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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마교있다-378화 (378/416)

내 안에 마교있다 378

경공을 펼치며 권진란에게 말했다.

[내게 사대마천에 대해 얘기해준 이가 그랬소. 세월이 너무 많이 흐른 만큼 사대마천의 후예들도 지금쯤이면 정체성을 잃었을 거라고. 한데 오늘 귀하를 보니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구려.]

참고로 최정예인 혈영대의 부조장답게, 권진란의 경공 속도는 비슷한 경지의 다른 고수들보다 빠른 편이다.

권진란이 대꾸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게끔, 저희가 원래 쓰던 성마저 바꿔가며 모든 걸 속으로 감춰온 겁니다. 수 대 전의 선조들부터 그러셨으니 이미 오래된 일이지요.]

[그렇구려. 하면 귀하에게도 원래의 성이 따로 있는 것이오?]

[예. 사대마천 주류의 후예들은 원래 복성을 썼습니다. 제 원래 성은 ‘양설’입니다.]

이 아줌마의 원래 성명은 양설진란인 것이다.

고개를 끄덕인 후에 물었다.

[사대마천의 후예들 말이오. 수는 많소?]

수가 많으면 천마신교와의 전쟁에도 적잖은 도움이 될 수 있다.

[수는 많지 않습니다.]

[아.]

다소 아쉽다.

하긴, 수가 많았다면 사대마천의 후예들이 지금까지 정체를 감춰오기도 쉽지 않았겠지.

권진란의 전음이 이어졌다.

[그러나 대부분이 고수거나 실력 좋은 후기지수들입니다.]

[아하.]

소수 정예라는 의미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그래서 다들 본교의 요소요소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고수거나 실력 좋은 후기지수면 당연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당장 이 아줌마만 해도 최정예 조직인 혈영대의 부조장이었으니까.

오태흥한테서 들었던 용마검의 성능에 대해 자세히 물어보고 싶은데 아쉽게도 전장이 가까워졌다.

[이쯤에서 헤어지는 게 좋을 듯하오.]

[알겠습니다.]

내 말에 대꾸한 권진란이 곧 다시 전음을 보내왔다.

[동천비룡 정도 되는 분이시니 멀리에서라도 지켜보는 본교의 눈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러니 다음에 뵐 때는 마기를 지운 채, 면구를 쓰고 가명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가명은 조해옥으로 하겠습니다.]

무난한 성에 무난한 이름이다.

[알았소.]

내가 대꾸하자 나란히 경공을 펼치던 권진란이 자연스럽게 옆으로 이탈하더니 다시금 왔던 길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짐을 챙기기 위함일 것이다.

속도를 끌어올리며 전장을 향해 달렸다.

수많은 기운이 격렬하게 엉키고 있는 게 느껴진다.

여든 명쯤 되는 듯하다.

그중에서 백도의 기운은 채 서른 명이 안 된다.

다들 내게 익숙한 기운들이다.

구 조와 십 조의 인원들 외에 임려현, 장휘택, 양소열 등의 기운도 느껴지고 있다. 그들은 팔 조의 인원들이다.

임려현은 믿을 수 있는 실전 고수다. 게다가 최자경과 함께라면 웬만한 위기 상황이 와도 어느 정도는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은 신룡대 시절에 같은 조의 동료였으니까.

두 사람뿐만 아니라 백영대 출신의 장휘택도 믿을 만한 실전 고수다.

내가 두영산을 처리하기 위해 잠시 이탈할 수 있었던 이유도 저러한 팔 조의 구성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최대한 서둘러야 한다.

딱 봐도 우리 쪽이 열세인 탓이다.

* * *

팔 조를 이끌고 달리던 임려현은 전방에서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사십여 개의 기척을 감지할 수 있었다.

즉시 조원들을 멈추게 한 후에 더 자세히 감지했다.

