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351
시체 한 구는 등 뒤에서 찌른 검에 심장을 관통당했다. 살펴보니 협봉검에 당한 상처다. 협봉검은 찌르기에 특화된, 볼이 좁은 기형검이다.
또 한 구는 뒷머리에 비수가 박혀 있다. 혹시 비수에 특징이라도 있을까 싶어서 조심스럽게 빼내 봤는데 그냥 평범한 비수였다.
다른 한 구는 좌전방 하단으로부터 비스듬히 심장을 찔러 온 검에 의해 당했다. 상처를 살펴보니 일반적인 장검은 아니고, 소검쯤 되는 듯하다. 자객들은 장검보다는 소검을 선호하는 자들이 많다.
종합해 보면 자객은 두 놈이다.
협봉검을 쓰는 놈이 비수까지 써서 두 명을 처리하고, 소검을 쓰는 놈이 나머지 한 명을 처리한 듯하다.
소검을 쓴 놈은 솜씨가 나름 깔끔한 것으로 보아 중급자객은 되는 듯하다. 틈을 노려서 단번에 치명상을 가하는 자객의 전투 특성상, 중급자객만 돼도 일류고수를 처치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협봉검을 쓰는 놈의 솜씨는 매우 깔끔하다. 그는 중상급 수준이거나, 어쩌면 상급자객일 수도 있을 것이다.
자객들을 동원한 건 당연히 적측일 테니, 이 시체 세 구는 귀주 수복전단의 외곽 경계조일 수밖에 없다.
외곽 경계조는 이 산마루의 길을 따라 배치되어 있었을 텐데, 이들이 죽었다면 다른 지점의 경계조도 처리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적잖은 수의 자객들이 동원되었을 것이다. 가뜩이나 이렇듯 비가 쏟아지는 밤중이니 자객들이 임무를 수행하기에도 매우 좋은 조건이다.
자객에 의해 외곽 경계조가 조용히 처리되었다면 귀주 수복전단의 임시 주둔지에서 적의 기습을 알아챘을 가능성은 더 작아진다.
이렇듯 사전 준비가 끝난 상태이니, 적측에서는 무인들 수백 명이 당도하자마자 대대적인 기습 공격을 개시할 것이다.
시간이 별로 없다.
나는 즉시 산마루의 반대편 경사면으로 내려갔다.
머지않아 산 아래의 골짜기에 가까워졌다.
이제 저 골짜기를 건넌 후, 능선을 타고 산 위로 올라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다 보면 산허리 부근에 완만하고 널찍한 골짜기가 나올 텐데, 그곳이 귀주 수복전단의 임시 주둔지다.
한데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저 산 위로 올라가려면 골짜기를 지나야 하는데, 폭우로 계곡물이 엄청나게 불어나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 골짜기는 능선과 능선 사이의 작은 골짜기가 아니라 산과 산 사이의 큰 골짜기다. 큰 골짜기다 보니 불어난 계곡물의 폭도 매우 넓다. 삼 장도 넘는다.
고개를 돌려 상류와 하류 쪽을 훑어봤는데, 계곡물의 폭은 대동소이했다.
물론 이 정도 거리는 일류고수만 되어도 신법으로 어렵지 않게 뛰어넘을 수 있다.
문제는 그동안에 내 은잠술이 풀린다는 점이고, 신법을 펼치는 동안 내 기운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만약 누군가가 인근에 은신하고 있다면 내 존재가 들킬 수밖에 없다.
계곡물 근처까지 다가가서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눈을 감은 후 주변의 기운을 탐지했다.
다행스럽게도 거슬리는 기운은 딱히 잡히지 않는다.
눈을 뜨고는 내공을 최소한으로만 끌어올린 후, 잽싸게 반대편 물가를 향해 도약했다.
거센 물살 위를 날아 금세 반대편 물가에 도착했고, 사뿐히 착지한 후 곧장 자세를 낮추며 은잠술을 운용했다.
그러고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려 할 때였다.
[귀하는 누구요?]
문득 들려온 전음에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전음이 들려온 방향은 좌전방이다. 그쪽에 상당히 높게 솟아오른 나무 몇 그루가 서 있는데, 그중 한 곳이다.
안력을 돋우니 나무 꼭대기 근처의 가지 위에 하나의 인영이 보였다.
