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350
첫날, 우문직과 선우린과 송유하는 낮부터 곯아떨어졌다.
참고로 야외 은신처이긴 해도 푹 쉴 만한 여건은 된다.
각자의 자리 아래에 마른 풀을 적당히 깔고, 그 위에 한기를 차단할 수 있는 피풍의를 깔고, 그 위에 침낭을 놓았기 때문이다.
절정고수들이 돌아가며 번을 섰고, 그렇게 첫날이 지나갔다.
둘째 날, 절정고수들은 전방의 전망 좋은 봉우리로 전진하여 경계 임무를 수행했다. 이인 일조였고, 다섯 명이 순번대로 경계 지점에 투입되는 방식이었다.
휴식이 보장된 일류고수 세 사람도 놀고 있지만은 않았다.
송유하는 침낭을 깔고 쉬는 중에도 가까운 나무 기둥을 표적 삼아 철비정 던지는 연습을 했고, 옆에서 쉬고 있는 선우린은 시범을 보여가며 송유하의 연습을 도왔다.
우문직도 침낭 위에서 쉬며 말없이 왼손 암기술 연습을 했다.
그 모습들이 기특했는지, 임려현은 시간이 날 때마다 세 사람을 지도해주곤 했다.
사흘째 되는 날에는 일류고수들도 경계 임무에 투입되었다.
경계 임무에 투입되지 않은 나머지 인원들은 후방의 계곡 근처로 이동하여 운기조식을 취했다.
우리는 슬슬 태강현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이동 중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렇기에 체내에 공력을 가득 채워놓고, 몸 상태를 끌어올린 후에 이동하려는 것이다.
그렇게 저녁이 되어, 정찰조는 은신처를 벗어나 목적지를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어둑어둑해진 후부터 밤새 이동하고, 사시 초(아침 9시) 무렵부터 저녁때까지 충분히 쉬고, 다시 어두워지면 움직이는 식으로 나아갔다.
주변을 주의 깊게 살피며 이동하다 보니 우리의 전진 속도는 대체로 느린 편이었다.
* * *
나흘 후.
사위가 어둑어둑해지자 조원들이 여느 때와 같이 출발할 준비를 마치고 집합했다.
제갈수광이 조원들에게 말했다.
“이제 목적지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모두 모여서 지도를 확인한다.”
말을 마친 제갈수광이 바닥에 지도를 펼쳐 놓자, 조원들이 지도를 중심으로 둥글게 모여서 쭈그리고 앉았다.
제갈수광이 지도의 두 곳을 철비정의 촉 부분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현 위치는 이 지점이고, 목적지인 귀주 수복전단의 임시 주둔지는 이 지점이다.”
그가 가리킨 목적지는 태강현의 남서부 산지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자 제갈수광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정상적인 경로로 가면 자정 즈음이면 도착할 거리지만, 그 경우에는 적의 척후조와 마주칠 일이 너무 잦아질 것이다. 그래서 도중에 경로를 우회할 계획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간간이 마주쳤던 적의 척후조를 잘 피해서 왔다.
하지만 제갈수광의 말처럼 이제부터는 적의 척후조와 마주칠 일이 많아질 것이다. 그들을 일일이 피해 다니다가는 신경 쓸 일도 많아지고 시간도 더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뒤따라오는 본대까지 생각하면 미리 우회하는 편이 낫다.
“물론 우회한다고 해도 언제든 적의 척후조와 마주칠 수 있다. 그러니 목적지에 거의 다 왔다고 해서 방심하는 일이 없도록 한다.”
“예.”
“우회했을 때의 예상 도착 시각은 아마도 축시 정(오전 2시) 남짓일 듯하다. 참고하도록.”
축시 정이 넘어서 도착하면 이전에 머물렀던 용강현 남부의 은신처에서부터 목적지까지 닷새쯤 걸린 셈이 된다.
서둘러 가면 이삼일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를 닷새 만에 가는 것이니, 그간 우리가 얼마나 주의 깊게 주변을 살피며 이동했는지 알 만하다.
“그럼, 출발하지.”
그렇게 말한 제갈수광이 남궁설과 단목강을 향해 턱짓하자, 두 사람이 전열로 나서며 서서히 경공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어서 나머지 조원들이 차례로 두 사람을 따라붙었다.
출발하기 전부터 하늘이 제법 흐렸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밤하늘의 구름은 더 짙어져만 갔다.
귀주의 동부는 사흘 연속 맑은 날이 없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우리가 며칠 전에 귀주에 진입한 후로도 날씨는 맑다가 흐리기를 자주 반복했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비가 내린 적은 없었는데, 우리가 출발한 후로 두 시진이 되어갈 시점부터는 기어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젖어서 몸이 무거워지는 건 좀 불편하겠으나, 우리로서는 차라리 잘된 일일 수 있다.
