는 강탄술을 펼침과 동시에 매우 단단한 기운을 칼날의 선에 집약시켰었다.
절학인 천섬무, 신묘한 회회심공의 내공, 명검인 비룡검.
이 세 가지의 요소를 절묘하게 조화시킨, 내가 만들 수 있는 최대치의 단단한 기운이었다.
내가 만약 단단한 기운을 칼날에 미리 주입한 채로 맞섰다면 오태흥도 그에 상응하는 대처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격돌하던 짧은 순간에 갑자기 강탄술로 틈을 만들면서 기운을 집약시키다 보니 오태흥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내공이 많이 소모되긴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오태흥에게 주도권이 완전히 넘어가게 되어 오히려 버티기가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우권 철수투의 상태를 확인한 오태흥이 질렸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는 중에도 눈은 내게 고정되어 있었는데, 눈동자에 힘이 모이고 있는 느낌이다. 표정과 반대로 눈동자는 진심을 담아가고 있는 것이다.
[허, 내공마저도 만만치 않다니.]
오태흥의 전음에 나는 희미한 미소만 지어 보였다.
내공만으로 만들어낸 결과는 아니지만, 그로서는 저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태흥의 전음이 이어졌다.
[동천비룡은 소비도술과 강탄술이 특기라고 들었는데, 가서 그렇게 말한 놈의 주둥이를 찢어 놔야겠구나. 강호일절 수준과 특기 수준은 하늘과 땅 차이거늘.]
천섬무로 인해 강탄술도 더 빠른 것뿐이지만, 이 또한 남들이 보기에는 저렇게 보일 수밖에 없다.
여유로운 척하며 대꾸해줬다.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헐헐, 고얀 놈.]
오태흥이 웃으며 대꾸하더니 또다시 발을 박찼다.
공간을 압축하듯 순식간에 다가온 오태흥은 간결한 권법을 펼치며 계속해서 나와의 간격을 좁히려 했다.
나는 오른손으로 비룡검을 휘두르고 왼손으로 가끔씩 쇠구슬을 튕겨내며 그와의 간격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오태흥의 속도는 이전보다 더 빨라진 상태라, 나는 천섬무를 꾸준히 상 단계로 운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보니 짧은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도 우리 사이에서는 수십 합이 오간 상태다.
천섬무를 높은 단계로 운용하고 있는 만큼 내 내공도 빠르게 소진되는 중이다.
그래도 이대로 조금만 더 버텨주면 될 듯하다.
나와 오태흥의 대결 외의 다른 전투들은 무림맹 측의 상황이 매우 좋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근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단체전 쪽의 상황이 좋다. 적도들의 비명이 연이어 들리고 있다.
진종정, 요수번, 국해건 등이 광동의 무인들과 함께 합류하고, 단목강과 남궁설이 강습조의 인원들과 함께 합류하자 상황이 완전히 반전된 것이다.
오태흥의 움직임도 조금은 다급해진 느낌이다.
이전까지는 내공을 알맞은 수준으로 조절해가며 권법을 펼치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내공을 가득 담아서 권법을 펼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오태흥의 철수투와 내 검이 부딪힐 때마다 계속해서 기운의 폭발이 일어나고 있다.
펑! 퍼엉! 파앙!
이쯤 되니 내 내공은 그야말로 증발하는 수준이었다.
오태흥의 속도에 맞춰서 움직여야 하는 데다가 기운의 폭발로 인한 충격에도 버텨야 하는 상황인 탓이다.
공력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낙문월에게 전음을 보냈다.
[문주님……!]
낙문월이 전음을 듣자마자 내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는 중에도 오태흥은 내게 근접하여 좌권으로 세 줄기의 주먹을 만들어내고 있다.
주먹 세 개 모두 실초로 보이지만, 저 중에서 실초는 상단을 찔러오는 주먹뿐이다.
비룡검으로 상단의 주먹에 맞서 갔다.
그 직후 검과 철수투가 부딪치던 마지막 순간, 나는 눈을 부릅뜨지 않을 수 없었다.
