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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마교있다-340화 (340/416)

내 안에 마교있다 340

눈길을 끄는 점이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황보충의 모습이다.

황보충은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상태로, 현재 내 좌전방에 서 있다.

나는 방금 격돌 후에 상당히 먼 거리를 튕겨 날아왔는데, 거리상으로는 왕철양보다 황보충이 나를 더 가까이에서 받아줄 수 있었다.

한데 황보충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 보니 황보충은 뭔가에 홀린 듯 멍하니 서서 오태흥과 낙문월 쪽을 보는 중이다.

더 자세히 살펴보니 그의 시선이 좇고 있는 건 낙문월 쪽이 아니라 오태흥 쪽이었다.

왜 저러는지 알 것 같다.

권법의 길을 걷고 있는 한 명의 무인으로서, 권법 고수의 움직임에 흠뻑 빠져 있는 것이다.

물론 황보충의 경지에서 오태흥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읽어낼 수는 없다. 그러나 저렇듯 가만히 집중해서 안법을 최대한으로 운용하면 대강의 움직임 정도는 파악할 수 있다.

황보충으로서는 오태흥이 싸우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세계를 엿보는 느낌일 것이다. 그러니 저렇듯 본인도 모르게 몰입할 수밖에 없다.

참고로 황보충의 부친인 현 황보세가주도 최절정의 무인이다. 그러나 황보충의 입장에서 황보세가주의 권법은 항상 봐오던 가전 권법일 뿐이다. 지금처럼 새로운 형태의 권법을 보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남군호에게 전음을 보냈다.

[지금은 황보 형에게 매우 중요한 시간인 듯하오. 저대로 두되, 혹여 위험해질 수 있으니 남 공자가 잘 지켜봐 주시오.]

아까 오태흥과 나의 전투가 시작된 직후에 주변에서 단체 전투도 시작됐지만, 지원조의 일부와 광동 무인들의 일부는 전투에 투입되지 않은 상태다. 치열하고 위험한 전투이기에 아직 경지가 낮은 이들에게는 대기 지시가 떨어진 모양이다.

남군호도 전투에 투입되지 않은 상태인데, 그는 아마도 경지가 낮은 이들을 보호하는 역할인 듯하다. 심산화, 공은림, 하조혁 등, 경지가 낮은 광동의 무인들이 그의 근처에 모여 있다.

남군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렇지 않아도 주시하고 있으니 송 공자도 몸조심하시오.]

두 번째로 눈길을 끄는 점은 오태흥의 시선이다.

내가 잠시 호흡을 정리하는 중에도 오태흥은 틈만 나면 내 쪽에 시선을 두는 중이다.

나를 자세히 관찰하는 듯한 눈빛이다.

한데 더 의아한 점은 오태흥의 눈동자가 급속도로 심각한 빛을 띠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체 왜 저러는 걸까.

이에 나도 더 집중해서 오태흥의 시선을 살폈다.

그리고 곧,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이 내 얼굴이 아니라 내 하반신 쪽이라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었다.

바지에 뭐가 묻었나?

곧장 하의를 내려다봤는데 딱히 이상한 건 없다.

고개를 갸웃할 때쯤 오태흥의 전음이 들려왔다.

[아이야, 네 왼손의 그 소검 말이다. 어떻게 얻었느냐?]

아까 대화를 나눌 때와 달리, 어조가 매우 진지한 데다가 음성마저 떨리고 있다.

어쨌거나 이제야 그가 뭘 보고 있었는지 알 것 같다.

아직 내 오른손에는 비룡검이, 왼손에는 소검이 들려 있는 상태인데, 이 소검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표정을 보니 오태흥은 이 소검에 대해서 뭔가 알고 있는 느낌이다.

전생에 서무욱이었던 나는 스물두 살에 사부님의 제자가 되었고, 서른두 살에 사형제들로부터 죽임을 당했다. 즉, 내가 천마의 제자로 지냈던 기간은 고작 십 년 정도다.

그러나 오태흥은 천마신교의 구대가문 출신이며, 어린 시절부터 교의 중심부에서 자란 사람이다. 게다가 장로 재임 기간도 매우 길었다.

당연히 나보다 보고 들은 것도 많고 아는 것도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내가 모르는 이 소검의 정체를 오태흥은 알 수도 있다.

