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356
한 번 앞지른 후로, 내 뒤를 쫓아오고 있는 단목진, 문숙경과의 거리가 점점 더 벌어지는 중이다.
지금의 나는 그 정도로 빠르게 달리고 있다.
한낱 절정고수가 최절정고수들보다 더 빨리 달리고 있으니, 나중에 단목진과 문숙경 앞에서 뭐라고 얼버무려야 하나 싶다. 얼버무리는 게 썩 통할 것 같지도 않지만.
그래도 소문내지 말아 달라는 부탁 정도는 해둬야겠지.
저 멀리 전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능선을 넘어서 내려가고 있다 보니 우리 쪽의 고도가 높은 상태다. 그래서 내려다보이는 것이다.
전장은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와 고함, 비명 등으로 상당히 소란스러운 상태다. 이 정도 소음이 일정 범위 이상 퍼지지 않은 이유는 쏟아지고 있는 비 때문이다.
집중해서 살펴보니 대강의 전황을 알 것 같다.
기본적으로 다수가 얽혀서 전투를 치르고 있는 가운데, 근처에서 소수 인원 간의 전투도 따로 벌어지는 중이다.
일단, 다수 간의 전투는 우리 쪽이 열세인 듯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적측이 머릿수도 많고 절정고수의 수에서도 많이 앞서고 있기 때문이다.
근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수 간의 전투는 고수들의 전투다.
고수들 쪽의 전장에서는 제갈수광, 임려현, 남궁묵, 육화현의 기운에 더해 구윤광, 변예랑의 기운도 느껴진다.
구윤광은 단목세가의 정예 무력 조직인 검풍대의 대주로서 이번에 단목진을 수행하며 왔고, 변예랑은 검각의 정예 무력 조직인 해천대의 대주로서 문숙경을 수행하며 왔다. 경지는 둘 다 절정의 중반 즈음이다.
문제는 우리 쪽 고수들과 상대하고 있는 적측 고수들의 기운이다. 최절정으로 판단되는 기운만 세 개에, 절정의 후반으로 판단되는 기운도 두 개가 끼어 있다.
우리 쪽 절정고수 여섯 명이, 적측의 최절정고수 세 명뿐만 아니라 절정의 후반인 고수 두 명까지 맡고 있는 것이다.
전력 차가 그 정도로 심하다 보니, 고수들 쪽의 전투는 우리 쪽이 매우 열세인 걸 넘어, 위태로운 지경이다.
저대로는 금세 당할 것이다.
나는 이를 악문 채 고수들 간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방향으로 달렸다.
이대로는 늦는다.
더 빨리 가야 한다.
이 잠깐의 순간에도 우리 쪽 고수들이 죽을 수 있다.
실제로는 매우 빠르게 나아가고 있는데도, 마음이 급하다 보니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팔다리에 납덩어리라도 달린 듯, 몸이 무겁게 느껴지기만 한다.
섬과 쾌의 묘리에 대한 내 이해도가 조금만 더 높았더라면.
어렴풋이 잡힐 듯 잡히지 않고 있는 다음 깨달음에 이미 이르러 있었더라면.
그랬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빨리 나아갈 수 있었을 텐데.
평소 공부와 수련에 소홀했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이런 상황이 되니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내 답답함이나 아쉬움과는 별개로, 이 순간에도 전장과의 거리는 쭉쭉 가까워지는 중이다. 그렇다 보니 더 많은 정보가 자연스럽게 파악되고 있다.
일단 적측 최절정고수 세 명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혈교 쪽의 기운이며, 절정의 후반인 자들 두 명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사파 쪽의 기운이다.
사파 고수 두 명을 상대하고 있는 이들은 육화현, 구윤광, 변예랑이다. 이 대 삼의 대결이긴 한데, 사파 고수들과의 경지 차가 적지 않다 보니 우리 쪽이 열세다.
적 최절정고수 세 명을 상대하고 있는 우리 쪽 고수들은 제갈수광, 임려현, 남궁묵이다. 셋이서 각각 최절정고수를 한 명씩 맡고 있다.
상대와의 경지 차가 극심하다 보니, 세 사람은 그야말로 간당간당한 상황이다.
극도로 위태로운 상황인데도 왜 저런 구도가 되어 있는지 짐작이 간다.
우리 인원 중에서 최절정고수의 속도에 반응이라도 할 수 있는 고수들이 제갈수광, 임려현, 남궁묵뿐이기 때문이다. 저 세 명보다 경지가 낮은 이들은 저쪽 전투 판에 껴봐야 오히려 방해만 된다.
임려현과 남궁묵의 상대는 최소 중하위권 이상의 최절정고수인 듯하며, 제갈수광의 상대는 최소 중위권 이상의 최절정고수인 듯하다.
제갈수광의 상대가 가장 강하다.
