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379
추격해오는 최절정고수 두 명과의 간격이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조원 중에는 일류고수들도 많다 보니 당연히 적측 고수들에게 따라잡힐 수밖에 없다.
곧 최절정고수들이 바짝 따라붙었다.
임려현은 달리는 중에 연속으로 소비도와 철비정을 날리며 최절정고수들의 접근을 견제했다.
장휘택, 선의림, 양소열도 최절정고수들의 하체 쪽으로 암기를 날리며 그들의 전진을 방해했다.
덕분에 최절정고수들도 간단하게 접근하지는 못했다.
근래 암기가 손에서 떠날 때의 손맛이 좋아졌다.
간결한 동작으로 암기술을 펼치는데도 암기들이 손에 착 달라붙었다가 떠나는, 특유의 느낌이 있다. 그게 손맛이다. 암기가 손에서 떠날 때부터 이미, 확신이 들게 만드는.
그 손맛의 느낌이 더 좋아졌다는 건, 암기술 성취가 상승했다는 의미다.
사실 암기술 성취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무공 실력 자체가 큰 폭으로 상승한 거지만.
이번에 광서 수복전과 귀주 수복전을 겪으면서 송풍장의 청년들과 특전반의 청년들 모두, 실력이 큰 폭으로 상승했다.
그런데 청년들의 실력만 상승한 건 아니다.
어른들의 실력도 적잖이 늘었다. 자신뿐만 아니라 제갈수광, 장호산, 남궁묵, 육화현, 묘청상 등 모두가.
그간 겪었던 임무와 작전과 전투들은 대부분 난도가 높아, 매 순간 최선을 다해서 최상의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기 때문이다.
어른들 가운데 이번 원정을 통해 실력이 가장 많이 향상된 사람은 아마도 자신일 것이다.
줄곧 송유겸과 함께 움직이며 싸웠기 때문이다.
송유겸과 연계하려면 온 신경을 최대한 집중한 상태에서 격렬하게 움직여야 한다. 결정적인 연계 시점을 맞춰줘야만 최대한의 전과를 올릴 수 있는데, 송유겸이 기본적으로 너무 빠르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이를 악물고 필사적으로 임해야 했다. 송유겸 앞에서 내색한 적은 없지만.
어쨌거나 그 덕분인지, 오랜 기간 찔끔찔끔 상승하던 성취가 근래 큰 폭으로 상승하여 경지가 한 계단 올라섰다.
절정의 후반으로 진입한 것이다.
그렇기에 최절정고수 두 명이 추격해오고 있는데도 중압감이 아주 크지는 않다. 둘 다 높은 수준의 최절정고수로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이어 최절정고수들을 견제하며 그들의 정체를 알아낸 순간, 다시금 중압감이 커지기 시작했다.
‘한 명은 호법원의 구대호법 요석평. 그리고 다른 명황단의 현 부단주 왕석태…….’
참고로 요석평도 명황단주 출신이다.
그렇다면 두 사람이 이끄는 정예 무력 조직도 명황단일 것이다. 아까 자신이 예상했던 대로.
요석평은 육십 대 중반쯤의 노인인데 실제 나이는 일흔 초반이다. 내공 경지가 높아서 젊어 보이는 것이다. 얼마 전에 봤던 광동의 정호문주 요수번과는 다른 요 씨다.
그는 구대호법 중에서는 칠 좌였다. 현재는 은퇴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왕석태는 겉보기에는 오십 대 초중반쯤인데 실제로는 오십 대 후반이다. 역시나 내공 경지가 높아서 젊어 보이는 것이다. 그의 경지는 원래 절정의 후반인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근래 최절정에 진입한 듯하다.
요석평과 왕석태 둘 다 도를 쓰는 무인들이다.
명황단은 천마신교의 여러 무력 조직 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정예 무력 조직이다.
