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396
귀양지부에서의 생활이 보름째 되던 날, 운남으로부터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운남 수복전단이 곤명지부를 탈환했다는 소식이었다.
무당파의 현송진인과 진허자, 광동의 낙문월, 진종정, 요수번, 국해건 등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들의 역할이 컸을 것이다.
귀양지부에서 철수하던 적측 전력을 우리가 확실하게 제거해준 일 또한 운남 수복전단에 적잖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이곳에서 철수하던 적들이 그대로 운남 쪽에 합류했다면 운남 수복전단 측도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테니까.
사엽상과 황호병을 면회하고 나오니 늦은 오후였다.
사람들의 왕래가 적은 경로를 통해 거주 구역으로 향했다.
본부 구역에서는 이렇듯 인적이 드문 곳으로 조용히 다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사람들이 몰려들게 되고, 그들과 인사 나누느라 이동하기가 어려워진다.
무시하고 지나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무시하고 지나갔다가는 내 평판이 깎일 테고, 그렇게 되면 백도의 힘을 빌려 사부님의 복수를 하려는 내 계획도 차질을 빚게 된다.
조용히 걸음을 옮기는데 저 앞에서 나와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제갈수광이다.
그가 인적이 드문 경로로 이동하고 있는 건 아마도 나와 같은 이유일 것이다. 그도 유명 인사인 칠절사군 대협이니까.
빠르게 걸음을 옮겨 그의 뒤로 따라붙었다.
“교관님.”
죽립을 눌러쓴 제갈수광이 걸음을 멈추더니 돌아섰다.
“어, 송유겸.”
“어디, 다녀오시는 길입니까?”
본부 구역에서 만났기에 그렇게 물은 것이다.
“어. 지휘 막사에. 넌?”
“마두들 면회 다녀오는 길입니다.”
“특이 사항은 없고?”
마두들에게 특이 사항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예.”
내가 대꾸하자 제갈수광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나도 그와 나란히 걸음을 옮겼다.
한동안 말없이 걷던 그가 내 쪽으로 살짝 고개를 돌리더니 말했다.
“엊그제부터였던가. 짜식이 어떻게 보면 분위기가 좀 달라진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단 말이야. 하여튼 희한한 내공을 익혀서는.”
내 변화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다.
하긴, 제갈수광은 잠룡관 시절부터 나와 계속 함께해온 사람이다. 저렇듯 미약하게나마 눈치챌 법도 하다.
“아하하, 근래 치른 실전들을 복기하다 보니 약간의 깨달음이 있긴 했습니다. 쉽지 않은 전투들을 연달아 겪으며 느낀 점이 많았던지라.”
최절정에 올랐다는 사실을 지금 굳이 밝힐 필요는 없을 테니 대충 둘러댔다.
그에게 다시 말했다.
“마침 얘기가 나왔으니 드리는 말씀인데, 교관님이야말로 분위기가 이전과 많이 달라지신 것 같습니다.”
제갈수광은 대답 대신 한 차례 희미한 미소만 지어 보일 뿐이었다.
무언의 긍정이다.
실제로 제갈수광의 기도는 송풍장을 떠나기 전과 비교하면 크게 달라진 상태다.
이번 광서 수복전과 귀주 수복전의 전투 상황들은 하나같이 만만치 않았다.
그런 상황 속에서 가장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던 게 바로, 고수인 제갈수광과 임려현과 남궁묵과 나였다. 당연히 우리의 성취도 많이 상승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잠시 묵묵히 걸음을 옮기던 제갈수광이 전음을 보내왔다.
[모레, 이른 새벽에 귀양지부를 떠나게 될 거다.]
지휘 막사에 갔다 왔다더니 저 얘기를 나누고 온 모양이다.
[아, 그렇습니까.]
[흩어졌던 귀주의 무인들도 다들 귀양지부로 집결하고 있고, 폐허가 되었던 남부지맹도 복구가 진행 중이다. 무엇보다도 운남 수복전단이 곤명지부 탈환에 성공한 마당이다. 그러니 우리가 이곳에 굳이 더 머무를 이유는 없지.]
