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381
샥!
사엽상의 도가 베어 오고 있다.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
천섬무를 상 단계 정도로 운용하며 비룡검을 들었다.
비룡검을 완만하게 기울여서 비껴낼 낌새를 보이다가, 순간적으로 검을 세워서 정면으로 맞섰다.
휘둘러지는 도에 정면으로 맞서는 건 현명한 판단이 아니다. 비룡검과 비룡수투를 믿고 맞서는 것이다.
카아앙!
검과 도가 맞부딪치며 불꽃이 튀었고, 사엽상의 기운과 내 기운의 격돌로 인한 파동이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격돌이 일어나던 순간에 내 왼손은 이미 철비정들을 강하게 털어낸 상태다. 철비정들이 내 앞에 있는 사엽상과 우전방에서 다가오는 황호병을 동시에 견제하는 방향으로 날아들고 있다.
천섬무를 상 단계로 운용하며 근거리에서 털어낸 암기들이니 단순한 견제 수준은 아니다. 두 고수의 눈매가 좁아지고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내 뒤에서도 소비도와 동전들이 쏘아졌다.
내가 암기를 날린 시점에 맞춰서 임려현이 소비도를, 어느새 다가온 최자경이 동전을 날린 것이다.
특히 임려현이 날린 소비도들의 각도는 마치 내 암기술과 짜 맞춘 듯 정교하고 날카롭다.
광서 수복전과 귀주 수복전에서 수많은 전투를 함께 치러오며 합이 척척 맞게 된 덕분이다. 물론 임려현은 내 속도에 맞추느라 고생이 많았겠지만.
휙! 휙!
티디디딩! 태대댕!
두 고수가 빠르게 움직이며 암기들을 피하거나 쳐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 틈에 사엽상을 향해 쾌검술을 펼쳤다. 사엽상의 도가 암기들을 막느라 역동작에 걸려 있는 순간을 노렸다.
비룡검이 미끄러지듯 사엽상의 옆구리로 향했다.
몸을 살짝 비틀며 도를 휘둘러 막아오던 사엽상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내 검이 본인의 예상보다 훨씬 빠른 탓이다.
아까 천섬무의 경지가 한 단계 올라섰었는데, 그 덕분에 사엽상 정도의 고수에게도 속도가 충분히 통하고 있는 것이다.
사엽상이 신형을 급격히 뒤로 빼며 도를 더 빠르게 끌어당겼다.
이에 나는 또다시 정면으로 맞서는 척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비룡검을 완만하게 눕혔다.
힘이 실린 사엽상의 도가 내 검을 스치고 지나갔다.
칭!
사엽상의 무게중심이 약간이나마 무너진 틈에 나는 그의 복부를 노리고 왼손에 쥐고 있던 쇠구슬을 튕겨냈다.
그러자 사엽상이 더욱 맹렬하게 몸을 비틀며 또다시 도의 방향을 바꿔서 쇠구슬을 막아갔다.
도가 움직이는 속도가 전광석화 같다. 역시나 쾌도술이 보통 경지가 아니다.
샥- 탱!
사엽상이 쾌도술로 쇠구슬을 쳐냈다.
그 순간 황호병이 측면에서 접근하며 검을 찔러왔다.
나는 이미 황호병의 접근을 알고 있었던 만큼, 비룡검을 이용해서 그의 검을 비껴내며 살짝 뒤로 물러났다. 그러면서 소비도 두 자루를 빼내어 전방으로 털어냈다. 한 자루는 황호병을, 한 자루는 사엽상을 노렸다.
내 후방에서도 임려현과 최자경이 암기를 던지며 나를 지원했다. 두 사람은 이삼 보 뒤에서 나를 축으로 움직이며 계속해서 내 후방을 사수하는 중이다.
태댕! 티디디딩!
황호병이 빠르게 검을 휘둘러 암기들을 쳐내는 사이, 그의 뒤쪽에 있던 사엽상이 옆으로 돌아 나오며 도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암기를 모두 쳐낸 황호병도 그 시점에 맞춰서 검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고수들이 펼쳐내는 검법과 도법이다 보니 빠르고 간결하기 이를 데 없다. 물론 간결해 보인다고 해서 그들의 검법과 도법에 담긴 위력까지 간결할 리는 없다.
