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안에 마교있다-393화 (393/416)

내 안에 마교있다 393

귀주 수복전단의 본대까지 도착하자 귀양지부는 점차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부상자가 아닌 인원들은 지부의 파손된 곳들을 복구하는 작업에 투입되었고, 경상자들은 경계 임무에 투입되었으며, 중상자들은 각자의 막사에서 회복에 집중했다.

나도 복구 작업을 도왔고, 그 외의 시간에는 잠룡관도들을 상대로 특강을 진행했다.

양소열과 묘옥련의 부탁 때문이었다.

솔직히 귀찮은데 두 사람의 얼굴을 봐서라도 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강 시에 관도들에게는 세 가지를 중점적으로 강조했다.

첫째, 내공 만능주의에 대한 경계와 체력 단련 및 근력 단련의 중요성, 둘째, 암기술을 통한 원거리 무기 활용의 중요성, 셋째, 실전 후 복기의 중요성 등이었다.

관도들은 눈을 초롱초롱 뜬 채로 내 얘기에 집중했다.

첫 특강이 있었던 다음 날부터는 실전 형식의 수련을 통해 직접 관도들을 지도해줬다.

* * *

이틀 후.

귀양지부 뇌옥의 특실에서 사엽상을 면회한 나는 이어서 황호병이 감금된 특실로 향했다.

사엽상을 면회하면서 보니 특실의 구조는 과거에 오태흥이 갇혀 있었던 합산지부의 뇌옥과 거의 비슷했다.

간수가 안내하는 중인데, 그는 줄곧 내게 호의적이다.

명성이 오를수록 이런 건 참 편리하단 말이야.

이윽고 한 철문 앞에 다다르자 간수가 철문 상단의 작은 창살을 통해 말했다.

“면회요.”

안쪽에 짧게 통보한 간수가 철문을 열어줬고, 나는 천천히 그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철문이 곧 ‘쿵!’ 소리를 내며 다시 닫혔다.

나는 석벽 중앙의 철창 앞으로 다가가서 앉았다.

두꺼운 철창살의 안쪽을 보니 황호병이 등을 보인 채로 앉아 있었다.

그가 그 상태로 말했다.

“뉘시오?”

“접니다.”

“동천비룡이로군.”

“예.”

내가 대꾸하자 황호병이 천천히 돌아앉더니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말했다.

“아, 이제는 창천비룡이라고 해야 하나?”

“그것까지 알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내가 대꾸하자 황호병이 피식 웃었다. ‘이쯤이야.’라고 말하는 듯하다.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준비해 온 가죽 주머니를 쇠창살 사이로 내밀었다. 식수를 담아 다니는 가죽 주머니다.

“뭔가?”

“약주입니다.”

“술……?”

“이렇듯 갇혀 계신 게 저 때문이니 송구한 마음에서 준비해봤습니다. 아예 약주를 안 하시는 게 아니라면 나름의 위안 정도는 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물론 황호병이 술을 좋아하는 편이라는 사실을 알고 준비해 온 것이다. 참고로 무인들은 대부분 술을 잘 마시며, 특히 천마신교의 마인들은 술을 더 좋아한다.

“좋아하네. 챙겨줘서 고맙기는 한데, 여건이 되면 사 선배님도 챙겨드렸으면 좋겠군. 그분이야말로 애주가시거든.”

“그렇지 않아도 방금 뵙고 왔습니다. 당연히 약주도 챙겨드렸고요.”

내 말에 황호병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잘했군.”

말을 마친 그가 가죽 주머니를 챙기더니 마개를 땄고, 곧 술 한 모금을 들이켰다.

“크으…….”

입으로 작게 소리 낸 황호병이 술맛을 음미하듯 눈을 감았다.

그가 그 상태에서 말했다.

“사 선배님한테서 좋은 소리를 못 들을 걸 빤히 알 텐데도 찾아뵀나 보군.”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 명예로운 최후를 원하셨는데 제가 그걸 막은 거잖습니까. 그로 인해 겪지 않아도 될 상황을 겪고 계시니 그 부분에 대해서 사과는 해야지요.”