[부상자들이 대부분 회복되긴 했지만 단목 소저의 발목은 아직 다 낫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단목지는 발목을 심하게 다쳤었다 보니 아직 완치되지 않은 상태다. 그 발목 상태로 경공을 펼쳐서는 안 된다.
제갈수광이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녀석이 업고 가면 되잖나.]
내가 일전에도 단목지를 업고 왔었던 데다가, 제갈수광은 나와 단목지가 잠룡관 시절부터 매우 친한 사이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저런 농담을 하는 것이다.
[아하하……, 장원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업고 가다 보면 저도 저지만 단목 소저가 먼저 골병들 겁니다. 업혀 있는 자세도 기본적으로 편한 자세는 아니라는 거, 아시잖습니까.]
내가 대꾸하자 제갈수광이 여전히 장난스러운 미소를 유지한 채로 다시 말했다.
[장원까지 업고 갈 필요는 없지. 육로로 이동하는 건 중경의 장진현까지고, 그 후부터 송풍장까지는 장강의 뱃길을 이용할 테니.]
이곳 귀양에서 정북향으로 이동하면 중경이다. 잠룡관도들과 같이 이동해야 할 테니, 그들의 경공 속도에 맞춰서 이동한다면 닷새에서 엿새는 걸릴 것이다.
[오륙일 동안 업혀 간다고 해도 마찬가집니다. 당연히 골병듭니다.]
내가 대꾸하자 제갈수광이 말했다.
[농담이었다. 귀주 수복전단 측에서 전투마를 구해주기로 했다. 단목지는 그 말을 타고 갈 것이다.]
[아.]
기본적으로 전투마는 잘 훈련된 말인데, 그런 말을 타고 달린다면 걸리는 시간은 큰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포로들도 우리가 호송하게 되었다.]
[아, 우리가 말입니까?]
[포로들이 워낙 대마두들이라서 그들을 호송하려면 고수들과 최정예 전력이 투입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 본맹이 그 정도의 전력을 이곳에 따로 파견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잖나.]
제갈수광이 바로 말을 이었다.
[결국 우리가 복귀하는 길에 호송하는 게 최선이라는 판단이겠지. 어차피 뱃길로 가다 보면 무창을 지나쳐야 하니, 그곳에서 본맹 측에 인계하라는 지시다. 포로들은 철창에 위장막을 덮은 마차로 호송될 테고, 그 마차는 귀주 수복전단 측에서 준비해줄 것이다.]
마차에 위장막을 덮는 이유는 우리가 대마두들을 호송하고 있다는 걸 숨기기 위함이다. 황호병, 사엽상, 요석평 등도 상당히 유명한 고수들이다 보니 알아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테니까.
어쨌든 마차까지 대동한다면 중경까지 이삼일은 더 걸린다고 봐야 한다.
[우리는 무림맹의 무인들의 복장을 하고 약간의 변장까지 한 채로 포로들을 호송할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은데 우리가 상당히 유명해져 버린 모양이라, 무림맹의 무인들로 변장해야만 사람들의 시선을 덜 끌 거라고 하더군.]
[그렇겠군요.]
[포로들이 대마두들인 만큼 일반 객잔을 이용하기에는 많은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숙소는 최대한 무림맹의 지소를 이용할 계획이고, 그게 어려울 때는 노숙할 것이다.]
[예.]
[그렇게 알고 우리 인원들에게 전파하도록. 이 사안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당부도 잊지 말고. 우리가 떠난다는 사실이 이곳에 미리 퍼지면 괜히 시끄러워질 테니.]
[알겠습니다.]
그런 대화들을 나누다 보니 어느새 우리의 막사 구역에 도착했기에, 나는 제갈수광에게 인사하고 헤어졌다.
방심할 생각은 없지만, 호송 중에 별다른 위험 요소는 없을 것이다.
