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357
최절정고수가 신형을 기묘한 각도로 꺾으며 격렬하게 비틀고 있다. 도를 들고 있는 팔이 뒤로 젖혀진 김에, 그 힘을 활용해서 신형을 비틀고 있는 것이다.
내가 날린 소비도들에 대처하기 위함인데, 저런 식의 대응만 봐도 그가 수준급의 고수임을 충분히 알 수 있다.
네 자루의 소비도가 최절정고수의 곁을 스쳐 지나감과 동시에, 그의 도가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며 나머지 두 자루의 소비도를 비껴냈다.
태댕!
그런데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간 네 자루의 소비도 중 두 자루는 그의 뒤에 있는 남궁찬 쪽으로 향하고 있다.
하필 소비도 중 두 자루가 날아가는 궤적과 남궁찬의 진입 방향이 겹친 것이다.
도를 든 최절정고수도 그걸 노리고 흘려보낸 것이고.
태댕!
남궁찬도 검을 비스듬히 눕히며 두 개의 소비도를 비껴냈다.
안타깝게도 남궁찬은 소비도를 쳐내느라 최절정고수에 대한 공격을 곧바로 이어가지 못했다.
방금 최절정고수와 남궁찬이 각자의 도와 검으로 소비도를 비껴내는 모습을 확인하면서, 나는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궁찬의 검은 멀쩡한데, 최절정고수의 도는 날 한 부분의 이가 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니 더욱 의아해진다.
분명히 최절정고수는 도를 강하게 휘둘렀었고, 남궁찬은 그걸 막아주기 위해 겨우 검을 찔러 넣은 상황이었다.
누가 봐도 남궁찬이 불리한 구도였다.
그런데 오히려 공격 측이었던 최절정고수의 도가 반탄력에 의해 튕겨 나왔을 뿐만 아니라, 날의 이까지 나가 있다.
저런 정도의 결과 반전은 상식적이지 않다.
최절정고수의 도가 질 낮은 물건인지에 대해서도 잠시 의심해봤는데, 만약 그랬다면 제갈수광의 쌍검에 의해서도 조금이나마 날이 상했어야 옳다. 왕철양이 만들어낸 저 쌍검은 질적으로 명검이라 불러도 손색없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절정고수의 도는 남궁찬의 검과 격돌한 부분 이외에는 멀쩡했다.
이러면 내 상식선에서는 한 가지 결론밖에 남지 않는다.
강기罡氣.
검에 주입된 강기이니 검강劍罡이다.
무인이 내공을 병장기나 특정 신체 부위에 주입하면 아지랑이와 같은 형태의 기氣로 발현된다.
강기는 아지랑이와 같은 형태의 기가 단단하게 맺히며 유형화되는 기운이다. 당연히 일반적인 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기운이다.
과거에 강기는 초절정고수들만이 구사할 수 있는 상징적인 절기로 여겨졌었다.
그러나 현재는 무학이 발전하며 최절정고수들도 강기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최절정고수라고 해서 누구나 강기를 구사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소수의 인원만이 제대로 구사할 수 있다.
참고로 그 소수의 최절정고수들조차도 전투 중에 함부로 강기를 구사하지 않는데, 이는 최절정 수준에서는 잠시만 강기를 구사해도 내공 소모가 극심한 탓이다.
복기해보면, 아까 남궁찬은 강기를 구사하면서, 순간적으로 탄자결까지 높은 수준으로 운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제갈수광의 부상을 방지할 목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적 최절정고수의 도가 튕겨 나갔던 것이고.
덕분에 제갈수광은 멀쩡한 듯하다. 정말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나저나 내가 남궁찬을 마지막으로 봤을 때가 대여섯 달 전이었다.
그 당시 남궁찬의 경지는 최절정이 아니었다.
즉, 지난 대여섯 달 사이에 최절정에 오른 것이다.
그렇듯 최절정에 오른 지 얼마 안 된 시기임에도 검강을 구사하고 있다니.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나는 즉시 방향을 틀어 남궁묵을 공격하고 있는 적 최절정고수 쪽으로 향했다.
도를 쓰는 최절정고수는 남궁찬과 제갈수광이 알아서 할 수 있는 상황이다.
