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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마교있다-377화 (377/416)

내 안에 마교있다 377

죽은 혈영대 고수들의 근처로 다가갔다.

내가 아는 얼굴들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에 복면으로 손을 가져가다가 그만두었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관두자. 혹여 아는 얼굴인데다가 좋은 기억까지 있는 사람이면 슬퍼질 뿐이고 마음만 약해질 뿐이다.

적이었다고만 생각하자. 그냥 그러고 말자.

그래도 이왕 근처까지 온 김에 그들의 품을 뒤졌다.

쓸 만한 게 나오면 취하기 위함이었는데, 특별한 건 없었다.

독침이 가득 찬 목갑 두 갑을 전투용 배낭에 넣고, 소비도와 철비정을 보충했다.

그 후에는 두영산 곁으로 이동하여 놈의 옷을 뒤졌다. 놈은 독기가 퍼져서 피부색이 변해 있는 상태다.

별다른 건 나오지 않았기에 놈의 검만 챙겼다.

사형제들은 모두 구대가문 출신이다 보니 지니고 다니는 검이 다들 명검 내지는 명검에 버금가는 검이다.

두영산의 검도 명검이다.

최상급 쇠붙이이니 왕철양에게 넘겨서 새로운 병장기를 제작시키면 될 것이다.

검을 챙긴 후에는 곧장 바위 뒤로 향했다.

역시나 행낭 두 개가 놓여 있었다.

두영산과 혈영대 고수의 행낭이다.

상대적으로 허름해 보이는 행낭을 먼저 빠르게 뒤졌다.

혈영대 고수의 행낭일 텐데, 짐을 넣는 대형 행낭에도, 행낭 위에 결속된 전투용 소형 행낭에도, 특별한 건 없었다.

이어서 두영산의 것으로 보이는 고급스러운 행낭을 뒤졌다.

먼저 대형 행낭을 뒤졌는데, 두영산의 행낭답게 금화와 은화가 많았다.

금화와 은화 외에는 작은 목갑 두 개가 눈길을 끌었다.

똑같이 생긴 갈색 목갑이며 크기가 주먹만 하다.

밀봉된 상태임에도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것 같다. 의마 장로가 제조한 최고급 금창약이다. 챙겼다.

그 외에는 적잖은 양의 육포가 눈길을 끌었다.

천마신교의 육포는 맛이 일품인데, 두영산 놈이 먹는 것이면 더 고급일 것이다. 챙겼다.

이후에는 두영산의 전투용 소형 행낭을 뒤졌다.

내용물은 소량의 육포와 물, 비수 몇 개 정도였다.

그리고 측면의 수납 주머니에서 조막만 한 남색 목갑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목갑은 단약 따위를 보관하는 용도인데, 밀봉된 상태다.

전투용 행낭의 측면 수납 주머니에 들어 있었으니 비상시에 사용할 목적일 텐데, 두영산이 지니고 다녔으니 평범한 물건은 아닐 가능성이 크다. 나를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 전투용 행낭을 메지 않은 상태로 암습하다 보니 사용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이렇듯 귀해 보이는 건 섣불리 뜯어보기보다는 믿을 만한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낫다. 나중에 공은림에게 보여주고 무슨 약인지 분석해달라고 해야겠다.

남색 목갑까지 챙겨서 중년 여인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녀가 숨어 있었던 덤불 쪽의 행낭들은 굳이 건들지 않았다.

계곡 아래, 중년 여인이 있는 곳에 다다랐다.

그녀는 물가의 바위에 앉아 있다가 내가 다가가자 일어나며 전음을 보내왔다.

[저는 천마신교 혈영대 소속, 권진란이라고 합니다.]

두영산 놈이 알려준 바로 그 이름이다.

그녀가 본인의 정체를 먼저 밝히리라고는 예상치 못했기에 다소 의외긴 하다.

내 기색을 읽었는지, 그녀의 전음이 바로 이어졌다.

[저는 공자가 누구인지 알아챘지만, 공자는 제가 누군지 전혀 모르시지요. 그러니 적어도 제 소속과 이름 정도는 밝히는 게 공평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들뻘인 나를 대하면서도 어조나 태도가 모두 매우 공손하다. 왜 저렇게까지 공손한 걸까.

