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345
식당에서 따끈따끈한 일 인분의 식사를 타서 소반에 들고는 오태흥이 갇혀 있다는 합산지부의 뇌옥으로 향했다. 다리를 접었다가 펼 수 있는 형태의 소반이다.
소반 위에 담겨 있는 건 옻칠 된 목제 식기들이다. 식기들은 모두 목제 뚜껑으로 덮여 있다.
뇌옥은 합산지부 외원의 구석진 곳에 별채의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다가가면서 보니 담장이 높게 둘러 있어 그 안쪽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담장 위의 곳곳에 초소가 설치되어 있었고, 각 초소 안에는 경계조로 보이는 무인들이 두 명씩 배치되어 있었다.
정문으로 향하자 경비 무사들이 나를 막아섰는데, 내가 정체를 밝히고 용무를 말하자 매우 반가워하며 곧바로 통과시켜줬다. 그들의 반응도 아까 시체 보관소 쪽에서 만났던 경비 무사들의 반응과 거의 비슷했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니 매우 튼튼해 보이는 이 층 건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합산지부의 뇌옥이다.
건물 입구 바로 앞에도 여러 명의 경비 무사들이 있어, 그들에게도 정체와 용무를 밝혔다.
“송유겸이라 합니다. 지휘부의 권유에 따라 마교의 전대 권마를 만나러 왔습니다.”
소반을 들고 있는 터라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이에 경비 무사 중 선임으로 보이는 자가 포권하며 대꾸했다.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송 공자. 그렇지 않아도 상부에서 연락을 받고 기다리던 중이었습니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이에 선임 무사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현관 안으로 들어서니 한쪽으로 철문이 보였다.
간수 두 명이 그 철문을 지키고 있다.
선임 무사가 용무를 말하자 간수들이 내 쪽으로 서류를 내밀었다. 출입 대장으로 보이는 명부다.
성명, 소속, 직위를 적어서 건네니 간수가 내 이름을 확인하며 말했다.
“성함이 송유겸이면 혹시 그 동천비룡…….”
이에 어색하게 웃으며 대꾸해줬다.
“하하……, 안녕하십니까. 수고 많으십니다.”
두 간수는 눈이 휘둥그레지는가 싶더니, 이내 매우 반가워하는 기색이 되었다.
“정말로 동천비룡이시라니……!”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예, 저야말로 반갑습니다.”
내가 대꾸하자 두 간수가 곧바로 철문을 열어줬다.
이후에 선임 무사와 나는 철문을 하나 더 거쳐 이 층으로 향하는 계단 앞에 도착했고, 그곳에서도 출입 대장을 한 차례 더 작성한 후에 철문을 통과했다.
선임 무사가 계단을 오르며 말했다.
“뇌옥의 이 층에는 특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수감자 중에도 대우가 필요한 인사들은 있게 마련이라, 그런 이들을 따로 특실에 수용하는 겁니다. 마교의 전대 권마도 특실에 수용하라는 상부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아, 그렇군요.”
이 층으로 올라서는 지점에도 철창이 있어, 우리는 그곳까지 통과한 후에야 비로소 이 층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이 층에서도 현관과 복도에 있는 철문 두 곳을 통과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한 번 더 출입 대장을 작성해야 했다.
마침내 오태흥이 갇혀 있다는 철문 앞에 도착하자 선임 무사가 전음을 보내왔다.
[특실은 석벽을 통해 거주 구역과 면회 구역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면회 구역에 앉아서 석벽 중앙의 철창살 사이로 소통하시면 됩니다. 참고로 석벽의 한쪽 구석에는 작은 철문이 있는데, 그게 식사 투입구입니다. 간수가 열어줄 겁니다. 저는 그 간수와 함께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안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짧게 고개를 숙여 보이자 선임 무사도 나를 향해 마주 고개를 숙여 보였다.
선임 무사는 오는 내내 매우 친절했다. 선임 무사뿐만 아니라 오면서 마주친 간수들도 내 정체를 알게 된 후에는 매우 친절하게 대해줬다.
