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안에 마교있다-369화 (369/416)

내 안에 마교있다 369

뇌산지소를 떠나온 지 사흘 차다.

십 조는 여느 때처럼 늦은 오후 무렵에 기상했고, 이동하기 위해 준비하며 각자 정비를 취하고 끼니를 때웠다.

관도들은 첫날의 이동이 끝난 후에는 다들 녹초가 되었었는데, 이틀 차의 이동이 끝난 후에 보니 첫날보다는 나았다.

그리고 오늘 일어난 모습들을 보니 어제보다 상태가 더 나아진 모습이다.

다들 인재들이고 기재들이다 보니, 힘겨운 중에도 스스로 체력과 기력을 조절하는 법에 대해 터득해가고 있는 것이다.

어둑어둑해지자 앞선 구 조로부터 신호가 왔고, 또다시 이동이 시작되었다.

오늘 밤에 우리는 귀양 남쪽에 있는 혜수현의 산지를 거쳐, 목적지인 귀양의 서부 산지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즉, 이 밤이 강행군의 마지막 일정이다.

극도의 주의가 필요한 일정이기도 하다.

귀주를 침공한 적들의 심장부가 귀양지부인데, 슬슬 그곳에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남서쪽으로 이동하던 우리는 해시 정(오후 10시) 무렵, 경유지인 혜수현의 남부 산지로 진입할 수 있었다.

이후, 우리의 앞에서 이동 중인 구 조는 한동안 서쪽으로 이동하다가, 자시 초(오후 11시) 남짓 되었을 때쯤에는 서북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예정대로다.

이제 이 방향으로 계속 이동하면 새벽 전에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힘겨운 이동 과정이 끝나가고 있음을 아는지, 경공을 펼치는 관도들의 발걸음도 조금은 가벼워진 느낌이다.

신호를 받고 휴식을 취하던 어느 순간, 십 장쯤 떨어진 높은 나무 위에서 추소륵의 전음이 들려왔다.

[회주, 와서 좀 보셔야 할 것 같소.]

그는 맹운표와 같이 경계를 서는 중이다.

즉시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추소륵이 있는 아름드리나무 쪽으로 향했다.

가볍게 도약하여 나무의 상단에 이르자 추소륵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전방의 신호를 좀 보시오.”

이에 안력을 돋워 전방을 살피자 구 조 쪽에서 깃발을 흔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휴식 시간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깃발을 짧고 빠르게 흔들고 있다.

“빠른 속도로 이동하라는 신호구려.”

내가 대꾸하자 추소륵이 말했다.

“그렇소. 지금껏 저런 신호는 처음이라, 회주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부른 것이오.”

“잘하셨소.”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해준 후, 깃발을 들고 있는 맹운표에게 말했다.

“답신해.”

“예.”

맹운표가 대꾸하며 아래로 떨어져 내리더니 나무 기둥의 옆에 서서 깃발을 짧고 빠르게 흔들기 시작했다. 나무 위에서는 나뭇잎 때문에 깃발이 잘 보이지 않으니 아래로 내려간 것이다.

그러자 구 조 쪽에서 잠시 신호를 멈췄다가 다시금 깃발을 짧고 빠르게 흔들어 보였다.

우리의 답신을 알아들었다는 의미다.

확인을 마친 후, 나도 조원들에게 가서 출발을 알렸다.

일 열에서 추소륵과 함께 달리며 경공 속도를 끌어올리자 조원들도 부지런히 쫓아오기 시작했다.

옆에서 추소륵이 전음을 보내왔다.

[축시 초(오전 1시) 남짓인 듯하니 앞으로 한두 시진만 더 조용히 가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 터인데. 대체 무슨 상황이 발생했기에 갑자기 이러는지…….]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줬다.

귀 기울여봤는데 전투 소리 같은 건 들리지 않는다.

사실, 선두 쪽에서 상황이 발생한 거라면 아직 이곳까지는 안 들리는 게 정상이긴 하다.

열 개 조라고 해도 각 조 사이의 간격이 제법 먼 데다가, 행렬의 뒤쪽인 구 조와 우리 십 조는 앞선 조들보다 조금 더 먼 반경으로 우회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측 첩보조의 시야를 최대한 피하기 위함이다.