규모 또한 큰 조직인 만큼, 그곳의 수장 출신인 요석평도, 최고 지휘관급인 왕석태도, 실전 실력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저 정도 고수들을 상대로 평범하게 대치하면 절대 버틸 수 없다. 지금처럼 계속해서 좁은 길을 따라 도주하며 접근을 최대한 견제해야 한다.
적들을 부지런히 견제하며 퇴각하던 어느 순간, 후방 멀리에서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익숙한 기운들을 느낄 수 있었다.
선두에서 달리고 있는 기운들은 최자경, 남궁설, 장호산, 추소륵 등의 기운이다.
빙그레 미소가 나온다.
구 조와 십 조가 함께 오고 있는 것이다.
십 조의 조장인 송유겸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데,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송유겸이 없어도, 구 조와 십 조의 나머지 동료들만으로도, 현재의 적들을 상대로 웬만큼은 버틸 수 있다.
그게 중요하다.
이윽고 구 조와 십 조가 합류했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그 와중에도 아들의 상태부터 먼저 확인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성 때문일 것이다.
멀쩡한 모습이다. 안도감이 든다.
적들이 잠시 주춤하는 사이, 최자경이 옆으로 다가오며 전음을 보내왔다.
[선배, 무사하죠?]
[응. 아직은.]
임려현이 미소를 보이며 대꾸하자 최자경이 짧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전음을 보내왔다.
[절정고수도 많고, 최절정고수도 두 명 있고, 그 외의 전력도 강해 보이는군요.]
[명황단이야. 최절정고수 두 명의 정체는 왕석태와 요석평이고.]
[왕석태는 현 명황단의 부단주고, 요석평은 구대호법 중 칠 좌였던 것으로…….]
[응. 맞아.]
[후……, 만만치 않은 고수들이군요. 적측의 전력이 강한데 이쪽 벼랑길이 넓은 게 좀 아쉽네요. 그래도 이 뒤쪽으로는 벼랑길이 끝나면서 넓은 지형으로 이어지니, 어떻게든 이 지점에서 버티는 게 낫겠죠. 아까 지나왔던 벼랑길은 좁기는 한데 여기에서 거기까지는 너무 멀고.]
후방의 그 벼랑길까지 가려면 한동안 완만한 산등성이를 타고 이어지는 산길을 지나쳐야 한다. 넓은 지형인 만큼 추격당하기도 쉽고, 그렇다 보면 조원들을 지키기도 어렵다.
[응, 이곳에서 최대한 버텨야 해.]
이 길의 오른쪽은 벼랑이다.
왼쪽은 벼랑까지는 아니고 급경사다. 급경사면 아래로는 제법 굵은 물줄기가 흐른다.
싸우다가 혹시라도 상황이 안 좋아지면 물줄기를 통해 조원들을 퇴각시킬 수 있을 것이다. 물살이 빠른 듯하나 무인들이니 어떻게든 살 수 있다. 조원들이 물줄기까지 가는 동안 자신과 최자경 등의 고수들이 어떻게든 적들을 막아주면 될 테고.
[그런데 송 공자는?]
[우리와 싸우다가 도망친 고수 한 명을 처치하러 갔어요. 금방 합류하겠다고 했으니 머지않아 오겠죠.]
송유겸이 오면 상황은 어떻게든 반전될 것이다.
그가 올 때까지 조원들을 지키며 최대한 버텨야 한다.
즉시 전열과 이 열부터 구성했다.
길 폭이 제법 넓어, 전열에 다섯 명은 서야 전선을 구축할 수 있는 상황이다.
전열은 좌측부터 선의림, 장호산, 추소륵, 남궁설의 순서로 서게 하고, 자신과 장휘택과 최자경은 전열의 바로 뒤에 자리 잡았다. 정상적인 이 열보다는 앞의 위치로, 언제든 전방으로 튀어 나갈 수 있는 지점이다.
요석평과 왕석태가 어디를 공격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래서 자신과 최자경과 장휘택이 즉시 나설 수 있도록, 전열에 네 명만 세워서 공간을 다소 넉넉하게 둔 것이다.
