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394
귀양지부에서의 시간도 열흘이 흘렀다.
벌써 시월의 마지막 날이다.
새벽녘에 일찍 일어나 소형 행낭을 챙겨서 조용히 막사를 벗어났다. 이후에는 곧장 개울가로 향하여 세안을 마치고 둔치에 앉아서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과 별의 위치를 보니 인시 정(새벽 4시) 무렵이다.
그 상태로 일각쯤 지났을까.
누군가가 내가 있는 개울가 쪽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왕철양이다.
내가 일어서자 왕철양이 꾸벅 인사하더니 말했다.
“편히 쉬셨습니까, 조교님.”
“어. 너도 잘 잤어?”
“예. 한데 오래 기다리신 겁니까?”
“아냐, 아냐. 오래 안 됐어. 얼른 가서 세안해.”
“예.”
대꾸한 왕철양이 행낭을 벗어놓더니 개울가로 향했다.
녀석은 부상에서 거의 회복된 상태다. 선천적으로 강골인 데다가 아직 젊어서인지 매우 빠른 회복력을 보였다. 민화영의 치료와 공은림, 하조혁의 약도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세안을 마친 왕철양이 돌아와서 다시 행낭을 멨다.
녀석에게 말했다.
“갈까?”
“예.”
이에 우리는 가볍게 경공을 펼치기 시작했다.
우리가 향하고 있는 곳은 귀양지부의 면벽수련동이다.
면벽수련동은 지상 이 층, 지하 일 층의 석조건물로, 방해받지 않고 장시간 운기조식을 취하고 싶을 때 이용하는 공간이다.
면벽수련동의 일 층으로 들어서자 관리인으로 보이는 중년인이 우리를 맞이했다.
“어서들 오시오.”
사무적으로 그렇게 말한 그가 내게 시선을 두더니 눈매를 좁혔다. 그러더니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다시 말했다.
“어……? 차, 창천비룡 소협 아니십니까?”
“아하하, 안녕하십니까. 수고 많으십니다.”
창천비룡이고, 소협이고, 지금은 그냥 넘어가자.
“이, 이런 곳에까지 발걸음을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영광이라는 표정이다. 부담스럽다.
“근래 운기 시간이 부족했던 터라 오늘은 진득하게 운기조식 좀 하려고 합니다.”
“아! 그러시군요! 매우 이른 시간이라서 수련실은 모두 비어있습니다. 어디든 원하시는 곳을 사용하시면 됩니다.”
“지하에서 하겠습니다.”
“이인실 중에서 가장 넓은 곳은 양쪽 끝에 있는 수련실입니다.”
“둘 중 아무 곳이나 주십시오.”
그러자 관리인이 열쇠를 내밀며 말했다.
“계단으로 내려가셔서 좌측 끝에 있는 수련실입니다.”
열쇠를 받아 들며 대꾸했다.
“감사합니다. 나중에 뵙겠습니다.”
“예, 소협. 나중에 뵙겠습니다.”
두툼한 철문을 열고 수련실 안으로 들어섰다.
수련실은 사방이 모두 두꺼운 석벽이었으며, 성인 세 명이 나란히 누울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었다.
“일단 운기조식을 좀 할까?”
“예.”
이에 내가 소형 행낭을 벗어놓고는 한쪽 벽을 바라보며 가부좌를 틀고 앉자, 왕철양도 행낭을 벗어놓고는 반대쪽에 앉았다.
곧 녀석이 운기조식을 시작했고, 나도 운기에 들어갔다.
천섬무의 성취가 상승하면서 회회심공의 운기 속도는 더 빨라진 상태다.
하지만 이번에는 차분하게, 천천히 운기했다.
두 차례 연속으로 운기를 마치고 눈을 떴는데, 왕철양의 기운도 서서히 갈무리되어 가는 중이었다. 이 정도 시간이면 녀석도 운기조식을 두 차례 취했을 것이다.
이에 나는 신형을 돌려서 왕철양 쪽을 바라보며 벽에 기대어 앉았다. 그러면서 수통을 꺼내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잠시 기다리자 왕철양이 숨을 길게 들이쉬더니 작게 내쉬며 운기를 마쳤다. 그러더니 내 쪽으로 신형을 돌렸다.
녀석에게 말했다.
“자, 그럼 시작할까?”
“아, 예…….”
왕철양이 대꾸하더니 자신의 행낭을 뒤지기 시작했다.
나는 한 손에는 용마검을 쥐고, 다른 한 손에는 남색 목갑을 꺼내서 쥐었다.
그러자 왕철양이 철그럭, 철그럭 소리를 내며 행낭에서 쇠사슬을 꺼냈다.
어제 왕철양과 함께 시장에 나가서 사엽상과 황호병에게 줄 술을 사 왔었는데, 저 쇠사슬도 그때 산 것이다.