곧 두 사람의 검과 도가 동시에 날카로운 기운들을 토해냈다.
도법을 통해 구현된 다섯 줄기의 날카로운 직선과 곡선이 나를 노렸고, 검법을 통해 구현된 십여 개의 점들이 나를 압박해왔다.
나는 이미 천섬무를 최상 단계로 끌어올린 후다.
아까 천섬무의 성취가 한 단계 올라선 후, 최상 단계로 펼쳐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도가 그려낸 선들도, 검이 만들어낸 점들도, 찰나간에 속도가 느려졌다.
이런 고수들의 움직임이 이 정도로 느려 보이다니.
천섬무의 성취가 상승했음이 체감된다.
단, 최상 단계에서의 공력 소모 속도도 더 빨라진 듯하다.
제길, 그냥 속도만 더 빨라졌으면 얼마나 좋아?
어쨌거나 천섬무를 최상 단계로 펼치자 어떤 공격이 상대적으로 위험하고, 어떤 공격이 상대적으로 덜 위험한지 파악이 되었다.
즉각 비룡검을 휘두르며 위험한 공격들 위주로 막았다.
카가강! 채쟁! 챙! 카강!
덜 위험한 공격들은 흘려보냈다. 그 정도 공격이라면 이삼 보 뒤에 있는 임려현과 최자경 수준에서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뒤에 있던 두 사람이 간격을 벌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나를 스쳐 지나간 공격들을 피하려고 옆쪽으로 움직인 것이다.
그 순간 황호병과 사엽상이 내 양옆으로 빙글 돌며 각각 임려현과 최자경을 향해 쇄도하기 시작했다.
기다렸다는 듯한 움직임.
후열이 측면으로 살짝 드러난 김에, 그쪽을 먼저 타격하여 우리의 조직력을 무너트리려는 것이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크게 밀리는 우리 세 사람이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바로 조직력 때문이니까.
두 고수가 그걸 모를 리 없으니까.
황호병과 임려현의 간격이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다.
나는 사엽상의 전방을 향해 왼손의 철비정을 강하게 뿌린 후, 그대로 보법을 펼치며 임려현의 전방으로 움직였다.
임려현은 황호병에게서는 멀어지고 내게는 가까워지는 방위로 빠르게 이동하는 중이다. 그녀답게, 갑작스러운 상황에서도 본인이 어떻게 대처하는 게 최선인지 잘 알고 있다.
덕분에 나는 임려현과 교차하여 황호병을 막아설 수 있었다.
내가 그대로 황호병을 향해 쾌검술을 펼치는 사이, 나와 교차해 지나간 임려현이 사엽상을 향해 소비도 세 자루를 날렸다.
최자경에게 쇄도하던 사엽상은 정상적으로 간격을 좁히지 못한 상태다.
앞서 내가 날렸던 철비정들 때문이다.
아무리 사엽상이 최절정의 중위권쯤 되는 고수라 해도, 내가 천섬무를 최대한으로 펼친 상태에서 뿌려낸 철비정에 간단히 대처할 수는 없다.
그 상태에서 임려현이 소비도까지 날려주니, 시간을 번 최자경은 임려현과 교차하여 안전한 위치를 잡았다.
카강! 캉! 캉! 카가강!
나와 황호병의 검세가 강하게 맞부딪쳤다.
천섬무를 최대한으로 펼친 상태다 보니 어떻게든 막아낼 수 있었다. 아까 천섬무의 성취가 한 단계 올라서지 않았다면 막아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사이, 동전 몇 개가 내 옆을 스쳐 지나가며 황호병에게로 향했다.
최자경이 안전한 위치를 점하자마자 황호병을 견제해준 것이다.
그때쯤 사엽상은 임려현에게 짓쳐 들기 시작한 상태.
임려현이 철비정을 쏟아내며 사엽상의 접근을 견제했고, 나도 사엽상 쪽으로 간결하게 왼손을 뻗어 강탄술을 펼쳤다. 천섬무를 최상 단계로 운용하는 상태에서 튕겨낸 쇠구슬이니 위력이 아까보다 훨씬 강할 수밖에 없다.
이어서 최자경도 임려현을 지원하며 소비도를 털어냈다.
사엽상은 이번에도 임려현과의 간격을 쉽사리 좁히지 못한 채로 암기들을 쳐낼 수밖에 없었다.