두세 차례 고개를 끄덕인 후,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나는 바쁘니 짧게 용건만 얘기하고 끝냅시다. 내게 꼭 말해야만 한다는 자초지종이라는 게 무엇이오?]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기 전에, 공자의 그 소검을 자세히 살펴보게 해주십시오.]

용마검 얘기다.

이제야 권진란이라는 저 중년 여인이 여태 왜 그랬는지에 대한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추측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전에 오태흥한테서 들은 얘기가 있기 때문이다.

보여달라는 대로 순순히 보여주는 게 더 이상할 테니 일단은 잡아떼주자.

[왜 남의 병장기에 관심이시오?]

[아까 얼핏 봤는데, 제게 의미 깊은 물건과 매우 흡사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자세히 보고 싶었습니다.]

이에 나는 짐짓 경계하듯 권진란을 바라봤다.

그러자 권진란이 양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 소유권을 주장하려는 게 아닙니다. 공자와 같은 고수 앞에서 감히 그럴 생각도 없습니다. 또한 제가 그 소검을 받아서 살펴보겠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그냥 공자가 들고 제게 보여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부탁드립니다.]

권진란이 그렇게 말하며 내게 다시 한번 정중히 포권했다.

이에 눈매를 살짝 찌푸린 채로 물었다.

[그러니까, 겨우 검 하나 확인하자고 등 뒤에서 동료를 찌른 것이오?]

아쉬운 건 내 쪽이 아니다.

까칠하게 가는 거다.

[평생 동료의 목숨을 제 목숨처럼, 제 가족의 목숨처럼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그 검을 보지 못했다면 저 또한 오늘, 동료와 함께 싸우다가 죽는 선택을 했을 겁니다. 죽는 건 전혀 두렵지 않으니까요. 단지, 제 삶에서 동료보다 우선하는 단 하나의 중요한 가치가 바로 그 검이었을 뿐입니다.]

권진란이 전음을 이었다.

[공자는 백도인이고 저는 마인입니다. 급박한 상황에서 마인인 제가, 상대적으로 훨씬 고수인 백도인에게 부탁할 일이 있으면 어떻게 해야 했겠습니까. 적대 관계인 저로서는 일단 공자에게 도움 될 일을 해 놓아야 말이 씨알이라도 먹힐 게 아니겠습니까. 더군다나 아까의 상황에서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다면, 저도 이미 동료와 함께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렇기는 하다.

당시에 나는 천섬무를 최대한으로 펼치고 있었던 만큼, 권진란이 돌발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곧장 처치했을 가능성이 크다. 남은 적을 최대한 빠르게 정리하고 두영산을 단죄한 뒤, 서둘러 조원들에게 복귀할 계획이었던 탓이다.

[물론 어떤 이유를 들어도 아까의 제 경멸받을 행동이 정당화될 수 없음을 압니다.]

권진란이 그 말을 끝으로 침묵했다.

오태흥의 말에 따르면 사대마천뿐만 아니라 소수의 구대가문 쪽에서도 용마검에 대해 알고 있다고 했다.

한데 저토록 간절해하는 모양새를 보니 사대마천의 후예일 가능성이 매우 커 보인다.

그들에게는 용마검이 신물이니까.

뭐, 저 모습마저도 연출이라면 그건 그것대로 대단하다고 인정해줄 수밖에 없겠지.

용마검을 검집에서 빼내자 권진란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감사합니다, 공자. 감사합니…….]

권진란이 말을 이어가지 못한 이유는 내가 용마검을 그대로 그녀에게 던졌기 때문이다.

용마검이 포물선을 그리며 천천히 날아가고 있고, 권진란의 두 눈은 휘둥그레지고 있다.

척!

용마검의 손잡이를 낚아채면서도 권진란의 놀람은 가실 줄을 몰랐다.

[저, 정말 감사합니다, 공자. 감사합니다……!]

권진란이 매우 감격한 표정으로 나를 향해 연신 허리를 굽혔다.

나는 묵묵히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권진란이 용마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손이 떨리고 있다.