다가오는 자들 모두가 정예이며, 천마신교 쪽의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절정고수는 열댓 명쯤인데, 그중 최소 네댓 명이 절정의 중반 이상인 듯하다.

정면으로는 맞설 수 없는 전력 차.

이에 임려현은 즉시 조원들을 이끌고 후퇴했다.

현재 지나치고 있는 길은 급경사면 중턱의 산길인데, 길의 폭이 넓은 지점이다. 수레 두 대가 나란히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다. 이 지점에서 싸우면 당연히 전선이 넓어질 수밖에 없고, 그러면 수적으로 열세인 팔 조가 불리해진다.

지나왔던 길에 폭이 좁아지는 지점이 있었다. 그 지형에서 싸우면 수적 열세를 어느 정도는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후퇴하는 중에 문득 좋은 작전이 떠올랐다.

이에 임려현은 양소열로 하여금 나머지 조원들을 이끌고 먼저 물러나게 한 후, 장휘택과 함께 적당한 지점에 은신했다. 자신은 길 위쪽 경사면의 덤불 뒤에 은신했고, 장휘택은 길 바로 아래의 바위 옆에 은신하게 했다.

장휘택의 은잠술은 역시나 매우 빼어났다. 과연 백영대 출신다운 실력이었다. 애초에 이 매복 작전을 구상한 이유 또한 장휘택의 은잠술 실력이 저 정도는 되리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뒤로 물러나고 있는 조원들 쪽에서는 호각 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앞선 칠 조와 뒤따라오는 구 조에게 지원 신호를 보내는 건데, 자신과 장휘택이 은신하는 동안 적들의 주의를 끌어주려는 목적도 있다.

이윽고 적들이 다가왔다.

선두가 발아래에 이른 순간, 길 위쪽에 숨어 있던 임려현은 몸을 살짝 일으키며 아래쪽을 향해 양손을 강하게 털어냈다.

피비비비비비비비비비빗!

수십 개의 독침이 넓은 범위로 퍼져나갔다.

“침……!”

적측의 고수 중 누군가가 그렇게 외쳤지만, 상대적으로 하수인 자들은 아직 독침이 어느 방향에서 날아오는지도 모른 채 두리번거리는 중이다.

고수들이 살짝 도약해 오르며 병장기를 휘둘러 독침들을 쳐내기 시작했다. 근처의 하수들을 엄호해주기 위함이다.

티디디디디디디디딩!

다수의 독침이 고수들에 의해 튕겨 나가긴 했지만, 고수들의 근처에 있지 않은 자들의 몸에는 여지없이 독침이 파고들었다.

“큭……!”

“컥……!”

“악……!”

여기저기에서 단말마의 비명들이 들렸다.

길가 쪽의 고수가 독침들을 쳐내고 나서 착지하던 중에 고개를 뒤쪽으로 맹렬하게 돌렸다.

뒤에서 은밀하게 찔러오는 암습을 알아챈 것이다.

장휘택의 협봉도는 직도에 가까운 형태이며 도극이 뾰족하다. 덕분에 찌르기에도 적합하다.

고수가 아직 완전히 착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온몸을 맹렬하게 비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암습을 너무 늦게 알아챘다.

장휘택의 암습이 그만큼 은밀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결국 장휘택의 협봉도가 절정고수의 상체에 박혔다.

푹!

절정고수는 즉사하지는 않았지만, 중상을 입었다.

경지가 절정의 중후반에 가까운 자였으니 장휘택이 상당한 월척을 낚은 것이다.

그러나 장휘택도 마냥 안전한 상황은 아니었다.

암습을 위해 적들에게 매우 근접한 탓이다.

이에 임려현은 퇴로 쪽으로 도약하며 양손으로 철비정을 털어냈다.

장휘택이 몸을 뺄 수 있도록 엄호하기 위함인데, 미리 약속된 움직임이기도 했다.

장휘택 쪽으로 향하려던 적측 고수들이 어쩔 수 없이 신형을 틀며 철비정을 막아내기 시작했다.

