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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마교있다-386화 (386/416)

내 안에 마교있다 386

누군가가 신법을 펼치며 급경사면을 타고 빠르게 내려왔다.

순식간에 우리 곁에 도착한 이는 다름 아닌 단목진이다.

“아버지.”

단목지가 앉은 채로 단목진을 맞이했다.

그런데 단목진은 대꾸도 없이 가만히 서서 묘한 표정으로 단목지를 바라만 볼 뿐이었다.

잠시 후, 단목진의 입이 열렸다.

“너……, 너어……!”

놀란 표정.

부친인 데다가 고수인 만큼, 딸의 변화를 금세 알아본 것이다.

단목지가 배시시 웃자 단목진이 물었다.

“어떻게 된 게야?”

“설명해 드리자면 다소 길어요. 이따가 소상히 말씀드릴게요.”

단목진이 흡족한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조카인 단목홍신이 절정에 진입한 데 이어 딸인 단목지까지 절정에 올랐으니, 단목세가를 대표하는 후기지수들이 모두 절정고수에 오른 셈이다.

그것도 다들 이른 나이에.

가주인 단목진의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는 상황이다.

단목진이 단목지에게 말했다.

“네가 큰일을 겪었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온 길이다. 괜찮으냐? 계속 앉아 있는 걸 보니 다리를 다친 듯한데, 많이 다친 게야?”

“발목을 좀 삔 것 같아요. 그 외에는 괜찮아요.”

단목지가 대꾸하자 어느새 일어서 있던 임려현이 단목진에게 말했다.

“심하게 삔 듯합니다. 실수로 추락하던 제 아들을 구해주다가 이렇듯 다친 겁니다. 가주님과 단목 소저에게 송구한 마음입니다.”

임려현이 그렇게 말하며 단목진에게 공손히 고개를 숙이자 유진금도 따라서 고개를 숙였다.

단목진이 대꾸했다.

“내, 아직 정확한 사정을 몰라서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결과적으로 둘 다 무사하면 됐지, 뭘 고개까지 숙이십니까. 그러지 마십시오.”

그러자 단목지도 임려현에게 말했다.

“임 선배님, 그러지 마시라니까요. 오히려 저희 모두가 선배님에게 큰절을 올려도 모자랄 판국인데…….”

임려현이 자세를 풀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단목진이 단목지에게 말했다.

“많은 일이 있었던 듯하구나. 당연히 그렇겠지. 자세히 들어보고 싶으니 일단은 위로 올라가자.”

“네.”

단목지가 대꾸하자 단목진이 주변을 둘러보는 듯하더니 내 쪽에서 시선을 멈췄다. 그러더니 입을 열었다.

“저 애는 송 공자가 업지.”

“……예? 그냥 가주님께서 업으시는 게…….”

“나는 여기저기 다쳐서 몸이 불편한 상태일세. 게다가 워낙 격렬한 전투를 치러서 공력도 거의 바닥이네. 그러니 부탁 좀 함세.”

저기요, 방금 신법으로 급경사면을 내려오시는 모습을 봐서는 몸이 불편한 분이라는 생각이 전혀 안 들던데요? 오히려 아주 쌩쌩하시던데요?

의도가 느껴지기는 하나, 이 상황에서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알겠습니다.”

곧장 단목지의 앞으로 이동했다.

물에 젖은 모습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그녀의 모습이 새벽이슬처럼 함초롬하다. 잠룡관 시절, 계반의 뒷산에서 만날 때도 그녀는 저런 모습이었다.

그때도, 지금도, 그저 아름다울 뿐이다.

단목지에게 등을 보이며 앉은 후, 고개를 돌려 말했다.

“업히시오.”

단목지가 민망해하며 미소를 지었다.

이에 나도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어줬다.

옆에서 임려현이 단목지를 부축해서 내 등에 업혀줬다.

단목지가 내 목 언저리를 부드럽게 끌어안았고, 나는 양팔로 그녀의 양 무릎 뒤쪽을 받치며 일어섰다.

가볍다.

모두가 신법을 펼치며 경사면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고, 나도 단목지를 업은 채로 신법을 펼쳤다.

잠시 후 단목지의 전음이 들려왔다.

[무겁지 않을지…….]

이에 빙그레 웃으며 농담조로 물었다.