단목진, 문숙경, 남궁찬을 앞세운 우리의 전력은 강력하다.
혹여 패주하여 숨어 있는 적들이 존재한다 해도, 우리 전력은 그 정도 수준으로 어찌해볼 수 있는 전력이 아니다.
제대로 전력을 갖춰 와야만 상대가 가능한 전력이다. 그 경우 단목진, 문숙경, 남궁찬 등을 압도할 만한 고수들도 포함되어 있어야 할 테고.
* * *
이틀 후, 인시 초(새벽 3시) 무렵.
강서로 복귀할 인원들이 조용히 귀양지부의 정문 쪽에 모였다.
귀주 수복전단의 지휘부와 백리세가, 사천당가, 형산파의 주요 인사들도 우리를 배웅하러 나와 있다.
이곳저곳에서 작별 인사가 이뤄지는 가운데, 내 주변에는 사천당가, 형산파, 백리세가의 주요 인사들이 모여 있다.
그간 당효광, 웅익기, 백리탄을 통해 사천당가, 형산파, 백리세가의 주요 인사들과도 나름의 친분을 쌓은 상태다.
당우수가 아쉬워하며 내게 말했다.
“좀 더 친해지고 싶었는데 이렇게 헤어지는군.”
이에 나도 아쉬움이 담긴 미소를 보이며 대꾸했다.
“그간 여러모로 잘 대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사천당가의 선배님들과 암기술에 대해 토론을 나눈 것도 많은 공부가 됐습니다.”
“송 공자와 토론한 덕분에 우리도 암기술에 대한 시야가 더 넓어졌네. 매우 의미 있는 시간이었어.”
내가 대답 대신 미소를 지어 보이자 당우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효광이를 잘 부탁하네.”
당효광은 가문으로부터 허락을 구한 터라 곧장 우리와 같이 송풍장으로 향하게 된다.
“생활하고 수련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최대한 신경 쓰겠습니다.”
내가 대꾸하자 당우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에는 당우철을 비롯한 당가의 다른 인물들에게도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러자 옆쪽에서 상충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헐헐헐,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견스럽고 흐뭇했는데, 이제는 못 본다니 너무도 아쉽구나, 아이야.”
“저야말로 태상장로님과 헤어지려니 너무 아쉽습니다.”
“헐헐헐헐.”
“과거 시절의 강호 이야기도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다음에도 또 들려주십시오.”
“그래. 그러자꾸나.”
“다시 뵐 때까지 강녕하셔야 합니다.”
“너도 잘 지내고 있거라.”
“예.”
대꾸한 후에는 금원창을 비롯한 형산파의 다른 인물들에게도 고개 숙여 인사했고, 그 후에는 웅익기와도 짧은 인사를 마쳤다.
형산파 고수들과의 인사가 끝나자 백리창이 말했다.
“이제 언제쯤에나 다시 보게 될까 싶군. 뭐, 우리 쪽에서야 뱃길을 이용하면 포양호까지는 편히 오갈 수 있으니, 정 보고 싶으면 바람이나 쐴 겸 해서 내가 그곳으로 가면 되긴 하네만.”
“언제든 환영입니다. 편하게 방문해 주십시오.”
내가 대꾸하자 백리창이 흐뭇한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무학에 대해 깊이 토론할 수 있어서 좋았네. 자네의 해박한 무학 지식에도 감탄했고.”
“과찬이십니다. 당주님이야말로 해박하셨고 덕분에 제가 많이 배웠습니다.”
실제로 백리창의 무학 지식은 제법 해박한 편이었다. 그가 괜히 저런 고수가 된 게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탄이를 잘 부탁하고, 다음에 또 보세. 무운을 비네.”
“예. 다음에 뵙겠습니다.”
이후에는 다른 백리세가의 고수들과도 작별 인사를 나눴다.
당우수, 상충호, 백리창 등이 다른 이들과도 작별 인사를 나누기 위해 멀어져가자 이번에는 귀주 수복전단의 지휘부가 다가왔다.