이 열에는 절정고수인 양소열과 단목홍신을 중심으로, 암기술에 능한 선우린, 우문직, 사옥연을 세웠다. 삼 열 이후는 양소열에게 진형 구성을 맡겼다. 모용리에게만 따로 지시하여 최후열에서 화살을 날리게 했다.
요석평과 왕석태가 명황단을 이끌고 다시 전진해 오기 시작했다.
이윽고 적의 선봉이 암기술의 사정권에 진입한 순간, 최자경이 먼저 양손을 강하게 털어냈다. 그러자 십여 개의 동전이 요석평과 왕석태를 노리고 날아갔다.
이에 임려현도 최자경을 보조하는 형태로 철비정들을 털어내니, 이번에는 최자경이 합을 맞춰서 소비도를 날렸다.
신룡대의 황룡조 시절 이후로 매우 오랜만인데도 최자경과의 호흡은 짜 맞춘 듯 척척 맞고 있다.
든든하기 이를 데 없다.
이게 전우라는 거겠지.
때맞춰 전열과 이 열의 인원들도 각자의 암기를 날리며 보조했다. 다들 암기술에 일가견들이 있다 보니 최절정고수 두 명을 제외한 다른 적 고수들에게는 충분한 견제가 되고 있다.
뒤에서는 모용리가 화살을 연사하는 중이다. 견제받지 않는 위치에서 날리는 근거리 궁술이다 보니 적들에게 큰 위협 요소가 되고 있다.
요석평과 왕석태가 암기와 화살을 쳐내며 전열로 접근했다.
요석평은 남궁설의 앞으로, 왕석태는 선의림의 앞으로 향하고 있다.
이에 임려현은 즉시 대각선으로 이동하며 남궁설의 앞으로 나섰다. 요석평이 더 고수이니 그를 자신이 맡기 위함이다.
최자경도 대각선으로 움직이며 선의림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전열에 있던 남궁설과 선의림이 약속이라도 한 듯 전열과 이 열의 사이로 살짝 물러났다. 언제든 전열로 나설 수 있는 위치에서 전열을 지원하려는 것이다.
중간에 있던 장휘택은 최자경 쪽으로 이동시켰다.
자신은 최근에 최절정고수를 상대해본 경험이 있지만, 최자경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최자경을 돕게 한 것이다.
왕석태는 아직 최절정의 초입이니 최자경과 장휘택이라면 둘이서 충분히 막아낼 만하다. 두 사람의 뒤에 있는 선의림도 틈틈이 지원해줄 테고.
곧 요석평과 왕석태 사이의 전열을 명황단의 고수들 두 명이 채우며 전선이 완성되었고,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요석평을 맞상대하는 건 역시나 버거웠다.
그러나 못 버틸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근래 경지가 상승한 덕분이고, 일전에 비슷한 수준의 최절정고수를 일대일로 상대해본 경험 덕분이기도 하다.
적진의 후열로부터 암기들이 꾸준히 날아들고 있지만, 그 암기들을 쳐내는 과정에서도 그리 위태로운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남궁설이 바로 뒤에서 엄호해준 덕분이다. 그녀는 한 손에는 검을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철비정을 쥔 채로, 엄호와 공격 지원을 병행해주고 있다.
최자경과 장휘택도 왕석태를 상대로 밀리지 않은 채 잘 버티고 있고, 전열에 있는 장호산과 추소륵도 명황단의 고수들을 상대로 잘 버티는 중이다.
특히 추소륵이 인상적이다.
단목강과 추소륵은 전열의 역할에만 집중하고자 암기술을 익히지 않았었다. 그래서인지 추소륵은 경지에 비해 훨씬 더 안정적인 모습이다.
어쨌거나 전체적인 전세는 이쪽이 조금씩 뒤로 밀리는 중인데, 염려스러울 정도로 크게 밀리고 있지는 않다.