깨지기 쉬운 물건이라도 다루는 양,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용마검을 살피는 내내, 그녀의 눈동자는 계속해서 흔들렸다.

무심한 표정으로 권진란을 바라보던 나는 잠시 후, 눈을 크게 뜨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양손으로 용마검을 받쳐 들며 무릎을 꿇은 탓이다.

지체 높은 상전을 대하는 모양새.

당황스럽다.

그사이 권진란이 전음을 보내왔다.

[용마검의 주인을 뵈옵니다.]

[가, 갑자기 무슨…….]

[제 이러한 행동이 당황스러우시겠지만, 저로서는 마땅히 취해야 할 예입니다. 공자 덕분에 이 검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고, 이 검이 제게는 절대적인 의미를 지니는 용마검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이에 나는 그녀의 양손 위에 올려진 용마검을 회수했다.

내가 용마검을 다시 검집에 집어넣자 그녀가 천천히 일어서며 말했다.

[그게 대체 어떤 물건이기에 제가 이러는지 의아하실 겁니다.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에 나는 손바닥을 내밀어 그녀의 전음을 끊으며 말했다.

[궁금하긴 한데, 지금 나는 한시라도 빨리 동료들과 합류해야 하오. 아직 전투가 끝나지 않았잖소.]

[아. 그러시다면, 잠시 동행하면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그것까지는 말리지 않겠으나, 나는 여전히 귀하를 경계하고 있소. 그러니 내 동료들 근처로는 접근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소.]

[이해합니다. 우리는 전혀 모르는 사이였던 데다가,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적이었으니까요.]

[게다가 내 동료들은 마기에 매우 민감하오. 귀하의 추측보다 훨씬 더 멀리에서도 마기를 감지할 수 있는 이들이 많소.]

[주의하겠습니다.]

이에 내가 경공을 펼치기 시작하자 그녀도 내 옆에서 경공을 펼치기 시작했다.

십여 장을 이동했을 때쯤, 권진란이 전음으로 말했다.

[공자도 천마신교의 구대가문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있으실 겁니다. 그들은 현 천마신교의 주축이지요. 하지만 과거에는 그들이 아닌 사대마천이라는 세력이 주축이었습니다.]

[앞서 보여주신 모습들과 지금 말씀하시는 어조를 종합해 보면, 귀하께서는 그 사대마천의 관련자이신 듯하구려.]

[그렇습니다. 사대마천의 후예입니다.]

[구대가문과 사대마천의 관계에 대해서는 나도 들어서 알고 있소. 용마검이 그 사대마천의 신물이라는 사실도.]

내 말에 권진란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공자께서 어떻게 그걸…….]

[출처는 묻지 마시오. 나도 근래에 알게 됐소. 그전까지는 용마검이 그저 평범한 소검인 줄로만 알고 있었소.]

[외람되지만 어떻게 입수하셨는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동갑도에서 주운 것이오.]

정확하게는 전리품 중에서 고른 거지만, 어차피 당시의 전리품들이 동갑도에서 획득한 물품들이었다.

[아하, 동갑도…….]

권진란이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여러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조용히 있던 권진란이 전음을 보내왔다.

[대강은 알고 계신 듯하니 관련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혹여 나중에라도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하십시오.]

[나중이라니……, 앞으로도 계속 소생의 주변에 머물기라도 하겠다는 듯 말씀하시는구려.]

[그렇습니다. 저는 율법에 따라 용마검의 곁을 지키며, 용마검의 주인에게 협력해야 합니다. 따라서 저는 이 시간 이후로 공자의 주변에 머물며 마천의 동지들과 비밀리에 연락을 취할 겁니다. 그들도 당연히 용마검의 주인에게 협력할 겁니다.]

권진란이 바로 말을 보탰다.

[어차피 본교로 복귀해도 저는 처형당하거나 지하 뇌옥에 갇힐 신세입니다. 본교에서 제가 동료를 찌른 사실을 모른다고 하더라도, 이공자를 호위하지 못한 죄는 무겁기 때문입니다.]

맞는 말이기는 하다.

그녀에게 말했다.

[몇 가지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구려. 첫째, 아까도 말씀드렸듯 소생의 동료들은 마기에 민감하오. 즉, 소생의 주변에 머무시는 건 어려울 것이오.]