위태창이 말했다.
“우리의 은인이 떠나는군. 우리의 목숨뿐만 아니라 귀주 수복전단 전체를 구한 은인이.”
“후……. 이렇게 아쉬울 데가.”
장종담도 그렇게 말을 보탰는데, 실제로도 매우 아쉬워하는 중이다.
“아하하……, 저도 너무 아쉽습니다.”
내가 대꾸하자 위태창이 말했다.
“그 고마움은 평생 잊지 않을 걸세.”
장종담도 곧바로 말을 보탰다.
“나도 마찬가질세.”
그렇게까지 중요시하지 않아도 된다고 대꾸해 봐야 이야기만 더 길어질 것이다. 그래서 그냥 미소만 지어 보이고 넘겼다.
그러자 여태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만 있던 서문범이 내 양손을 맞잡으며 입을 열었다.
“그간 정말 수고 많았네. 고마웠네.”
“단주님께서도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여러모로 배려해주신 덕분에 잘 지내다가 갑니다.”
“잘 지내기는 무슨. 시설이 열악하다 보니 제대로 챙겨주지도 못해서 미안한 마음뿐인데.”
“미안하시다니요. 전혀 그런 마음 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그러자 서문범이 미소 짓더니 말했다.
“헤어질 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네. 차후에 혹시라도 내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거든 언제든 주저하지 말고 얘기해주게나. 송 공자는 내 은인이자 영웅인 만큼, 무조건 협조할 걸세.”
그러자 장종범과 위태창이 거의 동시에 말했다.
“나도 마찬가질세.”
“나 또한 무조건 협력할 걸세.”
세 사람 모두 진심이 느껴진다.
“……감사합니다.”
내가 대꾸하자 서문범이 천천히 손을 놓으며 말했다.
“주저함 없이 도움을 요청할 수 있으려면 우리가 조금 더 가까운 사이가 될 필요가 있겠지. 내, 이번 일을 마무리한 후에 꼭 송풍장에 들르겠네. 그때 편하게 술이나 한잔하세.”
“같이 가시죠.”
장종담이 그렇게 말하자 위태창도 곧바로 말을 보탰다.
“저도.”
이에 세 사람에게 대꾸했다.
“그날을 고대하고 있겠습니다.”
세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문범이 말했다.
“그래. 복귀하는 길, 무탈하기를 빌겠네.”
“세 분께서도 늘 무탈하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세 사람을 향해 포권해 보인 후, 그들과 헤어졌다.
작별 인사가 대강 마무리되자 귀양지부의 정문이 열렸고, 우리는 정해진 대형에 맞춰서 귀양지부를 나섰다.
말 한 마리와 쌍두마차 네 대가 우리와 동행하는 중이다.
말에 탄 사람은 역시나 단목지다.
쌍두마차 중 세 대에는 각각 포로인 황호병, 사엽상, 요석평이 타고 있다.
나머지 쌍두마차 한 대는 짐마차다.
어차피 여러 대의 마차를 끌고 가는 김에, 다소 무게가 있거나 부피가 큰 짐들은 편하게 짐마차에 싣고 가기로 한 것이다. 짐마차에는 아직 부상에서 온전히 회복되지 않은 일부 인원들의 행낭도 같이 실었다.
황호병의 마차는 남궁찬이, 사엽상의 마차는 단목진이, 요석평의 마차는 이영소가 몰았다.
짐마차는 정세건이 맡았다. 녀석은 어려서부터 정가장에서 온갖 궂은일을 다 하며 자랐기에 마차 모는 솜씨도 수준급이다.
말과 마차들은 이동 대형의 중진에 배치되었다.
지휘관인 제갈수광을 비롯하여 잠룡관의 교관, 관도들도 대형의 중진에 배치되었다. 모승언 등의 실전 고수들도 중진이며, 단목세가의 검풍대도 중진이다.