전열의 역량은 다소 밀리는 편이나, 후열의 역량에서 앞서는 덕분이다.
후열의 암기 지원 역량만 놓고 봤을 때, 저쪽이 정예 무력 조직이라면 이쪽은 최정예 무력 조직 못지않다. 다들 서로를 잘 알다 보니 호흡이 척척 맞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후열에 있는 모용리의 궁술 지원도 매우 큰 보탬이 되고 있다.
그녀는 화살을 빠르게 연사하는 중인데, 종종 짧게 도약해서 화살을 날리며 적진의 후열에 있는 적들까지도 노리곤 했다.
궁술이 매우 위력적이면서도 정교하다 보니 화살이 날아들 때마다 적들도 상당히 곤란해했다. 실제로 모용리의 화살 때문에 다수의 적들이 공수의 맥을 놓치는 경우도 많았다.
‘진형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어. 이대로 조금만 더 버티면…….’
내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던 임려현은 순간적으로 눈매를 좁혀야 했다.
길의 후방에서 적측 고수로 추정되는 기운 두 개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공 속도로 볼 때 보통 고수들이 아니다.
둘 다 이곳에 있는 요석평보다 훨씬 강력한 고수다.
그런 고수들이 후방에서 매우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으니 퇴각하기도 쉽지 않다. 저 속도라면 조원들이 벼랑길을 벗어난 직후에 두 고수와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그 경우, 전방에 있는 적들도 추격해올 테니 넓은 지형에서 적들의 공격을 받게 된다. 당연히 피해가 매우 커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이곳에서 버티는 것 또한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다. 두 명의 고수가 뒤에서 다가오고 있는 만큼, 벼랑길의 앞뒤에서 포위당하는 형국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오래 못 버틴다.
이러면 결국 벽력탄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벽력탄으로 앞쪽의 벼랑길을 끊어서 일단은 전방에 있는 적들의 발을 묶고, 자신과 최자경과 장휘택이 후방에서 다가오는 최절정고수들을 막으며 조원들을 경사면 아래의 물줄기 쪽으로 퇴각시켜야 한다.
그 경우에는 자신과 최자경과 장휘택이 위험해질 텐데, 그때는 벽력탄 하나를 더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두 고수를 상대로도 어떻게든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결정을 내리자마자 최자경에게 전음을 보냈다.
[내가 퇴각 명령 내리면 그 후에 벽력탄으로 앞길 끊어.]
전음을 들은 최자경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모를 리 없다.
그에게 다시 전음을 보냈다.
[이후에는 뒤쪽 경사면을 통해 물줄기 쪽으로 조원들을 퇴각시킬 거야. 그러는 동안에는 너랑 나랑 장 무사님이 후방의 고수 두 명을 막아줘야 해. 나한테도 벽력탄이 하나 있으니 그걸 쓰면 어떻게든 될 거야. 장 무사님한테도 이 내용을 전해.]
최자경이 또다시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에 임려현은 곧장 양소열에게도 전음을 보냈다.
[양 교관님, 제가 퇴각 명령을 내리면 즉시 모두를 이끌고 물줄기 쪽으로 퇴각하세요. 후방의 경사면을 타고 이동하면 될 거예요. 아직 신법 경지가 부족한 인원들도 잘 챙겨주시고.]
[알겠습니다.]
[저와 최 조장과 장 무사님만 따로 움직이게 될 거예요.]
[예.]
양소열의 대꾸를 들은 후, 곧장 조원들에게 외쳤다.
“전원! 양 교관님을 따라 즉시 퇴각!”
외침과 동시에 검을 쥐지 않은 왼손으로 전방을 향해 철비정을 날렸다.
그러자 후열의 인원들도 전방을 향해 일제히 암기를 털어냈다.
퇴각 신호가 떨어지자 쥐고 있던 암기들을 일거에 쏟아내며 마지막으로 적들을 견제해준 것이다. 따로 지시하지 않았는데도.