아, 하나가 아니다. 좀 더 먼 쪽에 있는 나무 꼭대기에도 하나가 더 있다.
방금 주변의 기운을 탐지할 때 당연히 저 높은 나무들의 상단 쪽으로도 탐지 기운을 퍼트렸었다.
아마도 저자들이 제법 높은 수준의 은잠술을 펼치고 있었던 모양이다.
더해서, 쏟아지는 비로 인해 내 탐지 기운이 저 높은 곳에는 다소 약하게 도달한 게 아닐까 싶다.
옘병.
전음을 통해 전해진 기운은 사마 계열의 기운이다.
즉, 저자들은 적이다.
망을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곳에서 임시 주둔지까지는 그리 멀지 않으니까.
가까운 쪽에 있는 나무 위의 인영에게 태연한 어조로 대꾸했다.
[하하, 수고가 많으시구려.]
[어떻게 이곳까지 온 것이오? 지금은 상황이 상황이라 여기까지 들어오는 건 통제되고 있을 텐데?]
저자가 내 말을 받아주고 있는 이유는 내 전음의 기운에서 백도인 특유의 정기를 못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차피 저들은 사파, 혈교, 마교가 섞인 잡탕이라, 백도의 기운만 아니면 될 테니까.
[아, 나는 상부의 명을 받고 계곡물을 확인하러 다니는 중이오. 물이 너무 많이 불어나 있으면 작전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으니.]
캬! 내가 대꾸해 놓고도 기가 막힌다. 순간적으로 어떻게 이런 임기응변이 튀어나왔을까.
나무 위에서 대꾸가 들려왔다.
[수고가 많은 줄은 알지만, 그래도 귀하가 누구고 소속이 어디인지는 확인해야겠소. 암흑멸천.]
마지막에 붙인 ‘암흑멸천’이라는 말은 암구호다.
젠장, 귀찮게 됐다. 내가 저들이 정한 암구호를 알 리가 있나.
대충 둘러댈 수밖에 없다.
[아차차, 그러고 보니 내가 오늘 상관을 모시느라 바빠서 암구호 외우고 나오는 걸 깜빡했구려. 물론 귀하가 볼 때는 의심스럽겠지만 이거 진짠데……. 아하하.]
[네놈은 누구냐!]
날카로운 외침이다.
역시 암구호를 못 받아주면 이렇게 될 수밖에 없지.
나와 전음을 주고받던 자가 나무 위에서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곧바로 다른 나무 위에 있던 자도 뛰어내리고 있다.
이에 나는 즉시 능선 위쪽을 향해 경공을 펼쳤다.
적들은 아직 바닥에 착지하지 못한 상태인데, 그 와중에도 내게 암기를 날리고 있다.
곧, 수많은 암기가 내게 날아들었다.
비수 여섯 자루에, 비도 여섯 자루다.
한 놈은 비수를 날리고 다른 놈은 비도를 날린 것이다.
둘 다 암기술 솜씨가 제법이다.
비수를 날린 놈은 나와 전음으로 대화를 나눴던 자인데, 경지는 절정의 초중반쯤인 듯하고, 비도를 날린 놈은 절정의 초반쯤인 듯하다.
나는 경공 속도를 높여서 암기가 날아드는 범위에서 벗어났다. 그 와중에도 아슬아슬하게 벗어난 척했다.
사실 저 둘을 처리하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이라도 더 빨리 귀주 수복전단의 임시 주둔지에 가야 한다.
이후에 뒤에서 또다시 암기들이 날아들었고, 나는 이번에도 아슬아슬 피한 척하며 회피해냈다.
두 놈이 경공을 펼치며 계속 쫓아왔지만, 나는 그들보다 약간 더 빠른 속도로 달리며 차츰 거리를 벌렸다.
빼어난 고수인 것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아슬아슬하게 피하고, 적당히 빠른 속도로만 달리고 있는 것이다.
저들이 가서 나를 빼어난 고수라고 보고해버리면 그것도 그것대로 좋지 않으니까.
참고로 저들은 호각을 불며 난리를 피울 수가 없다.
그렇게 되면 저들이 임의로 기습 작전을 완전히 망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놈들은 오래 추격하지 않고 금세 돌아섰다.
어차피 저들로서도 나를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에서 더 추격하는 건 의미가 없다. 차라리 조금이라도 더 빨리 상급자에게 보고하는 게 낫다.