참고로 천마신교의 구대가문 출신이라고 해서 다들 내 사형제들처럼 쓰레기들인 건 아니다. 정상적인 자들도 적지 않다. 오태흥이 그런 경우라 하겠다.

[이 소검에 대해 아십니까?]

내가 전음으로 묻자 오태흥이 전투 중에 짬을 내서 대꾸했다.

[노부의 질문에 먼저 답하는 게 순서 아니겠느냐?]

[제가 몇 년 전 사파와의 전쟁에서 사소한 전공을 세운 바가 있어, 전리품으로 받은 것입니다.]

[상부에서 정해서 네게 하달한 것이냐? 아니면 네게 선택 권한이 있어서 직접 골랐느냐?]

싸우는 중에 틈틈이 전음을 보내는 것이라, 말이 끊기고 이어지는 게 반복되고 있다.

[제가 선택한 겁니다. 검의 질만 보면 평균보다 약간 나은 수준 정도로 보였으나, 검신에 도는 은은한 묵색이 멋졌던지라.]

대꾸해준 후에 곧바로 말을 보탰다.

[저는 답을 드렸으니 이제 어르신 차례입니다. 말씀드렸듯 저는 이 소검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왔는데, 어르신의 기색이 자못 진지한 걸 보니 상당히 중요한 물건인 모양이군요.]

오태흥에게서는 한동안 대꾸가 없었다.

낙문월과 빠르고 치열하게 공수를 주고받기 시작한 탓이다.

이에 나는 오태흥과 낙문월의 영역에 들어서지 않은 채, 밖에서 강탄술을 펼치며 낙문월을 지원했다.

이후에 두 사람의 공수 교환 속도가 살짝 느려졌을 때쯤 오태흥이 다시 전음을 보내왔다.

[노부도 아직 확신할 수는 없다. 가까이에서 자세히 살펴봐야 확실히 알 수 있거든. 한데 상황상 그러기가 어렵지. 노부가 그 소검을 네게서 억지로 빼앗는다면 모를까.]

[어이쿠, 보물일지도 모르니 안 뺏기게끔 꽁꽁 감춰야겠군요.]

[헐헐, 그렇지 않아도 시도할까 말까 고민했었느니라. 전황이 이렇긴 해도 노부가 한순간 최대치로 움직이면 가능성은 있어 보였거든. 네 녀석이 뒤로 빠진 이유가 공력이 바닥을 보였기 때문임을 알고 있으니.]

오태흥의 저 말은 허세가 아니다.

그가 순간적으로 힘을 폭발시키면 어떻게든 틈을 만들어서 낙문월을 돌파할 수 있을 테니까. 그는 그런 경지의 고수니까.

참고로 오태흥이 ‘전황’ 운운한 건 우리 근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단체 전투에 대한 얘기다. 무림맹 측이 매우 우세한 지금의 상황을 말한 것이다.

[한데 왜 안 하셨습니까?]

[상대가 네 녀석이 아닌 다른 놈이었다면 무조건 도모했을 것이다. 빠르게 그 소검을 빼앗고 도주했겠지. 그러나 네 녀석은 공력이 바닥이라 해도 내 추측 범위 밖의 움직임을 보일 테니, 성공 확률이 낮다고 판단하여 도모하지 않은 것이다.]

노련한 판단이다.

이후, 우리는 더 이상의 전음을 주고받지 않은 채 전투에 집중했다.

적들이 계속 밀리는 상황에서도 퇴각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오태흥 때문이다.

오태흥이 나와 낙문월 중 한 명만 처리해도 전세가 급변할 수 있는 탓이다.

한데 오태흥은 우리를 상대로 확실한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강탄술을 펼치며 낙문월을 지원한 덕분이다.

상황이 만만치 않다 보니 오태흥의 얼굴에도 난감해하는 기색이 짙어졌다.

콰앙!

결국 오태흥이 한 차례 강력한 공격을 가한 후 뒤로 쭉 물러서더니 낙문월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이쯤 해야 할 듯하군.”

“아쉽구려. 이제야 몸이 좀 풀리고 있던 참인데.”

낙문월이 농담조로 허세를 부리자 오태흥이 웃었다.

