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안에 마교있다-385화 (385/416)

내 안에 마교있다 385

길초량에게 물었다.

[그간 어딜 그렇게 빨빨거리고 돌아다니시느라 코빼기 한번 안 비친 거요?]

[빠, 빨빨거리다니, 코빼기라니……. 거, 표현을 하셔도 꼭.]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서너 차례 저어 보인 길초량이 다시 전음을 보내왔다.

[아시잖소. 내가 어디에 갔었는지는 밝힐 수 없다는 거. 혈서 타령을 하셔도 이건 어쩔 수 없다는 거.]

신룡대의 행적은 기밀이라는 의미다.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에 말했다.

[어디를 싸돌아다녔는지는 몰라도 지난 시간 동안 죽어라 싸우고 다닌 모양이구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오?]

[길 형의 기도가 이전보다 훨씬 묵직해졌는데, 사납고 치열한 느낌도 같이 전해져서 말이오.]

나는 저 사납고 치열한 기도에 익숙하다. 흑풍대 시절에 내 동료들도 저런 기도를 종종 풍겼었다. 당연히 나도 풍겼을 것이다. 저 기도는 매우 오랫동안 전장에서 피를 뒤집어쓰면서 살다 오면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기도다.

길초량을 보며 한마디를 더 보탰다.

[뭐라고 할까, 닳고 닳은 무인의 느낌이라고 할까?]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 닳고 닳았다는 의미다.

[다, 닳고 닳은 무인이라니…….]

길초량이 어이없다는 듯 반응했다.

웃으며 그에게 대꾸했다.

[순간적으로 마땅한 표현이 생각나지 않아서 말이오.]

[아니, 숙련된 무인이라든지, 그런 말도 있잖소.]

숙련된 무인이라는 의미로 쓴 말이 아니라서 말이다.

[아하하, 아무튼 좋은 뜻으로 쓴 말이었소. 뭘 그리 말 한마디 한마디, 꼬치꼬치 따지시오.]

[후…….]

길초량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경지도 많이 상승하신 듯하고.]

길초량의 현재 경지는 단목강과 비슷해 보인다. 조금 더 높을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와 비교해서 경지가 큰 폭으로 상승한 것이다.

단목강은 경지 대비 전투력이 지나칠 정도로 높은 무인인데, 길초량은 신룡대원인 만큼 전투력도 더 높을 수밖에 없다.

저 경지에 저 전투력이면 백도의 어디에 가도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

길초량은 미소만 지어 보일 뿐, 대꾸하지 않았다.

잠시 후, 그가 말했다.

[광서 수복전에서 활약이 어마어마하셨더구려. 귀주 수복전에서의 활약도 만만치 않으셨고.]

놈은 정보 접근이 용이한 신룡대원이다.

당연히 광서 수복전과 귀주 수복전에 관련된 정보를 두루 알고 있을 것이다. 내 활약상에 대해서도 잘 알 테고.

길초량에게 대꾸했다.

[그런 정보라는 게, 원래 몇몇 중심인물들 위주로 작성될 수밖에 없잖소. 그러니 길 형이 아는 내용은 내 실제 활약상에 비해 과장되었을 가능성이 크오.]

길초량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걸 지금 나한테 믿으라고 하시는 소리요? 내가 송 형과 같이 전투를 한두 번 치렀소? 하여튼 별것 아니라는 듯 스리슬쩍 빠져나가는 건 여전하시구려.]

내가 미소를 지어 보이자 그가 다시 전음을 보내왔다.

[어쨌거나 송 형의 활약상에 대한 보고서를 보니, 못 본 새 경지가 크게 상승하신 듯하던데.]

아예 보고서를 본 거냐?

하긴, 내가 길초량의 입장이었어도 자세히 알아봤을 것이다. 친우가 대체 어떤 전투를 치렀기에 이렇듯 소문이 자자한지 궁금할 테니까.

그에게 대꾸했다.

[아시잖소. 내가 속도가 빠르다 보니 더 잘 싸우는 듯 보인다는 거. 그렇다 보니 꾸준히 안정적으로 싸우며 활약하는 이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주목받게 된다는 거.]

내가 미소를 보이며 대꾸하자 길초량이 째진 눈으로 웃으며 말했다.

[그만하시오, 추하오.]

[후…….]