티디디딩! 채쟁! 챙! 태앵-!
“엇!”
암기들을 쳐내던 사엽상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났다.
상황이 궁금하지만 나는 그쪽을 확인하지 않았다. 황호병이 내 바로 앞에 있기 때문이며, 여전히 그와 검을 섞고 있기 때문이다.
탓! 휙-
사엽상이 공격을 멈추더니 뒤쪽으로 간격을 벌렸다.
그러자 검술을 펼치던 황호병도 한차례 강력한 공격을 구사하더니 신형을 뒤로 쭉 빼며 사엽상의 옆으로 이동했다.
임려현과 최자경이 내 뒤에서 전열을 정비하는 사이, 나는 사엽상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의 왼쪽 어깨 부근의 의복이 붉게 물들고 있다. 상처가 난 것이다.
뒤에서 임려현의 전음이 들려왔다.
[송 공자가 날린 쇠구슬을 도면刀面으로 막다가 도가 순간적으로 밀렸던 거예요. 그렇다 보니 튕겨낸 각도가 틀어지며 쇠구슬이 왼쪽 어깨를 스쳐 지나간 거고요. 사엽상의 예상보다 쇠구슬의 위력이 훨씬 강력했다는 뜻이겠죠. 아쉽게도 큰 부상은 아닐 거예요.]
어떻게 된 상황인지 대충 알 것 같다.
두 고수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둘 다 눈빛에 놀람이 담겨 있는 상태다.
“허, 이 정도였다고……?”
사엽상이 혀를 내두르며 그렇게 말했다.
원래는 나를 그리 어렵지 않게 처치하고, 나머지 두 명도 금세 처리할 수 있으리라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직접 붙어보니 만만치 않았던 데다가, 오히려 잠시나마 위협까지 느꼈다 보니 저러는 것이다.
황호병도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더더욱 아쉽군.”
내 실력을 직접 겪어 보니 나를 죽이는 게 더더욱 아쉬워졌다는 의미다.
황호병에게 대꾸했다.
“아쉬우시면 그냥 못 본 척 가주셔도 되오.”
내 말에 황호병이 피식 웃었다.
그러자 사엽상이 내 뒤쪽에 시선을 두고 말했다.
“그놈의 암기술 때문에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동천비룡도 동천비룡인데 뒤에 있는 두 사람의 암기술도 짜증스러울 정도로구나. 왕년에 흑풍대에서 암기술로 이름 좀 날렸던 고수들을 몇 명 아는데, 그들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사엽상이 말을 이었다.
“전투 시의 움직임, 대처, 판단력 등을 종합해 보면, 두 사람은 아마도 신룡대 출신이렷다. 현역 시절에도 암기술로 손꼽혔을 테고.”
그러자 황호병이 말을 보탰다.
“저 정도면 조장급, 부조장급은 되었을 겁니다.”
정확하다.
최자경도 나중에는 황룡조의 부조장으로 은퇴했다고 들었다.
사엽상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도를 고쳐 쥐며 말했다.
“네놈들의 실력, 인정하마. 더는 얕보지 않겠다. 이제부터는 조금 다를 것이다.”
그러자 황호병도 우리를 보며 조용히 검을 고쳐 쥐었다.
사엽상의 말은 결코 허세가 아니다. 두 고수 모두 지금까지는 제대로 싸운 게 아니다. 일종의 탐색전 개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임려현과 최자경은 상당히 지친 상태다. 호흡도 다소 거친 상태이며, 공력도 충분치 않을 것이다.
버티다가 위험해지면 일단은 벽력탄을 잘 활용해볼 수밖에 없다.
그때쯤 황호병과 사엽상이 뒤쪽으로 살짝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이 저러는 이유는 그들의 후방 먼 곳에서 일단의 무리가 경공을 펼치며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열서너 명쯤이다.
모두가 마인들인데, 아까 벼랑길 쪽에서 임려현 등과 대치하던 자들의 기운이다. 폭발과 추락에서 살아남은 자들일 텐데, 고수들 위주로 살아남았을 게 당연하다.
구성은 최절정고수 두 명에 절정고수 일곱 명, 일류고수는 다섯 명쯤이다.
안력을 돋워보니 다가오는 최절정고수 두 명 모두, 내가 아는 얼굴들이었다.