왕철양이 쇠사슬을 챙겨서 내게 다가왔다.
이에 내가 가부좌를 틀고 앉자 왕철양이 쇠사슬을 든 채로 말했다.
“저, 정말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겁니까?”
“어. 혹시 모르니까. 어서 해.”
그러자 왕철양이 쇠사슬로 내 몸통을 감기 시작했다.
“더 단단히 감아.”
“아……, 예.”
쇠사슬로 열심히 내 몸통을 묶은 왕철양이 이번에는 다른 쇠사슬로 교차해 있는 내 다리를 묶기 시작했다. 가부좌를 튼 상태이기에 양 발목의 위쪽이 교차해 있는 상태다.
이윽고 작업을 마친 왕철양이 말했다.
“지시하신 대로 하긴 했습니다만, 뭔가 패륜을 저지른 느낌입니다.”
“푸하하.”
“이런 상태로 운기조식을 하신다니…….”
“만에 하나의 위험성이라는 게 있으니까. 어쨌거나 너는 만약의 상황이 발생하면 내가 미리 얘기했던 대로 하기만 해.”
“알겠습니다.”
나는 지금부터 두영산의 약을 복용할 계획이다.
어느 정도의 난관은 있겠지만, 그럼에도 성공 확률이 매우 높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왕이면 이른 시일 내에 도전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성공 확률이 아무리 높다고 해도 주화입마에 빠질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렇듯 쇠사슬로 내 몸을 결박한 것이다.
왕철양에게도 내가 복용하려는 약이 약간의 위험성을 띠고 있다고 말해뒀다.
그러니 지켜보다가 혹시라도 내가 광기에 사로잡혀서 날뛰려 한다면, 즉시 문밖으로 나가서 자물쇠를 잠근 후 제갈수광과 남궁찬에게 달려가서 보고하라고 지시해둔 상태다.
“미리 얘기하는데, 오래 걸릴지도 몰라. 몇 시진이 걸릴 수도 있어.”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에 나는 한 차례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내 소형 행낭을 턱짓하며 말했다.
“내 행낭의 외부 수납 칸을 보면 헝겊이 보일 거야. 꺼내 봐.”
그러자 왕철양이 내 행낭을 뒤지더니 손바닥 크기의 헝겊 뭉치를 꺼내 들었다.
녀석에게 말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거 육포야. 맛있을 거야. 기다리다가 배고프면 그거 먹고 있어. 너 주려고 가져온 거니까 다 먹어도 돼.”
일전에 두영산 일행을 처치한 후에 챙겨뒀던 육포다. 나도 먹어봤는데 천마신교산 육포답게 역시나 맛이 좋았다.
“헛!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이번에도 녀석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남색 목갑을 쥐고 있던 오른손을 펴며 말했다.
“자.”
그러자 왕철양이 남색 목갑을 받아 들더니 밀봉을 뜯고 목갑을 열었다.
묘한 약 향이 느껴진다.
“그럼 드리겠습니다.”
왕철양이 그렇게 말하더니 목갑에서 약을 집어서 내 입 앞으로 가져왔다.
입을 벌리자 녀석이 내 입 안으로 약을 넣어줬다.
나는 천천히 약을 씹기 시작했다.
약은 썼다.
절로 인상이 찌푸려질 정도로 썼다.
지금껏 내가 먹어봤던 모든 영약류 중에서 가장 쓴 느낌이다.
그런데도 나는 약을 최대한 꼭꼭 씹어서 넘겼다.
그 후에 왕철양에게 짧게 말했다.
“아으, 써. 아으…….”
녀석이 웃음 지었다.
약을 삼키자 서서히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내면의 상황을 관조했다.
처음에는 반응이 서서히 오는 듯했는데, 일정 시점이 지나자 엄청나게 강력해졌다.
지금껏 이런저런 영약, 영과, 영초 등을 먹어봤는데, 이 약의 초반 반응이 가장 강력하다.
그리고 거칠다.
이전에 복용했던 백년음양선과나 자심행과 같은 것들이 노도와 같은 느낌이었다면, 이 약은 폭풍 같은 느낌이다. 백년음양선과나 자심행과가 잘 달리는 천리마 같은 느낌이었다면, 이 약은 광기에 차서 날뛰는 야생마 같은 느낌이다.
복용하자마자 빠르게 기운을 채워주는 효과도 있다고 하더니, 그 이유를 대강은 알 듯하다.
바로 회회심공을 운기하기 시작했다.
회회심공을 빠르게 운용하면 기운을 더 많이 흡수할 수 있을 테지만 일부러 천천히, 세심하게 운기했다.
지금은 안정성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다.