[소저가 듣고 싶은 대답을 원하오, 아니면 사실대로 말해주기를 원하오?]

그러자 단목지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대꾸했다.

[음……, 사실대로요.]

[누가 봐도 소저의 체구는 날렵하니, 당연히 가벼울 것이라 예상했었소. 한데 실제로 업어보니 내 예상보다 훨씬 더 가벼워서 놀라는 중이오.]

뒤에서 숨소리가 들리는데, 기분 좋아하는 게 느껴진다.

단목지의 전음이 다시 들려왔다.

[그럼 제가 듣고 싶은 대답은 뭐였나요?]

[깃털보다 더 가볍소, 였소.]

[흐훕.]

단목지가 작게 웃었다.

그녀에게 물었다.

[발목의 통증은 어떠시오?]

[많이 욱신거려요.]

[큰 부상이 아니기를, 그리고 쾌차하시기를 빌겠소.]

[감사해요.]

성수곡주의 제자인 민화영에게 치료를 부탁해야겠다. 그녀의 정체는 비밀이지만, 의술에 조예가 있다는 식으로 둘러대면 될 것이다.

[절정에 오른 기분은 어떻소?]

[너무너무 좋아요. 발목의 통증이 별로 신경이 안 쓰일 정도로.]

생각해 보면 단목지는 잠룡관도 시절에도 단목홍신과 함께 물속에서 수련했었다.

그러더니 결국 물속에서 절정에 오르다니.

저러다 나중에 기운을 발산할 때 수기水氣가 발산되는 거 아냐?

단목지가 전음을 이었다.

[얼떨떨하기도 해요. 일전에도 말씀드렸듯, 근래 검법 성취가 점점 상승하는 중이었거든요. 그래서 이대로 검법 수련에 열중하다 보면 몇 년 안에는 절정에 오를 수 있겠거니 했었어요. 그런데 이렇듯 뜬금없이 신법을 통해 절정에 오르다니…….]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답을 찾은 덕에, 순간적으로 신법에 대한 이해도가 큰 폭으로 증가하면서 전체적인 경지 상승을 이끈 듯하오. 어떻게든 진금이와 함께 살아남겠다는 간절함이 큰 동력이 되었을 테고.]

큰 깨달음은 그러한 순간에 불쑥 찾아오기도 한다.

참고로 단목지는 통합 잠룡대전의 준우승자 출신이다. 누구나 인정할 만한 기재다.

가뜩이나 그녀의 경지는 일류의 끝자락에 있었다. 언제 절정에 올라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하다 보니 벽이 허물어진 것이다.

곧 단목지의 전음이 들려왔다.

[마지막에 신법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곤 치더라도, 절정에 오르기 직전까지 전체적인 경지 상승을 견인한 건 누가 뭐래도 검술이었어요. 그리고 제 검술 성취가 상승한 건 송 공자님 덕분이죠. 그래서 누구보다도 송 공자님에게 감사하고 싶어요. 이 은혜, 절대로 잊지 않을 거예요.]

[하하,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우나, 결국은 소저 스스로 열심히 수련한 결과요. 다시 한번 축하드리오.]

길초량, 송유하, 단목홍신, 단목지는 내가 송유겸의 몸으로 깨어난 후로 처음 인연을 맺은 이들이다. 그렇다 보니 네 사람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마치 내 일인 양 기쁘다.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어요.]

단목지가 말을 마치며 작게 웃었다.

업고 있어서인지, 그녀가 매우 기분 좋은 상태라는 게 그대로 전해진다.

나도 기분 좋다.

업혀 있는 단목지가 나를 더 꼭 끌어안았다.

더 기분 좋다.

급경사면 위로 올라오니 팔 조, 구 조, 십 조의 인원들이 우르르 다가왔다.

단목지와 유진금을 걱정하고 있었던 건데, 두 사람이 무사한 모습을 확인하고는 다들 안도했다.

이후에는 모두가 단목지의 절정 진입을 축하해줬다.

그러는 사이에 둘러보니 약간 떨어진 나무 아래에 당효광, 웅익기, 사옥연이 모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세 사람은 과거에 통합 잠룡대전에 같이 출전했었기에 서로 아는 사이들이다.