그렇다 보니 이 순간에 가장 위태로운 사람도 제갈수광이다. 보아하니 당장 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인데, 쌍검술로 겨우겨우 버티는 중이다.
그런데 하필 제갈수광이 싸우고 있는 위치가, 내가 접근하고 있는 방향에서 가장 멀다.
남궁묵이 두 번째로 멀고 임려현이 상대적으로 가장 가깝다.
즉, 내가 제갈수광이 있는 곳에 당도하기 위해서는 임려현이 싸우고 있는 범위와 남궁묵이 싸우고 있는 범위를 차례로 지나쳐야 한다.
한데 임려현과 남궁묵의 상대도 최절정고수들인 만큼, 그들의 근처를 그냥 지나치는 건 어렵다. 분명히 방해받을 것이고, 그러면 오히려 나아가는 속도가 느려질 것이다.
결국 우회해야 한다. 하지만 너무 멀리 우회해서는 안 된다. 약간만 우회해야 한다.
이제 제갈수광이 있는 곳까지 남은 거리는 이십여 장.
나는 양손에 쇠구슬을 하나씩 준비했다.
강탄술 준비를 마쳤을 때쯤에는 거리가 약 십오 장으로 좁혀졌다. 매우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다 보니 금세 간격이 좁혀지는 중이다.
그때쯤, 임려현을 몰아붙이고 있던 최절정고수의 고개가 내 쪽으로 돌았다. 세 명의 최절정고수 중에서 현재 나와 거리가 가장 가까운 자다.
그도 내 접근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거리가 가까워진 만큼, 내가 본인을 공격할 수도 있으니 경계하려는 듯한 모습이다.
곧 그의 눈매가 급격하게 좁아졌다.
내 속도 때문일 것이다.
최절정고수인 단목진과 문숙경보다도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으니, 저 최절정고수의 입장에서도 심상치 않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나는 그를 공격할 것처럼 다가가다가, 적당한 시점에 방향을 살짝 틀었다.
첫 번째 최절정고수를 지나치자, 이번에는 남궁묵을 공격하고 있던 적 최절정고수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놈은 마침 남궁묵에게 강력한 공격을 퍼부은 직후다. 남궁묵은 매우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멀찍이 물러난 상황이다.
남궁묵을 상대하던 최절정고수가 나를 향해 비수 두 개를 던졌다.
저 최절정고수는 원래 저 비수를 남궁묵에게 던지며 재차 그쪽으로 쇄도할 작정이었을 것이다.
한데 마침 내가 엄청난 속도로 접근하고 있다 보니, 견제할 목적으로 내게 던진 것이다.
슈슉-!
두 자루의 비수가 정확히 내 복부와 가슴을 노리고 있다.
최절정고수가 날린 비수라서 기세와 속도가 만만치 않다.
내가 달려가는 속도도 있다 보니, 비수가 내게 다가오는 상대적인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
즉시 방향을 살짝 틀었다.
슥- 사악!
비수 하나는 팔을 들어 겨드랑이 사이로 흘려보냈는데, 다른 하나는 무복의 옆구리 쪽을 살짝 가르고 지나갔다.
분명히 비수가 옷만 가르고 지나간 것뿐인데도 옆구리 쪽이 후끈하다. 비수에 담긴 기운이 강력해서, 그 기운이 내 살갗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그래도 비수의 날이 피부에 직접 닿은 건 아니니 독 걱정까지 할 필요는 없겠다.
그때였다.
까아앙-!
제갈수광이 싸우고 있는 쪽에서 그런 소리가 났다.
제갈수광 쪽을 바라본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쌍검 중 한 자루가 허공으로 떠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대가 쳐낸 것이다.
저 제갈수광이, 무기를 놓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경지 차이가 심하다는 의미다.
게다가 직전의 공격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제갈수광은 자세마저도 살짝 무너져 있는 모습이었다.
문제는 이 순간에도 최절정고수의 도가 강력한 기세를 품은 채, 엄청난 속도로 제갈수광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자세가 무너진 상태에서 저 공격까지 막아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내 위치와 도를 든 최절정고수와의 거리는 아직 사 장가량.
저 정도 고수를 상대로 강탄술을 펼치기에는 다소 먼 거리다.
그럼에도 나는 지체하지 않고 양손의 쇠구슬을 튕겨냈다.
내 모든 힘을 다해서.
지금껏 내가 날렸던 모든 쇠구슬 중에서 방금 날린 쇠구슬의 속도가 가장 빠르다.
속도만 빠른 게 아니다. 담겨 있는 기운도 가장 단단하다.
하나는 최절정고수의 허리 한복판으로, 다른 하나는 오른쪽 허벅지 쪽으로 향하고 있다.
현재 저 최절정고수가 도를 휘두르고 있는 자세에서 힘이 온전하게 집중되려면, 하체가 단단하게 고정된 상태에서 허리가 축이 되어야 한다.