약의 기운을 서서히 받아들이면서, 저 거친 기운이 날뛰더라도 버틸 수 있는 울타리를 제대로 쳐둬야 한다. 지금 울타리를 제대로 쳐두지 않으면 내 내면이 저 거친 기운을 감당하기 어려울 테고, 그러면 정말로 주화입마에 빠질 수도 있다.
내면에서 약 기운과 회회심공의 기운이 격렬하게 맞서고 있다.
회회심공의 기운이 밀리는 중이다.
회회심공의 묘리를 뇌리에 다시 한번 새기며 손아귀에 있는 용마검을 더욱 꽉 쥐었다. 그러면서 정신을 집중했다.
그런데도 날뛰는 거친 기운은 쉽사리 잡히지 않고 있다.
아니, 오히려 더 거칠어지고 있고, 더 거세어지는 중이다. 그렇다 보니 버티는 것도 점점 버거워지고 있다.
아무리 중성적인 심법을 익혔다고 해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마저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전생에 사부님의 제자가 되기 전까지는 실제로 마공을 익혔었고, 마기가 가득한 곳에서 살았었다.
마공과 마기의 성질을 잘 알고 있는 데다가, 그 기운에 익숙하기에 이렇듯 꾸역꾸역 버텨낼 수 있는 것이다.
일 회차의 운기조식이 끝났다.
시간이 상당히 많이 흘렀을 것이다. 내면에서 매우 격렬한 격돌이 벌어지고 있다 보니 최대한 안정적으로 운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왕철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교님, 괜찮으십니까?”
목소리에 염려가 가득하다.
녀석이 저렇게 물은 건, 내가 현재 땀을 흠뻑 흘리고 있는 탓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금 나는 엄청난 더위를 느끼는 중이다.
내면을 안정시키며 울타리를 치는 동안에 회회심공의 기운이 약 기운에 일방적으로 밀렸는데, 아마도 그로부터 파생된 문제인 듯하다.
그러나 내면의 울타리는 아직 제대로 완성되지 않은 상태.
어쩔 수 없이 이 회차에도 세밀하게 운기하며 울타리를 완성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회회심공이 더 밀릴 수밖에 없겠지만, 주화입마의 확률을 최소치로 낮추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고개만 한 차례 끄덕여준 후, 즉시 이 회차의 운기조식으로 돌입했다.
어느덧 이 회차의 운기조식도 끝났다.
내면의 울타리를 완성하는 동안 회회심공은 약 기운에 매우 많이 밀렸고, 그래서인지 내 몸에서는 현재 엄청난 열기가 발산되는 중이다.
덥다.
이대로 몸이 터져버리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덥다.
고통스러울 정도로 덥다.
눈을 감은 상태에서도 온몸에 땀이 비 오듯 줄줄줄 흐르고 있는 게 인식된다.
그 와중에 약간의 바람도 느껴진다.
아마도 왕철양이 부채질을 해주고 있는 모양이다.
“조교님, 정말 괜찮으십니까?”
이번에도 염려 가득한 목소리다.
눈을 감은 채로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래도 두 차례 천천히 운기조식한 덕분에 내면의 울타리는 완성된 상태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저 약 기운을 약화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저 약 기운을 빠르게 흡수하는 게 최선이다.
멈추지 않고 곧장 삼 회차의 운기에 돌입했다.
앞선 일 회차, 이 회차와는 달리, 삼 회차부터는 빠른 속도로 운기를 취했다.
내가 마음먹고 빠른 속도로 운기조식을 하면, 비슷한 경지의 다른 고수들이 한 번 운기할 때 나는 최소 서너 번은 운기할 수 있다.
빠른 속도로 운기하다 보니 금방금방 회차가 쌓여갔다.
약 기운에 줄곧 밀리던 회회심공의 기운은 운기조식의 회차가 쌓여갈수록 다시 힘을 받는 중이다.
그리고 각 회차의 운기가 끝나고 다음 회차가 시작될 때마다 내 몸의 열기도 조금씩 누그러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에 나는 정신을 더 집중한 채로 운기조식을 이어갔다.
구 회차의 운기조식이 끝났을 때쯤에는 열기도 많이 누그러졌고 거칠었던 약 기운도 적잖이 잠잠해졌다.
상대적으로 회회심공의 기운은 강해진 상태다.
공력이 증가했다는 것도 체감된다.
이제는 안정되어가고 있는 듯하니, 이대로 계속해서 운기조식을 빠르게 이어가면 될 것이다.
그런 식으로 십 회차의 운기조식을 마쳤을 때쯤, 이상 현상이 발생했다.
내 몸에 여전히 남아 있던 열기가 급속도로 사그라드는가 싶더니, 갑자기 한기가 치고 올라오며 또다시 약 기운이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이건 또 뭘까.
왜 이렇게 되는 걸까.
중성적인 내 내공의 성질 때문에, 열기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번에는 한기가 올라오는 건가?
