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382
방금 다가온 백도인들의 기운은 크게 세 종류로 나뉜다.
즉, 세 곳의 백도 세력으로 구성된 전력인 것이다.
내 추측을 뒷받침하듯, 각 무리의 선두에는 세 사람이 서 있다.
당효광과 웅익기가 포함된 것을 보면 한 곳은 사천당가고 또 한 곳은 형산파일 텐데, 나머지 한 곳이 어디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궁금하다.
당효광과 웅익기를 차례로 바라보며 인사를 겸해 미소를 지어줬다.
그러자 두 사람도 반가움 가득한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본인들의 선두 쪽을 향해 전음을 보내기 시작했다. 각자 본인들의 수장에게 전음을 보내고 있는 듯하다.
각 무리의 선두에 있는 인물들의 외모가 낯익다.
실물로는 처음 보지만 예전에 천마신교의 용모파기 자료를 통해 접했던 얼굴들인 것이다. 참고로 천마신교의 자료에 용모파기가 첨부된 이들은 대부분 강호의 주요 인물들이거나 주시해야 할 인물들이다.
선두에 있는 인물들의 용모를 보며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을 때쯤, 뒤에서 임려현이 전음으로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선두의 좌측에 있는 인물은 사천당가의 당우수 대협으로, 현 당가주인 당우명 대협의 둘째 아우예요. 사천당가의 삼대 고수이기도 하죠.]
임려현의 설명을 들으니 바로 알 수 있어서 편하다.
당우수는 평균 신장에 날렵한 체구다.
임려현이 말했듯 사천당가에서는 세 번째 고수로 알려져 있는데, 아까 보니 경지는 최절정의 중하위권쯤이었다.
[선두의 우측에 있는 노인은 형산파의 상충호 대협으로, 현 장문인의 사숙이에요. 형산파의 양대 고수고요.]
상충호는 등이 살짝 굽었고 머리와 수염이 희다. 흰 턱수염이 가슴께까지 내려와 있다.
그는 현 형산파 장문인의 막내 사숙으로, 나이가 거의 여든에 가깝다. 아까 경공 펼칠 때 보니 경지는 최절정의 중위권쯤인 듯했다.
호남의 형산에 있는 형산파는 오악五岳 문파 중 남악南岳으로 불리는 전통의 명문이다.
[선두의 중앙에 있는 인물은 백리창 대협이에요. 무상 백리결 대협의 다섯째 아우죠. 백리세가에서 무상님 다음가는 고수이기도 하고요.]
몇 년 전에 무상 백리결을 직접 봤었는데, 오늘 백리창을 보니 확실히 형제간에 많이 닮은 모습이다.
백리결은 평균보다 큰 키에 날렵한 체구였었다.
백리창의 키도 백리결과 비슷한데 체격이 더 탄탄하다.
백리결의 형제들은 모두 무공이 빼어나기로 유명한데, 백리창은 손위 형들의 경지를 차례로 뛰어넘으며 맏형인 백리결 다음가는 고수로 성장한 인물이다.
아까 보니 백리창의 경지는 최절정의 중상위권인 듯했다. 대단한 고수라고 할 수 있겠다.
백리세가는 호남의 악양에 자리 잡고 있다.
[아, 백리창 대협의 뒤에 있는 청년에 대해서도 말해줘야겠군요. 그가 바로 백리세가의 소가주인 백리탄 공자예요.]
천마신교의 용모파기에도 있었던 얼굴인데다가 백리결과도 워낙 닮은 용모라서, 나도 내심으로 백리탄의 정체를 유추하고 있던 차였다.
백리탄은 백리결의 장남인 만큼, 어려서부터 촉망받는 후기지수로 주목받았었다. 실제로 백리탄은 남궁묵 이후에 통합 잠룡대전에서 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본인의 실력을 증명하기도 했었다.
백리탄도 아까 경공을 펼칠 때 선봉 쪽에 있었는데, 경지는 절정의 중반쯤인 듯했다.
그의 나이가 서른 즈음인 걸 고려하면 나이에 비해 경지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백리결이 아들을 제대로 키워낸 것이다.