마침 당효광과 눈이 마주치자 그가 손을 흔들었다.

이에 그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추소륵, 선의림, 모용리가 차례로 내 옆으로 따라붙었다.

다들 같은 해에 통합 잠룡대전에 참가했던 인원들이다.

나무 아래에 도착하자 당효광과 웅익기가 우리를 반겼다.

“오오! 송 공자, 추 공자, 선 공자, 모용 소저!”

“반갑소! 정말 반갑소! 이게 얼마 만이오?”

이에 선의림, 추소륵, 모용리가 차례로 인사를 건넸다.

“당 공자, 웅 공자, 오랜만이오!”

“두 분, 정말 반갑소.”

“와아! 당 공자님, 웅 공자님, 이게 얼마 만인가요?”

이어서 나도 두 사람에게 정식으로 인사를 건넸다.

“당 공자, 웅 공자, 반갑소. 아까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르오. 그 상황에서 두 분을 만나다니.”

내 말에 당효광이 대꾸했다.

“우리야말로 깜짝 놀랐소. 실은 이곳으로 다가오던 중에 백리 당주님과 상 장로님께서 전방에 대단한 적 고수들이 있다며 주의를 당부하셨었소. 이후부터 긴장하면서 다가왔는데 세상에, 적측의 고수들과 대치 중인 무인이 송 공자였을 줄은……!”

당효광이 대꾸하자 웅익기도 말을 보탰다.

“정말이지 송 공자의 경지가 어느 정도일지 상상도 안 되는구려.”

당효광과 웅익기는 다른 고수들과 함께 아까의 상황을 직접 목격했다. 그렇다 보니 대충 얼버무릴 수도 없다.

내가 민망해하며 미소만 지어 보이자 당효광이 나 외의 다른 인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런데 송 공자가 너무 압도적이어서 그렇지, 다른 분들의 기도도 하나같이 범상치 않구려.”

그 말에 추소륵, 선의림, 모용리, 사옥연 등이 미미한 미소를 지었다.

당효광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지 않아도 다들 송 공자의 장원에 모여서 열심히 수련한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소. 실은 그 얘기를 듣고는 나도 그쪽으로 합류하고 싶었다오. 그런데 가문에서 도통 허락해주질 않으셔서……. 후…….”

웅익기도 같은 심정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웅익기의 경지는 일류의 후반쯤, 당효광의 경지는 절정의 초반쯤이다.

웅익기는 사옥연과 경지가 비슷해 보이는데, 기도가 더 묵직한 쪽은 사옥연 쪽이다.

사옥연은 특전반에 소속되어 상당히 오랜 기간 실전 훈련을 받아왔다. 게다가 이번 광서 수복전과 귀주 수복전에서 실전 경험까지 풍부하게 쌓은 상태다.

같은 경지라도 웅익기보다 전투력이 훨씬 높을 수밖에 없다.

당효광은 우리가 함께 출전했던 그 통합 잠룡대전 당시에 남부지맹을 대표하는 관도였다. 실제로 실력도 뛰어났다 보니, 그 시절에는 추소륵, 풍세학, 선의림 등과의 경지 차이가 그리 크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추소륵, 풍세학, 선의림 등과 비교하면 경지 차이가 작지 않다.

문제는 전투력으로 따지면 격차가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 쪽 인원들은 다들 이번 광서 수복전과 귀주 수복전을 통해 실전 경험을 많이 쌓았다. 이전과 비교해서 실전 실력, 즉 전투력이 훨씬 높아진 것이다. 심지어 갓 절정에 오른 모용리의 전투력마저도 만만치 않다.

그 전투력들이 기도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보니 당효광도 그걸 파악하고는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회복 불가능한 부상을 입는 게 아니라면, 실전은 언제나 무인을 빠른 속도로 성장시키는 법이다.

잠시 후 당효광이 각오가 담긴 눈빛으로 말했다.

“안 되겠소. 나도 지금부터 여러분 쪽으로 합류해야겠소.”

“엥? 이렇게 갑자기 말이오? 진심이시오?”

선의림이 묻자 당효광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늦으면 늦을수록 여러분과의 격차가 더 벌어질 게 빤하오. 하지만 조바심 때문만은 아니오. 나는 아직 젊으니 더 큰물에서, 더 대단한 이들과 어울리며,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은 것이오.”