“푸헐헐! 농담 실력이 무공 실력보다 낫구나. 그래도 뭐, 무공 실력도 형편없는 수준은 아니었다. 덕분에 내, 남천검문을 다시 봤으니.”

“알아봐 주시니 영광이오. 노인장은 초고령임에도 지나치게 정정하여 당장 현역 권마로 복귀해도 되겠더구려. 내가 볼 땐 충분하고도 남을 듯하오.”

“푸헐헐, 고얀 놈.”

낙문월이 오태흥과 나름 즐겁게 대화하고 있는 이유는, 직접 붙어 보니 마인이라는 느낌보다는 무인이라는 느낌을 훨씬 많이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전대 마두이되, 적어도 한 명의 무인으로서 존중받을 정도는 된다고 여긴 것이다.

오태흥은 처음부터 우리를 적대시하는 느낌이 옅었고, 오히려 호기심을 보였었다. 그래서 저렇듯 우리와 여유롭게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오태흥의 나이쯤 되면 치열한 정마正魔의 개념에서 어느 정도는 초연하게 되는 게 당연지사이기도 하다.

그쯤에서 나도 곧바로 오태흥에게 전음을 보냈다.

[어르신, 가더라도 이 검의 정체는 알려주고 가셔야지요. 운만 띄워놓고 가시면 어쩝니까. 사람 궁금해 미치게.]

[자세히 살펴보기 전까지는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잖느냐. 게다가 네 녀석은 엄밀히 본교의 적이다. 그런 네 녀석에게 노부가 왜 굳이 알려줘야 하느냐?]

[뭐, 그럼 어쩔 수 없겠군요. 실은 제가 검을 하나 제작하려고 생각 중인데, 이 소검의 은은한 묵빛이 마음에 들다 보니 쇳물로 만들어서 재료에 섞을 작정이었거든요.]

내 말에 오태흥이 흠칫하며 되물었다.

[뭐, 뭐, 뭣이라……?]

[어르신이나 마교에는 중요한 물건일지 모르겠으나, 그건 저와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어차피 앞으로 어르신을 또 뵐 일은 없다고 봐야 하니, 제가 이 소검의 정체를 알게 될 일도 없겠지요. 그러면 뭐, 고민할 필요 있겠습니까? 냅다 쇳물로 녹여버리는 거지요. 생각보다 더 좋은 재료일 수 있으니 제게는 더 잘된 일일 수 있겠군요.]

입가에 짙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마쳤는데, 오태흥의 눈동자는 뒤집히기 직전이었다.

[저, 저, 저런 망할 놈 같으니! 귀한 물건일 수도 있다니까! 앞일은 어찌 될지 모르니 일단은 가만히 놔…….]

내게 전음을 보내던 오태흥이 갑자기 말을 줄이며 그의 후방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왜 저러나 싶었는데, 직후에 나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적의 후방, 즉 우리의 전방 멀리에서 이쪽으로 빠르게 접근하고 있는 두 개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두 개의 기운 모두, 속도가 그냥 빠른 수준이 아니라 엄청나게 빠른 수준이다.

저 속도만으로도 두 사람이 상당히 높은 수준의 최절정고수들임을 알 수 있다.

결정적으로 둘 다 백도의 기운을 풍기고 있다. 그래서 오태흥이 저런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집중해 보니 접근 중인 최절정고수 두 명의 기운은 내가 아는 기운들이었다.

단목세가주 단목진과 검후 문숙경의 기운이다.

의외다.

절강에서 이곳까지는 매우 먼데, 절강의 대표 고수인 두 사람이 이곳에 등장할 줄이야.

오태흥의 날카로운 외침이 들렸다.

“즉시 이곳에서 이탈해!”

그 지시에 즉각 반응하며 적도들이 도주하기 시작했다.

“후방 쪽으론 가지 마!”

오태흥이 그렇게 외치자, 반사적으로 후방 쪽으로 방향을 잡았던 적도들이 측방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문제는 단목진과 문숙경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사실이다.

곧 단목진과 문숙경이 적도들에게로 짓쳐 들었다.

“크악!”

“아악!”

적들 쪽에서 연이어 비명이 울리기 시작했다.

달려오던 단목진과 문숙경이 양쪽으로 퍼지며 측면으로 도주하던 적들을 처치하기 시작한 탓이다.