임려현은 적측 고수들을 향해 소비도까지 연속으로 털어냈다. 그들의 발을 확실하게 묶어두기 위함이다.

그사이에 장휘택도 적진에서 멀어지며 소형 비표, 즉 소비표를 날렸다.

적들은 날아드는 암기들을 쳐내느라 바빠서 장휘택을 추격하지 못했다.

결국 장휘택은 적진에서 무사히 빠져나왔고, 임려현은 그와 함께 조원들이 있는 곳으로 달렸다.

결과적으로 열 명 이상의 정예를 처치했고 절정의 중반쯤인 고수 한 명도 전력에서 이탈시켰다.

둘이서 짧은 시간 동안 적잖은 전과를 올린 셈이다.

달리던 중에 장휘택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려 있다. 만족스러워하는 미소다.

동료와 손발이 척척 맞아 들어가는 쾌감을 오랜만에 느낀 모양이다.

그를 향해 마주 미소를 지어줬다.

폭이 좁은 길에서 적들과 대치한 채로 전투가 시작되었다.

호각 신호를 보냈는데도 칠 조나 구 조에서는 지원이 오지 않고 있다.

그들 쪽에도 변수가 생겼다고 봐야 한다.

둘 중에서는 아무래도 구 조 쪽의 상황이 더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아들이 구 조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괜찮겠지. 자경이가 이끌고 있으니까. 남궁 소저도 함께하고 있고 장 교관님도 있으니까.’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며 차분히 적들을 상대해갔다.

전투를 치르면서 보니 적측의 유기적인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았다.

지금까지 만난 적들은 대부분, 전력 면에서는 정예임에도 막상 상대해보면 구성원 간의 움직임은 그다지 유기적이지 않았었다. 일정 실력 이상의 정예들을 끌어모아서 급조한 전력이었던 것이다.

한데 눈앞의 적들은 움직임이 매우 유기적이다.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온 정예 무력 조직인 것이다.

여기저기에서 끌어모은 정예 무인 집단의 전투력과 정예 무력 조직의 전투력은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다.

하면 이들은 어떤 조직일까.

삼단이대로 대표되는 천마신교의 무력 조직 중 최정예 조직은 흑풍대와 혈영대와 수라단이고, 정예 조직은 명황단과 마룡단이다.

‘이 정도면 최정예까지는 아니니 명황단이나 마룡단이겠지. 평균 실력이 다소 높은 걸 보면 아마도 명황단.’

이러면 처음에 기습을 성공시킨 의미가 더 커진다.

만약에 아까 처치한 자들이 살아 있었다면, 이 전투도 당연히 더 버거웠을 테니까.

전투가 계속되었고, 팔 조는 점점 뒤로 밀렸다.

전력이 열세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적의 수는 아직 서른 명 남짓인데, 정예 무력 조직답게 전열은 매우 단단하고 후열의 암기 지원은 더없이 날카로웠다. 구성원들의 움직임이 유기적이다 보니 피해를 주기가 쉽지 않았다.

그에 반해 팔 조의 조원은 아홉 명에 불과하며, 그 와중에 실전 경험이 부족한 잠룡관도도 한 명 끼어 있는 상태다.

다행스러운 건 나머지 조원들의 구성이 상당히 탄탄하다는 점이다. 그 덕분에 점점 밀리는 중에도 큰 위기 상황은 발생하지 않고 있다.

전열은 임려현 자신이 중앙이고 좌측은 장휘택이, 우측은 선의림이 담당하고 있다.

정예 무력 조직을 상대하는 중이다 보니 선의림 쪽이 다소 걱정됐었는데, 그는 매우 유려한 무공을 펼치며 안정적으로 적들을 막아내는 모습이었다. 잠시나마 화산파를 대표하는 후기지수의 진가를 의심한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이 열은 좌측이 단목홍신, 중앙이 사옥연, 우측이 양소열이다. 단목홍신과 사옥연은 특전반원들답게 암기 지원이 수준급이었다.