지금은 더 위험한 쪽을 도와야 한다.
남궁묵과 임려현 중에서 상황이 더 나은 건 아무래도 임려현 쪽이다. 그녀는 전문적인 전투 훈련으로 단련된 신룡대의 부조장 출신이라, 고수를 상대로도 노련하게 위기를 넘기고 있다.
그러니 지금은 남궁묵 쪽을 도와야 한다.
아까 나에게 비수를 던졌던 적 최절정고수가 남궁묵을 매우 맹렬하게 몰아붙이고 있다. 그렇다 보니 남궁묵은 더 위태로워진 상태다.
한데 내 눈에는 최절정고수의 다급함이 보인다.
나와 남궁찬이 제갈수광을 구하면서 상황이 급변한 데다가, 심상치 않은 백도의 기운 두 개가 빠르게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심상치 않은 백도의 기운 두 개란 단목진과 문숙경이다.
오른손으로 비룡검을 빼든 채, 남궁묵을 공격 중인 최절정고수의 후방을 공격했다.
그 와중에 근처에 있는 임려현 쪽의 상황도 틈틈이 살폈다. 그녀가 위험해지면 즉시 암기로 엄호해주기 위함이다.
천섬무는 중상 단계 정도로만 유지했다.
단전에 공력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다. 이전에도 천섬무를 높은 단계로 펼칠 일이 많았는데, 방금 천섬무를 최대한으로 펼치며 먼 거리를 이동한 후 격렬하게 움직이다 보니 공력 소모가 매우 컸다.
어쨌거나 내 견제 때문에 최절정고수도 더는 남궁묵에게 공격을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단목진과 문숙경이 올 때까지, 공력을 아끼면서 남궁묵과 임려현을 안전하게 지켜내려는 게 내 의도다.
그 의도대로 되어가고 있다.
그즈음, 아까 남궁찬이 왔던 방향으로부터 빠르게 접근하고 있는 일단의 무리를 파악할 수 있었다.
백도의 기운들이다.
서른 명쯤 된다.
한데 내게 익숙한 기운들이 많다.
저들을 이곳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아마도 남궁찬이 이끌고 온 모양이다.
그때쯤 도를 든 최절정고수에게서 짧은 외침이 들렸다.
“전원 퇴각!”
그도 단목진, 문숙경의 접근과 백도인들의 증원을 파악하고는 더 이상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명령 시점이 너무 늦었다.
남궁찬과 제갈수광의 맹렬한 협공을 막느라 정신이 없어, 우리 쪽의 증원에 대한 파악이 늦었던 모양이다.
어느새 다가온 단목진과 문숙경이 적 최절정고수들의 퇴로를 막으며 그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지금껏 남궁묵과 임려현이 맡고 있던 최절정고수들이다.
그 직후에는 남궁찬이 이끌고 온 것으로 추정되는 이들 서른 명이 다수 간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쪽으로 합류했다.
적들 다수는 명령에 따라 막 퇴각하기 시작한 시점인데, 퇴각이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특전반, 검풍대, 해천대의 무인들이 적 진형의 측면으로 빠르게 치고 나가며 퇴각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시 최정예 조직들다운 모습이다.
그 상황에서 장호산, 단목강, 남궁설, 추소륵을 앞세운 특무강습대가 사나운 기세로 적들을 밀어붙이기 시작했고, 방금 합류한 서른 명의 백도 무인들이 특무강습대를 보좌하는 형태로 전투를 수행하기 시작했다.
장호산의 외침이 들렸다.
“탄 조심! 침 조심!”
장호산이 다수 쪽의 전투를 지휘하고 있는 모양인데, 저 외침을 들으니 든든하다. 그도 경험이 쌓이다 보니 이쯤에서 적들이 탄이나 독침을 쓸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한 것이다.
“탄 조심! 침 조심!”
이어진 건 특무강습대원들의 복명복창 소리다.
새로 합류한 이들을 위해 복명복창해준 것이다.
저런 모습이면 딱히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탄이나 독침은 모두가 염두에 두고 있기만 해도 최소한의 대처는 가능하니까.
고수들 쪽의 전투는 우리 쪽이 매우 우세한 상황이다.