이래서 강호인들이 고수를 꿈꾸고, 이래서 백도인들이 명성 타령을 하는 거겠지.
간수가 두꺼운 철문을 열어줬다.
안으로 들어서니 정면을 석벽이 가로막고 있었고, 그 석벽의 중앙 부근에 철창이 설치되어 있었다.
철창살들의 두께는 내 팔목만 했고, 그 부분을 통해 드러난 석벽의 두께 또한 매우 두꺼웠다.
곧 간수가 식사 투입구의 작은 철문을 열었고, 나는 그곳에 식사를 놓았다. 그러자 간수가 곧바로 작은 철문을 닫고 자물쇠를 채웠다.
“수고하셨습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며 짧게 포권해 보이자 간수도 미소를 보이며 짧게 포권해 보이더니 밖으로 나갔다.
내가 석벽 중앙의 철창살 앞으로 다가갈 때쯤, 출입 철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끼이이익- 쿵!
철창살 안쪽을 보니 오태흥이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로 정좌해 있었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그가 이런 식으로 수감된 이유는 나 때문이다. 미안한 마음이 가득하다.
오태흥에게 말했다.
“식사 투정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참고로 이런 식으로 나누는 대화는 밖에서도 다 들린다. 출입용 철문 상단에 내부를 감시하는 용도의 틈새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오태흥이 얼굴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저, 저……! 저놈 말하는 것 좀 봐라. 이놈아! 밥투정은 누가 밥투정을 해?”
“투정하는 거 아니시면 식기 전에 얼른 식사하십시오.”
내가 빙그레 웃으며 그렇게 대꾸하자 오태흥이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툴툴거렸다.
“고얀 놈 같으니.”
눈을 흘기면서도 순순히 소반을 꺼내 들고 있다.
곧 오태흥이 소반의 다리를 세우고 그 위에 덮여 있던 밥상보를 걷어냈다. 그의 입가에 만족스러워하는 미소가 걸렸다.
“호오, 신경 좀 썼구나.”
식기에 뚜껑이 덮여 있는 것을 보고 하는 말이다.
그쯤에서 나는 철창살 사이로 죽통 하나를 내밀었다.
술이 들어 있는 죽통이다.
식당의 숙수들에게 약간의 사례금을 찔러주며 겨우 얻어낸 것이다. 오태흥이 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나로 인해 저런 신세가 되었으니 소소하게나마 위로해주고 싶었다. 오태흥이라는 사람은 내게 있어 고마운 존재니까.
오태흥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서, 설마 술이냐?”
“예.”
내가 대꾸하자 오태흥이 곧바로 죽통을 낚아챘다.
“허! 어수선한 상황일 텐데 용케도 이런 걸 구했구나!”
“구하면서도 어르신께서 약주를 좋아하시려나 싶었는데, 다행입니다.”
“노부에게는 이런 거 백 통쯤 더 가져와도 전혀 상관없느니라.”
“하핫, 지금은 하나 구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어쨌든 음식 더 식기 전에 어서 드십시오.”
그러자 오태흥이 식기의 뚜껑들을 열고는 밥을 먹기 시작했다.
미리 챙겨온 휴대용 숫돌을 품속에서 꺼낸 후, 비룡검과 소검을 차례로 검집에서 꺼냈다.
오태흥이 숟가락을 입으로 가져가다 말고 말했다.
“이놈아, 보는 사람 무섭게 칼은 왜 꺼내는 게야?”
이전보다 목소리가 더 커져 있다.
밖에 있는 이들도 들으라고 저러는 것이다.
내 의도를 파악했다는 뜻이다.
이에 나도 목소리를 살짝 높여서 대꾸했다.
“저, 숫돌 들고 있는 거 안 보이십니까? 멍하니 어르신 식사하시는 모습만 지켜보느니, 그 시간에 칼이라도 손질해놓으려는 거잖습니까.”