그러자 이쪽에서 싸우고 있던 무림맹 측의 무인들도 단목진과 문숙경에게 호응하여 적들을 맹렬하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오태흥은 여러 명의 적측 고수와 함께 이미 이곳을 벗어난 상태다.

「이놈아! 그 소검은 그대로 놔두거라! 노부가 어떻게든 연락을 취할 테니……!」

오태흥은 떠나던 마지막 순간에 그 말을 전음으로 남겼다.

이후에도 나는 오태흥의 기운을 계속 추적하는 중인데, 저대로라면 벗어나는 데 별 어려움은 없을 듯하다.

한데 그다음 순간, 놀랍게도 오태흥의 기운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는 게 느껴졌다. 심지어 이곳을 벗어날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돌아오는 중이다.

낙문월도 그 사실을 파악했는지 오태흥이 다가오는 방향으로 나아갔고, 나도 즉시 그 뒤를 쫓았다.

오태흥이 광동의 무인들을 향해 쇄도하고 있다.

광동의 무인들도 다른 무림맹의 무인들처럼 적을 추격하는 중이다. 오태흥은 그들의 추격을 막아서 부하들의 도주를 도우려는 듯하다.

오태흥을 막기 위해 낙문월과 함께 경공 속도를 높이고 있는데, 다른 방향에서 하나의 인영이 오태흥을 향해 매우 빠르게 접근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단목진이다.

그가 금세 오태흥의 앞에 다다르더니 검법을 펼쳐냈고, 오태흥도 권법을 펼치며 대응했다.

카강! 캉! 퍼엉! 콰광!

두 사람 사이에서 강력한 기운들이 맞부딪히기 시작했다.

놀랍다.

단목진의 신위 얘기다.

오태흥을 완전히 몰아붙이고 있다.

몇 년 전, 동갑도에서 단목진의 경지를 엿본 적이 있었다.

당시에 단목진은 최절정 즈음, 즉 최절정의 초입이었다.

그랬던 단목진이 지금, 오태흥을 몰아붙이고 있다. 근소한 우세 정도가 아니다. 확실한 우세를 보이고 있다. 고령에도 여전히 최절정의 중상위권 고수인, 천마신교의 전대 권마를 상대로.

단목진의 검법은 단목강을 통해서 많이 접한 바 있었지만, 같은 검법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위력이 달랐다.

부분만 보면 쾌속하고 간결한 검법인데, 전체적인 흐름에는 웅장한 기세가 담겨 있다. 그렇다 보니 쾌속하고 간결한 각각의 동작에도 강렬한 힘이 깃들어 있다.

동갑도에서 봤을 때는 저 정도는 아니었다.

지난 몇 년간 단목진의 검법 성취가 크게 상승한 것이다.

저런 모습이면 백도 고수 서열에서 단목진의 순위도 적잖이 상승할 듯하다.

잠시 후, 적들을 추격하러 나섰던 무림맹 측의 무인들이 모두 복귀했다.

한데 못 보던 인원들 이십여 명이 같이 왔다.

새로 등장한 이십여 명은 단목진과 문숙경을 따라온 단목세가와 검각의 무인들인 듯하다.

그중 열 명가량은 모두 여인들이니 검각의 정예 무력 조직인 해천대일 것이고, 다른 열 명가량은 단목세가의 정예 무력 조직인 검풍대일 것이다.

문숙경도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녀는 잠시 단목진과 전음을 주고받는가 싶더니 이내 단목진과 오태흥의 전투에 끼어들었다.

잠시 전투를 지켜보니 문숙경 혼자서도 오태흥을 상대로 약간이나마 우세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신위였다.

문숙경의 경지도 동갑도 시절에는 최절정 즈음이었는데, 지금은 그때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성취가 크게 발전한 것이다.

그 와중에도 합공하는 단목진과 문숙경의 손발이 척척 맞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마치 둘이서 따로 합공 훈련을 해온 것처럼 잘 맞고 있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오태흥은 크게 밀릴 수밖에 없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버티는 것조차 버거운 상황이 되었다.

어느 순간 결국, 단목진의 검인劒刃(검의 날)이 오태흥의 왼쪽 목에 닿았다.

오태흥이 저항을 멈추고 양 주먹을 떨궜다.