양소열은 이 열에서 암기를 날리다가 길의 폭이 약간 넓어지면 전열로 나오고, 폭이 좁아지면 다시 이 열로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그 덕분에 후열의 조원들이 더 안정적인 전투력을 유지하는 중이다.

삼 열은 좌측이 촉휘명, 중앙이 포연월, 우측이 잠룡관도 장관민이다.

장관민은 갑반에 오 년 차로, 안휘 곽산문의 제자다. 실전 경험이 부족한 그는 상당히 긴장한 모습이어서, 언제 날아들지 모르는 암기들을 피하는 데에만 집중하라고 지시해뒀다.

포연월의 움직임에서는 어린 소저답지 않게 여유가 느껴지고 있다. 언제 봐도 믿음직한 그녀다.

포연월보다 더 어린 촉휘명 또한 대견스러울 정도로 후열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 아들의 자질도 매우 뛰어난 편인데, 그래도 촉휘명을 넘어서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계속해서 안정적으로 방어해내고 있던 어느 순간, 적진의 후방에서 빠르게 다가오는 일단의 기척들이 있었다.

칠 조원들이기를 바랐지만, 아니었다.

적들이었다.

정예들이고, 스무 명가량이며, 그들도 모두 천마신교의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임려현은 눈매를 좁히지 않을 수 없었다.

‘절정고수가 일고여덟 명에 최절정고수도 두 명이라니……!’

아까의 호각 신호를 듣고 온 게 아닐까 싶다.

결과론이지만, 아군에게 지원을 요청했는데 적의 증원만 부른 꼴이 된 것이다.

문제는 이 뒤쪽부터는 길의 폭이 다시 넓어지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그러면 당연히 전선도 넓어질 수밖에 없는데, 그런 지형에서 적의 증원 전력을 맞게 되면 상황은 극도로 악화될 수밖에 없다.

난감하다.

지금까지 이 지점에서 최대한 버텼던 건, 뒤에 있는 구 조의 지원보다는 앞서 있는 칠 조의 지원이 더 빠르리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칠 조의 조장은 다름 아닌 검후 문숙경이니, 그녀라면 그쪽의 상황을 금세 정리한 후 이쪽을 지원하러 오리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한데 그쪽의 상황도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이러면 서둘러 구 조 쪽으로 퇴각할 수밖에.’

보아하니 적측 최절정고수 중 한 명은 중하위권쯤이고 다른 한 명은 초입쯤이다.

저 정도면 장휘택과 함께 어떻게든 발목을 잡아볼 수 있다. 선의림과 양소열의 원거리 엄호를 받으면 더 도움이 될 것이다.

‘벽력탄도 하나 있으니 여의치 않을 때는 그걸 사용해서라도 시간을 벌어야겠지.’

결정을 내리자마자 뒤에 대고 낮게 외쳤다.

“양 교관과 선 공자는 우리를 엄호! 나머지는 최대 속도로 퇴각!”

임려현이 그렇게 외치며 전방의 넓은 범위로 강력한 검법을 펼쳐내자, 옆에 있던 장휘택도 전방을 향해 위력적인 도법을 펼쳐냈다.

동시에 선의림과 양소열도 전방으로 암기를 털어냈다.

세 사람 모두 알아서 유기적으로 맞춰준 것이다.

믿음직하다.

검법을 펼친 후에 돌아보니 단목홍신을 포함한 다섯 명의 조원들은 빠른 속도로 경공을 펼치는 중이었다.

이에 근처에 있는 세 사람에게 외쳤다.

“우리도!”

그러자 장휘택, 선의림, 양소열이 즉시 경공을 펼치기 시작했고, 임려현은 적들을 향해 또다시 철비정을 털어내며 맨 뒤에서 달렸다.

적들의 뒤쪽에서 최절정고수 두 명이 엄청난 속도로 추격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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