어쨌거나 임려현 덕분에 여러 주요 인사의 정체를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그녀에게는 항상 고마운 마음이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우리 앞에 최절정고수가 네 명이나 있다는 사실을 저분들에게 일러주십시오. 그리고 그중 두 명은 치명적인 고수이니, 절정의 후반 이상이 아니면 이 근처로는 접근하지 말라는 당부도 곁들여 주십시오.]
치명적인 고수란 당연히 황호병과 사엽상이다.
임려현과 최자경은 노련한 실전 고수들이기에 절정의 중후반이어도 황호병과 사엽상을 상대로 최소한의 대처가 가능하지만, 일반적인 백도 고수라면 절정의 후반은 되어야 대처가 가능할 것이다.
[알았어요.]
임려현이 대꾸하더니 백리창 쪽을 향해 전음을 보내기 시작했다.
천마신교 측 고수들의 양미간은 좁혀져 있는 상태다.
사천당가와 형산파와 백리세가의 고수들 및 정예들이 합류하면서 상황이 반전된 탓이다.
단순히 머릿수만 많아진 게 아니라 고수들의 전력에서도 우리 쪽이 다소 우세해졌다.
일단 저쪽의 고수들인 황호병, 사엽상, 요석평, 왕석태의 경지는 각각 최절정의 중상위권, 중위권, 중하위권, 초입인데, 우리 쪽의 고수들인 백리창, 상충호, 당우수의 경지도 각각 최절정의 중상위권, 중위권, 중하위권이다.
최절정고수의 수만 따지면 적측이 많지만, 우리 쪽에는 내가 있다.
왕석태가 최절정의 초입이라고 해도, 그가 나를 상대하기는 버겁다는 사실을 황호병과 사엽상이 모를 리 없다.
멀찍이 멈춰서 분위기를 파악하던 백도인들 중에서 다섯 명이 우리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백리창을 필두로 한 최절정고수 세 명과 절정의 후반인 고수 두 명이다. 임려현의 조언을 따랐을 것이다.
다섯 명을 제외한 나머지 백도인들은 멀리 빙글 돌아서 우리의 후방 쪽으로 향하고 있다.
지원 전력이 온 만큼, 급경사면 아래의 물줄기로 향하던 우리 인원들도 더는 도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가온 백리창이 내 왼편에 서자 노인 상충호가 내 오른편에 섰다.
당우수는 내 뒤쪽에 섰다. 그는 사천당가 출신이니 암기술을 펼치기 위해 후열에 선 모양이다.
절정의 후반인 두 중년인도 후열에 섰다.
한 명은 사천당가 쪽 인물이고 다른 한 명은 형산파 쪽 인물이다.
뒤에서 임려현이 전음을 보내왔다.
[후열의 두 명 중에서 한 명은 사천당가주의 사촌 아우인 당우철 대협이고, 다른 한 명은 형산파의 칠대고수 중 한 명인 금원창 대협이에요.]
둘 다 천마신교의 자료에 있는 인물들이다.
이로써 전열 세 명, 후열 다섯 명의 진형이 갖춰졌다.
이 정도 고수들이면 전열의 수가 다소 적어도 딱히 상관없다.
바로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유명한 동천비룡을 이렇게 보는군. 반갑네.”
당우수다. 당효광한테서 내 정체를 들었을 것이다.
그러자 내 오른편에 있는 노인, 상충호도 말을 보탰다.
“헐헐헐. 네가 그 송유겸이라는 아이였구나. 반갑다, 반가워.”
상충호에 이어서 왼편의 백리창이 전방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조용히 말했다.
“강력한 마기 두 개와 맞서고 있는 격렬한 기운이 누구의 기운인가 했는데, 그게 동천비룡이었다니.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고수였던가…….”
상대가 황호병과 사엽상이다 보니 천섬무를 상 단계, 최상 단계로 운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내 기운도 격렬했을 것이다.
전방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대꾸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선배님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정식으로 인사드리지 못하는 점, 용서를 구합니다.”
“헐헐, 이 판국에 인사는 무슨.”
상충호가 그렇게 말했을 때쯤, 적측의 후열에서 우리를 향해 일거에 암기를 쏟아내는가 싶더니, 이어서 여러 개의 구체를 날렸다.
“탄!”