오늘이 시월 보름날이기 때문이다. 지금이 해시 정(밤 10시)쯤 되었을 테니, 날이 맑았다면 휘영청 밝은 달이 떠 있을 시간이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정찰조는 휴식 겸 잠시 큰 나무 아래에 멈춰서 피풍의로 행낭을 감쌌다. 피풍의는 방수 기능이 있기에 행낭을 감싸서 내용물이 젖지 않게끔 조치하는 것이다.
다시 출발하기 전에 제갈수광이 말했다.
“슬슬 우회하려던 지점이었는데 비가 이 정도로 쏟아지면 굳이 멀리까지 우회할 필요는 없겠군. 약간만 우회할 테니 그렇게들 알고 있도록.”
“예.”
다시 출발한 후로 한 식경쯤 지났다.
여전히 비가 쏟아지고 있다.
목적지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만큼, 나는 본격적으로 탐지 기운을 넓게 퍼트렸다. 혹시 모를 적의 척후조를 미리 감지하기 위함이다. 지금까지는 굳이 적극적으로 탐지하지 않고 제갈수광과 임려현에게 맡겼었다.
나는 기척 탐지 기운을 은밀하게 땅바닥으로 깔아서 퍼트렸는데, 비가 쏟아지고 있는 만큼 그 기운을 들킬 일도 거의 없는 상황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 감각의 영역에 하나둘씩, 적측 척후조들의 존재가 잡히기 시작했다.
내가 딱히 알려주지 않아도, 정찰조의 선두에서는 알아서 적측의 척후조들을 멀리 피해서 이동했다.
이 열에 있는 제갈수광과 임려현이 일 열에 있는 남궁설과 단목강에게 일러주고 있는 덕분이다.
그렇게 한 식경가량 더 이동했을 때쯤, 나는 눈매를 좁히며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공을 펼치며 이동 중인 다수의 기척이 감각에 잡힌 탓이다.
적들의 기운이다.
수십 명, 아니 백 명이 훌쩍 넘는 듯하다.
저 정도 숫자면 척후조라고 볼 수 없다.
내 탐지 기운이 들킬 수도 있으니, 일단 그 기운부터 거둬들였다. 동시에 남궁설에게 전음을 보냈다.
[설 매, 잠시 멈춰봐.]
내 말을 들은 남궁설이 오른손을 수평으로 뻗어서 단목강을 막았다. 일 열이 멈추자 조원들 전체가 멈췄다.
이에 나는 곧장 제갈수광에게 전음을 보냈다.
[송구합니다. 심상치 않은 사안이 있어서 설 매에게 멈추라는 전음을 보냈습니다.]
제갈수광이 뒤로 돌아 나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얘기하라는 의미다.
[좌전방 멀리에서, 적잖은 수의 적들이 경공을 펼치며 이동하는 중입니다.]
죽립의 챙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 사이로, 제갈수광의 눈매가 좁아지는 모습이 보인다.
[적잖은 수?]
[제가 탐지 기운을 거둬들이기 전까지 파악한 수만 해도 백 명은 훌쩍 넘는 듯했습니다. 아마 더 많지 않을까 합니다. 절정고수와 일류고수가 섞여 있었습니다. 한데 그들이 향하는 방향이 아무래도…….]
[아무래도?]
[우리의 목적지 쪽인 듯합니다.]
제갈수광의 양미간에 골이 더 깊게 패었다.
그가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말했다.
[알았다. 일단은 적들의 이동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위치로 가지.]
[예.]
[본대도 주의할 수 있게끔 이쯤에 표식도 남겨둬야겠군.]
말을 마친 제갈수광이 임려현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입술을 달싹거렸다. 내가 해준 얘기를 전달하고 있을 것이다.
잠시 후 제갈수광이 다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말했다.
[기민하게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니 여기서부터는 송유겸 너와 내가 앞장서는 게 좋겠군. 나머지 인원들은 우리와 열 걸음쯤 거리를 두고 뒤따르게 하고.]
[그러는 게 좋을 듯합니다.]
우리는 곧 제갈수광과 내가 나란히 앞서 나아가고, 나머지 인원들이 뒤따르는 형태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우리는 주변보다 높은 위치에 도착했다.
아까 내가 파악했던, 적들이 이동하던 지점이 내려다보이는 위치다.
안력을 돋워보니 지금도 적들이 줄지어 경공을 펼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차례차례 먼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데, 방향을 보니 확실히 우리의 목적지 쪽이다.
제갈수광의 전음이 들려왔다.
[아까 네가 파악했던 시점 이후에도 계속 저렇듯 줄지어 이동하고 있는 거로군. 그렇다면 적들이 족히 수백 명은 된다고 봐야겠지.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고.]