상단을 찔러오던 주먹이 허상처럼 사라졌기 때문이다.
내가 그 사실을 파악한 순간에는 이미, 중단을 찔러오던 주먹의 방향이 절묘하게 꺾이며 비룡검의 검신 옆면을 때리는 중이었다.
오태흥이 변초를 구사한 것이다.
따앙!
강한 충격으로 인해 비룡검을 쥐고 있는 오른팔이 옆으로 크게 젖혀졌다. 오태흥이 기회라고 여겨, 타격 순간에 탄자결의 기운을 제대로 담은 모양이다.
내 오른팔이 젖혀지자마자 오태흥이 나를 향해 몸을 튕기며 내 복부를 향해 우권을 찔러 넣었다.
나는 오른팔이 크게 젖혀지며 순간적으로 무게중심을 잃은 상황이라, 오태흥의 이번 공격을 피할 수가 없다.
막아야 한다.
왼쪽 허벅다리 옆에 차고 있던 소검을 빠르게 빼냈다.
방금 빼 든 소검은 동갑도에서 활약한 공로로 받았던 전리품이다.
검신에 도는 은은한 묵빛과 고풍스러운 모양새 말고는 딱히 눈길을 끌지 않는 소검이다. 이 소검을 골랐을 당시에 제갈수광은 내 병장기 고르는 안목을 의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검신에서 아득하게나마 마의 혼이 느껴졌었고, 개인적으로 그 느낌이 반가워서 선택했던 소검이다.
소검에 다급하게 공력을 주입하여 오태흥의 우권에 맞섰다.
콰아아앙!
오태흥의 우권에 담긴 기운이 너무도 강력하다 보니, 무게중심을 잃었던 나는 기운의 폭발로 인해 뒤로 강하게 튕겨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나를 향해 오태흥이 또다시 발을 박차던 순간, 내 앞을 낙문월의 등이 막아섰다.
이어서 오태흥의 좌권과 낙문월의 검이 격돌하는가 싶더니, 또다시 두 사람의 진기가 강렬하게 격돌했다.
콰아앙!
폭발이 일어난 순간 오태흥은 뒤로 일 보, 낙문월은 뒤로 사 보 밀려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행히 낙문월의 중심만큼은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이다.
터억-
튕겨서 뒤로 날아가던 내 몸을 누군가가 받쳐 안아 들었다.
거대한 손과 두꺼운 팔의 느낌으로 알 수 있다. 왕철양이다.
“괜찮으십니까, 조교님?”
“괜찮아. 고마워.”
왕철양에게 그렇게 대꾸해주며 바닥에 내려서는 동안에 짧게 종리표와 제갈수광 쪽의 상황을 확인했다.
삼마불 중에서 광불이 쓰러져 있다. 죽지는 않았지만 전투불능 상태다.
혈불과 괴불 그리고 환도를 쓰는 혈교의 고수는 여전히 싸우는 중인데, 군데군데 크고 작은 상처가 보인다. 셋 다 치료가 필요해 보인다.
내가 오태흥을 상대하는 동안 낙문월도 저쪽에서 열심히 싸운 것이다.
그들에 비하면 종리표, 제갈수광, 고유택, 장익호, 임려현 등의 상태는 매우 좋은 편이다.
이후에는 다시 오태흥과 낙문월 쪽을 주시했다.
내가 오태흥을 상대로 버틸 수 있었던 건 그의 권법에 대한 사부님의 분석 덕분인데, 낙문월은 그러한 사전 지식 없이 오태흥을 상대하는 만큼 염려가 된다.
캉! 카앙! 퍼엉! 콰앙!
두 사람 간의 격돌이 빠르게 이어지고 있다.
역시나 낙문월이 많이 밀리고 있다. 그는 그야말로 위태롭게, 겨우겨우 대처해내는 중이다.
하지만 저 정도면 됐다.
저렇듯 근근이라도 혼자서 대처할 역량이 된다면, 내가 그의 뒤에서 쇠구슬만 튕겨줘도 어떻게든 오태흥을 막아낼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