백리창의 짧은 외침이 들렸다.
구체들은 우리의 바로 앞쪽 땅바닥을 향해 날아들고 있다.
구체들이 암기와 함께 날아들고 있는 데다가 고수들이 던졌기에, 우리 쪽에서도 순간적으로 튀어 나가서 걷어내기에는 무리가 있다. 물론 내 경우에는 천섬무를 펼치면 구체 하나쯤은 건져낼 수 있겠지만, 혼자서 그런 식으로 움직여 봐야 딱히 의미는 없다.
적들은 암기를 쏟아내며 구체를 던지자마자 뒤돌아서 경공을 펼치기 시작한 상태다. 방향을 보니 벼랑을 빙글 돌아, 벼랑 반대편의 경사면 쪽으로 퇴각하려는 듯하다.
적들로서는 당연한 판단이다.
본인들의 전력이 열세이니 전투가 계속될수록 불리해질 수밖에 없고, 그 후에는 퇴각하기가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후열에 있는 동료들이 좌우로 쫙 퍼지고 있다. 구체가 날아드는 범위에서 이탈하려는 것이다.
내 좌우에 있던 백리창과 상충호도 암기들을 쳐내며 양옆으로 신형을 튕겼다. 두 사람은 구체가 날아드는 범위에서 이탈함과 동시에 적들을 추격하려는 기세다.
이에 나도 상충호의 뒤를 바짝 따라갔다.
퍼벙! 펑! 퍼벙!
독탄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독탄들이 떨어진 지점을 보니 적들은 횡으로 독무의 벽을 만들어 우리의 추격을 방해할 생각이었던 듯하다.
그러나 전열에 있던 우리 세 명은 빠르게 반응한 덕분에 독무가 피어난 범위를 이미 우회한 상태다.
후미에서 도주하는 적들과의 간격이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후열에 있던 동료들도 당우수를 필두로 빠르게 뒤따라오는 중이다.
적측 후미와의 간격이 매우 가까워지자, 적측에서 두 명이 도주를 멈추더니 우리를 막기 위해 다가왔다.
황호병과 사엽상이다.
동료들을 퇴각시키기 위해 우리를 막으려는 것이다.
역시 저 두 사람답다.
이어서 요석평과 왕석태도 돌아섰는데, 결국 요석평만이 우리를 막기 위해 다가왔다.
왕석태도 같이 다가올 분위기였는데, 그는 요석평과 전음을 주고받는 듯하더니 부하들과 함께 그대로 퇴각했다. 아무래도 왕석태는 명황단의 현 부단주인 만큼, 그에게 명황단원들을 맡긴 듯하다.
우리는 그대로 천마신교의 고수 세 명에게 짓쳐 들었다.
백리창이 좌측의 황호병에게 달려들자 상충호는 중앙의 사엽상에게 달려들었다.
캉! 카강! 캉!
각자 한두 차례씩 병장기가 맞부딪쳤는데, 경지가 비슷한 상대들을 만난 만큼 기세가 팽팽했다.
나는 뒤이어 우측의 요석평에게 달려들었다.
요석평이 도를 휘둘러 내 하체를 노렸고, 나는 그의 우측으로 돌며 비룡검으로 도를 비껴냈다.
채앵!
그러자 요석평이 신형을 틀며 도를 비틀어 곧장 내 허리 어림을 공격해왔다.
이에 나는 그의 우측으로 일 보 더 이동하면서 또다시 비룡검으로 도를 비껴냈다.
챙!
요석평의 도와 비룡검이 부딪치는 순간, 천섬무를 최상 단계로 끌어올리며 왼손으로 강탄술을 펼쳤다.
쇠구슬이 요석평의 왼쪽 복부를 향해 빠르게 날아들었다.
미리 경로를 계산해서 튕겨낸 쇠구슬이다.
측면으로 이동한 상태에서 튕겨냈기에, 요석평이 피해버리면 쇠구슬은 그 경로에 있는 사엽상의 골반으로 향하게 된다.
요석평이 급격하게 눈매를 좁히며 신형을 비틀었다.