제갈수광은 나보다 경지가 낮아지기는 했으나, 원래부터 그는 눈이 좋고 안법 경지도 높았었다. 괜히 명궁인 게 아니다. 그러니 그가 지금 보고 있는 시야도 내 시야와 크게 차이 나지는 않을 것이다.
[예. 아마도.]
[그 많은 적들이 깊은 밤중에 저 방향으로 향하는 건 기습의 의도라고 봐야겠지. 비가 많이 쏟아지는 밤이니 기습하기에 좋은 조건이기도 하고.]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귀주의 적들은 만만치 않은 모양이던데, 귀주 수복전단이 기습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염려되는군.]
귀주 수복전단에서 이 기습을 알아채지 못한 채로 당한다면 그야말로 큰 피해를 보게 될 것이다.
그나마도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지휘관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지는데, 이렇듯 비가 쏟아지는 밤에는 지휘도 쉽지 않다.
전투로 인한 각종 소음에 비 쏟아지는 소리까지 더해져, 지휘하기 위해 고함을 질러도 음성이 전달되는 범위가 한정되기 때문이다.
비로 인해 시야가 줄어드는 점도 문제다. 상황 파악이 어려워져서 지휘도 더 어려워진다.
제갈수광이 다시 전음을 보내왔다.
[어서 임시 주둔지 쪽으로 가서 알리고 싶으나 정찰조만으로 움직이는 건 매우 위험하다. 적의 수가 저 정도로 많으면 기습을 알리러 가는 중에 오히려 우리가 포위되거나 고립될 수 있다. 적측에서도 고수들을 대동했을 테니까.]
[예.]
내가 대꾸하자 제갈수광이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듯하더니 말했다.
[결국 본대가 합류하면 같이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 설령 임시 주둔지가 기습을 당하더라도, 본대와 함께 최대한 서둘러서 가면 많이 늦지는 않을 것이다. 그때부터라도 열심히 싸워서 귀주 수복전단이 전열을 가다듬도록 도울 수밖에.]
현재로서는 제갈수광의 말대로 하는 게 상책이기는 하다.
그러나 최상책은 아니다.
제갈수광에게 말했다.
[교관님 말씀대로 하면서 임시 주둔지 쪽에 기습을 알릴 방법도 있기는 합니다. 위험 부담도 그리 크지 않고요.]
내가 대꾸하자 제갈수광이 나를 빤히 바라봤다.
죽립의 챙을 타고 빗물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그 안으로 보이는 그의 눈동자가 착 가라앉아 있다.
잠시 그 상태로 나를 바라보던 제갈수광의 양미간에 급격하게 골이 깊어지고 있다. 드디어 내 의도를 알아챈 것이다.
[너 이 자식……, 혼자서 위험을 무릅쓰려는…….]
제갈수광의 말대로다.
내가 지금 곧장 임시 주둔지로 향하면 적의 기습 전력보다 더 일찍 도착할 가능성이 크다. 나는 빠르니까.
[혼자서 위험을 무릅쓰려는 게 아닙니다. 제가 혼자 움직이면 딱히 위험할 일이 없습니다. 아시잖습니까. 제 속도와 은잠술 실력.]
속도와 은잠술이야말로 생존과 직결되는 역량이다.
자신 있다는 표정으로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는데, 제갈수광은 묵묵히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에게 다시 전음을 보냈다.
[자다가 기습당하는 상황과 기습당하기 직전에라도 경보를 듣고 깨어나는 상황은 매우 다르잖습니까.]
제갈수광에게서는 이번에도 대꾸가 없었다.
[교관님도 아시다시피 광서 수복전이 무난하게 진행된 이유는 우리가 광서 수복전단의 전력을 최대한 지켜줬기 때문입니다. 같은 의미에서, 귀주 수복전단이 입을 피해도 최소화할 필요가 있는 거잖습니까.]
제갈수광은 이번에도 바로 대꾸하지 않은 채 묵묵히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 상태로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그의 전음이 들려왔다.
[최소한 임 선배님이라도 모시고 가는 건 어떤가.]
[염려돼서 그러시는 건 압니다만 이런 상황에서는 저 혼자인 편이 더 낫다는 거, 교관님도 이해하시잖습니까. 그리고 이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제 도착 시간만 더 늦어질 겁니다.]
결국 제갈수광이 한숨을 내쉬었다.
[후……. 알았다. 큰 행낭은 벗어두고 서둘러 가 봐. 행낭은 우리가 알아서 은닉해 둘 테니.]
이에 나는 곧바로 등에 멘 행낭을 벗어서 내려놓고, 그 행낭 위에 결속시켜뒀던 전투용 소형 행낭을 풀어서 등에 딱 달라붙게끔 멨다.
준비를 마치자 제갈수광이 내 눈을 직시하며 말했다.