더 변명하지 않고 그냥 한숨만 내쉬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충 얼버무리는 것도 한계다.

길초량이 다시 전음을 보내왔다.

[아니, 우리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도 송 형의 경지는 말도 안 되게 높았잖소. 한데 그 상태에서도 큰 폭으로 상승했다니, 그게 말이 되오?]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아까 길초량이 그랬듯, 나도 대꾸하지 않은 채로 미소만 지어 보였다.

그러자 길초량도 더는 묻지 않고 마주 미소를 지었다.

길초량을 마지막으로 봤던 시기는 재작년 유월 중순 무렵이었다.

당시에 그는 한동안 비룡장에 머물다가 떠났는데, 나는 새벽에 떠나던 그를 조용히 배웅해줬었다.

지금이 시월 하순 무렵이니, 우리는 꼬박 이 년 하고도 넉 달 만에 재회한 셈이다.

길초량이 송풍장에 있을 당시의 내 경지는 절정의 중후반이었다. 그러나 길초량이 내 경지를 온전히 파악하지는 못했을 테니, 아마도 절정의 중반 근처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이번 보고서를 통해 내 경지가 절정의 중후반, 나아가 후반일 수도 있음을 분석해낸 것이고.

이 년 사 개월이라는 기간은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무공 경지가 큰 폭으로 상승하기에는 짧은 시간이다. 경지가 높을수록 더 그렇고, 절정의 중반 이후부터는 더더욱 그렇다. 일반적으로 경지 상승이 매우 더뎌지는 구간이 바로 그 구간이다.

그런데도 내 경지가 큰 폭으로 상승해 있으니 어찌 놀랍지 않겠는가.

길초량이 말했다.

[아, 그리고 송 형이 줬던 그 단검, 잘 쓰고 있소. 좋은 물건이더구려. 참고로 그 단검이 나와 내 동료들의 목숨을 여러 차례 구했소. 고맙소.]

이에 빙그레 웃어 보인 후에 대꾸했다.

[다음에 장원에 들르면 더 좋은 것으로 바꿔드리리다.]

그 말에 길초량이 놀란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오. 아무리 우리가 절친한 친우 사이라도 이 이상의 값진 물건을 덥석 받을 수는 없소. 염치 문제라고 할까.]

좋은 병장기를 싫어하는 무인은 없다. 길초량도 속으로는 당연히 갖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겉으로는 그러한 욕망을 내비치지 않고 있다. 좋은 절제력이다.

그에게 말했다.

[이미 장원의 많은 이들에게 길 형이 가지고 있는 단검보다 더 질 좋은 병장기들를 선물했소. 하지만 뭐, 길 형은 필요 없으신 듯하니…….]

그 순간, 길초량이 내 말을 끊으며 전음을 보내왔다.

[아니오, 아니오, 아니오. 나도 그럼 고마운 마음으로 받겠소. 하하. 하하하.]

역시, 저럴 줄 알았다.

[하지만 방금 길 형 입으로 직접, 염치 문제라고…….]

[하핫. 그냥 염치없는 사람인 것으로 하겠소.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내가 언제부터 송 형 앞에서 염치를 챙겼다고. 핫핫핫.]

민망해하며 억지웃음을 짓고 있다.

이에 빙그레 웃으며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장원에 들를 시간이 있기는 있소?]

[아직 확실한 건 없는데, 조만간 들르게 될 가능성이 크오. 매우 오랜 기간 휴가가 없다시피 했던지라.]

[오,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구려.]

내가 그렇게 대꾸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길초량도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말했다.

[아, 그리고 견수암이라는 관도가 우리와 함께하는 중이오. 길 형의 사숙이라고 하던데.]

내 말에 길초량의 눈이 커졌다. 견수암이 이쪽 전장에 투입된 사실을 전혀 몰랐던 듯하다.

[아니, 사숙이 어떻게 여기에……. 그리고 송 형이 어떻게 견 사숙의 정체를…….]

[백도 쪽의 전력이 부족하다 보니 이번에도 잠룡관도들을 차출했다고 하더구려. 우리 때의 기동타격조처럼.]

[아.]

[정체는 마침 우리 조원이어서 알게 된 거요. 경공을 펼치면서 보니 길 형의 기운과 느낌이 비슷하더이다. 그래서 조용히 불러서 캐물었지.]