그러자 이번에는 모용리가 말했다.

“하지만 가문에서 불허하셨다고…….”

“지금은 가능할 것이오. 숙부와 당숙이 직접 송 공자를 보셨고, 합을 맞춰서 싸워보기까지 하셨으니까. 아까도 숙부가 전음으로 송 공자 칭찬을 얼마나 많이 하셨는지 모르오. 그러니 숙부와 당숙 포함, 이번에 함께 온 가문의 일원들이 모두 내 편이 되어줄 것이오.”

숙부란 당우수, 당숙이란 당우철이다.

당효광이 곧장 고개를 돌리더니 내게 물었다.

“송 공자의 장원에서 신세 좀 져도 되겠소?”

당효광은 절정고수인 데다가 암기술 전문가다. 즉, 든든한 후열 전력이다. 성격 또한 무난하다. 마다할 이유가 없다.

미소를 보이며 대꾸했다.

“나야 당연히 환영이오. 그러나 사천당가의 분노를 감당하고 싶지는 않구려. 애초에 감당할 역량도 안 되고.”

가문에 제대로 허락을 구하지 않은 문제 때문에 우리에게 불똥 튀게 하지 말라는 뜻이다.

당효광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알았소. 약조하겠소. 고맙소.”

이에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웅익기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후……, 나도 합류하고 싶은데 요새 사부님께서 집중적으로 사문의 무학을 전수해주시는 시기라서 합류할 수가 없구려.”

“여유 있을 때, 언제든 들러주시오.”

내 말에 웅익기가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쯤 멀리에서 대규모의 인원들이 다가왔다.

선두 조의 나머지 인원들이 도착한 것이다.

다 같이 그쪽으로 향했다.

선두에는 이영소, 모승언, 여문광, 국청현 등의 모습이 보이고, 그 뒤로 구윤광, 변예랑, 육화현, 배낙균, 금분옥, 단목강, 풍세학, 종금무 등의 모습도 보인다.

이어서 수십 명의 인원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선두 쪽 인원들은 모두 몸의 이곳저곳에 흰 천을 둘둘 두르고 있다.

단목강, 풍세학, 종금무 등도 마찬가지인데, 특히 단목강의 부상 부위가 많아 보인다.

인상적인 점은 하수들일수록 상처가 적다는 사실이다.

잠룡관도들의 경우에는 상처가 아예 없다시피 하다.

마음이 찡하다.

하수들을 지켜주기 위해 고수들이 그만큼 분투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어서 송유하의 모습이 보였기에 상태를 자세히 살폈다.

신경 쓸 만한 상처는 딱히 없어 보인다.

혈색도 평소와 비슷하다.

다행이다.

나를 발견한 송유하가 빠르게 다가왔다.

왕철양, 공은림, 심산화, 정세건, 명호운도 송유하를 따라왔다.

“오라버니.”

송유하가 나를 부르며 내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힘겨운 전투가 있을 때마다 내가 많이 다치곤 했었으니, 이번에도 다친 데가 없는지 먼저 확인하는 것이다.

기특하기는.

“멀쩡해. 누이는 다친 데 없어?”

“잔상처 정도예요.”

송유하는 이 조로, 남궁찬, 소충광, 왕철양, 민화영 등과 같은 조였다. 남궁찬이라면 아마도 송유하에게 특별히 더 신경 써줬을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내 누이인 데다가, 남궁찬 본인도 평소에 송유하를 어여삐 여기니까.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에 왕철양 등에게도 물었다.

“너희들은 괜찮아?”

“예, 괜찮습니다.”

“네, 괜찮아요.”

녀석들이 씩씩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다들 잔상처 정도만 입은 모습이다.

내가 녀석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을 때쯤, 옆에 있던 당효광이 송유하를 일별하더니 내게 물었다.

“누이라니……, 송 공자의 친누이신 거요?”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다.

“그렇소.”

“아…….”

현재 당효광 녀석은 상당히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다. 얼굴은 살짝 상기된 상태이며, 동공은 세차게 떨리는 중이다.

짜식이 첫눈에 반하기라도 했나?

왠지 그런 낌새다.

일단은 송유하를 포함한 우리 애들에게 당효광과 웅익기를 소개해줬다.