[약속해, 송유겸. 빤한 위험 속으로 혼자 무리해서 뛰어드는 일, 결코 없을 거라고.]
[약조하겠습니다.]
[만약 그 약속을 어기고 무리해서 위험 속으로 뛰어들면, 우리 사이에서 유지되고 있던 신뢰는 그걸로 끝인 줄 알아. 알았어?]
저기요, 잠시만요. 뭘 또 그렇게까지 엄포를 놓으신단 말입니까.
물론 그가 왜 저렇게까지 말하는지 모를 내가 아니다.
[알겠습니다.]
[그래. 조원들에게는 내가 설명할 테니 너는 바로 가. 우리도 본대가 합류하면 즉시 쫓아갈 테니.]
[예. 이따 뵙겠습니다.]
나는 대꾸하자마자 주변의 음영 속으로 숨어든 뒤, 나무들 사이로 경공을 펼치기 시작했다.
감각을 넓게 퍼트린 채 빠른 속도로 경공을 펼쳤다.
오랜만에 빠르게 달려서인지 기분이 상쾌하다.
나는 틈틈이 지대가 높은 곳을 지나치며 적의 이동 상황을 눈으로 확인했다.
그런 식으로 이동하다 보니 어느 순간 적들을 따라잡을 수 있었고, 이후에는 그들을 지나쳐 앞서갈 수 있었다.
나는 적들을 앞지른 후에도 방심하지 않고, 수상한 기척이 느껴지면 은잠술을 펼치며 빙글 돌아서 이동했다.
빗줄기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
이제 거의 다 왔다.
저 앞을 막고 있는 산마루 뒤쪽으로 봉우리가 보이는데, 그곳이 바로 목적지다. 저 봉우리 아래의 완만한 골짜기에 귀주 수복전단의 임시 주둔지가 자리 잡고 있다.
애초에 먼 거리가 아니었기에 내 경공 속도로 금세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이후에는 은잠술을 적당한 수준으로 유지하고 은폐물들을 적절히 활용해가며 산을 탔다.
일대의 기척에 집중하며 한동안 산을 오르다 보니 머지않아 산마루에 가까워질 수 있었다.
뭔가 이상하다.
상식적으로, 적어도 저 산마루 위의 요소요소에는 귀주 수복전단 측의 외곽 경계조가 배치되어 있어야 한다. 경계를 포기한 게 아니라면 무조건 배치되어 있어야 한다.
한데 경계조로 보이는 이들의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있다.
이에 나는 은잠술을 높은 단계로 운용하며 더 조심스럽게 위쪽으로 접근했다.
집중해서 주변의 기척을 살피며 접근하는 중인데, 역시나 사람의 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 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희미하게나마 피비린내를 맡은 탓이다.
은밀히 호흡하며 혈향이 나는 곳을 추적했다.
찾아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알고 보니 위쪽에서 흘러 내려오는 빗물에 혈향이 섞여, 내 주변으로 흐르고 있는 거였으니까.
이에 나는 은잠술을 최대한으로 펼친 채, 자세를 낮추고는 더욱 조심스럽게 산마루로 접근했다.
혈향을 따라서.
이윽고 산마루에 다다랐다.
덤불 뒤에 숨어서 산마루 위의 상황을 확인한 순간, 나는 눈매를 좁히지 않을 수 없었다.
산마루를 따라 이어지는 소로에 세 구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올라오며 맡았던 혈향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알 것 같았다.
시체에 대한 궁금증이 매우 크지만, 나는 일단 대기하며 일대의 기척을 다시 한번 탐지했다.
딱히 의심할 만한 요소는 없다.
나는 그제야 자세를 낮추고 시체들 쪽으로 다가갔다.
일단 시체들의 복장만으로는 아직 적인지 무림맹 측 무인인지 확인하기가 어렵다.
광서 수복전단의 경우에도 복장은 각양각색이었다. 각자 가슴께와 허리띠 위치에 정해진 표식을 부착했을 뿐이다.
특전반과 특무강습대에게는 운룡패가 지급되었기에 우리는 허리께에만 작은 표식을 부착했었다. 지금도 부착하고 있다.
시체들 앞에 도착했다.
내가 먼저 확인한 건 시체들의 무기다.
두 명은 검을 쓰는 듯하고 한 명은 도를 쓰는 듯한데, 셋 다 각자의 병장기조차 뽑지 못한 모습이다. 격전의 흔적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암습에 당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후에는 시체를 한 구, 한 구 자세히 살폈다.
병장기조차 뽑지 못한 모습에서부터 예상했는데 역시나 셋 다, 단 한 수씩에 절명했음을 알 수 있었다.
결국 이 세 사람을 죽인 자는 암습에 능한 살인 전문가.
즉, 자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