이러니 최정예 조직이 부럽지 않을 수밖에.
화살 하나도 옆을 스쳐 지나가는 중인데, 모용리도 궁술로 요석평을 견제해준 것이다.
그렇듯 후열이 알아서 견제해준 덕분에 임려현도 어렵지 않게 요석평과의 간격을 벌릴 수 있었다.
보아하니 최자경과 장휘택도 적 전열과의 간격을 무난히 벌린 모습이었다.
장휘택이 전방을 향해 양손으로 여섯 개의 소비표를 털어내고 있다.
그사이, 최자경이 전방의 바닥을 향해 팔을 휘둘렀다.
그 직후, 최자경과 장휘택이 동시에 뒤쪽으로 신형을 틀며 발을 박차기 시작했다. 임려현도 두 사람과 시점을 맞춰서 발을 박찼다.
“탄!”
적측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린 순간.
콰아아아아앙!
벽력탄이 터지는 굉음이 들렸다.
빠르게 벼랑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 문제는 후방의 고수들이다.
두 고수는 이미 상당히 가까워진 상태.
임려현이 속도를 높여서 두 고수를 향해 나아가자 최자경과 장휘택이 좌우에서 따라왔다.
조원들이 아직 멀리까지 도주하지 못했다.
시간을 벌어주려면 저 두 고수의 발목을 최대한 오래 붙들어놔야 하는데, 쉽지는 않을 것이다. 경지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곧 고수들의 모습이 시야에도 보이기 시작했다.
한 명은 검을 들었는데 키가 큰 편이고 말랐으며, 다른 한 명은 도를 들었고 체격이 좋다.
특징을 확인해보니 두 고수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검을 든 고수는 수라단주 출신의 황호병이라는 자고, 도를 든 고수는 마룡단주 출신의 사엽상이라는 자다. 황호병 쪽이 더 고수다.
간격이 어느 정도 좁혀진 상태에서 임려현이 황호병을 향해 소비도 세 자루를 날리자 최자경과 장휘택이 사엽상을 향해 각각 소비도와 소비표를 날렸다.
각 암기에 담긴 위력도 좋고 각도도 예리하다.
그러나 두 고수는 암기들을 그리 어렵지 않게 쳐냈다.
탱! 태대대댕! 태댕!
역시나 경지의 차이가 너무 큰 것이다.
조금 전의 암기술이 거의 통하지 않은 만큼, 아무리 최자경과 장휘택이라 해도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에 임려현은 기세를 더욱 맹렬하게 일으키며 황호병을 향해 검법을 펼쳐냈다. 뒤따르는 두 사람에게 자신의 투지를 보여주려는 의도다.
아니나 다를까 최자경과 장휘택도 더욱 기세를 올리며 사엽상을 향해 검법과 도법을 펼쳐내기 시작했다.
황호병과 사엽상도 검과 도를 휘두르며 맞서왔다.
캉! 캉! 채쟁! 카가강!
역시나 두 고수는 어렵지 않게 공격을 막아냈다.
그런데도 임려현과 최자경과 장휘택은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었다. 그래야 조원들이 도주할 시간을 벌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병장기들이 쉴새 없이 부딪쳤다.
캉! 카가강! 챙! 챙! 카강! 카가강!
그러는 동안 황호병과 사엽상은 전혀 반격하지 않았다. 반격할 만한 상황이 여러 차례 있었는데도 계속 방어만 할 뿐이었다. 입가에 미미한 미소를 지은 채로.
마치 재롱부리는 애들에게 적당히 맞춰주며 놀아주는 듯한 모양새다.
그리고 두 사람의 표정은 점점 권태로워지는 중이다.
이건 위험하다.
[퇴각하자! 내 벽력탄도 쓸 거야!]
그러자 최자경이 장휘택에게 짧게 전음을 보내는 듯하더니 사엽상을 향해 검법을 펼쳐내기 시작했다.