검인이 닿아 있는 목의 피부에 생채기가 나서 약간의 피가 맺히고 있는 게 보인다.

“쯧, 꼬부랑 노인네 한 명을 젊은것들 둘이서 공격하다니.”

오태흥의 핀잔에 단목진이 대꾸했다.

“그 꼬부랑 노인네가 마교의 전대 권마면 얘기가 달라지지 않겠소? 그 전에 이미 소생 혼자서도 귀하를 몰아붙이고 있었음을 아시잖소. 굳이 시간을 오래 끌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여 합공한 것뿐이오.”

“후, 이 늙은이 하나 어찌했다고 해서 기고만장하지 말거라. 이쪽에 투입된 본교의 전대 장로가 노부만은 아니니. 그쪽은 노부와는 다를 것이다.”

오태흥의 그 말이 끝나자마자 서둘러 전대 장로 중에서 아직 살아 있는 이들을 떠올렸다.

누굴까.

오태흥보다 강한 모양이니 서너 명으로 한정되기는 하는데, 이 상황에서 그 이상 특정하기는 쉽지 않다.

단목진이 대꾸했다.

“기고만장하지 않소. 그리고 귀하 외의 다른 고수가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소. 그 고수 쪽은 나보다 훨씬 강한 분과 그 동행이 맡고 계시오.”

그 말에 오태흥의 눈이 커졌다.

“그럴 리가……!”

“우리가 어느 방향에서 왔는지 아시잖소.”

아까 단목진과 문숙경은 오태흥의 후방에서 왔다. 그쪽은 적들이 장악하고 있는 무림맹 합산지부 방향이었다.

즉, 단목진이 하는 말이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

하면 백도 측의 그 고수는 또 누굴까.

오태흥이 허탈한 듯 웃었다.

“헐, 헐헐헐헐…….”

곧 그가 체념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쯧쯧, 이래서 백도는 결코 만만치 않다고 그리도 얘기했거늘…….”

잠시 후 오태흥이 단목진을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쳐라. 어차피 살 만큼 산 몸이라 미련 따위 없다. 절강 최고의 고수 두 명에게 패배해서 죽는 것이니 모양새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터.”

해탈한 표정이다.

단목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귀하가 부하들의 도주를 도우려고 일부러 이곳으로 되돌아왔음을 알고 있소. 적이지만 그 의기를 높이 사, 최대한 고통 없이 보내드리리다.”

그 말에 오태흥이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슬슬 내가 끼어들 시점이다.

“가주님, 이런 상황에서 굳이 그런 거물을 처치해버릴 필요가 있겠습니까?”

단목진을 포함해, 모든 이들의 이목이 순식간에 내게 쏠렸다.

여유로운 미소를 보이며 단목진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무려, 마교의 전대 장로입니다. 살려두면 어떻게든 무림맹에 도움이 될 겁니다.”

“음…….”

단목진이 생각에 잠기는 듯 침음을 흘렸다.

오태흥에게서 정보 같은 걸 알아내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하다못해 포로 교환 협상에라도 유용하게 쓸 수 있다는 생각을 못 할 리 없다.

“이놈들! 노부를 욕보일 셈이냐? 어서 목을 치란 말이다!”

오태흥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단목진이 문숙경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오태흥의 뒤에서 검을 겨누고 있던 문숙경이 재빨리 오태흥의 혈도를 짚었다.

단목진이 내게 말했다.

“점혈을 한다 해도 이 정도 고수를 계속 감시하려면 믿을 만한 전력을 붙여놔야 하네. 한데 아직 합산지부 탈환전은 끝나지 않았고,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겠지. 그런 상황에서 믿을 만한 전력을 단순 감시역으로 쓰는 게 옳은 판단일까 싶네만.”

“저는 어차피 공력이 거의 고갈되어 전투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할 겁니다. 그러니 제가 붙어서 감시하면 됩니다. 제가 지도하는 아이들은 치열한 전투에 참여할 수준이 못 되니, 녀석들과 함께 후방의 안전한 곳에서 감시하며 전투를 지켜보고 있으면 됩니다.”

그러자 다른 방향에서 남궁묵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도 더는 무리하면 안 되는 상태입니다. 그러니 제가 유겸이와 함께하겠습니다.”

남궁묵까지 나서자 결국 단목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그럼 두 공자에게 맡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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