[마천의 후예들은 두 종류의 심법을 익힙니다. 비밀리에 마천의 심법을 하나 더 익히는 겁니다. 마천의 심법은 본디 마기가 강하지 않아서, 마천의 단약을 복용하면 그 마기를 감출 수 있습니다. 그러고 나면 공자처럼 기운이 중성적인 느낌으로 변하며 그 상태가 오랜 기간 유지됩니다.]

그 말에는 상당히 놀랐다. 천마신교의 중심부에 있었던 나로서도 완전히 처음 접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런 게 있다니……, 신기하구려.]

[마천은 과거 오랜 세월 천마신교의 주류였습니다. 당시의 각종 비법과 비기가 여전히 전해 내려오고 있는 겁니다.]

지금은 자세히 물어볼 상황이 아니지만, 나중에 여유로워지면 사대마천에 대해 궁금한 것들을 차분히 물어봐야겠다.

권진란에게 다시 전음을 보냈다.

[둘째, 협력 얘기를 하셨는데, 소생과 귀하는 기본적으로 적대 진영이오. 그런데도 내게 협력하겠다는 것이오? 그러면 귀하의 진영에는 해가 되잖소.]

[그렇다면 그게 바로 용마검의 선택이고, 아수라님의 뜻이며, 천년 마혼의 의지겠지요. 최악의 경우 현재의 본교가 패망한다 해도, 천년의 마혼이라는 것이 그리 쉽게 사그라지는 게 아닙니다. 어디에선가 새로운 마도와 함께 다시 싹을 틔우겠지요.]

‘천년의 마혼’이라는 말에서 ‘천년’은 해당 기간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 매우 오랜 세월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녀에게 전음을 보냈다.

[셋째, 만약 용마검의 주인이 고수가 아니라 만만한 자라면, 그때는 구슬린다거나 완력으로 해결한 후에 귀하들이 차지하는 것이오? 가령 힘없는 민초라거나, 어린아이라거나.]

[용마검이 주인을 선택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공자가 말씀하신 행위는 율법에 어긋나며, 용마검의 진노를 살 뿐입니다. 저희는 용마검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습니다.]

저렇듯 절대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걸 보면, 확실히 저들에게는 용마검이 신물은 신물인가 보다.

[넷째, 그 율법이라는 것 말이오. 예를 들어 인간쓰레기 같은 자가 용마검을 주웠다고 해도, 귀하들은 무조건 용마검의 주인에게 협력하는 것이오?]

[그 또한 용마검의 선택이니 협력해야 합니다. 다만…….]

잠시 말을 멈춘 권진란이 내 눈치를 살피고 있다.

이에 그녀에게 말했다.

[들을 준비가 되어 있으니 그냥 편하게 말씀하셔도 되오.]

[전설에 의하면 용마검에는 혼이 있어, 그 혼이 주인의 혼과 연결되어 주인의 운명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합니다. 자격이 되는 주인의 운명에는 영광을, 자격 미달인 주인의 운명에는 파멸을 안겨준다는 것이지요.]

그녀가 바로 말을 이었다.

[실제로 과거의 수많은 기록이 그 전설을 뒷받침했습니다. 용마검의 주인들은 대부분 단명했으며, 공자께서 예로 든 상황에 해당된 주인들은 급속도로 파멸하여, 생지옥을 겪으며 훨씬 더 단명했습니다.]

이러면 신물이고 나발이고, 위지광 놈에게 전달해주면 딱인데.

그 생각을 하며 농담조로 물었다.

[하면 내가 파멸시키고 싶은 자에게 양도하면 되겠구려?]

[기록에 그 비슷한 사례도 여러 차례 나옵니다. 용마검의 전설을 알게 된 후 불순한 목적으로 용마검을 양도하거나 버린 이들은 곧 파멸했습니다.]

후……, 이 아줌마가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척하면서 무서운 소릴 하고 있네.

그나저나, 아줌마!

이러면 당신도 나한테 협력하는 게 주목적이 아니라, 내가 단명할 가능성을 보고 그때 신물을 회수해가려는 게 주목적인 거 아냐?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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