문숙경이 이끄는 검각의 해천대와 특전반이 대형의 전방에 배치되었고, 나를 포함한 송풍장의 친우들은 대형의 후미에 배치되었다. 임려현과 백리탄도 우리와 함께 후미에 배치되었다.
제갈수광이 나와 단목강과 길초량에게 후미 중에서도 최후미를 맡겼기에, 우리는 약간 뒤쪽으로 처져서 수다를 떨며 경공을 펼칠 수 있었다.
우리는 북쪽으로 빠르게 나아갔다.
무림맹의 복장을 하고 있다 보니 사람들의 시선이 어느 정도 끌리기는 했으나, 적당히 변장하고 죽립까지 눌러쓴 탓에 정체를 알아보는 이들은 없었다.
첫날의 여정이 끝난 후에는 식봉현의 외곽에 있는 무림맹 식봉지소에서 머물렀다.
식봉지소도 이번 사태 때 상당 부분 파괴됐다가 복구해가는 중이었다. 그렇다 보니 우리도 어쩔 수 없이 간이 막사를 설치하고 쉴 수밖에 없었다.
이틀째에는 준의현의 남부 산지에서 노숙했고, 사흘째의 오전에는 잠시 남부지맹에 들렀다.
남부지맹이 준의현의 북부 외곽에 자리 잡고 있다 보니 우리의 이동 경로상이었다. 그렇다 보니 무시한 채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남부지맹에서는 그곳의 주요 인사들과 인사하고 잠시 환담을 나눈 후에 다시 길을 재촉했다.
이후에도 계속 이동하며 무림맹의 지소에서 숙박하거나 간혹 노숙하기를 반복했다.
남부지맹과 여러 지소를 겪어 보니 우리의 유명세가 제대로 체감되었다.
동천오룡 내지는 동천삼룡, 창천쌍룡, 칠절사군, 의혼비절 등의 별호들이 통용되고 있었고, 우리를 대하는 무인들의 자세는 거의 영광스러워하는 느낌에 가까웠다.
그러는 동안에 강호의 희망 내지는 백도의 희망이라는 얘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시설들이 아직 복구 중이라서 대부분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다들 그 와중에도 어떻게든 우리가 편하게 머물 수 있게끔 최선을 다하는 모습들이었다. 우리가 미안할 정도로.
* * *
우리는 귀양지부를 떠난 지 여드레 만에 귀주의 경계를 벗어났고, 그날 오후 무렵에는 목적지인 장진현에 도착했다.
장진현은 중경의 중심부에서 남서쪽으로 약 백 리쯤 떨어진 곳이다. 장강을 기준으로 중경보다 상류이며, 귀주에서는 중경보다 장진현이 약간 더 가깝다.
장진현까지 아흐레쯤은 걸릴 것이라 여겼는데, 다들 발걸음이 가벼워서인지 다소 일찍 도착할 수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이동 간에 별다른 위험 징후는 없었다.
장강의 강변에 자리 잡은 무림맹 장진지소로 들어섰다.
참고로 장진현은 중경 권역으로, 이번에 적들로부터 공격받지 않았던 지역이다.
그 덕분에 장진지소의 건물과 시설들은 멀쩡하여,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이렇게 멀쩡한 시설에 머무르는 게 매우 오랜만인 탓이다.
장진지소에는 단독으로 사용하는 나루터까지 갖춰져 있어, 무림맹의 배가 직접 드나든다는 모양이다.
그 말인즉, 그냥 이곳에서 편히 쉬고 있으면 본맹의 배가 와서 우리를 싣고 간다는 뜻이다. 배에서 가만히 쉬다 보면 포양호를 거쳐 송풍장에 도착하게 되는 것이고.
결국, 길고 고단했던 일정이 모두 마무리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우리가 광서 수복전단을 지원하기 위해 송풍장을 떠났던 게 팔월 초순의 일이었다.
오늘은 십일월 보름날이다.
장장 석 달하고도 열흘가량의 긴 일정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