한 명은 구대호법 중 일인인 요석평이다.
그는 명황단주 출신인데, 내가 천마신교에 있을 당시에는 구대호법의 말석이었으며 경지는 갓 최절정에 오른 수준이었다.
그때 이후로 몇 년이 지났으니 노인인 요석평도 구대호법에서 은퇴하지 않았을까 싶다. 현재의 경지는 최절정의 중하위권으로 보인다.
다른 한 명은 왕석태로, 내가 천마신교에 있을 당시에는 명황단의 부단주였다. 현재도 같은 직위인지는 모르겠다.
그는 과거에는 절정의 후반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현재의 경지는 최절정의 초입인 듯하다.
나머지 절정고수 중에서도 낯익은 이들이 있다. 명황단의 정예로 기억되는 자들이다.
사엽상이 고개를 돌리더니 뒤에서 다가오는 자들 쪽으로 전음을 보냈다.
그러자 다수의 적들이 후방 멀찍한 곳에 멈췄고 다섯 명만 계속해서 다가왔다. 계속 다가온 이들은 요석평과 왕석태 그리고 절정의 중반 이상인 고수들 세 명이다.
우리의 암기술에 대응할 수 있을 법한 수준의 고수들만 접근을 허용한 것이다. 나머지는 쓸데없이 희생만 당할 테니까.
다가오는 다섯 명은 다들 여기저기에 상처를 입은 모습이다.
날아드는 벽력탄을 확인하고 빠르게 피했다곤 쳐도, 벼랑길이 무너지며 급경사면 아래로 추락하는 상황에서까지 멀쩡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낙석이 일어나며 크고 작은 바위들도 같이 떨어져 내리기 때문이다.
그래도 저 다섯 명의 경우에는 부상이 크지 않아서 전투를 치르는 데는 별문제가 없어 보인다.
우리의 후방에서도 세 명이 우리가 있는 곳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장호산, 추소륵, 남궁설이다.
그들이 장휘택의 근처까지 다가왔을 때쯤, 나는 뒤쪽으로 손바닥을 내보이며 멈춰 세웠다. 더 다가오면 위험할 수 있는 탓이다.
임려현에게 짧게 전음을 보냈다.
[모두 저곳에서 대기하다가 우리 쪽이 밀리면 최대한 수비적으로 엄호하며 차근차근 뒤로 물러나라 하십시오. 혹시라도 위험해지거든 어떻게든 시간을 버는 데 주력하라 전하십시오.]
[알았어요.]
임려현이 짧게 대꾸했을 때쯤 사엽상이 내게 말했다.
“아이야, 아무래도 너는 천재가 맞나 보다.”
아까 천재는 단명한다던 이야기의 연장이다.
저들 쪽에 최절정고수 두 명이 더 합류했으니 우리 쪽이 매우 불리해졌다. 그래서 저 말을 하는 것이다.
이러면 예상보다 벽력탄을 더 일찍 쓸 수밖에 없을 듯하다. 그야말로 최대의 성과를 내야 하리라.
측면에서 일단의 무리가 다가오는 게 느껴진 건 바로 그때였다.
모두의 고개가 그쪽으로 돌아갔다.
서른 명에 가까운 인원들이다.
백도의 기운들인데, 낯선 기운들이다.
기본적으로 일류의 후반 이상으로 구성된 정예 전력들로, 놀랍게도 그 많은 인원 중 거의 반이 절정고수고, 그중 세 명은 최절정고수다.
그들은 금세 우리 근처에 도착하여 멀찍이서 멈췄다. 우리가 대치 중인 모습을 보고는 분위기를 파악하고자 멈춘 듯하다.
내가 곁눈질로 백도인들을 살피는 사이, 무리의 뒤쪽에서 두 줄기의 전음이 거의 동시에 날아들었다.
[어? 송유겸 공자 아니시오?]
[호, 혹시, 송유겸 공자……?]
익숙한 목소리들이기는 한데, 누구의 목소리인지는 퍼뜩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전음이 날아든 방향을 바라봤다.
그 직후, 반가운 얼굴 두 명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천당가의 당효광과 형산파의 웅익기다.
둘 다 몇 년 전에 통합 잠룡대전에서 만났던 이들이다.
그 후로는 만나는 게 처음이다 보니 두 사람의 목소리를 곧바로 알아듣지 못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