황호병의 입술 선이 미세하게나마 호선을 그리고 있다.

그는 나를 일컬어, 이 강호의 무학 수준을 크게 진보시킬 수 있을 정도의 보배라고까지 표현했었다. 나를 해치는 건 강호 전체의, 나아가서는 강호사의 큰 손실일 거라고도 했었다.

내가 두영산을 해치지만 않았다면 나를 살려주고 떠날 생각이었다는 말도 했었다.

정마를 떠나서, 나를 중요한 인재로 여긴 것이다.

그렇다 보니 내 이러한 자세 또한 긍정적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그래서 입술도 호선을 그리고 있는 것이고.

황호병이 눈을 감은 상태에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사 선배님은 뭐라고 하시던가?”

“왜 안 죽이고 살려뒀느냐며 역정을 내시더군요. 술을 챙겨다 드리고도 욕을 바가지로 먹었습니다. 고얀 놈, 우라질 놈, 싸가지 없는 놈, 썩을 놈, 벼락 맞아 뒈질 놈 등등.”

“푸허허허허!”

황호병이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눈을 떴다.

이에 내가 빙그레 웃어 보이자 그가 웃음을 그치더니 말했다.

“괘념치 말게. 원래 언어 습관이 그럴 뿐이니.”

“예. 신경 쓰지는 않습니다. 그분의 입장에서는 그렇게라도 화풀이하셔야지요. 게다가 얼마 전에도 오태흥 어르신을 통해 비슷한 경험을 했던지라.”

내 말에 황호병이 눈을 부릅떴다.

“바, 방금 누구라고 했는가?”

의도적으로 오태흥의 이름을 언급했는데, 역시나 반응이 크다. 참고로 사엽상은 더 격렬한 반응을 보였었다.

“오태흥 어르신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황호병이 눈매를 좁히며 물었다.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건……, 그분도 포로가 되셨다는 건가? 그러니까 그분이……, 살아계신다는 건가?”

“그러합니다.”

“오오! 이런 일이……!”

감격하고 있다.

사엽상과 황호병의 반응으로 유추해볼 때, 천마신교 측에는 오태흥이 죽었다고 알려져 있었던 모양이다.

꼴깍, 꼴깍, 꼴깍.

기분 좋아서인지, 황호병은 단숨에 술을 세 모금이나 들이켰다.

그가 작게 ‘크으.’ 소리를 내더니 말했다.

“혹시 오 선배님을 포로로 삼은 사람도 자네인가?”

“그렇습니다.”

“잘했군.”

“앞서 뵙고 온 사 어르신도 오 어르신 얘기를 듣더니 매우 기뻐하시더군요. 희한한 일입니다. 본인에 대해서는 왜 살려서 포로 신세 따위로 만들어 놓았느냐며 역정을 내시더니, 오 어르신이 포로가 되어 살아계신다는 얘기에는 그렇게나 기뻐하시니.”

내가 농담조로 말하자 황호병이 미소 짓더니 또다시 술을 한 모금 들이켰다.

잠시 후, 그가 물었다.

“그래서 오 선배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지?”

“바닷길을 통해 이송 중일 겁니다.”

“목적지는 무림맹의 뇌옥인가?”

“그것까지는 모르겠습니다.”

광서 수복전단의 단주인 종리표는 내게 오태흥이 무림맹으로 이감될 것이라고 귀띔해줬었다. 하지만 그건 기밀 사항이다.

“백도의 입장에서 우리는 흉악한 대마두들일 뿐인데, 왜 살려두려는 건가?”

“첫째, 제가 느끼기에는 대마두이기보다는 그냥 무인 같았기 때문이고, 둘째, 최소한의 대화와 상식이 통할 만한 분들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정마 간의 감정이 서로 좋지 않은 상황에서 대화고 상식이고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번 일로 백도인들은 마인들을 특히 더 혐오하게 될 텐데.”

“당분간은 그럴 수밖에 없겠지요. 하지만 세상사라는 게 또 모르는 거잖습니까. 어느 날 갑자기 정마 간에 대화가 통할 날이 올지도요. 그런 날이 와서 오 어르신이나 사 어르신이나 황 선배님 같은 분들이 가교 역할을 하게 될지도요.”