“인사해. 사천당가의 소가주인 당효광 공자와 형산파의 웅익기 공자야.”

“우와……!”

“사천당가하고 형산파라니……!”

명호운과 정세건이 놀란 음성으로 그렇게 반응하자 송유하가 당효광과 웅익기를 향해 공손히 예를 취했다.

“당 공자님과 웅 공자님을 뵙습니다. 송유하라 합니다.”

당효광이 약간 주춤거리자 웅익기가 먼저 입을 열었다.

“반갑소, 송 소저. 소개받은 대로 웅익기라 하오. 이거, 송 공자도 엄청난 미남인데 누이인 송 소저께서도 엄청난 미인이시구려.”

“과찬이십니다.”

송유하가 대꾸하자 이번에는 당효광이 송유하를 향해 입을 열었다.

“다, 당효광이라 하오. 바, 반갑소, 소저.”

얼씨구? 이 짜식 봐라?

당효광이 저렇게까지 말을 더듬는 모습은 처음 본다.

지금까지는 저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무리 봐도 내 추측이 맞은 듯하다.

반한 것이다.

아서라, 얘야. 엄청나게 강력한 경쟁자가 있단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니라.

그즈음, 여러 사람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단목강을 비롯한 송풍장의 친우들과 주경명, 목태월, 엄상평이다.

다들 몇 년 전의 통합 잠룡대전 이후로 당효광과 웅익기를 오랜만에 만났다 보니 인사하러 온 것이다.

친우들은 당효광, 웅익기와 인사를 나누었고, 나는 인사를 마친 친우들의 몸 상태를 물었다.

우선 단목강에게 물었다.

“조장님이 가장 많이 다친 듯한데, 괜찮으십니까?”

단목강이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괜찮소.”

피곤해 보이는 미소다.

그야말로 온 힘을 다해서 싸운 것이다.

“솔직히, 썩 괜찮아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은림이와 양순영 소저가 응급치료를 잘해준 덕분인지 버틸 만하오. 양 소저가 의술에 조예가 좀 있더구려. 나뿐만 아니라 많은 분을 치료해줬소. 상당히 능숙해 보였소.”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빤히 알면서도 그렇게 대꾸해줬다.

양순영은 민화영의 가명이다.

무려 성수곡주의 제자가 바로 그녀다.

민화영은 본인이 의술 쪽으로 조예가 부족하다고 했었지만, 그 비교 대상이 다름 아닌 그녀의 사형제들이었다.

즉, 일반적으로는 어디에 내놔도 명의 소리를 들을 만한 의술 실력의 보유자가 바로 민화영인 것이다.

이후에도 다른 친우들의 몸 상태를 차례대로 물은 뒤, 마지막으로 악미조에게 다가갔다.

“소저도 상처가 제법 있으시구려. 괜찮소?”

“괜찮아요. 다행히 큰 부상은 없거든요.”

대답하는 악미조의 표정에 활기가 넘치고 있다.

왜 저렇듯 활기가 넘치는지 알고 있다.

그래서 일부러 마지막에 악미조에게 온 것이다.

그녀에게 말했다.

“축하드리오, 소저.”

“역시, 송 공자님은 단번에 알아보시네요.”

이에 빙그레 웃어 보인 후에 물었다.

“기분이 어떠시오?”

“음……, 속 시원해요.”

실제로 후련하다는 표정이다.

악미조는 그간 이래저래 마음고생이 많았다.

금세 절정에 오를 것이라 기대되던 친우들 중에서 유독 그녀만이 절정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었던 탓이다.

“절정 이후의 성취 상승은 일류 시절의 양상과는 매우 다르오. 그리고 내가 아는 악 소저라면 남들보다 성취가 더 빠르게, 쭉쭉 상승할 것이라 확신하오.”

내 말에 악미조가 예쁘게 미소 짓더니 말했다.

“위로, 감사해요.”

이에 나는 대꾸하지 않은 채로 한동안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악미조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내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을 때쯤, 나는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위로 아니오.”

잠시 후, 악미조가 내 말의 의미를 알아듣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송 공자님이라니까.”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격려, 감사해요. 송 공자님의 안목이라면 믿을 수 있죠. 열심히 할게요.”

이에 나도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어줬다.

동이 터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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