잠시 더 달리다가 추소륵에게 대꾸했다.

[여태 전투 알림 신호가 없는 걸 보면 돌발 전투가 발생한 건 아닌 모양이오.]

[그러게 말이오.]

[상황이 어찌 될지 모르니 나는 최후방으로 이동해서 혹시 모를 위협에 대비하겠소. 추 공자가 선두에서 속도를 잘 유지하며 조원들을 이끌어주시오.]

만약의 상황이 발생할 경우, 앞에서 달리다가 뒤돌아서 조원들을 엄호하려면 한 박자 늦을 수밖에 없다. 뒤에서 조원들 쪽의 시야를 확보해두고 있어야 더 빠르게 엄호할 수 있다.

[알겠소.]

이에 나는 후열에 있는 능우희와 단목지의 뒤로 이동하여 기감을 열어둔 채로 달렸다.

그렇게 한 식경쯤 달렸을까?

전방의 먼 곳에서 난데없이 벽력탄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구 조의 위치보다 훨씬 더 먼 전방이다.

그 즉시 낮게 외쳤다.

“정지!”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일단 정지 지시를 내린 것이다.

조원들이 경공을 멈추는 동안에도 벽력탄 터지는 소리가 연속해서 들려왔다.

귀 기울여 들어보니 상당히 먼 전방이다.

능선 서너 개쯤 너머인 듯하다.

선두의 조들이 있을 법한 위치다.

조원들에게 말했다.

“빠르게 호흡 정리하고 수분도 보충한다. 이후, 단번에 간다.”

“예.”

조원들이 낮은 음성으로 힘주어 대꾸하더니 서둘러 목을 축이기 시작했다.

다시 이동하기 시작한 후로 반의 반각 정도가 지났을 때쯤, 이번에는 멀지 않은 곳에서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마침 산지의 오르막을 달리는 중이라서 시야에 보이지는 않지만, 소리를 통해 추측해보면 얼추 팔 조와 구 조의 사이쯤인 듯하다.

벽력탄 터지는 소리는 선두 조 쪽에서 들렸는데, 먼 후방이라 할 수 있는 요 앞에서도 전투가 벌어지기 시작했다니.

이게 대체 어찌 된 상황일까.

우리가 귀양지부를 노리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적측 첩보조에 의해 발각된 걸까?

아니면 귀주 수복전단의 누군가가 적과 내통한 걸까?

그것도 아니면 서로 이동하는 길에 우연히 마주친 걸까?

순간적으로 여러 추측이 뇌리에 떠올랐지만, 지금은 예단할 수 있는 게 없다. 다른 조들과 합류해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추소륵이 속도를 더 높이기 시작했다.

전투 소리를 듣고 구 조 쪽으로 서둘러 합류하려는 것이다.

그때, 내 감각의 영역에 무음시의 기운이 잡혔다.

이동 진형으로 달리고 있는 우리의 옆구리로 날아들고 있다.

우리는 현재 골짜기를 타고 고지를 향해 나아가는 중인데, 무음시가 날아온 방향은 우측 경사면의 위쪽이다.

“정지!”

즉시 낮은 목소리로 외치며 삼 열의 우측에 있는 호연주의 옆으로 나아갔다.

챙!

내가 갑자기 나타나서 무음시를 쳐내자 호연주가 화들짝 놀랐다. 좌우의 맹운표와 견수암도 상당히 놀란 기색이다.

참고로 견수암은 내가 무음시를 쳐내기 직전에 무음시 쪽으로 빠르게 고개를 돌렸었다. 마지막 순간에라도 저렇듯 반응을 보일 수 있는 것과 그러지 못하는 것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역시나 보통내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때쯤, 우측 경사면의 다른 곳에서 또 하나의 무음시가 날아들었다.

무음시의 궤적 끝에 맹운표가 있다.

그의 옆으로 이동하여 이번에도 비룡검으로 무음시를 걷어냈다.

챙!

이전에 무음시를 날렸던 궁사가 아닌, 다른 궁사다. 무음시를 날리고 있는 궁사가 두 명인 것이다.

둘 다 절정고수 궁사들이다.

그리고 지금은 궁사가 저 둘뿐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단은 조원들을 무음시로부터 안전한 방향으로 피신시켜야 한다.