“에잉, 쯧쯧. 손질할 거면 손질한다고 먼저 말을 할 일이지. 그랬으면 노부가 이렇듯 놀랄 일도 없었잖느냐.”
“으휴, 이상한 트집 잡지 마시고 어서 식사나 하십시오.”
그러자 오태흥이 나를 보며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짓더니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나도 숫돌을 들고 천천히 비룡검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밖에서 호기심에 안쪽을 볼 수도 있다.
그래서 검을 챙겨와서 손질하는 척하는 것이다.
소검은 옆에 있는 의자에 잘 걸쳐서 세워 놓았다. 일부러, 오태흥이 잘 볼 수 있게끔 세워둔 것이다.
오태흥은 식사 중에 무심한 척 내 소검에 시선을 두었다.
표정은 저렇지만, 고수답게 공력을 매우 은밀히 운용하여 안력을 돋운 상태다.
검을 손질하면서 틈틈이 오태흥의 기색을 살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턴가 오태흥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소검을 자세히 살피다가 저러는 것이니, 저 소검이 뭔가 중요한 물건일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오태흥의 전음이 들려왔다.
[더 가까이서 보여다오.]
이에 나는 손질을 마무리한 척하며 비룡검을 옆에 있는 의자에 세워 놓았다. 대신 그 의자에 있던 소검을 집었다.
이어서 소검을 얼굴 앞까지 들어 올린 후, 고개를 옆으로 기울여 검신을 살피는 척했다.
오태흥은 식사를 계속하며 무심한 표정으로 내 소검에 시선을 두고 있다.
나는 꽤 오랫동안 같은 자세로 검신을 살피다가, 자연스럽게 소검의 방향을 바꾸어 다른 방향을 살피는 척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꾸준히 오태흥의 눈빛을 주시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동요한 기색이 역력해지고 있다.
어느 순간 오태흥이 소검에서 시선을 거두기에 나도 소검을 아래로 내렸다.
그 후부터 오태흥은 말없이 식사에 집중하며 죽통에 든 술을 한 모금씩 마시기 시작했다.
이에 나도 숫돌을 들고는 말없이 소검의 날을 다듬었다.
오태흥의 식사가 끝나가고 있다.
이에 비룡검과 소검의 검신을 헝겊으로 닦아서 각각의 검집에 넣었다. 그러고는 오태흥을 바라봤다.
이윽고 오태흥이 숟가락을 놓고 식기들을 정리하더니 소반의 다리를 접어서 식사 투입구 쪽으로 넣었다.
그 후, 자리로 돌아온 오태흥이 벽에 기대어 앉으며 말했다.
“잘 먹었다. 아침나절에 죽 먹을 때도 느끼긴 했는데, 숙수들의 실력이 괜찮은 모양이구나.”
“입맛에 맞으시는 듯하니 다행입니다.”
내가 대꾸하자 오태흥이 죽통을 들고 술을 한 모금 마시더니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는 그 후로 한동안 말이 없었다.
소검에 대해 매우 궁금한 상태지만, 나는 굳이 오태흥을 재촉하지 않은 채로 조용히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순간 오태흥의 전음이 들려왔다.
[그런 물건이 어쩌다가 백도인의 손에까지 들어가게 되었을꼬…….]
소검 얘기다.
정체를 알아냈다는 의미이기에 호기심이 증폭되었다.
[이 소검이 무슨 물건이길래 그러십니까?]
[그건 용마검이라는 물건이니라.]
나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용마검…….]
내가 검의 이름을 되뇌자 오태흥이 코로 한숨을 내쉬며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강호에도 알려졌다시피 본교의 중심부에는 구대가문이라는 세력이 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오태흥이 바로 말을 보탰다.
[노부 또한 그 구대가문 출신이고.]
[아.]
이미 알고 있지만 처음 들었다는 듯 반응해준 것이다.