[그랬구려. 뭐, 언젠가는 송 형에게 견 사숙을 소개해줄 생각이기는 했는데……. 어쨌거나 우리 견 사숙, 무사하시오?]

[무사하오. 자세한 건 직접 물어보시오. 지금쯤 저쪽 경사면 위로 올라오는 중일 테니.]

그러자 길초량이 내가 턱짓한 방향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소. 그나저나 조원들이 부르는구려. 일단은 조원들 쪽으로 합류해 있어야 할 것 같소.]

[그러시오. 한데 길 형의 조는 이후의 일정이 어떻게 되오? 바로 철수하는 거요?]

[우리도 임무를 수행하러 이리저리 바쁘게 돌아다니다가 쉬지도 못하고 여기까지 온 참이오. 아마도 일단은 귀양지부로 같이 가지 않을까 싶소.]

[잘됐구려. 그럼 못다 한 얘기는 차후에 합시다.]

[알았소.]

대꾸를 마친 길초량이 조원들이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길초량이 떠난 후에 보니, 급경사면 아래의 물길 쪽으로 피신했던 인원들이 하나둘씩 위로 올라서고 있었다.

서둘러 그쪽으로 이동했다.

팔 조, 구 조, 십 조의 조원들이 모두 무사하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다. 그래도 부상자가 있는지, 있다면 어디를 다쳤는지 정도는 직접 확인해 둘 필요가 있다.

임려현도 나보다 앞서서 그쪽으로 향하는 중이어서, 얼른 그녀의 옆으로 따라붙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선배님.”

“송 공자야말로 고생 많았어요.”

임려현이 그렇게 말하며 내게 검 한 자루를 건넸다.

두영산의 검이다.

“감사합니다.”

미소를 보이며 검을 건네받자 임려현이 말했다.

“내가 고맙죠. 나를 구해준 검이잖아요.”

말은 저렇게 하고 있지만, 범상치 않은 검임을 알고 일부러 챙겼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 챙겨 두지 않으면 무림맹의 전리품으로 넘어갈 테니까.

가는 중에 장호산, 추소륵, 남궁설 등과 마주쳤다.

세 사람 모두 잔 상처들이 조금씩 보일 뿐, 대체로 무사해 보였다.

남궁설이 나를 살피며 물었다.

“다친 덴 없죠?”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 같이 급경사 쪽으로 향했다.

가까워지면서 보니 경사면 위로 올라선 인원들이 염려하는 기색으로 아래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장호산이 그들에게 물었다.

“왜들 그래? 무슨 일 있어?”

촉휘명이 대꾸했다.

“그, 그게, 진금이가 아까 아래로 추락해서…….”

“뭐어어?”

장호산이 놀라서 되물었고, 임려현은 급경사가 시작되는 지점으로 빠르게 다가갔다. 아들이 추락했다고 들은 마당이니 당연한 반응이다.

이번에는 촉휘명의 옆에 있던 포연월이 말했다.

“진금이가 추락할 때, 그 아래에 있던 단목지 언니가 진금이를 낚아채서 끌어안고는 물속으로 같이 추락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내가 서둘러 묻자 포연월이 대꾸했다.

“물속으로 추락한 덕분에 일단은 둘 다 무사한 것 같기는 한데, 물살이 너무 세서 좀 떠내려갔습니다. 지금은 물길 중앙에 있는 바위에 의지해서 멈춰 있는 상태고요. 그 바위가 있는 지점의 양쪽 물가가 모두 절벽 면이라서, 어쩔 수 없이 상류 쪽에서 긴 밧줄을 이용해서 구조하는 중입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임려현이 신법을 펼치며 급경사면 아래로 뛰어내렸고, 나도 그녀를 따라 뛰어내렸다.

돌부리들을 밟으며 빠르게 하강했다.

저 먼 아래로 물줄기가 보였고, 그 근처에 몇 사람이 모여 있는 게 보였다.

임려현과 나는 안정적으로 신법을 펼치며 금세 물가에 착지할 수 있었다.

우리는 착지하자마자 곧바로 몇 사람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뒤이어 뛰어내린 장호산과 추소륵과 남궁설도 우리를 따라왔다.

다가가면서 보니 물가에 양소열, 선의림, 모용리, 우문직, 선우린 등이 모여서 밧줄을 끌어당기는 중이었다.