낮은 목소리로 조원들에게 말했다.

“모두 이 아래 큰 바위 뒤로 숨어. 빨리!”

내 말에 관도들이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추소륵과 단목지도 관도들을 엄호하며 바위 쪽으로 이동했다.

그 순간, 나는 골짜기의 좌측 경사면에서 날아드는 또 하나의 무음시를 감지할 수 있었다.

우측에서 날아드는 무음시들로부터 보호하려고 바위 뒤에 숨게 했더니 이번에는 반대편인 좌측 경사면에서 날아들다니.

심상치 않은 상황이다.

빠르게 바위 쪽으로 향하여, 능우희의 앞에서 또다시 무음시를 걷어냈다.

챙!

능우희도 깜짝 놀란 기색이다.

한데 그녀도 내가 무음시를 걷어내기 직전의 마지막 순간에 무음시 쪽으로 고개를 돌렸었다. 능우희도 역시나 보통내기가 아닌 것이다.

조원들을 바위 옆으로 밀착시켜서 자세를 낮추게 한 후, 나는 좌측 경사면에서 날아드는 무음시를 연이어 쳐냈다. 다행히 좌측의 궁사는 한 명뿐인 듯하다.

우측 경사면 쪽에서는 한동안 무음시가 날아들지 않았다. 우리가 바위 뒤에 몸을 숨긴 덕분이다.

그러나 그 상황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곧 우전방과 우후방으로부터 무음시들이 대각선으로 날아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측 경사면에 있었던 두 명의 궁사가 각각 우전방과 우후방으로 이동한 것이다.

궁사들의 무음시 실력이 수준급이다.

추소륵이라 해도 확실히 쳐낼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즉, 현 상황에서 날아드는 무음시들을 확실하게 막아낼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조에 나밖에 없다.

이에 나는 조원들이 자세를 낮춘 채로 더 바짝 모여들도록 지시했다. 세 방향에서 날아드는 무음시들을 효과적으로 쳐내려면 내 동선이 짧아져야 하는 탓이다.

챙! 챙! 챙!

그 후부터는 홀로 세 방향의 무음시를 쳐냈다.

그나저나 구 조 쪽으로 합류해야 하는 상황인데, 이대로라면 계속해서 발목이 잡혀 있을 수밖에 없다. 이 상태가 계속되다가는 우리만 낙오되어 고립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참고로 본대인 귀주 수복전단이 이곳까지 도착하려면 몇 시진은 더 걸린다. 선발대인 우리 증원 전력은 모두가 일류 이상의 정예이기에 이동 속도가 빨랐지만, 본대인 귀주 수복전단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을 정리한 후 곧장 단목지에게 말했다.

“호각으로 지원 요청하시오.”

“알았어요.”

단목지가 대꾸하더니 곧바로 호각을 불었다.

삐이익-! 삑! 삑! 삐익-!

팔 조와 구 조의 사이에서도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듯하니 지원이 다소 늦어질 수도 있다. 그사이에 호각 소리를 듣고 더 많은 적들이 우리 쪽으로 몰려들 위험성도 있다.

그럼에도 지금은 이쪽의 위기를 알려야만 하는 상황이다.

이후에도 한동안 무음시를 쳐내면서 확인했는데, 지원이 오는 모습은 여전히 보이지 않고 있다.

이보쇼, 칠절사군 대협!

이 정도 무음시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을 한 명쯤은 더 붙여 주시지 그러셨소!

그래야 좌우 양쪽에서 조원들을 호위하며 전진하든, 나 혼자라도 따로 나가서 저 야비한 궁사 놈들을 처리하든 할 것 아니오!

이게 뭐냔 말이오!

속으로 제갈수광을 탓하며 연이어 무음시를 쳐내고 있는데 문득 추소륵의 전음이 들려왔다.

[회주. 쭉 지켜봤는데, 나도 그 무음시들을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소.]

하지만 내가 알기로 추소륵은 아직 이 정도 수준의 무음시를 제대로 쳐낼 수 없다.

그를 향해 빠르게 대꾸했다.

[아시겠지만 이거, 조금만 실수해도 우리 중 누군가가 죽을 수 있소. 추 공자 본인도 예외일 수 없고.]

[물론 알고 있소.]

눈동자에 확신이 담겨 있다.