[구대가문이 처음부터 천마신교의 중심 세력이었던 건 아니었다. 먼 과거에, 구대가문 이전에는 사대마천이라는 세력이 중심이었지. 한데 언젠가부터 사대마천의 교내 장악력이 점점 약해졌고, 그러면서 구대가문이 급부상했다. 두 세력이 경쟁하다가 결국 사대마천 세력이 도태되고 구대가문 세력이 본교를 장악하며 지금에 이른 것이다.]
이 또한 내가 알고 있는 천마신교의 역사다.
다만 현재의 천마신교에 사대마천에 대한 자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예전에 큰 화재가 발생하여 당시의 기록이 대부분 탔다고만 알고 있다.
물론 나는 천마신교에 있을 때도 그 얘기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뭔가 있을 것이라 여겼었다.
그러나 내 주변 사람들도 그 부분에 관련해서는 아는 게 없었다. 너무 먼 과거의 역사인 탓이다.
사부님도 모른다고 대답하긴 하셨는데, 뭔가를 아는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오태흥에게 말했다.
[갑자기 사대마천이라는 곳에 대해 말씀하시는 걸 보니 이 소검이…….]
[그렇다. 과거의 그 사대마천과 관련된 검이니라.]
나로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놀란 기색은 속으로 감췄다.
[와……! 이게 마인들이 썼던 물건이라니.]
표정에 흥미로워하는 모습과 약간의 놀람 정도만 담았다. 백도의 어린 청년이라면 이 정도로만 반응해주는 게 자연스러울 테니까.
오태흥의 눈빛에는 복잡한 심경이 드러나 있었다.
그에게 다시 전음을 보냈다.
[이 검에 대해서 더 아는 게 있으신 듯한데, 말씀해주시면 안 됩니까? 우연히 입수한 물건이 마교 쪽 물건이었다고 하니 신기해서 그럽니다.]
하지만 오태흥은 고민하는 표정을 지은 채, 한동안 대꾸하지 않았다.
침묵이 잠시 이어지던 중에 오태흥의 전음이 들려왔다.
[네게 알려줄지 말지 고민했는데, 알려줘도 딱히 상관없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본교의 기밀인 것도 아니고, 그걸 말한다고 해서 본교에 피해가 가는 것도 아니니. 또한 지금은 사대마천의 후예들조차 본인들의 정체성을 잊었을 정도로 여러 세대가 지나기도 했고.]
저 말이 옳다.
나 또한 천마신교에 오래 몸담았던 사람이다. 나는 밑바닥 일반 마인으로 시작해서, 기밀 정보를 다루는 흑풍대를 거쳐, 천마의 제자라는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러는 동안 누군가가 사대마천의 후예라는 식의 정보를 본 적도 없었고, 그런 소문을 들은 적도 없었다. 사대마천이 도태되어 해체된 지가 거의 이백오십 년 가까이 지났으니 당연한 일이다.
이윽고 오태흥이 뭔가를 결심한 듯한 눈빛을 보이더니 말했다.
[그 용마검은 사대마천의 신물이니라.]
[예에에? 신물이요?]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내가 웬만큼 놀라도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는 사람인데, 저 말을 듣고는 놀람을 감출 수가 없다.
[어르신……, 정말입니까?]
믿기지 않아서 재차 확인한 것이다.
오태흥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아무리 봐도 장난을 치거나 농담할 때 보이는 그의 표정이 아니다.
진실인 것이다.
이게 무슨 일인가.
문득, 제갈수광과 같이 가서 전리품을 고르던 때의 일이 떠오른다.
그곳에는 수많은 전리품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은은한 묵색 검신에 다소 고풍스러운 형태의 소검이 내 시선을 끌었었다.
당시에 나는 그 소검이 나를 끌어당기고 있는 듯한 묘한 감정도 느꼈었고, 실제로 만져본 후에는 아득한 마의 혼이 서려 있음을 알아채기도 했었다.
그래서 반가운 마음에 그 소검을 골랐을 뿐이다.
한데 그게 사대마천의 신물이었다니.
오태흥에게 물었다.