당장 추측해볼 수 있는 건 그 정도다.
어쨌거나 또다시 약 기운이 날뛰기 시작한 만큼, 이번에도 안전을 위해서 두 차례 정도는 세심하게 운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천천히 운기하며 십일 회차를 마쳤을 때는 심한 오한이 느껴지더니, 십이 회차를 마쳤을 때는 아예 몸이 덜덜덜 떨렸다.
그때쯤 또다시 왕철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교님, 제 옷과 피풍의를 좀 덮어드리겠습니다.”
운기 중에는 방해가 될 수 있으니 운기가 끝난 후에야 덮어주려는 것이다.
내가 눈감은 채로 고개를 끄덕이자 왕철양이 내 상체에 뭔가를 걸쳐줬다.
어쨌거나 이번에도 세밀하게 두 차례 운기한 덕분에 헐거워졌던 내면의 울타리를 튼튼하게 보강할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 회회심공이 한기에 밀린 것이다.
여전히 약 기운은 상당량 남아 있는 상태.
이에 나는 또다시 빠른 속도로 운기하기 시작했다.
십구 회차의 운기를 끝냈을 때쯤에는 한기도 어느 정도 잡혔다.
열기와 한기가 교대로 날뛰었으니 이제 위기는 다 지나가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웬걸, 이십 회차의 운기조식을 취하는 중에 또다시 이상 현상이 발생했다.
갑자기 열기가 다시 솟구쳐 오르는가 싶더니 방금 잡았던 한기도 또다시 솟구쳐 오른 것이다.
약 기운은 어느 정도 흡수되어 잠잠해졌는데, 운기 과정에서 파생된 열기와 한기가 동시에 날뛰고 있다니.
내 내면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어쨌거나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나는 운기 중에 곧장 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었다.
이상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만큼, 최대한 안정적으로 운기조식을 진행하며 내면을 관조할 필요가 있다.
회회심공의 기운으로 어떻게든 열기와 한기를 제어하려 했는데, 내 뜻대로 되지 않고 있다.
이에 나는 두 번 더 천천히, 세심하게 운기했다.
이상 현상이 발생했을 때는 안전하게 울타리를 보강하는 것이 우선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자 열기와 한기는 거의 미쳐 날뛰는 지경이 되었다.
이에 나는 또다시 빠른 속도로 운기하기 시작했다.
이십삼 회차부터 이십칠 회차까지의 운기조식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내가 회회심공을 운기하기 시작한 후로 최고 속도였다.
약 기운이 흡수되어 내공으로 전환되니, 그게 회회심공의 성취에도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약 기운이 줄어들수록 열기와 한기가 더 강해지며, 둘의 다툼도 더 격렬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선의 해결책이 있다면 저 둘이 섞이게 만들어서 힘을 상쇄시키는 일일 텐데, 그게 생각처럼 쉬울 리 없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다.
체내의 기운을 고속으로 돌리면서 저 두 기운이 어떻게든 섞이도록 노력해 보는 수밖에.
이후에도 최선을 다해서 고속 운기를 진행했다.
매번 새로운 회차가 시작될 때마다 이전 회차보다 더 빠르게 기운을 돌리는 일에만 집중했다. 차라리 속도에 집중하는 편이 열기와 한기로 인한 고통을 잊기에도 좋았다.
그런 식으로 오 회차가 더 진행되었을 때쯤, 주목할 만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내 바람대로, 격렬히 다투던 열기와 한기가 조금씩 섞이기 시작한 것이다.
일말의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 상황.
나는 더 집중하며 고속 운기조식에 박차를 가했다.
이후에 또다시 오 회차의 운기가 마무리되어갈 무렵에는 열기와 한기가 반 이상 섞였고, 그 후 오 회차의 운기가 더 진행되었을 때쯤에는 열기와 한기가 거의 다 섞였다.
이제야 위기에서 벗어난다는 생각에 안도감을 느끼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내면에서 ‘쾅!’ 하고 우레가 치더니 그 폭발의 기운이 상부로 솟구쳐 오르며 뇌리를 강하게 때렸다.
뇌리에 전해진 충격이 엄청나다 보니 정신이 아득해진다.
고수들이라도 웬만하면 이쯤에서 정신을 잃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고통을 참는 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다.
한 가닥 이어져 있는 정신의 끈을 필사적으로 부여잡고는 곧바로 다음 회차의 운기조식에 돌입했다.
단, 이번에는 고속으로 운기하지 않고 천천히 기운을 돌렸다.
뇌리의 충격으로 인해 고속으로 운기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있는 탓이다.
그렇듯 정신을 겨우겨우 부여잡으며 매우 천천히 운기를 이어가던 어느 순간, 갑자기 뭔가가 정수리로 쑥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부터 머릿속이 환해지는가 싶더니, 더없이 맑고 상쾌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