내가 말을 마치자 황호병이 한동안 가만히 나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다른 누군가가 그런 소리를 했다면 꿈속에서 나오라며 면박을 줬을 것이네. 터무니없는 낙관론이라며 비웃었겠지. 하지만 자네라면, 자네 같은 사람이 그런 마음을 갖고 있다면,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군.”

내 무공 쪽의 역량을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기에 저런 얘기를 하는 것이다.

“과한 평가이십니다.”

“그런지 아닌지는 두고 보면 알게 되겠지. 그나저나.”

잠시 뜸을 들였던 황호병이 다시 입을 열었다.

“선배님이라…….”

방금 내가 ‘황 선배님’이라는 호칭을 썼었기에 저러는 것이다. 웬만해서는 백도인과 마인 사이에서 쓰일 만한 호칭이 아니기는 하다.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야 ‘귀하’ 정도의 호칭이 적당했겠지만, 이렇게 된 상황에서마저 딱딱하게 그럴 필요 있겠습니까. 혹여 불편하시다면…….”

“괜찮네.”

이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황호병이 또다시 술을 한 모금 들이켰다.

그 후, 대화가 잠시 끊긴 틈을 타서 천천히 일어섰다.

“가려는가.”

“예. 복구 작업을 도와야 해서요.”

내 말에 황호병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자네가 언제 이곳을 떠날지 모르겠으나 그 전까지는 자주 와서 이렇듯 말벗이나 해줬으면 하네. 이 상황에서 말벗을 할 만한 사람이라고는 자네밖에 없는데 이번에 헤어지고 나면 언제 다시 보게 될지 모르잖나.”

“알겠습니다. 그리하겠습니다.”

“그리고 술 말인데, 이거 하나로는 다소 아쉽군. 염치없는 부탁이지만 두 병쯤은 되었으면 좋겠네.”

황호병도 생전 처음으로 이런 곳에 갇힌 상황이다. 당연히 답답하고 정신적으로도 버거울 것이다. 그러니 술 생각이 날 수밖에.

앞서 만났던 사엽상도 술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부탁했었다. 그쪽은 네 병을 원하기에 세 병으로 타협을 봤다. 사엽상 또한 말년에 처음으로 갇혀 지내는 상황이다.

황호병에게 대꾸했다.

“그 또한 알겠습니다. 다 드신 가죽 주머니는 다음 식사 때 간수에게 건네주십시오.”

“그리함세. 고맙네.”

“고맙다는 인사를 듣기에는 좀……, 민망합니다.”

내 말에 황호병이 대답 대신 미소만 지어 보였다.

“그럼 쉬십시오.”

짧게 인사하고는 그곳을 벗어났다.

* * *

일주일쯤 지나자 경상자들은 대부분 완치되었고, 부상 정도가 더 심했던 이들의 상태도 많이 호전되었다.

귀양지부 복구 작업은 팔 할가량 완료된 상태다. 일반인들이 아닌 무인들이다 보니 작업 속도나 효율이 매우 빨랐다.

많은 인원이 동원되어야 하는 작업은 대부분 끝났기에 나도 더는 작업을 도울 필요가 없어졌다.

자유 시간이 많아지자 양소열과 묘옥련이 특강 시간을 늘려달라고 부탁해왔다.

내 특강에 대한 관도들의 호응이 너무 좋다나.

어차피 귀양지부에 머무는 동안에는 딱히 할 일도 없기에 승낙했다.

이런 기회에 두 사람의 면을 확실하게 세워주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오후 특강을 마치고 나자 공은림이 다가왔다.

“조교님, 전에 맡겨주신 약에 대한 성분 분석, 끝냈습니다.”

“아, 그래. 수고 많았겠네. 좀 걸을까.”

“예.”

공은림과 함께 북쪽 언덕을 향해 걸었다.

[그래, 분석 결과는 어때?]

[내공을 증진시켜주는 약으로 보입니다. 그것도 제법 많이.]

[뭐어……?]