챙! 챙!

두 개의 무음시를 연속으로 쳐냈을 때쯤, 추소륵이 다시 전음을 보내왔다.

[광서 수복전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수시로 제갈 교관님, 송 소저, 제갈 공자 등에게 부탁해서 무음시 대처 훈련을 해왔소. 우리란 이전부터 절정에 올라 있었던 나, 풍 공자, 선 공자, 종 공자를 얘기하는 것이오.]

그것까지는 몰랐다.

추소륵의 전음이 이어졌다.

[그리고 내 경우에는 최근에 성취가 한 단계 높아지며 기감도 더 좋아져서인지, 저 무음시들이 확실하게 인식되고 있소.]

추소륵은 허세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고로 저 확신은 사실일 것이다.

추소륵이 이 무음시들에 대처할 수 있다면 우리로서도 다른 선택지가 생긴다. 그가 좌측을 맡고 내가 우측을 맡으면서 전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생각을 하는데 추소륵이 다시 전음을 보내왔다.

[참고하시라고 말씀드리면, 지금처럼 동선이 짧은 상황에서는 나도 회주처럼 세 방향의 무음시를 모두 막을 수 있을 듯하오. 못 미더우면 한번 시험해보시구려. 회주는 빠르니, 혹시라도 내가 실수하면 엄호해줄 수 있잖소.]

그렇게 되면 더 좋다.

추소륵 혼자서 세 방향의 무음시들을 모두 막아낼 수 있다면 선택지가 하나 더 생기게 되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추소륵이 쓱 몸을 일으키더니 내 옆으로 다가왔다.

[지금부터 해보시오.]

내 말이 끝나자마자 우전방에서 무음시가 날아왔고, 나는 언제든 개입할 준비를 하며 자세를 낮췄다.

추소륵이 부드러운 동작으로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정적인 느낌으로 움직이고 있는데도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

소림 경신법의 요체가 바로 저 형식이다. 소림 최고의 후기지수답게 훌륭한 성취를 이룬 것이다.

곧, 간결하게 검을 뻗은 추소륵이 무음시를 정확하게 쳐냈다.

챙!

그 순간, 이번에는 좌측과 우후방에서 거의 동시에 무음시가 날아들었다. 좌측의 무음시가 조금 더 빠르다.

추소륵은 서두르지 않은 채 두 개의 무음시가 날아들고 있는 궤적의 중간으로 이동했다.

자리를 잡은 추소륵이 미리 검을 뻗고 있다가 무음시 하나를 쳐내더니 즉시 옆으로 두 걸음 이동하며 나머지 무음시를 쳐냈다. 그러더니 즉시 중앙으로 복귀하여 대기하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계속 지켜본바, 무음시가 세 방향에서 동시에 날아와도 추소륵 혼자서 충분히 대처할 수 있어 보였다.

그래도 우리의 칠절사군 대협께서 최소한의 안배 정도는 해둔 것이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에 추소륵에게 말했다.

[우리 둘이 양쪽에서 무음시를 쳐내며 조원들을 이끌고 전진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그것대로 위험 부담이 적지는 않소.]

추소륵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다시 전음을 보냈다.

[궁사들이 멀리 있는 게 아니니, 내가 은밀히 가서 빠르게 처리하고 오겠소. 저들 중 한둘이라도 처리되면 우리의 이후 행보도 훨씬 더 안전해질 것이오. 그때까지만 잘 버텨주시오. 혹여 무슨 일이 생기면 곧바로 단목 소저에게 호각을 불라 하시고.]

궁사들이 있는 곳에서 여기까지의 거리는 내가 천섬무를 상위 단계로 펼치면 금세 다다를 수 있는 거리다. 혹여 적들이 나타나서 조원들을 공격한다 해도 추소륵이 조금만 버텨주면 된다.

[알았소. 무조건 버텨낼 테니 잘 다녀오시오. 다름 아닌 회주이니 염려의 말 따위는 하지 않겠소.]

내 전투 역량에 대한 확신이 있기에 저런 식으로 말하는 것이다.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줬다.

서서히 기척을 줄이자 은잠술이 활성화되었다.

은밀히 골짜기 아래로 내려가서 음영으로 숨어든 후, 우회하여 경사면을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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