임려현도 그 시점에 황호병을 향해 검법을 펼쳐냈다.
그러자 장휘택이 퇴로 쪽으로 낮게 몸을 날리며 왼손을 털어냈다. 비표 세 자루가 그의 손을 떠났는데, 두 자루는 사엽상에게로, 한 자루는 황호병에게로 향하고 있다. 비표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쾌속하게 날아드는 중이다.
비표가 날아듦과 동시에 최자경의 검법을 통해 발출된 네 줄기의 검경劍勁이 사엽상을 향해 날아들었고, 자신의 검법을 통해서 발출된 다섯 줄기의 검경은 왕호병을 향해 날아들었다.
검기를 경력勁力의 형태로 날리면 내공의 소모가 너무 크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상황이 아니다.
검에서 검경이 떠난 순간 최자경과 장휘택이 퇴각하기 시작했다. 임려현도 몰래 벽력탄을 꺼내 쥐며 즉시 최자경의 뒤를 따랐다.
그 와중에 잠시 뒤쪽을 확인한 임려현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카가가가강! 채쟁챙! 카가가강!
공들여 날렸던 검경들과 소비표들을 두 고수가 그리 어렵지 않게 쳐내더니, 곧장 신형을 튕기며 간격을 좁혀오고 있었던 탓이다.
추격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
이러면 금세 따라잡힐 것이다.
벽력탄을 써야 한다.
한데 저 두 사람은 상당한 고수이니, 벽력탄을 어설프게 써서는 타격을 주기가 어렵다. 벼랑길을 벗어난 만큼, 피할 공간이 많기 때문이다.
마침 퇴각하는 방향에 솟아 있는 바위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허리 높이의 뾰족한 바위다.
지금으로서는 저 바위의 상단에 벽력탄을 터트려서 바위의 파편까지 이용하는 게 최선이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끌 수 있을 것이다.
[벽력탄 쓸 거야! 그러니 그대로 계속 달려!]
최자경에게 전음을 보내자 그가 뒤돌아보지 않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쯤 뾰족하게 솟은 바위를 지나쳤고, 임려현은 시점을 재다가 벽력탄을 강하게 던졌다.
뒤쫓아오던 두 고수가 방향을 틀기 시작하는 모습이 보인다. 자신의 동작을 보고 모종의 위험을 인지한 것이다. 고수들답다.
그 직후 벽력탄이 뾰족 바위의 상단 바로 아래에 부딪혔다.
콰아아아아아앙!
굉음이 일었다.
잠시 뒤, 경공을 펼치던 임려현이 뒤쪽으로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탓이다.
그 직후, 임려현은 눈을 부릅뜨지 않을 수 없었다.
비산한 먼지를 뚫고 사엽상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그 뒤를 이어 황호병도 튀어나오고 있다.
둘 다 멀쩡한 모습이다.
벽력탄으로도 전혀 피해를 주지 못한 것이다.
피해를 주지 못했으면 시간이라도 벌었어야 했는데, 벌써 다시 추격해오고 있으니 시간도 못 번 셈이 되었다.
두 고수의 추격 속도가 무시무시하다.
이대로라면 금방 따라잡힐 테고, 결국 또다시 저들을 막아서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이번에는 최소한 한두 명은 죽을 것이다. 어쩌면 셋 다 죽을 수도 있다. 아까 방어만 할 때와 달리, 저들의 눈동자에 살의가 가득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 순간, 장휘택과 최자경을 따라 달리던 임려현은 제자리에 멈추면서 뒤쪽으로 신형을 틀었다. 동시에 두 고수를 향해 양손으로 소비도 여섯 자루를 털어냈다.
[서, 선배……!]
뒤쪽에서 최자경의 전음이 들려왔다.
그의 음성이 떨리고 있는 이유는, 자신이 이러는 의미를 눈치챘기 때문일 것이다.