보고가 올라가면 적측 지휘부에서도 기습을 서두르게 될 것이다.
이에 나는 경공 속도를 더욱 끌어올렸다. 이제는 임시 주둔지까지 멀지 않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가는 길에 적과 마주치면 속도를 이용해서 떨치고 가면 된다.
능선을 타고 달리다 보니 저 멀리 천막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완만한 골짜기 위에 수많은 천막이 운집해 있는 모습이다.
곧장 그쪽으로 향했다.
다가가면서 탐지해 보니, 경계조로 추측되는 기운들이 천막촌의 외곽을 빙 두르고 촘촘히 배치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윽고 천막촌에 가까워지자 전방의 나무 위에서 굵고 짧은 외침이 들려왔다.
“멈추시오!”
이에 나는 천천히 경공을 멈췄다.
외침이 들려온 나무는 잎이 무성한데, 그 위에 무인 두 명이 있다. 그중 한 명이 외친 것이다.
참고로 저 나무의 좌측 사오 장 옆에 있는 나무에도 무인 두 명이 배치되어 있고, 우측 사오 장 옆에 있는 나무에도 무인 두 명이 배치되어 있다.
저 간격으로 경계조가 쭉 배치된 것이다.
인상적인 점은, 가까운 곳에 있는 중형 막사 안에서도 무장한 무인 세 명이 재빨리 튀어나왔다는 사실이다.
참고로 저 중형 막사 안에는 무인이 몇 명 더 있다. 대기조인 듯하다.
전체적으로 경계 태세가 나쁘지 않아 보인다.
곧 전방의 나무 위에서 한 사람이 떨어져 내렸다.
착!
회색 무복을 입은 사내다. 의외로 옷이 비에 그다지 젖지 않은 모습이다. 바닥에 착지하고 나서야 상의가 비에 젖어가고 있다.
안력을 돋워서 나무 위를 보니 어두운색의 작은 천막이 나뭇가지들에 연결되어 펼쳐져 있다. 저 작은 천막이 비를 막아주고 있었던 것이다.
적절한 조치다. 무인이라고 해도 움직이지 않는 상태로 계속 비를 맞고 있으면 몸에 무리가 가는 건 당연지사다.
착지했다가 몸을 일으키는 회의무인을 향해 말했다.
“곧 적들의 대대적인 기습이 시작될 겁니다. 급박한 상황이기에 본론부터 말씀드리는 겁니다.”
죽립 안으로 회의무인의 눈매가 좁혀지는 게 보인다.
“뭐, 뭐요……? 귀하는 대체 누군데 불쑥 나타나서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오?”
“제 정체부터 파악해야 하는 게 여러분의 임무일 테지만, 사안이 사안인 만큼 여러분 중 한 분은 곧바로 지휘부에 가서 제 말을 전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회의무인의 눈매가 더 좁혀졌다.
나는 즉시 말을 보탰다.
“만약 제 말을 무시하다가 제 얘기가 현실이 되면 이곳 전체가 큰 화를 당하게 됩니다. 반대로 제 말이 거짓이라 해도, 이곳이 손해 보는 거라고는 모두가 잠시 잠을 설치는 일 정도에 불과합니다.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내 말이 끝나자마자 회의무인이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천막에서 나온 자들 쪽이다.
아마도 전음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러자 천막에서 나온 세 명 중 한 명이 황급히 천막촌 안쪽으로 달려갔다.
일단은 안심이 된다.
회의무인이 다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곧바로 물었다.
“자, 이제는 귀하가 누군지 말씀해주시겠소?”
이에 나는 죽립을 머리 뒤로 넘겼다.
회의무인이 살짝 놀라는 모습이 보인다. 당연히 내 외모 때문일 것이다.
“소생은 강서 땅에서 온 송유겸이라 합니다.”
“송유겸……?”
회의무인이 내 이름을 되뇌는 사이, 나무 위쪽에서 한 줄기 음성이 들렸다.
“송유겸이라면 설마 그, 동천비룡?”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나무 위에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회의무인의 눈은 휘둥그레지는 중이다. 천막에서 튀어나왔던 무인들도 마찬가지다.
곧 나무 위에 있던 무인이 착지했다. 죽립을 쓰고 있고, 남색 무복을 입고 있다.
남의무인이 말했다.