그 밧줄에 의지한 채로, 거센 물살을 거스르며 끌려 오고 있는 인원은 세 명이었다.

단목홍신, 단목지, 유진금이다.

아마도 단목홍신이 밧줄을 가지고 단목지 쪽으로 갔던 듯하다. 사촌 누나를 구조하기 위해서.

세 사람 모두 뭍에 거의 가까워진 상태였기에 딱히 우리가 도와줘야 할 상황은 아니었다.

이윽고 유진금, 단목지, 단목홍신이 차례로 뭍으로 나왔다.

일단은 셋 다 무사해 보인다.

“진금아! 단목 소저!”

임려현이 그렇게 외치며 다가가자 유진금이 벌떡 일어나더니 임려현을 맞았다.

“어머니……!”

흠뻑 젖은 유진금을 임려현이 끌어안았다.

“어머니, 어머니……!”

유진금의 목소리가 크게 일렁이고 있다.

녀석이 왜 저러는지 안다.

아까 두영산의 검을 임려현 쪽으로 던지기 직전에, 유진금이 처절한 목소리로 ‘어머니!’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이 모친과의 마지막이라 여겼을 것이다.

“어머니, 괜찮으신 거죠?”

“괜찮아. 너는 괜찮으니? 다친 덴 없고?”

끌어안은 상태에서 임려현이 묻자 유진금이 대꾸했다.

“네. 저는 괜찮아요. 그런데…….”

말을 멈춘 유진금이 임려현의 품에서 벗어나더니 단목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단목 누님이 다치셔서…….”

그러자 단목지가 바닥에 앉아 있는 상태에서 대꾸했다.

“에휴, 누님 말고 누나라고 하라고 내가 몇 번을 얘기해…….”

미소 띤 얼굴로 말하고 있다.

저 표정을 보니 심각한 부상은 아닌 모양이다.

“아, 누, 누나…….”

유진금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그렇게 대꾸했다.

임려현이 곧장 단목지의 앞으로 다가가서 그녀의 앞에 앉으며 말했다.

“단목 소저, 괜찮아요?”

“괜찮은데……, 발목을 좀 삔 것 같아요.”

임려현이 곧바로 물었다.

“잠시 봐요. 어느 쪽인가요?”

“아, 이쪽…….”

단목지가 살며시 내민 발목은 오른쪽 발목이다.

임려현이 조심스럽게 발목을 만지자마자 단목지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아윽……!”

“에구머니나, 살짝 만졌는데도 이 정도면 상당히 심하게 다쳤다는 건데…….”

잠시 말을 줄였던 임려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 진금이를 구해주려다가 이렇게 다치다니……. 미안해요, 단목 소저. 그리고 정말 고마워요.”

“아, 아니에요, 선배님. 선배님께서 저희를 위해 목숨을 거셨던 일에 비하면 제가 한 건 정말이지 사소한 정도라서…….”

단목지가 그렇게 대꾸하자 임려현이 인자한 미소를 지은 채로 한참이나 단목지를 바라봤다.

눈에 애정이 가득하다.

잠시 후, 임려현이 유진금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말했다.

“추락했었다던데, 어쩌다가 그리된 거야.”

“그, 그게…….”

유진금이 머뭇거리자 임려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괜찮으니까 사실 그대로 얘기해 봐.”

“아, 아까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고 눈물이 나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그래도 어서 피신해야 한다는 지시를 듣고 어쩔 수 없이 급경사면 아래로 신법을 펼쳤는데……, 눈물 때문에 발아래에 있는 돌부리의 위치가 왜곡돼서…….”

그래서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다가 추락하기 시작했을 것이고, 그런 유진금의 신형을 단목지가 낚아챘을 것이다.

임려현이 살짝 눈을 감은 채로 숨을 길게 쉬더니 유진금에게 말했다.

“이미 수백 번도 더 말했지만, 무인은 그 어떤 순간에도 평정심을 잃어서는 안 돼.”

“무슨 말씀인지는 알지만……, 아까는 그래도 어머니가……, 어머니가…….”

“설령 그렇다고 해도……!”

살짝 언성을 높이며 그렇게 말한 임려현이 또다시 눈을 감으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순간적으로 격해진 감정을 억누르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곧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감정에 휘둘려서 평정심을 잃으면 이렇듯, 동료에게 피해가 가는 거야. 운 좋게 마침 아래쪽에 물길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너도, 너를 구하려던 단목 소저도, 지금쯤 어떻게 됐겠어.”