즉, 허리와 하체를 견제해주면 지금 휘두르고 있는 도의 위력도 반감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제갈수광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쌍검이라, 검이 하나는 남아 있으니까.
역시나 최절정고수가 허리를 기묘한 각도로 꺾으며 한쪽 발을 옮기고 있다. 내 쇠구슬들을 흘려보내기 위함이다.
그 상태에서 그의 도가 제갈수광의 검과 부딪쳤다.
채앵!
다행히 제갈수광의 검이 최절정고수의 도를 비껴냈다.
그러나 제갈수광도 온전한 자세가 아니었던 탓인지, 검을 쥔 오른팔이 뒤쪽으로 상당히 많이 젖혀진 상태다. 정면으로 막지 않고 비껴냈는데도, 도에 담긴 힘을 버텨내지 못한 것이다.
그로 인해 제갈수광의 정면이 열렸다.
그 순간 최절정고수의 도가 짧고 섬세한 호선을 그리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안에서 바깥으로 그어 가기 시작했다.
매끈하면서도 쾌속한 도로刀路.
역시 최절정고수는 최절정고수인 것이다.
즉시, 온 힘을 다해 소비도 여섯 자루를 털어냈다.
아까 쇠구슬을 날리자마자 양손 가득 뽑아 들었던 소비도다.
순간적으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하긴 했지만, 이 상황은 너무도 절망적이다.
두 사람 사이의 간격을 고려했을 때, 제갈수광의 속도로는 저 공격을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내 소비도들이 저 최절정고수의 근처에 이르기도 전에, 그의 도가 제갈수광을 가를 것이다.
“교관니이이임……!”
그렇게 외치며 최절정고수를 향해 빠르게 접근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내 머릿속은 점점 새하얘지는 중이다.
제갈수광이 격렬하게 몸을 비트는 모습이 보인다.
표정이 잔뜩 일그러져 있다.
그의 표정이 저렇게까지 일그러진 모습은 처음 본다.
몸을 비틀던 그가 눈동자를 돌려 나를 보고 있다.
찰나의 시선 교환일 뿐인데도 수많은 감정이 느껴진다.
신기하게도 그 모든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하다.
마지막 순간에 담긴 감정은 당부.
가족에 대한 당부다.
그도 최절정고수의 도를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저러는 것이다.
믿어지지 않는다.
현실 같지 않다.
제갈수광이, 저 사람이, 이렇게 죽는다고……?
아아아아……!
그 순간이었다.
내 전방의 숲속에서 제갈수광 쪽으로, 뭔가가 매우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느끼기에도 엄청나게 빠른 속도다.
한데 뭔가가 아니다.
사람이다.
그것도 내가 아는 사람이다.
아직 시야에 보이지는 않지만, 기운으로 알 수 있다.
남궁찬이다.
그 직후, 그가 숲에서 튀어나왔다.
머릿속이 멍하다.
당신이……, 왜 거기에서 나와?
불쑥 등장한 남궁찬이 제갈수광의 상체 앞으로 검을 쭉 뻗고 있다.
최절정고수의 도를 막으려는 것이다.
속도를 보니 어찌어찌 겨우 닿긴 할 듯하다.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남궁찬이 도의 힘을 어느 정도는 막아줄 테니, 제갈수광은 비록 다칠지라도 죽음만은 피할 가능성이 커졌다.
그래도 적잖이 다치긴 할 것이다.
최절정고수의 도가 남궁찬의 검을 강하게 때릴 것이고, 남궁찬의 검인(검의 날)이 제갈수광의 몸에 박힐 테니까. 겨우 개입한 저 상황에서는, 남궁찬의 검이 도의 강력한 힘을 많이 상쇄해주기는 어려울 테니까.
참고로 저 상황에서 검의 면으로 개입했으면 도의 강력한 힘 때문에 의해 검 자체가 동강 날 수 있다. 남궁찬은 그래서 검의 날로 개입한 것이다.
최절정고수가 도에 힘을 더 싣는 게 느껴진다.
저대로 남궁찬의 검을 강하게 때려, 제갈수광에게 조금이라도 더 큰 상해를 입힐 심산이다.
누구라도 저렇게 했을 것이다.
곧 최절정고수의 도와 남궁찬의 검이 마주쳤다.
카아아앙!
강력한 기운의 격돌이 일어났다.
그 직후, 나는 눈을 부릅뜨지 않을 수 없었다.
도를 쥐고 있는 최절정고수의 팔은 뒤로 크게 젖혀진 데 반해, 겨우 찔러 넣은 남궁찬의 검은 거의 밀려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뭐야? 왜 결과가 반대로 됐지?
어떤 원인들로 인해 저런 결과가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순간에 적어도 한 가지 원인만큼은 알 것 같다.
절박한 상황이 지나가고 나니 이제야 인지된 사실인데, 남궁찬의 기도가 매우 달라져 있다.
아무리 봐도 최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