도를 끌어당겨서 막기에는 이미 늦었음을 알고 반사적으로 회피 동작을 취한 것이다. 요석평의 경지가 사엽상 정도만 되었어도 조금 더 나은 대처를 보였을 텐데, 애석하게도 그의 경지는 한 단계 낮다.
결국 요석평의 옆구리 쪽 의복을 스쳐 지나간 쇠구슬이 사엽상의 골반으로 향했다.
참고로 그즈음의 사엽상에게는 이미 세 자루의 소비도들이 날아드는 중이다.
빠르게 다가온 당우수가 황호병과 사엽상을 향해 양손으로 소비도를 뿌렸기 때문이다.
암기술의 명가인 사천당가의 고수답게 여섯 자루의 소비도 모두 빠르고 예리하기 이를 데 없다.
상충호와 격렬하게 맞서면서 소비도를 쳐내던 사엽상이 순간적으로 눈을 크게 뜨며 왼쪽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방향에서 쇠구슬이 불쑥 튀어나온 셈이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상충호의 공격과 당우수의 암기술을 막기에도 바빴던 상황이 아닌가.
결국 사엽상은 신형을 비틀며 뒤로 일 보 물러남과 동시에, 도를 끌어당기며 도면으로 쇠구슬을 튕겨냈다.
탱!
그 시점에 쾌속하게 전진한 상충호의 검이 사엽상의 하복부를 찔러 갔다.
이미 신형을 비틀대로 비틀었던 사엽상이라, 현 시점에서는 상충호의 검을 피하기가 어려운 상황.
그때, 옆에서 황호병의 검이 불쑥 끼어들며 상충호의 검을 쳐냈다.
카앙!
그리고 그 순간, 황호병을 상대하고 있던 백리창의 검극이 황호병의 허벅지를 찔렀다.
푹!
백리창 정도의 고수가 이런 기회를 놓칠 리 없다.
결과적으로 요석평이 내 쇠구슬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연쇄 효과로 인해 황호병이 다리에 부상을 입은 것이다.
그때쯤 임려현, 최자경, 당우철, 금원창이 후열에 도착했다.
금원창은 곧장 검을 뽑아 들고 내 옆으로 다가와 요석평을 견제하기 시작했고, 임려현과 최자경과 당우철은 천마신교의 세 고수를 향해 암기를 날리기 시작했다.
당우철의 암기술이 인상적이다. 역시나 사천당가의 고수답게 암기술이 매우 깔끔하면서도 정교했다.
어쨌거나 황호병이 허벅지를 다치면서 전세는 급격하게 기운 상태다. 그런데도 세 고수의 눈동자에 담긴 각오는 변함이 없어 보인다.
애초에 천마신교의 세 고수 모두, 우리를 막아서면 본인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몰랐을 리 없다.
그렇다 보니 끝까지 우리의 발목을 붙잡아서 어떻게든 동료와 부하들을 살려 보내려는 것이다.
친숙한 기운들 몇 개가 감각의 영역에 잡힌 건 그때쯤이었다.
단목진, 문숙경, 남궁찬, 제갈수광 등의 기운이 선두에서 매우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고, 낯선 최절정고수의 기운 두 개도 함께하고 있다.
잠시 후, 우리 증원 전력의 나머지 인원들도 감각의 영역에 잡히기 시작했다. 우리 인원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낯선 기운들도 동행하고 있다.
선두의 고수들이 매우 빠르게 경공을 펼치고 있는 탓에 나머지 인원들은 상대적으로 뒤처진 듯하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벼랑의 반대편 경사면 쪽에서 온갖 비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왕석태와 명황단원들이 지나가고 있을 법한 곳이다.
비명이 들리면서 마기가 하나씩 사라지고 있다.
선두에서 빠르게 다가온 우리 측 고수들에 의해 명황단원들이 처리되고 있는 것이다.
그 와중에도 단목진, 문숙경, 남궁찬의 기운은 멈추지 않고 우리를 향해 계속 다가오는 중이다.
황호병, 사엽상, 요석평의 어깨가 점점 처져갔다.
본인들이 희생을 각오하면서까지 살려 보내려 했던 동료와 부하들이 허무하게 죽고 있는 탓이다.
이윽고 단목진과 문숙경과 남궁찬이 천마신교 측 고수들의 뒤쪽에 다다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