두영산 놈이 지니고 다녔으니 보통 물건은 아니리라고 예상했었다. 그런데 역시나 내공을 증진시키는 약이었던 것이다.

공은림의 전음이 들려왔다.

[단, 마공 전용입니다.]

만약 그 약이 내공을 증진시켜주는 약이라면 마공 전용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었다.

두영산은 천마신교의 중심축인 구대가문 출신이니까.

[마공 전용 영약이라…….]

[마인에게는 일반적인 영약보다 마공 전용으로 제조된 영약류가 더 효능이 좋습니다. 사공을 익힌 자들에게도 좋을 겁니다만, 백도인들에게는 위험합니다. 지금껏 쌓아온 정심한 내력에 악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마기로 인해 주화입마에 빠질 가능성 또한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아.]

대충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해줬다. 그 후에 말했다.

[한 가지가 궁금한데.]

[말씀하십시오.]

[그렇듯 내력을 큰 폭으로 증진시켜주는 약이라면 지니고 다닐 게 아니라 이미 복용했어야 하는 것 아니야?]

[그건 아마, 그 약에 다른 효과도 있기 때문일 겁니다.]

[다른 효과?]

[예. 복용하면 순식간에 공력을 채워주는 효과입니다.]

전투 중에 공력이 고갈되어버리면 그야말로 낭패다.

그런 상황에서 공력을 빠르게 채워주는 약이라면 당연히 그냥 지니고 다닐 만도 하다. 위기 상황에서도 그 약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공은림이 전음을 이었다.

[물론 그 경우에도 어느 정도는 내공 증진 효과를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운기조식을 통해 약효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효율이 많이 떨어지겠지요.]

[그렇군.]

두영산 놈의 입장에서 생각해 봐도 아끼다가 똥 됐다는 식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는 문제다.

어차피 놈은 구대가문의 후예다.

구대가문 정도 되면 영약을 구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러니 이 약은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고, 차후에 구해지는 영약들을 복용할 생각이었을 것이다.

공은림이 내게 남색 목갑을 건넸다.

[열고 나서 분석용으로 소량만 떼어내고는 바로 다시 밀봉했습니다. 약효는 거의 안 빠져나갔을 겁니다.]

[고마워. 수고 많았어.]

목갑을 건네받으며 대꾸하자 공은림이 말했다.

[이런 걸로 고마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조교님께서 그간 저와 조혁이에게 베풀어주신 은혜가 헤아릴 수조차 없을 정도입니다.]

[하하, 뭘 또 갑자기 그런 얘기를 꺼내고 있어.]

[정말입니다. 조교님이 아니었으면 저와 조혁이는 이렇게 빠르게 무인으로 성장하지 못했을 겁니다. 실전이요? 꿈도 못 꿨겠지요.]

이에 내가 대답 대신 미소를 지어 보이자 공은림도 예쁜 미소를 지었다.

그 상태로 몇 걸음을 옮겼을 때쯤, 공은림의 전음이 들려왔다.

[그런데 그 약은 어떻게 처리하실 계획이십니까?]

[글쎄? 고민을 좀 해봐야겠네.]

적당히 대꾸해줬지만 당연히 내가 복용할 것이다.

나는 마기와 매우 친숙한 데다가 마기의 성질도 잘 알고 있다.

게다가 내가 익힌 회회심공은 중성적인 심법이며 치유와 회복에 특화되어 있다. 그만큼 안정적인 심법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 약의 마기로 인해 주화입마에 들 가능성이 작다.

즉, 횡재한 것이다.

그리고 내게는 또 한 가지 믿을 구석이 있다.

용마검이다.

오태흥과 권진란의 설명에 따르면 용마검은 마기의 폭주를 막아준다고 했다.

아직 내가 직접 검증하지는 못했지만, 신뢰성은 충분해 보인다.

그러면 약을 복용한 후 용마검을 지닌 채로 운기조식을 하면 된다.

물론 아무리 회회심공이 있고 용마검이 있다고 해도 주화입마의 위험성이 아예 없지는 않다.

방심하지 말고 준비를 제대로 한 후에 복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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