“동천비룡은 기가 막힌 미남이라고 들었는데, 확실히 그 조건에는 부합하는 것 같은데…….”
“이걸 확인해 보시오.”
나는 그렇게 대꾸해준 후, 품속에서 이성운룡패를 꺼내서 한 차례 들어 올려 보였다. 무기가 아님을 확인시켜 주기 위함이다.
이후에는 이성운룡패를 천천히 남의무인에게 던졌다. 남의무인이 선임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이성운룡패를 확인하는 남의무인의 눈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무인들에게 말했다.
“저는 직전까지 남궁묵 공자, 제갈수광 교관님 같은 분들과 함께 광서 수복전에 참전했었습니다. 근래 그쪽의 일이 정리되어 이곳을 돕기 위해 온 겁니다. 제가 말씀드린 두 분도 지금 이곳으로 오고 계십니다.”
단목진과 문숙경은 일부러 언급하지 않았다.
그 두 사람까지 언급하면 오히려 이들이 비현실적이라고 여길 것 같기 때문이다.
회의무인이 내게 물었다.
“정말로 남궁묵 공자와 제갈 교관 같은 분들도 이곳으로 오고 계신 거요?”
“그렇습니다. 은밀히 이동하던 중에 적측의 무인 수백 명이 이 방향으로 경공을 펼치고 있는 모습을 보고, 걸음이 빠른 제가 먼저 이곳으로 알리러 온 겁니다.”
“수, 수백 명이라고 했소?”
“그렇습니다.”
내가 대꾸하자 이번에는 남의무인이 말했다.
“이성운룡패가 확실한 것 같구려. 동천비룡이라면 이런 귀한 걸 소지할 자격 또한 충분하다고 생각되오. 여러 면에서, 귀하는 송유겸 공자가 확실한 듯 보이는구려. 이 사실 또한 즉시 지휘부에 알리겠소.”
말을 마친 남의무인이 뒤돌아서 전음을 보내자, 천막에서 나왔던 무인 중 한 명이 또다시 천막촌 안쪽으로 달려갔다.
그때쯤, 여기저기에서 호각 소리와 함께 ‘비상!’이라고 외치는 고함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됐다.
적어도 이곳이 자던 중에 기습당하는 최악의 상황만큼은 막았으니까.
귀주 수복전단의 지휘부에서 나왔다는 무인이 서둘러 나를 천막촌 안으로 이끌었다.
내가 도착한 곳은 커다란 막사였다. 지휘 막사일 것이다. 네 명의 무인이 밖에서 지키는 중이다.
막사 안으로 들어서니 세 명의 중년인이 탁자를 가운데에 두고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들이 귀주 수복전단의 지휘부일 것이다.
딱 봐도 고수들이기도 하다.
탁자의 상석에 앉은 인물이 말했다.
“자신을 송유겸 공자라고 밝혔다지? 죽립 좀 벗어보겠나?”
이에 내가 죽립을 벗어서 뒤로 넘기자 상석의 중년인이 반색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 정말로 내가 몇 년 전에 봤던 그 얼굴이군!”
그러자 탁자 좌우에 있는 두 중년인도 환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서며 상석의 중년인에게 호응했다.
“오호! 정말 그 송유겸 공자였군요!”
“워허허허! 동천비룡 송유겸 공자가 이 시간에 이곳에 나타나다니!”
세 중년인은 나를 알아보고 있는데, 나는 저들을 도무지 모르겠다.
그들에게 포권하며 말했다.
“송구합니다. 우매한 후배가 강호 경험이 일천하여 선배님들을 몰라뵙겠습니다.”
그러자 탁자 좌측의 중년인이 내게 말했다.
“반갑네, 송 공자. 나는 호북 위가무문의 부문주인 위태창이라고 하네. 몇 년 전에 송 공자가 통합 잠룡대전에서 우승할 때, 객석에서 송 공자를 봤었지!”
이에 나는 위태창을 향해 포권하며 인사했다.
“아, 그러셨군요.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위 부문주님.”
위태창은 통통한 체구에 인상이 다소 험악해 보이고, 째지는 목소리의 소유자다. 한데 인상과 달리 눈동자는 선해 순해 보인다.
이번에는 탁자 우측의 중년인이 말했다.