“물론 단목 누나에게는 너무 죄송하지만…….”

그 말을 끝으로 유진금은 고개를 푹 숙였다.

단목지를 위험에 빠뜨린 잘못이야 당연히 인정하지만, 심정적으로는 모친의 말에 동의하지 못하는 눈치다.

녀석의 심정도 이해할 수 있다.

다른 어떤 존재도 아닌, 어머니다.

어머니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순간을 목격했는데, 어떤 아들이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어쨌거나 이번 일은 유진금이 무인으로 성장해가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경험이 될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유진금도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다.

자신의 모친이 얼마나 위대한 어머니이자 스승이었는지를.

분위기가 다소 처졌다.

이에 나는 여태 말하고 싶었는데도 틈이 없어서 말 못 하고 있었던 얘기를 꺼냈다.

“단목 소저, 축하하오.”

단목지를 향해 미소를 보이며 그렇게 말하자, 다들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다친 사람을 앞에 두고 축하한다고 말하고 있으니 저런 반응들일 수밖에 없다.

그 순간 임려현이 단목지 쪽으로 고개를 홱 돌리며 말했다.

“어머나? 그러고 보니……!”

임려현도 이제야 파악한 것이다.

그러자 단목지가 곧바로 내게 물었다.

“실은 저도 긴가민가해서, 설레발이 될까 봐 그냥 가만히 있었는데, 맞는 건가요? 정말 그런 거예요, 송 공자님?”

기대감 가득한 표정이다.

이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렇소. 절정이오.”

“우와아아앗!”

단목지가 양손으로 본인의 코와 입을 가리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표정이 점점 환희로 물들어가고 있다.

옆에 있던 다른 이들도 모두 깜짝 놀란 표정이다.

남궁설이 말했다.

“어? 정말로 단목 언니 주변으로 흐르는 기운의 흐름이 달라져 있네요?”

“조금 전까지 다들 정신없는 상황이었잖아. 게다가 바로 옆에서 거세게 흐르는 물길의 기운이 상당히 강하다 보니 단목 소저의 변화를 눈치채기가 어려웠던 거야.”

내가 대꾸하자 남궁설이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절정에 오를 때 모여드는 대자연의 기운이 전혀 안 느껴졌었는데…….”

“물속에서 절정에 오른 거지.”

내가 미소를 보이며 그렇게 말하자 다들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단목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말씀대로예요. 진금이를 끌어안은 채로 하강하는데, 마땅히 디딜 만한 돌부리가 없더라구요. 그런데 아무리 봐도 우리가 떨어져 내릴 위치가 여기 물길 가운데에 솟아 있는 저 바위들 쪽인 거예요.”

단목지가 말을 이었다.

“저기로 떨어지면 끝이라는 생각에, 신법을 최대한으로 펼치면서 허공에서 어떻게든 낙하 방향을 바꾸려고 노력했어요. 짧은 순간이었지만 제가 알고 있는 경신법의 모든 이치를 필사적으로 응용하려 노력했죠. 그 노력이 통했는지, 결국은 낙하 방향을 바꿀 수 있었어요. 그리고 수면에 닿기 직전에 온몸에 묘한 쾌감이 돌기 시작했구요.”

그 순간에 절정에 오르기 시작한 모양이다.

“그런데 수면에 닿기 직전에 보니까, 바로 아래 물속에 커다란 바위가 있는 거예요. 그 바위까지의 수심이 그리 깊지 않았어요. 결국 입수 직후에 그 바위와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그래서 발목을 다쳤다는 뜻이다.

잠시 말을 줄였던 단목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 후에는 물살에 휩쓸려서 떠내려가다가 저 아래쪽 바위에 겨우 몸을 의지할 수 있었던 거예요.”

단목지가 수줍어하며 말을 마쳤다.

임려현이 대견스러워하며 단목지를 바라보더니, 곧 그녀를 끌어안았다.

“세상에,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어쨌거나 잘했어요, 단목 소저. 정말 잘했어요. 너무나도 고맙고, 절정 진입도 진심으로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선배님.”

단목지의 얼굴에 행복 가득한 미소가 걸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