남궁찬과 제갈수광은 도를 든 최절정고수를 밀어붙이고 있고, 단목진은 남궁묵이 상대하던 최절정고수를, 문숙경은 임려현이 상대하던 최절정고수를 몰아붙이는 중이다.
특히 단목진과 문숙경은 상대 최절정고수와의 실력 격차가 적지 않다 보니 오래지 않아 승부를 결정지을 듯하다.
남궁묵과 임려현은 각자 상대하던 최절정고수들에게서 벗어나 육화현, 구윤광, 변예랑 쪽을 돕고 있다.
그렇게 되자 절정의 후반인 사파 고수 두 명의 상황도 곤란해졌다.
나도 즉시 두 명의 사파 고수 쪽으로 향했다.
두 놈이 동시에 강력한 범위 공격을 펼치며 암기를 뿌리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은 도주하기 전에 저런 식의 움직임을 보인다.
임려현, 남궁묵, 육화현, 구윤광, 변예랑 등이 놈들과의 간격을 일시에 벌리기 시작한 가운데, 사파의 고수 두 놈이 동시에 반대 방향으로 발을 박찼다.
역시나 내 예상대로 도주하려는 것이다.
이에 나는 측방에서 다가가며 놈들의 도주 방향을 향해 양손의 암기를 강하게 털어냈다. 왼손에서는 소비도를, 오른손으로는 철비정을 털어냈다.
사파 고수 두 놈이 깜짝 놀라며 속도를 급격하게 줄였다.
대충 쳐내면서 지나칠 수 있는 수준의 암기술이 아님을 아는 것이다.
곧 두 놈이 내가 날린 암기들을 쳐내기 시작했다.
태댕! 티디딩! 탱! 티디디디딩!
이에 나는 계속해서 놈들과의 간격을 줄이며 양손에 준비해뒀던 철비정을 쏟아냈다. 이전에 암기를 털어내자마자 양손에 잔뜩 뽑아 들었던 철비정들이다.
이번에도 놈들의 발을 붙들기 위해, 소수의 철비정으로만 놈들을 직접 노리고 다수의 철비정은 놈들의 전진 방향으로 날렸다.
그 후 왼손에는 비룡검을 들고 오른손에는 철비정을 쥐었다.
놈들이 발을 박차려다가 또다시 철비정들을 쳐내기 시작했다.
티디디디디디디딩!
그때쯤 남궁묵과 임려현이 놈들의 뒤로 따라붙었다.
두 사람은 실전 경험이 풍부하다 보니, 아까 간격을 벌리는 중에도 곧장 추격할 수 있는 방향으로 벌렸었다. 덕분에 금세 따라붙은 것이다.
나도 이미 놈들의 전방에 다다른 상태.
내 좌전방에 있는 놈에게 적당한 속도로 비룡검을 두 차례 찔러 넣음과 동시에, 우전방에 있는 놈에게는 철비정을 뿌렸다.
그렇듯 내가 발을 한 번 더 묶어 놓자, 남궁묵과 임려현이 뒤쪽에서 사파 고수 두 명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남궁묵과 임려현은 경지는 사파의 고수 두 명보다 낮지만, 실전 실력은 절정의 후반 못지않은 사람들이다. 두 사람이 괜히 조금 전까지 최절정고수들을 상대로 버틸 수 있었던 게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공격들이 매섭다.
최절정고수들을 상대로 일방적으로 당하고만 있었던 울분을 토해내는 느낌이다.
사파 고수 두 놈이 뒤쪽의 공격을 파악하기 위해 살짝 고개를 돌린 순간, 나는 순간적으로 천섬무를 최대한으로 운용하며 놈들을 향해 쇄도했다.
우전방에 있는 놈이 남궁묵과 임려현의 공격을 막기 시작한 상태에서, 좌전방에 있는 놈이 내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위험을 느낀 것이다.
놈이 눈을 부릅떴다.
잠깐 고개를 돌린 새에 간격이 확 좁혀져, 내가 그의 바로 앞에 있는 상황이니 놀랄 수밖에 없다.
놈을 향해 빠르게 비룡검을 두 차례 찔러넣었다.
슈슉-
놈이 신형을 격렬하게 비틀기 시작했다.