“반갑네. 나는 장씨세가의 장종담이라는 사람일세. 내 형님이 현 가주시지. 위 부문주와 함께 귀주 수복전단의 부단주를 맡고 있네. 참고로 나도 몇 년 전의 통합 잠룡대전 당시에 객석에서 송 공자를 봤었다네.”
장종담에게도 포권하며 인사했다.
“아, 안녕하십니까, 장 선배님.”
장종담은 다소 마른 체구에 평균 신장이고, 청수한 인상이다.
장씨세가는 호남의 장사에 있으며, 천하 세가 서열에서는 이십 위에서 삼십 위 사이다.
이번에는 상석의 중년인이 말했다.
“우리를 모른다고 해서 미안해할 것 없네. 직접 인사를 나눠본 적이 없으니 모르는 게 당연하지.”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서문세가의 서문범이라는 사람일세. 귀주 수복전단을 지휘하고 있지. 나도 몇 년 전의 통합 잠룡대전 때 객석에서 송 공자를 봤었다네.”
세 사람 모두 내 얼굴을 알아보기에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통합 잠룡대전 당시에 봤던 거였다.
서문범에게도 포권하며 인사했다.
“그러셨군요. 후배 송유겸이 인사 올립니다.”
서문범은 평균보다 큰 신장에 당당한 체구고, 쾌남형의 인상이다.
중경의 서문세가는 현재의 천하 세가 서열에서 십 위 안으로 평가받는 명가다.
유명한 세가인 만큼, 나는 서문범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다.
현 서문세가주인 서문경은 노인인데, 서문범은 서문경과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막냇동생이다.
돌이켜 보니 서문범은 내가 네 번째로 만나는 서문세가 사람이다.
처음으로 본 건 가주 서문경이다. 통합 잠룡대전 당시에 강호명숙들이 소개될 때 봤었다.
다음으로 본 건 서문규다. 서문규는 내가 참가했던 통합 잠룡대전에 남부지맹의 관도로 출전했었다. 그는 십육강전에 진출했는데 안타깝게도 추소륵을 상대로 만나며 탈락했었다.
세 번째로 본 건 가주 서문경의 차남인 서문걸이다. 나는 기동타격조 활동 시기에, 동갑도에서 서문걸과 함께 작전을 펼쳤었다. 당시에 서문걸은 천무대의 삼 조장이었다.
그리고 네 번째가 바로 눈앞에 있는 서문범이다.
서문범이 말했다.
“주둔지 전체에 비상 경계령을 내렸네. 지금쯤이면 다들 무장하는 중이겠지. 아까 얼핏 듣긴 했네만, 송 공자가 여기까지 와서 적의 기습에 대해 전해주게 된 사정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군.”
“아, 예. 그게 실은…….”
이후에 나는 혼자 여기까지 오게 된 과정을 간략하게 설명해줬다.
내 얘기를 모두 전해 들은 서문범이 말했다.
“우리를 위해 홀로 위험을 무릅썼군. 고맙네. 정말 고맙네.”
장종담과 위태창도 한마디씩 보탰다.
“고맙네. 참으로 대견스럽군.”
“으허허! 대단하군! 세인들이 괜히 동천비룡, 동천비룡 하는 게 아니었어!”
세 사람에게 대꾸했다.
“과찬이십니다. 오면서도 늦으면 어쩌나 했는데 이렇듯 대비할 수 있게 되어 다행입니다.”
서문범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자객이라…….”
“사인을 살펴봤는데 실력이 상당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시체들의 무복을 보니 가슴팍과 허리께에 부착되어 있어야 할 표식들이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꿰매져 있던 걸 누군가가 칼로 조심스럽게 떼어 간 겁니다. 그 자객들이겠지요.”
내 말에 세 사람은 놀란 표정이 되었다.
“허……! 그렇다면 정말로 조심해야겠군.”
서문범이 그렇게 말하더니 장종담과 위태창에게 말했다.
“두 분도 지휘 시에 각별히 조심하시오. 각급 지휘관들에게도 자객의 존재에 대해 알려 주시고.”
“그리하겠습니다. 그럼 저는 바로 나가서 상급 지휘관들을 소집하여 전투 준비 상황을 점검하고, 자객에 대해서도 얘기해주겠습니다.”
장종담이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서자 위태창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도 나가서…….”
위태창은 말을 마치지 못했다.
콰광! 콰아아아앙-
별안간 벽력탄 터지는 소리가 들려온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