[사대마천이 아무리 먼 과거의 세력이었다고 해도, 그곳의 신물 정도 되는 중요한 물건이 이렇듯 아무렇게나 외부에 돌아다니고 있어도 되는 겁니까?]
[노부도 자세한 내막은 모른다. 그저, 용마검이 먼 과거에 도난당했고, 그게 사라지면서부터 사대마천의 몰락이 가속되었다는 정도만 알 뿐.]
놀라운 한편으로 매우 흥미롭다. 내가 몰랐던 내용이기 때문이다.
[용마검이 먼 과거에 도난당했다면 어르신도 이걸 직접 본 적은 없으실 듯한데, 어떻게 알아보신 겁니까?]
[노부는 용마검이 그려진 그림을 봤거든.]
내심으로 또다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저 말은, 어딘가에는 사대마천에 관한 자료가 일부라도 남아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관련해서 물어보고 싶은 게 매우 많다.
하지만 백도의 청년이 이 시점에 그런 걸 자세히 물어보는 건 아무래도 이상할 수밖에 없다. 나중에 오태흥과 충분히 친해진 후라면 모르겠지만.
이에 나는 분위기를 전환하듯 농담조로 물었다.
[신물 정도 되는 물건인데, 신비한 능력 같은 건 없습니까? 어떤 신물들은 그런 게 있다고 하던데.]
[있다고 들었다.]
[헛! 있다고요?]
[백도인에게는 거의 쓸모가 없는 기능이라서 그렇지.]
[어떤 기능이길래…….]
[매우 가까운 범위 내에서, 마공의 폭주를 억제해준다고 알고 있다.]
[마공의 폭주라고 하시면…….]
[마공에는 불완전한 요소들이 많다는 걸 너도 알 것이다. 마공은 대부분 속성형이면서, 비슷한 내공으로도 더 강한 위력을 내게 하기 때문이지. 그런 만큼 폭주해서 주화입마에 들 가능성도 커질 수밖에 없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오태흥이 말을 이었다.
[아마도 그런 현상을 억제해주는 게 아닐까 싶다. 물론 노부도 어렸을 적에 구전으로 들은 것에 불과해서, 그게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백도인에게 필요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만약 그 말씀이 사실이라면 대단한 물건이네요.]
오태흥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죽통 안의 술을 한 모금 들이켰다.
“크으, 좋구나.”
한 차례 육성을 내뱉은 오태흥이 다시 전음을 보내왔다.
[또 하나, 내공 경지가 일정 수준 이상이 된 후에 검에 공력을 주입하면 검신에 뭔가가 드러난다는 얘기도 들었다. 한데 그건 사실이 아닐 것이다. 한 번도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고 알고 있거든.]
[아.]
[본디 신물이라는 게, 이런저런 전설과 설화로 포장되곤 하는 법이지.]
먼 과거에는 사대마천이 천마신교의 주류였다. 당연히 그쪽에도 대단한 고수들이 존재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검신에 뭔가가 드러나는 현상이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건 아무래도 지어낸 얘기일 가능성이 크다.
오태흥이 죽통의 술을 한 모금 마시더니 정리하듯 말했다.
[노부는 누군가에게 사대마천과 용마검에 대해 얘기했던 적이 한 번도 없다. 심지어 노부의 직계에게도 전하지 않았다. 말해줄 필요를 못 느꼈다. 이 시대에 사대마천에 관련된 얘기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서였다. 다른 구대가문들은 노부의 가문보다 훨씬 먼저 그래왔고.]
오태흥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도 네게 얘기해준 이유는, 운이 좋았든 뭐든 네가 용마검의 주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노부는 이제 살날도 얼마 남지 않은 데다가, 이렇듯 백도의 포로 신세가 되어 당장 내일 일이 어찌 될지 모르는 신세다. 지금 얘기해주지 않으면 영영 기회가 없을지도 모를 일이지. 그리되면 너뿐만 아니라 이후의 주인들도 영원히, 용마검이 어떤 물건인지도 모른 채로 지니고 다닐 게 아니냐. 그래서 얘기해주기로 결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