“가!”
돌아보지 않은 채로 짧게 외치며, 즉시 양손으로 철비정을 빼 들었다.
과거에 수많은 전장을 함께 누볐던 최자경이다. 그라면 지금의 상황에서 본인이 뭘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현명한 판단을 할 것이다.
“어머니이이이이!”
그때 멀리에서 들려온, 아들의 외침.
가슴이 미어진다.
그러나 이를 악문 채로 다가오는 두 고수를 노려보았다.
아들에게 기억될 어미의 마지막 모습이, 결코 못난 모습이어서는 아니 되리라.
아들아, 기억하거라.
고수에게는 그만큼의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어미가 지금 이러는 이유도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아들아, 좋은 동료들을 만들거라.
이렇듯 목숨을 던져 지켜도 후회 없는, 그런 좋은 동료들을.
아들아, 어미를 잃었다고 너무 실의에 빠지지 말거라.
지금 네 옆에 있는 동료들이 모두 가족일지니.
아들아, 사랑한다.
사랑한다.
촤악!
바로 앞까지 다가온 황호병과 사엽상을 향해 양손을 강하게 뿌렸다.
손맛이 제대로 느껴진다.
지금껏 펼쳐냈던 철비정술 중 최고의 철비정술이다.
티디딩! 티디디디디디딩!
두 고수는 어렵지 않게 각자의 병장기로 철비정을 쳐내며 계속해서 간격을 좁혀왔다.
이에 임려현은 뒤로 살짝 물러나며 또다시 양손을 털어냈다.
이번 손맛도 확실하다.
일생을 통틀어 최고의 소비도술이다.
탱! 태대댕! 태댕!
두 고수는 이번에도 병장기를 휘둘러 소비도들을 쳐내며 간격을 더 좁혀왔다.
챙!
임려현은 곧바로 검을 뽑아, 전방을 향해 넓은 범위로 검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검이 검법을 완성해가며 어지럽게 허공을 수놓던 한순간.
바로 앞까지 다가온 사엽상이 도를 휘둘렀다.
아니, 휘둘렀을 것이다.
그의 어깨가 흔들리는 것만 보였을 뿐, 실제 그의 도로刀路를 눈으로 따라가지 못했다. 도가 워낙 빠르게 휘둘러진 탓이다.
엄청난 쾌도술.
까앙!
순간, 검을 쥔 손과 팔에 강력한 충격이 전해졌다.
결국 검을 쥔 팔이 뒤로 크게 젖혀지며 몸의 무게 중심이 무너졌다.
그 상황에서 황호병이 검을 찔러오고 있다.
한데 정확히 어디를 노리고 찔러오는지 알 수가 없다.
역시나 너무 빨라서 안력이 따라가지 못한 탓이다.
쾌도술과 쾌검술.
둘 다 속전속결로 자신을 처리한 후, 도주 중인 다른 동료들을 노리려는 의도가 느껴진다.
‘복부 왼쪽!’
다행스럽게도 검의 예기를 감각적으로 잡아낼 수 있었다.
신형을 맹렬하게 비틀며 옆으로 기울였다.
슥-
왼쪽 허리 높이로 검이 스쳐 지나갔다.
근래 경지가 상승하지 않았다면 저 검의 예기를 감각적으로 읽어내지도, 저 쾌검술을 피해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즈음에는 이미 사엽상이 간격을 좁혀온 상태.
도를 쥔 그의 어깨가 흔들렸다.
또다시 쾌도술이다.
이번에는 어디를 어떻게 베어오는 걸까.
감각을 열고 정신을 최대한 집중하던 찰나, 문득 사엽상의 고개가 왼쪽으로 향하는 게 보였다.
그 직후, 그가 뒤쪽으로 상체를 급격하게 젖히기 시작했다.
갑자기 왜 저러는지 의아했는데, 곧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스악-
날카로운 무언가가 가공할 속도로 허공을 가르며 사엽상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