너무 가까운 거리라서 막을 수는 없고, 피해도 깔끔하게 피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놈이 결국 내 공격을 피하다가 무게중심이 완전히 흐트러졌다.
나는 그쯤에서 오른손에 쥔 쇠구슬을 가볍게 튕겨냈다.
툭! 푹!
쇠구슬이 놈의 무릎 근처를 관통했다.
놈에게서 짧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큭!”
디딤발 쪽 무릎을 다치다 보니 놈의 신형이 크게 휘청거렸고, 나는 즉시 비룡검으로 놈의 가슴을 찔렀다.
검을 뽑으면서 보니 우전방에 있던 사파 고수가 측면을 향해 발을 박차고 있었다. 또다시 도주하려는 것이다.
그러자 임려현이 놈의 도주 방향으로 철비정과 소비도를 쏟아냈다.
임려현의 암기술 또한 보통이 아니다 보니, 사파 고수의 도주도 방해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 틈에 남궁묵이 사파 고수를 향해 검법을 펼쳐냈다.
슈슉- 슈악- 슉-
남궁묵의 검이 눈 깜짝할 새에 사파 고수를 네 번이나 공격했다.
내가 알기로 저 검술은 한번 펼쳐지면 벼락이 몰아치듯 이어지는 쾌검식.
바로, 남궁세가의 섬전검뢰식이다.
채쟁! 챙! 캉!
사파 고수도 일견 잘 막아낸 듯하나, 자세히 보면 네 번 막는 동안 가속도를 제대로 못 쫓아갔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마지막 네 번째는 겨우 막아내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남궁묵의 검은 미끄러지듯 계속해서 쾌검식을 이어가는 중이다.
슈슈슉-
카강! 푹!
사파 고수는 결국 일곱 번째 이어지던 공격을 막지 못하고 복부를 찔렸다.
“컥……!”
신음이 흐를 때쯤, 다시 한번 짧게 이어진 여덟 번째 검에 사파 고수의 가슴이 찔렸다.
슉- 푹!
사파 고수가 그대로 쓰러졌다.
나와 남궁묵과 임려현은 미소 띤 얼굴로 시선을 맞추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남궁묵이 호흡을 고르며 내게 물었다.
“허억, 허억, 방금 왜 개입 안 하고 지켜만 본 거야? 사람 힘들어 죽겠는데. 허억, 허억…….”
섬전검뢰식이 이어지던 중에 내가 개입하지 않은 데 대한 이야기다. 농담조로 따지고 있는 것이다.
남궁묵의 말마따나 중간에 내가 개입했다면, 그의 검이 여덟 번째까지 이어지기 전에 끝났을 건 분명하다.
나도 호흡을 고르며 대꾸해줬다.
“하악, 하악, 하악, 뭔가 멋진 검법이 나오는 것 같길래 구경했죠. 하악, 하악, 남궁세가의 검법을 제대로 구경할 기회가 흔한 게 아니잖아요? 하악, 하악…….”
“허억, 허억, 멋지기는 무슨. 헉, 헉…….”
“학, 학, 멋졌습니다. 덕분에 안계도 넓어졌고요. 학, 학…….”
내가 대꾸하자 남궁묵이 남궁찬과 제갈수광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말했다.
“헉, 헉, 근데 우리 형은 또 웬일이래. 여기 나타난 걸로도 놀랐는데 저 기운은 또 뭐야? 헉, 헉.”
그러자 임려현이 대꾸했다.
“최절정의 기운이라는 거, 알잖아요. 후욱, 후욱. 저 나이에 최절정이라니. ‘역시’라고밖에는……. 후우, 후우, 후우…….”
참고로 남궁찬 쪽의 전투는, 그가 주도해서 적 최절정고수를 계속 몰아붙이는 가운데, 제갈수광이 적절하게 거들어주는 중이다.
남궁찬에게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최절정에 오른 지 오래되지 않았는데도 중위권의 최절정고수를 밀어붙이고 있다니.
보아하니 남궁찬은 속도의 우위를 바탕으로, 틈틈이 검강을 활용하고 있는 듯하다.
저런 식으로 검강을 활용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알고 있다.
기를 제어하는 남궁찬의 역량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역시 백도 최고의 재능.
명불허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